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43권, 세조 13년 9월 6일 戊辰 3/4 기사 / 1467년 명 성화(成化) 3년
이시애 난 평정을 기리는 대사헌 양성지의 평삭방송(平朔方頌)
국역
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가 《평삭방송(平朔方頌)》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공경히 생각하건대, 우리 성상(聖上) 13년 여름 5월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길주(吉州)에서 반역(叛逆)하니, 성상께서 진노(震怒)하여 도총사(都摠使) 신(臣) 이준(李浚)과 부사(副使) 신(臣) 조석문(曹錫文)에게 명하여 서울의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가서 정벌(征伐)하게 하였습니다. 또 진북 장군(鎭北將軍) 신(臣) 강순(康純)에게 명하여, 평안도(平安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양덕(陽德)을 넘고, 평로 장군(平虜將軍) 신(臣) 박중선(朴仲善)에게 황해도(黃海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곡산(谷山)을 넘어서 진격(進擊)하게 하였습니다. 또 신(臣) 정준(鄭俊)·신(臣) 최유림(崔有臨)·신(臣) 장진충(張進忠)·신(臣) 이의견(李義堅)·신(臣) 김교(金嶠)·신(臣) 오자경(吳子慶) 등에게 명하여 경기(京畿)·충청도(忠淸道)·전라도(全羅道)·강원도(江原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대병(大兵)이 함께 함흥부(咸興府)에 들어가자 모두 3만 명이었는데, 북청(北靑)으로 나아가 주둔하니, 6월 24일[丁巳]에 적이 밤을 틈타서 들어와 충돌하였습니다. 여러 장수(將帥)들이 출전(出戰)하여 크게 패배시켰으나, 지세(地勢)가 불편(不便)하기 때문에 홍원(洪原)으로 물러나서 주둔하였습니다. 7월 24일[丁亥]에 저쪽편의 북청(北靑) 수령(守令)에 임명된 자가 오니, 상관(上官)이 바야흐로 풍악을 베풀고 연음(宴飮)하였는데, 우리 군사들이 염탐하여 알아보고, 정예(精銳)한 군사를 보내어 들어가 공격하여 죽이고 사로잡기를 거의 다하였으며, 드디어 돌아가서 북청(北靑)의 창고(倉庫)에 웅거하였습니다. 그때에 적이 이성(利城)에 웅거하여 해안(海岸)을 의지(依支)하여 진(陣)을 쳤습니다. 8월 4일[丁酉]에 대군(大軍)이 나아가 공격을 하니, 적이 팽배(彭排)로써 앞을 가리고, 화살이 비오듯이 내려왔으나, 우리 군사들이 칼날을 무릅쓰고 올라갔습니다. 싸움이 한창일 때 대장(大將) 어유소(魚有沼)가 해변(海邊)을 경유하여 험조(險阻)를 넘어서 들어오니, 적은 관군(官軍)이 그의 배후(背後)에서 내려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여 기운을 잃었으나, 적이 그래도 죽을 힘을 내어서 싸웠습니다. 우리 장수들은 용기가 백배(百倍)하여 오시(午時)에서 유시(酉時)에 이르기까지 크게 싸우니, 적의 괴수(魁首)가 먼저 도망하고 적이 드디어 패주(敗走)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비장(裨將) 남이(南怡) 등이 돌격하여 싸워서 적의 기치(旗幟)를 빼앗고, 적 수백 명을 목베었습니다. 대군(大軍)이 승세(勝勢)를 틈타서 쫓아 내달아 적의 머리 1천여 급(級)을 베고, 마천령(磨天嶺)과 마운령(磨雲嶺)을 넘어서 길주(吉州)의 영동역(嶺東驛)에 이르렀습니다. 적의 괴수(魁首)가 처자(妻子)를 데리고 수백 기(騎)와 더불어 도망하여 명원참(溟源站)에 이르자, 위장(僞將)283) 이주(李珠) 등이 적의 괴수(魁首)를 포박하여 와서 항복하므로, 진(陣) 앞에서 목베고 머리를 함(函)에 담아서 서울에 보내니, 성상께서 크게 기뻐하여 경내(境內)를 유사(宥赦)하고, 그 머리를 저자에 3일 동안 효수(梟首)하였습니다. 다만 편사(偏師)만을 남겨서 북방(北方)에 머물러 진압하게 하고, 정벌(征伐)에 종군한 군사에게 주식(酒食)을 내려 주어 해산하여 보내고, 인하여 3년 동안 복호(復戶)하여 주어, 크게 장사(將士)들을 위로하고, 논상(論賞)하기를 차등있게 하였습니다.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함길도(咸吉道)는 본래 조종(祖宗)께서 비로소 왕업(王業)을 여신 곳이니, 다른 도(道)와 비교할 바가 아닌데, 역적으로 하여금 수개월 동안 가식(假息)하게 하니,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군사를 출동시킨 지 수 개월 만에 세 번이나 이겨서 대적(大賊)을 평정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록 천지(天地) 조종(祖宗)의 도와 주시는 힘에서 나온 것이지만, 실제로 임금의 예모(睿謀)와 신산(神算)을 남김없이 발휘하신 데 힘입은 것입니다. 지금 남만(南蠻)284) 이 친히 보고 길이 미담(美談)으로 삼으며, 북적(北狄)285) 이 풍문(風聞)을 듣고서 기세를 다시 떨치지 못하며, 또 포로를 중국(中國)에 바치고 첩보(捷報)를 동쪽의 왜국(倭國)에 고(告)하는 때를 당하여, 이에 악무(樂舞)를 정하여 교사(郊祀)와 종묘(宗廟)에 아뢰고, 종정(鍾鼎)에 새겨서 영구히 보이는데, 이것이 어찌 특히 한 시대의 위대한 공적(功績)일 뿐이겠습니까? 신(臣)의 직(職)이 사국(史局)에 있으니, 마땅히 대서 특서(大書特書)하여 성대한 공렬(功烈)을 기록해야 하겠으므로, 몸이 비졸(鄙拙)함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삼가 《평삭방송(平朔方頌)》 8편(篇)을 찬술(撰述)하여 바치니, 읽어 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그 송(頌)은 이러합니다.
