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52권, 선조 27년 6월 18일 乙丑 1/1 기사 /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주문하는 일, 전염병을 구제하는 일을 논하다
국역
영중추부사 심수경(沈守慶), 판중추부사 최흥원(崔興源), 해평 부원군 윤근수(尹根壽), 서천군(西川君) 정곤수(鄭崑壽), 이조 판서 김응남(金應南), 호조 판서 김명원(金命元), 병조 판서 심충겸(沈忠謙), 도승지 장운익(張雲翼), 지평 박승종(朴承宗), 헌납 최관(崔瓘), 부수찬 정엽(鄭曄), 주서(注書) 남이신(南以信), 검열(檢閱) 성진선(成晉善)·장만(張晩)이 입시하였다. 상이 편전(便殿)에 나아가 영의정 유성룡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영상이 뜻하지 않게 병을 얻어 깊이 걱정을 하였는데 곧 회복이 되었으니 국가의 복이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꼭 죽을 증세였는데 주상의 은덕을 입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국가에 일이 많은 때에 중요한 자리에 무릅쓰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출사하지 못했으니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이 주문의 일은 어떻게 해야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이 일은 지극히 중대하여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여러 차례 계사를 올렸습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가 명조만을 의지하고 있는데 항상 당사자를 거스르게 되니 혹시 뜻밖에 변이 생길까 염려됩니다. 어쩔 수 없이 구차하지만 그들의 청에 따르고 적이 혹 바다를 건너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신은 병으로 혼미하여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어제 전교하신 뜻을 보니 대의가 남김없이 나타났습니다. 다만 결코 중국이 군대를 조발(調發)하고 군량을 운송하여 다시 와서 구원할 형편이 아닌데다가 저번에 이미 고 총독에게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또 주문을 올리지 않는다면, 그가 반드시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지목할 것입니다. 소신은 비록 원수 왜적을 한시라도 가슴에서 잊은 적이 없지만 호택(胡澤)이 이처럼 고집을 부리며 요청하니, 형세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론이 이의가 없이 다 주문을 하고 싶어하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곧바로 봉공을 청하는 것은 다들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 또한 어찌 비변사가 왜노를 위해 봉공을 청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다만 나의 뜻은 비록 ‘봉공’ 두 자를 뺀다 하더라도 지금 이 주문을 보내는 목적이 오로지 봉공을 청하기 위한 것같이 되어서이다. 어제 주본의 초본을 보니 ‘고양겸이 우리를 위하여 주선한 것이 참으로 보통이 아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의 뜻은 분명히 봉공을 청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도 반드시 이와 같이 볼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봉공을 허락해 달라는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중조(中朝)가 유정(劉綎)의 군사를 철수해 가고 화를 우리 나라에 남긴다면 이는 반드시 망할 형세입니다. 이 때문에 심정이 답답합니다. 가령 봉해준 뒤에 왜가 물러간다면 비록 구차하더라도 할 수 있겠지만, 허락했는데도 가지 않고 도리어 응하기 어려운 요구가 있을 때는 그 후에 어떻게 조처할 것입니까. 명조의 담당 대신이 그때 가서 우리 나라에 책임을 미룬다면 어찌할 것입니까. 이번의 주본이 있기 때문에 모면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왜노는 본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였는데 봉공을 허락했다고 하여 돌아가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서 도망하여 온 사람이 ‘혼인을 요구하여 성사되지 않으면 장차 군대를 출동하여 서쪽으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하였습니다. 이런 적이 봉해 준다고 해서 돌아가겠습니까."
하고, 또 성룡이 아뢰기를,
"적의 동태를 갖추어 말하고 아울러 우리가 지탱하지 못할 형세를 진술하여 중국이 좋은 방법에 따라 조치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저들의 말을 굳이 거절하는 것이 되지 않고 우리의 도리에 있어서도 무난할 것입니다. 명조 사람들과 이와 같이 서로 격돌한다면 또 다른 사변이 생길까 염려됩니다. 이를테면 어떤 자식이 아비에게 날마다 요청하는 일이 있으면 끝내는 견디지 못하고 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의 뜻은 적의 동태를 주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주문 가운데 봉공을 허락하여 왜노를 물러가게 해 달라는 말이 있었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우리는 인민이 다 죽어 병사와 군량을 다시 마련할 길이 없으니 다만 명조가 좋은 방법대로 조치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석 상서(石尙書)가 반드시 봉할 것인지, 칠 것인지에 대해 양단간에 결정할 것입니다. 【석 상서는 명조의 병부 상서 석성(石星)임. 】 대체로 명병이 우리 경내에 있으니 변방의 사정을 주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주본에 ‘도망하여 돌아온 사람과 항복해 온 왜의 말을 들으면 한결같이 순종하겠다고 말한다.’고 썼고, 그 끝에는 ‘고양겸이 사실 우리를 위해 주밀하게 주선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다만 직접 대놓고 표현하지만 않았을 뿐 그 뜻은 봉공을 청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승지의 뜻은 어떠한가? 각각 자기의 생각을 말하라."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비록 ‘그들의 봉공을 허락하라. [許其封貢]’는 네 글자는 없지만 그 본뜻을 찾아보면 봉공을 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고양겸의 말을 안 들을 수는 없으나 내가 왕위에 있고서야 어찌 원수를 봉해 달라고 청하겠는가. 내가 물러난 뒤에 상주하는 것은 혹 가능할 듯하다. 그러나 내가 아직 있고서야 어찌 수길(秀吉)을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으라고 청하겠는가. 수길을 포상하는 것을 어찌 차마 하겠는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청하든 청하지 않든 간에 고양겸이 어찌 우리 나라에게 호령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주본이 올라가더라도 명조가 어찌 그대로 믿을 것인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김수가 가지고 간 주문과 사신이 바친 정문(呈文)이 과도관들의 탄핵하는 증거 자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정문의 내용을 보았는데 완곡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고 시랑이 이로써 참소를 입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로 하여금 해결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를테면 속담에 ‘맺은 자가 풀어야 한다. [結者解之]’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손 시랑 또한 고 시랑이 천거한 사람이니 그 의견이 반드시 같을 것이다."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손광과 조참로(趙參魯)는 화친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불러와 담당시키라고 청했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참로의 말에 우리 나라가 왜노와 한마음이라고 했다던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참로의 생각은, 조선의 신민이 교활하여 일찍이 왜와 통하였으니 동사(東事)가 마무리된 뒤에는 거리를 두고 친근하게 대하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손 시랑의 생각은,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설치하여 순무(巡撫) 한 사람을 보내 국왕은 그 나라 백성만을 다스리고 조세(租稅) 등 물자는 다 순무가 관장하며 배신(陪臣)은 다 행성에 소속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다만 왜노가 남아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고 하던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특별히 구분한 것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과도관이 쟁론(爭論)하는 때에 이 주본이 만약 들어간다면 그들이 마음 속으로 옳지 않다고 여길 뿐 아니라 탄핵하는 일까지 있게 될까 두렵다. 중국 사람들은 논의가 과격하여 전일에 이여송을 반역자라고까지 하였었다. 이처럼 서로 다투는 때에 우리 나라의 주문으로 인하여 그들의 의논이 불리하게 된다면 함께 싸잡아 탄핵할 이치도 없지 않은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손 시랑이 오는 것은 더욱 걱정됩니다. 전조(前朝)172) 에 다루가치(達魯花赤)가 나왔을 때에도 그 변고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형세로는 절대로 이 적을 당할 수 없으니 중국 사람이 이 땅에 와서 둔병(屯兵)하고 둔전(屯田)하는 것도 안 될 것이 없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명조의 장관(將官)은 거느리는 군사를 대부분 단속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나라에 포진하고 있으면서 갖가지로 폐단을 일으킨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 당상 중엔 누가 와 있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김응남(金應南)·김명원(金命元)·심충겸(沈忠謙)이 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중관(中官)을 명하여 불러 들이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동정(東征)한 장관을 변무(辨誣)하는 일에 대해 호택이 ‘무함을 입은 것은 논하지 말고 그 공만 드러내라.’ 하기에, 나도 그러겠다고 허락하였는데 어떻게 처리해야겠는가? 황제 앞에 조금이라도 허위의 말을 진술할 수 없으니 이 사람들의 공적만 논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또 이르기를,
