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권, 영조 즉위년 9월 29일 己巳 1/2 기사 / 1724년 청 옹정(雍正) 2년
지평 이진수가 영덕 현령 홍정보를 쫓아내려 한 서리와 노복 등을 효시할 것을 청함
국역
지평(持平) 이진수(李眞洙)가 아뢰기를,
"영덕 현령(盈德縣令) 홍정보(洪鼎輔)는 개혁에 뜻을 두고 엄중하게 단속하는 것을 숭상하여 다스리니, 간사한 서리(胥吏)와 교활한 노복이 감히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호장(戶長)·이방(吏房)·사령(使令)·관노(官奴)들이 밤에 읍성(邑城) 밖 요새(要塞)의 도로를 점거한 다음 시골 백성들이 관가에 바치려고 싣고 가는 것을 쫓아 버렸고, 관아(官衙)의 종이 장계(狀啓)를 가지고 감영(監營)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아 금하였고, 향소(鄕所)를 달래고 위협하여 그 당(黨)에 들어오게 하되 따르지 않으면 그의 아내를 결박하여 강제로 서표(署標)를 받았으며, 또 병기(兵器)를 가지고 관문(官門)에 돌입(突入)하여 흉언(凶言)과 위협[恐嚇]이 이르지 아니한 바가 없었습니다. 그 사잇길로 보낸 장계가 영문(營門)에 이른 다음에야 비로소 두려워하여 겁을 먹고 찾아와서 근거 없는 말로 사죄(謝罪)했습니다. 홍정보가 제일 먼저 주창한 자를 조사하여 형(刑)을 시행하려고 하니, 또다시 칼을 뽑아들고 결박을 끊고서 달아났는데, 마침내 영문과 이웃 고을의 힘을 입어 6, 7명을 체포하여 모두 자백을 받았으나, 감사(監司)의 체임(遞任)으로 인하여 아직 처치를 못했습니다. 청컨대, 결안(結案)하여 효시(梟示)085) 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일이 강상(綱常)에 관계된 것이니, 오히려 경차관(敬差官)을 차견(差遣)하여 추핵(推覈)하게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본 고을에서 자백받은 것을 가지고 곧바로 효시하는 것은 형벌을 신중하게 하는 도리가 아니니,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엄하게 핵실(覈實)하여 품처(稟處)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10면
- [註 085] 효시(梟示) : 죄인의 목을 베어 놓은 곳에 매달아 놓고 뭇사람들을 경계함. 효수(梟首).
원문
○己巳/持平李眞洙啓: "盈德縣令洪鼎輔, 志在矯革, 治尙嚴束, 奸胥猾隷, 敢欲逐去, 戶長、吏房、使令、官奴, 夜環據邑城外要塞道路, 村氓之輸納官供者毆逐之, 衙奴之持狀赴營者遮禁之, 誘脅鄕所, 使入其黨, 不從則縛其妻, 勒受署標, 又持兵器, 突入官門, 凶言恐嚇, 無所不至, 及其間道投狀於營門, 然後始乃恐㤼還現, 游辭謝罪。 鼎輔欲査首唱施刑, 則又復拔劍斷索, 相與逃走, 終賴營門與隣邑, 搜捕六七人, 皆已承款, 因監司遞歸, 未及勘處。 請令結案梟示。" 批曰: "事關綱常, 猶遣敬差推覈。 今以本縣承款, 直施梟示, 非愼刑之道。 令道臣, 嚴覈稟處。"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10면
영조실록1권, 영조 즉위년 9월 29일 己巳 1/2 기사 / 1724년 청 옹정(雍正) 2년
지평 이진수가 영덕 현령 홍정보를 쫓아내려 한 서리와 노복 등을 효시할 것을 청함
국역
지평(持平) 이진수(李眞洙)가 아뢰기를,
"영덕 현령(盈德縣令) 홍정보(洪鼎輔)는 개혁에 뜻을 두고 엄중하게 단속하는 것을 숭상하여 다스리니, 간사한 서리(胥吏)와 교활한 노복이 감히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호장(戶長)·이방(吏房)·사령(使令)·관노(官奴)들이 밤에 읍성(邑城) 밖 요새(要塞)의 도로를 점거한 다음 시골 백성들이 관가에 바치려고 싣고 가는 것을 쫓아 버렸고, 관아(官衙)의 종이 장계(狀啓)를 가지고 감영(監營)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아 금하였고, 향소(鄕所)를 달래고 위협하여 그 당(黨)에 들어오게 하되 따르지 않으면 그의 아내를 결박하여 강제로 서표(署標)를 받았으며, 또 병기(兵器)를 가지고 관문(官門)에 돌입(突入)하여 흉언(凶言)과 위협[恐嚇]이 이르지 아니한 바가 없었습니다. 그 사잇길로 보낸 장계가 영문(營門)에 이른 다음에야 비로소 두려워하여 겁을 먹고 찾아와서 근거 없는 말로 사죄(謝罪)했습니다. 홍정보가 제일 먼저 주창한 자를 조사하여 형(刑)을 시행하려고 하니, 또다시 칼을 뽑아들고 결박을 끊고서 달아났는데, 마침내 영문과 이웃 고을의 힘을 입어 6, 7명을 체포하여 모두 자백을 받았으나, 감사(監司)의 체임(遞任)으로 인하여 아직 처치를 못했습니다. 청컨대, 결안(結案)하여 효시(梟示)085) 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일이 강상(綱常)에 관계된 것이니, 오히려 경차관(敬差官)을 차견(差遣)하여 추핵(推覈)하게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본 고을에서 자백받은 것을 가지고 곧바로 효시하는 것은 형벌을 신중하게 하는 도리가 아니니,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엄하게 핵실(覈實)하여 품처(稟處)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10면
- [註 085] 효시(梟示) : 죄인의 목을 베어 놓은 곳에 매달아 놓고 뭇사람들을 경계함. 효수(梟首).
원문
○己巳/持平李眞洙啓: "盈德縣令洪鼎輔, 志在矯革, 治尙嚴束, 奸胥猾隷, 敢欲逐去, 戶長、吏房、使令、官奴, 夜環據邑城外要塞道路, 村氓之輸納官供者毆逐之, 衙奴之持狀赴營者遮禁之, 誘脅鄕所, 使入其黨, 不從則縛其妻, 勒受署標, 又持兵器, 突入官門, 凶言恐嚇, 無所不至, 及其間道投狀於營門, 然後始乃恐㤼還現, 游辭謝罪。 鼎輔欲査首唱施刑, 則又復拔劍斷索, 相與逃走, 終賴營門與隣邑, 搜捕六七人, 皆已承款, 因監司遞歸, 未及勘處。 請令結案梟示。" 批曰: "事關綱常, 猶遣敬差推覈。 今以本縣承款, 直施梟示, 非愼刑之道。 令道臣, 嚴覈稟處。"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