‘하늘이 성조(聖祖)를 도우사
때로 육룡(六龍)을 타시고,
삭방(朔方)에 터전을 닦아
문득 대동(大東)을 열었네.
태종(太宗)이 계술(繼述)하니
거듭된 덕화(德化)가 여러 번 흡족하였고,
세종(世宗)이 즉위하시니
예(禮)를 제정하고 악(樂)을 지으셨고,
공경히 생각건대, 우리 임금께서
영성(盈盛)한 운(運)을 만나서,
탕(湯)임금보다 지용(智勇)이 뛰어나고
순(舜)임금과 총명(聰明)이 같네.
문치(文治)가 이미 흡족하고
무위(武威)도 또한 병행(竝行)하네.
사방 만리 땅에
우리와 함께 태평(太平)하네.’
이것은 천우(天佑)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이 소추(小醜)가 준동(蠢動)하여
우리 바닷가 땅을 소란하게 하고
감히 멋대로 날뛰어서
그 악(惡)이 하늘에 사무쳤네.
이에 혁연(赫然)히 진노(震怒)하여
요망한 진애(塵埃)를 소탕하라 명하셨네.
원수(元帥)가 아뢰고 행군(行軍)하니
3천 명의 군사가 그 사람들이로다.
두 장수가 서쪽에서 넘은 것이
양덕(陽德)·곡산(谷山)이었고,
군사를 여러 도(道)에서 징발하여
모두 함관(咸關)에 모이었네.
말에게 먹이고 군사를 쉬게 하다가
군사의 성음(聲音)이 크게 떨쳤네.
맞닿는 자마다 부수어지니
누가 우리 칼날에서 벗어나리?’
이것은 혁노(赫怒)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함관(咸關)은 구불구불하고
산령(山嶺)은 기구(崎嶇)한데,
우리 군사가 넘는 모양이
마치 웅비(熊羆)와 같았네.
석문(石門)이 험(險)함을 잃고
홍헌(洪獻)을 울타리로 삼았네.
이에 북청(北靑)에 이르니
만병(萬兵)이 여기에 둔(屯)쳤네.
밤이 얼마쯤 되었을까?
적도(賊徒)들이 와서 침범하였으나,
군사와 말이 놀라지 아니하였고
성채(城砦)와 목책(木柵)이 엄하였도다.
저들이 비록 멧돼지처럼 돌격하나
우리는 매처럼 높이 날았도다.
적이 이에 크게 도망하고
우리를 감히 당하지 못하였네.’
이것은 전 북청(前北靑)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삼산(三散)이 폐허(廢墟)가
적의 요충(要衝)이 되었네.
저들 가운데 어느 사람이
그 속에 몰래 웅거하였던고?
외람되게 공당(公堂)에 거(居)함일세.
크게 성악(聲樂)을 베풀어
더러운 무리들이 창궐(猖獗)하였네.
우리가 우리의 장수를 보낼지
일찍이 생각지도 못하였네.
단병(短兵)으로 서로 접전(接戰)할새
누가 감히 더 치열(熾烈)했던가?
역당(逆黨)이 크게 패(敗)하니,
적의 시체가 이리저리 나뒹굴었고,
대나무가 쪼개어지는 기세로
사기(士氣)가 더욱 높았네.’
이것은 후(後) 북청(北靑)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동쪽으로 창해(滄海)에 임(臨)하고
서쪽으로 열수(列岫)287) 를 당기니,
더러운 무리가 와서 아뢰었고
벌이 둔(屯)치고 개미가 모이는 듯하였네.
