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38권, 숙종 29년 11월 27일 무진 1/5 기사 / 1703년 청 강희(康熙) 42년
수찬 조태일이 혐의로 사직을 청하자 이를 파면시켰다
국역
처음에 수찬(修撰) 조태일(趙泰一)이 상소하여 사직(辭職)하였는데, 도당록(都堂錄)에 적임자가 빠졌다는 이유로 혐의한 것이다. 승정원에서 그 상소를 물리치니 조태일은 소명(召命)을 어기고 파면되었다. 대신(大臣)이 일찍이 경연에서 그가 문제 일으키기를 좋아한다고 배척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조태일이 비록 시끄러운 문제를 만들어 내려고 하지만, 도당록이 완성된 뒤인데 어찌 계속해서 더하고 뺄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조태일(趙泰一)이 다시 수찬(修撰)이 되니, 그가 상소(上疏)하기를,
"인재를 선발하는 규칙은 비록 정선(精選)을 힘쓰고 많이 뽑는 것을 병통으로 여기지마는, 인재를 뽑는 데는 마땅히 공평하게 하여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만들어진 신록(新錄)은 본관록(本館錄)648) 과 도당록(都堂錄)을 막론하고 색목(色目)649) 에서 깨끗이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피차(被此)의 인재가 많고 적음이 현격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아, 청명(淸明)한 조정에서 인재를 간발(簡拔)하는 거사를 도리어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막고 배척하는 자료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벼슬길에 쫓겨난 채 수용(收用)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또 세도 있는 집안의 비위를 거슬려 시의(時議)에 미움을 받는 자도 많으니, 이것이 어찌 중정(中正)하고 화평(和平)하여 원망을 버리고 사정(私情)를 뒤로 하는 도리이겠습니까? 신(臣)이 전에 상소한 것이 바로 이런 뜻을 아뢰려는 것이었고, 감히 문제를 만들고 시끄러운 말썽을 일으켜 계속해서 가감(加減)하려는 것을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엄중한 하교(下敎)를 받았고, 또 대신(大臣)에게 배척당하였으며, 동료(同僚)들로 하여금 모두 불안(不安)한 마음을 품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臣)이 다만 품은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해야 한다는 뜻만 알았지, 이미 끝난 일은 말하지 않는다는 경계를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정부의 서벽(西壁)650) 은 의례 도당록(都堂錄)에 참록(參錄)하는 것인데, 조정의 의논은 좌참찬(左參贊) 김진귀(金鎭龜)가 새로 참혹한 탄핵을 받았으므로 반드시 함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방에 있는 사재(四宰)651) 로 변통하여 그를 대신하여 차출시켰습니다. 그러나 구별하지 않으려고 동시에 패초(牌招)하도록 청하였는데, 김진귀는 공공연히 졸지에 쑥 나와 얼굴 두껍게도 그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고 꾸짖어도 부끄러워할 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의 기량(技倆)한 재주이지만, 거동의 해괴함과 거취(去就)의 종잡을 수 없음이 이번과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조정의 진신(搢紳)이 그를 대신하여 부끄럽게 여기고, 관청의 아전들도 몰래 욕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만일 기탄(忌憚)할 줄 모르는 소인(小人)이 아니라면, 환득 환실(患得患失)652) 하는 비부(鄙夫)일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 사람의 가부(可否)의 평가를 기다려서야 이 한 몸의 영화와 몰락이 결정된단 말입니까? 이 마음의 수치스러움이 어찌 불결(不潔)한 것을 뒤집어 쓰고 저자거리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 같을 뿐이겠습니까? 이것이 신(臣)이 함부로 나가기 어려운 단서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얼마 전의 사직하는 상소 중에 단지 도당록에 적임자가 빠졌다는 말이 있다고만 들었는데, 지금 여기에 이러이러하다는 말은 한 마디마다 갈수록 더 심각해져, 말은 화평(和平)함이 모자라고 하는 일은 문제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데 관계되며, 중신(重臣)까지 침척(侵斥)하여 조금도 돌아보거나 꺼림이 없으니, 그것이 온당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수행하라."
