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72권, 세종 18년 6월 23일 戊午 1/4 기사 / 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육지로 내보낸 제주인들의 거취와 궁인으로 첩을 삼은 설효조의 처벌에 관한 논의
국역
정부에 의논하였다. 그 하나는,
"경(卿) 등이 제주의 우마적(牛馬賊)을 육지에 내보낸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즉시 돌려보내게 되면 악을 징계할 수 없다고 하니, 그 뜻이 진실로 좋으나, 그러나, 멀리 고향을 떠난 지 벌써 3년을 지냈으니, 족히 악을 징계한 것이었다. 내가 그들이 멀리 향곡(鄕曲)을 떠나서 어버이를 생각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민망하게 여기어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그 정을 펴게 하고자 하니, 다시 의논해서 아뢰라."
하니, 영의정 황희(黃喜) 등이 의논하기를,
"아내와 자식들을 옮기게 한 것은 오로지 지아비의 죄 때문이니, 그 도둑의 몸으로 죽은 자의 처자는 모두 본토(本土)로 돌려보내소서."
하고, 참찬 조계생(趙啓生) 등이 의논하기를,
"제주 사람들이 마소를 도둑질하여 그 생계로 한 것은, 오로지 땅이 비좁고 백성이 조밀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서이며, 항산(恒産)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미 육지로 내보내어 관청에서 토지와 일거리를 주어서 생계를 이루게 하여 모두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 하필 본토(本土)로 내보내겠습니까."
하였다. 그 하나는,
"별시위(別侍衛) 설효조(薛孝祖)가 내쫓은 궁인(宮人)으로써 첩을 삼았으므로, 헌부(憲府)에서 대사(大祀)의 신이 드시는 물건을 도둑질한 율문[盜大祀神御物律]에 비부(比附)하여 추핵(推覈)하였으니, 죄가 참형에 해당하나, 그러나, 이 앞서에도 이런 죄를 범한 자가 하나뿐이 아니었다. 이명인(李明仁)·권총(權聰) 등은 모두가 종실의 인척간이므로, 내가 경한 법전을 좇았으니, 유독 효조(孝祖)에게만 중한 법으로 처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권총의 예에 의해서 죄를 결정하려는데 어떻겠느냐."
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이 율이 적당하지 못하오니 다시 조율(照律)하게 하소서."
하였다. 그 하나는,
"처음에 상호군 하한(河漢)이 지종성군사(知鍾城郡事)가 되었을 때에, 군관 갑사 양장수(梁長守)가 가죽을 가지고 야인의 말총을 강제로 바꾸었다 하여, 하한이 감사에게 알려서 억지로 파직하게 하니, 장수(長守)가 분한 마음을 품고 헌부(憲府)에 고소(告訴)하기를, ‘저번에 하한이 절제사가 되었을 때에도 또한 피마[雌馬] 2필과 소 1두를 가지고 야인의 말과 바꾸었다.’ 하매, 헌부에서 장수가 고한 대로 하한의 범죄한 바를 추핵(推覈)하여 아뢰었으니, 어떻게 처치하겠느냐."
하니, 황희 등이 아뢰기를,
"장수(長守)가 군사로서 장수(將帥)를 고소한 것은 부민(部民)이 고소한 것과 다름 없으니, 하한의 범한 바를 추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조계생 등은 아뢰기를,
"하한이 범한 죄를 추문하지 않는다면 그뿐이지만, 이제 이미 추문하여 드러났으니, 의당 끝까지 추문하여 죄명을 바르게 하고, 뒤에 오는 사람을 징계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장수와 졸병이 서로 고소하는 것은 들어서 다스릴 것이 못되나, 정상(情狀)이 이미 드러났다면 또한 용서할 수 없으니, 추문(推問)은 하지 말고 단지 한(漢)의 벼슬만을 파면하되, 그 외는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르라."
하니, 사헌부에서
"설효조는 율(律)이 조부의 첩을 통간한 죄[奸祖父妾]에 해당하니, 당연히 참형하여야 되겠습니다."