누가 그 적개심(敵愾心)을 당할 것이며
누가 그 인후(咽喉)에 도끼질하겠는가?
백일(白日)에 군사를 행진하여
만 명의 군사가 나란히 향하였네.
그때 오직 비장(飛將)만이
하늘에서 내려왔네.
적들이 실로 넋을 잃었으나
싸움은 그래도 그치지 않았네.
모기가 산(山)을 지는 것 같고
버마재비가 수레를 막는 것 같았네.
사면에서 연합하여 공격하니
여러 흉류(兇類)가 패적(敗績)하였네.’
이것은 이성전(利城戰)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적당(賊黨)이 먼저 도망하니
적기(賊旗)만 오히려 섰네.
우리는 맹장(猛將)이 있어서
마치 시호(豺虎)와 같이 싸웠네.
대군(大軍)이 쫓아서 내달아
바람 소리인듯 학(鶴)의 울음 소리인듯,
스스로 그 소혈(巢穴)로 도망하여
쥐가 거친 땅에 숨듯하였네.
위장(僞將)이 화(禍)를 뉘우치고
이에 적괴(賊魁)의 손을 묶어서,
이에 군전(軍前)에 투항(投降)하니
이에 그 괴수(魁首)의 머리를 베어서,
서울에서 바치고
이를 저자 거리에 매달았네.
한번 거병(擧兵)하여 세번 이기니
북쪽 사람들이 모두 복종하네.’
이것은 길주항(吉州降)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동쪽 변방 땅에 일이 없고
남도(南道) 백성들도 또한 쉬네.
첩음(捷音)이 널리 들끓으니
임금님의 마음도 이에 기뻐하시네.
높은 벼슬 후(厚)한 녹(祿)을
그대에게 어찌 아끼리?
태산(泰山)과 황하(黃河)가 숫돌과 띠가 되도록
금궤(金匱)를 석실(石室)에 간직하리.
잔치하여 먹이는 것이 갖추 지극하고
삼년 동안 복호(復戶)해 주시니,
우리의 공훈(功勳)이요
우리의 직분(職分)일세.
황은(皇恩)이 망극(罔極)하여
성수(聖壽)가 무강(無彊)하시고,
견마(犬馬)의 정성을
몸이 가루가 된들 어찌 잊으리오?’
이것은 책훈(策勳)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금구(金甌)는 옛과 같은데
방악(方岳)은 더욱 빛나네.
웅풍(雄風)이 멀리 전파(傳播)되고
무열(武烈)이 날로 빛나도다.
남만(南蠻)이 소식을 전(傳)하고
북융(北戎)이 간담(肝膽)이 떨어지네.
서쪽 나라에 입조(入朝)함이 아름답고
동쪽 이웃 나라도 또한 복종(服從)하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
회동(會同)하는 것이 잇달았네.
장사(將士)들이 한가롭게 습진(習陣)하고
조야(朝野)가 평안하네.
모두 성덕(聖德)을 우러러보니
더욱 큰 기업(基業)이 굳어지고
천년 만년토록
길이 보존(保存)하리로다.’
이것은 무열(武烈)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43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8책 118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정(軍政)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83] 위장(僞將) : 적(賊)의 장수.
- [註 284] 남만(南蠻) : 왜구(倭寇).
- [註 285] 북적(北狄) : 북쪽 오랑캐.
- [註 286]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冠)을 씌우고 : 목후이관(沐猴而冠):옷은 훌륭하나 마음은 사람답지 못함을 가르키는 말. 초(楚)의 항우(項羽)가 진(秦)의 서울을 불태워 버리고 유방(劉邦)을 추방하여, 부귀(富貴)를 누리게 된 자기는 고향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해야 된다고 말했을 때, 한생(韓生)이 도시 그런 의관(衣冠)을 할 사람됨이 못된다고 비꼬아 말했다는 고사(故事).
- [註 287] 열수(列岫) : 많은 바위 구멍.
