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62권, 선조 36년 5월 14일 기사 3/6 기사 /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이덕형의 사직에 대한 하유의 글
국역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이 정사(呈辭)하여 체직해 주기를 원하니, 상이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유하도록 명하였다. 지제교 허균(許筠)이 지어 올린 글은 다음과 같다.
"경은 포부가 크고 도량이 넓어서 하위의 반열에 있을 적에 이미 공보(公輔)가 될 인망을 쌓았고, 재상이 되어서는 성대하게 백성을 편안히 하고 구제할 재간이 있었으며, 사명(辭命)을 토론하고 윤색함에 있어서는 옛적에 사명을 맡아보던 세숙(世叔)과 비침(裨諶)080) 처럼 하였고, 빈개(儐介)가 되어 주선할 적에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 대부 공손교(公孫僑)와 양설힐(羊舌肸)이 상빈(相賓)할 때처럼 하였으며, 치도(治道)를 논하고 병정(兵政)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문무를 고루 썼고, 정승이 되어 곤수(閫帥)를 절제할 적에는 국가의 안위(安危)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리하여 변방의 백성들이 경에 의지해 한숨 돌리게 되었고 섬 오랑캐들도 소문을 듣고서 넋이 나갈 지경이었는데, 어찌 사저(私邸)로 돌아가 한가로이 노닐게 하여 정승의 자리에 앉아 국사를 찬획(贊劃)하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오늘날은 추축(樞軸)에 앉아 사람을 쓰고 버리고 할 때이니, 어찌 이장(移葬)하는 일 때문에 쉬러 갈 수 있겠는가. 이장하는 경우 예경(禮經)을 고찰해 보아도 관직을 떠나야 된다고 논하지 않았으며 국법을 참고해 보아도 관직을 해면할 만한 근거가 없다."
- 【태백산사고본】 93책 162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78면
- [註 080] 세숙(世叔)과 비침(裨諶) :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대부들임. 세숙은 사명의 기초를 맡고 비침은 토론을 맡았었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원문
선조실록162권, 선조 36년 5월 14일 기사 3/6 기사 /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이덕형의 사직에 대한 하유의 글
국역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이 정사(呈辭)하여 체직해 주기를 원하니, 상이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유하도록 명하였다. 지제교 허균(許筠)이 지어 올린 글은 다음과 같다.
"경은 포부가 크고 도량이 넓어서 하위의 반열에 있을 적에 이미 공보(公輔)가 될 인망을 쌓았고, 재상이 되어서는 성대하게 백성을 편안히 하고 구제할 재간이 있었으며, 사명(辭命)을 토론하고 윤색함에 있어서는 옛적에 사명을 맡아보던 세숙(世叔)과 비침(裨諶)080) 처럼 하였고, 빈개(儐介)가 되어 주선할 적에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 대부 공손교(公孫僑)와 양설힐(羊舌肸)이 상빈(相賓)할 때처럼 하였으며, 치도(治道)를 논하고 병정(兵政)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문무를 고루 썼고, 정승이 되어 곤수(閫帥)를 절제할 적에는 국가의 안위(安危)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리하여 변방의 백성들이 경에 의지해 한숨 돌리게 되었고 섬 오랑캐들도 소문을 듣고서 넋이 나갈 지경이었는데, 어찌 사저(私邸)로 돌아가 한가로이 노닐게 하여 정승의 자리에 앉아 국사를 찬획(贊劃)하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오늘날은 추축(樞軸)에 앉아 사람을 쓰고 버리고 할 때이니, 어찌 이장(移葬)하는 일 때문에 쉬러 갈 수 있겠는가. 이장하는 경우 예경(禮經)을 고찰해 보아도 관직을 떠나야 된다고 논하지 않았으며 국법을 참고해 보아도 관직을 해면할 만한 근거가 없다."
- 【태백산사고본】 93책 162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78면
- [註 080] 세숙(世叔)과 비침(裨諶) :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대부들임. 세숙은 사명의 기초를 맡고 비침은 토론을 맡았었다. 《논어(論語)》 헌문(憲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