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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2권, 문종 즉위년 7월 18일 庚申 6/6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중추원 사 김효성이 야인 방비책을 조목별로 열거하여 올리다

국역

처음에 중추원 사(中樞院使) 김효성(金孝誠)이 상서하기를,

"신이 가만히 보건대, 황석공(黃石公)543) 이 이르기를, ‘덕이 같고 세력이 상적하면 서로 기울어뜨릴 수 없고, 영웅(英雄)의 마음이 대중과 호오(好惡)를 같이 하는 것을 본 연후에 권모 술수를 써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음계(陰計)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지금 달달(達達)544) 이 중국과 세력을 겨루어 일이 이미 크게 벌어졌으니, 어찌 예전 말을 본받아서 성공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달달(達達)이 그 군중을 동원하여 길게 몰고 깊이 들어와 먼저 우리 나라와 칼날을 겨루는 형세는 의심할 것 없지마는, 가까이 살고 있는 야인(野人)은 모두 삼위 달달(三衛達達)545) 과 동류이고 거짓이 많으니, 그 음계(陰計)를 알 수 없습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방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하였고, 《손자(孫子)》에 말하기를, ‘적이 오지 않는 것을 믿지 말고, 나의 대비가 있는 것을 믿으라.’ 하였습니다. 지금도 또한 미리 방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가(可)합니다. 혹시 오늘 일이 없으므로 장담과 쓸데없는 의논만 하여,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적의 형상이 먼저 나타나면 변경의 근심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용렬하나 직책이 군무(軍務)를 맡고 있어 감히 침묵만 지킬 수 없어 삼가 좁은 소견으로 조목으로 열거하여 올리니, 엎드려 상재(上裁)를 바랍니다.

1. 평안도(平安道) 인민이 근래에 흉년으로 인하여 군사와 양식이 모두 허갈(虛竭)하고, 또 달달의 소문이 있으니, 군사를 합하여 기다리게 하고자 하나 양식이 부족하고,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대적하게 되어 형세가 반드시 허약할 것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하루나 한 달의 일이 아니니 깊이 염려됩니다. 신은 원컨대 그 도의 군사와 백성으로 하여금 오로지 군사와 농사에 힘을 쓰고 무용(武勇)을 길러서 근본을 튼튼하게 하소서.

1. 병법(兵法)에 말하기를, ‘많은 군사를 쓰는 자는 평이한 것을 힘쓰고, 적은 군사를 쓰는 자는 험한 것을 힘쓰라.’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 나라에 이로운 말입니다. 그러나 평안도 한 도는 군사와 양식이 심히 적으니, 여러 도에서 징병하여 기다리면 저들이 비록 백만이라도 쓸데는 없습니다. 만일 구원병이 집합하기 전에 적이 먼저 이르면, 반드시 기병(奇兵)을 써야 제어할 수 있습니다. 태공망(太公望)이 말하기를, ‘수레[車]는 군사의 날개로써 견진(堅陣)을 함락하고, 강적(强敵)을 방어하고, 패하여 달아나는 것을 막는 것이라.’ 하였고, 이정(李靖)546) 은 말하기를, ‘편상(偏箱)547) ·녹각(鹿角)548) 은 군사의 큰 요체로서, 하나는 앞을 막을 수 있고, 하나는 힘을 훈련할 수 있고, 하나는 부오(部伍)를 결속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것으로 보면, 거전(車戰)의 법이 실로 좋은 계책인데, 우리 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수레는 쓸 수 없다 하여 거법(車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생각건대 초(楚)나라는 산택(山澤)의 나라라고 하는데 오히려 거법을 썼으니, 우리 나라엔들 어찌 수레를 쓰지 못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만일 쓴다면 편상(偏箱)·녹각(鹿角)으로 하여 25인을 실을 수 있습니다. 거사(車士)는 일승(一乘)에 전거(前拒) 1대(隊)와 좌각(左角)·우각(右角) 2대(隊) 각 1인, 어거(御車) 1인, 갑사(甲士) 3인, 합하여 7인, 그 안에 총통군(銃筒軍) 1인, 혹은 보졸(步卒)이 많으면 모두 합하여 10인이 타고, 소 두 마리를 멍에하는 것으로 거법을 삼도록 하고, 만일 적과 서로 만나 저쪽 군사가 많아서 나를 포위할 염려가 있으면 우리는 원문(轅門)549) 으로 진(陣)을 굳게 하여 기다리고, 만일 이길 만한 형세가 있으면 곧 우리 군사를 10분(分)으로 비율(比率)하여 6,7분(六七分)은 전사(戰士)로 삼아 가만히 기정(奇正)의 술(術)을 쓰고, 2, 3분(二三分)은 거병(車兵)으로 삼아 세 곳을 나누어 막고, 거대(車隊)에는 정기(旌旗)를 많이 세우고, 고각(鼓角)을 많이 울리면 적이 위의(威儀)의 성한 것을 보고 반드시 생각하기를, 거사(車士)의 예전 제도에 한 수레[一乘]에 군사 1백 50인을 쓰고 있으니 적어도 75인은 될 것이라 하고,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도리어 의심하여 어쩔 줄 모를 것이니, 우리는 힘을 훈련한 군사인지라, 혹은 패하고 달아나는 것을 막고 혹은 굳은 진을 함락시키면, 우익(羽翼)의 이가 되는 것을 이루 다 말하겠습니까? 청컨대 그 도의 도절제사(都節制使)로 하여금 겸하여 수레 만드는 것을 관장(管掌)하게 하소서.

1. 지금 도적이 자행하여 사람이 편히 자지 못하니, 이 풍속을 나라 안에서 자라나게 할 수 없습니다. 신은 원컨대 강도는 부모와 처자를 아울러, 마소[牛馬] 도적은 각거(各居)하는 자식을 아울러, 절도는 전가족을 아울러 입거(入居)시켜 강가에 나누어 살게 하면, 안으로 도적을 맞을 근심이 없고, 밖으로는 외적의 방비가 충실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삼도(下三道)의 부요한 4정(丁) 이상의 향리(鄕吏)와 인민(人民) 1천 호를 오는 가을에 초정(抄定)하여, 떼550) 를 나누어 평양(平壤) 등지 바닷가 각관(各官)에 입거(入居)시키고, 5년을 한도로 하여 그 집의 부역을 면제하고, 오로지 경농(耕農)을 일삼아 그 생업을 평안히 하게 하고, 그 전조(田租)를 거두어 군자(軍資)로 비축하고, 적이 혹 대거(大擧) 침입하면 군사와 함께 나가서 막고, 그 중의 향리(鄕吏)는 전대로 이역(吏役)을 면제하고 농사에 힘쓰고, 효순한 자는 그 고을의 수령이 사유를 갖추어서 감사에게 보고하고 임금에게 아뢰어 서용(敍用)하여, 그 땅에 편안히 거주할 것을 권면하여 변방을 충실하게 하소서.