원문
○大司憲梁誠之進《平朔方頌》曰:
恭惟我聖上之十三年夏五月, 賊臣李施愛, 以吉州叛, 上震怒, 命都摠使臣浚、副使臣曺錫文, 領京兵三千往征之。 又命鎭北將軍臣康純, 領平安道兵踰陽德, 平虜將軍臣朴仲善, 領黃海道兵, 踰谷山而進。 又命臣鄭俊、臣崔有臨、臣張進忠、臣李義堅、臣金嶠、臣吳子慶等, 領京畿、忠淸、全羅、江原道兵助戰。 大兵俱入咸興府, 摠三萬, 進屯北靑。 六月丁巳, 賊乘夜入突, 諸將出戰大敗之。 以地勢不便, 退屯于洪原。 七月丁亥, 僞署北靑守者來, 上官方張樂宴飮, 我師詗知之, 遣銳師入擊, 殺獲幾盡, 遂還據北靑倉。 時賊據利城, 依海岸以陣。 八月丁酉, 大軍進攻之, 賊以彭排前蔽, 矢下如雨, 我軍冒刃以登。 戰酣, 大將魚有沼由海邊越險阻而入, 賊不意官兵從其背而下, 奪氣賊猶出死力戰。 我師勇氣百倍, 自午至酉大戰, 賊魁先遁, 賊逐敗。 於是, 裨將南怡等, 突戰奪賊旗, 斬賊數百。 大軍乘勝追奔, 斬首千餘級, 越磨天、磨雲嶺, 至吉州 嶺東驛。 賊魁挈妻子, 與數百騎, 逃至溟源站。 僞將李珠等, 縛賊魁來降, 斬于陣前, 函首送京師, 上大喜, 赦境內, 梟于市三日止留。 偏師留鎭北方, 從征軍士, 賜酒食散遣之, 仍給復三年, 大慰將士, 論賞有差。 臣竊惟, 咸吉道, 本祖宗肇造之地, 非他道比也。 使逆賊假息數月間, 則其爲害不可勝言。 今出師數月, 三捷而定大賊。 是雖出於天地祖宗垂佑之力, 實有賴於睿謀神算之無所遺也。 今者南蠻親覩, 永爲美談; 北狄聞風, 氣不復振。 又當獻俘中原, 告捷東倭, 于以定樂舞而奏郊廟, 銘鍾鼎而詔永久, 此豈特一代之偉績也哉? 臣職忝史局, 當大書特書, 以紀茂烈, 不揆鄙拙, 謹撰《平朔方頌》八篇以獻, 伏惟垂覽。 頌曰: "天佑聖祖, 時乘六龍; 綮基朔方, 奄有大東。 太宗繼述, 重熙累洽; 世廟踐祚, 制禮作樂。 恭惟我后, 運撫盈成, 邁湯勇智, 齊舜聰明。 文治旣洽, 武威亦行, 幅員萬里, 同我大平。" 天佑一章, 章八句。 "蠢玆小醜, 擾我海堧, 敢肆跳梁, 其惡滔天。 於赫斯怒, 命掃妖塵, 元戎啓行, 三千其人。 二將西踰, 陽德、谷山, 徵兵諸道, 俱會咸關。 秣馬息士, 軍聲大振。 觸之者碎, 誰漏我刃?’ 赫怒一章, 章八句。 "咸關逶迤, 山嶺崎嶇, 我師踰之, 如熊如羆。 石門失險, 洪獻爲藩。 言至于靑, 萬兵是屯。 夜如何其, 賊徒來犯, 士馬不驚, 砦柵有嚴。 彼雖豨突, 我則鷹揚。 賊乃大奔, 莫我敢當。" 前北靑一章, 章八句。 "三散之墟, 是爲要衝。 彼何人斯, 盜據其中? 沐猴而冠, 濫居公堂。 大張聲樂, 醜類猖狂。 我遣我將, 曾是不意。 短兵相接, 誰敢孔熾? 逆黨大敗, 橫屍枕藉, 破竹之勢, 士氣益暇。" 後北靑一章, 章八句。 "東臨滄海, 西控列岫, 醜徒來陳, 蜂屯蟻聚。 孰敵厥愾, 孰斧其吭? 白日行師, 萬夫齊向。 時維飛將, 從天而下。 賊實褫魄, 戰猶不捨。 如蚊負山, 如螗拒轍。 四面合攻, 群兇敗績。" 利城戰一章, 章八句。 "賊黨先遁, 賊旗猶竪。 我有猛將, 戰如豺虎。 大軍追奔, 風聲鶴唳, 自奔其穴, 鼠竄荒裔。 僞將悔禍, 乃縛賊手, 乃降軍前, 乃斬厥首, 獻于京師, 懸之市陌。 一擧三捷, 北人咸服。" 吉州降一章, 章八句。 "東陲無事, 南民亦息。 捷音旁騰, 天心載悅。 高爵厚祿, 於汝何惜? 太山、黃河, 金匱石室。 宴犒備至, 三年給復, 我功我勳, 我分我職。 皇恩罔極, 聖壽無强, 犬馬之誠, 糜粉何忘?" 策勳一章, 章八句。 ‘金甌如古, 方岳增光。 雄風遠播, 武烈日彰。 南蠻傳聲, 北戎膽落。 西朝載嘉, 東隣亦伏。 梯山航海, 會同有繹。 將士閑習, 朝野寧謐。 咸仰聖德, 益固鴻基, 於千萬年, 永言保之。" 武烈一章, 章八句。
- 【태백산사고본】 16책 43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8책 118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정(軍政) / 어문학-문학(文學)
세조실록43권, 세조 13년 9월 6일 戊辰 3/4 기사 / 1467년 명 성화(成化) 3년
이시애 난 평정을 기리는 대사헌 양성지의 평삭방송(平朔方頌)
국역
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가 《평삭방송(平朔方頌)》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공경히 생각하건대, 우리 성상(聖上) 13년 여름 5월에 적신(賊臣) 이시애(李施愛)가 길주(吉州)에서 반역(叛逆)하니, 성상께서 진노(震怒)하여 도총사(都摠使) 신(臣) 이준(李浚)과 부사(副使) 신(臣) 조석문(曹錫文)에게 명하여 서울의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가서 정벌(征伐)하게 하였습니다. 또 진북 장군(鎭北將軍) 신(臣) 강순(康純)에게 명하여, 평안도(平安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양덕(陽德)을 넘고, 평로 장군(平虜將軍) 신(臣) 박중선(朴仲善)에게 황해도(黃海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곡산(谷山)을 넘어서 진격(進擊)하게 하였습니다. 