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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6권, 명종 2년 10월 11일 戊午 2/4 기사 / 1547년 명 가정(嘉靖) 26년

조강에 나가다. 대비가 수렴 청정하고 대신들과 윤임의 모반에 대해 의논하다

국역

임금이 조강에 나아갔다. 사정전에서 대비가 수렴(垂簾)하고 함께 청정하였다. 상이 주렴 밖에 나아가 서쪽을 향해 부복하였다. 영경연사 이기가 아뢰기를,

"부자 사이에 서로 숨기는 것은 천리(天理)에 근본한 것이며 인정(人情)에 순한 것이기 때문에 율문에도 부자간에는 서로 숨겨 준다고 하였고, 또한 본디 경전(經傳)의 뜻이기도 합니다. 율문에 십악(十惡)219) 이 있는데 명분과 의리를 범하여 군부(君父)의 일을 말하는 것을 앞에다 두었습니다. 조광조의 일은 당시에는 비록 잘한 일이라고 하였으나 부형의 악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형제와 붕우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말을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폐풍이 남아 있어서 사우(師友)의 도리가 폐하여 서로 믿지 못하고 모두 말하기를 꺼리니 참으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윤임·유관·유인숙이 모역(謀逆)한 일은 실로 예삿일이 아니었는데, 당초 죄를 정할 때에 그 죄상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다가 안세우(安世遇)와 김명윤(金明胤)의 진고에 의하여 비로소 다스렸습니다. 만약 그들이 고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밝히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신은 그들 두 사람 역시 그 공을 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께서는 단서가 드러난 후에 고했기 때문에 공훈(功勳)의 열에 들지 않는다고 여기십니다. 윤임 등은 당초 정죄할 때 엄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심이 안정되지 않아 그 후에 다시 법에 의하여 적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점차 더하여 민심이 요동되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김안로가 패망한 후에는 사람들 모두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매도(罵倒)한 것이 마치 천한 노예처럼 했었습니다. 윤임과 유관·유인숙은 이미 복주(伏誅)되었는데도 사람들 모두가 반드시 ‘모야(某爺)’라고 부르니, 그들이 한 때의 이름을 도둑질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종 때 정국 공신(靖國功臣)220) 을 후하게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에 습속이 이런 것입니다. 상시에는 비록 천한 사람이라도 난언(亂言)을 진고하면 즉시 공신으로 삼아 그의 작질(爵秩)을 올려 주어 보답하는 것이니, 지금도 특별히 그런 은전을 베풀어야지 전철만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또 처음 난을 안정할 때 소신이 스스로 알아서 한 것이 아니요, 실은 윤원형과 윤돈인(尹敦仁)이 시켜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논공(論功)에 미쳐서는 윤원형은 2등에 있고 신은 1등에 있어 오히려 그의 위에 있게 되니 실로 미안합니다. 또 최보한 역시 1품(品)에 이르렀는데 윤원형은 아직도 2품에 있어 신이 항상 아뢰려 하였는데, 상께서 지친이라고 인혐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아뢰지 못했습니다. 신이 이런 큰 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윤원형의 공인데도 모든 은수(恩數)는 윤원형보다 많으니 더욱 황공합니다.

인종께서 병이 크게 악화되었을 때 윤임의 세 부자(父子)가 모두 입시하였는데 그뒤 추문할 때에 윤흥의(尹興義)는 최후에 들아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시위하는 내관(內官)이 바로 말하지 않았으니 매우 그릅니다. 윤흥의가 처음부터 입시하였는데, 인종께서 병이 크게 악화되어 붓을 들어 글을 쓰려 하는데 잘되지 않자 윤흥의에게 보이며 ‘너는 알아보겠느냐.’ 하였는데 이것도 안에 머물러 두고 내보내지 않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때에 또 내반원(內班院)221) 은 피어(避御)하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윤임 등이 내관(內官)과 내인(內人)들을 물리치고 불측스런 술책을 모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소신이 그때에 병조 판서로서 입직(入直)하였다가 듣고 보아서 압니다. 자전(慈殿)께서 보내는 문안하는 내관들이 잇달아 끊임이 없었는데도 모두 들어가지 못하였고, 내관들은 다른 곳에다 말을 하지 못하고 반드시 신에게 와서 말했는데 신은 ‘사세가 이러하니 어쩌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제 이것을 아룁니다."

하였다. 특진관 허자(許磁)가 아뢰기를,

"윤임을 처음에 법대로 추국하지 못한 것은 그 일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신과 이기(李芑)가 다 추국에 참여하였는데 난역죄(亂逆罪)로 추국하지 않았으며, 상께서도 ‘다만 큰 우두머리만 다스리고 협종(脅從)한 자들은 다스리지 말라.’ 하셨기 때문에 인심이 아직까지도 가라앉지 않습니다. 소신은 추관(推官)이 되어서 쾌하게 다스리지 못하였으니, 그 죄와 허물이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항상 그 일을 생각하면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윤원형은 그 공이 큰데도 아직까지 숭반(崇班)에 오르지 못했으므로 모두들 미편하게 여깁니다. 소신이 무슨 공로가 있기에 도리어 윤원형의 위에 있는 것입니까."

하였다. 이기가 아뢰기를,

"이윤경(李潤慶)은 이중열(李中悅)의 아비로서 훈공을 삭제당했는데도 아직 그 작위(爵位)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그 훈공을 삭제했으면 이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연좌(緣坐)시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난역 죄인의 아비가 어찌 그 벼슬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권응정(權應挺)·권응창(權應昌) 형제는 죄가 한가지인데도 권응창은 먼 곳으로 찬축하고 권응정은 아직도 남쪽 지방에 그대로 있으니 그 죄에 해당하는 죄를 주어야 합니다. 권응창은 유관(柳灌)의 동생과는 아주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유관이 마치 자식처럼 대하였으니, 권응정 역시 권응창과 차이가 없습니다."

하였다. 대사헌 안현(安玹)이 아뢰기를,

"이기의 말이 매우 옳습니다."

하였다. 대비가 하교하기를,

"윤임의 일을 사람들이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 지금 좌상(左相)의 말이 지당하다. 중종 조 때부터 그 모계(謀計)가 매우 험악하여 마음 속에 화를 꾸밀 마음을 품었는데 조정 상하가 모두 그의 말을 믿어온 지 오래이다. 정유년에 윤임이 김안로의 비밀스런 부탁을 받고 국모(國母)를 모해하려 한 것은 허경(許坰)의 공초만 보아도 그 정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먼저 동궁(東宮)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생각하고는 종실의 당차(當次)인 사람을 제거하려고 하여 그 흉악한 모의와 비밀스런 계책이 매우 음험하였고 거짓으로 인심을 유혹하여 참혹한 말을 많이 하였다. 그때에 정순붕과 구수담이 경연(經筵)에서 잠깐 아뢰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모두 윤임의 음촉(陰囑)을 믿어 장차 종사가 어떻게 될지 몰랐었다.

갑진년 10월, 정순붕이 또 그 일을 아뢰었는데, 그때 중종께서 윤임을 외방으로 찬축하라 명하였다. 그렇게 했으면 사특한 말이 조금은 중지되었을 것인데, 조정이 모두 아뢰어 끝내 찬축되지 않았다. 신하된 자들이 종사의 중함은 생각하지 않고 한것 윤임의 음험한 말만 들어 그렇게 하였으니, 옳은 일인가. 중종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종과 조금도 틈이 없었으니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생각을 두었겠는가. 하늘에 있는 인종의 영혼이 반드시 임해 있을 것이다. 갑진년에 중종께서 편치 않으시자 동궁에게 전위(傳位)하려 하셨는데, 조정에서 도리어 의심하였기 때문에 시행되지 않았다.

