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1권, 현종 즉위년 10월 11일 戊戌 3/3 기사 / 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영돈녕부사 이경석이 차자를 올려 요역과 부세 등에 대해 아뢰다
국역
영돈녕부사 이경석이 천둥 번개의 재이로 인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마음을 일깨우고 닦고 살펴 새로운 천명을 맞이하도록 하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씀씀이를 절제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요역은 가볍게 과하고 부세는 작게 받는 것이 바로 공자·맹자의 교훈으로서, 진실로 그렇게만 한다면 백성들이 왜 보전을 못할 것이며 나라가 왜 다스려지지 않을 것입니까?"
하였다. 또 아뢰기를,
"죽은 해골을 상대로 베를 징수하고 젖먹이 아이를 장정으로 충원시킨다면 말만으로도 참혹한 일이며 그를 금지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관리들이 삼가 봉행을 않고 조정에서도 그를 바로잡지 못했기에, 대행 대왕께서 매우 측은히 여기시고 염려하셔서 묘당으로 하여금 특별 재처를 하도록 하셨으나 미처 완료를 못 보았었는데, 지금 어떻게 해결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비록 계속할 방법은 못 된다고 할지라도 흉년을 당하여 그 한 해의 징책(徵責)만 면제하여 주어도 그 혜택 역시 큰 것입니다. 외방 여러 영문에 포목(布木)이 비록 충만하게 쌓여 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만약 내지의 각 아문이 저축분을 덜어 내어 그곳에다 보충해 준다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비국에 명하시어 방법을 강구하여 서둘러 행하도록 하신다면 선왕조로서도 신의를 잃는 일이 없는 것이 되고, 오늘에 있어서는 선왕의 뜻을 잘 계승하는 아름다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해서(海西)도 수응에 시달리기는 관서(關西)와 대략 비슷하여 종전부터 조정에서도 다른 곳과는 달리 진념(軫念)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섯 말 받는 것을 때로는 적당히 감하여주기도 하였는데, 지금 흉년에다 또 참역(站役)까지 맡게 되었으니 다소 돌보아주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기축년에 시행했던 그대로 적당히 한두 말을 감해주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경계하고 깨우쳐준 내용을 감히 가슴에 담지 않겠는가. 나머지 일들도 마땅히 묘당으로 하여금 논의하여 처리하게 하리라."
하고, 차자를 비국에 내렸다. 비국이 회계하기를,
"군정(軍丁)으로서 죽고 없는 자와 아약(兒弱)에게 베를 징수하는 폐단에 대하여 대행 대왕께서 꼭 변통을 해보려고 하셨기에, 이미 각도로 하여금 조사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외방으로부터 문서가 도래하기 시작하고 있으니, 신들이 그 조사가 끝나는 대로 아뢰어 처리하겠습니다. 해서에 쌀 다섯 말씩 징수하는 건은 대신이 그렇게까지 차자를 올렸으니, 비록 한두 말을 감량하더라도 동이 날 정도는 아닐 것이므로, 해조로 하여금 차자 내용에 의하여 적당히 감하여 받도록 하소서."
하니, 호조가 아뢰기를,
"재해를 심하게 당한 읍은 매결마다 두 말씩 감하고 그 차등 읍은 각기 한 말씩 감하여, 조정에서 진휼하는 뜻을 보이라고 두 도의 감사에게 분부하시기 바랍니다."
하자, 상이 따랐다.
원문
○領敦寧李景奭以雷電之異上箚, "請警動脩省, 以迓景命。" 且曰: "節用愛人, 輕徭薄賦, 乃是孔、孟之訓, 苟能行此, 則民安得不保, 國安得不治乎?" 又曰: "白骨徵布, 黃口充丁, 言之慘矣, 禁之久矣。 而官吏不謹奉行, 朝廷亦無以捄正, 大行大王深用惻念, 特令廟堂裁處, 而未及完了,未知卽今何以處之。 雖非可繼之道, 當凶年免一歲徵責, 爲惠亦大矣。 外方諸營布木之儲, 雖未能充足, 若損內各司所儲而添補, 則蔑不濟矣。 如命備局, 講求而速行之, 則於先朝, 無失信之事, 在今日, 爲善繼之美矣。 且海西之疲於酬應, 與關西略同, 朝廷之軫念。 自前有加五斗之捧,時或量減, 屬玆歲敝, 又當站役, 不可無顧恤之擧。 請依己丑已行之政, 量減一二斗。" 上答曰: "戒誨之辭, 敢不服膺。 餘事當令廟堂議處焉。" 箚下備局, 回啓: "以軍丁物故兒弱徵布之弊, 大行大王深欲變通, 已令各道, 査報外方。文書今始來到, 臣等當待其査準, 啓稟以處。 而海西五斗收米, 大臣如是陳箚, 雖減一二斗, 宜不至匱乏, 令該曹依箚辭參酌減捧。" 戶曹啓: "請被災尤甚邑, 則每結各減二斗, (之)次邑則各減一斗, 以示朝家軫恤之意, 分付于兩道監司。" 上從之。
현종실록1권, 현종 즉위년 10월 11일 戊戌 3/3 기사 / 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영돈녕부사 이경석이 차자를 올려 요역과 부세 등에 대해 아뢰다
국역
영돈녕부사 이경석이 천둥 번개의 재이로 인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마음을 일깨우고 닦고 살펴 새로운 천명을 맞이하도록 하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씀씀이를 절제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요역은 가볍게 과하고 부세는 작게 받는 것이 바로 공자·맹자의 교훈으로서, 진실로 그렇게만 한다면 백성들이 왜 보전을 못할 것이며 나라가 왜 다스려지지 않을 것입니까?"
