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144권, 성종 13년 8월 4일 庚子 2/2 기사 /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허귀손의 살인죄와 오계손의 불효죄에 대하여 의논하게 하다
국역
전에 허유례(許惟禮)의 아들 허귀손(許貴孫)이 영안도(永安道) 길성(吉城)에 있을 적에 그의 아내가 고독(蠱毒)662) 을 당하여 죽었으므로, 사람을 시켜 고독을 한 삼가(三加)와 월비(月非)를 죽여서 물에 던졌었다. 그 일이 발각되어 도망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체포되었다. 의금부(義禁府)에 명하여 추국(推鞫)하게 하니, 여러 차례 고문을 하여도 죄를 자복(自服)하지 아니하였다. 영돈녕(領敦寧) 이상, 의정부(議政府) 육조 판서(六曹判書)들을 불러 의논하도록 명하니,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공조 판서(工曹判書) 손순효(孫舜孝)·병조 판서(兵曹判書) 이계손(李繼孫)은 의논하기를,
"허귀손의 아내가 고독(蠱毒)을 당하여 죽었으면, 마땅히 감사(監司)나 수령(守令)에게 고소하여 그 죄상을 밝게 바로잡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고독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그 사실이 분명하지 아니하여 밝히기 어려우므로 실정(實情)을 알아내기 곤란합니다. 그런데도 허귀손은 제멋대로 생각하여 사람을 함부로 죽였습니다. 영안도(永安道)의 인심은 본래 완악(頑惡)하여, 정해년의 변란663) 때에 패역(悖逆)하였던 사람으로서 혹 전형(典刑)에 누락(漏落)되었던 이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이 모두 분개하고 한스럽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제 또 고의로 죄없는 이를 죽인 자를 만일 법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형법(刑法)을 그르치는 것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율문(律文)에 의거하여 처벌해야 합니다."
하고, 청송 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파천 부원군(坡川府院君) 윤사흔(尹士昕)·좌의정(左議政) 윤필상(尹弼商)·우의정(右議政) 홍응(洪應)·영돈녕(領敦寧) 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허귀손의 죄상은 징계해야 마땅합니다만, 그러나 이미 사형은 감하여 주라고 명령하였으니, 이는 살리는 것을 좋아하는 어진 덕(德)입니다. 그리고 마침 한재(旱災)를 당한 때이니만큼 죽은 자라면 어찌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자를 살려주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또한 실정을 조사하지 아니하고 죄를 결정하는 것은 적당하지 못한 일이니, 형벌을 더하여 실정을 알아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좌찬성(左贊成) 강희맹(姜希孟)·우찬성(右贊成) 허종(許琮)·이조 판서(吏曹判書) 정괄(鄭佸)은 의논하기를,
"허귀손이 사람을 죽인 죄상은 싸움을 하다가 잘못하여 죽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죽인 시체에〉 돌을 묶어서 물에 던졌고 그 죽인 자도 한 사람이 아니니, 그 잔인(殘忍)함이 너무 심하여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만일 재변(災變)을 이유로 하여 용서하여 준다면, 피살(被殺)된 자의 원혼(冤魂)도 애통(哀痛)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대벽(大辟)664) 은 자복(自服)을 하여야 법대로 시행하는 것이니, 그를 다시 취초(取招)하여 율문(律文)에 의거하여서 논단(論斷)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좌참찬(左參贊) 성임(成任)은 의논하기를,
"고의로 사람을 죽이고도 용서를 받으면, 뒤에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 장차 두려워 하고 꺼리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재변을 이유로 하여 그의 사형을 면하여 주었습니다만, 이제 다시 여러 신하들의 주청에 따라 죄를 주는 것이 무슨 옳지 못함이 있겠습니까? 다만 재변이 매우 심한 때이니만치 형을 집행할 시기가 아닌 듯하니, 다시 열흘이나 한 달쯤 보류(保留)하였다가 재결(裁決)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우참찬(右參贊) 이극증(李克增)은 의논하기를,
"허귀손이 고의로 사람을 죽인 죄는 마땅히 중한 법으로 처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사형을 감하라고 명령하였으니, 다시 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여러 의견에 따르도록 하겠다."
