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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권, 성종 즉위년 12월 1일 庚戌 2번째기사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원상과 승지들이 대행왕의 병세를 아뢰지 않은 내의와 내시를 처벌할 것을 청하다

원상(院相) 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구치관(具致寬)·최항(崔恒)·홍윤성(洪允成)·조석문(曺錫文)·김질(金礩)·윤자운(尹子雲)·김국광(金國光) 및 승지(承旨) 등이 빈청(賓廳)에 나아가서 아뢰기를,

"어제 염습(斂襲)할 때 대행왕(大行王)의 옥체(玉體)가 이미 변색(變色)이 된 것을 보았는데, 훙서(薨逝)한 지가 겨우 2일인데도 이와 같았으니, 이것은 반드시 병환이 위독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외인(外人)은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이를 알았다면 약이(藥餌)와 기도(祈禱) 등의 일을 신(臣) 등이 마땅히 마음과 힘을 다해서 실시했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하고도 대고(大故)013) 에 이르게 된다면 그만이겠지마는, 지금 능히 그렇지 못했으니 신자(臣子)의 통한(痛恨)을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허(許)나라 세자(世子) 지(止)가 약을 맛보지 않았다 해서, 공자(孔子)는 어버이를 시해(弑害)한 죄로써 이에 해당시켰습니다.014) 또 어약(御藥)을 조제(調劑)할 때에 봉제(封題)에 잘못이 있는 것도 형률(刑律)에는 중조(重條)에 처하게 됩니다. 세조조(世祖朝)에 정승 강맹경(姜孟卿)이 병들어 죽으니, 의원(醫員)이 능히 치료하지 못했다는 일로 이를 처벌했습니다. 신자(臣子)도 오히려 그러하거든, 하물며 군부(君父)이겠습니까? 또 군상(君上)의 병세(病勢)는 외인(外人)은 비록 알지 못하였더라도, 대비전(大妃殿)에서는 알지 못해서는 안되는데도, 아뢰지 않은 것이 옳겠습니까? 내의(內醫)와 내시(內侍)를 국문(鞫問)하여 이를 처벌하게 하소서."

하니 대왕 대비가 전교(傳敎)하기를,

"대행왕(大行王)이 일찍이 발병[足病]을 앓았는데, 병이 나으면 반드시 나에게 날마다 세 번씩 조회했으며, 병이 발생하면 사람을 시켜 문안(問安)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내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게 될 줄을 생각했겠는가? 세조(世祖)께서 일찍이 말씀하기를, ‘조그만 질병이 있으면 외인(外人)에게 이를 알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신 까닭으로, 때로 조그만 질병을 만나면 외인(外人)에게 이를 알지 못하게 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또 대행왕(大行王)은 다만 술을 드실 뿐이고 음식을 들지 않았는데, 전일의 수순(數旬) 사이에는 내가 그 병환이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대단치 않은 병이라 여겼는데, 어찌 갑자기 대고(大故)에 이르게 될 줄을 생각했겠는가? 더구나 내의(內醫) 등도 또한 일찍이 병세(病勢)를 나에게 아뢰었으니, 어찌 처벌할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신숙주 등이 아뢰기를,

"세조(世祖)께서 의술(醫術)에 능통하여 약을 쓸 적엔 의원(醫員)을 필요로 하지 않았었는데도, 병환이 위독할 때에는 대신(大臣)에게 명하여 들어와 숙직(宿直)하게 한 것은 뜻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찬(權攅) 등이 내전(內殿)에 입시(入侍)할 적에 대행왕(大行王)의 병세(病勢)가 위독한 것을 알았으면 마땅히 대비전(大妃殿)에 알리고, 또 신(臣) 등에게도 이를 알게 하여 경험이 있는 노의(老醫)로 하여금 입시(入侍)하도록 했다면 아마 치료한 효과가 있었을 것인데도, 지금 그렇지 않았으니, 권찬(權攅) 등의 죄는 다스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대행왕(大行王)의 발병은 마땅히 뜸질로써 치료해야 할 것인데도 또 이를 꺼려했으므로 권찬(權攅)이 비록 옆에서 모시고 앉았지마는, 진맥(診脈)도 할 수가 없었는데 어찌 병의 증상(症狀)을 알았겠는가? 내가 이미 상심(傷心)하고 있으면서 또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받게 한다면 하늘이 나를 어떻다고 생각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8책 442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 [註 013]
    대고(大故) : 임금의 별세.
  • [註 014]
    허(許)나라 세자(世子) 지(止)가 약을 맛보지 않았다 해서, 공자(孔子)는 어버이를 시해(弑害)한 죄로써 이에 해당시켰습니다. : 허나라 도공(悼公)이 학질(虐疾)을 앓다가 그의 세자(世子) 지(止)가 주는 약을 먹고 졸(卒)하였는데, 공자(孔子)는 세자가 그 약을 미리 맛보지 않았으니, 그 책임은 세자에게 있다 하여, 《춘추(春秋)》 소공(昭公)편에서 "허(許)의 세자(世子) 지(止)가 그의 임금 매(買)를 시해(弑害)하였다."라고 기록한 것을 말함.

○院相申叔舟韓明澮具致寬崔恒洪允成曺錫文金礩尹子雲金國光及承旨等詣賓廳啓曰: "昨日斂襲時, 見大行王玉體已變, 薨逝纔二日, 乃如此, 是必彌留已久, 而外人未及知也。 若及知之, 藥餌、祈禱等事, 臣等當盡心力爲之。 如是而至於大故則已矣, 今不能爾, 臣子痛恨, 可勝言哉? 世子不嘗藥, 而孔子以弑父當之。 且令和御藥封題有誤者, 律卽重條。 世祖朝政丞姜孟卿病卒, 以醫不能療而罪之。 臣子尙然, 況君父乎? 且君上病勢, 外人雖不得與知, 大妃殿不可不知, 而不以啓可乎? 請鞫內醫、內侍, 罪之。" 大王大妃傳曰: "大行嘗患足疾。 病間, 必朝我日三; 若疾發, 使人問安不輟。 予豈意至是耶? 世祖嘗曰: ‘有小疾, 不可使外人知之。’ 故時遇小疾, 不使外人知者, 屢矣。 且大行, 但進酒而已, 未得進膳, 前數旬間, 予聞其弗豫, 意謂微痾也, 豈意遽至大故耶? 且內醫等, 亦嘗啓病勢於我, 何可罪也?" 叔舟等曰: "世祖通曉醫方, 用藥無假於醫, 違豫時, 命大臣入宿者, 意有在焉。 權攅等入侍于內, 知大行王病勢彌留, 當啓于大妃殿, 且令臣等知之, 使經驗老醫入侍, 則或有治效, 而今不然。 等之罪, 不可不治。" 傳曰: "大行王足疾, 應灸治, 而且憚之。 權攅雖侍坐, 診脈不可得焉, 知病候耶? 予旣傷心, 而又使無辜受罪, 天其謂我何?"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8책 442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