그후에 중종께서 승하하고 인종이 위를 이어받은 것은 순리(順理)였다. 역적 윤임은 이에 유인숙과 결탁하고 또 유관(柳灌)과 체결하여 권세가 날로 무거워졌는데 당시 조정은 모두 그 권세에 빌붙었지 누구 하나 종사를 구하려 하지 않았고 나라 일이 날로 잘못되어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 망극한 슬픔 속에 조정의 시비를 어찌 말할 수 있었겠는가. 마침내는 인종이 승하하였는데 초상(初喪)을 당한 급할 때에 윤원로의 죄를 따진 것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주상이 즉위하여 군신(君臣)의 분의(分義)가 이미 정해졌는데 안팎으로 선동하여 왕실을 모해하여 종사가 위태롭게 되었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 말하는 자가 없었으므로 위에서 두세 대신에게 밀유(密諭)하여 그 단서를 열었던 것이다. 윤임의 흉악한 죄상이 저절로 다 드러났으니, 비록 협종한 자는 다스리지 않더라도 모두 개과 천선하여 새롭게 되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아직껏 인심이 안정되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그 음험한 반역의 정상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이며, 또 역적들의 무거운 죄를 모르는 탓이다. 이때문에 부득이 죄를 더한 것이나 일이 매우 구차스럽게 되었다. 또 조정에서 한 사람도 감히 그 소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지 못했다. 위에서도 절의(節義)있는 자가 없다고 말하였는데, 다만 당초 그 역적들을 쾌하게 다스리지 못한 것은 실로 개과 천선하기를 바랐던 뜻이다."

하였다. 사간 윤인서(尹仁恕)가 아뢰기를,

"역적의 추안(推案)은 외인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조종조 때에도 역시 《무정보감(武定寶鑑)》이 있었으니, 신의 생각에도 그 예에 의해서 인출(印出)해서 널리 반포 한다면 어리석은 지아비나 지어미라도 모두 보고 알아서 사특한 말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안현이 아뢰기를,

"윤임 등이 난역을 일으킨 일을 고금에 드문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안을 각사(各司)로 하여금 등서(謄書)하게 했으니 재상(宰相)인 사람은 혹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외의 각사에서는 등서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대비가 이를기를,

"역적의 일을 인출하여 중외에 반포하자는 말이 지당하다. 위에서는 당초 그 단서가 열렸을 때 다만 그 우두머리만 치죄하고 나머지는 다스리지 않았다. 그때에 인심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정상을 자세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안세우(安世遇)와 김명윤(金明胤)이 진고한 다음에야 정죄(定罪)했으니 과연 공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일은 단서가 열린 후였다. 치성할 때에는 누구한 사람 감히 그 일을 말한 자가 없었는데, 위에서 세 사람을 죄준 연후에 이를 보고 진고했기 때문에 그 훈공을 녹(錄)하지 않은 것이다.

인종의 병환이 크게 악화되었을 때 윤임의 일가가 모두 입시하였으니 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내가 비록 인종의 친어미는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궁중에서 키웠다. 인종은 천성이 인후(仁厚)하여 나를 지성으로 섬겨서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한정 없이 두터웠다. 어찌 외간에서 듣지 못하였겠는가. 인종은 병이 악화되자 나를 만나보고 한 마디 하려 하였고 나도 가보려 하였으나 안팎에서 막아 나를 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서로 말을 하려 하였지만 끝내 하지 못하였으니 과연 매우 망극하다. 주상이 위를 잇자 윤임 등은 화가 곧 자기들에게 미칠까 두려워 다른 사람을 세우려고 모의하였다. 그 당시 내외에서 공모(共謀)한 일을 조정에서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하였다. 동지경연사 심연원(沈連源)이 아뢰기를,

"윤임 등이 전에 한 일들은 매우 패려했기 때문에 모두 드러나게 되자 그 화를 피하기가 어려울 것을 알고는 마침내 온갖 모의를 다하였습니다."

하니, 대비가 이르기를,

"그들이 모두 죽을 힘을 다하여 보신(保身)할 계책을 도모해 반역의 모의를 일으켰으니, 안팎으로 한 일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종사의 위태로움이 경각에 달렸었는데 다시 종사가 안정되게 된 것은 천우 신조(天佑神助)이지 인력(人力)으로 된 일이 아니다. 또 좌상이 말하기를 ‘윤원형의 공이 큰데 2등에 들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상의 지친(至親)이기 때문에 공사(公私)를 따져 그렇게 한 것이다. 더구나 윤원형이 어찌 홀로 그렇게 했겠는가. 두세 대신이 처음에 협모(協謀)했기 때문에 마침내 큰 공을 세웠으니 어찌 1등에 있을 수 있겠는가. 화가 조석간에 닥쳤을 때 만일 도와 주는 자가 없었다면 비록 홀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극진하다 하더라도 어떻게 구할 수 있었겠는가. 저들 반역인들이 사람을 속인 것이 본래 하루 이틀이 아닌데 아직껏 인심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였다. 특진관 송겸(宋㻩)이 아뢰기를,

"중종 때에 소신은 외간(外間)에 있었으므로 비록 그 당시 일을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윤임이 중종 때부터 한 소행과 인종께서 즉위한 후에 품은 화심(禍心)을 신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인종의 병환이 크게 악화되었을 때 신은 오위장(五衛將)으로 입직(入直)하였었는데 신하된 사람의 마음이 어찌 끝이 있었겠습니까. 그 근심되고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형조 판서 윤임이 안에 들어와 시약(侍藥)을 한다.’ 하고, 또 이어 말하기를 ‘윤임의 세 아들이 모두 들어왔으며, 일가(一家)가 다 들어왔다.’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그는 전에도 일을 꾸민 적이 있었는데 만약 인종께서 헤아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여겨져서, 미욱한 신이 홀로 북소(北所)에 앉아 입위(入衛)한 군사를 헤아려보니 19명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중얼거리기를 ‘혹시라도 예측하지 못할 변이 일어난다면 이 군사를 가지고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런데 초1일 승하하신 후 새벽에 윤임이 서문(西門) 밖으로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비통한 가운데도 그가 나간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후에 신이 부경(赴京)하면서 윤임 등이 죄를 입었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평소 그 사람이 그런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듣고도 괴이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면서 요동(遼東)에 이르러 또 자세히 들었고, 서울에 돌아와서는 그 동안 듣지 못한 바를 많이 들었는데 매우 놀랍고 참혹하였습니다. 인심이 이미 그의 흉모(凶謀)를 알고 있으니 안정되지 않음을 무슨 걱정할 게 있겠습니까. 만약 위에서 매양 안정되지 않았다고 염려하신다면 안정될 때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안현이 아뢰기를,

"윤임이 안팎으로 함께 모의한 일을 전에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다만 용모(容貌)를 보면 사람들마다 그가 흉악 간특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으니 사대부가 누구인들 몰랐겠습니까. 서문(西門) 밖에서 각사(各司)가 모두 모일 때에 윤임이 대내(大內)에 입시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놀랐습니다. 고금을 통하여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흉악 패려한 사람만 입시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비록 선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단서를 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니, 대비가 이르기를,

"비록 가까운 친척이라 하더라도 임금의 병에 입시하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윤임의 부자가 입시한 것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는 모의였다. 그런 일은 고금을 통하여 없던 일이다. 윤임 부자는 사람들이 자기 말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서야 ‘인종께서 주상(主上)에게 전위(傳位)하라고 명하였다.’고 말하였다. 처음에는 만일 그 우두머리만 다스리면 그 이하는 자연히 마음을 돌려 의(義)로 향할 것이니 무슨 일이 더 있겠는가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는 달리 오래도록 안정되지 않기 때문에 점차 그들의 죄를 더해서 더러는 무거운 법으로 다스리고 더러는 밖으로 찬축했으니 도리어 미안하여 슬프고 탄식만 더할 뿐이다. 만일 윤임이 아니었더라면 조정이 편안하였을 것이니, 사대부들이 어찌 많이 상하기에 이르렀겠는가. 이완(李岏) 역시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득죄한 자가 이처럼 많은 것은 모두 윤임의 죄이다."