하였다. 또 오정(吳靖)의 첩(妾)의 아들 오계손(吳繼孫)의 일을 의논하게 하니, 정창손·한명회·심회·윤사흔·윤필상·홍응·윤호·성임·강희맹·이극증·이계손·손순효·정괄은 의논하기를,
"오정이 첩의 아들 오계손으로 하여금 종친(宗親)의 집안에 장가들게 하고 충찬위(忠贊衛)665) 에 속(屬)하게 하였으니, 이는 아들로 간주한 것입니다. 오정이 죽은 뒤 갑신년666) 에 비첩(婢妾) 고초(枯梢)가 적처(嫡妻) 동심(同心)과 더불어 오계손이 그 아비의 첩을 간통하였다고 고소(告訴)하였었습니다. 그 때 만일 무인년667) 에 작성(作成)하였다는 오계손의 불효(不孝)를 적은 유서(遺書)가 있었다면, 반드시 제출(提出)하여 보여서 판단하도록 하였을 것인데, 10년이 지난 계사년668) 에 이르러서야 그 유서를 제출하였으니, 정상(情狀)이 의심스럽습니다. 황원순(黃元順)이 성씨(成氏)를 모시고 회덕(懷德)의 본가(本家)에 돌아가 있다가 그가 죽은 뒤에 노비(奴婢)의 문서와 유서를 한백륜(韓伯倫)의 처소에 보냈다 하니, 그 사정이 얽히고 설켰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계손이 그 아비의 유서를 관(官)에 고하여 스스로 사연을 밝히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불태워 없앴던 것은 또한 사정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귀일(歸一)하여 분간(分揀)하지 않고서 구분 처리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할 듯하니, 청컨대 분명히 조사하여 옥사를 처단하게 하소서."
하니, 정창손 등에게 전교하기를,
"한재(旱災)가 있는 이래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겠다. 나는 원통한 옥사(獄事)가 있어서 그러한가 염려하여 이미 심리(審理)를 잘하도록 명령하였고, 원통하고 불쌍한 일이 있을까 염려하여 이미 신원(伸冤)하여 하소연하도록 명령하였으며, 뜻을 품고도 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이미 직첩(職牒)을 주었다. 그러한데도 하늘의 견책(譴責)이 이와 같으니, 나는 혹시 가혹(苛酷)한 정사를 한 것이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두려워한다. 옛날에 공자(孔子)가 태산(泰山)에서 부인(婦人)이 통곡하는 것을 듣고, 자로(子路)를 시켜 가서 그 사유를 묻게 하고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소자(小子)들아, 기록해 두도록 하라. 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고 하였으니, 가혹한 정사가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소생(蘇生)하겠는가? 그러니 경들이 모름지기 자세히 생각하여 말하라."
하자, 정창손 등이 아뢰기를,
"성명(聖明)의 시기에 무슨 가혹한 정사가 있겠습니까? 신 등이 만일 아는 바가 있으면 어찌 성상께서 간절하게 묻기를 기다리겠습니까? 그러나 마땅히 다시 생각하여 보고서 아뢰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14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66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가족-가족(家族)
- [註 662] 고독(蠱毒) : 뱀·지네·두꺼비 등의 독약을 사람에게 몰래 먹어서 배앓이·가슴앓이·토혈(吐血)·하혈(下血)·부종(浮腫) 등의 증세를 일으켜 점차 미치거나 실신하여 죽게 만드는 일.
- [註 663] 정해년의 변란 : 세조 13년(1467)에 영안도(永安道:咸鏡都의 별칭) 길주(吉州)의 호족 이시애(李施愛)가 지방적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북도(北道)의 수령을 남도의 인사로써 삼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북도인을 선동하여 일으킨 반란을 말함. 이때 이시애는 관군(官軍)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고, 이 난(亂)에 관련된 자들은 변방으로 유배되었음.
- [註 664] 대벽(大辟) : 사형(死刑).
