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13권, 명종 7년 9월 3일 壬午 3/4 기사 / 1552년 명 가정(嘉靖) 31년
조사수·심광언·김귀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조사수(趙士秀)를 이조 참판으로, 【조사수는 청백(淸白)·경개(耿介)하여 조정에 벼슬한 지 20년 동안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의 집과 같았다. 이부(吏部)에 벼슬하였으나 대문 앞에는 새그물을 칠 정도로 조용하였다. 일찍이 그의 친구에게 ‘옛부터 말세에 태어나면 오직 절개를 지켜 스스로 깨끗이할 뿐이니, 그래야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공무(公務) 외에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시를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 조사수는 비록 문장의 기예는 있었으나 성품이 실로 교만하고 사나와 자기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자는 원수처럼 미워하였다. 그러나 청근(淸謹)한 행실은 시종 한결같았으니, 이는 조금 취할 만하였다.】 심광언(沈光彦)을 형조 참판으로, 김귀영(金貴榮)을 사간원 정언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3권 66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100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원문
명종 7년 (1552) 9월 3일
명종실록13권, 명종 7년 9월 3일 壬午 3/4 기사 / 1552년 명 가정(嘉靖) 31년
조사수·심광언·김귀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조사수(趙士秀)를 이조 참판으로, 【조사수는 청백(淸白)·경개(耿介)하여 조정에 벼슬한 지 20년 동안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의 집과 같았다. 이부(吏部)에 벼슬하였으나 대문 앞에는 새그물을 칠 정도로 조용하였다. 일찍이 그의 친구에게 ‘옛부터 말세에 태어나면 오직 절개를 지켜 스스로 깨끗이할 뿐이니, 그래야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 하였다. 그리하여 공무(公務) 외에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시를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 조사수는 비록 문장의 기예는 있었으나 성품이 실로 교만하고 사나와 자기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자는 원수처럼 미워하였다. 그러나 청근(淸謹)한 행실은 시종 한결같았으니, 이는 조금 취할 만하였다.】 심광언(沈光彦)을 형조 참판으로, 김귀영(金貴榮)을 사간원 정언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3권 66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100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원문
원본
명종 7년 (1552) 9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