"금년에는 대·소인(大小人)을 막론하고 모두가 역질(疫疾)에 걸려 자리에 누워 신음하고 있고 내 눈 앞에 있는 사람까지도 계속하여 아프니 어찌하여 이런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2년에 걸쳐 전쟁을 치른 뒤라서 살기(殺氣)가 이변을 일으켜 성안 사람이 이와 같이 죽는가 봅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따로 한 군데 제단을 마련하여 위에서 정성껏 치제하면 혹 그 기운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제는 너무 늦지 않았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아직 늦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빨리 시행하도록 하라."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따로 중신(重臣)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생령(生靈)이 오늘에 와서 몰살하게 되었다. 여염(閭閻) 사람이 약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많이 죽는다고 하니, 힘이 미치는 곳은 구원해야 할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염초(焰硝)가 염병[瘟病]에 좋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전쟁을 치른 뒤에 기근과 역질이 계속 발생하여 경외(京外) 인민이 씨가 마를 정도인데 조정에서는 지모를 짜내어 구제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약물 한 가지에만 구차하게 매달리니, 신은 상의 애달파하는 하교가 참으로 굶어 죽은 시체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상이 이르기를,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경상 감사의 서장을 보면 14일에 또 지진이 있었다고 한다."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도하(都下)의 인심이 한참 흉흉하여 무서움에 떨고 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아랫사람이 듣는 곳에서는 공동(恐動)시킬 만한 말은 하지 않도록 하라."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상교가 지당합니다. 전연실(全延實)이 와서 적세(賊勢)를 과장하여 말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낙담하였다고 합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재변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사람에게 하자가 없으면 재변이 스스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마땅히 공구 수성하여 재변을 소멸시킬 것을 생각하면 그뿐이다. 신(臣)은 사람의 이목은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응남이 아뢰기를,
"주문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다 뒷탈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무슨 말인가?"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손(孫)과 고(顧)의 생각이 같은지 다른지도 모르는데 만약 하지 않으면 호 참장이 그곳에 가서 ‘조선이 우리가 갈린다는 말을 듣고 중도에 그만두었으니 그들의 거짓과 변태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할 것이니, 이것이 뒷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주문하더라도 뒷탈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이를테면 상교(上敎)에서 이른 것과 같습니다."
하고, 성룡이 아뢰기를,
"그렇게 하면 중조가 어쩔 수 없는 사정에 몰려 이와 같이 하였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러면 끝내 뒷탈이 없겠는가? 일이 마무리되지도 못하고 또 뒷탈이 있을까봐 이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다."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차부(箚付)가 이미 갔으니 고 군문(顧軍門)이 반드시 병부에 보냈을 것입니다. 이제 만약 하지 않으면 반드시 반복 무상하다고 지목할 것입니다. 전에는 송(宋)·이(李)를 거슬리게 하였는데 이제 또 고(顧)를 거스름으로써 모든 사람을 거스른다면 국사가 끝내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고가 우리 나라의 주문으로 구실을 삼으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자, 충겸이 아뢰기를,
"자기를 돕는 자료로 삼고 싶어서일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일률적인 논조를 고집하여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에 비록 구차스럽더라도 왜노가 만약 물러간다면 혹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니, 응남이 아뢰기를,
"단지 기미책(羈縻策)을 써서 왜노가 다시 노략질을 부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 뒷탈이 있을지 없을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판서의 【충겸을 가리킴. 】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소신은 차부는 하되 주문은 반드시 할 것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번에 이미 두 차례 등대(登對)에서 아뢰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위에서 이미 주문할 것을 허락하셨고 주본의 초본도 보였으니, 지금 만약 하지 않으면 반복 무상하다고 지목받을 것 같습니다. ‘봉공’ 등 요긴한 말만 삭제하고 마무리하여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체로 국서(國書)를 미리 호 참장에게 보인 일은 매우 옳지 않았습니다. 비록 소국의 조정일지라도 자체의 논의가 완결되기 전인데 어찌 먼저 딴 사람에게 보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봉공을 기다린다는 말만 진술했지, 한 조목도 왜노의 포악하고 오만한 정상을 이야기한 것이 없으니 이는 그 뜻이 봉공을 청하는 데에 있어서일 뿐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어찌 왜노를 위해 봉공을 청하는 것이겠습니까. 군사와 군량을 다시 요청할 수 없고 압록강을 한계선으로 방어하겠다는 의논이 조금씩 나오는데 이는 우리 나라에만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도 일을 그르치는 계획입니다. 이처럼 국력이 탕진된 뒤에 적을 우리 나라에 맡기는 것은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격으로서 멸망할 것은 기정 사실인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와 같은 말을 주문 가운데 약간 넣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호(胡)가 반드시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근수가 아뢰기를,
"비록 서두를 감추더라도 중국 사람들이 반드시 알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부원군의 생각이 나의 견해와 같다. 내가 이렇게 될까봐 여러 번 말한 것이다."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그 뜻을 속에 내포하고 서두를 숨기기보다는 그대로 말해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하고, 승종(承宗)이 아뢰기를,
"본부(本府)173) 가 전일 이 때문에 논계하였습니다. 주문의 초본을 가져다 보니 주의(主意)가 분명치 않고 논의가 얼버무리는 식이었는데 이와 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최관(崔瓘)이 아뢰기를,
"좋을 대로 조치하라는 말을 까닭없이 발설하면 반드시 봉공을 청하는 뜻으로 간주할 것이니 매우 온당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곧장 청하면 너무 무리일 것 같으니 이번의 주본을 올리는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정엽(鄭曄)이 아뢰기를,
"전일에 주문의 초본을 보니, 그 내용이 이미 차부의 말 중에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 삼사(三司)는 대의를 주장하고 묘당(廟堂)은 이해를 주장하는데, 이해로써 말하더라도 신은 과연 얼마나 소득이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서두를 숨기는 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상이 정엽에게 이르기를,
"이번에 날마다 명조가 우리 나라를 위해 정벌해 주길 바랬으나 이제는 다시 청할 수도 없고, 그 뒤에 심유경(沈惟敬)의 봉공설도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가 그 중간에 끼어 장차 여지없이 부서지게 되었다는 민박(悶迫)한 상황으로 상주(上奏)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정엽이 아뢰기를,
"영상이 아뢴 것이 비록 전 주본과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똑같이 봉공을 청하는 결과로 됨을 면치 못합니다. 만약 봉공에 대한 말을 하지 않으면 호(胡)가 가져가지 않을까 염려하여 호에게 겁을 먹은 나머지 이와 같은 구차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논은 그만두고 대의를 들어 봉공을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묘당이 비록 사세가 민박하다 하여 이런 일을 한다고는 하나 예로부터 화친을 주장하는 자로 그 누가 사세가 이렇다는 것으로 말하지 않은 자가 있었습니까. 지난번 차자를 올릴 때에도 비밀히 드나들게 하여 나라 사람 모르게 하였으므로 신은 매우 탄식하였습니다. 나라가 비록 망하더라도 대의를 잃어서는 안 되는데 신은 대의마저 잃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판(吏判)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응남이 대답하기를,
"일은 바른 대로 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사람을 천거하는 것은 대신의 책임이므로 삼가 아뢰기가 미안합니다. 다만 사변 뒤에 사명(使命)을 받든 신하가 오직 날짜만 보내는 것으로 일을 삼고 있는 실정인데 오직 서성(徐渻)만은 있는 힘을 다 합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고 지모 또한 많은데 봉공 한 가지 일에 대해서도 하는 말이 ‘기미(羈縻)를 한다고 해도 그 사이에 끼어들지 말고 전력(戰力)이 조금 여유가 있을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다시 도모해야 한다.’ 하였으니, 이 계획이 매우 타당합니다. 신이 일찍이 병조 참판으로 있을 때 서성이 낭관으로 있었는데 군정(軍丁)을 뽑는 일도 시끄러운 일이 없이 해냈습니다. 신의 의견으로는 그를 마땅히 품계를 올려 등용하여 남쪽의 일을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떤 직임이 적당하겠는가?"
