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57권, 숙종 42년 윤3월 9일 己巳 1/3 기사 / 1716년 청 강희(康熙) 55년
굶어 죽은 제주의 백성에게 사제하고 제문을 지어 내리다
국역
굶어 죽은 제주(濟州)의 백성에게 사제(賜祭)하였다. 어사(御史) 황귀하(黃龜河)가 장계(狀啓)하기를,
"섬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매우 많으니, 청컨대 향축(香祝)을 보내고 단(壇)을 설치하여 제사하여 굶어 죽은 혼령을 위로하소서."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친히 제문(祭文)을 지어 내렸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아! 탁라(乇羅)221) 온 고장의 백성이 이런 부진(不辰)한 때에 태어나서 기근을 거듭 당한 지 이제 3년째에 이르고, 게다가 혹독한 염병을 만나 열 사람 가운데에서 한 사람도 낫지 못하며, 더구나 해외에 떨어져 있는 것이 육지와 달라서 곡식을 모으기가 어렵고 살길을 도모하기도 또한 어려우므로, 온 섬 안이 어쩔 줄 몰라 마치 병화(兵火)를 만난 듯하니, 내가 백성의 임금으로서 당연히 어떠한 생각을 하겠는가? 근심과 번민이 지극하여 내 병마저 모두 잊고 도신(道臣)에게 칙유(勑諭)하여 곡식을 배로 날라다가 먹이게 하였으나 왕래할 때에 순풍을 기다리느라 번번이 지체되게 되고, 이어서 의사(醫司)를 시켜 약물(藥物)을 넉넉히 보내게 하였으나 거의 한 움큼의 물과 같아서 두루 구완하지 못하니, 전후 4년 동안에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은 자가 수천을 헤아리게 되고 마을이 텅 비어 경황(景況)이 근심스럽고 가슴아프다. 가엾은 우리 백성은 죄가 없고 허물이 없건만, 하늘이 어찌하여 이처럼 혹독하게 재앙을 내리는가? 내 마음을 에이는 듯하여 차라리 내 몸이 당하고 싶으나 그렇게 할 수 없구나. 아! 내 병이 낫지 않고 오래 끄는 중이기는 하나 백성을 위하는 일념(一念)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아서 공인(貢人)222) 이 오면 문득 질고(疾苦)를 묻고 어사(御史)가 갈 때에는 또 연교(筵敎)223) 를 내려 마음쓰는 것이 부지런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일은 마음과 어그러져서 끝내는 우리 백성을 스스로 보전하지 못하였다. 고요히 생각하면 참으로 덕이 없기 때문이니, 어찌 부끄러워 견디겠는가? 아! 한 지어미가 원한을 품어도 오히려 재앙을 부르는데, 더구나 일만에 가까운 백성이 서로 좇아서 구덩이를 메워 죽은 것이겠는가? 아! 외로운 넋은 의탁할 데가 없어 굶주리고 하늘은 흐려 비마저 축축하니, 귀신의 울음 소리가 추추(啾啾)224) 하다. 내 생각이 이에 이르니 더욱 가엾고 측은하여 감진(監賑)하는 신하에게 명하여 터를 가려 제단을 만들고 청작 서수(淸酌庶羞)225) 로 보답하여 번거로운 원한을 위로하게 하였다. 아! 너희 뭇 귀신은 무리를 데리고 와서 음식을 흠향하고 영구히 재앙을 없애서 우리 남은 백성을 보전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5책 57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82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풍속-예속(禮俗)
- [註 221] 탁라(乇羅) : 제주의 옛 이름.
- [註 222] 공인(貢人) : 조선조 때 왕궁과 각 관청에서 쓰는 물품을 납품하는 일을 청부맡던 사람. 조선조 15대 광해주(光海主) 이후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되어 모든 공물을 대동미(大同米)로 대신 바치게 되자, 민간에서는 공동 출자 기구인 공계(貢契)를 조직하고 나라에서 필요한 물품을 공인으로 하여금 납품하게 하고 그 대가(代價)를 대동미로 받았음.
- [註 223] 연교(筵敎) : 임금이 연석(筵席)에서 내리는 명령.
