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57권, 영조 19년 1월 7일 임술 3/3 기사 / 1743년 청 건륭(乾隆) 8년
박문수가 영문의 장교의 무례함을 말하다
국역
경기 감사 박문수(朴文秀)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조정에는 본디 사체(事體)가 있고 군문(軍門)에는 또한 등급이 엄격한 뒤에야 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범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비록 본병(本兵)의 장(長)으로서 각 영문(營門)의 장교(將校)들에게 그[渠]라고 불러도 오히려 사체를 손상시켰다고 할 것인데, 하물며 영문의 장교가 본병의 장관에게 '그'라고 일컬었으니, 그 등급을 무너뜨림이 더욱 어떠합니까? 삼군(三軍)이 이를 듣고 한심하게 여기지 아니함이 없었습니다. 생각건대 우리 조종(祖宗)께서 관제(官制)를 정하시며 문무(文武)의 구별을 엄격히 하신 것은 대개 전날을 돌아보고 뒷날을 염려하신 깊은 뜻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저 기성(騎省)022) 의 낭관(郞官)은 한 조(曹)의 서료(庶僚)에 지나지 아니하는데도 길에서 당상관인 무신을 만나면 무신이 오히려 말을 돌려 피하는 경우가 있으니 체통의 엄격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연석(筵席)에서처럼 체통이 지극히 엄중한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비록 대료(大僚)라 할지라도 미관(微官)더러 또한 전(展) 위에서는 너니 네니 할 수가 없거늘, 하물며 이 본병은 나라의 중임(重任)인데도 무장(武將)이 이에 감히 배척하면서 '그'라고 불러댔으니, 그 무례함이 심하였습니다. 신이 조정을 욕되게 한 것을 어찌 족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연석에 올라 의절(義絶)을 잃은 것은 신과 무장(武將)이 죄가 실로 꼭 같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의정할 때 한 연신(筵臣)이 추조(秋曹)023) 의 ‘서로 싸운 율(律)’로 의정하였다고 합니다. ‘서로 싸운 것’이란 곧 여항(閭巷)에서 서로 때리고 욕한 경우를 말합니다. 신과 무장은 모두 재신(宰臣)인데 이에 도리어 추조의 율에 비의(非擬)한단 말입니까? 신의 몸과 이름이 이미 모욕을 당했으니, 얼굴을 들고 다닐 길이 없습니다. 오직 부월(鈇鉞)의 죽임을 기다릴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예사 비답을 내렸다. 대개 박문수가 병조 판서가 되었을 때 훈장(訓將) 구성임(具聖任)과 연석에서 서로 꾸짖고 욕을 하며 너니 네니 하기에 이르렀던 적이 있었으므로, 그 상소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박문수는 성품이 거칠고 패려궂어 일찍이 윤유(尹遊)와 서로 임금 앞에서 꾸짖고 욕을 하여 대간(臺諫)의 논척(論斥)까지 받았는데, 또 구성임과 서로 싸웠으므로 임금이 둘다 죄를 주었다. 그러나 구성임은 무장으로서 문신 재상을 능욕하였으니, 무신의 교만 방자한 조짐을 식견 있는 사람들이 우려하였다.
원문
○京畿監司朴文秀上疏, 略曰:
朝廷自有事體, 軍門亦有等級。 事體尊然後上不夷, 等級嚴然後下不犯。 雖以本兵長, 渠於各營之將, 猶曰損事體, 況以各營將, 稱渠於本兵之長, 其爲壞等級, 尤如何也? 三軍聞此, 莫不寒心。 惟我祖宗定官制, 而嚴文武之別者, 蓋出於懲前慮後之深意。 彼騎省郞, 不過一曹庶僚, 而路逢堂上武臣, 武臣猶回馬避之者, 可見體統之嚴。 況筵體極其嚴重? 雖大僚之於微官, 亦不得爾汝於殿上, 況此本兵, 國之重任也, 而武將乃敢斥呼曰渠, 其爲無禮甚矣。 臣何足言有辱朝廷? 夫登筵失儀, 臣與武將罪實惟均。 而當其議罪之時, 有一筵臣議之以秋曹相鬪律云。 相鬪者, 卽閭巷間相敺辱之謂也。 臣與武將, 俱是宰臣, 而乃反擬於秋曹之律耶? 臣身名旣僇, 抗顔無路。 惟俟鈇鉞之誅。
上下例批。 蓋文秀之爲兵判也, 與訓將具聖任相詬罵於筵席, 至於爾汝故其疏如此。 文秀性麤悖, 嘗與尹游相叱辱於上前, 至被臺斥, 又與聖任相鬨, 故上兩罪之。 然聖任以武將, 凌駕文宰, 武臣驕橫之漸, 識者憂之。
