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61권, 중종 23년 5월 11일 辛巳 3/3 기사 / 1528년 명 가정(嘉靖) 7년
검토관 최홍제와 참찬관 유여림이 군사를 정예하고 강하게 할 것 등을 건의하다
국역
야대(夜對)253) 에 나아갔다. 검토관 최홍제(崔弘濟)가 글에 임하여 아뢰기를,
"이 대문에 ‘항적(項籍)254) 은 현재 24세인데 재주와 기국(器局)이 남보다 우월하고 힘이 정(鼎)255) 을 들어올릴 만큼 강했다.’ 한 것은 곧 장대하고 용맹스러움을 말한 것이고 ‘유계(劉季)256) 는 사람을 아끼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뜻이 활달했다.’ 한 것은 곧 관대(寬大)하고 인자함을 말한 것입니다. 항적은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이기고 유계는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패했지만 마침내 성패(成敗)는 다르게 되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옛사람의 이른바 ‘강강(剛强)만 하면 반드시 죽게 되고 인의(仁義)가 있어야 왕자(王者)가 된다.’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지금 변방에 사단이 이미 생겼으니, 군사 훈련과 곡식 저축하는 일들을 더욱 마땅히 배나 더 조치해야 할 것인데, 우리 나라는 날로 줄어들기만 하니 지극히 염려스럽습니다.
고구려 때 당(唐)나라 군사가 와서 안시성(安市城)을 칠 적에는 고연수(高延壽)와 고혜진(高惠眞)이 창졸간에 10만 병마(兵馬)를 구득하여 구원했고, 신라 김유신(金庾信)이 백제를 칠 적에도 6만 병마를 썼습니다. 이때에 당해서는 삼국(三國)이 서로 대립하여 국토가 협소했는데도 군액(軍額)이 오히려 이러했습니다. 지금 우리 국가가 부득이 군사를 일으켜 죄상을 묻기로 한다면, 13만의 병마를 어찌 쉽게 구득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온 나라 군사를 출동시킨다 하더라도 6만 군사도 구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이 요사이 시골에 내려갔다가 보건대, 갑사(甲士)257) 와 별시위(別侍衛)258) 는 취재(取才)한 군사들이기 때문에 더러 활쏘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정병(正兵)259) 은 취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개 모두 활쏘기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외방 사람들은 정병이 되기를 싫어하고 보인(保人)이 되는 것을 편하게 여기므로 이 때문에 봉족(奉足)들은 무재와 힘이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호주(戶主)는 모두 무재와 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이런 것만이 아니라, 내금위(內禁衛)에 있어서도 작산(作散)260) 하여 시골에 있는 사람이 더러 있기도 했는데, 종사(從仕)하기 싫어하여 보인이 되려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병이 이와 같이 조잔하고 약하니, 만일 거사(擧事)하기로 한다면 이와 같은 호주들을 어디다 쓸 것입니까? 병조로 하여금 각도에 행이(行移)하여 호주와 봉족들은 무재를 시험보이고, 보인은 무재와 힘이 있는 사람이면 올려 호주를 만들며, 호주가 만일 무재와 힘이 없는 사람이라면 보인으로 결정하여, 가려서 정병을 만들도록 해서 앞날에 쓸 수 있게 대비함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고, 참찬관 유여림(兪汝霖)은 아뢰기를,
"군사에 관한 일은 병사와 감사가 스스로 마땅히 조치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폐단이 있는 것입니다. 대저 각도의 군사가 보인이 있는 사람은 대개 적으므로, 군액(軍額)이 비록 많기는 하지만 거개가 모두 고단하고 약하여 고생이 배나 많게 되고, 다행히 더러 한두 군사가 보인을 거느리기는 하였지만, 서울 안의 쌀값이 높기 때문에 보인을 침학(侵虐)하여 배나 더 징색(徵索)을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한 차례만 상번(上番)을 하면 보인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하여 흩어져 버리게 되니, 진실로 법을 세워 도피하는 자들에 대해 엄중하게 그의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두 드세고 강성한 집에 들어가 숨으므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 군사가 날로 고단하고 약해지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편대(編隊) 이외의 정병이 비록 많기는 하지만 모두다 정예하고 강하지 못한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군사의 명칭이 번잡하고 많기 때문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사는 되도록 정예해야 하고 많게 할 것이 없는 법인데, 우리 나라의 군사는 비록 많기는 하지만 과연 모두 부실하다. 그러나 경솔하게 고칠 수는 없다. 호주(戶主)는 조잔하고 약한데 보인은 강하고 실함은 과연 부당하니, 이는 병사(兵使)들이 스스로 잘 살펴서 해야 될 것이다."