하였다. 윤인서가 아뢰기를,

"소신이 매양 계달(啓達)하려 하였지만 국가에 죄를 얻은 사람들을 영구(營救)하게 될까 싶어 감히 아뢰지 못했었습니다. 신이 통천 군수(通川郡守)로 있을 때에 사악한 말이 많이 퍼져 있는 것을 듣고 화가 조석간에 달려 있음을 걱정했습니다. 인종께 후사가 없으니 만약 성상(聖上)222) 을 보호한다면 국가가 거의 안정될 것이라고 여겨 상소하여 ‘국본(國本)223) 을 빨리 정해야 한다.’고 청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통천 고을에는 종이가 없어 그 상소문 초고(草稿)를 서울로 보내 써오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황(丁熿)이 그 상소문 초고를 보고는 말하기를 ‘비록 세제(世弟)로 봉하지는 못하게 되더라도 보양(保養)은 해야 한다는 이 말이 가장 절실하다.’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비록 죄가 많으나 다른 마음을 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 간원에서 소신이 이런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는 신을 논핵(論劾)하려고 하였는데, 정황이 또 신에게 통지하여 주기를 ‘내가 자네의 소(疏)가 잘 되었다고 했는데 간원의 의논이 이와 같다.’고 정령하게 편지를 보냈으니, 만일 다른 마음이 있었으면 그처럼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니, 대비가 이르기를,

"중종 때에는 그래도 공의(公議)가 있었는데 인종 때에 이르러서 유관(柳灌) 등의 권세가 날로 치성해져 사람들이 많이 빌붙었는데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형세였다. 정황의 마음을 어찌 위에서 다 알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삼가 살피건대, 이기가 윤원형의 공로를 극진하게 아뢴 것은 윤원형이 척리(戚里)이기 때문에 대비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다. 김명윤(金明胤)과 안세우(安世遇)는 다만 파리나 개같은 무리인데 기회를 틈타 부회하여 그 공을 녹하라고 한 것이다. 권응정(權應挺) 형제는 그를 비난하였으므로 반드시 먼곳으로 내치려 하니 그 술수가 교묘하고도 참혹하다. 윤인서는 간사한 사람인데 아부하여 잘 보이려고 감히 이처럼 아뢰었으니, 역시 사특하지 않은가.

  • [註 219] 십악(十惡) : 열 가지 무거운 죄악. 즉, 모반(謀反)·모대역(謀大逆)·모잔(謀叛)·악역(惡逆)·부도(不道)·대불경(大不敬)·불효(不孝)·불목(不睦)·불의(不義)·내란(內亂)을 말함.
  • [註 220] 정국 공신(靖國功臣) : 중종반정 때 공을 세운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 등에게 내린 훈호.
  • [註 221] 내반원(內班院) : 내시부(內侍府).
  • [註 222] 성상(聖上) : 명종.
  • [註 223] 국본(國本) : 세자(世子).

