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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4권, 중종 13년 7월 11일 戊申 1/9 기사 /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변방에 있는 창기의 혁파 논의와 조광조를 성균관 동지사에 임명하려는 논의

국역

조강에 나아갔다. 참찬관 조광조(趙光祖)가 아뢰기를,

"외방의 여기(女妓) 따위도 또한 혁파하는 것이 좋습니다. 창기(娼妓)와 자는 것을 금하는 법이 있기는 하나, 근신하는 자는 법을 두려워하여 감히 하지 못하지만 방탕한 선비는 다 좋아하니 다 금할 수 없습니다. 더욱 변방은 다 혁파할 수 없습니다."

하고, 김식(金湜)은 아뢰기를,

"바로 논하면 변방이라도 모두 없애는 것이 좋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창기 때문에 사대부(士大夫)라도 혹 누가 되는 수가 있으니, 서울은 그렇지 않으나 외방은 반드시 그렇다. 대신에게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변방으로 말하면 꼭 ‘여기(女妓)’라고 이름지을 필요가 없다."

하매, 조광조가 아뢰기를,

"말을 하자니 매우 더럽습니다. 국가에서 음란한 무리를 위해 창기를 설치하여 더러운 풍속을 돕는 것입니다. 변방으로 말하면, 변장(邊將)이 된 이가 무료하게 오래 외방에 머물러 있으니 오히려 둘 수 있거니와, 비록 합당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때문에 흠이 있으면 다시 써서는 안 됩니다. 정위(鄭衛)의 풍속375) 은 더할 수 없이 음란하였으나 또한 저희들끼리 음란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녀는 국가에서 음란한 무리를 위하여 두었으니, 이것을 두고서야 어찌 인심을 바로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참찬관 정충량(鄭忠樑)이 아뢰기를,

"성균관은 인재의 본원이 되는 곳입니다. 대사성(大司成) 유운(柳雲)이 이제 충청도 관찰사로 체직(遞職)되었는데 유운이 바야흐로 학교에 마음을 다하고 있는데 체직하신 것입니다. 외방에 보내지 말고 머물러 두어 성균관 동지사(成均館同知事)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조광조는 아뢰기를,

"유운이 나이는 젊으나 학문에 밝으며, 대사성이 되어 마음을 다하여 교회(敎誨)하였습니다. 이제 신광한(申光漢)이 유운을 대신하여 대사성이 되었는데 광한도 운만 못하지 않으니, 운을 동지사로 삼아 광한과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교육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홍문관은 중요한 자리로서 위에서 행여 묻는 일이 있고 아래에서 혹 아뢰는 바가 있습니다. 지금 성학(聖學)376) 이 고명하시니 어찌 논계(論啓)할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만약 행여 미진한 곳이 있으시면 잠간(箴諫)377) 해야 합니다. 근일에 관원(館員)이 매우 적습니다. 기준(奇遵)은 근친(覲親)하기 위해서 돌아갔고, 한충(韓忠)은 장차 북경(北京)으로 사신가게 되어서 궐원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근사록(近思錄)》·《논어(論語)》 등은 반드시 여러 사람이 의논하고 강론하여 교정해야 하고, 또 행여 논계(論啓)할 일이 있어도 널리 의논할 수 없으니, 사체(事體)에 또한 온당치 못합니다. 대간(臺諫) 같은 데는 어진 사람 한둘만 있으면 그 나머지 사람은 그다지 선하지 않더라도 공론을 따라 행할 수 있지만, 홍문관 같은 데는 일일이 진강(進講)하니 반드시 사람마다 다 선해야 됩니다. 이조 낭관(吏曹郞官)에는 홍문관의 직에 합당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이조 역시 중임(重任)입니다만 홍문관은 못하니 위에서 알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홍문관은 소임이 지극히 중하므로 전자에 이조에 하유(下諭)하여 홍문관 관원을 외직에 주의(注擬)하지 말게 하였으며, 이조·병조의 낭관에도 주의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제 유용근(柳庸謹) 등을 교리(校理)로 삼는 것이 매우 마땅하다."

하매, 동지사 김정(金淨)이 아뢰기를,

"이조에 벼슬하는 관원이 선해야 백사(百司)의 관원이 다 선하게 되니, 이조의 낭관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홍문관 관원은 자주 체직해서는 안 된다. 또 그저께의 정사(政事)에 관찰사를 중하게 여겼으므로 이조에 묻고 유운을 관찰사로 삼으려 하였더니, 이조의 의견도 합당하다고 하므로 제수하였던 것이다. 유운을 체직하면 아마도 관찰사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을 듯하다."

하매, 영사(領事) 안당(安瑭)이 아뢰기를,

"이미 관찰사를 제수하였으니 체직해서는 안 됩니다. 전 관찰사가 이미 체직되어 자리가 빈 지 오래되었고, 이제 또 유운을 체직하고 다른 사람을 다시 제수한다면 시일을 오래 끌어 반드시 빨리 가지 못할 것이니, 운은 진실로 체직할 수 없습니다. 동지사(同知事)가 될 만한 사람은 이조에서도 얻기 어렵게 여깁니다. 유생들은 다 조광조를 동지사로 삼고자 합니다. 이 사람은 성리학(性理學)378) 에 자못 정밀하니, 광조를 겸 동지사(兼同知事)로 삼으면 진작시킬 수 있고 유사(儒士) 된 이들도 다 즐겨 나아가 배울 것입니다."

하니, 조광조가 아뢰기를,

"무릇 관직은 반드시 사람과 재능이 서로 합당해야 직분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은 재덕(才德)이 없고 일찍이 관직의 차서를 많이 뛰어넘었으므로 매양 황공히 여기는데 하물며 또 중임을 맡기심에리까? 신이 동지사가 되면 신의 동년(同年) 친구가 책을 끼고 글을 배우는 반열에 많이 있게 될 것이니, 이 또한 어찌 마음에 편안하겠습니까? 만약 그것을 무릅쓰고 한다면 학교의 일이 전폐될 것입니다. 무릇 직무는 마음에 편안해야 그 직무에 힘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에 편안하지 못하면 하는 일이 다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신이 그다지 패려(悖戾)하지 않다 하여 이 때문에 나이 젊은 유학(幼學)379) 들이 혹 와서 배운 사람이 있었으나, 어찌 곧 이것으로써 사장(師長)이 될 수 있다 하겠습니까? 김안국(金安國)·김정·유운 등과 같은 사람은 다 동지사에 매우 합당합니다. 지당한 사람을 버려두고 신에게 제수하는 것이 어찌 가하겠습니까?

