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실록3권, 효종 1년 3월 19일 壬申 1/1 기사 / 1650년 청 순치(順治) 7년
청사신의 접대로 민폐가 많아 강원도와 평안도에 육두미를 지급하다
국역
상이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뒤미처 오는 자가 있다는데, 무슨 까닭에서이겠는가?"
하니, 영의정 이경여가 아뢰기를,
"그 까닭을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의 형편으로 말하자면, 접대하는 폐단을 지탱하기가 역시 어렵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민생이 앞으로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였다. 영중추부사 김육이 아뢰기를,
"다른 칙서가 없다고 하니, 필시 앞서 나온 자들의 일일 것입니다."
하고, 형조 판서 윤이지(尹履之)가 아뢰기를,
"우선 서둘러서 여러 참(站)에 쌀을 나누어 지급한 연후에야 뿔뿔이 흩어지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그렇다고 하였다. 우의정 조익이 아뢰기를,
"평안도는 육두미(六斗米)를 견감하였으니, 백성들이 받은 혜택이 큽니다. 황해와 경기의 백성도 같이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경기 백성의 곤궁함이 다른 도에 비해 더욱 심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기는 자세히 보고 듣기 때문이다. 어느 곳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경여가 아뢰기를,
"임금으로서 위태롭고 어려운 때를 당해서 근본을 생각지 않고 매양 경비를 중하게 여기시는데, 국가에 있어서 경비가 어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근본에 비교한다면 선후의 구별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상께서 백성들의 고통을 특별히 염려하시어 평안도에 육두미를 견감하여 주었으니 부모의 인애하는 마음이라 할 것입니다. 신은 항상 그 마음을 보존하여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강도(江都)는 비록 다른 곳과는 다르지마는 그곳의 조적(糶糴)의 수를 알아서 적절하게 나누어 지급하여 민생을 구원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외간의 소란이 지금은 어떠한가? 지난번 천변(天變)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비록 구차히 목숨을 부지하였으나,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원문
○壬申/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上曰: "彼人又有追來者, 何故也?" 領議政李敬輿曰: "莫測其故, 而以我事勢言之, 接待之弊, 亦難支矣。" 上曰: "民生將何以堪之?" 領中樞府事金堉曰: "無他勑書云, 必是前來者之所幹也。" 刑曹判書尹履之曰: "急先以米穀分給諸站, 然後可無渙散之患矣。" 上然之。 右議政趙翼曰: "平安道則除六斗米, 民之蒙惠大矣。 黃海、京畿之民, 亦宜一體矜恤。 畿民之困窮, 比他道尤甚。" 上曰: "京畿聞見之所詳故也。 何處不然?" 敬輿曰: "人君當艱危之日, 不思根本, 而每以經費爲重, 經費之於國家, 豈不關重, 而比之本根, 自有先後之別。 聖上特念民隱, 蠲減平安道六斗收米, 可謂父母仁愛之心矣。 臣願常存此心, 而勿忘也。" 上曰: "江都雖與他處有異, 然知其糶糴之數, 而量宜分給, 以救民生可矣。" 上又曰: "外間之騷屑, 今則如何? 向日天變, 可謂不虛應矣。 雖苟延視息, 其可謂之生活乎?"
효종 1년 (1650) 3월 19일
효종실록3권, 효종 1년 3월 19일 壬申 1/1 기사 / 1650년 청 순치(順治) 7년
청사신의 접대로 민폐가 많아 강원도와 평안도에 육두미를 지급하다
국역
상이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뒤미처 오는 자가 있다는데, 무슨 까닭에서이겠는가?"
하니, 영의정 이경여가 아뢰기를,
"그 까닭을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의 형편으로 말하자면, 접대하는 폐단을 지탱하기가 역시 어렵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민생이 앞으로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였다. 영중추부사 김육이 아뢰기를,
"다른 칙서가 없다고 하니, 필시 앞서 나온 자들의 일일 것입니다."
하고, 형조 판서 윤이지(尹履之)가 아뢰기를,
"우선 서둘러서 여러 참(站)에 쌀을 나누어 지급한 연후에야 뿔뿔이 흩어지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그렇다고 하였다. 우의정 조익이 아뢰기를,
"평안도는 육두미(六斗米)를 견감하였으니, 백성들이 받은 혜택이 큽니다. 황해와 경기의 백성도 같이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경기 백성의 곤궁함이 다른 도에 비해 더욱 심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기는 자세히 보고 듣기 때문이다. 어느 곳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경여가 아뢰기를,
"임금으로서 위태롭고 어려운 때를 당해서 근본을 생각지 않고 매양 경비를 중하게 여기시는데, 국가에 있어서 경비가 어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근본에 비교한다면 선후의 구별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상께서 백성들의 고통을 특별히 염려하시어 평안도에 육두미를 견감하여 주었으니 부모의 인애하는 마음이라 할 것입니다. 신은 항상 그 마음을 보존하여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강도(江都)는 비록 다른 곳과는 다르지마는 그곳의 조적(糶糴)의 수를 알아서 적절하게 나누어 지급하여 민생을 구원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외간의 소란이 지금은 어떠한가? 지난번 천변(天變)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비록 구차히 목숨을 부지하였으나,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원문
○壬申/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上曰: "彼人又有追來者, 何故也?" 領議政李敬輿曰: "莫測其故, 而以我事勢言之, 接待之弊, 亦難支矣。" 上曰: "民生將何以堪之?" 領中樞府事金堉曰: "無他勑書云, 必是前來者之所幹也。" 刑曹判書尹履之曰: "急先以米穀分給諸站, 然後可無渙散之患矣。" 上然之。 右議政趙翼曰: "平安道則除六斗米, 民之蒙惠大矣。 黃海、京畿之民, 亦宜一體矜恤。 畿民之困窮, 比他道尤甚。" 上曰: "京畿聞見之所詳故也。 何處不然?" 敬輿曰: "人君當艱危之日, 不思根本, 而每以經費爲重, 經費之於國家, 豈不關重, 而比之本根, 自有先後之別。 聖上特念民隱, 蠲減平安道六斗收米, 可謂父母仁愛之心矣。 臣願常存此心, 而勿忘也。" 上曰: "江都雖與他處有異, 然知其糶糴之數, 而量宜分給, 以救民生可矣。" 上又曰: "外間之騷屑, 今則如何? 向日天變, 可謂不虛應矣。 雖苟延視息, 其可謂之生活乎?"
원본
효종 1년 (1650) 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