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실록1권, 정종 1년 1월 9일 庚辰 13/16 기사 /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
문하부에서 윤문수노가 거상중에 장가들었다고 죄를 극력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국역
문하부(門下府)에서 윤문수노(尹文殊奴)의 죄를 극력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처음에 문하부에서 상서(上書)하였다.
"3년의 상(喪)은 천하의 공통된 상(喪)이온데, 고려 말년에 예제(禮制)가 무너지고 인심이 경박하여져서, 백일 만에 길복(吉服)을 입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남녀가 혼인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지금 국가에서 다시 3년의 상(喪)을 행하여 밝게 나타난 법령이 있습니다. 학생(學生) 윤문수노(尹文殊奴)는 그 아비 윤승례(尹承禮)의 상중에 있어 겨우 1년이 넘었는데, 여러 형들은 모두 복제 중에 있으나, 먼저 스스로 상복을 벗고 도승지 이문화(李文和)의 딸에게 장가들어 이루어진 법을 범하였습니다. 그 어미 권씨(權氏)가 내지(內旨)가 있다 칭하였으므로 그 죄는 다스리지 못하였습니다마는, 또한 어찌 복제를 마치지 않고 처가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그의 돌아갈 것을 명령하여 복제를 마치게 하시고, 금후로는 3년 안에 가취(嫁娶)를 행하려 하여 취지(取旨)를 인연(夤緣)하는 자는 엄하게 규찰(糾察)하여 다스리소서."
임금이 말하기를,
"금후에는 스스로 그 상복을 벗는 자는 규찰하여 다스리도록 하라."
하니, 문하부에서 다시 상소(上疏)하였다.
"신 등의 생각에는, 윤문수노가 상중에 아내를 얻어 심히 불효하였으므로 바루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겨 소를 갖추어 아뢰었는데, 들어주심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친상(親喪)에 자진(自盡)하는 것은, 인자(人子)의 지극한 정리가 천성(天性)에서 나오는 것이요, 밖에서 구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복(衰服)을 입고 슬피 곡(哭)하며 내실(內室)에서 거처하지 아니하고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두 돌을 마치니, 3년의 사랑을 갚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상을 당하여 병이 나서 여자 종으로 하여금 환약을 짓게 한 자가 있었는데, 향당(鄕黨)에서 오히려 나쁘게 여겼으니, 하물며 상을 당하여 가취(嫁娶)하는 일이겠습니까? 지금 윤문수노가 아비 상을 당하여 겨우 1년이 넘었는데, 스스로 최복을 벗고 마음대로 아내를 얻고서 뻔뻔스럽게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자식 된 자의 정리이겠습니까? 풍속을 무너뜨리고 기강을 어지럽히는 것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으니, 풍속이 어떻게 바로잡아지겠습니까? 원하건대, 전일에 아뢴 바에 의하여 풍속을 바로잡으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3년 안에 임의로 길복을 입는 자는 일체 모두 규찰하여 다스리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44면
- 【분류】풍속-예속(禮俗) /
원문
○門下府力請尹文殊奴之罪, 不允。 初門下府上書曰:
