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18권, 현종 11년 9월 10일 甲子 3/3 기사 / 1670년 청 강희(康熙) 9년
제주 기민의 구제를 위해 각사 노비 신공을 탕감하고, 통영곡을 운반해 주다
국역
통영의 곡식을 옮겨다 제주의 기민을 구제하고, 또 본도의 각사 노비 신공(身貢)을 견감시켰다. 목사 노정(盧錠)이, 세 고을에 있는 곡식은 8천 석에 불과한데 인민의 숫자는 무려 4만 2천 7백여 명이므로 사람은 많고 곡식은 적어 결코 구제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연해의 곡물을 얻어 온 섬의 다 죽게 된 목숨을 구제할 것을 청하였는데,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제주 흉년의 참혹함은 옛날에도 듣지 못한 일입니다. 목사 노정이 촌가를 출입하며 백성이 먹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친히 살피고 기근이 더욱 심한 자는 지성으로 구제하고 있습니다만, 관곡이 매우 적어 이렇게 곡식을 옮겨 줄 것을 요청하였으니, 호남 연해의 각 고을에 있는 통영곡(統營穀)을 보내준다면 거의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사 노비 신공도 완전히 감해 주어 걱정하는 뜻을 보여야 합니다."
하니, 상이 모두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쌀 2천 석, 조(租) 3천 석을 배로 실어다 구제하였다.
원문
현종 11년 (1670) 9월 10일
현종실록18권, 현종 11년 9월 10일 甲子 3/3 기사 / 1670년 청 강희(康熙) 9년
제주 기민의 구제를 위해 각사 노비 신공을 탕감하고, 통영곡을 운반해 주다
국역
통영의 곡식을 옮겨다 제주의 기민을 구제하고, 또 본도의 각사 노비 신공(身貢)을 견감시켰다. 목사 노정(盧錠)이, 세 고을에 있는 곡식은 8천 석에 불과한데 인민의 숫자는 무려 4만 2천 7백여 명이므로 사람은 많고 곡식은 적어 결코 구제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연해의 곡물을 얻어 온 섬의 다 죽게 된 목숨을 구제할 것을 청하였는데,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제주 흉년의 참혹함은 옛날에도 듣지 못한 일입니다. 목사 노정이 촌가를 출입하며 백성이 먹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친히 살피고 기근이 더욱 심한 자는 지성으로 구제하고 있습니다만, 관곡이 매우 적어 이렇게 곡식을 옮겨 줄 것을 요청하였으니, 호남 연해의 각 고을에 있는 통영곡(統營穀)을 보내준다면 거의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사 노비 신공도 완전히 감해 주어 걱정하는 뜻을 보여야 합니다."
하니, 상이 모두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쌀 2천 석, 조(租) 3천 석을 배로 실어다 구제하였다.
원문
원본
현종 11년 (1670)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