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45권, 숙종 33년 1월 25일 기묘 1/2 기사 / 1707년 청 강희(康熙) 46년
강화에 제언을 쌓는 추진 여부, 해서에 대동법 시행 여부 등을 대신들이 건의
국역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우의정 이이명(李頤命)이 말하기를,
"강화(江華)에 제언(堤堰)을 쌓는 역사(役事)가 있는데, 이미 흉년 때문에 습조(習操)는 정지하였습니다만, 유독 이 일에 있어서 여러 사람을 동원하여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아마도 온당함을 얻지 못한 듯합나디, 그러나 이미 역사를 시작하였는데, 지금 만약 정지한다면 전날의 공력(功力)이 죄다 버려지게 될 것이니, 아까울 듯합니다. 청컨대 입시(入侍)한 여러 신하들에게 하순(下詢)하소서."
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정지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임금이 명하여 그대로 쌓게 하였다. 이이명이 또 해서(海西)에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고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일을 진달(鎭達)하였는데,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인엽(李寅燁)은 옳게 여기고, 이조 판서(吏曹判書) 조태채(趙泰采)와 호조 판서(戶曹判書) 윤세기(尹世紀)는 어렵게 여기니, 임금이 다른 대신(大臣)들이 출사(出仕)하기를 기다린 뒤에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명하였다. 이이명이 또 진달하기를,
"전라 병사(全羅兵使) 이우항(李宇恒)은 지난번 대계(臺啓)를 미안(未安)하게 여겨 끝내 출숙(出肅)하지 않고 있는데, 대계 가운데 있는 ‘추종(騶從)을 물리치고 밤에 나다녔다.’고 한 것은 사람들이 자못 억울하다고 하오니, 부임(赴任)하도록 재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번에 수록(收錄)한 것은 대개 그 당시의 대계가 과중(過重)하였기 때문이었다. 무신(武臣)의 염의(廉義)가 이와 같을 수는 없으니, 추고(推考)하여 부임하도록 재촉하라."
하였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서문유(徐文𥙿)가 작년 의주 유생(義州儒生)의 상소한 일로 품지(稟旨)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위화도(威化島)는 이미 비(碑)를 세울 곳이 아니다. 그리고 태조봉(太祖峰)과 회군천(回軍川)은 모두 비를 세우기가 어렵고, 익원당(翊原堂)은 그 장소를 적실히 알지 못하니, 본도(本道) 감사(監司)로 하여금 다시 살펴서 보고하게 하라."
하였다. 서문유가 또 진달하기를,
"안음 유생(安陰儒生)이 송준길(宋浚吉)의 서원(書院)에 사액(賜額)을 청하였는데, 조정에서 첩설(疊設)을 금지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첩설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이명과 조태채가 자못 신청(申請)하는 바가 있었으나, 임금이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이날 여러 신하들이 바야흐로 일을 아뢰고 있는데, 임금이 잠시 물러가라고 명하여 대신 이하가 나와 전문(殿門) 밖에서 기다린 것이 사시(巳時)로부터 미시(未時)에 이르자, 비로소 입시(入侍)하라고 명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오늘의 일은 저으기 개탄스런 바가 있다. 무릇 일을 아뢸 때에 임금이 혹 미처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여러 신하에게 잠시 물러가 있으라고 명하고, 임금이 혹 측간(厠間)엘 가면 여러 신하에게 잠시 물러가 있으라고 명하는데, 그 사이는 짧은 시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인대(引對)는 일을 아뢴 것이 반도 되지 아니하여, 임금이 갑자기 여러 신하들을 물러가 있으라고 명하여, 사시(巳時)에서 오시(午時)를 지나도록 오히려 입시(入侍)하라고 명하지 않았으므로, 대신들이 한 전(磚)돌 위에 참새처럼 늘어서서 기운이 고달프고 몸이 지쳐 거의 예모(禮貌)를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입시하라 명하였다. 임금이 대신을 예우(禮遇)하지 않음을 여기서 볼 수 있으니, 통탄스러움을 견딜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252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역사-사학(史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농업-수리(水利) / 군사-병법(兵法) / 재정-전세(田稅) / 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원문