三年之喪, 天下之通喪, 前朝之季, 禮制頹壞, 人心衰薄, 百日卽吉, 飮酒啖肉, 男女昏姻, 無所不爲。 今國家復行三年之喪, 明有著令, 學生尹文殊奴, 居其父承禮之喪甫踰年, 其諸兄皆在制中, 而先自釋服, 娶都承旨李文和之女, 以干成憲。 其母權氏, 稱有內旨, 其罪已不得而治矣, 然亦豈可不終制而在妻家乎? 伏惟命還其家, 俾終其制, 自今以後, 三年之內, 欲行嫁娶, 夤緣取旨者, 痛行糾理。
上曰: "今後自除其喪者糾理。" 門下府再上疏曰:
臣等以爲, 文殊奴當喪娶妻, 甚爲不孝, 不可不正, 具疏以聞, 未蒙聽納。 臣等竊惟, 親喪固所自盡, 是人子之至情, 出於天性, 不待外求。 故衰麻哭踊, 不處內不食肉, 以終再朞, 所以報三年之愛也。 昔人有當喪有疾, 使婢丸藥者, 鄕黨尙貶之。 況當喪嫁娶者乎? 今文殊奴, 丁父憂甫踰年, 自除衰絰, 任然娶妻, 飮酒啖肉, 恬不爲愧。 是豈人子之情也哉? 其壞俗亂紀, 莫此爲甚, 風俗何由正乎? 願依前日所申, 以正風俗。
上曰: "三年之內, 任然卽吉者, 一皆糾理。"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44면
- 【분류】풍속-예속(禮俗) /
정종 1년 (1399) 1월 9일
- 나무에 서리가 내리고 화성이 항수의 제1성과 제2성 사이에 있다
- 경연에서 중추원 학사 이첨이 《논어》를 진강하다
- 문하부에서 왕흥·유은지·유연지 등에게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모두 용서하다
- 충청도에서 금년에 바칠 군자로 기민을 진휼하였으니 감사 이지의 계청을 따른 것이다
- 경상도 감사에게 명하여 불경을 해인사에서 인쇄하는 승도에게 공궤하게 하다
- 올적합족 2인과 여진족 2인이 오다
- 계품사 설장수를 진향사로 고쳐 김사형, 하윤과 함께 명나라에 입조하게 하다
- 경연에서 이서·조용·배중륜 등과 임금의 도리에 관해서 논하다
- 감사 이지의 상언에 따라 충청도 병선 20척을 감하다
- 덕비의 생일이므로 중외의 경죄를 용서하다
- 경연에서 조박에게 임금이 격구하는 것이 건강상 이유임을 말하다
- 내정에서 격구하는데 전 참지문하부사 도흥·유운과 종친 등이 참석하다
- 문하부에서 윤문수노가 거상중에 장가들었다고 죄를 극력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 도흥·유운 등과 더불어 내정에서 격구하다
- 대사헌 조박의 아들 조신언에게 상복을 벗고 회안공의 딸에게 장가들라고 명하다
- 오도리 만호 동소로가 오다
정종실록1권, 정종 1년 1월 9일 庚辰 13/16 기사 /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
문하부에서 윤문수노가 거상중에 장가들었다고 죄를 극력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국역
문하부(門下府)에서 윤문수노(尹文殊奴)의 죄를 극력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처음에 문하부에서 상서(上書)하였다.
"3년의 상(喪)은 천하의 공통된 상(喪)이온데, 고려 말년에 예제(禮制)가 무너지고 인심이 경박하여져서, 백일 만에 길복(吉服)을 입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남녀가 혼인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지금 국가에서 다시 3년의 상(喪)을 행하여 밝게 나타난 법령이 있습니다. 학생(學生) 윤문수노(尹文殊奴)는 그 아비 윤승례(尹承禮)의 상중에 있어 겨우 1년이 넘었는데, 여러 형들은 모두 복제 중에 있으나, 먼저 스스로 상복을 벗고 도승지 이문화(李文和)의 딸에게 장가들어 이루어진 법을 범하였습니다. 그 어미 권씨(權氏)가 내지(內旨)가 있다 칭하였으므로 그 죄는 다스리지 못하였습니다마는, 또한 어찌 복제를 마치지 않고 처가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그의 돌아갈 것을 명령하여 복제를 마치게 하시고, 금후로는 3년 안에 가취(嫁娶)를 행하려 하여 취지(取旨)를 인연(夤緣)하는 자는 엄하게 규찰(糾察)하여 다스리소서."
임금이 말하기를,
"금후에는 스스로 그 상복을 벗는 자는 규찰하여 다스리도록 하라."
하니, 문하부에서 다시 상소(上疏)하였다.
