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6권, 태종 8년 11월 1일 乙巳 4/5 기사 /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좌정승 성석린 등이 정수홍 등 대원들을 용서하기를 청하다
국역
의정부 좌정승 성석린(成石璘) 등이 대궐에 나와 아뢰기를,
"대원(臺員)이 비록 광망(狂妄)하다 하더라도 마땅히 용서하여 언로(言路)를 열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신(大臣)의 청(請)이 매우 간절하니, 내가 장차 3등(等)을 감(減)해 시행하겠다."
하였다. 임금이 순금사(巡禁司)에 명해 조율(照律)해서 대원(臺員)을 장(杖) 1백 대에, 도(徒) 3년에 처하려고 하였다. 의정부(議政府)에서 다시 대궐에 나와 아뢰기를,
"이번에 대원(臺員)이 이렇게 형벌을 받으면, 후일에는 말이 없이 인원만 갖추게 될 것이니 참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저 대간(臺諫)들이 말[言]을 드리는 것은 그 직책을 다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만일 말이 맞지 않는다 하여 급히 죄책(罪責)을 가한다면, 전하께서 비록 곧은 말을 듣고자 하여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조(前朝) 말년에 지금의 지부사(知府事) 이내(李來)의 아비 이존오(李存吾)가 신돈(辛旽)의 일을 곧게 말하였었는데, 공민왕(恭愍王)이 비록 노하기는 하였으나 죄는 가하지 않았었습니다."
하니, 이내(李來)가 말하기를,
"신의 아비는 장사 감무(長沙監務)로만 폄출(貶出)되었고 일찍이 형벌은 받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런 무리들을 의정부의 청으로 용서한다면, 후일에 이 같은 무리들이 의심스런[疑似] 일을 가지고 대신(大臣)을 무함(誣陷)하여 핵문(劾問)·수직(守直)하려는 자가 자주 있지 않겠는가? 옛적에 송 태조(宋太祖)가 승상(丞相) 조보(趙普)와 군신간(君臣間)의 제우(際遇)가 심히 두터웠는데, 내가 비록 송 태조와 스스로 비교하지는 못하나, 제우(際遇)의 사이야 어찌 송 태조와 조 정승의 사이만 못하겠는가? 또 신돈(辛旽)은 난신(亂臣)이니, 이존오(李存吾)가 곧은 말을 한다 하여 귀양보낸 것은 잘못이다. 지금 진산군(晉山君)을 신돈에게 비교하고자 하는가?"
하니, 성석린(成石璘)이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무(李茂)가 말하기를,
"민무구(閔無咎)의 초사(招辭)에 의거하면, ‘하윤(河崙)이 신의 아비 집[父家]에 와서 말하기를, 「전위(傳位)에 대한 일은 청을 얻지 못할 것 같다.」고 하였다.’ 하였는데, 하윤의 말과는 다만 차이가 있을 뿐, 근거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성석린이 그제서야 말하기를,
"지금 옥사(獄事)를 결단(決斷)한 말을 보면 ‘상서(上書)하여 일을 아뢰는 것을 허위로 하고 사실대로 하지 않았다.’는 율(律)로 적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원(臺員)의 말이 어찌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 것이겠습니까? 허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정부 대신(政府大臣)의 신청(申請)이 간절하고 지극하니 특별히 형장(刑杖)을 면제하고 외방에 귀양만 보내라."
원문
○議政府左政丞成石璘等詣闕啓曰: "臺員雖狂妄, 宜恕之, 以開言路。" 上曰: "大臣之請甚切, 予將減三等施行。" 上命巡禁司照律, 欲處臺員以杖一百徒三年。 議政府復詣闕啓曰: "今者臺員受刑如此, 則後日默默備員, 誠不難矣。 彼臺諫之獻言者, 欲盡其職耳, 豈有他哉! 若以言之不中, 驟加罪責, 則殿下雖欲聞直言, 得乎? 前朝之季, 今知府事李來之父存吾, 直言辛旽之事, 恭愍王雖怒而猶不加罪。" 李來因曰: "臣父但貶長沙監務耳, 未嘗受刑。" 上曰: "如此輩, 以議政府之請而宥之, 則後日如此輩, 欲以疑似, 誣陷大臣, 劾問守直者, 無乃屢有之乎? 昔宋 太祖與丞相趙普, 君臣之間, 相遇甚厚。 我雖不敢以宋 祖自比, 然相遇之間, 豈下於宋 太祖、趙丞相之間乎? 且辛旽, 亂臣也, 李存吾直言而貶謫誤矣。 今欲以晋山君比諸辛旽乎?" 石璘良久不能對。 李茂曰: "據無咎招辭, 則崙到臣父家, 言傳位之事, 似不得請, 與崙之言, 但差異耳, 非造爲無根之說也。" 石璘乃曰: "今觀斷獄之辭, 欲坐以上書奏事詐不以實之律, 然臺員之言, 亦豈指鹿爲馬者哉? 不可謂之詐也。" 上乃曰: "政府大臣申請懇至, 特免刑杖, 只流于外。"
국역
의정부 좌정승 성석린(成石璘) 등이 대궐에 나와 아뢰기를,
"대원(臺員)이 비록 광망(狂妄)하다 하더라도 마땅히 용서하여 언로(言路)를 열으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신(大臣)의 청(請)이 매우 간절하니, 내가 장차 3등(等)을 감(減)해 시행하겠다."
