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정초본]114권, 광해 9년 4월 2일 병신 5/6 기사 /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이충이 병에 걸려 이명으로 하여금 구완하도록 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이충(李沖)은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중병을 얻었으니, 내가 몹시 염려된다. 그의 동생 이명(李溟)이 현재 죄적(罪籍)에 들어 있으니, 반드시 와서 병구완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충의 병이 이와 같으니 이명을 방송(放送)해서 그로 하여금 와서 구완하게 하라."
하였다.【 【이충은 간신(奸臣)인 이량(李樑)의 손자이며 이정빈(李廷賓)의 아들이다. 천성이 흉악하고 험살궂은데다가 조상들의 허물이 있어서 선조(先祖)에서 비록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사판(仕版)에 끼이지 못하였다. 정사가 혼란스러워진 뒤에 궁금(宮禁)에 연줄을 대었으며, 사람됨이 간사스러워 임금의 뜻을 잘 살펴서 기묘하고 음란한 수완을 부려 기쁘게 하였는데, 조석으로 맛진 반찬을 올려 왕이 반드시 그가 올리는 반찬이 도착한 뒤에야 식사를 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시를 지어서 그것을 조롱하였는데, 그 시에 ‘잡채 상서의 세력을 당할 수 없다.[雜菜尙書勢莫當]’고 하였다. 새 궁궐을 짓는 역사가 일어나자 주상에게 아부하여 그 일을 담당하고는 여기저기서 재물을 긁어들이면서 반드시 쓰고 남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권세와 총애가 날로 융성해져서 갑자기 1품에 뛰어올랐다. 그의 동생 이명은 음험하고 사악하며 잘 해쳤다. 처음에는 이이첨이 돌봐주어서 청현직(淸顯職)을 역임하였는데, 뒤에 정형(政衡)을 다투었으므로 드디어 틈이 벌어졌다. 그러자 정창연에게 달아붙어서 별도로 한 당파를 세웠다. 이에 이이첨이 크게 노하여 대각(臺閣)을 사주하여 논핵하게 해서 내쫓았는데, 이 때에 이르러 뇌물을 주고 석방된 것이다. 대개 이량이 정권을 잡았을 때 정창연의 아비인 정유길(鄭惟吉)이 이량에게 아부해서 이조 판서가 되었는데, 사림이 비루하게 여기었다. 이량이 실각함에 미쳐서 정유길이 권간에게 달라붙었다는 이유로 중하게 논핵을 당하였다. 정창연은 이충·이명과 집안 대대로 친분이 있었으므로, 그가 이조 판서가 되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주었다고 한다.】 】
원문
○傳曰: "李沖以盡心國事之人, 猝得重病, 予用慮焉。 其弟李溟方在罪籍, 必不來救。 冲病如此, 李溟放送, 使之救療。" 【沖, 奸臣樑之孫, 廷賓之子也。 賦性兇險, 加以世累, 曾在先朝, 雖竊科第, 而不得齒於仕版。 政昏之後, 夤緣宮禁, 爲人秘譎, 善探主意, 作奇技淫巧以悅之, 朝夕進珍饌, 王必待其饌而下箸。 人有作詩嘲之者曰: "雜菜判書勢莫當" 云。 新闕之役, 縱臾擔當, 掊克聚斂, 必稱贏餘。 以此權寵日盛, 驟陞一品。 其弟溟, 陰邪賊害, 初爲 李爾瞻卵育, 歷敭淸顯, 後爭政衡, 遂成嫌隙。 乃附鄭昌衍, 別立爲一黨, 爾瞻大怒, 嗾臺閣論黜之。 至是行金得釋。 蓋樑柄用時, 昌衍之父惟吉, 附會判銓, 士林鄙之。 及樑敗, 惟吉以染跡權奸被重駁, 昌衍與沖、溟, 有世厚, 故其爲銓判, 終始汲引云。】
광해군일기[정초본]114권, 광해 9년 4월 2일 병신 5/6 기사 /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이충이 병에 걸려 이명으로 하여금 구완하도록 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이충(李沖)은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중병을 얻었으니, 내가 몹시 염려된다. 그의 동생 이명(李溟)이 현재 죄적(罪籍)에 들어 있으니, 반드시 와서 병구완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충의 병이 이와 같으니 이명을 방송(放送)해서 그로 하여금 와서 구완하게 하라."
