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18권, 명종 10년 5월 26일 己未 1/6 기사 /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병영과 장흥의 장수가 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왜적이 군량과 병기를 가져가다
국역
병영(兵營) 가장(假將) 유사(柳泗)와 장흥(長興) 가관(假官) 이수남(李壽男)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왜적(倭賊)들이 드디어 군량과 병기를 모두 가져갔다. 당초에 관찰사 김주(金澍)가 전 부사(府使) 유사를 가장으로 삼아 병영을 지키도록 하고, 벽사 찰방(碧沙察訪) 이수남을 가관으로 삼아 장흥부를 지키도록 한 것인데 먼저 모두 도망간 것이다. 5월 21일에 왜적 50여 명이 단지 창과 칼만 가지고 병영에 들어와 병기와 잡물(雜物)은 모두 뒤져가고, 또한 증미(蒸米) 7백여 석을 가져 갔으며 영사(營舍)를 불태웠다. 22일에는 왜적들이 또 장흥부에 들어와 부 안의 잡물을 모두 가져갔다.
원문
명종실록18권, 명종 10년 5월 26일 己未 1/6 기사 /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병영과 장흥의 장수가 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왜적이 군량과 병기를 가져가다
국역
병영(兵營) 가장(假將) 유사(柳泗)와 장흥(長興) 가관(假官) 이수남(李壽男)이 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왜적(倭賊)들이 드디어 군량과 병기를 모두 가져갔다. 당초에 관찰사 김주(金澍)가 전 부사(府使) 유사를 가장으로 삼아 병영을 지키도록 하고, 벽사 찰방(碧沙察訪) 이수남을 가관으로 삼아 장흥부를 지키도록 한 것인데 먼저 모두 도망간 것이다. 5월 21일에 왜적 50여 명이 단지 창과 칼만 가지고 병영에 들어와 병기와 잡물(雜物)은 모두 뒤져가고, 또한 증미(蒸米) 7백여 석을 가져 갔으며 영사(營舍)를 불태웠다. 22일에는 왜적들이 또 장흥부에 들어와 부 안의 잡물을 모두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