- [註 224] 추추(啾啾) : 망령이 우는 소리.
- [註 225] 청작 서수(淸酌庶羞) : 제주(祭酒)와 제수(祭羞).
원문
○己巳/賜祭濟州民人餓死者。 御史黃龜河狀言, 島民死者甚多, 請送香祝, 設壇祭之, 以慰飢魂, 上許之。 親製祭文以下, 其文曰:
嗚呼! 乇羅一域之民, 生此不辰, 洊罹飢饉, 于今三載, 加以毒癘所遘, 十無一瘳。 矧玆絶海, 殊異陸地, 聚穀旣艱, 謀生亦難, 一島遑遑, 如逢兵燹, 予爲民主, 當作何懷? 憂悶之極, 渾忘疾疢。 勑諭道臣, 船粟以哺, 而往來候風, 每致遲滯, 繼令醫司, 優送藥物, 而殆同勺水, 莫能遍救, 首尾四年之間, 餓死病亡, 計以累千, 村閭空虛, 景象愁痛。 哀我赤子, 無罪無辜, 天胡降災, 若是偏酷耶? 予心若割, 寧丁我躬而不可得也。 嗚呼! 予病雖在沈綿, 爲民一念, 罔或少弛。 貢人之來, 輒問疾苦, 御史之往, 又下筵敎, 用心非不勤矣, 而事與心違, 卒不能自保吾民。 靜言思之, 良由無德, 曷勝慙靦? 嗚呼! 一婦抱冤, 尙且召災。 況近萬生靈, 相率而塡乎溝壑者乎? 嗚呼! 孤魂無托不其餒, 而天陰雨濕, 鬼聲啾啾。 予念至此, 益用愍惻。 爰命監賑之臣, 擇地爲壇, 侑以淸酌庶羞, 用慰煩冤。 嗟爾衆神, 携挈朋儔, 來享飮食, 永除災沴, 保我餘民。
- 【태백산사고본】 65책 57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82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풍속-예속(禮俗)
숙종 42년 (1716) 윤3월 9일
숙종실록57권, 숙종 42년 윤3월 9일 己巳 1/3 기사 / 1716년 청 강희(康熙) 55년
굶어 죽은 제주의 백성에게 사제하고 제문을 지어 내리다
국역
굶어 죽은 제주(濟州)의 백성에게 사제(賜祭)하였다. 어사(御史) 황귀하(黃龜河)가 장계(狀啓)하기를,
"섬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매우 많으니, 청컨대 향축(香祝)을 보내고 단(壇)을 설치하여 제사하여 굶어 죽은 혼령을 위로하소서."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친히 제문(祭文)을 지어 내렸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아! 탁라(乇羅)221) 온 고장의 백성이 이런 부진(不辰)한 때에 태어나서 기근을 거듭 당한 지 이제 3년째에 이르고, 게다가 혹독한 염병을 만나 열 사람 가운데에서 한 사람도 낫지 못하며, 더구나 해외에 떨어져 있는 것이 육지와 달라서 곡식을 모으기가 어렵고 살길을 도모하기도 또한 어려우므로, 온 섬 안이 어쩔 줄 몰라 마치 병화(兵火)를 만난 듯하니, 내가 백성의 임금으로서 당연히 어떠한 생각을 하겠는가? 근심과 번민이 지극하여 내 병마저 모두 잊고 도신(道臣)에게 칙유(勑諭)하여 곡식을 배로 날라다가 먹이게 하였으나 왕래할 때에 순풍을 기다리느라 번번이 지체되게 되고, 이어서 의사(醫司)를 시켜 약물(藥物)을 넉넉히 보내게 하였으나 거의 한 움큼의 물과 같아서 두루 구완하지 못하니, 전후 4년 동안에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은 자가 수천을 헤아리게 되고 마을이 텅 비어 경황(景況)이 근심스럽고 가슴아프다. 가엾은 우리 백성은 죄가 없고 허물이 없건만, 하늘이 어찌하여 이처럼 혹독하게 재앙을 내리는가? 내 마음을 에이는 듯하여 차라리 내 몸이 당하고 싶으나 그렇게 할 수 없구나. 아! 