○己卯/引見大臣、備局諸臣。 右議政李頣命言: "江華有築堰之役, 而旣以年凶, 停習操, 獨於此, 動衆興役, 似未得當。 然旣已始役, 今若停止, 則前功盡棄, 似爲可惜。 請下詢入侍諸臣。" 諸臣多以停止爲難, 上命仍築。 頣命又陳海西行大同, 監司兼牧使事, 兵曹判書李寅燁以爲可, 吏曹判書趙泰采、戶曹判書尹世紀難之, 上命待他大臣出仕後議處。 頣命又陳全羅兵使李宇恒, 以向來臺啓, 爲不安, 終不出肅。 臺啓中屛騶夜行云者, 人頗稱冤, 宜可促赴, 上曰: "今玆收錄, 蓋以其時臺啓, 爲過重也, 武臣廉義, 不可如是, 推考。" 禮曹判書(徐文裕)〔徐文𥙿〕 , 以昨年義州儒生疏事, 稟旨, 上曰: "威化島旣非立碑之所。 太祖峰、回軍川, 俱難立碑, 翊原堂, 其處不能的知, 使本道監司, 更審以報。" 文𥙿又陳安陰儒生, 請額宋浚吉書院, 而朝有疊設之禁, 何以爲之? 上以疊設不許。 頣命、泰采, 頗有所申請, 上終不聽。 是日, 諸臣方奏事, 上命暫退, 大臣以下出候殿門外, 自巳至未, 始命入侍。
【史臣曰: "今日之事, 竊所慨然。 凡奏事之時, 上或未食, 則命諸臣暫退, 上或如廁, 則命諸臣暫退, 其間不過少頃, 而今日引對, 奏事未半, 上遽命諸臣退出, 自巳過午, 猶不命入侍, 大臣雀立一磚上, 氣困體惱, 幾乎失貌, 然後始命入侍。 上之不禮大臣, 於斯可見, 可勝歎哉!"】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252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역사-사학(史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농업-수리(水利) / 군사-병법(兵法) / 재정-전세(田稅) / 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숙종 33년 (1707) 1월 25일
숙종실록45권, 숙종 33년 1월 25일 기묘 1/2 기사 / 1707년 청 강희(康熙) 46년
강화에 제언을 쌓는 추진 여부, 해서에 대동법 시행 여부 등을 대신들이 건의
국역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우의정 이이명(李頤命)이 말하기를,
"강화(江華)에 제언(堤堰)을 쌓는 역사(役事)가 있는데, 이미 흉년 때문에 습조(習操)는 정지하였습니다만, 유독 이 일에 있어서 여러 사람을 동원하여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아마도 온당함을 얻지 못한 듯합나디, 그러나 이미 역사를 시작하였는데, 지금 만약 정지한다면 전날의 공력(功力)이 죄다 버려지게 될 것이니, 아까울 듯합니다. 청컨대 입시(入侍)한 여러 신하들에게 하순(下詢)하소서."
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정지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임금이 명하여 그대로 쌓게 하였다. 이이명이 또 해서(海西)에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고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일을 진달(鎭達)하였는데,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인엽(李寅燁)은 옳게 여기고, 이조 판서(吏曹判書) 조태채(趙泰采)와 호조 판서(戶曹判書) 윤세기(尹世紀)는 어렵게 여기니, 임금이 다른 대신(大臣)들이 출사(出仕)하기를 기다린 뒤에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명하였다. 이이명이 또 진달하기를,
"전라 병사(全羅兵使) 이우항(李宇恒)은 지난번 대계(臺啓)를 미안(未安)하게 여겨 끝내 출숙(出肅)하지 않고 있는데, 대계 가운데 있는 ‘추종(騶從)을 물리치고 밤에 나다녔다.’고 한 것은 사람들이 자못 억울하다고 하오니, 부임(赴任)하도록 재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번에 수록(收錄)한 것은 대개 그 당시의 대계가 과중(過重)하였기 때문이었다. 무신(武臣)의 염의(廉義)가 이와 같을 수는 없으니, 추고(推考)하여 부임하도록 재촉하라."