하였다. 수찬(修撰) 이관명(李觀命)이 일찍이 도당록(都堂錄)에 권점(圈點)을 치는 데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상소(上疏)하여 대변(對辨)하기를,
"당론(黨論)의 폐단은 지금에 와서 날로 고질(痼疾)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진신(搢紳) 중에 조금이라도 지식(知識)이 있는 자라면, 비록 친한 친구들 끼리의 평소의 생활에서도 망론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청명(淸明)한 조정의 경악(經幄)의 선비가 바로 이쪽저쪽의 색목(色目)에 관한 말을 함부로 주광(黈纊)653) 의 아래에서 주달하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이른바 피차(彼此)란 무엇을 지적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재능이 있으면 뽑는 것이니, 피차(彼此)를 어찌 구분할 것이 있겠습니까? 설령 한 세대의 인재(人才)로서 바로 공명한 조정에 훌륭한 인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달갑게 붙어서 그의 사당(私黨)이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바로 사람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이기에 급급하여, 그의 다재(多才)를 대단히 칭찬하면서 끌어대는 비유가 말이 외설되고 속되며 말투가 거칠고 사나우니, 어찌 말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하는 것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
하니, 임금이 우악(優渥)하게 비답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조태일(趙泰一)의 말이 어찌 그리도 몹시 무엄한가? 명기(名器)는 나라의 공물(公物)이므로 진퇴 취사(進退取捨)가 모두 공의(公議)에 의하여 되는 것이요, 한 사람의 편벽되고 사사로운 의견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태일은 붕당(朋黨)의 습속(習俗)에 사납고 독한 성질을 함부로 휘둘렀다. 자기가 속한 사당(私黨) 중 한 두 명이 도당록에 누락된 것에 화를 내어, 이에 감히 저쪽이니 이쪽이니 하며 구분하고 다과(多寡)를 다투어서, 군부(君父)의 앞에서 번거롭게 말썽을 일으킨 것은 반드시 신록(新錄)을 저지하여 폐기시키고, 자기의 사당(私黨)을 끌어들여서 그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야 말겠다는 의도였으니, 그것도 또한 몹시 무엄(無嚴)한 것이다. 김진귀(金鎭龜)가 탄핵을 무릅쓰고 직무에 종사한 것은 비단 오늘만이 아니니, 조수(操守)하는 절개로써 탓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타인(他人)의 출처(出處)가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의 일을 빙자하여 능욕(凌辱)함으로써 자기의 구기(口氣)를 통쾌하게 하려는 데 힘쓴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상소문에 쓰인 말을 보면 마치 스스로 단념하여서 다시는 관직(館職)에 있지 않을 듯하였지만, 임금의 은총이 후하게 내리자 세력을 믿고 영화를 좇아 의기양양하게 진출을 도모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있어서 홀로 얼굴이 두꺼운 한탄과 불결(不潔)한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조태일 같은 사람은 참으로 기탄(忌憚)하는 것이 없고, 환득 환실(患得患失)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 [註 648] 본관록(本館錄) :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수찬(修撰)을 임명할 때 그 1차의 선거 기록. 홍문록(弘文錄).
- [註 649] 색목(色目) : 당색(黨色).
- [註 650] 서벽(西壁) : 회좌(會座)할 때 좌석의 서쪽에 앉는 벼슬. 의정부에서는 좌우 참찬(左右參贊)이 여기에 해당하였음.
- [註 651] 사재(四宰) : 삼재(三宰) 다음 이라는 말로 우참찬을 이름.
- [註 652] 환득 환실(患得患失) : 얻기 전에는 얻으려고 근심하고,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잃을까 근심함.
- [註 653] 주광(黈纊) : 갓에 매어 달아서 두 귀 옆에 늘어뜨린 노란 솜으로 만든 구형의 물건. 함부로 아무 말이나 듣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임. 옛날 임금은 불요 불급(不要不急)한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이것으로 귀를 막았다고 함.
