정조실록5권, 정조 2년 1월 22일 癸未 2/2 기사 / 1778년 청 건륭(乾隆) 43년
주강하여 《논어》를 강하고 대신들과 토론하다
국역
주강(晝講)하여 《논어》를 강(講)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관저장(關雎章)에 ‘애락(哀樂)’ 두 글자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어 말한 것이겠는가?"
하매, 검토관(檢討官) 임시철(林蓍喆)이 말하기를,
"문왕(文王)을 가리킨 것인 듯합니다."
하고, 시독관(侍讀官) 엄사만(嚴思晩)은 말하기를,
"신의 생각에는 문왕을 가리키어 한 말이 아니라 ‘악(樂)’을 위주하여 한 말인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첫번에 한 말도 역시 좋은 것이다. 대개 사람이 이미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았기 때문에 즐거워함이 따라서 음란하지 않았으니, 이는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볼 수 있는 일이다."
하매, 엄사만이 말하기를,
"문왕은 성정이 올바름을 얻었기 때문에 추구(推究)하여 즐거운 경지에 미치게 되고, 또한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대저 관저장에 이른바 ‘자나 깨나 사모하느라 누워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고 한 말을 혹자는 문왕(文王)을 가리켰다 하고 혹자는 궁인(宮人)을 가리켰다 하는데, 두 가지 말 중에 어느 것이 옳겠는가?"
하매, 지경연사(知經筵事) 김종수(金鍾秀)가 말하기를,
"이는 궁인이 문왕의 어진 배필을 구하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서 시를 지어 탄미(歎美)한 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선조(先朝) 때에도 경연(經筵)에서 또한 관저장을 강설(講說)하는 수가 많았는데, 임영(林泳)은 궁인이 지은 것으로 여겼었으니, 이는 주자(朱子)의 이른바 ‘바깥 사람으로는 짓게 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한 말에 따라 하는 말일 것이고, 이희조(李喜朝)는 말하기를, ‘태사(太姒)가 시집오기도 전에 무슨 첩잉(妾媵)이 있어서 앞질러 문왕이 사모하고 있는 뜻을 알아차리게 되었겠느냐?’고 했으니, 이 말은 또한 그럴 듯한 것이다. 그러나 ‘자나 깨나 누워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는 것이 비록 문왕을 가리키어 말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안될 것이 없다. 대개 문왕의 덕화(德化)가 궁인들에게 미치고, 궁인들도 또한 문왕이 어진 배필을 구하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하여 음영(吟詠)하는 사이에 말이 나오게까지 된 것이니, 더욱 문왕의 덕화가 깊었음을 볼 수 있다. 궁인이 지은 것이란 말이 마땅히 정론(正論)이 될 것이다."
하매, 엄사만이 말하기를,
"이를 정론으로 삼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였다. 김종수가 말하기를,
"신이 춘방(春坊)에 10여 년을 있을 적에 이미 성학(聖學)이 고명(高明)하시어 삼대(三代) 시절과 같은 정치를 이 시대에 기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사복(嗣服)하신 이후 정령(政令)을 시행해 가고 조치해 가는 동안에 비록 대단한 과실이 없기는 했습니다마는, 춘방에서 시강(侍講)할 때에 기대하던 바와는 다르게 되었으니, 이는 오로지 ‘입지(立志)’ 두 글자에 혹시 조금이라도 극진하지 못한 데가 있음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수시로 이러한 데에 성찰(省察)하는 마음을 두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의 말은 과연 좋은 말이다. 내가 사복한 뒤부터 때로는 더러 시행해 가고 조치해 가는 사이에 있어서 점검(點檢)했었으나 한 가지 정치나 한 가지 명령도 말할 만한 것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우선만 편하려고 그대로 인순(因循)해 가는 폐단을 파탈(擺脫)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양 자신을 반성해 보매 두려워짐을 견딜 수 없었는데, 경의 말이 이에 미치니 진실로 아름답게 여기며 감탄한다."