내 병이 낫지 않고 오래 끄는 중이기는 하나 백성을 위하는 일념(一念)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아서 공인(貢人)222) 이 오면 문득 질고(疾苦)를 묻고 어사(御史)가 갈 때에는 또 연교(筵敎)223) 를 내려 마음쓰는 것이 부지런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일은 마음과 어그러져서 끝내는 우리 백성을 스스로 보전하지 못하였다. 고요히 생각하면 참으로 덕이 없기 때문이니, 어찌 부끄러워 견디겠는가? 아! 한 지어미가 원한을 품어도 오히려 재앙을 부르는데, 더구나 일만에 가까운 백성이 서로 좇아서 구덩이를 메워 죽은 것이겠는가? 아! 외로운 넋은 의탁할 데가 없어 굶주리고 하늘은 흐려 비마저 축축하니, 귀신의 울음 소리가 추추(啾啾)224) 하다. 내 생각이 이에 이르니 더욱 가엾고 측은하여 감진(監賑)하는 신하에게 명하여 터를 가려 제단을 만들고 청작 서수(淸酌庶羞)225) 로 보답하여 번거로운 원한을 위로하게 하였다. 아! 너희 뭇 귀신은 무리를 데리고 와서 음식을 흠향하고 영구히 재앙을 없애서 우리 남은 백성을 보전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5책 57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82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풍속-예속(禮俗)
- [註 221] 탁라(乇羅) : 제주의 옛 이름.
- [註 222] 공인(貢人) : 조선조 때 왕궁과 각 관청에서 쓰는 물품을 납품하는 일을 청부맡던 사람. 조선조 15대 광해주(光海主) 이후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되어 모든 공물을 대동미(大同米)로 대신 바치게 되자, 민간에서는 공동 출자 기구인 공계(貢契)를 조직하고 나라에서 필요한 물품을 공인으로 하여금 납품하게 하고 그 대가(代價)를 대동미로 받았음.
- [註 223] 연교(筵敎) : 임금이 연석(筵席)에서 내리는 명령.
- [註 224] 추추(啾啾) : 망령이 우는 소리.
- [註 225] 청작 서수(淸酌庶羞) : 제주(祭酒)와 제수(祭羞).
원문
○己巳/賜祭濟州民人餓死者。 御史黃龜河狀言, 島民死者甚多, 請送香祝, 設壇祭之, 以慰飢魂, 上許之。 親製祭文以下, 其文曰:
嗚呼! 乇羅一域之民, 生此不辰, 洊罹飢饉, 于今三載, 加以毒癘所遘, 十無一瘳。 矧玆絶海, 殊異陸地, 聚穀旣艱, 謀生亦難, 一島遑遑, 如逢兵燹, 予爲民主, 當作何懷? 憂悶之極, 渾忘疾疢。 勑諭道臣, 船粟以哺, 而往來候風, 每致遲滯, 繼令醫司, 優送藥物, 而殆同勺水, 莫能遍救, 首尾四年之間, 餓死病亡, 計以累千, 村閭空虛, 景象愁痛。 哀我赤子, 無罪無辜, 天胡降災, 若是偏酷耶? 予心若割, 寧丁我躬而不可得也。 嗚呼! 予病雖在沈綿, 爲民一念, 罔或少弛。 貢人之來, 輒問疾苦, 御史之往, 又下筵敎, 用心非不勤矣, 而事與心違, 卒不能自保吾民。 靜言思之, 良由無德, 曷勝慙靦? 嗚呼! 一婦抱冤, 尙且召災。 況近萬生靈, 相率而塡乎溝壑者乎? 嗚呼! 孤魂無托不其餒, 而天陰雨濕, 鬼聲啾啾。 予念至此, 益用愍惻。 爰命監賑之臣, 擇地爲壇, 侑以淸酌庶羞, 用慰煩冤。 嗟爾衆神, 携挈朋儔, 來享飮食, 永除災沴, 保我餘民。
- 【태백산사고본】 65책 57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582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풍속-예속(禮俗)
원본
숙종 42년 (1716) 윤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