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21권, 숙종 15년 5월 25일 庚申 1/2 기사 / 1689년 청 강희(康熙) 28년
창원부리 황시헌을 정려하다
국역
창원부리(昌原府吏) 황시헌(黃是憲)을 정려(旌閭)하였다. 황시헌은 병자(丙子)의 난(亂)에 부사(府使) 백선남(白善男)을 따라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달려 가다가 광주(廣州) 쌍령(雙嶺)에 이르러 싸움에 패하자, 황시헌이 부인(府印)을 허리에 매고 백선남의 주검 곁에서 죽었는데, 이에 이르러 그 아들 황우룡(黃羽龍)이 조정에 상언(上言)하였다. 도신(道臣)이 부중(府中)의 고로(故老)에게 물으니, 모두 그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 황우룡의 말과 같았다. 그래서 이 명이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1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189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원문
숙종 15년 (1689) 5월 25일
숙종실록21권, 숙종 15년 5월 25일 庚申 1/2 기사 / 1689년 청 강희(康熙) 28년
창원부리 황시헌을 정려하다
국역
창원부리(昌原府吏) 황시헌(黃是憲)을 정려(旌閭)하였다. 황시헌은 병자(丙子)의 난(亂)에 부사(府使) 백선남(白善男)을 따라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달려 가다가 광주(廣州) 쌍령(雙嶺)에 이르러 싸움에 패하자, 황시헌이 부인(府印)을 허리에 매고 백선남의 주검 곁에서 죽었는데, 이에 이르러 그 아들 황우룡(黃羽龍)이 조정에 상언(上言)하였다. 도신(道臣)이 부중(府中)의 고로(故老)에게 물으니, 모두 그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 황우룡의 말과 같았다. 그래서 이 명이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21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189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원문
원본
숙종 15년 (1689)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