원문

○上御朝講。 于思政殿, 大妃垂簾同聽政。 上御于簾外, 西向俯伏。 領經筵事李芑曰: "父子相隱, 乃本於天理, 順於人情, 故律文亦以父子相爲容隱, 亦本諸經義也。 律有十惡, 而干名犯義, 言其君父之事者, 居先。 趙光祖之事, 當時雖以爲善, 而父兄之惡, 亦不諱之, 故兄弟朋友, 畏而莫敢有言者。 今弊風尙存, 師友道廢, 不能相信, 皆以言爲諱, 誠非細慮也。" 又曰: "尹任、柳灌、柳仁淑謀逆之事, 實爲非常, 當初定罪之時, 猶不分明罪狀, 而據安世遇、金明胤進告, 乃始治之。 彼若不告, 則不能明示於其時。 臣意以爲彼二人, 亦可錄其功, 而自上以爲告之於端緖已出之後, 不在功勳之列矣。 尹任等當初定罪不嚴, 故人心不靜, 其後更爲依律籍沒。 然漸加其罪, 人心搖動, 亦在於不得已也。 金安老見敗後, 人皆呼名追罵, 有同賤隷。 尹任、柳灌、柳仁淑雖已伏誅, 而必稱某爺, 其盜名於一時可知。 中宗朝靖國功臣, 不爲厚待習俗, 以此爲然也。 常時雖賤人, 進告其亂言, 則卽爲功臣, 厚其爵秩以酬之, 今亦特施其恩典, 不可循途守轍。 且當初定難之時, 小臣非所自知, 實是尹元衡、尹敦仁之所指, 及其論功, 元衡居二等, 臣居一等, 反在其上, 心實未安。 且崔輔漢亦至一品, 而元衡尙在二品, 臣每欲啓之, 自上以至親而引嫌, 故時未啓之。 臣之成此大功, 皆是元衡之功, 而凡恩數則過優於元衡, 尤爲惶恐。 仁宗大漸之時, 尹任三父子皆入侍, 其後推問之時, 乃以謂尹興義最後以入。 其時侍衛內官, 不直言之, 至爲非矣。 興義自初入侍, 仁宗病大漸, 操筆欲書, 而不能, 以示興義曰: ‘汝知見乎?’ 此亦留中不出, 人莫之知。 其時又有內班院避御之言, 是皆任等欲辟其內官, 與內人謀爲不測之術也。 小臣其時, 以兵曹判書入直, 聞見而知之, 自慈殿問安, 內官絡繹不絶, 而皆不得入, 內官等不能言之於他處, 必來言於臣, 臣以謂: ‘事勢如此, 何以爲之乎?’ 今以此啓之矣。" 特進官許磁曰: "尹任當初不能推之以律者, 不能詳知其事也。 臣與李芑皆參推鞫, 而不以亂逆推之, 自上亦以爲: ‘只治巨魁, 脅從罔治。’ 以此人心, 尙今不靖。 小臣爲推官, 不能快治, 其爲罪過, 夫豈有極乎? 每念至此, 無地自容。 尹元衡以其懋功, 尙不在崇班, 論議皆以爲未便, 小臣有何功勞, 而反居元衡之上乎?" 李芑曰: "李潤慶以中悅之父削勳, 而尙保其爵。 如其削勳, 則是有罪也。 雖不緣坐, 而亂逆人之父, 豈得保其爵乎? 權應挺、權應昌兄弟罪同, 而應昌竄於遐裔, 應挺猶在南方, 宜以罪罪之也。 應昌與柳灌之同生爲切族, 故灌待之如子息, 應挺亦無間於應昌者也。" 大司憲安玹曰: "李芑之言至當。" 大妃敎曰: "尹任之事, 人不細知, 今者左相之言至當。 自中宗朝, 謀計甚險, 包藏禍心, 而朝廷上下, 皆信聽其言久矣。 丁酉年間, 任聽金安老之陰囑, 謀危國母之事, 觀許坰之供招, 則可知其情狀矣。 彼乃先自揣度東宮無子, 欲除宗室之當次者, 其兇謀秘計, 極爲陰險, 誑誘人心, 多發慘酷之言。 其時鄭順朋、具壽聃, 暫達於經筵之上, 一時之人, 擧信尹任之陰囑, 不知終置宗社於何地耶? 甲辰十月, 鄭順朋又啓之, 其時中宗命竄尹任於外。 如是則邪說庶可少止, 而朝廷皆爲啓之, 終使不竄。 人臣不計宗社之重, 徒聞尹任陰慘之言而如是可乎? 中宗自初至終, 少無間於仁宗, 夫豈有一毫他念哉? 仁宗在天之靈, 亦必臨之。 甲辰年中宗未寧, 欲傳位於東宮, 而朝廷反以爲疑, 故終不果也。 其後中宗昇遐, 仁宗嗣位, 於理順矣, 而逆賊尹任, 乃交結柳仁淑, 又締結柳灌, 權勢日重, 一時朝廷, 皆知趨附於權勢, 而無一人欲救宗社者, 國事將日非而莫之憂也。 當其時哀遽罔極之中, 朝廷是非, 其何以言之哉? 終至於仁宗賓天, 於初喪遑遑之際, 數其尹元老之罪, 口難容說。 主上卽位, 君臣之分已定, 而內外煽動, 謀危王室, 宗社岌岌殆哉, 而朝廷無有言之者, 故自上密諭於二三大臣, 以開其端。 尹任之凶狀, 自爾皆著, 則雖不治脅從, 而皆可以改過自新, 回心向國矣。 人心尙今不靖, 必其陰慘反逆之狀, 不能詳知, 而亦不知逆類之罪重故也。 以此不獲已而加罪, 事甚苟且。 朝廷無一人敢爲剪除其小人者。 自上亦言無節義之人也, 但當初不能快治其逆賊者, 實欲其改過遷善之意也。" 司諫尹仁恕曰: "逆賊推案, 外人不得見之。 祖宗朝亦有《武定寶鑑》, 臣意以爲依此印出, 使之廣布, 則愚夫愚婦, 皆得知之, 而邪論不起矣。" 安玹曰: "尹任等亂逆之事, 古今所罕。 故其推案, 令各司謄書, 而宰相之人, 則或有得見矣。 其他各司, 則未知其盡謄也。" 大妃曰: "逆賊之事, 印布中外之言至當。 自上當初暫爲開端, 只治巨魁, 餘皆不治。 彼時人心, 不能無疑, 未得洞知其情。 至安世遇、金明胤進告, 然後定罪, 果不爲無功矣。 然此乃已爲開端之後也。 當其熾盛之時, 無一人敢言其事者, 自上罪此三人, 然後彼乃見而告之, 故不錄其勳也。 仁宗大漸之時, 尹任一家皆入侍, 而其所爲之事多矣。 予於仁宗, 雖非親母, 自幼時長育於宮中。 仁宗天性仁厚, 事予至誠, 兩間情義之厚。 夫豈有極, 外間亦豈不聞乎? 仁宗病革, 欲見予而有一言, 予亦欲來, 而內外防之, 使予不得來。 欲相語而竟未之, 果以至於罔極。 主上嗣位, 任等恐其禍將及己, 謀立他人。 當其時內外共謀之事, 朝廷豈能盡知?" 同知經筵事沈連源曰: "任等在前所爲之事, 甚爲悖戾, 故及其敗露, 知其禍之難逃, 遂生謀無所不爲也。" 大妃曰: "彼皆出其死心, 以圖保身之計, 以生反逆之謀, 內外所爲之事, 何可盡言乎? 宗社之傾危, 在於斯須之間, 及其再安宗社, 此乃天佑神助, 固非人力之所能致也。 且左相言: ‘尹元衡功優而居二等。’ 云, 自上至親, 故計其公私而爲之也。 況元衡豈能獨爲? 數三大臣, 始爲協謀, 故終成大功, 豈可居一等乎? 禍迫朝夕之時, 如無助之者, 則雖獨盡心於國事, 何能有濟乎? 彼逆類之誣人, 固非一日, 尙今人心之不定, 亦以是哉。" 特進官宋 曰: "中廟朝, 小臣在於外間, 雖不詳知其時之事, 而尹任自中廟朝所爲之事及仁宗卽位後包藏禍心之意, 臣豈不知乎? 仁宗大漸之時, 臣以五衛將入直, 臣子之心, 何有紀極乎? 當其憂危之時, 有人來言曰: ‘刑曹判(意)〔書〕 尹任入內侍藥。’ 又繼而言曰: ‘任之三子皆入, 一家竝入。’ 臣意以爲: ‘彼乃前者, 不無所爲之事, 若仁宗終至莫測, 則恐其幸有從中起事。’ 於臣迷劣之心, 獨坐於北所, 計數其入衛軍士, 則只十九名。 私自語曰: ‘脫有不虞之變, 則以此軍士, 何能爲乎?’ 初一日昇遐後未明時, 尹任出去于西門外云。 其於悲慟之中, 乃以彼之出去爲喜。 其後臣赴京聞尹任等被罪之事, 以其素知其人之如此, 故始聞而不怪。 還至遼東, 又詳聞之, 及至還京, 益聞其所不聞, 至爲駭慘。 人心已知其凶謀, 何患乎不定。 若自上每以不定爲念, 則其無安定之時矣。" 安玹曰: "尹任內外同謀之事, 則前豈知之乎? 但以容貌見之, 人人皆知其兇慝, 士大夫孰不知乎? 西門外各司齊會時, 聞尹任入於大內, 皆爲驚動。 古今安有如此事乎? 非但兇悖之人, 不可入侍, 雖善良之人, 不可開端也。" 大妃曰: "雖切親, 豈可入侍人君之病乎? 尹任父子之入侍, 以謀危國事也。 是乃古今所無之事。 任之父子, 知人不從己意, 然後乃言: ‘仁宗傳位主上之命。’ 初以爲若治巨魁, 則其下自爾回心向義, 更有何事乎? 乃與初計有異, 久而不靖, 故漸加其罪, 或置重典, 或竄于外, 反爲未安, 徒增傷嘆。 如非尹任, 則朝廷晏然, 士大夫豈至於多傷, 而岏亦可以保全矣。 得罪者如是其甚多, 皆任之罪也。" 尹仁恕曰: "小臣每欲啓達, 以其國家得罪之人, 涉於營救, 故不敢。 臣爲通川郡守時, 聞有邪說之多播, 恐其禍迫於朝夕。 仁宗無嗣, 若保護聖上, 則國家庶可安矣。 乃欲上疏, 請早定國本, 而通川無紙, 送其疏藁於京, 使之書來, 而丁熿見其疏藁曰: ‘雖不得封爲世(第)〔弟〕 , 亦可保養, 此言最切也。’ 此人雖多罪, 其有異志則未知也。 時諫院知小臣有此意, 議欲劾臣, 丁熿又通之於臣曰: ‘予以君疏爲得, 而諫院之議如是。’ 丁寧簡通, 如有異心, 則其肯若是乎?" 大妃曰: "中宗朝公議猶存, 至仁宗朝, 柳灌等權勢日熾, 人多趨附, 勢之然也。 丁熿之情, 自上豈盡知乎?"