또 신(臣) 정준(鄭俊)·신(臣) 최유림(崔有臨)·신(臣) 장진충(張進忠)·신(臣) 이의견(李義堅)·신(臣) 김교(金嶠)·신(臣) 오자경(吳子慶) 등에게 명하여 경기(京畿)·충청도(忠淸道)·전라도(全羅道)·강원도(江原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대병(大兵)이 함께 함흥부(咸興府)에 들어가자 모두 3만 명이었는데, 북청(北靑)으로 나아가 주둔하니, 6월 24일[丁巳]에 적이 밤을 틈타서 들어와 충돌하였습니다. 여러 장수(將帥)들이 출전(出戰)하여 크게 패배시켰으나, 지세(地勢)가 불편(不便)하기 때문에 홍원(洪原)으로 물러나서 주둔하였습니다. 7월 24일[丁亥]에 저쪽편의 북청(北靑) 수령(守令)에 임명된 자가 오니, 상관(上官)이 바야흐로 풍악을 베풀고 연음(宴飮)하였는데, 우리 군사들이 염탐하여 알아보고, 정예(精銳)한 군사를 보내어 들어가 공격하여 죽이고 사로잡기를 거의 다하였으며, 드디어 돌아가서 북청(北靑)의 창고(倉庫)에 웅거하였습니다. 그때에 적이 이성(利城)에 웅거하여 해안(海岸)을 의지(依支)하여 진(陣)을 쳤습니다. 8월 4일[丁酉]에 대군(大軍)이 나아가 공격을 하니, 적이 팽배(彭排)로써 앞을 가리고, 화살이 비오듯이 내려왔으나, 우리 군사들이 칼날을 무릅쓰고 올라갔습니다. 싸움이 한창일 때 대장(大將) 어유소(魚有沼)가 해변(海邊)을 경유하여 험조(險阻)를 넘어서 들어오니, 적은 관군(官軍)이 그의 배후(背後)에서 내려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여 기운을 잃었으나, 적이 그래도 죽을 힘을 내어서 싸웠습니다. 우리 장수들은 용기가 백배(百倍)하여 오시(午時)에서 유시(酉時)에 이르기까지 크게 싸우니, 적의 괴수(魁首)가 먼저 도망하고 적이 드디어 패주(敗走)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비장(裨將) 남이(南怡) 등이 돌격하여 싸워서 적의 기치(旗幟)를 빼앗고, 적 수백 명을 목베었습니다. 대군(大軍)이 승세(勝勢)를 틈타서 쫓아 내달아 적의 머리 1천여 급(級)을 베고, 마천령(磨天嶺)과 마운령(磨雲嶺)을 넘어서 길주(吉州)의 영동역(嶺東驛)에 이르렀습니다. 적의 괴수(魁首)가 처자(妻子)를 데리고 수백 기(騎)와 더불어 도망하여 명원참(溟源站)에 이르자, 위장(僞將)283) 이주(李珠) 등이 적의 괴수(魁首)를 포박하여 와서 항복하므로, 진(陣) 앞에서 목베고 머리를 함(函)에 담아서 서울에 보내니, 성상께서 크게 기뻐하여 경내(境內)를 유사(宥赦)하고, 그 머리를 저자에 3일 동안 효수(梟首)하였습니다. 다만 편사(偏師)만을 남겨서 북방(北方)에 머물러 진압하게 하고, 정벌(征伐)에 종군한 군사에게 주식(酒食)을 내려 주어 해산하여 보내고, 인하여 3년 동안 복호(復戶)하여 주어, 크게 장사(將士)들을 위로하고, 논상(論賞)하기를 차등있게 하였습니다.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함길도(咸吉道)는 본래 조종(祖宗)께서 비로소 왕업(王業)을 여신 곳이니, 다른 도(道)와 비교할 바가 아닌데, 역적으로 하여금 수개월 동안 가식(假息)하게 하니,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군사를 출동시킨 지 수 개월 만에 세 번이나 이겨서 대적(大賊)을 평정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록 천지(天地) 조종(祖宗)의 도와 주시는 힘에서 나온 것이지만, 실제로 임금의 예모(睿謀)와 신산(神算)을 남김없이 발휘하신 데 힘입은 것입니다. 지금 남만(南蠻)284) 이 친히 보고 길이 미담(美談)으로 삼으며, 북적(北狄)285) 이 풍문(風聞)을 듣고서 기세를 다시 떨치지 못하며, 또 포로를 중국(中國)에 바치고 첩보(捷報)를 동쪽의 왜국(倭國)에 고(告)하는 때를 당하여, 이에 악무(樂舞)를 정하여 교사(郊祀)와 종묘(宗廟)에 아뢰고, 종정(鍾鼎)에 새겨서 영구히 보이는데, 이것이 어찌 특히 한 시대의 위대한 공적(功績)일 뿐이겠습니까? 신(臣)의 직(職)이 사국(史局)에 있으니, 마땅히 대서 특서(大書特書)하여 성대한 공렬(功烈)을 기록해야 하겠으므로, 몸이 비졸(鄙拙)함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삼가 《평삭방송(平朔方頌)》 8편(篇)을 찬술(撰述)하여 바치니, 읽어 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그 송(頌)은 이러합니다.
