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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0권, 중종 12년 10월 30일 壬申 1/1 기사 /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대간을 간 일을 논핵한 홍문관 수찬 기준의 상소문

국역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기준(奇遵)이 상소(上疏)하였다. 대략,

"듣건대 접때 대간의 상소를 대신에게 물어서 대간을 죄다 갈았으므로, 물의가 어수선하고 인심이 놀라와한다 한니, 시말을 헤아리지 못하여 갈수록 답답합니다. 소가운데에 어떤 말이 지나치기에, 전하께서 지나치다고 생각하시고 대신들도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드디어 언론을 맡은 신하를 내쳤는지 신은 그 까닭을 모릅니다. 대간은 임금의 이목(耳目)이요 공론이 부탁된 바이니, 일을 헤아리고 이치에 따라 대신과 함께 득실(得失)을 논하고 시비(是非)를 다투는 것은 대간의 일입니다. 말단의 관원으로서 임금에게 굽히지 않고 대신을 따르지 않고서, 정론(正論)을 말하여 독립(獨立)하고, 중구(衆口)에 시달려도 변치 않기가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전하의 과실과 정사(政事)의 어그러짐과 인물의 현부(賢否)와 백성의 휴척(休戚)을 어찌 죄다 말하게 하고 말한 것을 죄다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마는, 전하께서 간언(諫言)을 좋아하시는 성실이 있고 대간에게 말을 다하는 성실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는데도 공론이 아직 없어지지 않고 언로(言路)가 아직 막히지 않은 것은, 참으로 전하께서 말에 대해서 죄주기까지 하시는 일이 없고 대간이 입을 다물기까지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다투고 한 사람을 논박하는 데에 대해서는 더욱 쉽게 따르셔야 마땅한데도 달을 넘기고 때를 넘겨 지리하게 권태하시매, 덕(德)은 전하에게서 드러나지 않고 원망은 대간에게 먼저 돌아가므로, 뭇 소인(小人)의 비방이 다투어 일어나고 대간의 기풍은 지쳐서 떨치지 못하니, 이것이 기강이 서지 않는 까닭이요 공론이 행해지지 않는 까닭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간언을 순하게 따르지 못하시고 또 구언(求言)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시고서, 도리어 말하는 자를 미워하여 벼슬을 갈기까지 하셨으니, 신은 전하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전하의 뜻은, 대간이 언론을 과격하게 하여 조정을 소요하게 하였다 하여, 장차 조정을 안정시킬 방법을 꾀하시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대간을 훼손하고서 조정을 안정시킨 일은 예전부터 없는 일이니, 이는 남들이 듣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정이 화목하지 않은데도 화목하다고 대간이 말하면 이것은 참으로 속이는 것이나, 조정이 불화하지 않은데도 불화하다고 대간이 말한다 해서 화목에 무슨 방해가 되겠습니까? 대저 지난날의 우환을 논하는 것은 장래의 병통을 구제하기 위함이고, 미연의 폐단을 말하는 것은 오늘날의 일을 삼가기 위함입니다. 말하되 다하지 않으면 일의 정상을 보일 수 없고, 말하되 곧게 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대간의 소를 보면 과격한 언론이 없는데도, 전하께서 그르다 하시니 대신도 전하의 뜻을 맞추어 다들 그르다 하되, 들어가서는 다투어 그 그름을 배척하여 갈도록 유도하고, 나와서는 갈지 말아야 한다고 관례에 따라 계청(啓請)하니, 이것이 참으로 무슨 마음입니까? 위로는 그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아서 전하께서 잘못을 면하게 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언관(言官)을 편안하게 보존하여 조정이 안녕하도록 힘쓰지 못하니, 대신의 임금을 위한 충성스런 보좌와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계책이 이럴 수 있습니까? 대간이 된 자가 말을 속에 담아 두고 내지 않으며 일을 보고도 밝히지 않아야 대신들의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충언(忠言)이 아뢰어지지 않고 이익과 병폐를 들을 수 없어서 나라가 불리하게 되어 가면 대신들만은 편안하겠습니까? 이미 정성과 지혜를 다하여 충고해서 선도하지 못하고서 도리어 말하는 자를 내쳐서 언로(言路)를 병들게 한는 것은, 그것이 당연한지 신은 모르겠습니다.

또 듣건대, 성교(聖敎)에 대간을 죄주고자 한다 하셨다는데, 참으로 그런 분부를 하셨습니까? 이것은 나라를 잃을 말이니, 종사(宗社)의 복(福)이 아닙니다. 낯빛이 자만(自慢)하여도 사람을 멀리 내치게 되는데, 더구나 죄를 주려 한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모두 아양떨고 아첨하여 제 몸을 이롭게 하고 허물을 피하는 데에 힘쓸 것이니, 전하께서는 홀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근년 이래로 전하께서 구치(求治)를 게을리하지 않고 호학(好學)의 뜻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선도(善道)가 이르기를 바라고 고론(高論)이 들리기를 바라시므로, 조정의 사대부들이 모두 마음을 같이하여 향도(向道)할 뜻을 가져서 언책(言責)을 맡은 자들이 감격하여 분발해서 모두들 전하를 위하여 말을 다하니, 공도(公道)가 비로소 통달하고 사기(士氣)가 떨칠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화(大禍)를 겪은 뒤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것이 마치 큰 병을 앓은 뒤에 기력이 없는 것과 같으니, 원기를 기르는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어떻게 죽기에 이르지 않도록 보장하겠습니까? 지금 말하는 자를, 위로는 재상들이 좋아하지 않고 아래로는 뭇 소인이 눈을 흘깁니다. 그러나 엄정한 낯빛으로 위축하지 않는 자는 전하만을 믿는데, 전하께서도 싫어하시면 외로운 충지(忠志)의 무리는 마침내 어디에 의탁하겠습니까? 대간을 갈라는 분부가 한번 내려지매 관(冠)을 정제하고 사진(仕進)할 차비를 하며 서로 경축하는 사람이 벌써 많다는 것을 신은 압니다. 군자가 장차 소인의 도모하는 바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초야에 묻히면 전하께서는 누구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전하께서 아득히 위에서 고립하시면 참된 말을 듣고자 하더라도 되겠습니까? 국가의 치란(治亂)·안위(安危)를 알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자책하여 사명(辭命)에 나타내시어, 백성으로 하여금 대간에게 잘못이 없고 벼슬을 간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환히 알게 하시고, 또 장차 중외(中外)에 구언(求言)하여 실정(失政)을 물어서 힘써 받아들이고 성(盛)하게 간언(諫言)을 따르되 마치 대우(大禹)·성탕(成湯)처럼 간언에 감사하고 잘못을 고치는 성실이 있게 하소서. 그래야만 언로가 다시 열릴 수 있고 사기가 다시 떨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이 감히 알 수 없습니다마는, 지금 말하는 자가 다들 ‘대간의 소에는 본디 지나친 말이 없었으며, 소가 들어간 지 여러 날이 지나도 주상(主上)께서 지나치다는 말씀이 없고 재상들도 지나치다는 의논이 없었는데 이성언(李誠彦)의 소가 올라온 뒤에 지나치다는 논의가 비로소 상하에서 나왔으니, 이것은 반드시 주상께서 이성언의 참언(讒言)에 현혹되어 다른 일을 핑계로 가신 것이다.’ 하며, 그 말이 요란히 전파되매 듣는 자가 놀랍고 괴이하게 여기는데, 신이 감히 믿지는 않으나, 만약에 전하께서 참으로 참언에 현혹되어 다른 일을 빌어 노여움을 부리셨다면 이는 정치를 어지럽게 하여 나라를 뒤엎을 징조이니, 전하의 성명(聖明)으로 어찌 이런 일이 계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루 사이에 특별히 이행(李荇)에게 벼슬을 주고 대간을 온통 갈았으니, 정적(情迹)에 혐의가 없을 수 없고 외간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도 마땅합니다.

신이 이성언의 소를 보건대 그 말이 모두 이행을 위하여 낸 것이 아니라, 큰 뜻은 큰 화(禍)를 일으켜서 조정을 어지럽히려는 것입니다. 이성언은 성품이 본디 사납고 교활하고 음흉하며 남을 시기하고 위해(危害)하고 마음이 비뚤어졌으므로, 하나의 악한 젊은이로서 주색(酒色)·사냥·도박을 일삼는 데에 뛰어난 자일 뿐입니다. 게다가 착한 사람을 시기하고 화란(禍亂)을 즐겨, 이로 인하여 넌지시 제 술수를 부리고자, 형적이 없는 일을 만들어내고 불측한 말을 벌여, 온갖 방법으로 교묘히 꾸며서 참언을 글로 만들어, 직언(直言)인 듯이 속여서 공의(公議)를 저훼(沮毁)하고, 시병(時病)이라 속여서 사림(士林)을 배함(排陷)합니다. 간사한 계책을 깊이 꾀하고 그 변화를 헤아릴 수 없게 하여 보고 듣는 사람이 현혹되기 쉽게 해서, 상하가 의리(疑離)하고 조정을 혼란(昏亂)하게 하고자 하니, 예전부터 지금까지 소인으로서 충정(忠正)한 사람을 배척하고 상총(上聰)을 기망하는 것이 이처럼 교묘한 자는 없었습니다. 만약에 한낱 이행(李荇)을 위하여 논구(論救)한다면, 어찌하여 반드시 한때의 일을 두루 헐뜯어 이처럼 무함하겠습니까? 한 사람을 구한다는 핑계로 한때의 사람을 모조리 무함하니, 술수 또한 깊습니다.