영조 19년 (1743) 1월 7일
영조실록57권, 영조 19년 1월 7일 임술 3/3 기사 / 1743년 청 건륭(乾隆) 8년
박문수가 영문의 장교의 무례함을 말하다
국역
경기 감사 박문수(朴文秀)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조정에는 본디 사체(事體)가 있고 군문(軍門)에는 또한 등급이 엄격한 뒤에야 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범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비록 본병(本兵)의 장(長)으로서 각 영문(營門)의 장교(將校)들에게 그[渠]라고 불러도 오히려 사체를 손상시켰다고 할 것인데, 하물며 영문의 장교가 본병의 장관에게 '그'라고 일컬었으니, 그 등급을 무너뜨림이 더욱 어떠합니까? 삼군(三軍)이 이를 듣고 한심하게 여기지 아니함이 없었습니다. 생각건대 우리 조종(祖宗)께서 관제(官制)를 정하시며 문무(文武)의 구별을 엄격히 하신 것은 대개 전날을 돌아보고 뒷날을 염려하신 깊은 뜻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저 기성(騎省)022) 의 낭관(郞官)은 한 조(曹)의 서료(庶僚)에 지나지 아니하는데도 길에서 당상관인 무신을 만나면 무신이 오히려 말을 돌려 피하는 경우가 있으니 체통의 엄격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연석(筵席)에서처럼 체통이 지극히 엄중한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비록 대료(大僚)라 할지라도 미관(微官)더러 또한 전(展) 위에서는 너니 네니 할 수가 없거늘, 하물며 이 본병은 나라의 중임(重任)인데도 무장(武將)이 이에 감히 배척하면서 '그'라고 불러댔으니, 그 무례함이 심하였습니다. 신이 조정을 욕되게 한 것을 어찌 족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연석에 올라 의절(義絶)을 잃은 것은 신과 무장(武將)이 죄가 실로 꼭 같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의정할 때 한 연신(筵臣)이 추조(秋曹)023) 의 ‘서로 싸운 율(律)’로 의정하였다고 합니다. ‘서로 싸운 것’이란 곧 여항(閭巷)에서 서로 때리고 욕한 경우를 말합니다. 신과 무장은 모두 재신(宰臣)인데 이에 도리어 추조의 율에 비의(非擬)한단 말입니까? 신의 몸과 이름이 이미 모욕을 당했으니, 얼굴을 들고 다닐 길이 없습니다. 오직 부월(鈇鉞)의 죽임을 기다릴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예사 비답을 내렸다. 대개 박문수가 병조 판서가 되었을 때 훈장(訓將) 구성임(具聖任)과 연석에서 서로 꾸짖고 욕을 하며 너니 네니 하기에 이르렀던 적이 있었으므로, 그 상소가 이와 같았던 것이다. 박문수는 성품이 거칠고 패려궂어 일찍이 윤유(尹遊)와 서로 임금 앞에서 꾸짖고 욕을 하여 대간(臺諫)의 논척(論斥)까지 받았는데, 또 구성임과 서로 싸웠으므로 임금이 둘다 죄를 주었다. 그러나 구성임은 무장으로서 문신 재상을 능욕하였으니, 무신의 교만 방자한 조짐을 식견 있는 사람들이 우려하였다.
원문
○京畿監司朴文秀上疏, 略曰:
朝廷自有事體, 軍門亦有等級。 事體尊然後上不夷, 等級嚴然後下不犯。 雖以本兵長, 渠於各營之將, 猶曰損事體, 況以各營將, 稱渠於本兵之長, 其爲壞等級, 尤如何也? 三軍聞此, 莫不寒心。 惟我祖宗定官制, 而嚴文武之別者, 蓋出於懲前慮後之深意。 彼騎省郞, 不過一曹庶僚, 而路逢堂上武臣, 武臣猶回馬避之者, 可見體統之嚴。 況筵體極其嚴重? 雖大僚之於微官, 亦不得爾汝於殿上, 況此本兵, 國之重任也, 而武將乃敢斥呼曰渠, 其爲無禮甚矣。 臣何足言有辱朝廷? 夫登筵失儀, 臣與武將罪實惟均。 而當其議罪之時, 有一筵臣議之以秋曹相鬪律云。 相鬪者, 卽閭巷間相敺辱之謂也。 臣與武將, 俱是宰臣, 而乃反擬於秋曹之律耶? 臣身名旣僇, 抗顔無路。 惟俟鈇鉞之誅。
上下例批。 蓋文秀之爲兵判也, 與訓將具聖任相詬罵於筵席, 至於爾汝故其疏如此。 文秀性麤悖, 嘗與尹游相叱辱於上前, 至被臺斥, 又與聖任相鬨, 故上兩罪之。 然聖任以武將, 凌駕文宰, 武臣驕橫之漸, 識者憂之。
원본
영조 19년 (1743)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