하므로, 명하여 장(杖) 1백 대만 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88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호구-이동(移動)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원문
○戊午/議于政府。 其一曰: "卿等以爲: ‘濟州牛馬賊出陸未久, 卽令放回, 無以懲惡。’ 其意固善。 然遠離本土, 已經三歲, 足以懲惡矣。 予憫其遠離鄕曲、思親戀土之情, 欲令還本, 以舒其情, 更議以啓。" 領議〔政〕 黃喜等議: "妻孥之遷徙, 專以夫之罪也。 其正賊身死者妻孥, 竝還本土。" 參贊趙啓生等議: "濟州之人, 盜殺牛馬, 以資其生者, 專是地窄民稠, 不得耕種, 無恒産故也。 已令出陸, 官給田業, 俾遂其生, 皆有生生之望矣, 何必送還本土乎?" 其一曰: "別侍衛薛孝祖以放出宮人爲妾, 憲府推覈, 比盜大祀神御物律當斬, 然前此犯此罪者非一, 李明仁、權聰等, 皆戚連宗室, 而予從輕典, 獨至孝祖, 置之重典不可。 欲依權聰例決罪, 何如?" 僉曰: "此律未當。 令更照律。" 其一曰: "初上護軍河漢爲知鍾城郡事時, 軍官甲士梁長守以其皮勒, 換野人馬毛勒, 河漢轉報監司罷之。 長守含憤, 訴于憲府曰: ‘往者漢爲節制使, 亦將雌馬二匹、牛一首, 換野人馬。’ 憲府以長守所告, 推覈河漢所犯以啓, 何以處之?" 黃喜等曰: "長守以軍士, 告訴將帥, 與部民告訴無異, 勿推河漢所犯可也。" 趙啓生等曰: "河漢所犯, 不推則已, 今已現推, 宜當窮推, 以實罪名, 懲戒後來。" 上曰: "將卒相訴, 不可聽理, 情狀已著, 亦不可原, 宜令勿推, 只罷漢職, 餘竝從僉議。" 司憲府又以薛孝祖, 比律奸祖父妾當斬, 命只杖一百。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88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호구-이동(移動)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세종실록72권, 세종 18년 6월 23일 戊午 1/4 기사 / 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육지로 내보낸 제주인들의 거취와 궁인으로 첩을 삼은 설효조의 처벌에 관한 논의
국역
정부에 의논하였다. 그 하나는,
"경(卿) 등이 제주의 우마적(牛馬賊)을 육지에 내보낸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즉시 돌려보내게 되면 악을 징계할 수 없다고 하니, 그 뜻이 진실로 좋으나, 그러나, 멀리 고향을 떠난 지 벌써 3년을 지냈으니, 족히 악을 징계한 것이었다. 내가 그들이 멀리 향곡(鄕曲)을 떠나서 어버이를 생각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민망하게 여기어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그 정을 펴게 하고자 하니, 다시 의논해서 아뢰라."
하니, 영의정 황희(黃喜) 등이 의논하기를,
"아내와 자식들을 옮기게 한 것은 오로지 지아비의 죄 때문이니, 그 도둑의 몸으로 죽은 자의 처자는 모두 본토(本土)로 돌려보내소서."
하고, 참찬 조계생(趙啓生) 등이 의논하기를,
"제주 사람들이 마소를 도둑질하여 그 생계로 한 것은, 오로지 땅이 비좁고 백성이 조밀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서이며, 항산(恒産)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미 육지로 내보내어 관청에서 토지와 일거리를 주어서 생계를 이루게 하여 모두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 하필 본토(本土)로 내보내겠습니까."
하였다. 그 하나는,
"별시위(別侍衛) 설효조(薛孝祖)가 내쫓은 궁인(宮人)으로써 첩을 삼았으므로, 헌부(憲府)에서 대사(大祀)의 신이 드시는 물건을 도둑질한 율문[盜大祀神御物律]에 비부(比附)하여 추핵(推覈)하였으니, 죄가 참형에 해당하나, 그러나, 이 앞서에도 이런 죄를 범한 자가 하나뿐이 아니었다. 이명인(李明仁)·권총(權聰) 등은 모두가 종실의 인척간이므로, 내가 경한 법전을 좇았으니, 유독 효조(孝祖)에게만 중한 법으로 처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권총의 예에 의해서 죄를 결정하려는데 어떻겠느냐."