- [註 665] 충찬위(忠贊衛) : 오위(五衛)의 하나인 충좌위(忠佐衛) 소속의 군대로서, 원종 공신(原從功臣:정공신(正功臣) 이외에 작은 공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공신의 칭호) 및 그 자손이 이에 속함.
- [註 666] 갑신년 : 1464 세조 10년.
- [註 667] 무인년 : 1458 세조 4년.
- [註 668] 계사년 : 1473 성종 4년.
원문
○初許惟禮子貴孫, 在永安道 吉城, 以其妻被蠱毒而死, 使人殺毒者三加及月非投水。 事發在逃, 至是捕獲。 命義禁府推鞫, 累拷不服。 命召領敦寧以上、政府、六曹判書議之。 領議政鄭昌孫、工曹判書孫舜孝、兵曹判書李繼孫議: "貴孫之妻, 雖被蠱毒而死, 當告監司、守令, 明正其罪。 且蠱毒殺人, 暗昧難明, 得情爲難。 貴孫妄度擅殺。 永安人心, 本頑惡, 丁亥之變, 悖逆之人, 或漏於典刑, 至今人皆憤恨。 今此故殺無罪者, 若不置法, 失刑尤甚。 當依律處之。" 靑松府院君 沈澮、上黨府院君 韓明澮、坡川府院君 尹士昕、左議(議)〔政〕 尹弼商、右議政洪應、領敦寧尹壕議: "貴孫之罪可懲, 然已命減死, 好生之仁也。 適當旱災, 死者已矣, 生者生之何妨? 且不輸情, 而定罪未安, 加刑得情何如?" 左贊成姜希孟、右贊成許琮、吏曹判書鄭佸議: "貴孫殺人之狀, 非鬪毆戲殺之比。 抱石投水, 所殺又非一人, 其殘忍莫甚, 不可曲貸。 若以災變原之, 則被殺者之冤魂, 亦可哀也。 然大辟, 須待自服置法, 更取招依律論斷何如?" 左參贊成任議: "故殺人而蒙宥, 則後之殺人者, 將無所畏忌。 向者以災變, 而原其死, 今者從諸臣之請, 而罪之, 有何不可? 但災變甚重, 非行刑之時, 更留旬月裁決何如?" 右參贊李克增議: "貴孫故殺人之罪, 當置重典。 然旣命減死, 不可更改。" 傳曰: "當從群議。" 又議吳靖妾子繼孫事。 昌孫、明澮、澮、士昕、弼商、應、壕、任、希孟、克增、繼孫、舜孝、佸議: "吳靖以妾子繼孫, 婚娶于宗親家, 令屬忠贊衛, 則以子待之矣。 靖死後甲申年, 婢妾枯梢與嫡妻同心, 訴繼孫奸父妾。 其時若有戊寅年所成論繼孫不孝遺書, 則當出示辦之, 而至十年癸巳, 而乃出之, 情狀可疑。 黃元順則陪成氏, 歸懷德本家, 身死後, 奴婢文記與遺書, 送韓伯倫處, 其情綢繆。 吳繼孫則其父遺書, 不告官自明, 而擅自燒毁, 亦必有情。 然不歸一分揀, 而區處未穩, 請顯推斷訟。" 傳于昌孫等曰: "自旱災以來, 夙夜兢懼, 未知所以。 予慮有冤獄, 而已令審理, 慮有冤憫, 而已令伸訴, 慮有抱屈, 而已給職牒。 然猶天譴如是, 予恐或有苛政, 而至於此也。 昔孔子聞泰山婦人之哭, 使子路往問之, 顧謂弟子曰: ‘小子識之。 苛政猛於虎。’ 苛政如是, 則民安有小蘇乎? 卿等須詳思言之。" 昌孫等啓曰: "聖明之時, 有何苛政?" 臣等若有所知, 何待聖上之勤問? 然當更思以聞。"
- 【태백산사고본】 21책 14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66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가족-가족(家族)
성종 13년 (1482) 8월 4일
성종실록144권, 성종 13년 8월 4일 庚子 2/2 기사 /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허귀손의 살인죄와 오계손의 불효죄에 대하여 의논하게 하다
국역
전에 허유례(許惟禮)의 아들 허귀손(許貴孫)이 영안도(永安道) 길성(吉城)에 있을 적에 그의 아내가 고독(蠱毒)662) 을 당하여 죽었으므로, 사람을 시켜 고독을 한 삼가(三加)와 월비(月非)를 죽여서 물에 던졌었다. 그 일이 발각되어 도망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체포되었다. 의금부(義禁府)에 명하여 추국(推鞫)하게 하니, 여러 차례 고문을 하여도 죄를 자복(自服)하지 아니하였다. 영돈녕(領敦寧) 이상, 의정부(議政府) 육조 판서(六曹判書)들을 불러 의논하도록 명하니,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공조 판서(工曹判書) 손순효(孫舜孝)·병조 판서(兵曹判書) 이계손(李繼孫)은 의논하기를,