【史臣曰: "謹按李芑之極陳元衡之功者, 以元衡爲戚里, 欲以悅大妃之意也。 金明胤、安世遇, 特蠅營狗苟之輩, 欲乘時附會, 而謂其功可錄。 應挺兄弟, 詆毁其身, 而必欲逬諸遐裔, 其爲謀巧且憯矣。 尹仁恕乃奸侫人也, 欲阿意求媚, 敢以此啓之, 不亦詐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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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6권, 명종 2년 10월 11일 戊午 2/4 기사 / 1547년 명 가정(嘉靖) 26년

조강에 나가다. 대비가 수렴 청정하고 대신들과 윤임의 모반에 대해 의논하다

국역

임금이 조강에 나아갔다. 사정전에서 대비가 수렴(垂簾)하고 함께 청정하였다. 상이 주렴 밖에 나아가 서쪽을 향해 부복하였다. 영경연사 이기가 아뢰기를,

"부자 사이에 서로 숨기는 것은 천리(天理)에 근본한 것이며 인정(人情)에 순한 것이기 때문에 율문에도 부자간에는 서로 숨겨 준다고 하였고, 또한 본디 경전(經傳)의 뜻이기도 합니다. 율문에 십악(十惡)219) 이 있는데 명분과 의리를 범하여 군부(君父)의 일을 말하는 것을 앞에다 두었습니다. 조광조의 일은 당시에는 비록 잘한 일이라고 하였으나 부형의 악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형제와 붕우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말을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폐풍이 남아 있어서 사우(師友)의 도리가 폐하여 서로 믿지 못하고 모두 말하기를 꺼리니 참으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윤임·유관·유인숙이 모역(謀逆)한 일은 실로 예삿일이 아니었는데, 당초 죄를 정할 때에 그 죄상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다가 안세우(安世遇)와 김명윤(金明胤)의 진고에 의하여 비로소 다스렸습니다. 만약 그들이 고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밝히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신은 그들 두 사람 역시 그 공을 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께서는 단서가 드러난 후에 고했기 때문에 공훈(功勳)의 열에 들지 않는다고 여기십니다. 윤임 등은 당초 정죄할 때 엄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심이 안정되지 않아 그 후에 다시 법에 의하여 적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점차 더하여 민심이 요동되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김안로가 패망한 후에는 사람들 모두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매도(罵倒)한 것이 마치 천한 노예처럼 했었습니다. 윤임과 유관·유인숙은 이미 복주(伏誅)되었는데도 사람들 모두가 반드시 ‘모야(某爺)’라고 부르니, 그들이 한 때의 이름을 도둑질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종 때 정국 공신(靖國功臣)220) 을 후하게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에 습속이 이런 것입니다. 상시에는 비록 천한 사람이라도 난언(亂言)을 진고하면 즉시 공신으로 삼아 그의 작질(爵秩)을 올려 주어 보답하는 것이니, 지금도 특별히 그런 은전을 베풀어야지 전철만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또 처음 난을 안정할 때 소신이 스스로 알아서 한 것이 아니요, 실은 윤원형과 윤돈인(尹敦仁)이 시켜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논공(論功)에 미쳐서는 윤원형은 2등에 있고 신은 1등에 있어 오히려 그의 위에 있게 되니 실로 미안합니다. 또 최보한 역시 1품(品)에 이르렀는데 윤원형은 아직도 2품에 있어 신이 항상 아뢰려 하였는데, 상께서 지친이라고 인혐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아뢰지 못했습니다. 신이 이런 큰 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윤원형의 공인데도 모든 은수(恩數)는 윤원형보다 많으니 더욱 황공합니다.

인종께서 병이 크게 악화되었을 때 윤임의 세 부자(父子)가 모두 입시하였는데 그뒤 추문할 때에 윤흥의(尹興義)는 최후에 들아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시위하는 내관(內官)이 바로 말하지 않았으니 매우 그릅니다. 윤흥의가 처음부터 입시하였는데, 인종께서 병이 크게 악화되어 붓을 들어 글을 쓰려 하는데 잘되지 않자 윤흥의에게 보이며 ‘너는 알아보겠느냐.’ 하였는데 이것도 안에 머물러 두고 내보내지 않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때에 또 내반원(內班院)221) 은 피어(避御)하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윤임 등이 내관(內官)과 내인(內人)들을 물리치고 불측스런 술책을 모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소신이 그때에 병조 판서로서 입직(入直)하였다가 듣고 보아서 압니다. 자전(慈殿)께서 보내는 문안하는 내관들이 잇달아 끊임이 없었는데도 모두 들어가지 못하였고, 내관들은 다른 곳에다 말을 하지 못하고 반드시 신에게 와서 말했는데 신은 ‘사세가 이러하니 어쩌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제 이것을 아룁니다."

하였다. 특진관 허자(許磁)가 아뢰기를,

"윤임을 처음에 법대로 추국하지 못한 것은 그 일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신과 이기(李芑)가 다 추국에 참여하였는데 난역죄(亂逆罪)로 추국하지 않았으며, 상께서도 ‘다만 큰 우두머리만 다스리고 협종(脅從)한 자들은 다스리지 말라.’ 하셨기 때문에 인심이 아직까지도 가라앉지 않습니다. 소신은 추관(推官)이 되어서 쾌하게 다스리지 못하였으니, 그 죄와 허물이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항상 그 일을 생각하면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윤원형은 그 공이 큰데도 아직까지 숭반(崇班)에 오르지 못했으므로 모두들 미편하게 여깁니다. 소신이 무슨 공로가 있기에 도리어 윤원형의 위에 있는 것입니까."

하였다. 이기가 아뢰기를,

"이윤경(李潤慶)은 이중열(李中悅)의 아비로서 훈공을 삭제당했는데도 아직 그 작위(爵位)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그 훈공을 삭제했으면 이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연좌(緣坐)시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난역 죄인의 아비가 어찌 그 벼슬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권응정(權應挺)·권응창(權應昌) 형제는 죄가 한가지인데도 권응창은 먼 곳으로 찬축하고 권응정은 아직도 남쪽 지방에 그대로 있으니 그 죄에 해당하는 죄를 주어야 합니다. 권응창은 유관(柳灌)의 동생과는 아주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유관이 마치 자식처럼 대하였으니, 권응정 역시 권응창과 차이가 없습니다."

하였다. 대사헌 안현(安玹)이 아뢰기를,

"이기의 말이 매우 옳습니다."

하였다. 대비가 하교하기를,

"윤임의 일을 사람들이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 지금 좌상(左相)의 말이 지당하다. 중종 조 때부터 그 모계(謀計)가 매우 험악하여 마음 속에 화를 꾸밀 마음을 품었는데 조정 상하가 모두 그의 말을 믿어온 지 오래이다. 정유년에 윤임이 김안로의 비밀스런 부탁을 받고 국모(國母)를 모해하려 한 것은 허경(許坰)의 공초만 보아도 그 정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먼저 동궁(東宮)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생각하고는 종실의 당차(當次)인 사람을 제거하려고 하여 그 흉악한 모의와 비밀스런 계책이 매우 음험하였고 거짓으로 인심을 유혹하여 참혹한 말을 많이 하였다. 그때에 정순붕과 구수담이 경연(經筵)에서 잠깐 아뢰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모두 윤임의 음촉(陰囑)을 믿어 장차 종사가 어떻게 될지 몰랐었다.

갑진년 10월, 정순붕이 또 그 일을 아뢰었는데, 그때 중종께서 윤임을 외방으로 찬축하라 명하였다. 그렇게 했으면 사특한 말이 조금은 중지되었을 것인데, 조정이 모두 아뢰어 끝내 찬축되지 않았다. 신하된 자들이 종사의 중함은 생각하지 않고 한것 윤임의 음험한 말만 들어 그렇게 하였으니, 옳은 일인가. 중종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종과 조금도 틈이 없었으니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생각을 두었겠는가. 하늘에 있는 인종의 영혼이 반드시 임해 있을 것이다. 갑진년에 중종께서 편치 않으시자 동궁에게 전위(傳位)하려 하셨는데, 조정에서 도리어 의심하였기 때문에 시행되지 않았다.

