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49권, 인조 26년 12월 23일 癸丑 1/1 기사 / 1648년 청 순치(順治) 5년
소현 세자의 둘째 아들 이석린이 제주의 배소에서 죽자, 배소의 나인을 잡아 문초하다
국역
11월 26일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둘째 아들 이석린(李石麟)이 제주의 배소(配所)에서 병으로 졸하였다. 목사(牧使)가 아뢰니, 상이 하교하기를,
"제주에 있는 아이들이 잇따라 사망했으니, 그 사이의 정상이 매우 흉측스럽다. 배소의 나인들을 금부로 하여금 잡아와서 엄히 국문하게 하라."
하고, 이어 내관을 보내어 호상(護喪)하여 오게 했다. 또 나인과 하인을 보내어 세째 아들을 호양(護養)하게 하였다. 나인 옥진(玉眞)·애영(愛英)·이생(異生) 등을 잡아왔다. 옥진이 공초하기를,
"두 아이가 죽은 것은 토질(土疾) 탓이지 보양(保養)을 삼가지 않은 탓이 아닙니다."
하였는데, 누차 형신을 받다가 죽었다. 애영과 이생도 형신을 받았는데, 상이 그들의 죄는 옥진보다 가볍다는 이유로 석방하라고 명하였다.
원문
인조 26년 (1648) 12월 23일
인조실록49권, 인조 26년 12월 23일 癸丑 1/1 기사 / 1648년 청 순치(順治) 5년
소현 세자의 둘째 아들 이석린이 제주의 배소에서 죽자, 배소의 나인을 잡아 문초하다
국역
11월 26일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둘째 아들 이석린(李石麟)이 제주의 배소(配所)에서 병으로 졸하였다. 목사(牧使)가 아뢰니, 상이 하교하기를,
"제주에 있는 아이들이 잇따라 사망했으니, 그 사이의 정상이 매우 흉측스럽다. 배소의 나인들을 금부로 하여금 잡아와서 엄히 국문하게 하라."
하고, 이어 내관을 보내어 호상(護喪)하여 오게 했다. 또 나인과 하인을 보내어 세째 아들을 호양(護養)하게 하였다. 나인 옥진(玉眞)·애영(愛英)·이생(異生) 등을 잡아왔다. 옥진이 공초하기를,
"두 아이가 죽은 것은 토질(土疾) 탓이지 보양(保養)을 삼가지 않은 탓이 아닙니다."
하였는데, 누차 형신을 받다가 죽었다. 애영과 이생도 형신을 받았는데, 상이 그들의 죄는 옥진보다 가볍다는 이유로 석방하라고 명하였다.
원문
원본
인조 26년 (1648) 1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