하매, 유여림이 아뢰었다.
"군사들의 보인이 도망가면 가까운 이웃들을 침해하여 독촉하므로, 그 가까운 이웃들이 또한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하여 흩어져버립니다. 이 때문에 절호(絶戶)와 유랑하여 도망가는 자가 자못 많아 진실로 작은 일이 아니니, 마땅히 각도에 이첩하여 찾아내게 해야 합니다. 또 하삼도(下三道)에서는 조군(漕軍)261) 은 보인이 있지만 수군(水軍)은 보인이 없으므로 노고가 배나 심합니다. 전에는 입번(立番)을 한 달 만에 교대했는데, 지금은 번 차례를 넷으로 나누어 여섯 달 만에 교대하므로 모두 수군을 싫어하고 조군이 되기를 좋아하여, 하삼도의 수군이 날로 줄어드니 이 역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조군과 수군을 합하여 일체가 되게 함이 가할 듯합니다. 그러나 또한 어떠할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61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66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지방군(地方軍)
- [註 253] 야대(夜對) : 밤에 여는 경연(經筵). 왕이 밤에 경연관(經筵官)들을 불러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강론하고 고금의 치란(治亂)에 관하여 문답하는 것이다.
- [註 254] 항적(項籍) : 적(籍)은 항우(項羽)의 이름, 우(羽)는 자.
- [註 255] 정(鼎) : 중국 고대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구주(九州)에서 모은 쇠로 주조했다는 구정(九鼎). 하나라와 은(殷)나라 이래 천자(天子)의 보물로 전해오는 것인데, 두 개의 손잡이와 세 개의 발이 달렸다.
- [註 256] 유계(劉季) : 계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자.
- [註 257] 갑사(甲士) : 각 고을에서 서울에 올라와 숙위(宿衛)하는 군사이다.
- [註 258] 별시위(別侍衛) : 오위(五衛)의 하나인 용양위(龍驤衛)에 속한 장교 부대(將校部隊). 내금위(內禁衛) 중에서 취재(取才)한 사람과 무과(武科) 복시(覆試)에서 화살 6대 이상을 맞힌 자로 편성한다.
- [註 259] 정병(正兵) : 군적(軍籍)에 들어 있는 장정 중에서 실역(實役)에 복무하는 군사. 정군(正軍)이라고도 한다.
- [註 260] 작산(作散) : 실무에서 물러나는 것.
- [註 261] 조군(漕軍) : 지방의 각 곳에 쌓아놓은 세곡(稅穀)을 서울로 수송하는 배를 조운선(漕運船)이라 하고 이 조운선에서 일하는 선원(船員)을 조군이라고 한다.