"허귀손의 아내가 고독(蠱毒)을 당하여 죽었으면, 마땅히 감사(監司)나 수령(守令)에게 고소하여 그 죄상을 밝게 바로잡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고독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그 사실이 분명하지 아니하여 밝히기 어려우므로 실정(實情)을 알아내기 곤란합니다. 그런데도 허귀손은 제멋대로 생각하여 사람을 함부로 죽였습니다. 영안도(永安道)의 인심은 본래 완악(頑惡)하여, 정해년의 변란663) 때에 패역(悖逆)하였던 사람으로서 혹 전형(典刑)에 누락(漏落)되었던 이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이 모두 분개하고 한스럽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제 또 고의로 죄없는 이를 죽인 자를 만일 법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형법(刑法)을 그르치는 것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율문(律文)에 의거하여 처벌해야 합니다."
하고, 청송 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상당 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파천 부원군(坡川府院君) 윤사흔(尹士昕)·좌의정(左議政) 윤필상(尹弼商)·우의정(右議政) 홍응(洪應)·영돈녕(領敦寧) 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허귀손의 죄상은 징계해야 마땅합니다만, 그러나 이미 사형은 감하여 주라고 명령하였으니, 이는 살리는 것을 좋아하는 어진 덕(德)입니다. 그리고 마침 한재(旱災)를 당한 때이니만큼 죽은 자라면 어찌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자를 살려주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또한 실정을 조사하지 아니하고 죄를 결정하는 것은 적당하지 못한 일이니, 형벌을 더하여 실정을 알아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좌찬성(左贊成) 강희맹(姜希孟)·우찬성(右贊成) 허종(許琮)·이조 판서(吏曹判書) 정괄(鄭佸)은 의논하기를,
"허귀손이 사람을 죽인 죄상은 싸움을 하다가 잘못하여 죽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죽인 시체에〉 돌을 묶어서 물에 던졌고 그 죽인 자도 한 사람이 아니니, 그 잔인(殘忍)함이 너무 심하여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만일 재변(災變)을 이유로 하여 용서하여 준다면, 피살(被殺)된 자의 원혼(冤魂)도 애통(哀痛)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대벽(大辟)664) 은 자복(自服)을 하여야 법대로 시행하는 것이니, 그를 다시 취초(取招)하여 율문(律文)에 의거하여서 논단(論斷)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좌참찬(左參贊) 성임(成任)은 의논하기를,
"고의로 사람을 죽이고도 용서를 받으면, 뒤에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 장차 두려워 하고 꺼리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재변을 이유로 하여 그의 사형을 면하여 주었습니다만, 이제 다시 여러 신하들의 주청에 따라 죄를 주는 것이 무슨 옳지 못함이 있겠습니까? 다만 재변이 매우 심한 때이니만치 형을 집행할 시기가 아닌 듯하니, 다시 열흘이나 한 달쯤 보류(保留)하였다가 재결(裁決)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우참찬(右參贊) 이극증(李克增)은 의논하기를,
"허귀손이 고의로 사람을 죽인 죄는 마땅히 중한 법으로 처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사형을 감하라고 명령하였으니, 다시 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여러 의견에 따르도록 하겠다."
