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24권, 태종 12년 12월 5일 丙辰 3/3 기사 / 1412년 명 영락(永樂) 10년
사헌부에서 동궁을 대궐 가까이 건축할 것을 건의하다
국역
사헌부에서 또 상소(上疏)하였다.
"문왕(文王)이 세자가 되어 왕계(王季)를 뵙되, 날마다 세 번 문안드리고 시선(視膳)하였으니, 세자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자께서는 인효(仁孝)의 천성과 명민(明敏)한 자질로써 바야흐로 학문에 뜻을 두어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히 하옵는데, 삼조 정성(三朝定省)301) 의 예(禮)가 아직도 미진함은 다름이 아니라, 동궁(東宮)이 대전(大殿)과 멀리 떨어져 거마(車馬)와 복종(僕從)의 왕복이 번거로워 학문에 방해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전의 곁에 따로 동궁을 영조(營造)하여 날마다 정성(定省)의 예(禮)를 삼가게 함으로써 인효(仁孝)의 덕을 나타내게 하소서. 또 조계에 참여하여 전하가 군신(群臣)을 접하고 대우하시는 것과 서무(庶務)를 듣고 판단하시는 것을 익히 보게 하고, 물러 나와서는 빈사(賓師)·요속(僚屬)과 더불어 경사(經史)를 강론하여 덕성을 훈도하면, 거마와 복종(僕從)의 번거로움이 없어지고 삼조(三朝)의 예(禮)도 이루어지며, 학문도 일취 월장(一就月將)하는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이를 가납(嘉納)하고, 명하여 중군영(中軍營) 터에 동궁을 짓게 하였으나, 지세(地勢)가 매우 좁기 때문에 드디어 정침하였다.
- [註 301] 삼조 정성(三朝定省) : 하루에 세 번을 찾아 뵙고, 조석(朝夕)으로 안부를 물어서 살핌.
원문
태종 12년 (1412) 12월 5일
국역
사헌부에서 또 상소(上疏)하였다.
"문왕(文王)이 세자가 되어 왕계(王季)를 뵙되, 날마다 세 번 문안드리고 시선(視膳)하였으니, 세자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자께서는 인효(仁孝)의 천성과 명민(明敏)한 자질로써 바야흐로 학문에 뜻을 두어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히 하옵는데, 삼조 정성(三朝定省)301) 의 예(禮)가 아직도 미진함은 다름이 아니라, 동궁(東宮)이 대전(大殿)과 멀리 떨어져 거마(車馬)와 복종(僕從)의 왕복이 번거로워 학문에 방해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전의 곁에 따로 동궁을 영조(營造)하여 날마다 정성(定省)의 예(禮)를 삼가게 함으로써 인효(仁孝)의 덕을 나타내게 하소서. 또 조계에 참여하여 전하가 군신(群臣)을 접하고 대우하시는 것과 서무(庶務)를 듣고 판단하시는 것을 익히 보게 하고, 물러 나와서는 빈사(賓師)·요속(僚屬)과 더불어 경사(經史)를 강론하여 덕성을 훈도하면, 거마와 복종(僕從)의 번거로움이 없어지고 삼조(三朝)의 예(禮)도 이루어지며, 학문도 일취 월장(一就月將)하는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이를 가납(嘉納)하고, 명하여 중군영(中軍營) 터에 동궁을 짓게 하였으나, 지세(地勢)가 매우 좁기 때문에 드디어 정침하였다.
- [註 301] 삼조 정성(三朝定省) : 하루에 세 번을 찾아 뵙고, 조석(朝夕)으로 안부를 물어서 살핌.
원문
원본
태종 12년 (1412) 1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