하였다.
원문
○晝講, 講《論語》。 上曰: "《關睢章》哀樂二字, 果指誰而言也?" 檢討官林蓍喆曰: "似指文王也。" 侍讀官嚴思晩曰: "臣意則非指文王而言, 似是主樂而言矣。" 上曰: "上番之言, 亦好矣。 蓋人旣樂而不淫, 故樂隨不淫。 此可見性情之正矣。" 思晩曰: "文王得性情之正, 故推而及之。 樂亦樂而不淫矣。" 上曰: "大抵《關睢章》所云: ‘寤寐思服, 輾轉反側。’ 或指文王, 或指宮人, 兩說孰是耶?" 知經筵金鍾秀曰: "似是宮人見文王求賢配之思, 作詩歎美之詞矣。" 上曰: "先朝經筵, 亦多《關睢章》講說, 而林泳則以爲宮人所作。 此則從朱子所謂外人做不到之說, 而言也。 李喜朝則以爲: ‘太姒未至之前, 有何妾媵, 先知文王思服之意耶?’ 此說亦似然矣。 然寤寐輾轉, 雖指文王而言, 未爲不可, 而蓋文王之德化, 及於宮人, 宮人亦能爲文王思求賢配, 至發於吟詠之間, 尤可見文王德化之深矣。 宮人所作之說, 當爲正論矣。" 思晩曰: "以此爲正論可矣。" 鍾秀曰: "臣在春坊十餘年, 已知聖學之高明, 三代之治, 可期於今世矣。 嗣服以後, 政令施措之間, 雖無大叚過失, 而與春坊侍講時所期異焉。 此則專由於立志二字, 或有一毫未盡處故也。 伏願聖上, 時時存察於此等處焉。" 上曰: "卿言果好矣。 自予嗣服之後, 時或點檢於施措之間, 則無一政一令之可言者。 此無他, 姑息因循之弊, 未能擺脫故也。 每自循省, 可勝瞿然, 卿言及此, 良用嘉歎。"
정조 2년 (1778) 1월 22일
국역
주강(晝講)하여 《논어》를 강(講)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관저장(關雎章)에 ‘애락(哀樂)’ 두 글자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어 말한 것이겠는가?"
하매, 검토관(檢討官) 임시철(林蓍喆)이 말하기를,
"문왕(文王)을 가리킨 것인 듯합니다."
하고, 시독관(侍讀官) 엄사만(嚴思晩)은 말하기를,
"신의 생각에는 문왕을 가리키어 한 말이 아니라 ‘악(樂)’을 위주하여 한 말인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첫번에 한 말도 역시 좋은 것이다. 대개 사람이 이미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았기 때문에 즐거워함이 따라서 음란하지 않았으니, 이는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볼 수 있는 일이다."
하매, 엄사만이 말하기를,
"문왕은 성정이 올바름을 얻었기 때문에 추구(推究)하여 즐거운 경지에 미치게 되고, 또한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대저 관저장에 이른바 ‘자나 깨나 사모하느라 누워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고 한 말을 혹자는 문왕(文王)을 가리켰다 하고 혹자는 궁인(宮人)을 가리켰다 하는데, 두 가지 말 중에 어느 것이 옳겠는가?"
하매, 지경연사(知經筵事) 김종수(金鍾秀)가 말하기를,
"이는 궁인이 문왕의 어진 배필을 구하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서 시를 지어 탄미(歎美)한 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선조(先朝) 때에도 경연(經筵)에서 또한 관저장을 강설(講說)하는 수가 많았는데, 임영(林泳)은 궁인이 지은 것으로 여겼었으니, 이는 주자(朱子)의 이른바 ‘바깥 사람으로는 짓게 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한 말에 따라 하는 말일 것이고, 이희조(李喜朝)는 말하기를, ‘태사(太姒)가 시집오기도 전에 무슨 첩잉(妾媵)이 있어서 앞질러 문왕이 사모하고 있는 뜻을 알아차리게 되었겠느냐?’고 했으니, 이 말은 또한 그럴 듯한 것이다. 그러나 ‘자나 깨나 누워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는 것이 비록 문왕을 가리키어 말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안될 것이 없다. 대개 문왕의 덕화(德化)가 궁인들에게 미치고, 궁인들도 또한 문왕이 어진 배필을 구하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하여 음영(吟詠)하는 사이에 말이 나오게까지 된 것이니, 더욱 문왕의 덕화가 깊었음을 볼 수 있다. 궁인이 지은 것이란 말이 마땅히 정론(正論)이 될 것이다."