하자, 충겸이 아뢰기를,
"양남(兩南)174) 의 감사를 해낼 수 있을지 신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효순(韓孝純)이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때에는 한 사람만 제대로 얻어도 일을 이룰 수 있을텐데 이처럼 사람을 발탁하는 일은 아래서 감히 의논을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서성은 연소한 사람이라서신이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전에 유 총병의 진영에서 보니 지식이 트인 사람이긴 하였습니다만 사실 큰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에 계책을 아뢴 것을 보니 한 가지 일도 엉성한 것이 없습니다. 위임한 뒤에 잘 할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소신의 생각도 등용할 만하다고 봅니다. 주사(舟師)175) 에 관한 것은 신도 생각해 보건대, 주사를 많이 배치하여 수로(水路)를 차단하고 오가는 배를 저격한다면 대세가 반드시 흔들릴 것이니 이를 기회로 수륙(水陸)에서 병진하자고 하는 이 계책이 매우 합당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계책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은데 어떻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수군이 기역(饑疫)으로 많이 죽어 이순신은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지금 서성에게 글을 내려 주사를 모아 오가는 적을 가로막아 죽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순신의 호령이 수령에게 시행되지 않고, 여러 장수가 서로 화합하지 않는다고 하니, 명망이 있는 문관으로 종사관을 삼아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전 부사(府使) 정경달(丁景達)이 내려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명망이 있는 문관을 정하여 보내야 열읍(列邑)을 호령할 수 있을 것이며 군중(軍中)에 외람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를 꺼려 진정이 될 것이다. 병판(兵判)의 뜻은 어떠한가. ?"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이 계책이 매우 타당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5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97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역사-편사(編史)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군사-군정(軍政) / 군사-통신(通信)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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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丑/領中樞府事沈守慶、判中樞府事崔興源、海平府院君 尹根壽、西川君 鄭崐壽、吏曹判書金應南、戶曹判書金命元、兵曹判書沈忠謙、都承旨張雲翼、持平朴承宗、獻納崔瓘、副修撰鄭曄、注書南以信、檢閱成晋善ㆍ張晩入侍。 上御便殿, 引見領議政柳成龍。 上曰: "領相不意得病, 深以爲憂, 旋卽平復, 國家之福。" 成龍曰: "有必死之症, 而蒙恩再生。 當此國家多事之時, 冒處重地, 久未出仕, 罪當萬死。" 上曰: "今此奏聞事, 何以爲之?" 成龍曰: "此事至重難處之事, 故累爲啓辭矣。 今者我國, 只賴天朝, 而每見忤於當事之人, 或恐變生意外, 不得已苟從其請, 庶望賊或渡海矣。 小臣病昏, 不能深思, 昨見傳敎之意, 大義極盡矣。 但決無調兵、運糧, 更爲來援之勢。 前旣約於顧, 而今又不爲陳奏, 則彼必以反覆目之。 小臣, 雖一刻不忘于懷, 而胡澤之堅請如此, 勢似不得已也。" 上曰: "群議無異同, 皆欲爲之乎?" 成龍曰: "直請封貢, 則皆以爲不可爲也。" 上曰: "予亦豈以備邊司爲倭請封乎? 但予意雖去封貢字, 今此奏聞之行, 似是專爲請封。 昨見奏草, 有顧養謙爲小邦周旋, 誠非偶然之言, 此其意明是請封也。 中原人, 亦必如是見之矣。" 成龍曰: "許封, 決不可爲。 若中朝撤去劉兵, 遺禍於我國, 則此必亡之勢, 以此下情悶迫矣。 設使旣封而倭退, 則雖苟可爲, 旣許而不去, 反有難應之求, 則此後如何處之乎? 天朝當事之臣, 當此時, 推調於我國則奈何? 有此奏聞, 無辭可避。 倭本自稱皇帝, 雖許封, 其可歸乎? 且逃還之人曰: ‘求婚不成, 則將擧兵西向’ 云。 此賊雖封, 可歸乎哉?" 成龍曰: "具陳賊情, 兼陳小邦不能支吾之勢, 願中國從長處置云, 則彼言不至堅拒, 小邦之道, 亦云得矣。 天朝之人, 如是相激, 則恐於事變之外, 又有事變。 今夫子之於父, 日日而有請, 則至於不能支而怒矣。 臣意奏賊情爲當。" 上曰: "奏文中, 有許封、退倭之語矣。 成龍曰: "小邦人民都死, 兵糧無從更辦。 只願天朝從長處置云, 則石尙書必於封討之中, 有所裁決矣。 【石尙書, 天朝兵部尙書石星。】 大槪, 天兵在我境上, 邊情不可不奏也。" 上曰: "逃還人、降附倭之言, 一樣以效順爲言, 終之以顧養謙, 實爲小邦, 周旋詳悉云, 則此特引而不發而已, 其意未嘗不在請封。 承旨之意, 如何? 各(陣)〔陳〕 下情可也。" 雲翼曰: "雖去許其封貢四字, 而究其本意, 則不過欲其封貢也。" 上曰: "顧養謙之言, 不可不聽, 而予在之時, 豈可請封讐賊乎? 予退之後, 奏之或似可矣。 予尙在, 安可請封秀吉爲列侯哉? 褒賞秀吉, 尙忍爲之乎?" 雲翼曰: "請不請中, 顧豈可號令於我國乎?" 上曰: "我國之奏雖上, 天朝豈以爲信也?" 成龍曰: "金睟所齎奏文及使臣所呈文, 爲科道官等彈論取證云矣。" 上曰: "予見呈文之辭, 似非宛曲矣。" 成龍曰: "顧侍郞, 以此被參, 故欲使我國解之, 如諺所謂結者解之也。" 上曰: "孫侍郞, 亦顧之所薦, 則其意見必同矣。" 雲翼曰: "孫鑛、趙參魯不爲主和, 故請以此人來當云矣。" 上曰: "參魯之言, 以爲我國與倭奴同心云乎?" 雲翼曰: "參魯之意, 朝鮮臣民巧詐, 曾與倭通, 東事旣完之後, 只踈而不親也云矣。 孫之意, 則欲設征東行省, 遣一巡撫, 國王則只治其國人民, 而租稅等物, 皆巡撫次知, 陪臣皆屬於行省云矣。" 上曰: "只倭在之時, 爲之云乎?" 雲翼曰: "別無分別矣。" 上曰: "當此科道爭論之時, 此奏若入, 非但中心以爲不可, 恐有參論之事。 中原之人, 論議高激, 前日以李如松爲反逆。 當交爭之日, 緣我國奏聞, 其議見屈, 則不無幷參之理。" 成龍曰: "孫侍郞之來, 尤可憂也。 前朝達魯花赤之時, 其變故不可勝言矣。" 上曰: "我國之勢, 決不可當此賊。 中朝之人, 來此屯兵、屯田, 未爲不可。" 成龍曰: "天朝將官, 領軍多不戢。 若布於我國, 而作弊萬端, 則此不可說也。" 上曰: "備邊司堂上某某來在乎?" 成龍曰: "金應南、金命元、沈忠謙來矣。" 上命中官招入, 上曰: "東征將官辨誣事, 胡澤以爲: ‘勿論被誣, 只暴其功’ 云, 予亦許之。 何以處之? 皇帝之前, 不可一毫陳虛辭, 只論此人等功績, 可也。" 上曰: "今年大小人疫, 莫不臥痛。 至於眼前之人, 相繼皆痛, 何以如是乎?" 雲翼曰: "兩年兵戈之後, 殺氣致異, 城中之人, 死亡如此。 小臣之意, 別設一壇, 自上虔誠致祭, 則或可以消散矣。" 上曰: "今則無乃晩乎?" 成龍曰: "尙未晩也。" 上曰: "速爲行之。" 雲翼曰: "別遣重臣可矣。" 上曰: "生靈於斯盡矣。 閭閻之人, 不得服藥, 故多死云。 力所及處, 可以救之矣。" 成龍曰: "焰(焇)〔硝〕 , 似好於瘟病矣。"
【史臣曰: "兵戈之後, 饑疫荐作, 京外人民, 靡有孑遺, 朝廷之上, 未聞出謀發慮, 思所以賑救之, 而徒區區於藥物一節, 則臣恐筵上惻怛之敎, 誠無補於餓骨矣。"】
上曰: "京師之地震, 可愕。 且見慶尙監司書狀, 十四日, 又地震矣。" 雲翼曰: "都下人心, 方洶懼云。" 上曰: "下人所聞處, 勿言恐動之說, 可也。" 成龍曰: "上敎允當。 全延實之來, 誇張賊勢, 故人皆膽落云矣。"
【 "變由人興。 人無釁, 變不自作。 當恐懼修省, 思所以消弭之而已。 臣恐人之耳目, 不可掩也。"】