신이 다행히도 밝은 시대에 태어나 과연 이학(理學)에 힘쓰고자 하였으나 겨를이 없었습니다. 신은 매양 수년 동안 물러가 살면서 학문에 전념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되지 못하였는데, 더구나 감히 남의 스승이 되겠습니까? 인주(人主)가 사람을 쓰는 데는 먼저 인망을 기른 뒤에 그 직무에 두어야 하는데, 어찌 지레 ‘싹을 뽑아 자람을 돕는 일[揠苗助長]’380) 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대신이 신의 몸을 보전하고자 한다면 물러가 공부하게 해야 할 것이고, 위에서도 신으로 하여금 보전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속에 든 것이 없는데 갑자기 분수에 지나친 소임을 받으면 어찌 끝내 보전하겠습니까?"

하고, 김정은 아뢰기를,

"유운이 맡은 일을 처리하는 데도 재간이 있으니 관찰사의 직임에 매우 합당합니다. 또 성균관 동지사는 합당한 사람이 없으므로 주의(注擬)하여 제수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유생의 의사는 모두 조광조를 스승으로 삼고자 합니다. 대저 학자(學者)를 교육하는 데는 위력(威力)으로 해서는 안 되고 모름지기 선비의 마음에 흡족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광조가 동지사가 되면 학자들이 반드시 구름처럼 모일 것입니다. 신 등이 일찍이 의계(議啓)하려 하였는데, 대신이 이제 아뢰니 매우 마땅합니다."

하고, 안당은 아뢰기를,

"부제학(副提學)이 중임(重任)이기는 하나 홍문관에 항상 사진(仕進)하는 것이 아니니, 또한 때로 성균관에 가서 유생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스승을 가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또 그 본직381) 을 개임할 수 없으니 겸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매, 안당이 아뢰기를,

"조광조가 동지사가 되면 학자들이 다 나아갈 것입니다. 광조가 사양하는 것은 본디 옳으니, 출신(出身)한 지 오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안국·이자(李耔)·김정 등은 과연 모두 합당합니다만 안국과 자는 모두 북경에 사신으로 갔고, 정은 한직(閑職)에 있으니 겸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생각으로는 광조보다 나은 이가 없으니 물의(物議)를 좇아야 합니다."

하였다.

조광조가 아뢰기를,

"신은 출신한 지 오래지 않아서 벼슬이 매우 빨리 뛰어오르매 신의 족친과 향당(鄕黨)이 모두 화가 조석에 있다고 하니, 이것도 오히려 미안하여 밤낮으로 두려운데 하물며 분수에 지나치는 직임을 주심에리까? 김정 같은 이는 학문이 매우 밝고 사장(詞章)에도 능하며, 정묘년382) 에 출신하여 조정에 벼슬한 지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안국(金安國) 역시 얼마 뒤에 환국(還國)할 것이며, 오래 학업을 닦았으니 다 합당합니다. 신은 문리(文理)를 이해하지 못하며, 경서(經書)는 아직 구해(句解)도 못합니다. 그래서 매양 물러가 배워서 깨친 뒤에 다시 나와서 임금을 섬기려 하였는데, 어찌 갑자기 이와 같은 말이 있을 줄 생각하였겠습니까?"

하고, 김정이 아뢰기를,

"대신이 어찌 우연히 헤아리고서 아뢰었겠습니까? 성균관은 곧 조정의 인심과 민간 선비의 풍습에 관계되는 곳입니다. 《경제육전(經濟六典)》383) 을 보니 역시 대사성을 겸임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조광조는 과연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스스로 ‘내가 그 직임에 합당하다.’고 하겠습니까? 유사(儒士)의 지향(志向)을 보니, 광조가 동지사가 되면 반드시 모두 구름처럼 모일 것입니다. 성균관은 중요한 자리라 오늘 대신이 아뢴 바가 매우 마땅합니다. 이조에서도 그 자리를 비워두려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벼이 전차(塡差)384)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무릇 관직(官職)에는 합당한 사람을 써야 한다. 물정(物情)에 합당하면 과연 써야 한다."

하매, 조광조가 아뢰기를,

"만약 이 직임을 무릅쓰고 받을 경우에는 인화(人禍)가 없으면 반드시 천벌이 있을 것이므로 신이 반드시 몸을 보전하여 조정에 벼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김정이 아뢰기를,

"조광조는 나이 40이 다 되었으며 젊어서부터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연구하여 향방을 일찍 알았습니다. 신도 학문에 약간 뜻을 두기는 하였으나 사장(詞章) 공부를 하였고, 광조는 젊어서부터 김굉필(金宏弼)을 따라 배워서 얻은 바가 또한 많았으니, 비록 자신이 굳이 사양하더라도 속히 차임(差任)해야 합니다. 항상 경악(經幄)에서 회포를 논계(論啓)할 때에 상께서 또한 배운 바가 어떤지 모르셨습니까?"

하였다. 조광조가 아뢰기를,

"임금이 신하를 대우함에 있어 보전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그 분수에 지나치면 조물주(造物主)도 시기하니, 끝내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자기의 일을 번거롭게 아뢰는 것이 옳지 못한 듯합니다만, 논박(論駁)하는 유와는 다르므로 감히 번거롭게 아룁니다."

하였다.