"신 등의 생각에는, 윤문수노가 상중에 아내를 얻어 심히 불효하였으므로 바루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겨 소를 갖추어 아뢰었는데, 들어주심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친상(親喪)에 자진(自盡)하는 것은, 인자(人子)의 지극한 정리가 천성(天性)에서 나오는 것이요, 밖에서 구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최복(衰服)을 입고 슬피 곡(哭)하며 내실(內室)에서 거처하지 아니하고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두 돌을 마치니, 3년의 사랑을 갚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상을 당하여 병이 나서 여자 종으로 하여금 환약을 짓게 한 자가 있었는데, 향당(鄕黨)에서 오히려 나쁘게 여겼으니, 하물며 상을 당하여 가취(嫁娶)하는 일이겠습니까? 지금 윤문수노가 아비 상을 당하여 겨우 1년이 넘었는데, 스스로 최복을 벗고 마음대로 아내를 얻고서 뻔뻔스럽게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자식 된 자의 정리이겠습니까? 풍속을 무너뜨리고 기강을 어지럽히는 것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으니, 풍속이 어떻게 바로잡아지겠습니까? 원하건대, 전일에 아뢴 바에 의하여 풍속을 바로잡으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3년 안에 임의로 길복을 입는 자는 일체 모두 규찰하여 다스리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44면
- 【분류】풍속-예속(禮俗) /
원문
○門下府力請尹文殊奴之罪, 不允。 初門下府上書曰:
三年之喪, 天下之通喪, 前朝之季, 禮制頹壞, 人心衰薄, 百日卽吉, 飮酒啖肉, 男女昏姻, 無所不爲。 今國家復行三年之喪, 明有著令, 學生尹文殊奴, 居其父承禮之喪甫踰年, 其諸兄皆在制中, 而先自釋服, 娶都承旨李文和之女, 以干成憲。 其母權氏, 稱有內旨, 其罪已不得而治矣, 然亦豈可不終制而在妻家乎? 伏惟命還其家, 俾終其制, 自今以後, 三年之內, 欲行嫁娶, 夤緣取旨者, 痛行糾理。
上曰: "今後自除其喪者糾理。" 門下府再上疏曰:
臣等以爲, 文殊奴當喪娶妻, 甚爲不孝, 不可不正, 具疏以聞, 未蒙聽納。 臣等竊惟, 親喪固所自盡, 是人子之至情, 出於天性, 不待外求。 故衰麻哭踊, 不處內不食肉, 以終再朞, 所以報三年之愛也。 昔人有當喪有疾, 使婢丸藥者, 鄕黨尙貶之。 況當喪嫁娶者乎? 今文殊奴, 丁父憂甫踰年, 自除衰絰, 任然娶妻, 飮酒啖肉, 恬不爲愧。 是豈人子之情也哉? 其壞俗亂紀, 莫此爲甚, 風俗何由正乎? 願依前日所申, 以正風俗。
上曰: "三年之內, 任然卽吉者, 一皆糾理。"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44면
- 【분류】풍속-예속(禮俗) /
원본
정종 1년 (1399) 1월 9일
- 나무에 서리가 내리고 화성이 항수의 제1성과 제2성 사이에 있다
- 경연에서 중추원 학사 이첨이 《논어》를 진강하다
- 문하부에서 왕흥·유은지·유연지 등에게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모두 용서하다
- 충청도에서 금년에 바칠 군자로 기민을 진휼하였으니 감사 이지의 계청을 따른 것이다
- 경상도 감사에게 명하여 불경을 해인사에서 인쇄하는 승도에게 공궤하게 하다
- 올적합족 2인과 여진족 2인이 오다
- 계품사 설장수를 진향사로 고쳐 김사형, 하윤과 함께 명나라에 입조하게 하다
- 경연에서 이서·조용·배중륜 등과 임금의 도리에 관해서 논하다
- 감사 이지의 상언에 따라 충청도 병선 20척을 감하다
- 덕비의 생일이므로 중외의 경죄를 용서하다
- 경연에서 조박에게 임금이 격구하는 것이 건강상 이유임을 말하다
- 내정에서 격구하는데 전 참지문하부사 도흥·유운과 종친 등이 참석하다
- 문하부에서 윤문수노가 거상중에 장가들었다고 죄를 극력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 도흥·유운 등과 더불어 내정에서 격구하다
- 대사헌 조박의 아들 조신언에게 상복을 벗고 회안공의 딸에게 장가들라고 명하다
- 오도리 만호 동소로가 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