應南曰: "奏聞爲與不爲, 皆有後尾矣。" 上曰: "是何言乎?"〔應南曰〕 : "孫與顧之意, 未知同與不同, 若不爲, 則胡往彼處言曰: ‘朝鮮聞我遞, 中路而止, 其詐變不可言’ 云, 則此後尾也。" 上曰: "爲之而有後尾, 何謂也?" 應南曰: "如上敎所謂也。" 成龍曰: "爲之, 則中朝不過, 曰: ‘迫於不得已如是爲之’ 云矣。" 上曰: "然則, 終無後尾耶? 恐事未得完, 而且有後尾, 以此爲悶。" 應南曰: "箚付已往, 顧軍門必送于兵部。 今若不爲, 則必以反覆目之。 旣忤於宋、李, 且忤於顧, 人人而見忤, 則國事未知終如何也。" 上曰: "顧欲以我國之奏爲口實者, 何也?" 忠謙曰: "欲爲助己之具耳。" 上曰: "予非執一切之論以爲不可也。 事雖苟, 倭若退, 則或可矣。" 應南曰: "只冀羈縻, 而不爲再肆搶掠, 後尾之有無, 未可必也。" 上曰: "判書之意, 如何?" 【指忠謙也。】 忠謙曰: "小臣, 以爲箚付則爲之, 奏則不必爲也。 故前已陳於二度登對矣。 今則自上旣許, 而奏草亦示。 今若不爲, 恐以反覆目之。 刪其封貢等緊語, 而完給之可也。 大槪國書, (經)〔徑〕 示胡將大不可。 雖區區之朝廷, 自可議定未完之前, 豈可先示人耶?" 上曰: "只陳等待封貢之語, 無一款桀驁之狀, 則此意在於請封耳。" 成龍曰: "豈爲倭請封乎? 兵糧, 不可復請, 限鴨綠之議, 稍稍有之, 此非徒我國悶迫, 中國亦誤事之計也。 如此蕩竭之後, 以賊委之於我邦, 如以肉投虎, 其亡必矣。" 上曰: "如此語, 奏中略入之, 如何?" 成龍曰: "胡必不受矣。" 根壽曰: "雖藏頭, 中朝人必知之矣。" 上曰: "府院君之意, 如予所見。 予恐如是, 故累言之。" 忠謙曰: "與其意在其中而藏頭, 莫若直言之爲可也。" 承宗曰: "本府頃日, 以此論啓矣, 取奏草見之, 主意不明, 論議糊塗。 不可如是爲之。" 瓘曰: "從長處置之語, 無端發說, 則必以請封看之, 甚爲未安。 若直請, 則大似無理。 今此上本, 不可爲也。" 曄曰: "前見奏草, 已具於箚辭中矣。 今三司主大義, 廟堂主利害。 以利害言之, 臣未知大有所益。 藏頭之辭, 決不可爲也。" 上謂曄曰: "今將以日望天朝爲我國征討, 而今不可復請。 其後沈惟敬封貢之說, 亦不得成。 小邦間於其中, 將爲糜爛, 悶迫之狀, 爲奏如何?" 曄曰: "領相所啓, 雖與前奏似異, 畢竟未免同歸於請封。 若不及封貢語, 則慮胡不持去, 恐刼於胡, 爲此苟且之事。 若置此議, 仗大義絶封貢, 有何不可? 廟堂雖以事勢悶迫, 爲如此事, 自古主和者, 誰不以事勢之如此爲辭? 頃日箚子時, 以秘密出入, 使國人不得知, 臣甚咄咄。 國雖亡, 義不可亡。 臣恐幷與大義而失之也。" 上曰: "吏判之意, 如何?" 應南對曰: "事貴直告。" 忠謙曰: "薦人, 大臣之責, 仰達未安, 但事變之後, 奉使之臣, 唯以度日爲事, 而唯徐渻, 只爲用力。 其言有理, 計慮亦多。 封貢一事亦曰: ‘羈縻而不與於其間, 少待兵力稍裕, 更爲之圖’ 云。 此計甚當。 臣曾爲兵曹參判時, 渻爲郞官, 抄軍之事, 亦勿擾而爲之。 臣之意, 宜陞用, 委以南方之事可矣。" 上曰: "某任可當乎?" 忠謙曰: "兩南監司, 臣未見能。 韓孝純, 今方重病云。 當今之時, 得一人可以濟事, 而如此拔擢之事, 自下未敢議也。" 上曰: "大臣之意如何?" 成龍曰: "徐渻, 年少之人, 臣未曾識, 前於劉摠兵營中見之, 乃開明人也, 實未知有大才也。 今見陳策, 無一事踈闊。 委任之後, 未知能否, 小臣之意, 亦以爲可用。 舟師一事, 臣亦量之。 多設舟師, 遏絶水路, 狙擊往來之船, 則大勢必搖, 因此水陸幷進, 此計甚合。" 上曰: "此計, 欲一施何如?" 成龍曰: "水軍, 多死於饑疫, 李舜臣不得下手。 今可下書于徐渻, 聚舟師, 截殺往來之賊, 可也。" 上曰: "李舜臣號令, 不行於守令, 諸將不協云。 未可以有名望文官, 爲從事官以送乎?" 成龍曰: "前府使丁景達下去矣。" 上曰: "不得已, 以有名望文官定送, 然後號令列邑矣。 且其軍中, 有泛濫之事, 必憚壓矣。 兵判之意, 如何?" 忠謙曰: "此計甚當。"
- 【태백산사고본】 31책 5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9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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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7년 (1594) 6월 18일
선조실록52권, 선조 27년 6월 18일 乙丑 1/1 기사 /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주문하는 일, 전염병을 구제하는 일을 논하다
국역
영중추부사 심수경(沈守慶), 판중추부사 최흥원(崔興源), 해평 부원군 윤근수(尹根壽), 서천군(西川君) 정곤수(鄭崑壽), 이조 판서 김응남(金應南), 호조 판서 김명원(金命元), 병조 판서 심충겸(沈忠謙), 도승지 장운익(張雲翼), 지평 박승종(朴承宗), 헌납 최관(崔瓘), 부수찬 정엽(鄭曄), 주서(注書) 남이신(南以信), 검열(檢閱) 성진선(成晉善)·장만(張晩)이 입시하였다. 상이 편전(便殿)에 나아가 영의정 유성룡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영상이 뜻하지 않게 병을 얻어 깊이 걱정을 하였는데 곧 회복이 되었으니 국가의 복이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꼭 죽을 증세였는데 주상의 은덕을 입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국가에 일이 많은 때에 중요한 자리에 무릅쓰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출사하지 못했으니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이 주문의 일은 어떻게 해야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이 일은 지극히 중대하여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여러 차례 계사를 올렸습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가 명조만을 의지하고 있는데 항상 당사자를 거스르게 되니 혹시 뜻밖에 변이 생길까 염려됩니다. 어쩔 수 없이 구차하지만 그들의 청에 따르고 적이 혹 바다를 건너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신은 병으로 혼미하여 깊이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어제 전교하신 뜻을 보니 대의가 남김없이 나타났습니다. 다만 결코 중국이 군대를 조발(調發)하고 군량을 운송하여 다시 와서 구원할 형편이 아닌데다가 저번에 이미 고 총독에게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또 주문을 올리지 않는다면, 그가 반드시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지목할 것입니다. 소신은 비록 원수 왜적을 한시라도 가슴에서 잊은 적이 없지만 호택(胡澤)이 이처럼 고집을 부리며 요청하니, 형세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론이 이의가 없이 다 주문을 하고 싶어하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곧바로 봉공을 청하는 것은 다들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 또한 어찌 비변사가 왜노를 위해 봉공을 청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다만 나의 뜻은 비록 ‘봉공’ 두 자를 뺀다 하더라도 지금 이 주문을 보내는 목적이 오로지 봉공을 청하기 위한 것같이 되어서이다. 어제 주본의 초본을 보니 ‘고양겸이 우리를 위하여 주선한 것이 참으로 보통이 아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의 뜻은 분명히 봉공을 청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도 반드시 이와 같이 볼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봉공을 허락해 달라는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중조(中朝)가 유정(劉綎)의 군사를 철수해 가고 화를 우리 나라에 남긴다면 이는 반드시 망할 형세입니다. 이 때문에 심정이 답답합니다. 가령 봉해준 뒤에 왜가 물러간다면 비록 구차하더라도 할 수 있겠지만, 허락했는데도 가지 않고 도리어 응하기 어려운 요구가 있을 때는 그 후에 어떻게 조처할 것입니까. 명조의 담당 대신이 그때 가서 우리 나라에 책임을 미룬다면 어찌할 것입니까. 이번의 주본이 있기 때문에 모면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왜노는 본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였는데 봉공을 허락했다고 하여 돌아가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서 도망하여 온 사람이 ‘혼인을 요구하여 성사되지 않으면 장차 군대를 출동하여 서쪽으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하였습니다. 이런 적이 봉해 준다고 해서 돌아가겠습니까."
하고, 또 성룡이 아뢰기를,
"적의 동태를 갖추어 말하고 아울러 우리가 지탱하지 못할 형세를 진술하여 중국이 좋은 방법에 따라 조치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저들의 말을 굳이 거절하는 것이 되지 않고 우리의 도리에 있어서도 무난할 것입니다. 명조 사람들과 이와 같이 서로 격돌한다면 또 다른 사변이 생길까 염려됩니다. 이를테면 어떤 자식이 아비에게 날마다 요청하는 일이 있으면 끝내는 견디지 못하고 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의 뜻은 적의 동태를 주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주문 가운데 봉공을 허락하여 왜노를 물러가게 해 달라는 말이 있었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우리는 인민이 다 죽어 병사와 군량을 다시 마련할 길이 없으니 다만 명조가 좋은 방법대로 조치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석 상서(石尙書)가 반드시 봉할 것인지, 칠 것인지에 대해 양단간에 결정할 것입니다. 【석 상서는 명조의 병부 상서 석성(石星)임. 】 대체로 명병이 우리 경내에 있으니 변방의 사정을 주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주본에 ‘도망하여 돌아온 사람과 항복해 온 왜의 말을 들으면 한결같이 순종하겠다고 말한다.’