원문
○御夜對。 檢討官崔弘濟臨文曰: "此言: ‘項籍時年二十四, 才器過人, 力能扛鼎。’ 是, 言其壯勇也, ‘劉季愛人、喜施, 其意豁如。’ 是, 言其寬仁也。 項籍則百戰百勝; 劉季則百戰百敗, 而其終成敗有異, 此, 無他, 古人所謂: ‘剛强必死, 仁義王者也。’ 且今者邊事已出, 鍊兵積穀等事, 尤當倍加措置, 我國日漸減耗, 至爲可慮。 高句麗時, 唐師來攻安市城, 高延壽、高惠眞, 倉卒之間, 收得十萬兵馬以救之。 新羅 金庾信, 伐百濟時, 亦以六萬兵馬用之。 當此之時, 三國鼎峙, 壤地褊小, 而軍額猶尙如此。 今我國家, 若不得已興師問罪, 則十三萬兵馬, 豈易得乎? 雖發擧國之兵, 亦不可得其六萬兵矣。 臣近日, 下鄕見之, 甲士、別侍衛則取才軍士, 故或有能射者, 正兵則非取才, 故率皆不能射之人也。 且外方人, 厭爲正軍, 而以保人爲便。 以此, 奉足則有才力者多, 而戶主則皆無才力。 非但如此。 至於內禁衛, 作散而居鄕者, 亦或有厭於從仕, 而欲爲保人者多。 正軍如此殘弱, 若擧事則以如此戶首, 用之何處乎? 令兵曹, 行移于各道, 戶首、奉足試才, 保人若有才力者則陞爲戶首; 戶首若無才力者則定爲保人, 揀擇爲正軍, 以備他日之用, 似當矣。" 參贊官兪汝霖曰: "軍士事, 兵使、監司自當措置, 然亦未得詳知, 有如此之弊。 大抵, 各道軍士, 有保人者蓋寡, 軍額雖多, 率皆單弱, 其苦倍多。 幸或一二軍士, 得率保人, 然京中米價踊貴, 故侵虐保人, 倍加徵索。 以此, 一度上番, 保人不堪其苦, 盡爲逃散, 固當立法, 逃避者痛治其罪。 然類皆投隱豪强之家, 未易搜括, 軍士日就單弱, 不可不慮。 且旅外正兵雖多, 皆不精强, 此, 無他。 軍名煩夥之故也。" 上曰: "兵務精, 不務多。 我國軍士雖多, 果皆不實, 然不可輕易變改。 戶首則殘弱, 保人則强實, 果爲不當。 此則兵使自當詳察, 而爲之也。" 汝霖曰: "軍士保人逃亡則侵督切隣, 其切隣亦不堪其苦, 而逃散。 以此, 絶戶, 流亡者頗多, 誠非細故。 當行移各道, 搜括也。 且下三道漕軍則有保人, 水軍則無保人, 勞苦倍甚。 前則其立番, 一朔相遞, 今則分四番, 六朔相遞。 以此, 水軍皆厭憚, 而樂爲漕軍, 下三道水軍, 日就減耗, 此亦不可不慮。 臣意, 漕、水軍, 合爲一體似可, 然亦未知其何如也。"
- 【태백산사고본】 31책 61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66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지방군(地方軍)
중종실록61권, 중종 23년 5월 11일 辛巳 3/3 기사 / 1528년 명 가정(嘉靖) 7년
검토관 최홍제와 참찬관 유여림이 군사를 정예하고 강하게 할 것 등을 건의하다
국역
야대(夜對)253) 에 나아갔다. 검토관 최홍제(崔弘濟)가 글에 임하여 아뢰기를,
"이 대문에 ‘항적(項籍)254) 은 현재 24세인데 재주와 기국(器局)이 남보다 우월하고 힘이 정(鼎)255) 을 들어올릴 만큼 강했다.’ 한 것은 곧 장대하고 용맹스러움을 말한 것이고 ‘유계(劉季)256) 는 사람을 아끼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뜻이 활달했다.’ 한 것은 곧 관대(寬大)하고 인자함을 말한 것입니다. 항적은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이기고 유계는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패했지만 마침내 성패(成敗)는 다르게 되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옛사람의 이른바 ‘강강(剛强)만 하면 반드시 죽게 되고 인의(仁義)가 있어야 왕자(王者)가 된다.’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지금 변방에 사단이 이미 생겼으니, 군사 훈련과 곡식 저축하는 일들을 더욱 마땅히 배나 더 조치해야 할 것인데, 우리 나라는 날로 줄어들기만 하니 지극히 염려스럽습니다.