‘하늘이 성조(聖祖)를 도우사
때로 육룡(六龍)을 타시고,
삭방(朔方)에 터전을 닦아
문득 대동(大東)을 열었네.
태종(太宗)이 계술(繼述)하니
거듭된 덕화(德化)가 여러 번 흡족하였고,
세종(世宗)이 즉위하시니
예(禮)를 제정하고 악(樂)을 지으셨고,
공경히 생각건대, 우리 임금께서
영성(盈盛)한 운(運)을 만나서,
탕(湯)임금보다 지용(智勇)이 뛰어나고
순(舜)임금과 총명(聰明)이 같네.
문치(文治)가 이미 흡족하고
무위(武威)도 또한 병행(竝行)하네.
사방 만리 땅에
우리와 함께 태평(太平)하네.’
이것은 천우(天佑)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이 소추(小醜)가 준동(蠢動)하여
우리 바닷가 땅을 소란하게 하고
감히 멋대로 날뛰어서
그 악(惡)이 하늘에 사무쳤네.
이에 혁연(赫然)히 진노(震怒)하여
요망한 진애(塵埃)를 소탕하라 명하셨네.
원수(元帥)가 아뢰고 행군(行軍)하니
3천 명의 군사가 그 사람들이로다.
두 장수가 서쪽에서 넘은 것이
양덕(陽德)·곡산(谷山)이었고,
군사를 여러 도(道)에서 징발하여
모두 함관(咸關)에 모이었네.
말에게 먹이고 군사를 쉬게 하다가
군사의 성음(聲音)이 크게 떨쳤네.
맞닿는 자마다 부수어지니
누가 우리 칼날에서 벗어나리?’
이것은 혁노(赫怒)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함관(咸關)은 구불구불하고
산령(山嶺)은 기구(崎嶇)한데,
우리 군사가 넘는 모양이
마치 웅비(熊羆)와 같았네.
석문(石門)이 험(險)함을 잃고
홍헌(洪獻)을 울타리로 삼았네.
이에 북청(北靑)에 이르니
만병(萬兵)이 여기에 둔(屯)쳤네.
밤이 얼마쯤 되었을까?
적도(賊徒)들이 와서 침범하였으나,
군사와 말이 놀라지 아니하였고
성채(城砦)와 목책(木柵)이 엄하였도다.
저들이 비록 멧돼지처럼 돌격하나
우리는 매처럼 높이 날았도다.
적이 이에 크게 도망하고
우리를 감히 당하지 못하였네.’
이것은 전 북청(前北靑)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삼산(三散)이 폐허(廢墟)가
적의 요충(要衝)이 되었네.
저들 가운데 어느 사람이
그 속에 몰래 웅거하였던고?
외람되게 공당(公堂)에 거(居)함일세.
크게 성악(聲樂)을 베풀어
더러운 무리들이 창궐(猖獗)하였네.
우리가 우리의 장수를 보낼지
일찍이 생각지도 못하였네.
단병(短兵)으로 서로 접전(接戰)할새
누가 감히 더 치열(熾烈)했던가?
역당(逆黨)이 크게 패(敗)하니,
적의 시체가 이리저리 나뒹굴었고,
대나무가 쪼개어지는 기세로
사기(士氣)가 더욱 높았네.’
이것은 후(後) 북청(北靑)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동쪽으로 창해(滄海)에 임(臨)하고
서쪽으로 열수(列岫)287) 를 당기니,
더러운 무리가 와서 아뢰었고
벌이 둔(屯)치고 개미가 모이는 듯하였네.