고 썼고, 그 끝에는 ‘고양겸이 사실 우리를 위해 주밀하게 주선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다만 직접 대놓고 표현하지만 않았을 뿐 그 뜻은 봉공을 청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승지의 뜻은 어떠한가? 각각 자기의 생각을 말하라."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비록 ‘그들의 봉공을 허락하라. [許其封貢]’는 네 글자는 없지만 그 본뜻을 찾아보면 봉공을 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고양겸의 말을 안 들을 수는 없으나 내가 왕위에 있고서야 어찌 원수를 봉해 달라고 청하겠는가. 내가 물러난 뒤에 상주하는 것은 혹 가능할 듯하다. 그러나 내가 아직 있고서야 어찌 수길(秀吉)을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으라고 청하겠는가. 수길을 포상하는 것을 어찌 차마 하겠는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청하든 청하지 않든 간에 고양겸이 어찌 우리 나라에게 호령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주본이 올라가더라도 명조가 어찌 그대로 믿을 것인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김수가 가지고 간 주문과 사신이 바친 정문(呈文)이 과도관들의 탄핵하는 증거 자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정문의 내용을 보았는데 완곡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고 시랑이 이로써 참소를 입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로 하여금 해결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를테면 속담에 ‘맺은 자가 풀어야 한다. [結者解之]’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손 시랑 또한 고 시랑이 천거한 사람이니 그 의견이 반드시 같을 것이다."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손광과 조참로(趙參魯)는 화친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불러와 담당시키라고 청했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참로의 말에 우리 나라가 왜노와 한마음이라고 했다던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참로의 생각은, 조선의 신민이 교활하여 일찍이 왜와 통하였으니 동사(東事)가 마무리된 뒤에는 거리를 두고 친근하게 대하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손 시랑의 생각은,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설치하여 순무(巡撫) 한 사람을 보내 국왕은 그 나라 백성만을 다스리고 조세(租稅) 등 물자는 다 순무가 관장하며 배신(陪臣)은 다 행성에 소속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다만 왜노가 남아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고 하던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특별히 구분한 것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과도관이 쟁론(爭論)하는 때에 이 주본이 만약 들어간다면 그들이 마음 속으로 옳지 않다고 여길 뿐 아니라 탄핵하는 일까지 있게 될까 두렵다. 중국 사람들은 논의가 과격하여 전일에 이여송을 반역자라고까지 하였었다. 이처럼 서로 다투는 때에 우리 나라의 주문으로 인하여 그들의 의논이 불리하게 된다면 함께 싸잡아 탄핵할 이치도 없지 않은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손 시랑이 오는 것은 더욱 걱정됩니다. 전조(前朝)172) 에 다루가치(達魯花赤)가 나왔을 때에도 그 변고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형세로는 절대로 이 적을 당할 수 없으니 중국 사람이 이 땅에 와서 둔병(屯兵)하고 둔전(屯田)하는 것도 안 될 것이 없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명조의 장관(將官)은 거느리는 군사를 대부분 단속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나라에 포진하고 있으면서 갖가지로 폐단을 일으킨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 당상 중엔 누가 와 있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김응남(金應南)·김명원(金命元)·심충겸(沈忠謙)이 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중관(中官)을 명하여 불러 들이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동정(東征)한 장관을 변무(辨誣)하는 일에 대해 호택이 ‘무함을 입은 것은 논하지 말고 그 공만 드러내라.’ 하기에, 나도 그러겠다고 허락하였는데 어떻게 처리해야겠는가? 황제 앞에 조금이라도 허위의 말을 진술할 수 없으니 이 사람들의 공적만 논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또 이르기를,
"금년에는 대·소인(大小人)을 막론하고 모두가 역질(疫疾)에 걸려 자리에 누워 신음하고 있고 내 눈 앞에 있는 사람까지도 계속하여 아프니 어찌하여 이런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2년에 걸쳐 전쟁을 치른 뒤라서 살기(殺氣)가 이변을 일으켜 성안 사람이 이와 같이 죽는가 봅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따로 한 군데 제단을 마련하여 위에서 정성껏 치제하면 혹 그 기운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제는 너무 늦지 않았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아직 늦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빨리 시행하도록 하라."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따로 중신(重臣)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생령(生靈)이 오늘에 와서 몰살하게 되었다. 여염(閭閻) 사람이 약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많이 죽는다고 하니, 힘이 미치는 곳은 구원해야 할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염초(焰硝)가 염병[瘟病]에 좋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전쟁을 치른 뒤에 기근과 역질이 계속 발생하여 경외(京外) 인민이 씨가 마를 정도인데 조정에서는 지모를 짜내어 구제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약물 한 가지에만 구차하게 매달리니, 신은 상의 애달파하는 하교가 참으로 굶어 죽은 시체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상이 이르기를,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경상 감사의 서장을 보면 14일에 또 지진이 있었다고 한다."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도하(都下)의 인심이 한참 흉흉하여 무서움에 떨고 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아랫사람이 듣는 곳에서는 공동(恐動)시킬 만한 말은 하지 않도록 하라."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상교가 지당합니다. 전연실(全延實)이 와서 적세(賊勢)를 과장하여 말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낙담하였다고 합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재변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사람에게 하자가 없으면 재변이 스스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마땅히 공구 수성하여 재변을 소멸시킬 것을 생각하면 그뿐이다. 신(臣)은 사람의 이목은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응남이 아뢰기를,