이성언의 무리가 먼저 그 의논을 재상들에게 비언(飛言)하여 사찬(邪讚)을 여러 가지로 변화 있게 해서 그 마음을 동요하게 하여, 재상의 의논도 여기에 따라 나와서 전하도 동요할 수 있음을 안 뒤에 군론(群論)을 배척하여 그 소를 올리매, 재상 중에는 혹 겉으로 거짓 칭찬하는 자가 있고, 전하께서는 겉으로 의혹하지 않는 듯하나 속으로는 의혹을 일으켜, 말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나 실은 그 뜻을 채용하시니, 이성언이 태연히 물러앉아서 전하의 깊이를 엿봅니다. 《시경(詩經)》에 ‘참소하는 사람이 끝이 없어 사국(四國)을 어지럽힌다.’ 한 것이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위로는 전하로 하여금 대간을 믿지 않게 하고, 가운데로는 재상으로 하여금 전하를 잘못 인도하게 하고, 아래로는 사림(士林)으로 하여금 감히 손을 쓰지 못하게 하매, 공론이 사라져서 정도(正道)가 없어지고, 사기(士氣)가 꺾여서 국맥(國脈)이 막히고, 뭇 그른 것은 날뛰고 뭇 바른 것은 적막하여 조강(朝綱)이 퇴폐하고 정사(政事)가 문란하되, 힘껏 정의(正議)를 아뢰어 사술(邪術)을 배척하고 그 죄를 폭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통탄함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순(舜)임금이 사흉(四凶)을 제거하고서 천하가 모두 복종하였고, 공자(孔子)가 소정묘(少正卯)를 제거하고서 노(魯)나라가 다스려졌으니, 나라를 해치는 소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를 편안하게 할 수 없으므로 성인(聖人)이 제거한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성묘조(成廟朝)에 임사홍(任士洪)이 진언(進言)하기를 ‘대간의 말을 죄다 들어 주어서는 안 되며, 이따금 견책해야 합니다.’ 하였는데, 성묘께서 그 정상을 환히 아시고도 드러나게 주륙(誅戮)하지 않으시어, 마침내 폐조(廢朝)의 화(禍)를 끼쳤다 합니다. 지금 보면, 임사홍의 말은 어리석으나 현저하고, 이성언의 말은 은미하나 간폭(奸暴)합니다. 또 듣건대, 폐조에서 유자광(柳子光)이 사류(士類)에 대해 분노하고 시기하여, 무고한 사람을 얽어서 큰 화를 만들어 일망타진하였다 합니다. 지금 보면 유자광은 혼암한 임금을 만나서 제 술수를 부렸고, 이성언은 성명(聖明)을 그르쳐서 제 간사를 부리려 합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죄를 합쳐서 죄주어도 됩니다.

《시경(詩經)》에 ‘은(殷)나라가 거울삼을 일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하(夏)나라 임금의 세상에 있다.’ 하였거니와, 폐조의 난정(亂政)은 전하께서 친히 보신 바입니다. 원인은 간사한 사람이 사림에 대해 분노하고 원망하여 충량(忠良)을 무함해서 살육의 꼬투리를 열어 놓은 데에서 시작하여, 드디어 명신(名臣)·직사(直士)의 간담(肝膽)이 땅에 맥질하게 되고 종사(宗社)의 복망(覆亡)이 바로 닥쳐왔으나, 그래도 전하의 재조(再造)에 힘입어 어렵게 부지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하치않은 이성언이 또 조정을 경란(傾亂)하고자 넌지시 제 솜씨를 시험하니, 무릇 혈기가 있는 자라면 누군들 드러나게 주륙하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 전형(典刑)을 밝게 시행하여 사람들이 그 죄를 환히 알게 하소서. 그러면 종사의 복이 되거니와, 어찌 봉장(封章)이라 하여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이 광망(狂妄)하다면 버려 두어도 되고 우천(愚淺)하다면 용서하여도 되겠으나, 광망한 것도 아니고 우천한 것도 아니며 매우 음험하고 간사하여 위란(危亂)을 꾀하는 것이니, 그 죄를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봉사(封事)한 사람에게 죄를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리석고도 망령된 것이며, 재상이 은밀히 비호하여 그 죄를 폭로하지 않는다면 나라 일을 꾀하는 양책(良策)이 아니며, 대간으로서 간사하고 참소하는 자를 두려워하여 그 죄를 힘껏 청하지 않는다면 임금을 위한 충성이 아닙니다.

아, 사(私)를 따르고 공(公)을 잊으며, 편안한 것을 꾀하고 화(禍)를 피하는 것이 인정(人情)의 향하는 바인데, 누가 그 도(道)를 바르게 하고 그 말을 바르게 하여 남의 원망을 사려 하겠습니까? 사습(士習)이 비루하고 기절(氣節)이 위축된 것은 이것으로 점쳐 알 수 있습니다. 무릇 금세 사람은 앞날을 염려하지 않고 당장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힘쓰므로, 크게 불안한 것이 조금 편안한 가운데에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서, 보고도 구제하지 않고 앉아서 스스로 편안한 것에만 의지하나, 스스로 편안하다면 좋지 않겠습니까마는 스스로 편안하지 않다면 마침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시비(是非)·사정(邪正)을 가리지 않고 우물쭈물 지내면서 스스로 편안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기미를 보고서 도모하는 것인데, 더구나 쉽게 나타나는 일과 쉽게 드러나는 간사이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신은 이성언을 죄주지 않으면 조정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말이 무망(誣罔)이라는 것은 성명(聖明)이 잘 아시는 바이니, 워낙 변파(辨破)할 것도 없으나, 이른바 시의(時議)니 외의(外議)니 한 데에서 더욱 그 죄를 얽어 만드는 술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랫사람이 국정(國政)을 논의한다고 한다면 위에서 싫어하기 쉬운 것이므로, 예전부터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해치려고 꾀하는 소인은 반드시 ‘정사(政事)가 아랫사람의 의논에 달려 있고 조정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하여 임금을 격노하게 하는데, 임금이 밝지 못하여 한번 현혹되는 바가 있으면 도리어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원수로 삼아서 나라를 어지럽히게 되니, 나라를 가진 사람으로서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 성주(聖主)가 서인(庶人)에게까지 비방할 수 있게 하고 상려(商旅)에게까지 논의할 수 있게 한 것은 그 실정(失政)을 널리 듣고자 한 까닭입니다. 청의(淸議)가 아래에 있으면 비록 말세일지라도 공도(公道)를 부지할 수 있는데, 더구나 지금은 사기가 저상(沮喪)된 지 오랬는데도 그 시행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한두 지사(志士)가 옛일을 사모하고 오늘날의 일을 민망히 여겨서 시사(時事)에 대하여 한 마디 말을 하더라도 드디어 그른 의논이라 지칭하니, 지금의 정사가 잘되겠습니까?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언행(言行)을 엄하게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실을 엄하게 하나 말은 순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만약에 그 언론을 싫어한다면, 사람들이 장차 입을 다물고 혀를 묶어 두며 이리처럼 돌아보고 숨을 죽일 것이니, 마치 포학한 진(秦)나라 때와 같이 된 뒤에야 다스려진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그 시의니 외의니 무고하는 것은 일국을 공허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지금 성명(聖明)이 위에 계시고 공경(公卿)이 아래에 있으므로, 한 가지 정령(政令)이 나올 적에는 대신이 그것을 의논하고 대간이 그것을 간쟁하여 이치에 맞도록 하기에 힘쓰니, 정령이 한결같이 되어 가고 조강(朝綱)이 서 갑니다. 그런데도 정령이 외의에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 마음을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군자가 정색(正色)하고 조정에 서서 기강을 가다듬고 떨치며 성실하게 행신(行身)하고 바르게 논사(論事)하면 워낙 다른 일로는 무함할 수 없거니와, 만약에 ‘정령이 아래에서 나온다.’고 말한 것 같으면 일망타진할 수 있으므로, 흉계를 부리고 명목을 내세워 모두가 시의니 외의니 하는 것을 인습하니, 간사한 사람의 참소는 이것을 들어서 그 밖의 것도 미루어 알 수 있거니와, 간사한 사람은이성언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평시에 대간에게 논박받거나 혹 사론(士論)에 용납되지 못하는 자들이 모두 이행(李荇)이 물러간 것을 빙자하여 넌지시 그 원한을 갚고자 하여, 가탁하여 대간을 헐뜯고 두루 사류를 논하여 헐뜯기에 바쁜데, 이것은 듣는 자가 살피지 않고 서로들 전파하며 옳지 않다고 한는 것도 개탄할 일입니다.

대저 요즈음 도(道)에 도탑고 이치를 따르는 선비와 항언(抗言)하고 직간(直諫)하는 사람이 간혹 등용되어 대간·시종에 출입하여, 혹 도학(道學)의 근본을 개진(開陳)하고 수신(修身)·제가(齊家)의 실지를 강명(講明)하거나 시정(時政)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현사(賢邪)의 구분을 변별(辨別)하여 바른 언론이 조정에 펴지매, 인심이 자연히 단속되어 악한 짓이 부끄럽다는 것을 조금 알아서, 오래 쌓였던 더러운 풍속이 점점 저절로 없어져 가니, 주색(酒色)으로 음탕한 무리와 경박하고 간사한 무리가 감히 방자하지 못하므로 떼 지어 노하고 무리지어 원망하여, 요란하게 비방하며 정직한 사람을 요동하려고 서로들 말하기를 ‘주상(主上)의 구치(求治)는 너무 급하시고 아랫사람의 위선(爲善)은 매우 다급하니 이것이 어찌 치평(治平)을 이루는 도리인가.’ 한니, 아아! 소인이 다스려지는 것을 싫어하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또 말하기를 ‘아무는 상 앞에 어느 말을 아뢰었으니 크게 틀린 일이다. 아무와 아무가 모여서 강학(講學)하였으니 이는 곧 붕당(朋黨)이다. 아무는 어느 곳에서 아무의 잘못을 논했는데 그것은 사분(私憤)이다.’ 하며 뜬말로 선동해서 사람들의 귀를 미혹하게 하여, 반드시 사람마다 불평한 마음을 갖게 하고자 하며, 군자가 자신을 안정하지 못하도록 걸핏하면 지적하여 모함하기를 힘씁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또한 어찌 많겠습니까?

대저 지금의 병폐는 구차하게 우선 편안히 넘어가는 데에만 힘써서, 곡직(曲直)을 따지지 않고 현우(賢愚)를 가리지 않고서 함께 모두 거두어 쓰고 분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진이가 반드시 높은 자리에 있지 못하고 간사한 자가 반드시 아랫자리에 있지 않으며, 시비(是非)가 흐리고 흑백(黑白)이 거꾸로 되어서, 방정(方正)한 사람이 간사한 자에게 깔보이고 정도(正道)가 혹 사라지게 되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어진이와 간사한 자를 쓰고 버리는 것은 참으로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데에 관계되는데, 전하께서는 어진 줄 알면 의심없이 쓰며 간사한 줄 알면 의심없이 물리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진이와 간사한 자가 뒤섞여 어지러워지는 갈림길이 되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과연 어진 줄 알면 믿고 써서 참소에 동요되지 말며, 과연 간사한 줄 알면 물리쳐 끊어서 경박한 의논에 동요되지 말아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명백히 보이소서. 그래야 바른 선비가 조정에 차고, 사람들이 다 그른 것을 고쳐서 착해질 것입니다.