김식과 헌납(獻納) 정옥형(丁玉亨)이 전의 일을 죽 들어 논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자건은 체직하고,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안당(安瑭)이 아뢰기를,

"함경도 주장합의 일은 매우 염려스러우니, 장수를 뽑고 군사를 훈련하여 미리 조치해야 합니다. 지금 문신(文臣)의 반열에는, 유용근(柳庸謹) 같은 사람이 무재(武才)도 있고 나이도 적지 않으니 이런 사람은 장년에 써야 합니다. 만약 자급에 따라서 쓰게 되면 장년이 이미 지나버릴 것입니다. 박영(朴英)은 출신(出身)한 지 오래되어 조정에서 그의 어짊은 다 압니다. 이런 사람도 마땅히 함께 당상에 올려 써서 인망을 기르게 해야 합니다. 유용근은 늙은 어머니가 있으니, 그의 어머니가 더욱 늙어지면 비록 변방에 쓰고자 하여도 정리에 차마 하지 못할 것입니다. 빨리 당상에 올려 육진(六鎭)의 부사(府使)나 우후(虞候)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또 대동 찰방(大同察訪) 김인손(金麟孫)은 비록 양과(兩科)385) 출신은 아니나 천성이 본디 충후(忠厚)하고 재간이 탁월하며, 활쏘기와 말달리기의 재주는 따를 사람이 적으며 또 생원(生員) 출신이므로 모두 훗날 장수가 될 만한 재간입니다. 당장 당상에 올릴 수는 없으나, 창성(昌城)·삭주(朔州) 및 육진의 당하관 부사(堂下官府使)386) 같은 데는 또한 제수해도 됩니다. 못난 신이 삼공(三公)의 수를 채우고 있으므로, 신의 보고 아는 바를 아룁니다. 김인손은 나이 50에 가까우니, 이제 올려 써야지 노쇠해지게 되면 쓸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과연 아뢴 바와 같다면 장년에 써야 한다."

하였다.

  • [註 375] 정위(鄭衛)의 풍속 : 정(鄭)과 위(衛)는 춘추(春秋) 시대 나라 이름. 두 나라는 풍속이 음란하기로 유명하였다.
  • [註 376] 성학(聖學) : 임금의 학문.
  • [註 377] 잠간(箴諫) : 경계로 간언하는 것.
  • [註 378] 성리학(性理學) : 송(宋)나라 유학(儒學)의 한 계통으로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의 관계를 논한 학설이다. 이학(理學)·도학(道學).
  • [註 379] 유학(幼學) : 생원·진사에도 합격하지 못하고 벼슬하지 않은 유생.
  • [註 380] ‘싹을 뽑아 자람을 돕는 일[揠苗助長]’ : 성공하기에 급하여 도리어 공을 망치는 것의 비유. 송(宋)나라 사람이 자기 곡식 싹을 자라지 않음을 걱정하여 싹을 뽑아 놓고는 집에 돌아와서 말하기를 「오늘 내가 피곤하다. 내가 싹의 자람을 도왔노라.」 하므로 그 아들이 달려가서 보니 곡식 싹이 말라 있었다 한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 [註 381] 본직 : 홍문관 부제학을 말한다.
  • [註 382] 정묘년 : 1507 중종 2년.
  • [註 383] 《경제육전(經濟六典)》 : 조선조 태조(太祖) 6년(1397)에 조준(趙浚) 등이 우왕 14년(1388)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 이후 반포한 법령을 모아서 육전(六典)으로 나누어 편찬한 조선왕조 최초의 법전이다.
  • [註 384] 전차(塡差) : 비어 있는 벼슬자리를 메우는 것.
  • [註 385] 양과(兩科) : 문과(文科)와 무과(武科).
  • [註 386] 당하관 부사(堂下官府使) : 당하관(堂下官)이란 문관은 정3품 통훈 대부(通訓大夫) 이하, 무관은 어모 장군(禦侮將軍) 이하의 벼슬 계제를 말한다. 부사에는 정3품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와 종3품 도호부사(都護府使)가 있는데, 창성(昌城)·삭주(朔州) 및 육진(六鎭)은 종3품 도호부사이다.