"주문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다 뒷탈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무슨 말인가?"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손(孫)과 고(顧)의 생각이 같은지 다른지도 모르는데 만약 하지 않으면 호 참장이 그곳에 가서 ‘조선이 우리가 갈린다는 말을 듣고 중도에 그만두었으니 그들의 거짓과 변태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할 것이니, 이것이 뒷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주문하더라도 뒷탈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이를테면 상교(上敎)에서 이른 것과 같습니다."
하고, 성룡이 아뢰기를,
"그렇게 하면 중조가 어쩔 수 없는 사정에 몰려 이와 같이 하였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러면 끝내 뒷탈이 없겠는가? 일이 마무리되지도 못하고 또 뒷탈이 있을까봐 이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다."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차부(箚付)가 이미 갔으니 고 군문(顧軍門)이 반드시 병부에 보냈을 것입니다. 이제 만약 하지 않으면 반드시 반복 무상하다고 지목할 것입니다. 전에는 송(宋)·이(李)를 거슬리게 하였는데 이제 또 고(顧)를 거스름으로써 모든 사람을 거스른다면 국사가 끝내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고가 우리 나라의 주문으로 구실을 삼으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자, 충겸이 아뢰기를,
"자기를 돕는 자료로 삼고 싶어서일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일률적인 논조를 고집하여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에 비록 구차스럽더라도 왜노가 만약 물러간다면 혹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니, 응남이 아뢰기를,
"단지 기미책(羈縻策)을 써서 왜노가 다시 노략질을 부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 뒷탈이 있을지 없을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판서의 【충겸을 가리킴. 】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소신은 차부는 하되 주문은 반드시 할 것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번에 이미 두 차례 등대(登對)에서 아뢰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위에서 이미 주문할 것을 허락하셨고 주본의 초본도 보였으니, 지금 만약 하지 않으면 반복 무상하다고 지목받을 것 같습니다. ‘봉공’ 등 요긴한 말만 삭제하고 마무리하여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체로 국서(國書)를 미리 호 참장에게 보인 일은 매우 옳지 않았습니다. 비록 소국의 조정일지라도 자체의 논의가 완결되기 전인데 어찌 먼저 딴 사람에게 보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봉공을 기다린다는 말만 진술했지, 한 조목도 왜노의 포악하고 오만한 정상을 이야기한 것이 없으니 이는 그 뜻이 봉공을 청하는 데에 있어서일 뿐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어찌 왜노를 위해 봉공을 청하는 것이겠습니까. 군사와 군량을 다시 요청할 수 없고 압록강을 한계선으로 방어하겠다는 의논이 조금씩 나오는데 이는 우리 나라에만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도 일을 그르치는 계획입니다. 이처럼 국력이 탕진된 뒤에 적을 우리 나라에 맡기는 것은 호랑이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격으로서 멸망할 것은 기정 사실인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와 같은 말을 주문 가운데 약간 넣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호(胡)가 반드시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근수가 아뢰기를,
"비록 서두를 감추더라도 중국 사람들이 반드시 알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부원군의 생각이 나의 견해와 같다. 내가 이렇게 될까봐 여러 번 말한 것이다."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그 뜻을 속에 내포하고 서두를 숨기기보다는 그대로 말해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하고, 승종(承宗)이 아뢰기를,
"본부(本府)173) 가 전일 이 때문에 논계하였습니다. 주문의 초본을 가져다 보니 주의(主意)가 분명치 않고 논의가 얼버무리는 식이었는데 이와 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최관(崔瓘)이 아뢰기를,
"좋을 대로 조치하라는 말을 까닭없이 발설하면 반드시 봉공을 청하는 뜻으로 간주할 것이니 매우 온당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곧장 청하면 너무 무리일 것 같으니 이번의 주본을 올리는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정엽(鄭曄)이 아뢰기를,
"전일에 주문의 초본을 보니, 그 내용이 이미 차부의 말 중에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 삼사(三司)는 대의를 주장하고 묘당(廟堂)은 이해를 주장하는데, 이해로써 말하더라도 신은 과연 얼마나 소득이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서두를 숨기는 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상이 정엽에게 이르기를,
"이번에 날마다 명조가 우리 나라를 위해 정벌해 주길 바랬으나 이제는 다시 청할 수도 없고, 그 뒤에 심유경(沈惟敬)의 봉공설도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가 그 중간에 끼어 장차 여지없이 부서지게 되었다는 민박(悶迫)한 상황으로 상주(上奏)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정엽이 아뢰기를,
"영상이 아뢴 것이 비록 전 주본과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똑같이 봉공을 청하는 결과로 됨을 면치 못합니다. 만약 봉공에 대한 말을 하지 않으면 호(胡)가 가져가지 않을까 염려하여 호에게 겁을 먹은 나머지 이와 같은 구차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논은 그만두고 대의를 들어 봉공을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무슨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묘당이 비록 사세가 민박하다 하여 이런 일을 한다고는 하나 예로부터 화친을 주장하는 자로 그 누가 사세가 이렇다는 것으로 말하지 않은 자가 있었습니까. 지난번 차자를 올릴 때에도 비밀히 드나들게 하여 나라 사람 모르게 하였으므로 신은 매우 탄식하였습니다. 나라가 비록 망하더라도 대의를 잃어서는 안 되는데 신은 대의마저 잃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판(吏判)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응남이 대답하기를,
"일은 바른 대로 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사람을 천거하는 것은 대신의 책임이므로 삼가 아뢰기가 미안합니다. 다만 사변 뒤에 사명(使命)을 받든 신하가 오직 날짜만 보내는 것으로 일을 삼고 있는 실정인데 오직 서성(徐渻)만은 있는 힘을 다 합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고 지모 또한 많은데 봉공 한 가지 일에 대해서도 하는 말이 ‘기미(羈縻)를 한다고 해도 그 사이에 끼어들지 말고 전력(戰力)이 조금 여유가 있을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다시 도모해야 한다.’ 하였으니, 이 계획이 매우 타당합니다. 신이 일찍이 병조 참판으로 있을 때 서성이 낭관으로 있었는데 군정(軍丁)을 뽑는 일도 시끄러운 일이 없이 해냈습니다. 신의 의견으로는 그를 마땅히 품계를 올려 등용하여 남쪽의 일을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떤 직임이 적당하겠는가?"