하매, 엄사만이 말하기를,
"이를 정론으로 삼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였다. 김종수가 말하기를,
"신이 춘방(春坊)에 10여 년을 있을 적에 이미 성학(聖學)이 고명(高明)하시어 삼대(三代) 시절과 같은 정치를 이 시대에 기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사복(嗣服)하신 이후 정령(政令)을 시행해 가고 조치해 가는 동안에 비록 대단한 과실이 없기는 했습니다마는, 춘방에서 시강(侍講)할 때에 기대하던 바와는 다르게 되었으니, 이는 오로지 ‘입지(立志)’ 두 글자에 혹시 조금이라도 극진하지 못한 데가 있음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수시로 이러한 데에 성찰(省察)하는 마음을 두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의 말은 과연 좋은 말이다. 내가 사복한 뒤부터 때로는 더러 시행해 가고 조치해 가는 사이에 있어서 점검(點檢)했었으나 한 가지 정치나 한 가지 명령도 말할 만한 것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우선만 편하려고 그대로 인순(因循)해 가는 폐단을 파탈(擺脫)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양 자신을 반성해 보매 두려워짐을 견딜 수 없었는데, 경의 말이 이에 미치니 진실로 아름답게 여기며 감탄한다."
하였다.
원문
○晝講, 講《論語》。 上曰: "《關睢章》哀樂二字, 果指誰而言也?" 檢討官林蓍喆曰: "似指文王也。" 侍讀官嚴思晩曰: "臣意則非指文王而言, 似是主樂而言矣。" 上曰: "上番之言, 亦好矣。 蓋人旣樂而不淫, 故樂隨不淫。 此可見性情之正矣。" 思晩曰: "文王得性情之正, 故推而及之。 樂亦樂而不淫矣。" 上曰: "大抵《關睢章》所云: ‘寤寐思服, 輾轉反側。’ 或指文王, 或指宮人, 兩說孰是耶?" 知經筵金鍾秀曰: "似是宮人見文王求賢配之思, 作詩歎美之詞矣。" 上曰: "先朝經筵, 亦多《關睢章》講說, 而林泳則以爲宮人所作。 此則從朱子所謂外人做不到之說, 而言也。 李喜朝則以爲: ‘太姒未至之前, 有何妾媵, 先知文王思服之意耶?’ 此說亦似然矣。 然寤寐輾轉, 雖指文王而言, 未爲不可, 而蓋文王之德化, 及於宮人, 宮人亦能爲文王思求賢配, 至發於吟詠之間, 尤可見文王德化之深矣。 宮人所作之說, 當爲正論矣。" 思晩曰: "以此爲正論可矣。" 鍾秀曰: "臣在春坊十餘年, 已知聖學之高明, 三代之治, 可期於今世矣。 嗣服以後, 政令施措之間, 雖無大叚過失, 而與春坊侍講時所期異焉。 此則專由於立志二字, 或有一毫未盡處故也。 伏願聖上, 時時存察於此等處焉。" 上曰: "卿言果好矣。 自予嗣服之後, 時或點檢於施措之間, 則無一政一令之可言者。 此無他, 姑息因循之弊, 未能擺脫故也。 每自循省, 可勝瞿然, 卿言及此, 良用嘉歎。"
원본
정조 2년 (1778) 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