그후에 중종께서 승하하고 인종이 위를 이어받은 것은 순리(順理)였다. 역적 윤임은 이에 유인숙과 결탁하고 또 유관(柳灌)과 체결하여 권세가 날로 무거워졌는데 당시 조정은 모두 그 권세에 빌붙었지 누구 하나 종사를 구하려 하지 않았고 나라 일이 날로 잘못되어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 망극한 슬픔 속에 조정의 시비를 어찌 말할 수 있었겠는가. 마침내는 인종이 승하하였는데 초상(初喪)을 당한 급할 때에 윤원로의 죄를 따진 것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주상이 즉위하여 군신(君臣)의 분의(分義)가 이미 정해졌는데 안팎으로 선동하여 왕실을 모해하여 종사가 위태롭게 되었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 말하는 자가 없었으므로 위에서 두세 대신에게 밀유(密諭)하여 그 단서를 열었던 것이다. 윤임의 흉악한 죄상이 저절로 다 드러났으니, 비록 협종한 자는 다스리지 않더라도 모두 개과 천선하여 새롭게 되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아직껏 인심이 안정되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그 음험한 반역의 정상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이며, 또 역적들의 무거운 죄를 모르는 탓이다. 이때문에 부득이 죄를 더한 것이나 일이 매우 구차스럽게 되었다. 또 조정에서 한 사람도 감히 그 소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지 못했다. 위에서도 절의(節義)있는 자가 없다고 말하였는데, 다만 당초 그 역적들을 쾌하게 다스리지 못한 것은 실로 개과 천선하기를 바랐던 뜻이다."

하였다. 사간 윤인서(尹仁恕)가 아뢰기를,

"역적의 추안(推案)은 외인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조종조 때에도 역시 《무정보감(武定寶鑑)》이 있었으니, 신의 생각에도 그 예에 의해서 인출(印出)해서 널리 반포 한다면 어리석은 지아비나 지어미라도 모두 보고 알아서 사특한 말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안현이 아뢰기를,

"윤임 등이 난역을 일으킨 일을 고금에 드문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안을 각사(各司)로 하여금 등서(謄書)하게 했으니 재상(宰相)인 사람은 혹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외의 각사에서는 등서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대비가 이를기를,

"역적의 일을 인출하여 중외에 반포하자는 말이 지당하다. 위에서는 당초 그 단서가 열렸을 때 다만 그 우두머리만 치죄하고 나머지는 다스리지 않았다. 그때에 인심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정상을 자세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안세우(安世遇)와 김명윤(金明胤)이 진고한 다음에야 정죄(定罪)했으니 과연 공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일은 단서가 열린 후였다. 치성할 때에는 누구한 사람 감히 그 일을 말한 자가 없었는데, 위에서 세 사람을 죄준 연후에 이를 보고 진고했기 때문에 그 훈공을 녹(錄)하지 않은 것이다.

인종의 병환이 크게 악화되었을 때 윤임의 일가가 모두 입시하였으니 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내가 비록 인종의 친어미는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궁중에서 키웠다. 인종은 천성이 인후(仁厚)하여 나를 지성으로 섬겨서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한정 없이 두터웠다. 어찌 외간에서 듣지 못하였겠는가. 인종은 병이 악화되자 나를 만나보고 한 마디 하려 하였고 나도 가보려 하였으나 안팎에서 막아 나를 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서로 말을 하려 하였지만 끝내 하지 못하였으니 과연 매우 망극하다. 주상이 위를 잇자 윤임 등은 화가 곧 자기들에게 미칠까 두려워 다른 사람을 세우려고 모의하였다. 그 당시 내외에서 공모(共謀)한 일을 조정에서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하였다. 동지경연사 심연원(沈連源)이 아뢰기를,

"윤임 등이 전에 한 일들은 매우 패려했기 때문에 모두 드러나게 되자 그 화를 피하기가 어려울 것을 알고는 마침내 온갖 모의를 다하였습니다."

하니, 대비가 이르기를,

"그들이 모두 죽을 힘을 다하여 보신(保身)할 계책을 도모해 반역의 모의를 일으켰으니, 안팎으로 한 일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종사의 위태로움이 경각에 달렸었는데 다시 종사가 안정되게 된 것은 천우 신조(天佑神助)이지 인력(人力)으로 된 일이 아니다. 또 좌상이 말하기를 ‘윤원형의 공이 큰데 2등에 들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상의 지친(至親)이기 때문에 공사(公私)를 따져 그렇게 한 것이다. 더구나 윤원형이 어찌 홀로 그렇게 했겠는가. 두세 대신이 처음에 협모(協謀)했기 때문에 마침내 큰 공을 세웠으니 어찌 1등에 있을 수 있겠는가. 화가 조석간에 닥쳤을 때 만일 도와 주는 자가 없었다면 비록 홀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극진하다 하더라도 어떻게 구할 수 있었겠는가. 저들 반역인들이 사람을 속인 것이 본래 하루 이틀이 아닌데 아직껏 인심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였다. 특진관 송겸(宋㻩)이 아뢰기를,

"중종 때에 소신은 외간(外間)에 있었으므로 비록 그 당시 일을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윤임이 중종 때부터 한 소행과 인종께서 즉위한 후에 품은 화심(禍心)을 신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인종의 병환이 크게 악화되었을 때 신은 오위장(五衛將)으로 입직(入直)하였었는데 신하된 사람의 마음이 어찌 끝이 있었겠습니까. 그 근심되고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형조 판서 윤임이 안에 들어와 시약(侍藥)을 한다.’ 하고, 또 이어 말하기를 ‘윤임의 세 아들이 모두 들어왔으며, 일가(一家)가 다 들어왔다.’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그는 전에도 일을 꾸민 적이 있었는데 만약 인종께서 헤아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여겨져서, 미욱한 신이 홀로 북소(北所)에 앉아 입위(入衛)한 군사를 헤아려보니 19명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중얼거리기를 ‘혹시라도 예측하지 못할 변이 일어난다면 이 군사를 가지고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런데 초1일 승하하신 후 새벽에 윤임이 서문(西門) 밖으로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비통한 가운데도 그가 나간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후에 신이 부경(赴京)하면서 윤임 등이 죄를 입었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평소 그 사람이 그런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듣고도 괴이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면서 요동(遼東)에 이르러 또 자세히 들었고, 서울에 돌아와서는 그 동안 듣지 못한 바를 많이 들었는데 매우 놀랍고 참혹하였습니다. 인심이 이미 그의 흉모(凶謀)를 알고 있으니 안정되지 않음을 무슨 걱정할 게 있겠습니까. 만약 위에서 매양 안정되지 않았다고 염려하신다면 안정될 때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안현이 아뢰기를,

"윤임이 안팎으로 함께 모의한 일을 전에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다만 용모(容貌)를 보면 사람들마다 그가 흉악 간특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으니 사대부가 누구인들 몰랐겠습니까. 서문(西門) 밖에서 각사(各司)가 모두 모일 때에 윤임이 대내(大內)에 입시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놀랐습니다. 고금을 통하여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흉악 패려한 사람만 입시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비록 선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단서를 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니, 대비가 이르기를,

"비록 가까운 친척이라 하더라도 임금의 병에 입시하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윤임의 부자가 입시한 것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려는 모의였다. 그런 일은 고금을 통하여 없던 일이다. 윤임 부자는 사람들이 자기 말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서야 ‘인종께서 주상(主上)에게 전위(傳位)하라고 명하였다.’고 말하였다. 처음에는 만일 그 우두머리만 다스리면 그 이하는 자연히 마음을 돌려 의(義)로 향할 것이니 무슨 일이 더 있겠는가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는 달리 오래도록 안정되지 않기 때문에 점차 그들의 죄를 더해서 더러는 무거운 법으로 다스리고 더러는 밖으로 찬축했으니 도리어 미안하여 슬프고 탄식만 더할 뿐이다. 만일 윤임이 아니었더라면 조정이 편안하였을 것이니, 사대부들이 어찌 많이 상하기에 이르렀겠는가. 이완(李岏) 역시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득죄한 자가 이처럼 많은 것은 모두 윤임의 죄이다."