하였다. 또 오정(吳靖)의 첩(妾)의 아들 오계손(吳繼孫)의 일을 의논하게 하니, 정창손·한명회·심회·윤사흔·윤필상·홍응·윤호·성임·강희맹·이극증·이계손·손순효·정괄은 의논하기를,
"오정이 첩의 아들 오계손으로 하여금 종친(宗親)의 집안에 장가들게 하고 충찬위(忠贊衛)665) 에 속(屬)하게 하였으니, 이는 아들로 간주한 것입니다. 오정이 죽은 뒤 갑신년666) 에 비첩(婢妾) 고초(枯梢)가 적처(嫡妻) 동심(同心)과 더불어 오계손이 그 아비의 첩을 간통하였다고 고소(告訴)하였었습니다. 그 때 만일 무인년667) 에 작성(作成)하였다는 오계손의 불효(不孝)를 적은 유서(遺書)가 있었다면, 반드시 제출(提出)하여 보여서 판단하도록 하였을 것인데, 10년이 지난 계사년668) 에 이르러서야 그 유서를 제출하였으니, 정상(情狀)이 의심스럽습니다. 황원순(黃元順)이 성씨(成氏)를 모시고 회덕(懷德)의 본가(本家)에 돌아가 있다가 그가 죽은 뒤에 노비(奴婢)의 문서와 유서를 한백륜(韓伯倫)의 처소에 보냈다 하니, 그 사정이 얽히고 설켰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계손이 그 아비의 유서를 관(官)에 고하여 스스로 사연을 밝히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불태워 없앴던 것은 또한 사정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귀일(歸一)하여 분간(分揀)하지 않고서 구분 처리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할 듯하니, 청컨대 분명히 조사하여 옥사를 처단하게 하소서."
하니, 정창손 등에게 전교하기를,
"한재(旱災)가 있는 이래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겠다. 나는 원통한 옥사(獄事)가 있어서 그러한가 염려하여 이미 심리(審理)를 잘하도록 명령하였고, 원통하고 불쌍한 일이 있을까 염려하여 이미 신원(伸冤)하여 하소연하도록 명령하였으며, 뜻을 품고도 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이미 직첩(職牒)을 주었다. 그러한데도 하늘의 견책(譴責)이 이와 같으니, 나는 혹시 가혹(苛酷)한 정사를 한 것이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두려워한다. 옛날에 공자(孔子)가 태산(泰山)에서 부인(婦人)이 통곡하는 것을 듣고, 자로(子路)를 시켜 가서 그 사유를 묻게 하고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소자(小子)들아, 기록해 두도록 하라. 가혹한 정사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고 하였으니, 가혹한 정사가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소생(蘇生)하겠는가? 그러니 경들이 모름지기 자세히 생각하여 말하라."
하자, 정창손 등이 아뢰기를,
"성명(聖明)의 시기에 무슨 가혹한 정사가 있겠습니까? 신 등이 만일 아는 바가 있으면 어찌 성상께서 간절하게 묻기를 기다리겠습니까? 그러나 마땅히 다시 생각하여 보고서 아뢰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14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66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가족-가족(家族)
- [註 662] 고독(蠱毒) : 뱀·지네·두꺼비 등의 독약을 사람에게 몰래 먹어서 배앓이·가슴앓이·토혈(吐血)·하혈(下血)·부종(浮腫) 등의 증세를 일으켜 점차 미치거나 실신하여 죽게 만드는 일.
- [註 663] 정해년의 변란 : 세조 13년(1467)에 영안도(永安道:咸鏡都의 별칭) 길주(吉州)의 호족 이시애(李施愛)가 지방적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북도(北道)의 수령을 남도의 인사로써 삼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북도인을 선동하여 일으킨 반란을 말함. 이때 이시애는 관군(官軍)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고, 이 난(亂)에 관련된 자들은 변방으로 유배되었음.