1. 전(傳)에 말하기를, ‘먹는 것은 백성의 근본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나라의 급한 것은 농사와 전쟁이다.’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부성하면 군사가 강하고, 군사가 강하면 싸우나, 그러나 농사는 승리의 근본입니다. 옛적 한(漢)나라 때에 조조(晁錯)551) 가 백성에게 곡식을 바치게 하여, 벼슬을 제수하고 죄를 면제하니, 변방의 곡식이 많아졌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벼슬을 얻고 죄를 면하는 것은 사람의 큰 욕심입니다. 조조의 옛일을 본받아서 납속(納粟)의 다소에 의하여 작질(爵秩)의 고하(高下)를 삼고, 죄를 진 자도 또한 곡식으로 속바치게 하면, 수년을 지나지 않아서 군수(軍需)가 족할 것입니다. 또 그 도(道) 주현(州縣)의 아전과 창적(蒼赤)552) 의 다소를 헤아려서 둔전(屯田)의 수를 정하고, 각진(各鎭)·각포(各浦)·각 구자(口子)의 둔전(屯田)도 또한 군인의 다소와 적로(賊路)의 긴급하고 완만한 것을 참작하여 수를 정하여, 한편으로 수비하고 한편으로 경작하게 하고, 해마다 연말에 감사(監司)가 농작(農作)의 다소와 아울러 외보(外補)553) 의 전최(殿最)를 상고하면, 관(官)은 부지런히 권과(勸課)할 것이요, 백성은 힘을 다하여 농사를 지어 자연히 창고에 곡식이 쌓여 썩을 것이요, 백성은 남은 곡식이 있어 시의(時宜)에 합당하니, 시험하소서.

1. 면포(綿布)로 쌀을 바꾸는 것은 실로 좋은 법입니다. 그러나 면포는 수가 있고 양식은 부족하니, 신은 원컨대 양계(兩界) 이외의 여러 도(道)의 각 관(官)과 향교(鄕校)의 노비(奴婢)를 형조(刑曹)로 하여금 역(役)의 분량을 헤아려서 계산하여 주고, 그 나머지 노비는 각사(各司) 노비의 예(例)에 의하여 공포(貢布)를 수납하고, 이것을 이입(移入)하여 쌀과 바꾸어, 군량을 보충하게 하소서.

1. 적을 제어하는 기계는 총통(銃筒)보다 더 이로운 것이 없으나, 오로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가르치고 익히지 않으면 그 이익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많고 약이 적어서, 일시에 교습하기가 또한 어렵습니다. 신은 원컨대 총통군 중에 담력과 용기가 있는 자를 뽑아서 정하게 교습하여, 한 사람이 총 놓는 것을 배우면 열 사람을 가르치고, 열 사람이 총 놓는 것을 배우면 백 사람을 가르치어, 이렇게 점점 교습하여 급한 때에 쓰도록 대비하소서.

1. 적을 보아서 진퇴하는 것은 군사를 쓰는 상법(常法)이고, 적의 양식을 빼앗는 것은 병가(兵家)의 이기는 계책입니다. 혹 적이 많고 우리는 적어서 큰 군사로 우리 성읍(城邑)을 포위하고 정예한 군사로 민간의 곡식을 약탈하면 적에게 이롭고 우리에게 큰 손상이 됩니다. 신은 원컨대 그 도(道)의 거민이 축적한 곡식을 땅굴 속에 감추면, 비록 급격한 경계가 있다 하더라도 적이 노략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병법에 말하기를, ‘군사가 양식이 없으면 망한다.’ 하였습니다. 저들이 어떻게 우리를 침노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농사 틈에 백성으로 하여금 땅굴을 만들게 하고, 부실한 공처(公處)에도 또한 땅굴을 만들어서 불우에 대비하소서.

1. 병법에 말하기를, ‘밤 싸움에는 불[火]과 북[鼓]이 많아야 하고, 낮 싸움에는 기[旌旗]가 많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이목(耳目)을 현란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기치(旗幟)를 많이 세우라.’ 하였으니, 신은 생각건대, 기와 북은 다만 전진(戰陣)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혹은 적의 형세를 보아서 군사를 수십(數十)으로 나누어 구릉(丘陵)과 산곡(山谷)에 벌려 놓아, 반은 숨기고 반은 내놓고, 또 의심나는 형상을 많이 세워 사람의 이목을 현란하게 하면, 적이 우리의 실정을 알지 못하고 앞과 뒤로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이럴까 저럴까 하여 결정하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갑자기 깊이 들어와서 불의(不意)에 습격하겠습니까? 이렇게 적을 머물게 하고, 구원병을 기다리거나 혹은 형세의 변하는 것을 보아서 공격하는 것이 또 군사의 한 도움이 됩니다. 신은 원컨대 그 도의 감사(監司)로 하여금 회계(會計)에 부기되어 있는 잡물(雜物)을 가지고 기와 북과 각(角)을 더 만들게 하소서.

1. 새로 옮긴 백성을 완전히 구휼하는 것은 이미 법령에 나타나 있으나, 토착한 무리들이 조령(條令)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침해하기 때문에, 새로 옮긴 백성이 편안히 살지 못하고 속속 유망(流亡)하여 군액(軍額)이 날로 감합니다. 빌건대 이제부터 전과 같이 침해하여 유망하게 하는 자는 율에 의하여 과단(科斷)하여 온 집을 연변(沿邊)에 입거(入居)하게 하고, 검거(檢擧)하지 않은 이정(里正)과 방별감(方別監)도 또한 유망한 사람이 본고장으로 돌아올 때까지를 한하여, 모두 입거하게 하여 유망(流亡)하는 폐단을 막으소서.