누가 그 적개심(敵愾心)을 당할 것이며
누가 그 인후(咽喉)에 도끼질하겠는가?
백일(白日)에 군사를 행진하여
만 명의 군사가 나란히 향하였네.
그때 오직 비장(飛將)만이
하늘에서 내려왔네.
적들이 실로 넋을 잃었으나
싸움은 그래도 그치지 않았네.
모기가 산(山)을 지는 것 같고
버마재비가 수레를 막는 것 같았네.
사면에서 연합하여 공격하니
여러 흉류(兇類)가 패적(敗績)하였네.’
이것은 이성전(利城戰)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적당(賊黨)이 먼저 도망하니
적기(賊旗)만 오히려 섰네.
우리는 맹장(猛將)이 있어서
마치 시호(豺虎)와 같이 싸웠네.
대군(大軍)이 쫓아서 내달아
바람 소리인듯 학(鶴)의 울음 소리인듯,
스스로 그 소혈(巢穴)로 도망하여
쥐가 거친 땅에 숨듯하였네.
위장(僞將)이 화(禍)를 뉘우치고
이에 적괴(賊魁)의 손을 묶어서,
이에 군전(軍前)에 투항(投降)하니
이에 그 괴수(魁首)의 머리를 베어서,
서울에서 바치고
이를 저자 거리에 매달았네.
한번 거병(擧兵)하여 세번 이기니
북쪽 사람들이 모두 복종하네.’
이것은 길주항(吉州降)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동쪽 변방 땅에 일이 없고
남도(南道) 백성들도 또한 쉬네.
첩음(捷音)이 널리 들끓으니
임금님의 마음도 이에 기뻐하시네.
높은 벼슬 후(厚)한 녹(祿)을
그대에게 어찌 아끼리?
태산(泰山)과 황하(黃河)가 숫돌과 띠가 되도록
금궤(金匱)를 석실(石室)에 간직하리.
잔치하여 먹이는 것이 갖추 지극하고
삼년 동안 복호(復戶)해 주시니,
우리의 공훈(功勳)이요
우리의 직분(職分)일세.
황은(皇恩)이 망극(罔極)하여
성수(聖壽)가 무강(無彊)하시고,
견마(犬馬)의 정성을
몸이 가루가 된들 어찌 잊으리오?’
이것은 책훈(策勳)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금구(金甌)는 옛과 같은데
방악(方岳)은 더욱 빛나네.
웅풍(雄風)이 멀리 전파(傳播)되고
무열(武烈)이 날로 빛나도다.
남만(南蠻)이 소식을 전(傳)하고
북융(北戎)이 간담(肝膽)이 떨어지네.
서쪽 나라에 입조(入朝)함이 아름답고
동쪽 이웃 나라도 또한 복종(服從)하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
회동(會同)하는 것이 잇달았네.
장사(將士)들이 한가롭게 습진(習陣)하고
조야(朝野)가 평안하네.
모두 성덕(聖德)을 우러러보니
더욱 큰 기업(基業)이 굳어지고
천년 만년토록
길이 보존(保存)하리로다.’
이것은 무열(武烈)의 1장(章)인데, 장(章)은 8귀(句)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43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8책 118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군정(軍政)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83] 위장(僞將) : 적(賊)의 장수.
- [註 284] 남만(南蠻) : 왜구(倭寇).
- [註 285] 북적(北狄) : 북쪽 오랑캐.
- [註 286]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冠)을 씌우고 : 목후이관(沐猴而冠):옷은 훌륭하나 마음은 사람답지 못함을 가르키는 말. 초(楚)의 항우(項羽)가 진(秦)의 서울을 불태워 버리고 유방(劉邦)을 추방하여, 부귀(富貴)를 누리게 된 자기는 고향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해야 된다고 말했을 때, 한생(韓生)이 도시 그런 의관(衣冠)을 할 사람됨이 못된다고 비꼬아 말했다는 고사(故事).
- [註 287] 열수(列岫) : 많은 바위 구멍.