원문

○戊申/御朝講。 參贊官趙光祖曰: "外方女妓之類, 亦可革之。 雖有宿倡之禁, 若謹愼者, 則畏法而莫敢也, 浪士則皆好之, 不可盡禁也。 若邊方則果不可盡革也。" 持平金湜曰: "直論之, 則雖邊方, 亦皆可無也。" 上曰: "以倡妓之故, 雖士大夫, 亦或有累。 京都則不然, 外方則必猶爾也。 當議于大臣而處之。 至如邊方, 不必名曰女妓也。" 光祖曰: "言之則甚可汚也。 國家爲設淫流, 以資其汚穢之風。 若邊方, 則爲邊將者, 久留無聊, 猶可以存也。 雖可人, 以此有累焉, 則不可復用也。 如鄭、衛之風, 淫亂莫甚, 然亦自(祖)〔相〕 淫奔。 今之妓女, 則國家爲設淫亂之類。 存此而豈能正其人心乎?" 參贊官鄭忠樑曰: "成均館, 人材本源之地。 大司成柳雲, 今遞爲忠淸道觀察使。 柳雲方能盡心於學校, 而乃遞之。 請勿遣外, 留爲成均同知, 何如?" 光祖曰: "柳雲雖年少, 善於學問, 爲大司成, 盡心敎誨。 今申光漢代雲爲大司成。 光漢亦不下於雲, 以雲爲同知, 則與光漢同心敎育可也。 且弘文館, 重地也。 自上幸有所問, 在下或有所啓, 今者聖學高明, 豈有所論啓之事乎? 若幸有不盡之處, 則可以箴諫也。 近日館員甚少, 奇遵以覲親出歸, 韓忠將赴京, 闕員又多。 如《近思錄》、《論語》等書, 必群議講論而校之, 且幸有論啓之事, 無與廣議, 於事體, 亦爲未便。 如臺諫一二人有賢者, 則其餘雖不甚善, 隨公論而行之, 若弘文館, 則一一進講, 必人人皆善, 然後可也。 如吏曹郞官, 多有合於弘文館者。 吏曹亦是重任, 然猶不如弘文館。 願自上知之。" 上曰: "弘文館所任至重, 前者諭吏曹, 勿以弘文館官員, 擬諸外職, 如吏、兵曹郞官, 亦勿令擬之。 今以柳庸謹等爲校理, 甚當。" 同知事金淨曰: "爲吏曹者善, 然後百司之員皆善也。 吏曹郞官, 不可移易也。" 上曰: "弘文館之員, 不可數遞。 且向日之政, 以觀察使爲重, 故問吏曹, 欲以柳雲爲觀察使, 吏曹之意亦以爲當, 故授之耳。 遞雲, 則恐無堪爲觀察使者。" 領事安瑭曰: "旣授觀察使, 不可遞也。 前觀察使已遞, 曠官已久, 今又遞雲, 而更除他人, 則遷延淹久, 必未亟往也。 雲固不可遞也。 爲同知者, 吏曹亦難之。 儒生皆欲得趙光祖爲同知。 斯人頗精性理之學。 以光祖爲兼同知, 則可以振作, 而爲儒士者, 亦皆樂就學焉。" 光祖曰: "凡官職, 必人器相當, 然後可以效職。 臣無才德, 曾亦多爲越次之職, 每爲惶恐。 況又加之以重任乎? 臣爲同知, 則臣之同年友生, 多在挾冊之列。 此亦豈安於心? 若冒爲之, 則專廢學校之事也。 凡職事安於心, 然後可以力於其職。 若不安於心, 則所爲之事, 皆不入於心。 但以臣爲不甚悖戾, 故年少幼學之士, 幸有來學者, 豈(便)〔可〕 以此謂可爲師長乎? 如金安國、金淨、柳雲等, 皆甚合於同知。 捨至當之人, 而授臣豈可乎? 臣自幸生(奉)〔逢〕 明時, 果欲力於理學而無暇。 臣之意, 每欲退居數年, 以專意於學問而猶未也。 又敢爲人師乎? 人主用人, 當先養望而後, 置其職。 豈可徑爲揠苗助長乎? 大臣當欲保全臣身, 則宜使之退學也, 自上亦當使臣保全可也。 內無所有, 而遽受非分之任, 則豈終保全乎?" 淨曰: "柳雲於任事, 亦能辦幹, 甚合觀察使之任。 且成均館同知, 無可當人, 故猶未擬除。 今者儒生之意, 皆欲得光祖爲師。 夫敎育學者, 不可以威力, 須得其士心之洽然者, 然後可也。 光祖爲同知, 則學者必皆雲集。 臣等曾欲議啓, 而大臣今乃啓之, 甚當。" 瑭曰: "副提學雖重任, 非常仕於弘文館, 亦可時往成均館, 以敎儒生也。" 上曰: "擇師甚重, 且不可改其本職。 宜兼之。" 瑭曰: "光祖爲同知, 則學者皆趨焉。 光祖之辭讓, 固是, 蓋以出身未久故也。 金安國、李耔、金淨等, 果皆合焉, 然安國與耔, 皆赴京。 淨爲閑職, 亦可兼也, 然臣之意以爲無過於光祖者。 當從物議。" 光祖曰: "臣出身未久, 驟陞甚遽。 臣之族親、鄕黨, 皆以爲禍在朝夕。 此猶未安, 日夜惶懼。 況又加之以非分之職乎? 如淨, 學問甚該, 亦能詞章, 乃丁卯年出身, 立朝十餘年也。 安國亦幾何還國, 久爲學業, 皆以爲可也。 臣不解文理, 經書則尙未句解, 每欲退學, 有所得, 然後更進而事君也。 豈意忽有如此之言乎? 淨曰: "大臣豈偶然料度而啓之乎? 成均館, 乃朝廷人心、閭巷士習之所關也。 見《經制六典〔經濟六典〕 》, 亦有兼大司成之制也。 光祖則果必不自安也, 然豈自謂吾合於其任乎? 見儒士之志向, 光祖爲同知, 則必皆雲集也。 成均館, 重地也。 今日大臣之所啓甚得。 吏曹非欲闕之也, 以無可當之人, 故不可輕爲之塡差也。" 上曰: "凡官職, 當用可稱者。 合於物情, 則果可用也。" 光祖曰: "若冒受是任, 則不有人禍, 必有天刑。 臣必不能保全而立於朝也。" 淨曰: "光祖年幾四十, 自少深究理學, 早知向方。 臣亦少意於學問, 然馳騖詞章, 光祖則少從金宏弼學焉, 所得亦多。 雖自固辭, 宜速差之。 常於經幄論啓懷抱之時, 上亦豈不知所學之何如乎?" 光祖曰: "人君待臣下, 使之保全, 可也。 若過於其分, 則造物亦猜。 願使之竟得保全也。 煩啓自己之事, 似不可, 然非如論駁之類也, 敢爲煩達。" 湜與獻納丁玉亨, 歷論前事, 上曰: "李自健可遞。 餘不允。" 瑭曰: "咸鏡道 住張哈之事, 甚可慮也。 選將、鍊兵, 當預爲措置。 今在文臣之列, 如柳庸謹, 有武才, 年且不少。 如此人, 當用於壯年。 若循資格而用之, 則壯年已過矣。 朴英出身旣久, 朝廷共知其賢。 如此人亦宜俱陞堂上, 而用之以養望。 庸謹有老母。 其母益老, 則雖欲用於邊地, 情不忍爲也。 亟陞堂上, 爲六鎭府使、虞候, 可也。 且大同察訪金麟孫, 雖非兩科出身, 性本忠厚, 才幹卓越, 弓馬之才, 鮮有及者。 又出自生員, 皆他日可爲將帥之才也。 雖不可亟陞堂上, 如昌城、朔州及六鎭堂下官府使, 亦可授也。 臣備員三公, 以臣之所見所知者啓之。 麟孫年幾五十, 今不陞用, 以至衰耗, 則不堪用也。" 上曰: "果如所啓。 宜用於壯年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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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4권, 중종 13년 7월 11일 戊申 1/9 기사 /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변방에 있는 창기의 혁파 논의와 조광조를 성균관 동지사에 임명하려는 논의

국역

조강에 나아갔다. 참찬관 조광조(趙光祖)가 아뢰기를,

"외방의 여기(女妓) 따위도 또한 혁파하는 것이 좋습니다. 창기(娼妓)와 자는 것을 금하는 법이 있기는 하나, 근신하는 자는 법을 두려워하여 감히 하지 못하지만 방탕한 선비는 다 좋아하니 다 금할 수 없습니다. 더욱 변방은 다 혁파할 수 없습니다."