1. 각 고을의 아전과 관노비(官奴婢)의 은닉한 것과 누락한 것과 도망한 것과 살고 죽은 것을 부실하게 시행하니, 관리는 과죄(科罪)하고, 삼반(三班)554) 의 수리(首吏)와 색리(色吏)555) 는 모두 입거(入居)하게 하여, 속이는 폐단을 막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의정부(議政府)에 내리어 의논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부에서 의논하여 아뢰기를,

"제1조의 오로지 군사와 농사를 힘쓰는 것은 그 뜻이 심히 좋으나, 시행 절목(節目)을 말하지 아니하여 시행할 근거가 없으니, 해당 관사(官司)로 하여금 마련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제2조는 당(唐)나라 방관(房琯)556) 이 거전(車戰)을 쓰다가 대패한 이후에는 중국에서도 또한 쓰지 않습니다. 하물며 우리 나라는 산천이 험하고 막히어, 거전을 쓰기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삼국(三國) 시대로부터 전조(前朝)에 이르기까지 거전이 있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으니 거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제3조의 마소 도적[牛馬賊]은 바다 섬에 옮겨 두고, 강도·절도는 잡아서 징계하는 법이 이미 엄밀하여, 다시 의논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말하기를, ‘강도는 처자와 부모를, 절도는 전가(全家)를, 마소 도적은 각거(各居)하는 아들까지 합호(合戶)하여 아울러 변방에 사민(徙民)하자.’고 하였으나, 대저 도적의 정상은 밉지마는 죄가 처자에게 미치지 않는 것은 예전의 아름다운 법이니, 따로 준엄한 법을 세우는 것은 불가한 것 같습니다. 또 향리(鄕吏)와 민호를 입거시키는 것은 일찍이 시험하여 보았는데, 원망이 많고 이익은 적으니, 경솔히 의논하여 시행할 수 없습니다.

제4조는 벼슬을 팔아서 곡식을 받는 것이 이미 예전 사람이 그르다 하였고, 곡식으로 죄를 속하는 것은 더욱 불가합니다. 또 각 고을의 아전과 창적(蒼赤)557) 은 모두다 자기의 본역이 있어 다른 데에 미칠 겨를이 없고, 군인도 또한 그러하니, 이 잡된 무리들을 모아서 둔전(屯田)을 경작하는 것은 한갓 원망만 사고 끝내 이익이 없을까 두려우니 거행할 것이 아닙니다.

제5조는 각 고을의 노비가 액수보다 지나는 것이 적고, 향교(鄕校)의 노비는 본래 모두 수가 적어서 향교 안의 일도 오히려 이겨내지 못하니, 정수 이외의 노비를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예전 예에 의하여 베를 보내서 곡식을 무역하는 것이 편합니다.

제6조의 총통(銃筒) 교습에 대한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익혀서 열 사람을 가르치고, 열 사람이 익혀서 백 사람을 가르칠 때에, 장차 무슨 약을 쓰겠습니까? 예전대로 교습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제7조의 땅을 파고 곡식을 감추는 것은 평안도(平安道) 민간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처(公處)의 곡식은 수량이 적어도 수백 석을 내리지 않고, 많으면 천 석 만 석에 이르니, 어떻게 땅을 파고 굳게 감추어 일일이 지킬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성이 없는 각관의 곡식은 인근의 성이 있는 각관에 옮겨 두는 것을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제8조는 상언(上言)한 것에 따라서 시행하소서.

제9조의 새로 이주하여 머물러 있는 사람을 침해한 정적(情迹)이 현저한 자는 상언한 바에 의하여 과죄(科罪)하되, 침해한 자와 이정(里正)과 방별감(方別監)을 입거(入居)시키는 것은 모두 거행하지 마소서.

제10조의 아전과 관노비(官奴婢)의 숨고 누락한 것과 도망한 것과 살고 죽은 것을 사실대로 시행하지 않은 자는 그때그때 추핵(推劾)하여 그 관리를 처벌하는 것이 가하고, 삼반(三班)의 수리(首吏)와 색리(色吏)는 입거(入居)시키지 마소서."

하니, 임금이 모두 그대로 따르고, 제1조도 또한 해당 관사로 하여금 마감(磨勘)하지 말게 하였다.

  • [註 543] 황석공(黃石公) : 중국 진(秦)나라 말엽의 병법가.
  • [註 544] 달달(達達) : 몽고족.
  • [註 545] 삼위 달달(三衛達達) : 만주 여진족과 몽고의 달달(達達)족 사이에 있던 혼혈족 우량하(兀良哈:Uriangha)족을 말함.
  • [註 546] 이정(李靖) :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명장.
  • [註 547] 편상(偏箱) : 고대 중국의 수레의 이름.
  • [註 548] 녹각(鹿角) : 고대 중국의 수레의 이름.
  • [註 549] 원문(轅門) : 군문(軍門).
  • [註 550] 떼 : 운(運):이동 단위 부대.
  • [註 551] 조조(晁錯) : 한(漢)나라 혜제(惠帝) 때 간신.
  • [註 552] 창적(蒼赤) : 종.
  • [註 553] 외보(外補) : 외방에서 임금의 정치와 교화(敎化)를 돕는 수령(守令)과 변장(邊將).
  • [註 554] 삼반(三班) : 지방 관아의 아전·사령·노비 등의 총칭.
  • [註 555] 색리(色吏) : 담당 아전.
  • [註 556] 방관(房琯)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신하.
  • [註 557] 창적(蒼赤) : 종.

원문

○初中樞院使金孝誠上書曰:

臣竊觀, 黃石公曰: "德同勢敵, 無以相傾, 乃覽英雄之心, 與衆同好惡, 然後加之以權變。 故非陰計, 無以成功矣。" 臣謂今達達, 與中國抗衡, 事已大發, 豈不欲師古以成功乎? 然則達達, 深入長驅, 而勞其衆, 先與我國爭鋒, 勢無可疑, 然近居野人, 與三衛達達, 皆同類而多詐, 其爲陰計, 未可知也。 《書》曰: "有備無患。" 《孫子》曰: "無恃其不來, 恃吾有以待也。" 今亦備預以待之可也。 或以今日無事, 高談虛議, 猶豫未決, 敵形先露, 則邊境之虞, 可不慮乎? 臣雖庸劣, 職當軍務, 不敢含默, 謹以管見, 條列以聞, 伏惟上裁。 一, 平安道人民, 近因年歉, 兵食俱虛, 又有達達聲息, 欲今合兵以待之, 糧餉不足, 以寡敵衆, 勢必虛弱, 何以應之? 此非一日一月之事, 深可慮也。 臣願命其道軍民, 全務兵農, 以養武勇, 使之本固。 一, 兵法曰: "用衆者務易, 用少者務隘。" 此我國家之利也。 然平安一道, 兵食甚寡, 徵兵諸道以待之, 彼雖百萬, 無益於用。 若援兵未合, 敵人先至, 則須用奇兵, 乃可制矣。 太公曰: "車者軍之翼, 所以陷堅陳, 要强敵, 遮走北也。" 李靖曰: "偏箱、鹿角, 兵之大要, 一則前拒, 一則治力, 一則束部伍。" 以此觀之, 車戰之法, 實爲良策也, 而我國乃山澤之邦, 故自古以爲車不可用, 車法亡矣。 然臣謂楚雖山澤之國, 而猶用車法, 則我國豈無用車之理乎? 如其用之, 則以偏箱、鹿角爲之, 可容二十五人。 車士則一乘, 前拒一隊, 左右角二隊各一人, 御車一人, 甲士三人, 共七人內, 銃筒軍一人, 或步卒多則共十人, 駕牛二頭, 以爲車法。 若與敵相當, 彼兵旣衆, 必有圍我之勢, 則我以轅門, 堅陳以待之, 如有可勝之勢, 卽令我軍, 十分爲率, 六七分爲戰士, 陰用奇正之術, 二三分爲車兵, 分拒三處, 車隊多建旌旗, 多鳴鼓角, 則敵見其威儀之盛, 必謂車士之古制, 一乘用士百五十人, 少不下七十五人, 莫不畏威而反生狐疑, 我乃治力之兵, 或遮走北, 或陷堅陳, 則其爲羽翼之利, 可勝言哉? 請令其道都節制使, 兼掌造車。 一, 今盜賊興行, 人不安寢, 此俗不可長於國中。 臣願强盜, 則幷妻子與父母, 牛馬賊, 則幷各居之子, 竊盜, 則全家竝令入居, 分處江邊, 內無被盜之患, 外實禦侮之備。 又於下三道, 富饒四丁以上鄕吏, 與人民一千戶, 來秋抄定分運, 入居平壤等處海濱各官, 限五年復其家, 專事耕農, 以安其業, 收其田租, 以備軍資, 敵或大擧, 幷兵禦之, 其中鄕吏, 依前免役, 務農孝順者, 其官守令, 具報監司, 啓聞敍用, 勸勉安土, 以實邊鄙。 一, 傳曰: "食者, 民之天也。" 又曰: "國之所急, 惟農與戰。" 國富則兵强, 兵强則戰, 然農者, 勝之本也。 昔漢之時, 晁錯募民入粟, 拜爵免罪, 而塞下之粟以多矣。 臣謂得爵免罪, 人所大欲也。 効晁錯古事, 以納粟之多少, 爲爵秩之高下, 得罪者亦以粟爲贖, 則不過數年, 而軍需足矣。 且於其道州縣, 度人吏蒼赤多少, 定屯田之數, 各鎭、各浦、各口子屯田, 亦以軍人多少, 賊路緊緩, 酌量定數, 且守且耕, 每歲抄監司考農作之多少, 幷外補之殿最, 則官有勸課之勤, 民竭耕種之力, 自然倉積紅腐, 民有餘粟, 以合時宜, 試驗。 一, 以綿布易米斗, 實爲良法。 然綿布有數, 糧餉不足, 臣願兩界外, 諸道各官, 及鄕校奴婢, 令刑曹量役計給, 其餘奴婢, 依各司奴婢例, 收納貢布, 移入換米, 以補糧餉。 一, 制敵之器, 莫如銃筒之利, 專在於人。 人不敎習, 難見其利。 然人多藥少, 一時敎習亦難。 臣願銃筒軍中, 選膽勇氣力者, 精加敎習, 一人學放, 敎成十人, 十人學放, 敎成百人, 以此漸漸敎習, 以備緩急之用。 一, 觀敵進退, 用兵之常法, 因糧於敵, 兵家之勝策。 或彼衆我寡, 其大軍圍我城邑, 而使銳卒掠於田野, 則資敵而傷我甚焉。 臣願其道居民所積, 藏於地窖, 雖有警急, 敵無所掠。 兵法曰: "軍無糧食則亡。" 彼安能侵我哉? 必於農隙, 使民各作地窖, 不實公處, 亦作地窖, 以備不虞。 一, 兵法曰: "夜戰多火鼓, 晝戰多旌旗。" 所以變人之耳目也。 又曰: "多張旗幟。" 臣謂旗鼓, 非特用於戰陣。 或因敵勢, 分兵數十, 列諸丘陵山谷, 半隱半出, 多設疑形, 變人耳目, 則彼不知我情, 恐腹背受敵, 猶豫未定, 安能猝然深入, 出其不意乎? 使之留敵, 以待援兵, 或觀變而動, 亦軍之一助也。 臣願今其道監司, 將會計付雜物, 加造旗鼓與角。 一, 完恤新徙之民, 已有著令, 然土着之徒, 不畏條令, 多端侵害, 故新徙之民, 不得安業, 續續流亡, 軍額日減。 乞自今如前侵害, 以致流亡者, 按律科斷, 合戶入居沿邊, 其不檢擧, 里正方別監, 亦限流亡人還本, 竝令入居, 以杜流亡之弊。 一, 各官人吏、官奴婢, 隱漏及逃亡、存沒, 不實施行, 官吏科罪, 三班首吏及色吏, 竝令入居, 以杜冒濫之弊何如?

下議政府議之。 至是, 政府議啓: "第一條, 專務兵農, 此意甚善, 然不言施爲節目, 行之無據, 令該司, 磨勘施行。 第二條, 唐 房琯用車戰, 大敗而後, 中國亦不用。 況我國山川險阻, 不宜車行, 用之尤難。 故自三國, 至于前朝, 未聞有車戰者, 似難擧行。 第三條, 牛馬賊移置海島, 强竊盜捕獲與懲戒之法, 旣已嚴密, 無復可議。 今言: ‘强盜, 則幷妻子與父母, 竊盜則全家, 牛馬賊, 則幷各居之子, 竝令合戶徙邊。’ 夫盜賊情狀雖可憎, 罪不及妻孥, 古之美法, 別設峻法, 似不可也。 且鄕吏民戶, 入居之事, 曾已試之, 怨多益少, 不可輕以議爲。 第四條, 鬻爵入粟, 古人已非之, 贖罪以粟, 尤爲不可。 且各官人吏、蒼赤, 皆有本役, 靡遑他及, 軍人亦然, 聚此雜類, 耕種屯田, 恐徒取怨咨, 終無所利, 不宜擧行。 第五條, 各官奴婢, 過於額數者鮮少, 鄕校奴婢, 本皆數少, 校中役事, 猶且不勝, 數外奴婢, 刷得爲難。 依舊例送布貿易爲便。 第六條, 銃筒敎習之說, 誠是。 然一人習而敎十人, 十人習而敎百人之時, 將用何藥? 不如仍舊敎習。 第七條, 堀地藏穀, 平安民間已行之。 公處則穀數, 少不下數百石, 多至千萬, 豈可堀地堅藏, 一一守之? 故無城各官穀米, 移置于隣近有城各官, 事已施行。 第八條, 依上言施行。 第九條, 時留在新徙之人, 侵虐情迹現著者, 依上言科罪, 侵虐者及里正、方別監入居事, 勿幷擧行。 第十條, 人吏、官奴婢隱漏及逃亡、存沒, 不以實施行者, 隨卽推劾, 罪其官吏可也, 其三班首吏及色吏, 勿竝入居。" 上皆從之, 第一條, 亦勿令該司磨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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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2권, 문종 즉위년 7월 18일 庚申 6/6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중추원 사 김효성이 야인 방비책을 조목별로 열거하여 올리다