- [註 664] 대벽(大辟) : 사형(死刑).
- [註 665] 충찬위(忠贊衛) : 오위(五衛)의 하나인 충좌위(忠佐衛) 소속의 군대로서, 원종 공신(原從功臣:정공신(正功臣) 이외에 작은 공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공신의 칭호) 및 그 자손이 이에 속함.
- [註 666] 갑신년 : 1464 세조 10년.
- [註 667] 무인년 : 1458 세조 4년.
- [註 668] 계사년 : 1473 성종 4년.
원문
○初許惟禮子貴孫, 在永安道 吉城, 以其妻被蠱毒而死, 使人殺毒者三加及月非投水。 事發在逃, 至是捕獲。 命義禁府推鞫, 累拷不服。 命召領敦寧以上、政府、六曹判書議之。 領議政鄭昌孫、工曹判書孫舜孝、兵曹判書李繼孫議: "貴孫之妻, 雖被蠱毒而死, 當告監司、守令, 明正其罪。 且蠱毒殺人, 暗昧難明, 得情爲難。 貴孫妄度擅殺。 永安人心, 本頑惡, 丁亥之變, 悖逆之人, 或漏於典刑, 至今人皆憤恨。 今此故殺無罪者, 若不置法, 失刑尤甚。 當依律處之。" 靑松府院君 沈澮、上黨府院君 韓明澮、坡川府院君 尹士昕、左議(議)〔政〕 尹弼商、右議政洪應、領敦寧尹壕議: "貴孫之罪可懲, 然已命減死, 好生之仁也。 適當旱災, 死者已矣, 生者生之何妨? 且不輸情, 而定罪未安, 加刑得情何如?" 左贊成姜希孟、右贊成許琮、吏曹判書鄭佸議: "貴孫殺人之狀, 非鬪毆戲殺之比。 抱石投水, 所殺又非一人, 其殘忍莫甚, 不可曲貸。 若以災變原之, 則被殺者之冤魂, 亦可哀也。 然大辟, 須待自服置法, 更取招依律論斷何如?" 左參贊成任議: "故殺人而蒙宥, 則後之殺人者, 將無所畏忌。 向者以災變, 而原其死, 今者從諸臣之請, 而罪之, 有何不可? 但災變甚重, 非行刑之時, 更留旬月裁決何如?" 右參贊李克增議: "貴孫故殺人之罪, 當置重典。 然旣命減死, 不可更改。" 傳曰: "當從群議。" 又議吳靖妾子繼孫事。 昌孫、明澮、澮、士昕、弼商、應、壕、任、希孟、克增、繼孫、舜孝、佸議: "吳靖以妾子繼孫, 婚娶于宗親家, 令屬忠贊衛, 則以子待之矣。 靖死後甲申年, 婢妾枯梢與嫡妻同心, 訴繼孫奸父妾。 其時若有戊寅年所成論繼孫不孝遺書, 則當出示辦之, 而至十年癸巳, 而乃出之, 情狀可疑。 黃元順則陪成氏, 歸懷德本家, 身死後, 奴婢文記與遺書, 送韓伯倫處, 其情綢繆。 吳繼孫則其父遺書, 不告官自明, 而擅自燒毁, 亦必有情。 然不歸一分揀, 而區處未穩, 請顯推斷訟。" 傳于昌孫等曰: "自旱災以來, 夙夜兢懼, 未知所以。 予慮有冤獄, 而已令審理, 慮有冤憫, 而已令伸訴, 慮有抱屈, 而已給職牒。 然猶天譴如是, 予恐或有苛政, 而至於此也。 昔孔子聞泰山婦人之哭, 使子路往問之, 顧謂弟子曰: ‘小子識之。 苛政猛於虎。’ 苛政如是, 則民安有小蘇乎? 卿等須詳思言之。" 昌孫等啓曰: "聖明之時, 有何苛政?" 臣等若有所知, 何待聖上之勤問? 然當更思以聞。"
- 【태백산사고본】 21책 14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366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가족-가족(家族)
원본
성종 13년 (1482)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