원문
○戊辰/初, 修撰趙泰一, 上疏辭職, 以堂錄遺珠爲嫌。 政院却其疏, 泰一違召罷免。 大臣嘗於筵中, 斥其喜事, 上曰: "泰一, 雖欲起鬧, 完錄之後, 寧有續續加減之理乎?" 至是, 泰一復爲修撰, 上疏曰:
掄選之規, 雖務精而病博, 取人宜以公而無偏。 今番新錄, 毌論本館與都堂, 不能脫灑於色目, 殊不念彼此人才多寡懸殊, 使淸朝簡拔之擧, 反作沮排異己之資。 而至於捐棄不收者, 又多觸忤巨室, 見嫉時議之士, 此豈中正和平置怨後私之道乎? 臣之前疏, 竊附此義, 非敢有喜事起鬧之意, 續續加減之望, 而旣承嚴敎, 又被大臣之非斥, 且使同僚, 皆懷不安。 此由臣徒知有懷必陳之義, 全昧成事勿說之戒也。 且政府西壁, 例參堂錄, 朝議以左參贊金鎭龜, 新被慘劾, 必不冒進, 至於變通在外之四宰, 差出其代, 而不欲區別, 混請牌招, 鎭龜公然穾出, 淟涊預會。 從他笑罵, 不知羞恥者, 此固本來伎倆, 而擧措之駭怪, 去就之無據, 未有如今番者也。 搢紳代羞, 吏胥竊詈。 若非無忌憚之小人, 必是患得失之鄙夫。 此所謂不可與事君者。 況待其人之可否, 爲一身之榮落? 此心愧赧, 奚啻蒙不潔而撻于市也? 此臣難冒之端也。
答曰: "頃日辭疏中, 只聞有遺珠之語, 今玆云云, 一節轉深, 語欠和平, 迹涉喜事, 至於侵斥重臣, 略無顧忌, 予未知其穩當也。 勿辭察職。" 修撰李觀命, 自以曾參館錄圈點, 上疏對辨曰:
黨論之弊, 至今日痼矣。 然搢紳之稍有知識者, 雖於儕流燕私之間, 羞稱道之, 豈意淸朝經幄之士, 乃以彼此色目之言, 肆然達之於黈纊之下哉? 所謂彼所謂此, 未知其何指, 而有才則取, 之彼之此, 又何足分也? 設有一世人才, 自是公朝俊髦, 孰肯甘心附麗, 爲其私黨, 而今乃急於援引, 盛道其多才, 引喩褻俚, 辭氣麤厲, 何其言之不擇至此耶?
上優批答之。
【史臣曰: "泰一之言, 何其無嚴之甚也? 名器, 國之公物, 進退取舍, 自有公議, 不可容一人偏私之見, 而泰一, 溺於朋比之習, 肆其狠毒之性, 怒其一二私黨之漏於館錄, 乃敢分彼此競多寡, 屑屑於君父之前, 必欲沮敗新錄, 汲引私黨, 以自足於其心而後已, 其亦無嚴之甚也。 金鎭龜之耐彈供職, 非直今日, 固不足責以廉隅, 然他人出處, 何與於己, 而憑藉凌辱, 務快其口氣者, 何哉? 觀其疏語, 若將自畫, 不復以館職自居, 而及夫上寵之優渥也, 席勢趨榮, 揚揚冒出, 于斯時也, 獨無顔厚之歎不潔之恥乎? 若泰一, 眞可謂無忌憚, 患得失者矣。"】
숙종실록38권, 숙종 29년 11월 27일 무진 1/5 기사 / 1703년 청 강희(康熙) 42년
수찬 조태일이 혐의로 사직을 청하자 이를 파면시켰다
국역
처음에 수찬(修撰) 조태일(趙泰一)이 상소하여 사직(辭職)하였는데, 도당록(都堂錄)에 적임자가 빠졌다는 이유로 혐의한 것이다. 승정원에서 그 상소를 물리치니 조태일은 소명(召命)을 어기고 파면되었다. 대신(大臣)이 일찍이 경연에서 그가 문제 일으키기를 좋아한다고 배척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조태일이 비록 시끄러운 문제를 만들어 내려고 하지만, 도당록이 완성된 뒤인데 어찌 계속해서 더하고 뺄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조태일(趙泰一)이 다시 수찬(修撰)이 되니, 그가 상소(上疏)하기를,
"인재를 선발하는 규칙은 비록 정선(精選)을 힘쓰고 많이 뽑는 것을 병통으로 여기지마는, 인재를 뽑는 데는 마땅히 공평하게 하여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만들어진 신록(新錄)은 본관록(本館錄)648) 과 도당록(都堂錄)을 막론하고 색목(色目)649) 에서 깨끗이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피차(被此)의 인재가 많고 적음이 현격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아, 청명(淸明)한 조정에서 인재를 간발(簡拔)하는 거사를 도리어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막고 배척하는 자료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벼슬길에 쫓겨난 채 수용(收用)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또 세도 있는 집안의 비위를 거슬려 시의(時議)에 미움을 받는 자도 많으니, 이것이 어찌 중정(中正)하고 화평(和平)하여 원망을 버리고 사정(私情)를 뒤로 하는 도리이겠습니까? 신(臣)이 전에 상소한 것이 바로 이런 뜻을 아뢰려는 것이었고, 감히 문제를 만들고 시끄러운 말썽을 일으켜 계속해서 가감(加減)하려는 것을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엄중한 하교(下敎)를 받았고, 또 대신(大臣)에게 배척당하였으며, 동료(同僚)들로 하여금 모두 불안(不安)한 마음을 품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臣)이 다만 품은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해야 한다는 뜻만 알았지, 이미 끝난 일은 말하지 않는다는 경계를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정부의 서벽(西壁)650) 은 의례 도당록(都堂錄)에 참록(參錄)하는 것인데, 조정의 의논은 좌참찬(左參贊) 김진귀(金鎭龜)가 새로 참혹한 탄핵을 받았으므로 반드시 함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방에 있는 사재(四宰)651) 로 변통하여 그를 대신하여 차출시켰습니다. 