국역

처음에 중추원 사(中樞院使) 김효성(金孝誠)이 상서하기를,

"신이 가만히 보건대, 황석공(黃石公)543) 이 이르기를, ‘덕이 같고 세력이 상적하면 서로 기울어뜨릴 수 없고, 영웅(英雄)의 마음이 대중과 호오(好惡)를 같이 하는 것을 본 연후에 권모 술수를 써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음계(陰計)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지금 달달(達達)544) 이 중국과 세력을 겨루어 일이 이미 크게 벌어졌으니, 어찌 예전 말을 본받아서 성공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달달(達達)이 그 군중을 동원하여 길게 몰고 깊이 들어와 먼저 우리 나라와 칼날을 겨루는 형세는 의심할 것 없지마는, 가까이 살고 있는 야인(野人)은 모두 삼위 달달(三衛達達)545) 과 동류이고 거짓이 많으니, 그 음계(陰計)를 알 수 없습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방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하였고, 《손자(孫子)》에 말하기를, ‘적이 오지 않는 것을 믿지 말고, 나의 대비가 있는 것을 믿으라.’ 하였습니다. 지금도 또한 미리 방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가(可)합니다. 혹시 오늘 일이 없으므로 장담과 쓸데없는 의논만 하여,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적의 형상이 먼저 나타나면 변경의 근심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용렬하나 직책이 군무(軍務)를 맡고 있어 감히 침묵만 지킬 수 없어 삼가 좁은 소견으로 조목으로 열거하여 올리니, 엎드려 상재(上裁)를 바랍니다.

1. 평안도(平安道) 인민이 근래에 흉년으로 인하여 군사와 양식이 모두 허갈(虛竭)하고, 또 달달의 소문이 있으니, 군사를 합하여 기다리게 하고자 하나 양식이 부족하고,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대적하게 되어 형세가 반드시 허약할 것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하루나 한 달의 일이 아니니 깊이 염려됩니다. 신은 원컨대 그 도의 군사와 백성으로 하여금 오로지 군사와 농사에 힘을 쓰고 무용(武勇)을 길러서 근본을 튼튼하게 하소서.

1. 병법(兵法)에 말하기를, ‘많은 군사를 쓰는 자는 평이한 것을 힘쓰고, 적은 군사를 쓰는 자는 험한 것을 힘쓰라.’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 나라에 이로운 말입니다. 그러나 평안도 한 도는 군사와 양식이 심히 적으니, 여러 도에서 징병하여 기다리면 저들이 비록 백만이라도 쓸데는 없습니다. 만일 구원병이 집합하기 전에 적이 먼저 이르면, 반드시 기병(奇兵)을 써야 제어할 수 있습니다. 태공망(太公望)이 말하기를, ‘수레[車]는 군사의 날개로써 견진(堅陣)을 함락하고, 강적(强敵)을 방어하고, 패하여 달아나는 것을 막는 것이라.’ 하였고, 이정(李靖)546) 은 말하기를, ‘편상(偏箱)547) ·녹각(鹿角)548) 은 군사의 큰 요체로서, 하나는 앞을 막을 수 있고, 하나는 힘을 훈련할 수 있고, 하나는 부오(部伍)를 결속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것으로 보면, 거전(車戰)의 법이 실로 좋은 계책인데, 우리 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수레는 쓸 수 없다 하여 거법(車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생각건대 초(楚)나라는 산택(山澤)의 나라라고 하는데 오히려 거법을 썼으니, 우리 나라엔들 어찌 수레를 쓰지 못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만일 쓴다면 편상(偏箱)·녹각(鹿角)으로 하여 25인을 실을 수 있습니다. 거사(車士)는 일승(一乘)에 전거(前拒) 1대(隊)와 좌각(左角)·우각(右角) 2대(隊) 각 1인, 어거(御車) 1인, 갑사(甲士) 3인, 합하여 7인, 그 안에 총통군(銃筒軍) 1인, 혹은 보졸(步卒)이 많으면 모두 합하여 10인이 타고, 소 두 마리를 멍에하는 것으로 거법을 삼도록 하고, 만일 적과 서로 만나 저쪽 군사가 많아서 나를 포위할 염려가 있으면 우리는 원문(轅門)549) 으로 진(陣)을 굳게 하여 기다리고, 만일 이길 만한 형세가 있으면 곧 우리 군사를 10분(分)으로 비율(比率)하여 6,7분(六七分)은 전사(戰士)로 삼아 가만히 기정(奇正)의 술(術)을 쓰고, 2, 3분(二三分)은 거병(車兵)으로 삼아 세 곳을 나누어 막고, 거대(車隊)에는 정기(旌旗)를 많이 세우고, 고각(鼓角)을 많이 울리면 적이 위의(威儀)의 성한 것을 보고 반드시 생각하기를, 거사(車士)의 예전 제도에 한 수레[一乘]에 군사 1백 50인을 쓰고 있으니 적어도 75인은 될 것이라 하고,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도리어 의심하여 어쩔 줄 모를 것이니, 우리는 힘을 훈련한 군사인지라, 혹은 패하고 달아나는 것을 막고 혹은 굳은 진을 함락시키면, 우익(羽翼)의 이가 되는 것을 이루 다 말하겠습니까? 청컨대 그 도의 도절제사(都節制使)로 하여금 겸하여 수레 만드는 것을 관장(管掌)하게 하소서.

1. 지금 도적이 자행하여 사람이 편히 자지 못하니, 이 풍속을 나라 안에서 자라나게 할 수 없습니다. 신은 원컨대 강도는 부모와 처자를 아울러, 마소[牛馬] 도적은 각거(各居)하는 자식을 아울러, 절도는 전가족을 아울러 입거(入居)시켜 강가에 나누어 살게 하면, 안으로 도적을 맞을 근심이 없고, 밖으로는 외적의 방비가 충실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삼도(下三道)의 부요한 4정(丁) 이상의 향리(鄕吏)와 인민(人民) 1천 호를 오는 가을에 초정(抄定)하여, 떼550) 를 나누어 평양(平壤) 등지 바닷가 각관(各官)에 입거(入居)시키고, 5년을 한도로 하여 그 집의 부역을 면제하고, 오로지 경농(耕農)을 일삼아 그 생업을 평안히 하게 하고, 그 전조(田租)를 거두어 군자(軍資)로 비축하고, 적이 혹 대거(大擧) 침입하면 군사와 함께 나가서 막고, 그 중의 향리(鄕吏)는 전대로 이역(吏役)을 면제하고 농사에 힘쓰고, 효순한 자는 그 고을의 수령이 사유를 갖추어서 감사에게 보고하고 임금에게 아뢰어 서용(敍用)하여, 그 땅에 편안히 거주할 것을 권면하여 변방을 충실하게 하소서.