하였다. 또 아뢰기를,
"죽은 해골을 상대로 베를 징수하고 젖먹이 아이를 장정으로 충원시킨다면 말만으로도 참혹한 일이며 그를 금지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관리들이 삼가 봉행을 않고 조정에서도 그를 바로잡지 못했기에, 대행 대왕께서 매우 측은히 여기시고 염려하셔서 묘당으로 하여금 특별 재처를 하도록 하셨으나 미처 완료를 못 보았었는데, 지금 어떻게 해결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비록 계속할 방법은 못 된다고 할지라도 흉년을 당하여 그 한 해의 징책(徵責)만 면제하여 주어도 그 혜택 역시 큰 것입니다. 외방 여러 영문에 포목(布木)이 비록 충만하게 쌓여 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만약 내지의 각 아문이 저축분을 덜어 내어 그곳에다 보충해 준다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비국에 명하시어 방법을 강구하여 서둘러 행하도록 하신다면 선왕조로서도 신의를 잃는 일이 없는 것이 되고, 오늘에 있어서는 선왕의 뜻을 잘 계승하는 아름다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해서(海西)도 수응에 시달리기는 관서(關西)와 대략 비슷하여 종전부터 조정에서도 다른 곳과는 달리 진념(軫念)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섯 말 받는 것을 때로는 적당히 감하여주기도 하였는데, 지금 흉년에다 또 참역(站役)까지 맡게 되었으니 다소 돌보아주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기축년에 시행했던 그대로 적당히 한두 말을 감해주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경계하고 깨우쳐준 내용을 감히 가슴에 담지 않겠는가. 나머지 일들도 마땅히 묘당으로 하여금 논의하여 처리하게 하리라."
하고, 차자를 비국에 내렸다. 비국이 회계하기를,
"군정(軍丁)으로서 죽고 없는 자와 아약(兒弱)에게 베를 징수하는 폐단에 대하여 대행 대왕께서 꼭 변통을 해보려고 하셨기에, 이미 각도로 하여금 조사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외방으로부터 문서가 도래하기 시작하고 있으니, 신들이 그 조사가 끝나는 대로 아뢰어 처리하겠습니다. 해서에 쌀 다섯 말씩 징수하는 건은 대신이 그렇게까지 차자를 올렸으니, 비록 한두 말을 감량하더라도 동이 날 정도는 아닐 것이므로, 해조로 하여금 차자 내용에 의하여 적당히 감하여 받도록 하소서."
하니, 호조가 아뢰기를,
"재해를 심하게 당한 읍은 매결마다 두 말씩 감하고 그 차등 읍은 각기 한 말씩 감하여, 조정에서 진휼하는 뜻을 보이라고 두 도의 감사에게 분부하시기 바랍니다."
하자, 상이 따랐다.
원문
○領敦寧李景奭以雷電之異上箚, "請警動脩省, 以迓景命。" 且曰: "節用愛人, 輕徭薄賦, 乃是孔、孟之訓, 苟能行此, 則民安得不保, 國安得不治乎?" 又曰: "白骨徵布, 黃口充丁, 言之慘矣, 禁之久矣。 而官吏不謹奉行, 朝廷亦無以捄正, 大行大王深用惻念, 特令廟堂裁處, 而未及完了,未知卽今何以處之。 雖非可繼之道, 當凶年免一歲徵責, 爲惠亦大矣。 外方諸營布木之儲, 雖未能充足, 若損內各司所儲而添補, 則蔑不濟矣。 如命備局, 講求而速行之, 則於先朝, 無失信之事, 在今日, 爲善繼之美矣。 且海西之疲於酬應, 與關西略同, 朝廷之軫念。 自前有加五斗之捧,時或量減, 屬玆歲敝, 又當站役, 不可無顧恤之擧。 請依己丑已行之政, 量減一二斗。" 上答曰: "戒誨之辭, 敢不服膺。 餘事當令廟堂議處焉。" 箚下備局, 回啓: "以軍丁物故兒弱徵布之弊, 大行大王深欲變通, 已令各道, 査報外方。文書今始來到, 臣等當待其査準, 啓稟以處。 而海西五斗收米, 大臣如是陳箚, 雖減一二斗, 宜不至匱乏, 令該曹依箚辭參酌減捧。" 戶曹啓: "請被災尤甚邑, 則每結各減二斗, (之)次邑則各減一斗, 以示朝家軫恤之意, 分付于兩道監司。" 上從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