예전부터 소인이 군자를 배척하는 데에 쓰는 몇 가지 말이 있습니다. ‘붕당(朋黨)’이니 ‘위학(僞學)’이니 ‘남다른 짓을 억지로 한다.’느니 ‘명예를 얻으려고 정직한 체 한다.’느니 온갖 꾀를 다하여 반드시 중상하고야 맙니다. 군자는 그렇지 않아서, 자기를 바루고 도(道)를 지키며 예(禮)에 따라 진퇴하고 득실(得失)을 천명(天明)에 붙이고서 의리에 좇아서 편안할 뿐입니다. 아, 한(漢)나라에는 당고(黨錮)의 화(禍)가 있어서 왕실(王室)이 따라서 망하였고, 송(宋)나라에는 위학(僞學)의 비방이 있어서 군자가 뜻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성명(聖明)이 잘 살펴야 할 일입니다.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강학(講學)의 공(功)이 도탑지 못하고 집희(緝熙)의 실(實)이 미진하시며, 택선(擇善)이 혹 밝지 못하고 집덕(執德)이 혹 굳지 못하시어, 뭇 의논이 소동할 때에 동요되지 않기가 어려우신 듯한데, 전하의 지려(志慮)가 과연 어떠하신지 신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 유신(儒臣)과 함께 학술을 강마하신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므로 반드시 격물(格物)·치지(致知)하는 방법과 존성(存省)하는 도리를 아실 것이니, 장차 홀로 계시는 곳에서 힘쓰시어 사물을 응접하는 근본을 해와 달처럼 밝게 하시면, 빛이 군신(群臣)을 비추어 어진이와 간사한 자가 저절로 그 정상을 숨길 수 없을 것입니다. 어찌 참언(讒言)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교언(巧言)은 대우(大禹)도 두려워하고 공자(孔子)도 멀리하고자 하였는데, 성인(聖人)이 반드시 그것에 동요되지 않기 위하여 그와 같이 삼갔으니, 그 염려가 주밀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경연(經筵)을 열어서 유신을 가까이하여, 의리의 깊은 뜻을 절차(切磋)하고 심술(心術)의 기미를 삼가 가려서, 사물의 변화를 환히 눈앞에 볼 수 있게 하시고, 또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넓히고 공경을 유지하여 마음을 길러서, 이 마음의 덕이 광명 정대하여 털끝만한 사(私)도 용납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면 이의(異議)에 혼란(昏亂)되지 않을 뿐 아니라, 넉넉히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하는 근본이 되고 종사(宗社)를 만년토록 견고하게 유지하는 사업의 터전이 될 것이니, 전하께서는 여기에 유념하소서.

신은 참소하는 사람이 난(亂)을 선동하는 것을 듣고서 우려되어 견딜 수 없으며, 신이 비록 미천하기는 하나 시종(侍從)의 벼슬에 있는데도 병 때문에 나아가서 논계(論啓)하지 못하고 집에 엎드려 있으니, 뜻을 스스로 누르지 못하여 품은 뜻을 아룁니다. 말을 한번 내면 몸 또한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아나, 몸을 아끼고 벼슬을 연모(戀慕)하여 말을 품어 두고 아뢰지 않아서 전하를 저버리는 것은 신이 차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말에는 한이 있어 뜻을 다 아뢰지 못하니, 하늘을 우러러보고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하였는데, 소(疏)에 답하기를,

"전 대간의 소에, 조정이 원분(怨憤)하고 괴쟁(乖爭)하여 불화하다는 말이 있으므로 내가 참으로 놀랐는데, 대간이 바야흐로 시장(試場)에 들어가기 때문에 곧 의논하지 않았다. 어지러운 말이 있더라도 대간이 된 자가 믿지 않으면, 풍기(風氣)가 늠연(澟然)하여 인심을 진정할 수 있는데, 또 어찌하여 그 떠드는 경박한 의논에 의혹되겠는가? 이행(李荇)은 대신의 말을 들어서 곧 서용(敍用)하였으니, 이성언의 소를 채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또 내가 시종들과 강학(講學)한 지 이미 오랬으므로, 도(道)에 도탑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정향(定向)이 있는데 어찌 한 사람의 말이 문득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겠는가?"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한때의 홍문관(弘文館) 동료 중에서 기준(奇遵)이 가장 젊었으나, 문학이 넉넉하여 그 명성이 조광조(趙光祖)에 버금갔다. 강개(慷慨)하여 일을 논하면 고려(顧慮)하는 바가 없었고, 늘 상(上) 앞에서 언론을 격렬하게 하여 사람들의 귀를 용동(聳動)시켰으나 대신들은 흔히 그를 미워하였다. 이때 병으로 집에 있으면서 상소로 이성언(李誠彦)의 죄를 논하여 중벌에 처할 것을 청하고, 또 대간이 그 죄를 힘껏 청하지 않은 것을 그르다고 하였다. 말에 지나친 데가 많으므로, 조광조와 같은 사람도 그것을 보고서 옳게 여기지 않았다.

원문

○壬申/弘文館修撰奇遵上疏, 其略曰:

伏聞, 頃以臺諫上疏, 訪于大臣, 盡遞臺諫, 物議洶洶, 人心駭愕, 莫測端倪, 久愈憫鬱。 疏中之語, 有何過越, 而殿下以爲過越; 大臣亦以爲過越, 而遂去言論之臣哉? 臣未知其故。 臺諫, 人主之耳目, 公論之所托。 揆事據理而與大臣, 論得失、爭是非者, 臺諫之事也。 以微末之官, 不屈於人主, 不徇乎大臣, 陳正論而獨立; 鑠衆口而不變, 豈不難哉? 殿下之過行、政事之乖錯、人物之賢否、生民之休戚, 其能使之盡言, 而言之盡納乎? 未聞殿下有好言之實; 臺諫有盡言之誠, 而公論尙未泯滅; 言路尙未杜塞者, 誠以殿下不至於罪言; 臺諫不至緘默耳。 然而一事之爭、一人之駁, 尤當易從, 而閱月踰時, 支離怠倦, 德不顯於殿下; 怨先歸於臺諫, 群小之謗讟爭起, 臺風疲勞而莫振, 紀綱之所以不立; 公論之所以不行也。 殿下旣不能從諫如流, 又不能竭誠求言, 而反忤言者, 以至遞職, 臣不審殿下之意也。 殿下之意, 豈不曰: "臺諫過激言論, 以騷擾朝廷, 而將謀所以安朝廷乎?" 然毁臺諫, 而安朝廷, 自古所無, 此不可使聞於人也。 朝廷不和, 而臺諫曰和, 則是誠欺誣也, 朝廷不爲不和, 而臺諫曰不和, 亦何害於和哉? 夫論已往之患者, 所以救將來之病也; 言未然之弊者, 所以愼今日之事也。 言之不盡, 無以見事之情; 言之不直, 無以達己之心。 伏見臺諫之疏, 未有過言激論, 而殿下非之, 大臣逢迎, 皆以爲非, 入則爭斥其非, 導之使遞; 出則例請不宜遞之, 是誠何心哉? 上不能格其非心, 使殿下免於過擧; 下不能安存言官, 務寧朝廷, 大臣之爲君忠輔、爲國嘉猷, 宜若是乎? 爲臺諫者, 蘊言不發, 覩事不白然後, 大臣之心安乎? 忠言不進, 利病莫聞, 國將不利, 則大臣其獨安乎? 旣不能竭誠盡智, 忠告善導, 而反去言者, 以病言路, 臣未知其然也。 又伏聞, 聖敎有欲罪臺諫, 誠有是敎乎? 此, 喪邦之言, 非宗社之福也。 色之訑訑, 拒人猶遠, 況欲加之以罪乎? 然則人將相率, 而趨於媚悅、謟諛, 利身遠辜之是務, 則殿下獨將何以哉? 近年以來, 殿下求治不懈, 好學忘倦, 思臻善道, 冀聞高論, 故朝廷士大夫, 洽然將有回心向道之志, 而任言責者, 感激奮發, 咸欲爲殿下盡言, 公道始達, 士氣思振。 然自經大禍, 怵怯之心, 尙未消釋, 如大病之後, 氣力羸脆, 苟不養元氣, 藥餌之得其方, 則安保其死亡之不至歟? 今之言者, 上而宰相不肯; 下而群小側目, 然而抗顔不縮者, 只恃殿下, 而殿下又厭之, 則孑孑忠志之流, 其終何托? 臣知遞臺諫之敎一下, 彈冠相慶之人已衆也。 君子將爲小人所圖, 而四散於巖壑, 則殿下其誰與共國乎? 殿下邈然孤立乎上, 雖欲聞實言, 其可得乎? 國家之治亂、安危, 未可知也。 伏願殿下, 悔過自責, 發於辭命, 使國人昭然知臺諫之無過、遞職之錯誤, 而且將求言于中外, 以問失政, 孜孜聽納, 從諫弗咈如大禹、成湯, 拜言改過之實然後, 言路可以復開、士氣可以復振矣。 不然則臣未敢知也, 今之言者, 皆曰: "臺諫之疏, 本無過言也, 入之累日, 主上無過之之言; 宰相無過之之議, 而李誠彦之疏, 至然後, 過越之論, 始出於上下, 此必主上惑於誠彦之讒言, 假以他事而遞之也。" 其言騰播, 聞者驚怪。 臣竊未敢信也, 若殿下實惑讒譖, 假事施怒, 則是亂政覆邦之兆也, 以殿下之明聖, 寧有是乎? 然一日之間, 特職李荇、全遞臺諫, 情迹不能無嫌, 外人之疑宜哉。 臣竊觀誠彦之疏, 其言不全爲李荇發, 大意則煽起大禍, 濁亂朝廷耳。 誠彦, 性本暴猾陰凶, 猜危險詖, 特一惡少, 酒色、鷹犬、賭博之雄耳。 加以忌嫉良善, 貪亂樂禍, 欲因此, 陰售其術, 造爲無形之事, 布陳不測之言, 巧飾百端, 萋菲成文, 僞若直言, 沮毁公議; 詐捏時病, 排陷士林。 深謀詭計, 莫測其變, 見之者易眩、聞之者易惑, 而欲令上下疑離, 朝政昏亂, 自古小人之排擠忠正、欺罔上聰, 未有若是之巧也。 若爲一荇而論救, 則何必歷毁一時之事, 若是其誣歟? 諉扶一人, 盡陷一時, 術亦深矣。 誠彦之輩, 先以其議, 飛言于宰相, 邪讃百變, 以動其心, 知宰相之議, 亦出于是, 而殿下之可搖然後, 排群論而上其疏, 宰相或有面謾, 而譽之者, 殿下外若不惑, 而中則生疑, 言若不納, 而實用其意, 誠彦偃然退坐, 已窺殿下之深淺矣。 《詩》曰: "讒人罔極, 交亂四國", 此之謂乎! 上使殿下不信臺諫; 中使宰相失導殿下; 下使士林罔敢措手, 公論消而正道廢; 士氣摧而國脈沮, 群枉雀躍, 衆正索寞, 朝綱頹靡, 政事紊舛, 而無一人力陳正議, 斥露邪術, 以暴厥罪, 可勝痛哉? 昔虞舜誅四凶, 天下咸服; 孔子誅少正卯而魯國治, 小人之害人邦國者不誅, 無以安邦國, 故聖人誅之。 臣聞, 成廟朝任士洪進曰: "臺諫之言, 不可盡聽, 往往而譴責之, 可也。" 成廟洞照其情狀, 而不加顯戮, 終貽廢朝之禍。 而今觀之, 士洪之言, 愚而見著者也; 誠彦之言, 隱而奸暴者也。 又聞, 廢朝柳子光憤嫉士類, 羅織無辜, 構成大禍, 一網打盡。 而今觀之, 子光遭遇昏狂, 而濟其術也; 誠彦欲誤聖明, 而售其奸也。 然則合二人之罪而罪之, 亦可也。 《詩》曰: "殷鑑不遠, 在夏后之世。" 廢朝之亂, 殿下所親覩。 原由, 奸人憤怨士林, 構陷忠良, 以啓殺戮之端, 遂至名臣、直士肝膽塗地, 而宗社覆亡, 不容一髮, 尙賴殿下之再造, 艱難扶持, 以至今日。 幺麽誠彦, 又欲傾亂朝廷, 陰試其手, 凡有血氣者, 孰不欲加之以顯戮哉? 伏願殿下, 明正典刑, 使人人灼知其罪, 宗社之福也。 豈可以封章, 而宥之哉? 其言狂妄, 則置之可也; 愚賤則恕之可也, 今不爲狂妄, 不爲愚賤, 而深險詭譎, 圖危謀亂, 其罪可勝言哉? 若曰封事之人, 不可加罪, 則是愚且妄也。 宰相密護私庇, 不暴白其罪, 則非謀國之良也; 臺諫而怵奸畏譖, 不力請其罪, 則非爲君之忠也。 嗚呼! 徇私忘公, 圖安避禍, 人情所趨, 孰肯直其道, 正其論, 以取人之怨哉? 士習之鄙陋、氣節之萎薾, 占此可知。 凡今之人, 不爲長慮, 惟務苟安, 不知大不可安者, 伏於小安之中, 而視之不救, 坐恃自安, 如其自安, 不亦善乎? 如不自安, 終當奈何? 不分是非、邪正, 含糊偸漫, 以竢自安, 非所聞也。 是以, 智者見幾而圖, 況事之易著、奸之易露者哉? 是故, 臣以爲, 不罪誠彦, 無以安朝廷也。 且其言之誣罔, 聖明所痛察, 固不待辨破也, 然所謂時議、外議云者, 尤足以見其羅織之術也。 若以爲, 下人論議國政, 則在上之所易惡, 故自古小人之謀害忠良者, 必曰: "政在下議, 不在朝廷。" 激怒人主, 人主不明, 一有所惑, 則反讎忠良, 以亂其國, 有國者可不察乎? 古之聖主, 至使庶人謗、商旅議者, 欲廣聞其失政也。 淸議在下, 則雖衰世, 猶足以扶持公道, 況今士氣之沮喪久矣, 未聞其行也。 假令一二志士, 慕古憫今, 而一言時事, 遂指爲非議, 今政可乎? 孔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遜。" 然則於士之危言, 可占其邦之有道矣。 若惡其言論, 則人將鉗口結舌, 狼顧脅息如暴秦然後, 可以爲治乎? 其誣爲時議、外議者, 此空一國之言也。 今者聖明在上, 公卿在下, 一政之發, 大臣論之, 臺諫爭之, 務使當理, 政令欲一, 朝綱欲立。 然而曰: "政歸外議", 何也? 其心不難知矣。 君子正色立朝, 頓綱振紀, 行身以實, 論事以正, 則固不可以他事誣陷。 若曰: "政出於下", 則可以一網而盡, 故舞凶立標, 盡襲以時議、外議, 奸人之誣讒擧此, 可推其他矣, 是知憸邪之人, 不獨誠彦也。 平時被駁於臺諫, 或不容於士論者, 咸欲藉荇之去, 而暗報其怨, 託詆臺諫, 歷論士類, 騁訕馳毁, 而聞之者不察, 轉相非是, 亦可嘆矣。 大凡邇來, 篤道循理之士、抗言直諫之人, 間有登揚, 出入乎臺諫、侍從, 或開陳道學之源, 講明修齊之實, 或不諱時政之失, 辨別賢邪之分, 正論法言, 布達於朝廷, 人心自然矜束, 稍知惡之可羞, 積久陋習, 漸自斷絶, 酒色淫穢之徒、儇浮譎詐之曹, 不敢自恣, 群怒而衆怨之, 譁爲謗議, 窺搖正直, 相與言曰: "主上求治太急, 下人爲善甚迫, 此豈致治之道歟?" 嗚呼! 小人之惡治、好亂如是。 夫且曰: "某於上前, 陳某言, 大是異事; 某與某人, 聚會講學, 此乃朋黨; 某於某處, 論某人之失, 是爲私憤。" 胥動浮言, 熒惑人聽, 必欲人人懷不平之心, 君子不得安其身, 動輒指觸, 務爲傾軋。 然如此之人, 亦豈多乎哉? 大抵今時之病, 徒務苟且姑息, 而不問曲直、不擇賢愚, 同收竝用, 未嘗分辨。 故賢未必在高位; 邪未必在下位, 是非蒙昧, 黑白倒置, 方正見侮於邪枉, 正道或有所湮晦, 良可悲夫! 賢邪用舍, 實關治亂, 未審殿下知其賢而用之勿二乎, 知其邪而去之勿疑乎。 小或不察, 則邪之所混, 而治亂之所分也, 可不愼耶? 伏願殿下, 果知其賢, 則信而用之, 不爲邪譖所移; 果知其邪, 則去而絶之, 不爲浮議所動, 明示好惡然後, 正士滿朝, 而人皆革非爲善矣。 自古小人指斥君子, 亦有數語, 曰朋黨、曰僞學、曰詭異强作, 曰釣名沽直, 千謀萬計, 必中而後已。 君子則不然, 正己守道, 進退以禮, 得失付命, 惟義之安。 嗚呼! 漢有黨錮之禍, 而王室從而亡; 宋有僞學之謗, 而君子不得志, 此在聖明所當加察也。 伏覩殿下, 講學之功不篤、(輯)〔緝〕 熙之實未盡, 擇善或不明, 執德或不固, 其於群議騷動, 難保其不動, 臣未審殿下之志慮, 果如何也? 殿下與儒臣, 講劘學術, 非一朝夕矣, 必知格致之方、存省之道矣, 將用力於獨地, 而爲應事接物之本者, 如日月之昭明, 則光臨群臣, 賢邪自不得遁其情矣, 何讒言之足懼哉? 然巧言, 大禹所畏; 侫人, 孔子欲遠, 聖人必不爲其所移, 而愼之, 若是其慮周矣。 伏願殿下, 日開經筵, 親近儒臣, 切磋義理之奧, 謹辨心術之微, 使事物之變, 瞭然眼前, 而且將窮理, 以開其知持敬, 以養其心, 常令此心之德, 光明正大, 不容一毫之私焉, 則不但不爲異議所昏, 足以爲修齊治平之本, 而基宗社萬年維持鞏固之業矣, 殿下潛心焉。 臣伏聞讒人之煽亂, 不勝憂慮, 臣雖微賤, 職忝侍從, 而病不得進詣論啓, 退伏於家, 情不自已, 仰陳所懷。 極知言之一發, 身且難保, 然愛身戀爵, 抱言不達, 以負殿下, 非臣之所忍也。 言有盡而意未畢白, 徒仰天流涕而已。

答疏曰: "前臺諫之疎, 有朝廷怨憤乖爭不和之言, 予實驚焉, 以臺諫方入試場, 故不卽議之耳。 雖有紛亂之言, 爲臺諫者, 不爲取信, 則風氣澟然, 可以鎭肅人心, 又何疑夫囂囂輕薄之議乎? 李荇則聽大臣之言而卽敍之, 不用誠彦之疏明矣。 且予與侍從, 講學旣久, 雖未能篤道, 已有定向, 何可以一人之言, 遽搖其心乎?