1. 전(傳)에 말하기를, ‘먹는 것은 백성의 근본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나라의 급한 것은 농사와 전쟁이다.’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부성하면 군사가 강하고, 군사가 강하면 싸우나, 그러나 농사는 승리의 근본입니다. 옛적 한(漢)나라 때에 조조(晁錯)551) 가 백성에게 곡식을 바치게 하여, 벼슬을 제수하고 죄를 면제하니, 변방의 곡식이 많아졌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벼슬을 얻고 죄를 면하는 것은 사람의 큰 욕심입니다. 조조의 옛일을 본받아서 납속(納粟)의 다소에 의하여 작질(爵秩)의 고하(高下)를 삼고, 죄를 진 자도 또한 곡식으로 속바치게 하면, 수년을 지나지 않아서 군수(軍需)가 족할 것입니다. 또 그 도(道) 주현(州縣)의 아전과 창적(蒼赤)552) 의 다소를 헤아려서 둔전(屯田)의 수를 정하고, 각진(各鎭)·각포(各浦)·각 구자(口子)의 둔전(屯田)도 또한 군인의 다소와 적로(賊路)의 긴급하고 완만한 것을 참작하여 수를 정하여, 한편으로 수비하고 한편으로 경작하게 하고, 해마다 연말에 감사(監司)가 농작(農作)의 다소와 아울러 외보(外補)553) 의 전최(殿最)를 상고하면, 관(官)은 부지런히 권과(勸課)할 것이요, 백성은 힘을 다하여 농사를 지어 자연히 창고에 곡식이 쌓여 썩을 것이요, 백성은 남은 곡식이 있어 시의(時宜)에 합당하니, 시험하소서.

1. 면포(綿布)로 쌀을 바꾸는 것은 실로 좋은 법입니다. 그러나 면포는 수가 있고 양식은 부족하니, 신은 원컨대 양계(兩界) 이외의 여러 도(道)의 각 관(官)과 향교(鄕校)의 노비(奴婢)를 형조(刑曹)로 하여금 역(役)의 분량을 헤아려서 계산하여 주고, 그 나머지 노비는 각사(各司) 노비의 예(例)에 의하여 공포(貢布)를 수납하고, 이것을 이입(移入)하여 쌀과 바꾸어, 군량을 보충하게 하소서.

1. 적을 제어하는 기계는 총통(銃筒)보다 더 이로운 것이 없으나, 오로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가르치고 익히지 않으면 그 이익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많고 약이 적어서, 일시에 교습하기가 또한 어렵습니다. 신은 원컨대 총통군 중에 담력과 용기가 있는 자를 뽑아서 정하게 교습하여, 한 사람이 총 놓는 것을 배우면 열 사람을 가르치고, 열 사람이 총 놓는 것을 배우면 백 사람을 가르치어, 이렇게 점점 교습하여 급한 때에 쓰도록 대비하소서.

1. 적을 보아서 진퇴하는 것은 군사를 쓰는 상법(常法)이고, 적의 양식을 빼앗는 것은 병가(兵家)의 이기는 계책입니다. 혹 적이 많고 우리는 적어서 큰 군사로 우리 성읍(城邑)을 포위하고 정예한 군사로 민간의 곡식을 약탈하면 적에게 이롭고 우리에게 큰 손상이 됩니다. 신은 원컨대 그 도(道)의 거민이 축적한 곡식을 땅굴 속에 감추면, 비록 급격한 경계가 있다 하더라도 적이 노략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병법에 말하기를, ‘군사가 양식이 없으면 망한다.’ 하였습니다. 저들이 어떻게 우리를 침노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농사 틈에 백성으로 하여금 땅굴을 만들게 하고, 부실한 공처(公處)에도 또한 땅굴을 만들어서 불우에 대비하소서.

1. 병법에 말하기를, ‘밤 싸움에는 불[火]과 북[鼓]이 많아야 하고, 낮 싸움에는 기[旌旗]가 많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이목(耳目)을 현란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기치(旗幟)를 많이 세우라.’ 하였으니, 신은 생각건대, 기와 북은 다만 전진(戰陣)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혹은 적의 형세를 보아서 군사를 수십(數十)으로 나누어 구릉(丘陵)과 산곡(山谷)에 벌려 놓아, 반은 숨기고 반은 내놓고, 또 의심나는 형상을 많이 세워 사람의 이목을 현란하게 하면, 적이 우리의 실정을 알지 못하고 앞과 뒤로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이럴까 저럴까 하여 결정하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갑자기 깊이 들어와서 불의(不意)에 습격하겠습니까? 이렇게 적을 머물게 하고, 구원병을 기다리거나 혹은 형세의 변하는 것을 보아서 공격하는 것이 또 군사의 한 도움이 됩니다. 신은 원컨대 그 도의 감사(監司)로 하여금 회계(會計)에 부기되어 있는 잡물(雜物)을 가지고 기와 북과 각(角)을 더 만들게 하소서.

1. 새로 옮긴 백성을 완전히 구휼하는 것은 이미 법령에 나타나 있으나, 토착한 무리들이 조령(條令)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침해하기 때문에, 새로 옮긴 백성이 편안히 살지 못하고 속속 유망(流亡)하여 군액(軍額)이 날로 감합니다. 빌건대 이제부터 전과 같이 침해하여 유망하게 하는 자는 율에 의하여 과단(科斷)하여 온 집을 연변(沿邊)에 입거(入居)하게 하고, 검거(檢擧)하지 않은 이정(里正)과 방별감(方別監)도 또한 유망한 사람이 본고장으로 돌아올 때까지를 한하여, 모두 입거하게 하여 유망(流亡)하는 폐단을 막으소서.

