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7권, 태조 4년 4월 26일 己丑 1/1 기사 / 1395년 명 홍무(洪武) 28년
간관이 다시 왕우 삼부자의 강화도 안치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국역
간관(諫官)이 또 상언(上言)하였다.
"신 등이 어제 왕우(王瑀) 삼부자(三父子)를 〈강화도로〉 귀양보낼 것을 자세히 말씀드렸는데 전하께서 윤허하지 아니하셨사오나, 일이 종묘와 사직에 관계된 것이므로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다시 말씀 드리옵니다.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왕우가 장차 반역을 음모할 것이니, 신하들이 같은 하늘 밑에서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옛날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혁명할 때에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을 〈제후로〉 봉하였다가, 얼마 아니되어 무경이 배반하여 성왕(成王)이 죽였습니다. 그런 뒤에 천하에 걱정이 없어지고 왕실이 다시 평안하여졌습니다. 과연 〈무경의〉 계교가 그대로 시행되었던들 주나라 8백 년의 왕업은 기(期)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개 세상의 변란은 언제나 소홀히 하는 곳에서 일어나 마침내 막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 등이 비록 어리석고 못났사오나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대의(大義)로 판단하시와 왕우 삼부자를 강화도에 안치(安置)하여 불측(不測)의 화(禍)를 예방하는 것이 종묘와 사직을 위하여 다행일까 하옵니다."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원문
태조 4년 (1395) 4월 26일
국역
간관(諫官)이 또 상언(上言)하였다.
"신 등이 어제 왕우(王瑀) 삼부자(三父子)를 〈강화도로〉 귀양보낼 것을 자세히 말씀드렸는데 전하께서 윤허하지 아니하셨사오나, 일이 종묘와 사직에 관계된 것이므로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다시 말씀 드리옵니다.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왕우가 장차 반역을 음모할 것이니, 신하들이 같은 하늘 밑에서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옛날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혁명할 때에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을 〈제후로〉 봉하였다가, 얼마 아니되어 무경이 배반하여 성왕(成王)이 죽였습니다. 그런 뒤에 천하에 걱정이 없어지고 왕실이 다시 평안하여졌습니다. 과연 〈무경의〉 계교가 그대로 시행되었던들 주나라 8백 년의 왕업은 기(期)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개 세상의 변란은 언제나 소홀히 하는 곳에서 일어나 마침내 막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 등이 비록 어리석고 못났사오나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대의(大義)로 판단하시와 왕우 삼부자를 강화도에 안치(安置)하여 불측(不測)의 화(禍)를 예방하는 것이 종묘와 사직을 위하여 다행일까 하옵니다."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원문
원본
태조 4년 (1395)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