하고, 김식(金湜)은 아뢰기를,

"바로 논하면 변방이라도 모두 없애는 것이 좋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창기 때문에 사대부(士大夫)라도 혹 누가 되는 수가 있으니, 서울은 그렇지 않으나 외방은 반드시 그렇다. 대신에게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변방으로 말하면 꼭 ‘여기(女妓)’라고 이름지을 필요가 없다."

하매, 조광조가 아뢰기를,

"말을 하자니 매우 더럽습니다. 국가에서 음란한 무리를 위해 창기를 설치하여 더러운 풍속을 돕는 것입니다. 변방으로 말하면, 변장(邊將)이 된 이가 무료하게 오래 외방에 머물러 있으니 오히려 둘 수 있거니와, 비록 합당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때문에 흠이 있으면 다시 써서는 안 됩니다. 정위(鄭衛)의 풍속375) 은 더할 수 없이 음란하였으나 또한 저희들끼리 음란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녀는 국가에서 음란한 무리를 위하여 두었으니, 이것을 두고서야 어찌 인심을 바로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참찬관 정충량(鄭忠樑)이 아뢰기를,

"성균관은 인재의 본원이 되는 곳입니다. 대사성(大司成) 유운(柳雲)이 이제 충청도 관찰사로 체직(遞職)되었는데 유운이 바야흐로 학교에 마음을 다하고 있는데 체직하신 것입니다. 외방에 보내지 말고 머물러 두어 성균관 동지사(成均館同知事)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조광조는 아뢰기를,

"유운이 나이는 젊으나 학문에 밝으며, 대사성이 되어 마음을 다하여 교회(敎誨)하였습니다. 이제 신광한(申光漢)이 유운을 대신하여 대사성이 되었는데 광한도 운만 못하지 않으니, 운을 동지사로 삼아 광한과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교육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홍문관은 중요한 자리로서 위에서 행여 묻는 일이 있고 아래에서 혹 아뢰는 바가 있습니다. 지금 성학(聖學)376) 이 고명하시니 어찌 논계(論啓)할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만약 행여 미진한 곳이 있으시면 잠간(箴諫)377) 해야 합니다. 근일에 관원(館員)이 매우 적습니다. 기준(奇遵)은 근친(覲親)하기 위해서 돌아갔고, 한충(韓忠)은 장차 북경(北京)으로 사신가게 되어서 궐원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근사록(近思錄)》·《논어(論語)》 등은 반드시 여러 사람이 의논하고 강론하여 교정해야 하고, 또 행여 논계(論啓)할 일이 있어도 널리 의논할 수 없으니, 사체(事體)에 또한 온당치 못합니다. 대간(臺諫) 같은 데는 어진 사람 한둘만 있으면 그 나머지 사람은 그다지 선하지 않더라도 공론을 따라 행할 수 있지만, 홍문관 같은 데는 일일이 진강(進講)하니 반드시 사람마다 다 선해야 됩니다. 이조 낭관(吏曹郞官)에는 홍문관의 직에 합당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이조 역시 중임(重任)입니다만 홍문관은 못하니 위에서 알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홍문관은 소임이 지극히 중하므로 전자에 이조에 하유(下諭)하여 홍문관 관원을 외직에 주의(注擬)하지 말게 하였으며, 이조·병조의 낭관에도 주의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제 유용근(柳庸謹) 등을 교리(校理)로 삼는 것이 매우 마땅하다."

하매, 동지사 김정(金淨)이 아뢰기를,

"이조에 벼슬하는 관원이 선해야 백사(百司)의 관원이 다 선하게 되니, 이조의 낭관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홍문관 관원은 자주 체직해서는 안 된다. 또 그저께의 정사(政事)에 관찰사를 중하게 여겼으므로 이조에 묻고 유운을 관찰사로 삼으려 하였더니, 이조의 의견도 합당하다고 하므로 제수하였던 것이다. 유운을 체직하면 아마도 관찰사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을 듯하다."

하매, 영사(領事) 안당(安瑭)이 아뢰기를,

"이미 관찰사를 제수하였으니 체직해서는 안 됩니다. 전 관찰사가 이미 체직되어 자리가 빈 지 오래되었고, 이제 또 유운을 체직하고 다른 사람을 다시 제수한다면 시일을 오래 끌어 반드시 빨리 가지 못할 것이니, 운은 진실로 체직할 수 없습니다. 동지사(同知事)가 될 만한 사람은 이조에서도 얻기 어렵게 여깁니다. 유생들은 다 조광조를 동지사로 삼고자 합니다. 이 사람은 성리학(性理學)378) 에 자못 정밀하니, 광조를 겸 동지사(兼同知事)로 삼으면 진작시킬 수 있고 유사(儒士) 된 이들도 다 즐겨 나아가 배울 것입니다."

하니, 조광조가 아뢰기를,

"무릇 관직은 반드시 사람과 재능이 서로 합당해야 직분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은 재덕(才德)이 없고 일찍이 관직의 차서를 많이 뛰어넘었으므로 매양 황공히 여기는데 하물며 또 중임을 맡기심에리까? 신이 동지사가 되면 신의 동년(同年) 친구가 책을 끼고 글을 배우는 반열에 많이 있게 될 것이니, 이 또한 어찌 마음에 편안하겠습니까? 만약 그것을 무릅쓰고 한다면 학교의 일이 전폐될 것입니다. 무릇 직무는 마음에 편안해야 그 직무에 힘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에 편안하지 못하면 하는 일이 다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신이 그다지 패려(悖戾)하지 않다 하여 이 때문에 나이 젊은 유학(幼學)379) 들이 혹 와서 배운 사람이 있었으나, 어찌 곧 이것으로써 사장(師長)이 될 수 있다 하겠습니까? 김안국(金安國)·김정·유운 등과 같은 사람은 다 동지사에 매우 합당합니다. 지당한 사람을 버려두고 신에게 제수하는 것이 어찌 가하겠습니까?