하였다.【 【이충은 간신(奸臣)인 이량(李樑)의 손자이며 이정빈(李廷賓)의 아들이다. 천성이 흉악하고 험살궂은데다가 조상들의 허물이 있어서 선조(先祖)에서 비록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사판(仕版)에 끼이지 못하였다. 정사가 혼란스러워진 뒤에 궁금(宮禁)에 연줄을 대었으며, 사람됨이 간사스러워 임금의 뜻을 잘 살펴서 기묘하고 음란한 수완을 부려 기쁘게 하였는데, 조석으로 맛진 반찬을 올려 왕이 반드시 그가 올리는 반찬이 도착한 뒤에야 식사를 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시를 지어서 그것을 조롱하였는데, 그 시에 ‘잡채 상서의 세력을 당할 수 없다.[雜菜尙書勢莫當]’고 하였다. 새 궁궐을 짓는 역사가 일어나자 주상에게 아부하여 그 일을 담당하고는 여기저기서 재물을 긁어들이면서 반드시 쓰고 남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권세와 총애가 날로 융성해져서 갑자기 1품에 뛰어올랐다. 그의 동생 이명은 음험하고 사악하며 잘 해쳤다. 처음에는 이이첨이 돌봐주어서 청현직(淸顯職)을 역임하였는데, 뒤에 정형(政衡)을 다투었으므로 드디어 틈이 벌어졌다. 그러자 정창연에게 달아붙어서 별도로 한 당파를 세웠다. 이에 이이첨이 크게 노하여 대각(臺閣)을 사주하여 논핵하게 해서 내쫓았는데, 이 때에 이르러 뇌물을 주고 석방된 것이다. 대개 이량이 정권을 잡았을 때 정창연의 아비인 정유길(鄭惟吉)이 이량에게 아부해서 이조 판서가 되었는데, 사림이 비루하게 여기었다. 이량이 실각함에 미쳐서 정유길이 권간에게 달라붙었다는 이유로 중하게 논핵을 당하였다. 정창연은 이충·이명과 집안 대대로 친분이 있었으므로, 그가 이조 판서가 되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주었다고 한다.】 】
원문
○傳曰: "李沖以盡心國事之人, 猝得重病, 予用慮焉。 其弟李溟方在罪籍, 必不來救。 冲病如此, 李溟放送, 使之救療。" 【沖, 奸臣樑之孫, 廷賓之子也。 賦性兇險, 加以世累, 曾在先朝, 雖竊科第, 而不得齒於仕版。 政昏之後, 夤緣宮禁, 爲人秘譎, 善探主意, 作奇技淫巧以悅之, 朝夕進珍饌, 王必待其饌而下箸。 人有作詩嘲之者曰: "雜菜判書勢莫當" 云。 新闕之役, 縱臾擔當, 掊克聚斂, 必稱贏餘。 以此權寵日盛, 驟陞一品。 其弟溟, 陰邪賊害, 初爲 李爾瞻卵育, 歷敭淸顯, 後爭政衡, 遂成嫌隙。 乃附鄭昌衍, 別立爲一黨, 爾瞻大怒, 嗾臺閣論黜之。 至是行金得釋。 蓋樑柄用時, 昌衍之父惟吉, 附會判銓, 士林鄙之。 及樑敗, 惟吉以染跡權奸被重駁, 昌衍與沖、溟, 有世厚, 故其爲銓判, 終始汲引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