하였다. 임금이 순금사(巡禁司)에 명해 조율(照律)해서 대원(臺員)을 장(杖) 1백 대에, 도(徒) 3년에 처하려고 하였다. 의정부(議政府)에서 다시 대궐에 나와 아뢰기를,
"이번에 대원(臺員)이 이렇게 형벌을 받으면, 후일에는 말이 없이 인원만 갖추게 될 것이니 참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저 대간(臺諫)들이 말[言]을 드리는 것은 그 직책을 다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만일 말이 맞지 않는다 하여 급히 죄책(罪責)을 가한다면, 전하께서 비록 곧은 말을 듣고자 하여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조(前朝) 말년에 지금의 지부사(知府事) 이내(李來)의 아비 이존오(李存吾)가 신돈(辛旽)의 일을 곧게 말하였었는데, 공민왕(恭愍王)이 비록 노하기는 하였으나 죄는 가하지 않았었습니다."
하니, 이내(李來)가 말하기를,
"신의 아비는 장사 감무(長沙監務)로만 폄출(貶出)되었고 일찍이 형벌은 받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런 무리들을 의정부의 청으로 용서한다면, 후일에 이 같은 무리들이 의심스런[疑似] 일을 가지고 대신(大臣)을 무함(誣陷)하여 핵문(劾問)·수직(守直)하려는 자가 자주 있지 않겠는가? 옛적에 송 태조(宋太祖)가 승상(丞相) 조보(趙普)와 군신간(君臣間)의 제우(際遇)가 심히 두터웠는데, 내가 비록 송 태조와 스스로 비교하지는 못하나, 제우(際遇)의 사이야 어찌 송 태조와 조 정승의 사이만 못하겠는가? 또 신돈(辛旽)은 난신(亂臣)이니, 이존오(李存吾)가 곧은 말을 한다 하여 귀양보낸 것은 잘못이다. 지금 진산군(晉山君)을 신돈에게 비교하고자 하는가?"
하니, 성석린(成石璘)이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무(李茂)가 말하기를,
"민무구(閔無咎)의 초사(招辭)에 의거하면, ‘하윤(河崙)이 신의 아비 집[父家]에 와서 말하기를, 「전위(傳位)에 대한 일은 청을 얻지 못할 것 같다.」고 하였다.’ 하였는데, 하윤의 말과는 다만 차이가 있을 뿐, 근거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성석린이 그제서야 말하기를,
"지금 옥사(獄事)를 결단(決斷)한 말을 보면 ‘상서(上書)하여 일을 아뢰는 것을 허위로 하고 사실대로 하지 않았다.’는 율(律)로 적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원(臺員)의 말이 어찌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 것이겠습니까? 허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정부 대신(政府大臣)의 신청(申請)이 간절하고 지극하니 특별히 형장(刑杖)을 면제하고 외방에 귀양만 보내라."
원문
○議政府左政丞成石璘等詣闕啓曰: "臺員雖狂妄, 宜恕之, 以開言路。" 上曰: "大臣之請甚切, 予將減三等施行。" 上命巡禁司照律, 欲處臺員以杖一百徒三年。 議政府復詣闕啓曰: "今者臺員受刑如此, 則後日默默備員, 誠不難矣。 彼臺諫之獻言者, 欲盡其職耳, 豈有他哉! 若以言之不中, 驟加罪責, 則殿下雖欲聞直言, 得乎? 前朝之季, 今知府事李來之父存吾, 直言辛旽之事, 恭愍王雖怒而猶不加罪。" 李來因曰: "臣父但貶長沙監務耳, 未嘗受刑。" 上曰: "如此輩, 以議政府之請而宥之, 則後日如此輩, 欲以疑似, 誣陷大臣, 劾問守直者, 無乃屢有之乎? 昔宋 太祖與丞相趙普, 君臣之間, 相遇甚厚。 我雖不敢以宋 祖自比, 然相遇之間, 豈下於宋 太祖、趙丞相之間乎? 且辛旽, 亂臣也, 李存吾直言而貶謫誤矣。 今欲以晋山君比諸辛旽乎?" 石璘良久不能對。 李茂曰: "據無咎招辭, 則崙到臣父家, 言傳位之事, 似不得請, 與崙之言, 但差異耳, 非造爲無根之說也。" 石璘乃曰: "今觀斷獄之辭, 欲坐以上書奏事詐不以實之律, 然臺員之言, 亦豈指鹿爲馬者哉? 不可謂之詐也。" 上乃曰: "政府大臣申請懇至, 特免刑杖, 只流于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