신이 다행히도 밝은 시대에 태어나 과연 이학(理學)에 힘쓰고자 하였으나 겨를이 없었습니다. 신은 매양 수년 동안 물러가 살면서 학문에 전념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되지 못하였는데, 더구나 감히 남의 스승이 되겠습니까? 인주(人主)가 사람을 쓰는 데는 먼저 인망을 기른 뒤에 그 직무에 두어야 하는데, 어찌 지레 ‘싹을 뽑아 자람을 돕는 일[揠苗助長]’380) 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대신이 신의 몸을 보전하고자 한다면 물러가 공부하게 해야 할 것이고, 위에서도 신으로 하여금 보전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속에 든 것이 없는데 갑자기 분수에 지나친 소임을 받으면 어찌 끝내 보전하겠습니까?"

하고, 김정은 아뢰기를,

"유운이 맡은 일을 처리하는 데도 재간이 있으니 관찰사의 직임에 매우 합당합니다. 또 성균관 동지사는 합당한 사람이 없으므로 주의(注擬)하여 제수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유생의 의사는 모두 조광조를 스승으로 삼고자 합니다. 대저 학자(學者)를 교육하는 데는 위력(威力)으로 해서는 안 되고 모름지기 선비의 마음에 흡족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광조가 동지사가 되면 학자들이 반드시 구름처럼 모일 것입니다. 신 등이 일찍이 의계(議啓)하려 하였는데, 대신이 이제 아뢰니 매우 마땅합니다."

하고, 안당은 아뢰기를,

"부제학(副提學)이 중임(重任)이기는 하나 홍문관에 항상 사진(仕進)하는 것이 아니니, 또한 때로 성균관에 가서 유생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스승을 가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또 그 본직381) 을 개임할 수 없으니 겸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매, 안당이 아뢰기를,

"조광조가 동지사가 되면 학자들이 다 나아갈 것입니다. 광조가 사양하는 것은 본디 옳으니, 출신(出身)한 지 오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안국·이자(李耔)·김정 등은 과연 모두 합당합니다만 안국과 자는 모두 북경에 사신으로 갔고, 정은 한직(閑職)에 있으니 겸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생각으로는 광조보다 나은 이가 없으니 물의(物議)를 좇아야 합니다."

하였다.

조광조가 아뢰기를,

"신은 출신한 지 오래지 않아서 벼슬이 매우 빨리 뛰어오르매 신의 족친과 향당(鄕黨)이 모두 화가 조석에 있다고 하니, 이것도 오히려 미안하여 밤낮으로 두려운데 하물며 분수에 지나치는 직임을 주심에리까? 김정 같은 이는 학문이 매우 밝고 사장(詞章)에도 능하며, 정묘년382) 에 출신하여 조정에 벼슬한 지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안국(金安國) 역시 얼마 뒤에 환국(還國)할 것이며, 오래 학업을 닦았으니 다 합당합니다. 신은 문리(文理)를 이해하지 못하며, 경서(經書)는 아직 구해(句解)도 못합니다. 그래서 매양 물러가 배워서 깨친 뒤에 다시 나와서 임금을 섬기려 하였는데, 어찌 갑자기 이와 같은 말이 있을 줄 생각하였겠습니까?"

하고, 김정이 아뢰기를,

"대신이 어찌 우연히 헤아리고서 아뢰었겠습니까? 성균관은 곧 조정의 인심과 민간 선비의 풍습에 관계되는 곳입니다. 《경제육전(經濟六典)》383) 을 보니 역시 대사성을 겸임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조광조는 과연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스스로 ‘내가 그 직임에 합당하다.’고 하겠습니까? 유사(儒士)의 지향(志向)을 보니, 광조가 동지사가 되면 반드시 모두 구름처럼 모일 것입니다. 성균관은 중요한 자리라 오늘 대신이 아뢴 바가 매우 마땅합니다. 이조에서도 그 자리를 비워두려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벼이 전차(塡差)384)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무릇 관직(官職)에는 합당한 사람을 써야 한다. 물정(物情)에 합당하면 과연 써야 한다."

하매, 조광조가 아뢰기를,

"만약 이 직임을 무릅쓰고 받을 경우에는 인화(人禍)가 없으면 반드시 천벌이 있을 것이므로 신이 반드시 몸을 보전하여 조정에 벼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김정이 아뢰기를,

"조광조는 나이 40이 다 되었으며 젊어서부터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연구하여 향방을 일찍 알았습니다. 신도 학문에 약간 뜻을 두기는 하였으나 사장(詞章) 공부를 하였고, 광조는 젊어서부터 김굉필(金宏弼)을 따라 배워서 얻은 바가 또한 많았으니, 비록 자신이 굳이 사양하더라도 속히 차임(差任)해야 합니다. 항상 경악(經幄)에서 회포를 논계(論啓)할 때에 상께서 또한 배운 바가 어떤지 모르셨습니까?"

하였다. 조광조가 아뢰기를,

"임금이 신하를 대우함에 있어 보전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그 분수에 지나치면 조물주(造物主)도 시기하니, 끝내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자기의 일을 번거롭게 아뢰는 것이 옳지 못한 듯합니다만, 논박(論駁)하는 유와는 다르므로 감히 번거롭게 아룁니다."

하였다.