원문
○大司憲梁誠之進《平朔方頌》曰:
恭惟我聖上之十三年夏五月, 賊臣李施愛, 以吉州叛, 上震怒, 命都摠使臣浚、副使臣曺錫文, 領京兵三千往征之。 又命鎭北將軍臣康純, 領平安道兵踰陽德, 平虜將軍臣朴仲善, 領黃海道兵, 踰谷山而進。 又命臣鄭俊、臣崔有臨、臣張進忠、臣李義堅、臣金嶠、臣吳子慶等, 領京畿、忠淸、全羅、江原道兵助戰。 大兵俱入咸興府, 摠三萬, 進屯北靑。 六月丁巳, 賊乘夜入突, 諸將出戰大敗之。 以地勢不便, 退屯于洪原。 七月丁亥, 僞署北靑守者來, 上官方張樂宴飮, 我師詗知之, 遣銳師入擊, 殺獲幾盡, 遂還據北靑倉。 時賊據利城, 依海岸以陣。 八月丁酉, 大軍進攻之, 賊以彭排前蔽, 矢下如雨, 我軍冒刃以登。 戰酣, 大將魚有沼由海邊越險阻而入, 賊不意官兵從其背而下, 奪氣賊猶出死力戰。 我師勇氣百倍, 自午至酉大戰, 賊魁先遁, 賊逐敗。 於是, 裨將南怡等, 突戰奪賊旗, 斬賊數百。 大軍乘勝追奔, 斬首千餘級, 越磨天、磨雲嶺, 至吉州 嶺東驛。 賊魁挈妻子, 與數百騎, 逃至溟源站。 僞將李珠等, 縛賊魁來降, 斬于陣前, 函首送京師, 上大喜, 赦境內, 梟于市三日止留。 偏師留鎭北方, 從征軍士, 賜酒食散遣之, 仍給復三年, 大慰將士, 論賞有差。 臣竊惟, 咸吉道, 本祖宗肇造之地, 非他道比也。 使逆賊假息數月間, 則其爲害不可勝言。 今出師數月, 三捷而定大賊。 是雖出於天地祖宗垂佑之力, 實有賴於睿謀神算之無所遺也。 今者南蠻親覩, 永爲美談; 北狄聞風, 氣不復振。 又當獻俘中原, 告捷東倭, 于以定樂舞而奏郊廟, 銘鍾鼎而詔永久, 此豈特一代之偉績也哉? 臣職忝史局, 當大書特書, 以紀茂烈, 不揆鄙拙, 謹撰《平朔方頌》八篇以獻, 伏惟垂覽。 頌曰: "天佑聖祖, 時乘六龍; 綮基朔方, 奄有大東。 太宗繼述, 重熙累洽; 世廟踐祚, 制禮作樂。 恭惟我后, 運撫盈成, 邁湯勇智, 齊舜聰明。 文治旣洽, 武威亦行, 幅員萬里, 同我大平。" 天佑一章, 章八句。 "蠢玆小醜, 擾我海堧, 敢肆跳梁, 其惡滔天。 於赫斯怒, 命掃妖塵, 元戎啓行, 三千其人。 二將西踰, 陽德、谷山, 徵兵諸道, 俱會咸關。 秣馬息士, 軍聲大振。 觸之者碎, 誰漏我刃?’ 赫怒一章, 章八句。 "咸關逶迤, 山嶺崎嶇, 我師踰之, 如熊如羆。 石門失險, 洪獻爲藩。 言至于靑, 萬兵是屯。 夜如何其, 賊徒來犯, 士馬不驚, 砦柵有嚴。 彼雖豨突, 我則鷹揚。 賊乃大奔, 莫我敢當。" 前北靑一章, 章八句。 "三散之墟, 是爲要衝。 彼何人斯, 盜據其中? 沐猴而冠, 濫居公堂。 大張聲樂, 醜類猖狂。 我遣我將, 曾是不意。 短兵相接, 誰敢孔熾? 逆黨大敗, 橫屍枕藉, 破竹之勢, 士氣益暇。" 後北靑一章, 章八句。 "東臨滄海, 西控列岫, 醜徒來陳, 蜂屯蟻聚。 孰敵厥愾, 孰斧其吭? 白日行師, 萬夫齊向。 時維飛將, 從天而下。 賊實褫魄, 戰猶不捨。 如蚊負山, 如螗拒轍。 四面合攻, 群兇敗績。" 利城戰一章, 章八句。 "賊黨先遁, 賊旗猶竪。 我有猛將, 戰如豺虎。 大軍追奔, 風聲鶴唳, 自奔其穴, 鼠竄荒裔。 僞將悔禍, 乃縛賊手, 乃降軍前, 乃斬厥首, 獻于京師, 懸之市陌。 一擧三捷, 北人咸服。" 吉州降一章, 章八句。 "東陲無事, 南民亦息。 捷音旁騰, 天心載悅。 高爵厚祿, 於汝何惜? 太山、黃河, 金匱石室。 宴犒備至, 三年給復, 我功我勳, 我分我職。 皇恩罔極, 聖壽無强, 犬馬之誠, 糜粉何忘?" 策勳一章, 章八句。 ‘金甌如古, 方岳增光。 雄風遠播, 武烈日彰。 南蠻傳聲, 北戎膽落。 西朝載嘉, 東隣亦伏。 梯山航海, 會同有繹。 將士閑習, 朝野寧謐。 咸仰聖德, 益固鴻基, 於千萬年, 永言保之。" 武烈一章, 章八句。
- 【태백산사고본】 16책 43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8책 1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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