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00권, 영조 38년 11월 19일 丁丑 1/3 기사 / 1762년 청 건륭(乾隆) 27년
주강을 행하다. 동춘추 홍낙성 등이 강화도·광주의 흉년 상황을 아뢰다
국역
임금이 경현당에 나아가 주강하여 《대학》을 강하였다. 동춘추(同春秋) 홍낙성이 말하기를,
"명을 받들고 강화로 갔을 때에 연해의 서너 개 면이 흉년으로 적지(赤地)를 면하지 못하였고, 섬 백성들이 수백 명이 무리를 이루어 말 앞에서 호소하였습니다."
하였고, 시독관(侍讀官) 엄인(嚴璘)은 말하기를,
"광주(廣州)의 흉년도 강도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엄인을 광주 순심 어사(廣州巡審御史)로, 강필리(姜必履)를 강화 순심 어사(江華巡審御史)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0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17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경연(經筵)
원문
영조 38년 (1762) 11월 19일
영조실록100권, 영조 38년 11월 19일 丁丑 1/3 기사 / 1762년 청 건륭(乾隆) 27년
주강을 행하다. 동춘추 홍낙성 등이 강화도·광주의 흉년 상황을 아뢰다
국역
임금이 경현당에 나아가 주강하여 《대학》을 강하였다. 동춘추(同春秋) 홍낙성이 말하기를,
"명을 받들고 강화로 갔을 때에 연해의 서너 개 면이 흉년으로 적지(赤地)를 면하지 못하였고, 섬 백성들이 수백 명이 무리를 이루어 말 앞에서 호소하였습니다."
하였고, 시독관(侍讀官) 엄인(嚴璘)은 말하기를,
"광주(廣州)의 흉년도 강도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엄인을 광주 순심 어사(廣州巡審御史)로, 강필리(姜必履)를 강화 순심 어사(江華巡審御史)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0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117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경연(經筵)
원문
원본
영조 38년 (1762)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