【史臣曰: "一時館僚中, 遵最少而富文學, 其聲名之重, 亞於趙光祖。 慷慨論事, 無所顧慮, 常在上前, 危言激論, 聳動人聽, 然大臣多嫉之。 時以病在家, 上疏論彦之罪, 請置重典, 且以臺諫不力請其罪爲非, 言多過越, 雖趙光祖諸人見之, 不以爲是。"】

失, 非政丞之失也。 其勿辭。" 光弼等再辭曰: "所謂進賢退邪, 分別賢愚者, 非百執事之謂也, 乃謂臣等所處地位也。" 傳曰: "上疏之意, 亦欲使政丞等惕慮而已。 豈欲遞之而言乎? 其毋辭。" 光弼等三啓曰: "雖無請遞之言, 物論如此, 臣等豈敢在職乎? 傳曰: "朝廷當更加勉力爲之。 其勿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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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30권, 중종 12년 10월 30일 壬申 1/1 기사 /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대간을 간 일을 논핵한 홍문관 수찬 기준의 상소문

국역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기준(奇遵)이 상소(上疏)하였다. 대략,

"듣건대 접때 대간의 상소를 대신에게 물어서 대간을 죄다 갈았으므로, 물의가 어수선하고 인심이 놀라와한다 한니, 시말을 헤아리지 못하여 갈수록 답답합니다. 소가운데에 어떤 말이 지나치기에, 전하께서 지나치다고 생각하시고 대신들도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드디어 언론을 맡은 신하를 내쳤는지 신은 그 까닭을 모릅니다. 대간은 임금의 이목(耳目)이요 공론이 부탁된 바이니, 일을 헤아리고 이치에 따라 대신과 함께 득실(得失)을 논하고 시비(是非)를 다투는 것은 대간의 일입니다. 말단의 관원으로서 임금에게 굽히지 않고 대신을 따르지 않고서, 정론(正論)을 말하여 독립(獨立)하고, 중구(衆口)에 시달려도 변치 않기가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전하의 과실과 정사(政事)의 어그러짐과 인물의 현부(賢否)와 백성의 휴척(休戚)을 어찌 죄다 말하게 하고 말한 것을 죄다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마는, 전하께서 간언(諫言)을 좋아하시는 성실이 있고 대간에게 말을 다하는 성실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는데도 공론이 아직 없어지지 않고 언로(言路)가 아직 막히지 않은 것은, 참으로 전하께서 말에 대해서 죄주기까지 하시는 일이 없고 대간이 입을 다물기까지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다투고 한 사람을 논박하는 데에 대해서는 더욱 쉽게 따르셔야 마땅한데도 달을 넘기고 때를 넘겨 지리하게 권태하시매, 덕(德)은 전하에게서 드러나지 않고 원망은 대간에게 먼저 돌아가므로, 뭇 소인(小人)의 비방이 다투어 일어나고 대간의 기풍은 지쳐서 떨치지 못하니, 이것이 기강이 서지 않는 까닭이요 공론이 행해지지 않는 까닭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간언을 순하게 따르지 못하시고 또 구언(求言)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시고서, 도리어 말하는 자를 미워하여 벼슬을 갈기까지 하셨으니, 신은 전하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전하의 뜻은, 대간이 언론을 과격하게 하여 조정을 소요하게 하였다 하여, 장차 조정을 안정시킬 방법을 꾀하시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대간을 훼손하고서 조정을 안정시킨 일은 예전부터 없는 일이니, 이는 남들이 듣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정이 화목하지 않은데도 화목하다고 대간이 말하면 이것은 참으로 속이는 것이나, 조정이 불화하지 않은데도 불화하다고 대간이 말한다 해서 화목에 무슨 방해가 되겠습니까? 대저 지난날의 우환을 논하는 것은 장래의 병통을 구제하기 위함이고, 미연의 폐단을 말하는 것은 오늘날의 일을 삼가기 위함입니다. 말하되 다하지 않으면 일의 정상을 보일 수 없고, 말하되 곧게 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대간의 소를 보면 과격한 언론이 없는데도, 전하께서 그르다 하시니 대신도 전하의 뜻을 맞추어 다들 그르다 하되, 들어가서는 다투어 그 그름을 배척하여 갈도록 유도하고, 나와서는 갈지 말아야 한다고 관례에 따라 계청(啓請)하니, 이것이 참으로 무슨 마음입니까? 위로는 그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아서 전하께서 잘못을 면하게 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언관(言官)을 편안하게 보존하여 조정이 안녕하도록 힘쓰지 못하니, 대신의 임금을 위한 충성스런 보좌와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계책이 이럴 수 있습니까? 대간이 된 자가 말을 속에 담아 두고 내지 않으며 일을 보고도 밝히지 않아야 대신들의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충언(忠言)이 아뢰어지지 않고 이익과 병폐를 들을 수 없어서 나라가 불리하게 되어 가면 대신들만은 편안하겠습니까? 이미 정성과 지혜를 다하여 충고해서 선도하지 못하고서 도리어 말하는 자를 내쳐서 언로(言路)를 병들게 한는 것은, 그것이 당연한지 신은 모르겠습니다.

또 듣건대, 성교(聖敎)에 대간을 죄주고자 한다 하셨다는데, 참으로 그런 분부를 하셨습니까? 이것은 나라를 잃을 말이니, 종사(宗社)의 복(福)이 아닙니다. 낯빛이 자만(自慢)하여도 사람을 멀리 내치게 되는데, 더구나 죄를 주려 한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모두 아양떨고 아첨하여 제 몸을 이롭게 하고 허물을 피하는 데에 힘쓸 것이니, 전하께서는 홀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근년 이래로 전하께서 구치(求治)를 게을리하지 않고 호학(好學)의 뜻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선도(善道)가 이르기를 바라고 고론(高論)이 들리기를 바라시므로, 조정의 사대부들이 모두 마음을 같이하여 향도(向道)할 뜻을 가져서 언책(言責)을 맡은 자들이 감격하여 분발해서 모두들 전하를 위하여 말을 다하니, 공도(公道)가 비로소 통달하고 사기(士氣)가 떨칠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화(大禍)를 겪은 뒤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것이 마치 큰 병을 앓은 뒤에 기력이 없는 것과 같으니, 원기를 기르는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어떻게 죽기에 이르지 않도록 보장하겠습니까? 지금 말하는 자를, 위로는 재상들이 좋아하지 않고 아래로는 뭇 소인이 눈을 흘깁니다. 그러나 엄정한 낯빛으로 위축하지 않는 자는 전하만을 믿는데, 전하께서도 싫어하시면 외로운 충지(忠志)의 무리는 마침내 어디에 의탁하겠습니까? 대간을 갈라는 분부가 한번 내려지매 관(冠)을 정제하고 사진(仕進)할 차비를 하며 서로 경축하는 사람이 벌써 많다는 것을 신은 압니다. 군자가 장차 소인의 도모하는 바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초야에 묻히면 전하께서는 누구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전하께서 아득히 위에서 고립하시면 참된 말을 듣고자 하더라도 되겠습니까? 국가의 치란(治亂)·안위(安危)를 알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자책하여 사명(辭命)에 나타내시어, 백성으로 하여금 대간에게 잘못이 없고 벼슬을 간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환히 알게 하시고, 또 장차 중외(中外)에 구언(求言)하여 실정(失政)을 물어서 힘써 받아들이고 성(盛)하게 간언(諫言)을 따르되 마치 대우(大禹)·성탕(成湯)처럼 간언에 감사하고 잘못을 고치는 성실이 있게 하소서. 그래야만 언로가 다시 열릴 수 있고 사기가 다시 떨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이 감히 알 수 없습니다마는, 지금 말하는 자가 다들 ‘대간의 소에는 본디 지나친 말이 없었으며, 소가 들어간 지 여러 날이 지나도 주상(主上)께서 지나치다는 말씀이 없고 재상들도 지나치다는 의논이 없었는데 이성언(李誠彦)의 소가 올라온 뒤에 지나치다는 논의가 비로소 상하에서 나왔으니, 이것은 반드시 주상께서 이성언의 참언(讒言)에 현혹되어 다른 일을 핑계로 가신 것이다.’ 하며, 그 말이 요란히 전파되매 듣는 자가 놀랍고 괴이하게 여기는데, 신이 감히 믿지는 않으나, 만약에 전하께서 참으로 참언에 현혹되어 다른 일을 빌어 노여움을 부리셨다면 이는 정치를 어지럽게 하여 나라를 뒤엎을 징조이니, 전하의 성명(聖明)으로 어찌 이런 일이 계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루 사이에 특별히 이행(李荇)에게 벼슬을 주고 대간을 온통 갈았으니, 정적(情迹)에 혐의가 없을 수 없고 외간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도 마땅합니다.

신이 이성언의 소를 보건대 그 말이 모두 이행을 위하여 낸 것이 아니라, 큰 뜻은 큰 화(禍)를 일으켜서 조정을 어지럽히려는 것입니다. 이성언은 성품이 본디 사납고 교활하고 음흉하며 남을 시기하고 위해(危害)하고 마음이 비뚤어졌으므로, 하나의 악한 젊은이로서 주색(酒色)·사냥·도박을 일삼는 데에 뛰어난 자일 뿐입니다. 게다가 착한 사람을 시기하고 화란(禍亂)을 즐겨, 이로 인하여 넌지시 제 술수를 부리고자, 형적이 없는 일을 만들어내고 불측한 말을 벌여, 온갖 방법으로 교묘히 꾸며서 참언을 글로 만들어, 직언(直言)인 듯이 속여서 공의(公議)를 저훼(沮毁)하고, 시병(時病)이라 속여서 사림(士林)을 배함(排陷)합니다. 간사한 계책을 깊이 꾀하고 그 변화를 헤아릴 수 없게 하여 보고 듣는 사람이 현혹되기 쉽게 해서, 상하가 의리(疑離)하고 조정을 혼란(昏亂)하게 하고자 하니, 예전부터 지금까지 소인으로서 충정(忠正)한 사람을 배척하고 상총(上聰)을 기망하는 것이 이처럼 교묘한 자는 없었습니다. 만약에 한낱 이행(李荇)을 위하여 논구(論救)한다면, 어찌하여 반드시 한때의 일을 두루 헐뜯어 이처럼 무함하겠습니까? 한 사람을 구한다는 핑계로 한때의 사람을 모조리 무함하니, 술수 또한 깊습니다.