하자, 충겸이 아뢰기를,
"양남(兩南)174) 의 감사를 해낼 수 있을지 신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효순(韓孝純)이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때에는 한 사람만 제대로 얻어도 일을 이룰 수 있을텐데 이처럼 사람을 발탁하는 일은 아래서 감히 의논을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서성은 연소한 사람이라서신이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전에 유 총병의 진영에서 보니 지식이 트인 사람이긴 하였습니다만 사실 큰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에 계책을 아뢴 것을 보니 한 가지 일도 엉성한 것이 없습니다. 위임한 뒤에 잘 할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소신의 생각도 등용할 만하다고 봅니다. 주사(舟師)175) 에 관한 것은 신도 생각해 보건대, 주사를 많이 배치하여 수로(水路)를 차단하고 오가는 배를 저격한다면 대세가 반드시 흔들릴 것이니 이를 기회로 수륙(水陸)에서 병진하자고 하는 이 계책이 매우 합당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계책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은데 어떻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수군이 기역(饑疫)으로 많이 죽어 이순신은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지금 서성에게 글을 내려 주사를 모아 오가는 적을 가로막아 죽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순신의 호령이 수령에게 시행되지 않고, 여러 장수가 서로 화합하지 않는다고 하니, 명망이 있는 문관으로 종사관을 삼아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전 부사(府使) 정경달(丁景達)이 내려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명망이 있는 문관을 정하여 보내야 열읍(列邑)을 호령할 수 있을 것이며 군중(軍中)에 외람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를 꺼려 진정이 될 것이다. 병판(兵判)의 뜻은 어떠한가. ?"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이 계책이 매우 타당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5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97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역사-편사(編史)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군사-군정(軍政) / 군사-통신(通信)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원문
○乙丑/領中樞府事沈守慶、判中樞府事崔興源、海平府院君 尹根壽、西川君 鄭崐壽、吏曹判書金應南、戶曹判書金命元、兵曹判書沈忠謙、都承旨張雲翼、持平朴承宗、獻納崔瓘、副修撰鄭曄、注書南以信、檢閱成晋善ㆍ張晩入侍。 上御便殿, 引見領議政柳成龍。 上曰: "領相不意得病, 深以爲憂, 旋卽平復, 國家之福。" 成龍曰: "有必死之症, 而蒙恩再生。 當此國家多事之時, 冒處重地, 久未出仕, 罪當萬死。" 上曰: "今此奏聞事, 何以爲之?" 成龍曰: "此事至重難處之事, 故累爲啓辭矣。 今者我國, 只賴天朝, 而每見忤於當事之人, 或恐變生意外, 不得已苟從其請, 庶望賊或渡海矣。 小臣病昏, 不能深思, 昨見傳敎之意, 大義極盡矣。 但決無調兵、運糧, 更爲來援之勢。 前旣約於顧, 而今又不爲陳奏, 則彼必以反覆目之。 小臣, 雖一刻不忘于懷, 而胡澤之堅請如此, 勢似不得已也。" 上曰: "群議無異同, 皆欲爲之乎?" 成龍曰: "直請封貢, 則皆以爲不可爲也。" 上曰: "予亦豈以備邊司爲倭請封乎? 但予意雖去封貢字, 今此奏聞之行, 似是專爲請封。 昨見奏草, 有顧養謙爲小邦周旋, 誠非偶然之言, 此其意明是請封也。 中原人, 亦必如是見之矣。" 成龍曰: "許封, 決不可爲。 若中朝撤去劉兵, 遺禍於我國, 則此必亡之勢, 以此下情悶迫矣。 設使旣封而倭退, 則雖苟可爲, 旣許而不去, 反有難應之求, 則此後如何處之乎? 天朝當事之臣, 當此時, 推調於我國則奈何? 有此奏聞, 無辭可避。 倭本自稱皇帝, 雖許封, 其可歸乎? 且逃還之人曰: ‘求婚不成, 則將擧兵西向’ 云。 此賊雖封, 可歸乎哉?" 成龍曰: "具陳賊情, 兼陳小邦不能支吾之勢, 願中國從長處置云, 則彼言不至堅拒, 小邦之道, 亦云得矣。 天朝之人, 如是相激, 則恐於事變之外, 又有事變。 今夫子之於父, 日日而有請, 則至於不能支而怒矣。 臣意奏賊情爲當。" 上曰: "奏文中, 有許封、退倭之語矣。 成龍曰: "小邦人民都死, 兵糧無從更辦。 只願天朝從長處置云, 則石尙書必於封討之中, 有所裁決矣。 【石尙書, 天朝兵部尙書石星。】 大槪, 天兵在我境上, 邊情不可不奏也。" 上曰: "逃還人、降附倭之言, 一樣以效順爲言, 終之以顧養謙, 實爲小邦, 周旋詳悉云, 則此特引而不發而已, 其意未嘗不在請封。 承旨之意, 如何? 各(陣)〔陳〕 下情可也。" 雲翼曰: "雖去許其封貢四字, 而究其本意, 則不過欲其封貢也。" 上曰: "顧養謙之言, 不可不聽, 而予在之時, 豈可請封讐賊乎? 予退之後, 奏之或似可矣。 予尙在, 安可請封秀吉爲列侯哉? 褒賞秀吉, 尙忍爲之乎?" 雲翼曰: "請不請中, 顧豈可號令於我國乎?" 上曰: "我國之奏雖上, 天朝豈以爲信也?" 成龍曰: "金睟所齎奏文及使臣所呈文, 爲科道官等彈論取證云矣。" 上曰: "予見呈文之辭, 似非宛曲矣。" 成龍曰: "顧侍郞, 以此被參, 故欲使我國解之, 如諺所謂結者解之也。" 上曰: "孫侍郞, 亦顧之所薦, 則其意見必同矣。" 雲翼曰: "孫鑛、趙參魯不爲主和, 故請以此人來當云矣。" 