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이 율이 적당하지 못하오니 다시 조율(照律)하게 하소서."
하였다. 그 하나는,
"처음에 상호군 하한(河漢)이 지종성군사(知鍾城郡事)가 되었을 때에, 군관 갑사 양장수(梁長守)가 가죽을 가지고 야인의 말총을 강제로 바꾸었다 하여, 하한이 감사에게 알려서 억지로 파직하게 하니, 장수(長守)가 분한 마음을 품고 헌부(憲府)에 고소(告訴)하기를, ‘저번에 하한이 절제사가 되었을 때에도 또한 피마[雌馬] 2필과 소 1두를 가지고 야인의 말과 바꾸었다.’ 하매, 헌부에서 장수가 고한 대로 하한의 범죄한 바를 추핵(推覈)하여 아뢰었으니, 어떻게 처치하겠느냐."
하니, 황희 등이 아뢰기를,
"장수(長守)가 군사로서 장수(將帥)를 고소한 것은 부민(部民)이 고소한 것과 다름 없으니, 하한의 범한 바를 추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조계생 등은 아뢰기를,
"하한이 범한 죄를 추문하지 않는다면 그뿐이지만, 이제 이미 추문하여 드러났으니, 의당 끝까지 추문하여 죄명을 바르게 하고, 뒤에 오는 사람을 징계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장수와 졸병이 서로 고소하는 것은 들어서 다스릴 것이 못되나, 정상(情狀)이 이미 드러났다면 또한 용서할 수 없으니, 추문(推問)은 하지 말고 단지 한(漢)의 벼슬만을 파면하되, 그 외는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르라."
하니, 사헌부에서
"설효조는 율(律)이 조부의 첩을 통간한 죄[奸祖父妾]에 해당하니, 당연히 참형하여야 되겠습니다."
하므로, 명하여 장(杖) 1백 대만 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88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호구-이동(移動)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원문
○戊午/議于政府。 其一曰: "卿等以爲: ‘濟州牛馬賊出陸未久, 卽令放回, 無以懲惡。’ 其意固善。 然遠離本土, 已經三歲, 足以懲惡矣。 予憫其遠離鄕曲、思親戀土之情, 欲令還本, 以舒其情, 更議以啓。" 領議〔政〕 黃喜等議: "妻孥之遷徙, 專以夫之罪也。 其正賊身死者妻孥, 竝還本土。" 參贊趙啓生等議: "濟州之人, 盜殺牛馬, 以資其生者, 專是地窄民稠, 不得耕種, 無恒産故也。 已令出陸, 官給田業, 俾遂其生, 皆有生生之望矣, 何必送還本土乎?" 其一曰: "別侍衛薛孝祖以放出宮人爲妾, 憲府推覈, 比盜大祀神御物律當斬, 然前此犯此罪者非一, 李明仁、權聰等, 皆戚連宗室, 而予從輕典, 獨至孝祖, 置之重典不可。 欲依權聰例決罪, 何如?" 僉曰: "此律未當。 令更照律。" 其一曰: "初上護軍河漢爲知鍾城郡事時, 軍官甲士梁長守以其皮勒, 換野人馬毛勒, 河漢轉報監司罷之。 長守含憤, 訴于憲府曰: ‘往者漢爲節制使, 亦將雌馬二匹、牛一首, 換野人馬。’ 憲府以長守所告, 推覈河漢所犯以啓, 何以處之?" 黃喜等曰: "長守以軍士, 告訴將帥, 與部民告訴無異, 勿推河漢所犯可也。" 趙啓生等曰: "河漢所犯, 不推則已, 今已現推, 宜當窮推, 以實罪名, 懲戒後來。" 上曰: "將卒相訴, 不可聽理, 情狀已著, 亦不可原, 宜令勿推, 只罷漢職, 餘竝從僉議。" 司憲府又以薛孝祖, 比律奸祖父妾當斬, 命只杖一百。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3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88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호구-이동(移動)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