하였다. 윤인서가 아뢰기를,

"소신이 매양 계달(啓達)하려 하였지만 국가에 죄를 얻은 사람들을 영구(營救)하게 될까 싶어 감히 아뢰지 못했었습니다. 신이 통천 군수(通川郡守)로 있을 때에 사악한 말이 많이 퍼져 있는 것을 듣고 화가 조석간에 달려 있음을 걱정했습니다. 인종께 후사가 없으니 만약 성상(聖上)222) 을 보호한다면 국가가 거의 안정될 것이라고 여겨 상소하여 ‘국본(國本)223) 을 빨리 정해야 한다.’고 청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통천 고을에는 종이가 없어 그 상소문 초고(草稿)를 서울로 보내 써오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황(丁熿)이 그 상소문 초고를 보고는 말하기를 ‘비록 세제(世弟)로 봉하지는 못하게 되더라도 보양(保養)은 해야 한다는 이 말이 가장 절실하다.’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비록 죄가 많으나 다른 마음을 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 간원에서 소신이 이런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는 신을 논핵(論劾)하려고 하였는데, 정황이 또 신에게 통지하여 주기를 ‘내가 자네의 소(疏)가 잘 되었다고 했는데 간원의 의논이 이와 같다.’고 정령하게 편지를 보냈으니, 만일 다른 마음이 있었으면 그처럼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니, 대비가 이르기를,

"중종 때에는 그래도 공의(公議)가 있었는데 인종 때에 이르러서 유관(柳灌) 등의 권세가 날로 치성해져 사람들이 많이 빌붙었는데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형세였다. 정황의 마음을 어찌 위에서 다 알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삼가 살피건대, 이기가 윤원형의 공로를 극진하게 아뢴 것은 윤원형이 척리(戚里)이기 때문에 대비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다. 김명윤(金明胤)과 안세우(安世遇)는 다만 파리나 개같은 무리인데 기회를 틈타 부회하여 그 공을 녹하라고 한 것이다. 권응정(權應挺) 형제는 그를 비난하였으므로 반드시 먼곳으로 내치려 하니 그 술수가 교묘하고도 참혹하다. 윤인서는 간사한 사람인데 아부하여 잘 보이려고 감히 이처럼 아뢰었으니, 역시 사특하지 않은가.

  • [註 219] 십악(十惡) : 열 가지 무거운 죄악. 즉, 모반(謀反)·모대역(謀大逆)·모잔(謀叛)·악역(惡逆)·부도(不道)·대불경(大不敬)·불효(不孝)·불목(不睦)·불의(不義)·내란(內亂)을 말함.
  • [註 220] 정국 공신(靖國功臣) : 중종반정 때 공을 세운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 등에게 내린 훈호.
  • [註 221] 내반원(內班院) : 내시부(內侍府).
  • [註 222] 성상(聖上) : 명종.
  • [註 223] 국본(國本) : 세자(世子).