1. 각 고을의 아전과 관노비(官奴婢)의 은닉한 것과 누락한 것과 도망한 것과 살고 죽은 것을 부실하게 시행하니, 관리는 과죄(科罪)하고, 삼반(三班)554) 의 수리(首吏)와 색리(色吏)555) 는 모두 입거(入居)하게 하여, 속이는 폐단을 막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의정부(議政府)에 내리어 의논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부에서 의논하여 아뢰기를,

"제1조의 오로지 군사와 농사를 힘쓰는 것은 그 뜻이 심히 좋으나, 시행 절목(節目)을 말하지 아니하여 시행할 근거가 없으니, 해당 관사(官司)로 하여금 마련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제2조는 당(唐)나라 방관(房琯)556) 이 거전(車戰)을 쓰다가 대패한 이후에는 중국에서도 또한 쓰지 않습니다. 하물며 우리 나라는 산천이 험하고 막히어, 거전을 쓰기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삼국(三國) 시대로부터 전조(前朝)에 이르기까지 거전이 있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으니 거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제3조의 마소 도적[牛馬賊]은 바다 섬에 옮겨 두고, 강도·절도는 잡아서 징계하는 법이 이미 엄밀하여, 다시 의논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말하기를, ‘강도는 처자와 부모를, 절도는 전가(全家)를, 마소 도적은 각거(各居)하는 아들까지 합호(合戶)하여 아울러 변방에 사민(徙民)하자.’고 하였으나, 대저 도적의 정상은 밉지마는 죄가 처자에게 미치지 않는 것은 예전의 아름다운 법이니, 따로 준엄한 법을 세우는 것은 불가한 것 같습니다. 또 향리(鄕吏)와 민호를 입거시키는 것은 일찍이 시험하여 보았는데, 원망이 많고 이익은 적으니, 경솔히 의논하여 시행할 수 없습니다.

제4조는 벼슬을 팔아서 곡식을 받는 것이 이미 예전 사람이 그르다 하였고, 곡식으로 죄를 속하는 것은 더욱 불가합니다. 또 각 고을의 아전과 창적(蒼赤)557) 은 모두다 자기의 본역이 있어 다른 데에 미칠 겨를이 없고, 군인도 또한 그러하니, 이 잡된 무리들을 모아서 둔전(屯田)을 경작하는 것은 한갓 원망만 사고 끝내 이익이 없을까 두려우니 거행할 것이 아닙니다.

제5조는 각 고을의 노비가 액수보다 지나는 것이 적고, 향교(鄕校)의 노비는 본래 모두 수가 적어서 향교 안의 일도 오히려 이겨내지 못하니, 정수 이외의 노비를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예전 예에 의하여 베를 보내서 곡식을 무역하는 것이 편합니다.

제6조의 총통(銃筒) 교습에 대한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익혀서 열 사람을 가르치고, 열 사람이 익혀서 백 사람을 가르칠 때에, 장차 무슨 약을 쓰겠습니까? 예전대로 교습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제7조의 땅을 파고 곡식을 감추는 것은 평안도(平安道) 민간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처(公處)의 곡식은 수량이 적어도 수백 석을 내리지 않고, 많으면 천 석 만 석에 이르니, 어떻게 땅을 파고 굳게 감추어 일일이 지킬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성이 없는 각관의 곡식은 인근의 성이 있는 각관에 옮겨 두는 것을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제8조는 상언(上言)한 것에 따라서 시행하소서.

제9조의 새로 이주하여 머물러 있는 사람을 침해한 정적(情迹)이 현저한 자는 상언한 바에 의하여 과죄(科罪)하되, 침해한 자와 이정(里正)과 방별감(方別監)을 입거(入居)시키는 것은 모두 거행하지 마소서.

제10조의 아전과 관노비(官奴婢)의 숨고 누락한 것과 도망한 것과 살고 죽은 것을 사실대로 시행하지 않은 자는 그때그때 추핵(推劾)하여 그 관리를 처벌하는 것이 가하고, 삼반(三班)의 수리(首吏)와 색리(色吏)는 입거(入居)시키지 마소서."

하니, 임금이 모두 그대로 따르고, 제1조도 또한 해당 관사로 하여금 마감(磨勘)하지 말게 하였다.

  • [註 543] 황석공(黃石公) : 중국 진(秦)나라 말엽의 병법가.
  • [註 544] 달달(達達) : 몽고족.
  • [註 545] 삼위 달달(三衛達達) : 만주 여진족과 몽고의 달달(達達)족 사이에 있던 혼혈족 우량하(兀良哈:Uriangha)족을 말함.
  • [註 546] 이정(李靖) :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명장.
  • [註 547] 편상(偏箱) : 고대 중국의 수레의 이름.
  • [註 548] 녹각(鹿角) : 고대 중국의 수레의 이름.
  • [註 549] 원문(轅門) : 군문(軍門).
  • [註 550] 떼 : 운(運):이동 단위 부대.
  • [註 551] 조조(晁錯) : 한(漢)나라 혜제(惠帝) 때 간신.
  • [註 552] 창적(蒼赤) : 종.
  • [註 553] 외보(外補) : 외방에서 임금의 정치와 교화(敎化)를 돕는 수령(守令)과 변장(邊將).
  • [註 554] 삼반(三班) : 지방 관아의 아전·사령·노비 등의 총칭.
  • [註 555] 색리(色吏) : 담당 아전.
  • [註 556] 방관(房琯)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신하.
  • [註 557] 창적(蒼赤) : 종.

원문

○初中樞院使金孝誠上書曰:

臣竊觀, 黃石公曰: "德同勢敵, 無以相傾, 乃覽英雄之心, 與衆同好惡, 然後加之以權變。 故非陰計, 無以成功矣。" 臣謂今達達, 與中國抗衡, 事已大發, 豈不欲師古以成功乎? 然則達達, 深入長驅, 而勞其衆, 先與我國爭鋒, 勢無可疑, 然近居野人, 與三衛達達, 皆同類而多詐, 其爲陰計, 未可知也。 《書》曰: "有備無患。" 《孫子》曰: "無恃其不來, 恃吾有以待也。" 今亦備預以待之可也。 或以今日無事, 高談虛議, 猶豫未決, 敵形先露, 則邊境之虞, 可不慮乎? 臣雖庸劣, 職當軍務, 不敢含默, 謹以管見, 條列以聞, 伏惟上裁。 一, 平安道人民, 近因年歉, 兵食俱虛, 又有達達聲息, 欲今合兵以待之, 糧餉不足, 以寡敵衆, 勢必虛弱, 何以應之? 此非一日一月之事, 深可慮也。 臣願命其道軍民, 全務兵農, 以養武勇, 使之本固。 一, 兵法曰: "用衆者務易, 用少者務隘。" 此我國家之利也。 然平安一道, 兵食甚寡, 徵兵諸道以待之, 彼雖百萬, 無益於用。 若援兵未合, 敵人先至, 則須用奇兵, 乃可制矣。 太公曰: "車者軍之翼, 所以陷堅陳, 要强敵, 遮走北也。" 李靖曰: "偏箱、鹿角, 兵之大要, 一則前拒, 一則治力, 一則束部伍。" 以此觀之, 車戰之法, 實爲良策也, 而我國乃山澤之邦, 故自古以爲車不可用, 車法亡矣。 然臣謂楚雖山澤之國, 而猶用車法, 則我國豈無用車之理乎? 如其用之, 則以偏箱、鹿角爲之, 可容二十五人。 車士則一乘, 前拒一隊, 左右角二隊各一人, 御車一人, 甲士三人, 共七人內, 銃筒軍一人, 或步卒多則共十人, 駕牛二頭, 以爲車法。 若與敵相當, 彼兵旣衆, 必有圍我之勢, 則我以轅門, 堅陳以待之, 如有可勝之勢, 卽令我軍, 十分爲率, 六七分爲戰士, 陰用奇正之術, 二三分爲車兵, 分拒三處, 車隊多建旌旗, 多鳴鼓角, 則敵見其威儀之盛, 必謂車士之古制, 一乘用士百五十人, 少不下七十五人, 莫不畏威而反生狐疑, 我乃治力之兵, 或遮走北, 或陷堅陳, 則其爲羽翼之利, 可勝言哉? 請令其道都節制使, 兼掌造車。 一, 今盜賊興行, 人不安寢, 此俗不可長於國中。 臣願强盜, 則幷妻子與父母, 牛馬賊, 則幷各居之子, 竊盜, 則全家竝令入居, 分處江邊, 內無被盜之患, 外實禦侮之備。 又於下三道, 富饒四丁以上鄕吏, 與人民一千戶, 來秋抄定分運, 入居平壤等處海濱各官, 限五年復其家, 專事耕農, 以安其業, 收其田租, 以備軍資, 敵或大擧, 幷兵禦之, 其中鄕吏, 依前免役, 務農孝順者, 其官守令, 具報監司, 啓聞敍用, 勸勉安土, 以實邊鄙。 一, 傳曰: "食者, 民之天也。" 又曰: "國之所急, 惟農與戰。" 國富則兵强, 兵强則戰, 然農者, 勝之本也。 昔漢之時, 晁錯募民入粟, 拜爵免罪, 而塞下之粟以多矣。 臣謂得爵免罪, 人所大欲也。 効晁錯古事, 以納粟之多少, 爲爵秩之高下, 得罪者亦以粟爲贖, 則不過數年, 而軍需足矣。 且於其道州縣, 度人吏蒼赤多少, 定屯田之數, 各鎭、各浦、各口子屯田, 亦以軍人多少, 賊路緊緩, 酌量定數, 且守且耕, 每歲抄監司考農作之多少, 幷外補之殿最, 則官有勸課之勤, 民竭耕種之力, 自然倉積紅腐, 民有餘粟, 以合時宜, 試驗。 一, 以綿布易米斗, 實爲良法。 然綿布有數, 糧餉不足, 臣願兩界外, 諸道各官, 及鄕校奴婢, 令刑曹量役計給, 其餘奴婢, 依各司奴婢例, 收納貢布, 移入換米, 以補糧餉。 一, 制敵之器, 莫如銃筒之利, 專在於人。 人不敎習, 難見其利。 然人多藥少, 一時敎習亦難。 臣願銃筒軍中, 選膽勇氣力者, 精加敎習, 一人學放, 敎成十人, 十人學放, 敎成百人, 以此漸漸敎習, 以備緩急之用。 一, 觀敵進退, 用兵之常法, 因糧於敵, 兵家之勝策。 或彼衆我寡, 其大軍圍我城邑, 而使銳卒掠於田野, 則資敵而傷我甚焉。 臣願其道居民所積, 藏於地窖, 雖有警急, 敵無所掠。 兵法曰: "軍無糧食則亡。" 彼安能侵我哉? 必於農隙, 使民各作地窖, 不實公處, 亦作地窖, 以備不虞。 一, 兵法曰: "夜戰多火鼓, 晝戰多旌旗。" 所以變人之耳目也。 又曰: "多張旗幟。" 臣謂旗鼓, 非特用於戰陣。 或因敵勢, 分兵數十, 列諸丘陵山谷, 半隱半出, 多設疑形, 變人耳目, 則彼不知我情, 恐腹背受敵, 猶豫未定, 安能猝然深入, 出其不意乎? 使之留敵, 以待援兵, 或觀變而動, 亦軍之一助也。 臣願今其道監司, 將會計付雜物, 加造旗鼓與角。 一, 完恤新徙之民, 已有著令, 然土着之徒, 不畏條令, 多端侵害, 故新徙之民, 不得安業, 續續流亡, 軍額日減。 乞自今如前侵害, 以致流亡者, 按律科斷, 合戶入居沿邊, 其不檢擧, 里正方別監, 亦限流亡人還本, 竝令入居, 以杜流亡之弊。 一, 各官人吏、官奴婢, 隱漏及逃亡、存沒, 不實施行, 官吏科罪, 三班首吏及色吏, 竝令入居, 以杜冒濫之弊何如?

下議政府議之。 至是, 政府議啓: "第一條, 專務兵農, 此意甚善, 然不言施爲節目, 行之無據, 令該司, 磨勘施行。 第二條, 唐 房琯用車戰, 大敗而後, 中國亦不用。 況我國山川險阻, 不宜車行, 用之尤難。 故自三國, 至于前朝, 未聞有車戰者, 似難擧行。 第三條, 牛馬賊移置海島, 强竊盜捕獲與懲戒之法, 旣已嚴密, 無復可議。 今言: ‘强盜, 則幷妻子與父母, 竊盜則全家, 牛馬賊, 則幷各居之子, 竝令合戶徙邊。’ 夫盜賊情狀雖可憎, 罪不及妻孥, 古之美法, 別設峻法, 似不可也。 且鄕吏民戶, 入居之事, 曾已試之, 怨多益少, 不可輕以議爲。 第四條, 鬻爵入粟, 古人已非之, 贖罪以粟, 尤爲不可。 且各官人吏、蒼赤, 皆有本役, 靡遑他及, 軍人亦然, 聚此雜類, 耕種屯田, 恐徒取怨咨, 終無所利, 不宜擧行。 第五條, 各官奴婢, 過於額數者鮮少, 鄕校奴婢, 本皆數少, 校中役事, 猶且不勝, 數外奴婢, 刷得爲難。 依舊例送布貿易爲便。 第六條, 銃筒敎習之說, 誠是。 然一人習而敎十人, 十人習而敎百人之時, 將用何藥? 不如仍舊敎習。 第七條, 堀地藏穀, 平安民間已行之。 公處則穀數, 少不下數百石, 多至千萬, 豈可堀地堅藏, 一一守之? 故無城各官穀米, 移置于隣近有城各官, 事已施行。 第八條, 依上言施行。 第九條, 時留在新徙之人, 侵虐情迹現著者, 依上言科罪, 侵虐者及里正、方別監入居事, 勿幷擧行。 第十條, 人吏、官奴婢隱漏及逃亡、存沒, 不以實施行者, 隨卽推劾, 罪其官吏可也, 其三班首吏及色吏, 勿竝入居。" 上皆從之, 第一條, 亦勿令該司磨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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