그러나 구별하지 않으려고 동시에 패초(牌招)하도록 청하였는데, 김진귀는 공공연히 졸지에 쑥 나와 얼굴 두껍게도 그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고 꾸짖어도 부끄러워할 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의 기량(技倆)한 재주이지만, 거동의 해괴함과 거취(去就)의 종잡을 수 없음이 이번과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조정의 진신(搢紳)이 그를 대신하여 부끄럽게 여기고, 관청의 아전들도 몰래 욕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만일 기탄(忌憚)할 줄 모르는 소인(小人)이 아니라면, 환득 환실(患得患失)652) 하는 비부(鄙夫)일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 사람의 가부(可否)의 평가를 기다려서야 이 한 몸의 영화와 몰락이 결정된단 말입니까? 이 마음의 수치스러움이 어찌 불결(不潔)한 것을 뒤집어 쓰고 저자거리에서 종아리를 맞는 것 같을 뿐이겠습니까? 이것이 신(臣)이 함부로 나가기 어려운 단서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얼마 전의 사직하는 상소 중에 단지 도당록에 적임자가 빠졌다는 말이 있다고만 들었는데, 지금 여기에 이러이러하다는 말은 한 마디마다 갈수록 더 심각해져, 말은 화평(和平)함이 모자라고 하는 일은 문제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데 관계되며, 중신(重臣)까지 침척(侵斥)하여 조금도 돌아보거나 꺼림이 없으니, 그것이 온당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수행하라."
하였다. 수찬(修撰) 이관명(李觀命)이 일찍이 도당록(都堂錄)에 권점(圈點)을 치는 데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상소(上疏)하여 대변(對辨)하기를,
"당론(黨論)의 폐단은 지금에 와서 날로 고질(痼疾)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진신(搢紳) 중에 조금이라도 지식(知識)이 있는 자라면, 비록 친한 친구들 끼리의 평소의 생활에서도 망론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청명(淸明)한 조정의 경악(經幄)의 선비가 바로 이쪽저쪽의 색목(色目)에 관한 말을 함부로 주광(黈纊)653) 의 아래에서 주달하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이른바 피차(彼此)란 무엇을 지적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재능이 있으면 뽑는 것이니, 피차(彼此)를 어찌 구분할 것이 있겠습니까? 설령 한 세대의 인재(人才)로서 바로 공명한 조정에 훌륭한 인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달갑게 붙어서 그의 사당(私黨)이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바로 사람들을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이기에 급급하여, 그의 다재(多才)를 대단히 칭찬하면서 끌어대는 비유가 말이 외설되고 속되며 말투가 거칠고 사나우니, 어찌 말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하는 것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
하니, 임금이 우악(優渥)하게 비답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조태일(趙泰一)의 말이 어찌 그리도 몹시 무엄한가? 명기(名器)는 나라의 공물(公物)이므로 진퇴 취사(進退取捨)가 모두 공의(公議)에 의하여 되는 것이요, 한 사람의 편벽되고 사사로운 의견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조태일은 붕당(朋黨)의 습속(習俗)에 사납고 독한 성질을 함부로 휘둘렀다. 자기가 속한 사당(私黨) 중 한 두 명이 도당록에 누락된 것에 화를 내어, 이에 감히 저쪽이니 이쪽이니 하며 구분하고 다과(多寡)를 다투어서, 군부(君父)의 앞에서 번거롭게 말썽을 일으킨 것은 반드시 신록(新錄)을 저지하여 폐기시키고, 자기의 사당(私黨)을 끌어들여서 그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야 말겠다는 의도였으니, 그것도 또한 몹시 무엄(無嚴)한 것이다. 김진귀(金鎭龜)가 탄핵을 무릅쓰고 직무에 종사한 것은 비단 오늘만이 아니니, 조수(操守)하는 절개로써 탓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타인(他人)의 출처(出處)가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의 일을 빙자하여 능욕(凌辱)함으로써 자기의 구기(口氣)를 통쾌하게 하려는 데 힘쓴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상소문에 쓰인 말을 보면 마치 스스로 단념하여서 다시는 관직(館職)에 있지 않을 듯하였지만, 임금의 은총이 후하게 내리자 세력을 믿고 영화를 좇아 의기양양하게 진출을 도모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있어서 홀로 얼굴이 두꺼운 한탄과 불결(不潔)한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조태일 같은 사람은 참으로 기탄(忌憚)하는 것이 없고, 환득 환실(患得患失)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 [註 648] 본관록(本館錄) :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수찬(修撰)을 임명할 때 그 1차의 선거 기록. 홍문록(弘文錄).