원문

○上御朝講。 于思政殿, 大妃垂簾同聽政。 上御于簾外, 西向俯伏。 領經筵事李芑曰: "父子相隱, 乃本於天理, 順於人情, 故律文亦以父子相爲容隱, 亦本諸經義也。 律有十惡, 而干名犯義, 言其君父之事者, 居先。 趙光祖之事, 當時雖以爲善, 而父兄之惡, 亦不諱之, 故兄弟朋友, 畏而莫敢有言者。 今弊風尙存, 師友道廢, 不能相信, 皆以言爲諱, 誠非細慮也。" 又曰: "尹任、柳灌、柳仁淑謀逆之事, 實爲非常, 當初定罪之時, 猶不分明罪狀, 而據安世遇、金明胤進告, 乃始治之。 彼若不告, 則不能明示於其時。 臣意以爲彼二人, 亦可錄其功, 而自上以爲告之於端緖已出之後, 不在功勳之列矣。 尹任等當初定罪不嚴, 故人心不靜, 其後更爲依律籍沒。 然漸加其罪, 人心搖動, 亦在於不得已也。 金安老見敗後, 人皆呼名追罵, 有同賤隷。 尹任、柳灌、柳仁淑雖已伏誅, 而必稱某爺, 其盜名於一時可知。 中宗朝靖國功臣, 不爲厚待習俗, 以此爲然也。 常時雖賤人, 進告其亂言, 則卽爲功臣, 厚其爵秩以酬之, 今亦特施其恩典, 不可循途守轍。 且當初定難之時, 小臣非所自知, 實是尹元衡、尹敦仁之所指, 及其論功, 元衡居二等, 臣居一等, 反在其上, 心實未安。 且崔輔漢亦至一品, 而元衡尙在二品, 臣每欲啓之, 自上以至親而引嫌, 故時未啓之。 臣之成此大功, 皆是元衡之功, 而凡恩數則過優於元衡, 尤爲惶恐。 仁宗大漸之時, 尹任三父子皆入侍, 其後推問之時, 乃以謂尹興義最後以入。 其時侍衛內官, 不直言之, 至爲非矣。 興義自初入侍, 仁宗病大漸, 操筆欲書, 而不能, 以示興義曰: ‘汝知見乎?’ 此亦留中不出, 人莫之知。 其時又有內班院避御之言, 是皆任等欲辟其內官, 與內人謀爲不測之術也。 小臣其時, 以兵曹判書入直, 聞見而知之, 自慈殿問安, 內官絡繹不絶, 而皆不得入, 內官等不能言之於他處, 必來言於臣, 臣以謂: ‘事勢如此, 何以爲之乎?’ 今以此啓之矣。" 特進官許磁曰: "尹任當初不能推之以律者, 不能詳知其事也。 臣與李芑皆參推鞫, 而不以亂逆推之, 自上亦以爲: ‘只治巨魁, 脅從罔治。’ 以此人心, 尙今不靖。 小臣爲推官, 不能快治, 其爲罪過, 夫豈有極乎? 每念至此, 無地自容。 尹元衡以其懋功, 尙不在崇班, 論議皆以爲未便, 小臣有何功勞, 而反居元衡之上乎?" 李芑曰: "李潤慶以中悅之父削勳, 而尙保其爵。 如其削勳, 則是有罪也。 雖不緣坐, 而亂逆人之父, 豈得保其爵乎? 權應挺、權應昌兄弟罪同, 而應昌竄於遐裔, 應挺猶在南方, 宜以罪罪之也。 應昌與柳灌之同生爲切族, 故灌待之如子息, 應挺亦無間於應昌者也。" 大司憲安玹曰: "李芑之言至當。" 大妃敎曰: "尹任之事, 人不細知, 今者左相之言至當。 自中宗朝, 謀計甚險, 包藏禍心, 而朝廷上下, 皆信聽其言久矣。 丁酉年間, 任聽金安老之陰囑, 謀危國母之事, 觀許坰之供招, 則可知其情狀矣。 彼乃先自揣度東宮無子, 欲除宗室之當次者, 其兇謀秘計, 極爲陰險, 誑誘人心, 多發慘酷之言。 其時鄭順朋、具壽聃, 暫達於經筵之上, 一時之人, 擧信尹任之陰囑, 不知終置宗社於何地耶? 甲辰十月, 鄭順朋又啓之, 其時中宗命竄尹任於外。 如是則邪說庶可少止, 而朝廷皆爲啓之, 終使不竄。 人臣不計宗社之重, 徒聞尹任陰慘之言而如是可乎? 中宗自初至終, 少無間於仁宗, 夫豈有一毫他念哉? 仁宗在天之靈, 亦必臨之。 甲辰年中宗未寧, 欲傳位於東宮, 而朝廷反以爲疑, 故終不果也。 其後中宗昇遐, 仁宗嗣位, 於理順矣, 而逆賊尹任, 乃交結柳仁淑, 又締結柳灌, 權勢日重, 一時朝廷, 皆知趨附於權勢, 而無一人欲救宗社者, 國事將日非而莫之憂也。 當其時哀遽罔極之中, 朝廷是非, 其何以言之哉? 終至於仁宗賓天, 於初喪遑遑之際, 數其尹元老之罪, 口難容說。 主上卽位, 君臣之分已定, 而內外煽動, 謀危王室, 宗社岌岌殆哉, 而朝廷無有言之者, 故自上密諭於二三大臣, 以開其端。 尹任之凶狀, 自爾皆著, 則雖不治脅從, 而皆可以改過自新, 回心向國矣。 人心尙今不靖, 必其陰慘反逆之狀, 不能詳知, 而亦不知逆類之罪重故也。 以此不獲已而加罪, 事甚苟且。 朝廷無一人敢爲剪除其小人者。 自上亦言無節義之人也, 但當初不能快治其逆賊者, 實欲其改過遷善之意也。" 司諫尹仁恕曰: "逆賊推案, 外人不得見之。 祖宗朝亦有《武定寶鑑》, 臣意以爲依此印出, 使之廣布, 則愚夫愚婦, 皆得知之, 而邪論不起矣。" 安玹曰: "尹任等亂逆之事, 古今所罕。 故其推案, 令各司謄書, 而宰相之人, 則或有得見矣。 其他各司, 則未知其盡謄也。" 大妃曰: "逆賊之事, 印布中外之言至當。 自上當初暫爲開端, 只治巨魁, 餘皆不治。 彼時人心, 不能無疑, 未得洞知其情。 至安世遇、金明胤進告, 然後定罪, 果不爲無功矣。 然此乃已爲開端之後也。 當其熾盛之時, 無一人敢言其事者, 自上罪此三人, 然後彼乃見而告之, 故不錄其勳也。 仁宗大漸之時, 尹任一家皆入侍, 而其所爲之事多矣。 予於仁宗, 雖非親母, 自幼時長育於宮中。 仁宗天性仁厚, 事予至誠, 兩間情義之厚。 夫豈有極, 外間亦豈不聞乎? 仁宗病革, 欲見予而有一言, 予亦欲來, 而內外防之, 使予不得來。 欲相語而竟未之, 果以至於罔極。 主上嗣位, 任等恐其禍將及己, 謀立他人。 當其時內外共謀之事, 朝廷豈能盡知?" 同知經筵事沈連源曰: "任等在前所爲之事, 甚爲悖戾, 故及其敗露, 知其禍之難逃, 遂生謀無所不爲也。" 大妃曰: "彼皆出其死心, 以圖保身之計, 以生反逆之謀, 內外所爲之事, 何可盡言乎? 宗社之傾危, 在於斯須之間, 及其再安宗社, 此乃天佑神助, 固非人力之所能致也。 且左相言: ‘尹元衡功優而居二等。’ 云, 自上至親, 故計其公私而爲之也。 況元衡豈能獨爲? 數三大臣, 始爲協謀, 故終成大功, 豈可居一等乎? 禍迫朝夕之時, 如無助之者, 則雖獨盡心於國事, 何能有濟乎? 彼逆類之誣人, 固非一日, 尙今人心之不定, 亦以是哉。" 特進官宋 曰: "中廟朝, 小臣在於外間, 雖不詳知其時之事, 而尹任自中廟朝所爲之事及仁宗卽位後包藏禍心之意, 臣豈不知乎? 仁宗大漸之時, 臣以五衛將入直, 臣子之心, 何有紀極乎? 當其憂危之時, 有人來言曰: ‘刑曹判(意)〔書〕 尹任入內侍藥。’ 又繼而言曰: ‘任之三子皆入, 一家竝入。’ 臣意以爲: ‘彼乃前者, 不無所爲之事, 若仁宗終至莫測, 則恐其幸有從中起事。’ 於臣迷劣之心, 獨坐於北所, 計數其入衛軍士, 則只十九名。 私自語曰: ‘脫有不虞之變, 則以此軍士, 何能爲乎?’ 初一日昇遐後未明時, 尹任出去于西門外云。 其於悲慟之中, 乃以彼之出去爲喜。 其後臣赴京聞尹任等被罪之事, 以其素知其人之如此, 故始聞而不怪。 還至遼東, 又詳聞之, 及至還京, 益聞其所不聞, 至爲駭慘。 人心已知其凶謀, 何患乎不定。 若自上每以不定爲念, 則其無安定之時矣。" 安玹曰: "尹任內外同謀之事, 則前豈知之乎? 但以容貌見之, 人人皆知其兇慝, 士大夫孰不知乎? 西門外各司齊會時, 聞尹任入於大內, 皆爲驚動。 古今安有如此事乎? 非但兇悖之人, 不可入侍, 雖善良之人, 不可開端也。" 大妃曰: "雖切親, 豈可入侍人君之病乎? 尹任父子之入侍, 以謀危國事也。 是乃古今所無之事。 任之父子, 知人不從己意, 然後乃言: ‘仁宗傳位主上之命。’ 初以爲若治巨魁, 則其下自爾回心向義, 更有何事乎? 乃與初計有異, 久而不靖, 故漸加其罪, 或置重典, 或竄于外, 反爲未安, 徒增傷嘆。 如非尹任, 則朝廷晏然, 士大夫豈至於多傷, 而岏亦可以保全矣。 得罪者如是其甚多, 皆任之罪也。" 尹仁恕曰: "小臣每欲啓達, 以其國家得罪之人, 涉於營救, 故不敢。 臣爲通川郡守時, 聞有邪說之多播, 恐其禍迫於朝夕。 仁宗無嗣, 若保護聖上, 則國家庶可安矣。 乃欲上疏, 請早定國本, 而通川無紙, 送其疏藁於京, 使之書來, 而丁熿見其疏藁曰: ‘雖不得封爲世(第)〔弟〕 , 亦可保養, 此言最切也。’ 此人雖多罪, 其有異志則未知也。 時諫院知小臣有此意, 議欲劾臣, 丁熿又通之於臣曰: ‘予以君疏爲得, 而諫院之議如是。’ 丁寧簡通, 如有異心, 則其肯若是乎?" 大妃曰: "中宗朝公議猶存, 至仁宗朝, 柳灌等權勢日熾, 人多趨附, 勢之然也。 丁熿之情, 自上豈盡知乎?"

【史臣曰: "謹按李芑之極陳元衡之功者, 以元衡爲戚里, 欲以悅大妃之意也。 金明胤、安世遇, 特蠅營狗苟之輩, 欲乘時附會, 而謂其功可錄。 應挺兄弟, 詆毁其身, 而必欲逬諸遐裔, 其爲謀巧且憯矣。 尹仁恕乃奸侫人也, 欲阿意求媚, 敢以此啓之, 不亦詐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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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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