하였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서문유(徐文𥙿)가 작년 의주 유생(義州儒生)의 상소한 일로 품지(稟旨)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위화도(威化島)는 이미 비(碑)를 세울 곳이 아니다. 그리고 태조봉(太祖峰)과 회군천(回軍川)은 모두 비를 세우기가 어렵고, 익원당(翊原堂)은 그 장소를 적실히 알지 못하니, 본도(本道) 감사(監司)로 하여금 다시 살펴서 보고하게 하라."
하였다. 서문유가 또 진달하기를,
"안음 유생(安陰儒生)이 송준길(宋浚吉)의 서원(書院)에 사액(賜額)을 청하였는데, 조정에서 첩설(疊設)을 금지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첩설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이명과 조태채가 자못 신청(申請)하는 바가 있었으나, 임금이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이날 여러 신하들이 바야흐로 일을 아뢰고 있는데, 임금이 잠시 물러가라고 명하여 대신 이하가 나와 전문(殿門) 밖에서 기다린 것이 사시(巳時)로부터 미시(未時)에 이르자, 비로소 입시(入侍)하라고 명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오늘의 일은 저으기 개탄스런 바가 있다. 무릇 일을 아뢸 때에 임금이 혹 미처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여러 신하에게 잠시 물러가 있으라고 명하고, 임금이 혹 측간(厠間)엘 가면 여러 신하에게 잠시 물러가 있으라고 명하는데, 그 사이는 짧은 시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인대(引對)는 일을 아뢴 것이 반도 되지 아니하여, 임금이 갑자기 여러 신하들을 물러가 있으라고 명하여, 사시(巳時)에서 오시(午時)를 지나도록 오히려 입시(入侍)하라고 명하지 않았으므로, 대신들이 한 전(磚)돌 위에 참새처럼 늘어서서 기운이 고달프고 몸이 지쳐 거의 예모(禮貌)를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입시하라 명하였다. 임금이 대신을 예우(禮遇)하지 않음을 여기서 볼 수 있으니, 통탄스러움을 견딜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252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역사-사학(史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농업-수리(水利) / 군사-병법(兵法) / 재정-전세(田稅) / 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원문
○己卯/引見大臣、備局諸臣。 右議政李頣命言: "江華有築堰之役, 而旣以年凶, 停習操, 獨於此, 動衆興役, 似未得當。 然旣已始役, 今若停止, 則前功盡棄, 似爲可惜。 請下詢入侍諸臣。" 諸臣多以停止爲難, 上命仍築。 頣命又陳海西行大同, 監司兼牧使事, 兵曹判書李寅燁以爲可, 吏曹判書趙泰采、戶曹判書尹世紀難之, 上命待他大臣出仕後議處。 頣命又陳全羅兵使李宇恒, 以向來臺啓, 爲不安, 終不出肅。 臺啓中屛騶夜行云者, 人頗稱冤, 宜可促赴, 上曰: "今玆收錄, 蓋以其時臺啓, 爲過重也, 武臣廉義, 不可如是, 推考。" 禮曹判書(徐文裕)〔徐文𥙿〕 , 以昨年義州儒生疏事, 稟旨, 上曰: "威化島旣非立碑之所。 太祖峰、回軍川, 俱難立碑, 翊原堂, 其處不能的知, 使本道監司, 更審以報。" 文𥙿又陳安陰儒生, 請額宋浚吉書院, 而朝有疊設之禁, 何以爲之? 上以疊設不許。 頣命、泰采, 頗有所申請, 上終不聽。 是日, 諸臣方奏事, 上命暫退, 大臣以下出候殿門外, 自巳至未, 始命入侍。
【史臣曰: "今日之事, 竊所慨然。 凡奏事之時, 上或未食, 則命諸臣暫退, 上或如廁, 則命諸臣暫退, 其間不過少頃, 而今日引對, 奏事未半, 上遽命諸臣退出, 自巳過午, 猶不命入侍, 大臣雀立一磚上, 氣困體惱, 幾乎失貌, 然後始命入侍。 上之不禮大臣, 於斯可見, 可勝歎哉!"】
- 【태백산사고본】 52책 45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0책 252면
- 【분류】역사-전사(前史) / 역사-사학(史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농업-수리(水利) / 군사-병법(兵法) / 재정-전세(田稅) / 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원본
숙종 33년 (1707) 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