고구려 때 당(唐)나라 군사가 와서 안시성(安市城)을 칠 적에는 고연수(高延壽)와 고혜진(高惠眞)이 창졸간에 10만 병마(兵馬)를 구득하여 구원했고, 신라 김유신(金庾信)이 백제를 칠 적에도 6만 병마를 썼습니다. 이때에 당해서는 삼국(三國)이 서로 대립하여 국토가 협소했는데도 군액(軍額)이 오히려 이러했습니다. 지금 우리 국가가 부득이 군사를 일으켜 죄상을 묻기로 한다면, 13만의 병마를 어찌 쉽게 구득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온 나라 군사를 출동시킨다 하더라도 6만 군사도 구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이 요사이 시골에 내려갔다가 보건대, 갑사(甲士)257) 와 별시위(別侍衛)258) 는 취재(取才)한 군사들이기 때문에 더러 활쏘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정병(正兵)259) 은 취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개 모두 활쏘기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외방 사람들은 정병이 되기를 싫어하고 보인(保人)이 되는 것을 편하게 여기므로 이 때문에 봉족(奉足)들은 무재와 힘이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호주(戶主)는 모두 무재와 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이런 것만이 아니라, 내금위(內禁衛)에 있어서도 작산(作散)260) 하여 시골에 있는 사람이 더러 있기도 했는데, 종사(從仕)하기 싫어하여 보인이 되려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병이 이와 같이 조잔하고 약하니, 만일 거사(擧事)하기로 한다면 이와 같은 호주들을 어디다 쓸 것입니까? 병조로 하여금 각도에 행이(行移)하여 호주와 봉족들은 무재를 시험보이고, 보인은 무재와 힘이 있는 사람이면 올려 호주를 만들며, 호주가 만일 무재와 힘이 없는 사람이라면 보인으로 결정하여, 가려서 정병을 만들도록 해서 앞날에 쓸 수 있게 대비함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고, 참찬관 유여림(兪汝霖)은 아뢰기를,
"군사에 관한 일은 병사와 감사가 스스로 마땅히 조치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폐단이 있는 것입니다. 대저 각도의 군사가 보인이 있는 사람은 대개 적으므로, 군액(軍額)이 비록 많기는 하지만 거개가 모두 고단하고 약하여 고생이 배나 많게 되고, 다행히 더러 한두 군사가 보인을 거느리기는 하였지만, 서울 안의 쌀값이 높기 때문에 보인을 침학(侵虐)하여 배나 더 징색(徵索)을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한 차례만 상번(上番)을 하면 보인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하여 흩어져 버리게 되니, 진실로 법을 세워 도피하는 자들에 대해 엄중하게 그의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두 드세고 강성한 집에 들어가 숨으므로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 군사가 날로 고단하고 약해지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편대(編隊) 이외의 정병이 비록 많기는 하지만 모두다 정예하고 강하지 못한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군사의 명칭이 번잡하고 많기 때문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사는 되도록 정예해야 하고 많게 할 것이 없는 법인데, 우리 나라의 군사는 비록 많기는 하지만 과연 모두 부실하다. 그러나 경솔하게 고칠 수는 없다. 호주(戶主)는 조잔하고 약한데 보인은 강하고 실함은 과연 부당하니, 이는 병사(兵使)들이 스스로 잘 살펴서 해야 될 것이다."
하매, 유여림이 아뢰었다.
"군사들의 보인이 도망가면 가까운 이웃들을 침해하여 독촉하므로, 그 가까운 이웃들이 또한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하여 흩어져버립니다. 이 때문에 절호(絶戶)와 유랑하여 도망가는 자가 자못 많아 진실로 작은 일이 아니니, 마땅히 각도에 이첩하여 찾아내게 해야 합니다. 또 하삼도(下三道)에서는 조군(漕軍)261) 은 보인이 있지만 수군(水軍)은 보인이 없으므로 노고가 배나 심합니다. 전에는 입번(立番)을 한 달 만에 교대했는데, 지금은 번 차례를 넷으로 나누어 여섯 달 만에 교대하므로 모두 수군을 싫어하고 조군이 되기를 좋아하여, 하삼도의 수군이 날로 줄어드니 이 역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조군과 수군을 합하여 일체가 되게 함이 가할 듯합니다. 그러나 또한 어떠할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61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66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지방군(地方軍)
- [註 253] 야대(夜對) : 밤에 여는 경연(經筵). 왕이 밤에 경연관(經筵官)들을 불러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강론하고 고금의 치란(治亂)에 관하여 문답하는 것이다.
- [註 254] 항적(項籍) : 적(籍)은 항우(項羽)의 이름, 우(羽)는 자.
- [註 255] 정(鼎) : 중국 고대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구주(九州)에서 모은 쇠로 주조했다는 구정(九鼎). 하나라와 은(殷)나라 이래 천자(天子)의 보물로 전해오는 것인데, 두 개의 손잡이와 세 개의 발이 달렸다.
- [註 256] 유계(劉季) : 계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자.