上曰: "參魯之言, 以爲我國與倭奴同心云乎?" 雲翼曰: "參魯之意, 朝鮮臣民巧詐, 曾與倭通, 東事旣完之後, 只踈而不親也云矣。 孫之意, 則欲設征東行省, 遣一巡撫, 國王則只治其國人民, 而租稅等物, 皆巡撫次知, 陪臣皆屬於行省云矣。" 上曰: "只倭在之時, 爲之云乎?" 雲翼曰: "別無分別矣。" 上曰: "當此科道爭論之時, 此奏若入, 非但中心以爲不可, 恐有參論之事。 中原之人, 論議高激, 前日以李如松爲反逆。 當交爭之日, 緣我國奏聞, 其議見屈, 則不無幷參之理。" 成龍曰: "孫侍郞之來, 尤可憂也。 前朝達魯花赤之時, 其變故不可勝言矣。" 上曰: "我國之勢, 決不可當此賊。 中朝之人, 來此屯兵、屯田, 未爲不可。" 成龍曰: "天朝將官, 領軍多不戢。 若布於我國, 而作弊萬端, 則此不可說也。" 上曰: "備邊司堂上某某來在乎?" 成龍曰: "金應南、金命元、沈忠謙來矣。" 上命中官招入, 上曰: "東征將官辨誣事, 胡澤以爲: ‘勿論被誣, 只暴其功’ 云, 予亦許之。 何以處之? 皇帝之前, 不可一毫陳虛辭, 只論此人等功績, 可也。" 上曰: "今年大小人疫, 莫不臥痛。 至於眼前之人, 相繼皆痛, 何以如是乎?" 雲翼曰: "兩年兵戈之後, 殺氣致異, 城中之人, 死亡如此。 小臣之意, 別設一壇, 自上虔誠致祭, 則或可以消散矣。" 上曰: "今則無乃晩乎?" 成龍曰: "尙未晩也。" 上曰: "速爲行之。" 雲翼曰: "別遣重臣可矣。" 上曰: "生靈於斯盡矣。 閭閻之人, 不得服藥, 故多死云。 力所及處, 可以救之矣。" 成龍曰: "焰(焇)〔硝〕 , 似好於瘟病矣。"
【史臣曰: "兵戈之後, 饑疫荐作, 京外人民, 靡有孑遺, 朝廷之上, 未聞出謀發慮, 思所以賑救之, 而徒區區於藥物一節, 則臣恐筵上惻怛之敎, 誠無補於餓骨矣。"】
上曰: "京師之地震, 可愕。 且見慶尙監司書狀, 十四日, 又地震矣。" 雲翼曰: "都下人心, 方洶懼云。" 上曰: "下人所聞處, 勿言恐動之說, 可也。" 成龍曰: "上敎允當。 全延實之來, 誇張賊勢, 故人皆膽落云矣。"
【 "變由人興。 人無釁, 變不自作。 當恐懼修省, 思所以消弭之而已。 臣恐人之耳目, 不可掩也。"】
應南曰: "奏聞爲與不爲, 皆有後尾矣。" 上曰: "是何言乎?"〔應南曰〕 : "孫與顧之意, 未知同與不同, 若不爲, 則胡往彼處言曰: ‘朝鮮聞我遞, 中路而止, 其詐變不可言’ 云, 則此後尾也。" 上曰: "爲之而有後尾, 何謂也?" 應南曰: "如上敎所謂也。" 成龍曰: "爲之, 則中朝不過, 曰: ‘迫於不得已如是爲之’ 云矣。" 上曰: "然則, 終無後尾耶? 恐事未得完, 而且有後尾, 以此爲悶。" 應南曰: "箚付已往, 顧軍門必送于兵部。 今若不爲, 則必以反覆目之。 旣忤於宋、李, 且忤於顧, 人人而見忤, 則國事未知終如何也。" 上曰: "顧欲以我國之奏爲口實者, 何也?" 忠謙曰: "欲爲助己之具耳。" 上曰: "予非執一切之論以爲不可也。 事雖苟, 倭若退, 則或可矣。" 應南曰: "只冀羈縻, 而不爲再肆搶掠, 後尾之有無, 未可必也。" 上曰: "判書之意, 如何?" 【指忠謙也。】 忠謙曰: "小臣, 以爲箚付則爲之, 奏則不必爲也。 故前已陳於二度登對矣。 今則自上旣許, 而奏草亦示。 今若不爲, 恐以反覆目之。 刪其封貢等緊語, 而完給之可也。 大槪國書, (經)〔徑〕 示胡將大不可。 雖區區之朝廷, 自可議定未完之前, 豈可先示人耶?" 上曰: "只陳等待封貢之語, 無一款桀驁之狀, 則此意在於請封耳。" 成龍曰: "豈爲倭請封乎? 兵糧, 不可復請, 限鴨綠之議, 稍稍有之, 此非徒我國悶迫, 中國亦誤事之計也。 如此蕩竭之後, 以賊委之於我邦, 如以肉投虎, 其亡必矣。" 上曰: "如此語, 奏中略入之, 如何?" 成龍曰: "胡必不受矣。" 根壽曰: "雖藏頭, 中朝人必知之矣。" 上曰: "府院君之意, 如予所見。 予恐如是, 故累言之。" 忠謙曰: "與其意在其中而藏頭, 莫若直言之爲可也。" 承宗曰: "本府頃日, 以此論啓矣, 取奏草見之, 主意不明, 論議糊塗。 不可如是爲之。" 瓘曰: "從長處置之語, 無端發說, 則必以請封看之, 甚爲未安。 若直請, 則大似無理。 今此上本, 不可爲也。" 曄曰: "前見奏草, 已具於箚辭中矣。 今三司主大義, 廟堂主利害。 以利害言之, 臣未知大有所益。 藏頭之辭, 決不可爲也。" 上謂曄曰: "今將以日望天朝爲我國征討, 而今不可復請。 其後沈惟敬封貢之說, 亦不得成。 小邦間於其中, 將爲糜爛, 悶迫之狀, 爲奏如何?" 曄曰: "領相所啓, 雖與前奏似異, 畢竟未免同歸於請封。 若不及封貢語, 則慮胡不持去, 恐刼於胡, 爲此苟且之事。 若置此議, 仗大義絶封貢, 有何不可? 廟堂雖以事勢悶迫, 爲如此事, 自古主和者, 誰不以事勢之如此爲辭? 頃日箚子時, 以秘密出入, 使國人不得知, 臣甚咄咄。 國雖亡, 義不可亡。 臣恐幷與大義而失之也。" 上曰: "吏判之意, 如何?" 應南對曰: "事貴直告。" 忠謙曰: "薦人, 大臣之責, 仰達未安, 但事變之後, 奉使之臣, 唯以度日爲事, 而唯徐渻, 只爲用力。 其言有理, 計慮亦多。 封貢一事亦曰: ‘羈縻而不與於其間, 少待兵力稍裕, 更爲之圖’ 云。 此計甚當。 臣曾爲兵曹參判時, 渻爲郞官, 抄軍之事, 亦勿擾而爲之。 臣之意, 宜陞用, 委以南方之事可矣。" 上曰: "某任可當乎?" 忠謙曰: "兩南監司, 臣未見能。 韓孝純, 今方重病云。 當今之時, 得一人可以濟事, 而如此拔擢之事, 自下未敢議也。" 上曰: "大臣之意如何?" 成龍曰: "徐渻, 年少之人, 臣未曾識, 前於劉摠兵營中見之, 乃開明人也, 實未知有大才也。 今見陳策, 無一事踈闊。 委任之後, 未知能否, 小臣之意, 亦以爲可用。 舟師一事, 臣亦量之。 多設舟師, 遏絶水路, 狙擊往來之船, 則大勢必搖, 因此水陸幷進, 此計甚合。" 上曰: "此計, 欲一施何如?" 成龍曰: "水軍, 多死於饑疫, 李舜臣不得下手。 今可下書于徐渻, 聚舟師, 截殺往來之賊, 可也。" 上曰: "李舜臣號令, 不行於守令, 諸將不協云。 未可以有名望文官, 爲從事官以送乎?" 成龍曰: "前府使丁景達下去矣。" 上曰: "不得已, 以有名望文官定送, 然後號令列邑矣。 且其軍中, 有泛濫之事, 必憚壓矣。 兵判之意, 如何?" 忠謙曰: "此計甚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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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선조 27년 (1594) 6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