김식과 헌납(獻納) 정옥형(丁玉亨)이 전의 일을 죽 들어 논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자건은 체직하고,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안당(安瑭)이 아뢰기를,

"함경도 주장합의 일은 매우 염려스러우니, 장수를 뽑고 군사를 훈련하여 미리 조치해야 합니다. 지금 문신(文臣)의 반열에는, 유용근(柳庸謹) 같은 사람이 무재(武才)도 있고 나이도 적지 않으니 이런 사람은 장년에 써야 합니다. 만약 자급에 따라서 쓰게 되면 장년이 이미 지나버릴 것입니다. 박영(朴英)은 출신(出身)한 지 오래되어 조정에서 그의 어짊은 다 압니다. 이런 사람도 마땅히 함께 당상에 올려 써서 인망을 기르게 해야 합니다. 유용근은 늙은 어머니가 있으니, 그의 어머니가 더욱 늙어지면 비록 변방에 쓰고자 하여도 정리에 차마 하지 못할 것입니다. 빨리 당상에 올려 육진(六鎭)의 부사(府使)나 우후(虞候)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또 대동 찰방(大同察訪) 김인손(金麟孫)은 비록 양과(兩科)385) 출신은 아니나 천성이 본디 충후(忠厚)하고 재간이 탁월하며, 활쏘기와 말달리기의 재주는 따를 사람이 적으며 또 생원(生員) 출신이므로 모두 훗날 장수가 될 만한 재간입니다. 당장 당상에 올릴 수는 없으나, 창성(昌城)·삭주(朔州) 및 육진의 당하관 부사(堂下官府使)386) 같은 데는 또한 제수해도 됩니다. 못난 신이 삼공(三公)의 수를 채우고 있으므로, 신의 보고 아는 바를 아룁니다. 김인손은 나이 50에 가까우니, 이제 올려 써야지 노쇠해지게 되면 쓸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과연 아뢴 바와 같다면 장년에 써야 한다."

하였다.

  • [註 375] 정위(鄭衛)의 풍속 : 정(鄭)과 위(衛)는 춘추(春秋) 시대 나라 이름. 두 나라는 풍속이 음란하기로 유명하였다.
  • [註 376] 성학(聖學) : 임금의 학문.
  • [註 377] 잠간(箴諫) : 경계로 간언하는 것.
  • [註 378] 성리학(性理學) : 송(宋)나라 유학(儒學)의 한 계통으로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의 관계를 논한 학설이다. 이학(理學)·도학(道學).
  • [註 379] 유학(幼學) : 생원·진사에도 합격하지 못하고 벼슬하지 않은 유생.
  • [註 380] ‘싹을 뽑아 자람을 돕는 일[揠苗助長]’ : 성공하기에 급하여 도리어 공을 망치는 것의 비유. 송(宋)나라 사람이 자기 곡식 싹을 자라지 않음을 걱정하여 싹을 뽑아 놓고는 집에 돌아와서 말하기를 「오늘 내가 피곤하다. 내가 싹의 자람을 도왔노라.」 하므로 그 아들이 달려가서 보니 곡식 싹이 말라 있었다 한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 [註 381] 본직 : 홍문관 부제학을 말한다.
  • [註 382] 정묘년 : 1507 중종 2년.
  • [註 383] 《경제육전(經濟六典)》 : 조선조 태조(太祖) 6년(1397)에 조준(趙浚) 등이 우왕 14년(1388)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 이후 반포한 법령을 모아서 육전(六典)으로 나누어 편찬한 조선왕조 최초의 법전이다.
  • [註 384] 전차(塡差) : 비어 있는 벼슬자리를 메우는 것.
  • [註 385] 양과(兩科) : 문과(文科)와 무과(武科).
  • [註 386] 당하관 부사(堂下官府使) : 당하관(堂下官)이란 문관은 정3품 통훈 대부(通訓大夫) 이하, 무관은 어모 장군(禦侮將軍) 이하의 벼슬 계제를 말한다. 부사에는 정3품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와 종3품 도호부사(都護府使)가 있는데, 창성(昌城)·삭주(朔州) 및 육진(六鎭)은 종3품 도호부사이다.