- [註 257] 갑사(甲士) : 각 고을에서 서울에 올라와 숙위(宿衛)하는 군사이다.
- [註 258] 별시위(別侍衛) : 오위(五衛)의 하나인 용양위(龍驤衛)에 속한 장교 부대(將校部隊). 내금위(內禁衛) 중에서 취재(取才)한 사람과 무과(武科) 복시(覆試)에서 화살 6대 이상을 맞힌 자로 편성한다.
- [註 259] 정병(正兵) : 군적(軍籍)에 들어 있는 장정 중에서 실역(實役)에 복무하는 군사. 정군(正軍)이라고도 한다.
- [註 260] 작산(作散) : 실무에서 물러나는 것.
- [註 261] 조군(漕軍) : 지방의 각 곳에 쌓아놓은 세곡(稅穀)을 서울로 수송하는 배를 조운선(漕運船)이라 하고 이 조운선에서 일하는 선원(船員)을 조군이라고 한다.
원문
○御夜對。 檢討官崔弘濟臨文曰: "此言: ‘項籍時年二十四, 才器過人, 力能扛鼎。’ 是, 言其壯勇也, ‘劉季愛人、喜施, 其意豁如。’ 是, 言其寬仁也。 項籍則百戰百勝; 劉季則百戰百敗, 而其終成敗有異, 此, 無他, 古人所謂: ‘剛强必死, 仁義王者也。’ 且今者邊事已出, 鍊兵積穀等事, 尤當倍加措置, 我國日漸減耗, 至爲可慮。 高句麗時, 唐師來攻安市城, 高延壽、高惠眞, 倉卒之間, 收得十萬兵馬以救之。 新羅 金庾信, 伐百濟時, 亦以六萬兵馬用之。 當此之時, 三國鼎峙, 壤地褊小, 而軍額猶尙如此。 今我國家, 若不得已興師問罪, 則十三萬兵馬, 豈易得乎? 雖發擧國之兵, 亦不可得其六萬兵矣。 臣近日, 下鄕見之, 甲士、別侍衛則取才軍士, 故或有能射者, 正兵則非取才, 故率皆不能射之人也。 且外方人, 厭爲正軍, 而以保人爲便。 以此, 奉足則有才力者多, 而戶主則皆無才力。 非但如此。 至於內禁衛, 作散而居鄕者, 亦或有厭於從仕, 而欲爲保人者多。 正軍如此殘弱, 若擧事則以如此戶首, 用之何處乎? 令兵曹, 行移于各道, 戶首、奉足試才, 保人若有才力者則陞爲戶首; 戶首若無才力者則定爲保人, 揀擇爲正軍, 以備他日之用, 似當矣。" 參贊官兪汝霖曰: "軍士事, 兵使、監司自當措置, 然亦未得詳知, 有如此之弊。 大抵, 各道軍士, 有保人者蓋寡, 軍額雖多, 率皆單弱, 其苦倍多。 幸或一二軍士, 得率保人, 然京中米價踊貴, 故侵虐保人, 倍加徵索。 以此, 一度上番, 保人不堪其苦, 盡爲逃散, 固當立法, 逃避者痛治其罪。 然類皆投隱豪强之家, 未易搜括, 軍士日就單弱, 不可不慮。 且旅外正兵雖多, 皆不精强, 此, 無他。 軍名煩夥之故也。" 上曰: "兵務精, 不務多。 我國軍士雖多, 果皆不實, 然不可輕易變改。 戶首則殘弱, 保人則强實, 果爲不當。 此則兵使自當詳察, 而爲之也。" 汝霖曰: "軍士保人逃亡則侵督切隣, 其切隣亦不堪其苦, 而逃散。 以此, 絶戶, 流亡者頗多, 誠非細故。 當行移各道, 搜括也。 且下三道漕軍則有保人, 水軍則無保人, 勞苦倍甚。 前則其立番, 一朔相遞, 今則分四番, 六朔相遞。 以此, 水軍皆厭憚, 而樂爲漕軍, 下三道水軍, 日就減耗, 此亦不可不慮。 臣意, 漕、水軍, 合爲一體似可, 然亦未知其何如也。"
- 【태백산사고본】 31책 61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66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지방군(地方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