이성언의 무리가 먼저 그 의논을 재상들에게 비언(飛言)하여 사찬(邪讚)을 여러 가지로 변화 있게 해서 그 마음을 동요하게 하여, 재상의 의논도 여기에 따라 나와서 전하도 동요할 수 있음을 안 뒤에 군론(群論)을 배척하여 그 소를 올리매, 재상 중에는 혹 겉으로 거짓 칭찬하는 자가 있고, 전하께서는 겉으로 의혹하지 않는 듯하나 속으로는 의혹을 일으켜, 말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나 실은 그 뜻을 채용하시니, 이성언이 태연히 물러앉아서 전하의 깊이를 엿봅니다. 《시경(詩經)》에 ‘참소하는 사람이 끝이 없어 사국(四國)을 어지럽힌다.’ 한 것이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위로는 전하로 하여금 대간을 믿지 않게 하고, 가운데로는 재상으로 하여금 전하를 잘못 인도하게 하고, 아래로는 사림(士林)으로 하여금 감히 손을 쓰지 못하게 하매, 공론이 사라져서 정도(正道)가 없어지고, 사기(士氣)가 꺾여서 국맥(國脈)이 막히고, 뭇 그른 것은 날뛰고 뭇 바른 것은 적막하여 조강(朝綱)이 퇴폐하고 정사(政事)가 문란하되, 힘껏 정의(正議)를 아뢰어 사술(邪術)을 배척하고 그 죄를 폭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통탄함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순(舜)임금이 사흉(四凶)을 제거하고서 천하가 모두 복종하였고, 공자(孔子)가 소정묘(少正卯)를 제거하고서 노(魯)나라가 다스려졌으니, 나라를 해치는 소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를 편안하게 할 수 없으므로 성인(聖人)이 제거한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성묘조(成廟朝)에 임사홍(任士洪)이 진언(進言)하기를 ‘대간의 말을 죄다 들어 주어서는 안 되며, 이따금 견책해야 합니다.’ 하였는데, 성묘께서 그 정상을 환히 아시고도 드러나게 주륙(誅戮)하지 않으시어, 마침내 폐조(廢朝)의 화(禍)를 끼쳤다 합니다. 지금 보면, 임사홍의 말은 어리석으나 현저하고, 이성언의 말은 은미하나 간폭(奸暴)합니다. 또 듣건대, 폐조에서 유자광(柳子光)이 사류(士類)에 대해 분노하고 시기하여, 무고한 사람을 얽어서 큰 화를 만들어 일망타진하였다 합니다. 지금 보면 유자광은 혼암한 임금을 만나서 제 술수를 부렸고, 이성언은 성명(聖明)을 그르쳐서 제 간사를 부리려 합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죄를 합쳐서 죄주어도 됩니다.

《시경(詩經)》에 ‘은(殷)나라가 거울삼을 일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하(夏)나라 임금의 세상에 있다.’ 하였거니와, 폐조의 난정(亂政)은 전하께서 친히 보신 바입니다. 원인은 간사한 사람이 사림에 대해 분노하고 원망하여 충량(忠良)을 무함해서 살육의 꼬투리를 열어 놓은 데에서 시작하여, 드디어 명신(名臣)·직사(直士)의 간담(肝膽)이 땅에 맥질하게 되고 종사(宗社)의 복망(覆亡)이 바로 닥쳐왔으나, 그래도 전하의 재조(再造)에 힘입어 어렵게 부지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하치않은 이성언이 또 조정을 경란(傾亂)하고자 넌지시 제 솜씨를 시험하니, 무릇 혈기가 있는 자라면 누군들 드러나게 주륙하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 전형(典刑)을 밝게 시행하여 사람들이 그 죄를 환히 알게 하소서. 그러면 종사의 복이 되거니와, 어찌 봉장(封章)이라 하여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이 광망(狂妄)하다면 버려 두어도 되고 우천(愚淺)하다면 용서하여도 되겠으나, 광망한 것도 아니고 우천한 것도 아니며 매우 음험하고 간사하여 위란(危亂)을 꾀하는 것이니, 그 죄를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봉사(封事)한 사람에게 죄를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리석고도 망령된 것이며, 재상이 은밀히 비호하여 그 죄를 폭로하지 않는다면 나라 일을 꾀하는 양책(良策)이 아니며, 대간으로서 간사하고 참소하는 자를 두려워하여 그 죄를 힘껏 청하지 않는다면 임금을 위한 충성이 아닙니다.

아, 사(私)를 따르고 공(公)을 잊으며, 편안한 것을 꾀하고 화(禍)를 피하는 것이 인정(人情)의 향하는 바인데, 누가 그 도(道)를 바르게 하고 그 말을 바르게 하여 남의 원망을 사려 하겠습니까? 사습(士習)이 비루하고 기절(氣節)이 위축된 것은 이것으로 점쳐 알 수 있습니다. 무릇 금세 사람은 앞날을 염려하지 않고 당장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힘쓰므로, 크게 불안한 것이 조금 편안한 가운데에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서, 보고도 구제하지 않고 앉아서 스스로 편안한 것에만 의지하나, 스스로 편안하다면 좋지 않겠습니까마는 스스로 편안하지 않다면 마침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시비(是非)·사정(邪正)을 가리지 않고 우물쭈물 지내면서 스스로 편안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기미를 보고서 도모하는 것인데, 더구나 쉽게 나타나는 일과 쉽게 드러나는 간사이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신은 이성언을 죄주지 않으면 조정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말이 무망(誣罔)이라는 것은 성명(聖明)이 잘 아시는 바이니, 워낙 변파(辨破)할 것도 없으나, 이른바 시의(時議)니 외의(外議)니 한 데에서 더욱 그 죄를 얽어 만드는 술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아랫사람이 국정(國政)을 논의한다고 한다면 위에서 싫어하기 쉬운 것이므로, 예전부터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해치려고 꾀하는 소인은 반드시 ‘정사(政事)가 아랫사람의 의논에 달려 있고 조정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하여 임금을 격노하게 하는데, 임금이 밝지 못하여 한번 현혹되는 바가 있으면 도리어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원수로 삼아서 나라를 어지럽히게 되니, 나라를 가진 사람으로서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 성주(聖主)가 서인(庶人)에게까지 비방할 수 있게 하고 상려(商旅)에게까지 논의할 수 있게 한 것은 그 실정(失政)을 널리 듣고자 한 까닭입니다. 청의(淸議)가 아래에 있으면 비록 말세일지라도 공도(公道)를 부지할 수 있는데, 더구나 지금은 사기가 저상(沮喪)된 지 오랬는데도 그 시행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한두 지사(志士)가 옛일을 사모하고 오늘날의 일을 민망히 여겨서 시사(時事)에 대하여 한 마디 말을 하더라도 드디어 그른 의논이라 지칭하니, 지금의 정사가 잘되겠습니까?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언행(言行)을 엄하게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실을 엄하게 하나 말은 순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만약에 그 언론을 싫어한다면, 사람들이 장차 입을 다물고 혀를 묶어 두며 이리처럼 돌아보고 숨을 죽일 것이니, 마치 포학한 진(秦)나라 때와 같이 된 뒤에야 다스려진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그 시의니 외의니 무고하는 것은 일국을 공허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지금 성명(聖明)이 위에 계시고 공경(公卿)이 아래에 있으므로, 한 가지 정령(政令)이 나올 적에는 대신이 그것을 의논하고 대간이 그것을 간쟁하여 이치에 맞도록 하기에 힘쓰니, 정령이 한결같이 되어 가고 조강(朝綱)이 서 갑니다. 그런데도 정령이 외의에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 마음을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군자가 정색(正色)하고 조정에 서서 기강을 가다듬고 떨치며 성실하게 행신(行身)하고 바르게 논사(論事)하면 워낙 다른 일로는 무함할 수 없거니와, 만약에 ‘정령이 아래에서 나온다.’고 말한 것 같으면 일망타진할 수 있으므로, 흉계를 부리고 명목을 내세워 모두가 시의니 외의니 하는 것을 인습하니, 간사한 사람의 참소는 이것을 들어서 그 밖의 것도 미루어 알 수 있거니와, 간사한 사람은이성언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평시에 대간에게 논박받거나 혹 사론(士論)에 용납되지 못하는 자들이 모두 이행(李荇)이 물러간 것을 빙자하여 넌지시 그 원한을 갚고자 하여, 가탁하여 대간을 헐뜯고 두루 사류를 논하여 헐뜯기에 바쁜데, 이것은 듣는 자가 살피지 않고 서로들 전파하며 옳지 않다고 한는 것도 개탄할 일입니다.

대저 요즈음 도(道)에 도탑고 이치를 따르는 선비와 항언(抗言)하고 직간(直諫)하는 사람이 간혹 등용되어 대간·시종에 출입하여, 혹 도학(道學)의 근본을 개진(開陳)하고 수신(修身)·제가(齊家)의 실지를 강명(講明)하거나 시정(時政)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현사(賢邪)의 구분을 변별(辨別)하여 바른 언론이 조정에 펴지매, 인심이 자연히 단속되어 악한 짓이 부끄럽다는 것을 조금 알아서, 오래 쌓였던 더러운 풍속이 점점 저절로 없어져 가니, 주색(酒色)으로 음탕한 무리와 경박하고 간사한 무리가 감히 방자하지 못하므로 떼 지어 노하고 무리지어 원망하여, 요란하게 비방하며 정직한 사람을 요동하려고 서로들 말하기를 ‘주상(主上)의 구치(求治)는 너무 급하시고 아랫사람의 위선(爲善)은 매우 다급하니 이것이 어찌 치평(治平)을 이루는 도리인가.’ 한니, 아아! 소인이 다스려지는 것을 싫어하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또 말하기를 ‘아무는 상 앞에 어느 말을 아뢰었으니 크게 틀린 일이다. 아무와 아무가 모여서 강학(講學)하였으니 이는 곧 붕당(朋黨)이다. 아무는 어느 곳에서 아무의 잘못을 논했는데 그것은 사분(私憤)이다.’ 하며 뜬말로 선동해서 사람들의 귀를 미혹하게 하여, 반드시 사람마다 불평한 마음을 갖게 하고자 하며, 군자가 자신을 안정하지 못하도록 걸핏하면 지적하여 모함하기를 힘씁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또한 어찌 많겠습니까?

대저 지금의 병폐는 구차하게 우선 편안히 넘어가는 데에만 힘써서, 곡직(曲直)을 따지지 않고 현우(賢愚)를 가리지 않고서 함께 모두 거두어 쓰고 분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진이가 반드시 높은 자리에 있지 못하고 간사한 자가 반드시 아랫자리에 있지 않으며, 시비(是非)가 흐리고 흑백(黑白)이 거꾸로 되어서, 방정(方正)한 사람이 간사한 자에게 깔보이고 정도(正道)가 혹 사라지게 되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어진이와 간사한 자를 쓰고 버리는 것은 참으로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데에 관계되는데, 전하께서는 어진 줄 알면 의심없이 쓰며 간사한 줄 알면 의심없이 물리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진이와 간사한 자가 뒤섞여 어지러워지는 갈림길이 되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과연 어진 줄 알면 믿고 써서 참소에 동요되지 말며, 과연 간사한 줄 알면 물리쳐 끊어서 경박한 의논에 동요되지 말아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명백히 보이소서. 그래야 바른 선비가 조정에 차고, 사람들이 다 그른 것을 고쳐서 착해질 것입니다.