- [註 649] 색목(色目) : 당색(黨色).
- [註 650] 서벽(西壁) : 회좌(會座)할 때 좌석의 서쪽에 앉는 벼슬. 의정부에서는 좌우 참찬(左右參贊)이 여기에 해당하였음.
- [註 651] 사재(四宰) : 삼재(三宰) 다음 이라는 말로 우참찬을 이름.
- [註 652] 환득 환실(患得患失) : 얻기 전에는 얻으려고 근심하고,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잃을까 근심함.
- [註 653] 주광(黈纊) : 갓에 매어 달아서 두 귀 옆에 늘어뜨린 노란 솜으로 만든 구형의 물건. 함부로 아무 말이나 듣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임. 옛날 임금은 불요 불급(不要不急)한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이것으로 귀를 막았다고 함.
원문
○戊辰/初, 修撰趙泰一, 上疏辭職, 以堂錄遺珠爲嫌。 政院却其疏, 泰一違召罷免。 大臣嘗於筵中, 斥其喜事, 上曰: "泰一, 雖欲起鬧, 完錄之後, 寧有續續加減之理乎?" 至是, 泰一復爲修撰, 上疏曰:
掄選之規, 雖務精而病博, 取人宜以公而無偏。 今番新錄, 毌論本館與都堂, 不能脫灑於色目, 殊不念彼此人才多寡懸殊, 使淸朝簡拔之擧, 反作沮排異己之資。 而至於捐棄不收者, 又多觸忤巨室, 見嫉時議之士, 此豈中正和平置怨後私之道乎? 臣之前疏, 竊附此義, 非敢有喜事起鬧之意, 續續加減之望, 而旣承嚴敎, 又被大臣之非斥, 且使同僚, 皆懷不安。 此由臣徒知有懷必陳之義, 全昧成事勿說之戒也。 且政府西壁, 例參堂錄, 朝議以左參贊金鎭龜, 新被慘劾, 必不冒進, 至於變通在外之四宰, 差出其代, 而不欲區別, 混請牌招, 鎭龜公然穾出, 淟涊預會。 從他笑罵, 不知羞恥者, 此固本來伎倆, 而擧措之駭怪, 去就之無據, 未有如今番者也。 搢紳代羞, 吏胥竊詈。 若非無忌憚之小人, 必是患得失之鄙夫。 此所謂不可與事君者。 況待其人之可否, 爲一身之榮落? 此心愧赧, 奚啻蒙不潔而撻于市也? 此臣難冒之端也。
答曰: "頃日辭疏中, 只聞有遺珠之語, 今玆云云, 一節轉深, 語欠和平, 迹涉喜事, 至於侵斥重臣, 略無顧忌, 予未知其穩當也。 勿辭察職。" 修撰李觀命, 自以曾參館錄圈點, 上疏對辨曰:
黨論之弊, 至今日痼矣。 然搢紳之稍有知識者, 雖於儕流燕私之間, 羞稱道之, 豈意淸朝經幄之士, 乃以彼此色目之言, 肆然達之於黈纊之下哉? 所謂彼所謂此, 未知其何指, 而有才則取, 之彼之此, 又何足分也? 設有一世人才, 自是公朝俊髦, 孰肯甘心附麗, 爲其私黨, 而今乃急於援引, 盛道其多才, 引喩褻俚, 辭氣麤厲, 何其言之不擇至此耶?
上優批答之。
【史臣曰: "泰一之言, 何其無嚴之甚也? 名器, 國之公物, 進退取舍, 自有公議, 不可容一人偏私之見, 而泰一, 溺於朋比之習, 肆其狠毒之性, 怒其一二私黨之漏於館錄, 乃敢分彼此競多寡, 屑屑於君父之前, 必欲沮敗新錄, 汲引私黨, 以自足於其心而後已, 其亦無嚴之甚也。 金鎭龜之耐彈供職, 非直今日, 固不足責以廉隅, 然他人出處, 何與於己, 而憑藉凌辱, 務快其口氣者, 何哉? 觀其疏語, 若將自畫, 不復以館職自居, 而及夫上寵之優渥也, 席勢趨榮, 揚揚冒出, 于斯時也, 獨無顔厚之歎不潔之恥乎? 若泰一, 眞可謂無忌憚, 患得失者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