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209권, 선조 40년 3월 18일 신사 3/6 기사 / 1607년 명 만력(萬曆) 35년
이보의 졸기
국역
이보(李𤣰)가 졸하였다. 【보는 왕자다. 성질이 패망(悖妄)하여 술만 마시면서 행패를 무렸으며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비록 임해군(臨海君)이나 정원군(定遠君)의 행패보다는 덜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해마다 10여 명에 이르렀으므로 도성의 백성들이 몹시 두려워 호환(虎患)을 피하듯이 하였다. 이에 양사(兩司)가 논계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안치시켰는데, 이 때에 이르러 죽었다. 상이 특별히 명하여 그의 직을 회복시켜 순화군(順和君)이라 하고, 익성군(益城君) 이향령(李享齡)의 아들 이태경(李泰慶)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
- 【태백산사고본】 113책 209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1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원문
선조실록209권, 선조 40년 3월 18일 신사 3/6 기사 / 1607년 명 만력(萬曆) 35년
이보의 졸기
국역
이보(李𤣰)가 졸하였다. 【보는 왕자다. 성질이 패망(悖妄)하여 술만 마시면서 행패를 무렸으며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비록 임해군(臨海君)이나 정원군(定遠君)의 행패보다는 덜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해마다 10여 명에 이르렀으므로 도성의 백성들이 몹시 두려워 호환(虎患)을 피하듯이 하였다. 이에 양사(兩司)가 논계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안치시켰는데, 이 때에 이르러 죽었다. 상이 특별히 명하여 그의 직을 회복시켜 순화군(順和君)이라 하고, 익성군(益城君) 이향령(李享齡)의 아들 이태경(李泰慶)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
- 【태백산사고본】 113책 209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31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