원문

○戊申/御朝講。 參贊官趙光祖曰: "外方女妓之類, 亦可革之。 雖有宿倡之禁, 若謹愼者, 則畏法而莫敢也, 浪士則皆好之, 不可盡禁也。 若邊方則果不可盡革也。" 持平金湜曰: "直論之, 則雖邊方, 亦皆可無也。" 上曰: "以倡妓之故, 雖士大夫, 亦或有累。 京都則不然, 外方則必猶爾也。 當議于大臣而處之。 至如邊方, 不必名曰女妓也。" 光祖曰: "言之則甚可汚也。 國家爲設淫流, 以資其汚穢之風。 若邊方, 則爲邊將者, 久留無聊, 猶可以存也。 雖可人, 以此有累焉, 則不可復用也。 如鄭、衛之風, 淫亂莫甚, 然亦自(祖)〔相〕 淫奔。 今之妓女, 則國家爲設淫亂之類。 存此而豈能正其人心乎?" 參贊官鄭忠樑曰: "成均館, 人材本源之地。 大司成柳雲, 今遞爲忠淸道觀察使。 柳雲方能盡心於學校, 而乃遞之。 請勿遣外, 留爲成均同知, 何如?" 光祖曰: "柳雲雖年少, 善於學問, 爲大司成, 盡心敎誨。 今申光漢代雲爲大司成。 光漢亦不下於雲, 以雲爲同知, 則與光漢同心敎育可也。 且弘文館, 重地也。 自上幸有所問, 在下或有所啓, 今者聖學高明, 豈有所論啓之事乎? 若幸有不盡之處, 則可以箴諫也。 近日館員甚少, 奇遵以覲親出歸, 韓忠將赴京, 闕員又多。 如《近思錄》、《論語》等書, 必群議講論而校之, 且幸有論啓之事, 無與廣議, 於事體, 亦爲未便。 如臺諫一二人有賢者, 則其餘雖不甚善, 隨公論而行之, 若弘文館, 則一一進講, 必人人皆善, 然後可也。 如吏曹郞官, 多有合於弘文館者。 吏曹亦是重任, 然猶不如弘文館。 願自上知之。" 上曰: "弘文館所任至重, 前者諭吏曹, 勿以弘文館官員, 擬諸外職, 如吏、兵曹郞官, 亦勿令擬之。 今以柳庸謹等爲校理, 甚當。" 同知事金淨曰: "爲吏曹者善, 然後百司之員皆善也。 吏曹郞官, 不可移易也。" 上曰: "弘文館之員, 不可數遞。 且向日之政, 以觀察使爲重, 故問吏曹, 欲以柳雲爲觀察使, 吏曹之意亦以爲當, 故授之耳。 遞雲, 則恐無堪爲觀察使者。" 領事安瑭曰: "旣授觀察使, 不可遞也。 前觀察使已遞, 曠官已久, 今又遞雲, 而更除他人, 則遷延淹久, 必未亟往也。 雲固不可遞也。 爲同知者, 吏曹亦難之。 儒生皆欲得趙光祖爲同知。 斯人頗精性理之學。 以光祖爲兼同知, 則可以振作, 而爲儒士者, 亦皆樂就學焉。" 光祖曰: "凡官職, 必人器相當, 然後可以效職。 臣無才德, 曾亦多爲越次之職, 每爲惶恐。 況又加之以重任乎? 臣爲同知, 則臣之同年友生, 多在挾冊之列。 此亦豈安於心? 若冒爲之, 則專廢學校之事也。 凡職事安於心, 然後可以力於其職。 若不安於心, 則所爲之事, 皆不入於心。 但以臣爲不甚悖戾, 故年少幼學之士, 幸有來學者, 豈(便)〔可〕 以此謂可爲師長乎? 如金安國、金淨、柳雲等, 皆甚合於同知。 捨至當之人, 而授臣豈可乎? 臣自幸生(奉)〔逢〕 明時, 果欲力於理學而無暇。 臣之意, 每欲退居數年, 以專意於學問而猶未也。 又敢爲人師乎? 人主用人, 當先養望而後, 置其職。 豈可徑爲揠苗助長乎? 大臣當欲保全臣身, 則宜使之退學也, 自上亦當使臣保全可也。 內無所有, 而遽受非分之任, 則豈終保全乎?" 淨曰: "柳雲於任事, 亦能辦幹, 甚合觀察使之任。 且成均館同知, 無可當人, 故猶未擬除。 今者儒生之意, 皆欲得光祖爲師。 夫敎育學者, 不可以威力, 須得其士心之洽然者, 然後可也。 光祖爲同知, 則學者必皆雲集。 臣等曾欲議啓, 而大臣今乃啓之, 甚當。" 瑭曰: "副提學雖重任, 非常仕於弘文館, 亦可時往成均館, 以敎儒生也。" 上曰: "擇師甚重, 且不可改其本職。 宜兼之。" 瑭曰: "光祖爲同知, 則學者皆趨焉。 光祖之辭讓, 固是, 蓋以出身未久故也。 金安國、李耔、金淨等, 果皆合焉, 然安國與耔, 皆赴京。 淨爲閑職, 亦可兼也, 然臣之意以爲無過於光祖者。 當從物議。" 光祖曰: "臣出身未久, 驟陞甚遽。 臣之族親、鄕黨, 皆以爲禍在朝夕。 此猶未安, 日夜惶懼。 況又加之以非分之職乎? 如淨, 學問甚該, 亦能詞章, 乃丁卯年出身, 立朝十餘年也。 安國亦幾何還國, 久爲學業, 皆以爲可也。 臣不解文理, 經書則尙未句解, 每欲退學, 有所得, 然後更進而事君也。 豈意忽有如此之言乎? 淨曰: "大臣豈偶然料度而啓之乎? 成均館, 乃朝廷人心、閭巷士習之所關也。 見《經制六典〔經濟六典〕 》, 亦有兼大司成之制也。 光祖則果必不自安也, 然豈自謂吾合於其任乎? 見儒士之志向, 光祖爲同知, 則必皆雲集也。 成均館, 重地也。 今日大臣之所啓甚得。 吏曹非欲闕之也, 以無可當之人, 故不可輕爲之塡差也。" 上曰: "凡官職, 當用可稱者。 合於物情, 則果可用也。" 光祖曰: "若冒受是任, 則不有人禍, 必有天刑。 臣必不能保全而立於朝也。" 淨曰: "光祖年幾四十, 自少深究理學, 早知向方。 臣亦少意於學問, 然馳騖詞章, 光祖則少從金宏弼學焉, 所得亦多。 雖自固辭, 宜速差之。 常於經幄論啓懷抱之時, 上亦豈不知所學之何如乎?" 光祖曰: "人君待臣下, 使之保全, 可也。 若過於其分, 則造物亦猜。 願使之竟得保全也。 煩啓自己之事, 似不可, 然非如論駁之類也, 敢爲煩達。" 湜與獻納丁玉亨, 歷論前事, 上曰: "李自健可遞。 餘不允。" 瑭曰: "咸鏡道 住張哈之事, 甚可慮也。 選將、鍊兵, 當預爲措置。 今在文臣之列, 如柳庸謹, 有武才, 年且不少。 如此人, 當用於壯年。 若循資格而用之, 則壯年已過矣。 朴英出身旣久, 朝廷共知其賢。 如此人亦宜俱陞堂上, 而用之以養望。 庸謹有老母。 其母益老, 則雖欲用於邊地, 情不忍爲也。 亟陞堂上, 爲六鎭府使、虞候, 可也。 且大同察訪金麟孫, 雖非兩科出身, 性本忠厚, 才幹卓越, 弓馬之才, 鮮有及者。 又出自生員, 皆他日可爲將帥之才也。 雖不可亟陞堂上, 如昌城、朔州及六鎭堂下官府使, 亦可授也。 臣備員三公, 以臣之所見所知者啓之。 麟孫年幾五十, 今不陞用, 以至衰耗, 則不堪用也。" 上曰: "果如所啓。 宜用於壯年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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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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