예전부터 소인이 군자를 배척하는 데에 쓰는 몇 가지 말이 있습니다. ‘붕당(朋黨)’이니 ‘위학(僞學)’이니 ‘남다른 짓을 억지로 한다.’느니 ‘명예를 얻으려고 정직한 체 한다.’느니 온갖 꾀를 다하여 반드시 중상하고야 맙니다. 군자는 그렇지 않아서, 자기를 바루고 도(道)를 지키며 예(禮)에 따라 진퇴하고 득실(得失)을 천명(天明)에 붙이고서 의리에 좇아서 편안할 뿐입니다. 아, 한(漢)나라에는 당고(黨錮)의 화(禍)가 있어서 왕실(王室)이 따라서 망하였고, 송(宋)나라에는 위학(僞學)의 비방이 있어서 군자가 뜻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성명(聖明)이 잘 살펴야 할 일입니다.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강학(講學)의 공(功)이 도탑지 못하고 집희(緝熙)의 실(實)이 미진하시며, 택선(擇善)이 혹 밝지 못하고 집덕(執德)이 혹 굳지 못하시어, 뭇 의논이 소동할 때에 동요되지 않기가 어려우신 듯한데, 전하의 지려(志慮)가 과연 어떠하신지 신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 유신(儒臣)과 함께 학술을 강마하신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므로 반드시 격물(格物)·치지(致知)하는 방법과 존성(存省)하는 도리를 아실 것이니, 장차 홀로 계시는 곳에서 힘쓰시어 사물을 응접하는 근본을 해와 달처럼 밝게 하시면, 빛이 군신(群臣)을 비추어 어진이와 간사한 자가 저절로 그 정상을 숨길 수 없을 것입니다. 어찌 참언(讒言)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교언(巧言)은 대우(大禹)도 두려워하고 공자(孔子)도 멀리하고자 하였는데, 성인(聖人)이 반드시 그것에 동요되지 않기 위하여 그와 같이 삼갔으니, 그 염려가 주밀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경연(經筵)을 열어서 유신을 가까이하여, 의리의 깊은 뜻을 절차(切磋)하고 심술(心術)의 기미를 삼가 가려서, 사물의 변화를 환히 눈앞에 볼 수 있게 하시고, 또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넓히고 공경을 유지하여 마음을 길러서, 이 마음의 덕이 광명 정대하여 털끝만한 사(私)도 용납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면 이의(異議)에 혼란(昏亂)되지 않을 뿐 아니라, 넉넉히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하는 근본이 되고 종사(宗社)를 만년토록 견고하게 유지하는 사업의 터전이 될 것이니, 전하께서는 여기에 유념하소서.

신은 참소하는 사람이 난(亂)을 선동하는 것을 듣고서 우려되어 견딜 수 없으며, 신이 비록 미천하기는 하나 시종(侍從)의 벼슬에 있는데도 병 때문에 나아가서 논계(論啓)하지 못하고 집에 엎드려 있으니, 뜻을 스스로 누르지 못하여 품은 뜻을 아룁니다. 말을 한번 내면 몸 또한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아나, 몸을 아끼고 벼슬을 연모(戀慕)하여 말을 품어 두고 아뢰지 않아서 전하를 저버리는 것은 신이 차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말에는 한이 있어 뜻을 다 아뢰지 못하니, 하늘을 우러러보고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하였는데, 소(疏)에 답하기를,

"전 대간의 소에, 조정이 원분(怨憤)하고 괴쟁(乖爭)하여 불화하다는 말이 있으므로 내가 참으로 놀랐는데, 대간이 바야흐로 시장(試場)에 들어가기 때문에 곧 의논하지 않았다. 어지러운 말이 있더라도 대간이 된 자가 믿지 않으면, 풍기(風氣)가 늠연(澟然)하여 인심을 진정할 수 있는데, 또 어찌하여 그 떠드는 경박한 의논에 의혹되겠는가? 이행(李荇)은 대신의 말을 들어서 곧 서용(敍用)하였으니, 이성언의 소를 채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또 내가 시종들과 강학(講學)한 지 이미 오랬으므로, 도(道)에 도탑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정향(定向)이 있는데 어찌 한 사람의 말이 문득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겠는가?"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한때의 홍문관(弘文館) 동료 중에서 기준(奇遵)이 가장 젊었으나, 문학이 넉넉하여 그 명성이 조광조(趙光祖)에 버금갔다. 강개(慷慨)하여 일을 논하면 고려(顧慮)하는 바가 없었고, 늘 상(上) 앞에서 언론을 격렬하게 하여 사람들의 귀를 용동(聳動)시켰으나 대신들은 흔히 그를 미워하였다. 이때 병으로 집에 있으면서 상소로 이성언(李誠彦)의 죄를 논하여 중벌에 처할 것을 청하고, 또 대간이 그 죄를 힘껏 청하지 않은 것을 그르다고 하였다. 말에 지나친 데가 많으므로, 조광조와 같은 사람도 그것을 보고서 옳게 여기지 않았다.

원문

○壬申/弘文館修撰奇遵上疏, 其略曰:

伏聞, 頃以臺諫上疏, 訪于大臣, 盡遞臺諫, 物議洶洶, 人心駭愕, 莫測端倪, 久愈憫鬱。 疏中之語, 有何過越, 而殿下以爲過越; 大臣亦以爲過越, 而遂去言論之臣哉? 臣未知其故。 臺諫, 人主之耳目, 公論之所托。 揆事據理而與大臣, 論得失、爭是非者, 臺諫之事也。 以微末之官, 不屈於人主, 不徇乎大臣, 陳正論而獨立; 鑠衆口而不變, 豈不難哉? 殿下之過行、政事之乖錯、人物之賢否、生民之休戚, 其能使之盡言, 而言之盡納乎? 未聞殿下有好言之實; 臺諫有盡言之誠, 而公論尙未泯滅; 言路尙未杜塞者, 誠以殿下不至於罪言; 臺諫不至緘默耳。 然而一事之爭、一人之駁, 尤當易從, 而閱月踰時, 支離怠倦, 德不顯於殿下; 怨先歸於臺諫, 群小之謗讟爭起, 臺風疲勞而莫振, 紀綱之所以不立; 公論之所以不行也。 殿下旣不能從諫如流, 又不能竭誠求言, 而反忤言者, 以至遞職, 臣不審殿下之意也。 殿下之意, 豈不曰: "臺諫過激言論, 以騷擾朝廷, 而將謀所以安朝廷乎?" 然毁臺諫, 而安朝廷, 自古所無, 此不可使聞於人也。 朝廷不和, 而臺諫曰和, 則是誠欺誣也, 朝廷不爲不和, 而臺諫曰不和, 亦何害於和哉? 夫論已往之患者, 所以救將來之病也; 言未然之弊者, 所以愼今日之事也。 言之不盡, 無以見事之情; 言之不直, 無以達己之心。 伏見臺諫之疏, 未有過言激論, 而殿下非之, 大臣逢迎, 皆以爲非, 入則爭斥其非, 導之使遞; 出則例請不宜遞之, 是誠何心哉? 上不能格其非心, 使殿下免於過擧; 下不能安存言官, 務寧朝廷, 大臣之爲君忠輔、爲國嘉猷, 宜若是乎? 爲臺諫者, 蘊言不發, 覩事不白然後, 大臣之心安乎? 忠言不進, 利病莫聞, 國將不利, 則大臣其獨安乎? 旣不能竭誠盡智, 忠告善導, 而反去言者, 以病言路, 臣未知其然也。 又伏聞, 聖敎有欲罪臺諫, 誠有是敎乎? 此, 喪邦之言, 非宗社之福也。 色之訑訑, 拒人猶遠, 況欲加之以罪乎? 然則人將相率, 而趨於媚悅、謟諛, 利身遠辜之是務, 則殿下獨將何以哉? 近年以來, 殿下求治不懈, 好學忘倦, 思臻善道, 冀聞高論, 故朝廷士大夫, 洽然將有回心向道之志, 而任言責者, 感激奮發, 咸欲爲殿下盡言, 公道始達, 士氣思振。 然自經大禍, 怵怯之心, 尙未消釋, 如大病之後, 氣力羸脆, 苟不養元氣, 藥餌之得其方, 則安保其死亡之不至歟? 今之言者, 上而宰相不肯; 下而群小側目, 然而抗顔不縮者, 只恃殿下, 而殿下又厭之, 則孑孑忠志之流, 其終何托? 臣知遞臺諫之敎一下, 彈冠相慶之人已衆也。 君子將爲小人所圖, 而四散於巖壑, 則殿下其誰與共國乎? 殿下邈然孤立乎上, 雖欲聞實言, 其可得乎? 國家之治亂、安危, 未可知也。 伏願殿下, 悔過自責, 發於辭命, 使國人昭然知臺諫之無過、遞職之錯誤, 而且將求言于中外, 以問失政, 孜孜聽納, 從諫弗咈如大禹、成湯, 拜言改過之實然後, 言路可以復開、士氣可以復振矣。 不然則臣未敢知也, 今之言者, 皆曰: "臺諫之疏, 本無過言也, 入之累日, 主上無過之之言; 宰相無過之之議, 而李誠彦之疏, 至然後, 過越之論, 始出於上下, 此必主上惑於誠彦之讒言, 假以他事而遞之也。" 其言騰播, 聞者驚怪。 臣竊未敢信也, 若殿下實惑讒譖, 假事施怒, 則是亂政覆邦之兆也, 以殿下之明聖, 寧有是乎? 然一日之間, 特職李荇、全遞臺諫, 情迹不能無嫌, 外人之疑宜哉。 臣竊觀誠彦之疏, 其言不全爲李荇發, 大意則煽起大禍, 濁亂朝廷耳。 誠彦, 性本暴猾陰凶, 猜危險詖, 特一惡少, 酒色、鷹犬、賭博之雄耳。 加以忌嫉良善, 貪亂樂禍, 欲因此, 陰售其術, 造爲無形之事, 布陳不測之言, 巧飾百端, 萋菲成文, 僞若直言, 沮毁公議; 詐捏時病, 排陷士林。 深謀詭計, 莫測其變, 見之者易眩、聞之者易惑, 而欲令上下疑離, 朝政昏亂, 自古小人之排擠忠正、欺罔上聰, 未有若是之巧也。 若爲一荇而論救, 則何必歷毁一時之事, 若是其誣歟? 諉扶一人, 盡陷一時, 術亦深矣。 誠彦之輩, 先以其議, 飛言于宰相, 邪讃百變, 以動其心, 知宰相之議, 亦出于是, 而殿下之可搖然後, 排群論而上其疏, 宰相或有面謾, 而譽之者, 殿下外若不惑, 而中則生疑, 言若不納, 而實用其意, 誠彦偃然退坐, 已窺殿下之深淺矣。 《詩》曰: "讒人罔極, 交亂四國", 此之謂乎! 上使殿下不信臺諫; 中使宰相失導殿下; 下使士林罔敢措手, 公論消而正道廢; 士氣摧而國脈沮, 群枉雀躍, 衆正索寞, 朝綱頹靡, 政事紊舛, 而無一人力陳正議, 斥露邪術, 以暴厥罪, 可勝痛哉? 昔虞舜誅四凶, 天下咸服; 孔子誅少正卯而魯國治, 小人之害人邦國者不誅, 無以安邦國, 故聖人誅之。 臣聞, 成廟朝任士洪進曰: "臺諫之言, 不可盡聽, 往往而譴責之, 可也。" 成廟洞照其情狀, 而不加顯戮, 終貽廢朝之禍。 而今觀之, 士洪之言, 愚而見著者也; 誠彦之言, 隱而奸暴者也。 又聞, 廢朝柳子光憤嫉士類, 羅織無辜, 構成大禍, 一網打盡。 而今觀之, 子光遭遇昏狂, 而濟其術也; 誠彦欲誤聖明, 而售其奸也。 然則合二人之罪而罪之, 亦可也。 《詩》曰: "殷鑑不遠, 在夏后之世。" 廢朝之亂, 殿下所親覩。 原由, 奸人憤怨士林, 構陷忠良, 以啓殺戮之端, 遂至名臣、直士肝膽塗地, 而宗社覆亡, 不容一髮, 尙賴殿下之再造, 艱難扶持, 以至今日。 幺麽誠彦, 又欲傾亂朝廷, 陰試其手, 凡有血氣者, 孰不欲加之以顯戮哉? 伏願殿下, 明正典刑, 使人人灼知其罪, 宗社之福也。 豈可以封章, 而宥之哉? 其言狂妄, 則置之可也; 愚賤則恕之可也, 今不爲狂妄, 不爲愚賤, 而深險詭譎, 圖危謀亂, 其罪可勝言哉? 若曰封事之人, 不可加罪, 則是愚且妄也。 宰相密護私庇, 不暴白其罪, 則非謀國之良也; 臺諫而怵奸畏譖, 不力請其罪, 則非爲君之忠也。 嗚呼! 徇私忘公, 圖安避禍, 人情所趨, 孰肯直其道, 正其論, 以取人之怨哉? 士習之鄙陋、氣節之萎薾, 占此可知。 凡今之人, 不爲長慮, 惟務苟安, 不知大不可安者, 伏於小安之中, 而視之不救, 坐恃自安, 如其自安, 不亦善乎? 如不自安, 終當奈何? 不分是非、邪正, 含糊偸漫, 以竢自安, 非所聞也。 是以, 智者見幾而圖, 況事之易著、奸之易露者哉? 是故, 臣以爲, 不罪誠彦, 無以安朝廷也。 且其言之誣罔, 聖明所痛察, 固不待辨破也, 然所謂時議、外議云者, 尤足以見其羅織之術也。 若以爲, 下人論議國政, 則在上之所易惡, 故自古小人之謀害忠良者, 必曰: "政在下議, 不在朝廷。" 激怒人主, 人主不明, 一有所惑, 則反讎忠良, 以亂其國, 有國者可不察乎? 古之聖主, 至使庶人謗、商旅議者, 欲廣聞其失政也。 淸議在下, 則雖衰世, 猶足以扶持公道, 況今士氣之沮喪久矣, 未聞其行也。 假令一二志士, 慕古憫今, 而一言時事, 遂指爲非議, 今政可乎? 孔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遜。" 然則於士之危言, 可占其邦之有道矣。 若惡其言論, 則人將鉗口結舌, 狼顧脅息如暴秦然後, 可以爲治乎? 其誣爲時議、外議者, 此空一國之言也。 今者聖明在上, 公卿在下, 一政之發, 大臣論之, 臺諫爭之, 務使當理, 政令欲一, 朝綱欲立。 然而曰: "政歸外議", 何也? 其心不難知矣。 君子正色立朝, 頓綱振紀, 行身以實, 論事以正, 則固不可以他事誣陷。 若曰: "政出於下", 則可以一網而盡, 故舞凶立標, 盡襲以時議、外議, 奸人之誣讒擧此, 可推其他矣, 是知憸邪之人, 不獨誠彦也。 平時被駁於臺諫, 或不容於士論者, 咸欲藉荇之去, 而暗報其怨, 託詆臺諫, 歷論士類, 騁訕馳毁, 而聞之者不察, 轉相非是, 亦可嘆矣。 大凡邇來, 篤道循理之士、抗言直諫之人, 間有登揚, 出入乎臺諫、侍從, 或開陳道學之源, 講明修齊之實, 或不諱時政之失, 辨別賢邪之分, 正論法言, 布達於朝廷, 人心自然矜束, 稍知惡之可羞, 積久陋習, 漸自斷絶, 酒色淫穢之徒、儇浮譎詐之曹, 不敢自恣, 群怒而衆怨之, 譁爲謗議, 窺搖正直, 相與言曰: "主上求治太急, 下人爲善甚迫, 此豈致治之道歟?" 嗚呼! 小人之惡治、好亂如是。 夫且曰: "某於上前, 陳某言, 大是異事; 某與某人, 聚會講學, 此乃朋黨; 某於某處, 論某人之失, 是爲私憤。" 胥動浮言, 熒惑人聽, 必欲人人懷不平之心, 君子不得安其身, 動輒指觸, 務爲傾軋。 然如此之人, 亦豈多乎哉? 大抵今時之病, 徒務苟且姑息, 而不問曲直、不擇賢愚, 同收竝用, 未嘗分辨。 故賢未必在高位; 邪未必在下位, 是非蒙昧, 黑白倒置, 方正見侮於邪枉, 正道或有所湮晦, 良可悲夫! 賢邪用舍, 實關治亂, 未審殿下知其賢而用之勿二乎, 知其邪而去之勿疑乎。 小或不察, 則邪之所混, 而治亂之所分也, 可不愼耶? 伏願殿下, 果知其賢, 則信而用之, 不爲邪譖所移; 果知其邪, 則去而絶之, 不爲浮議所動, 明示好惡然後, 正士滿朝, 而人皆革非爲善矣。 自古小人指斥君子, 亦有數語, 曰朋黨、曰僞學、曰詭異强作, 曰釣名沽直, 千謀萬計, 必中而後已。 君子則不然, 正己守道, 進退以禮, 得失付命, 惟義之安。 嗚呼! 漢有黨錮之禍, 而王室從而亡; 宋有僞學之謗, 而君子不得志, 此在聖明所當加察也。 伏覩殿下, 講學之功不篤、(輯)〔緝〕 熙之實未盡, 擇善或不明, 執德或不固, 其於群議騷動, 難保其不動, 臣未審殿下之志慮, 果如何也? 殿下與儒臣, 講劘學術, 非一朝夕矣, 必知格致之方、存省之道矣, 將用力於獨地, 而爲應事接物之本者, 如日月之昭明, 則光臨群臣, 賢邪自不得遁其情矣, 何讒言之足懼哉? 然巧言, 大禹所畏; 侫人, 孔子欲遠, 聖人必不爲其所移, 而愼之, 若是其慮周矣。 伏願殿下, 日開經筵, 親近儒臣, 切磋義理之奧, 謹辨心術之微, 使事物之變, 瞭然眼前, 而且將窮理, 以開其知持敬, 以養其心, 常令此心之德, 光明正大, 不容一毫之私焉, 則不但不爲異議所昏, 足以爲修齊治平之本, 而基宗社萬年維持鞏固之業矣, 殿下潛心焉。 臣伏聞讒人之煽亂, 不勝憂慮, 臣雖微賤, 職忝侍從, 而病不得進詣論啓, 退伏於家, 情不自已, 仰陳所懷。 極知言之一發, 身且難保, 然愛身戀爵, 抱言不達, 以負殿下, 非臣之所忍也。 言有盡而意未畢白, 徒仰天流涕而已。

答疏曰: "前臺諫之疎, 有朝廷怨憤乖爭不和之言, 予實驚焉, 以臺諫方入試場, 故不卽議之耳。 雖有紛亂之言, 爲臺諫者, 不爲取信, 則風氣澟然, 可以鎭肅人心, 又何疑夫囂囂輕薄之議乎? 李荇則聽大臣之言而卽敍之, 不用誠彦之疏明矣。 且予與侍從, 講學旣久, 雖未能篤道, 已有定向, 何可以一人之言, 遽搖其心乎?

【史臣曰: "一時館僚中, 遵最少而富文學, 其聲名之重, 亞於趙光祖。 慷慨論事, 無所顧慮, 常在上前, 危言激論, 聳動人聽, 然大臣多嫉之。 時以病在家, 上疏論彦之罪, 請置重典, 且以臺諫不力請其罪爲非, 言多過越, 雖趙光祖諸人見之, 不以爲是。"】

失, 非政丞之失也。 其勿辭。" 光弼等再辭曰: "所謂進賢退邪, 分別賢愚者, 非百執事之謂也, 乃謂臣等所處地位也。" 傳曰: "上疏之意, 亦欲使政丞等惕慮而已。 豈欲遞之而言乎? 其毋辭。" 光弼等三啓曰: "雖無請遞之言, 物論如此, 臣等豈敢在職乎? 傳曰: "朝廷當更加勉力爲之。 其勿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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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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