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93권, 선조 30년 10월 2일 기미 4/18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사로잡힌 왜적 한 사람이 실토한 적의 내부 사정을 접반사 장운익이 보고하다
국역
정원이 제독의 접반사 장운익(張雲翼)의 말로 아뢰기를,
"지금 영국윤(寧國胤)이 왜적 한 사람을 사로잡아 사람을 차출하여 압송해 왔으므로 제독이 통사(通事) 박대근(朴大根)을 시켜 물어보니, 왜적이 대답하기를 ‘본디 왜장 모리(毛利)에게 소속된 노정(奴丁)이었는데 청주에 이르러 병을 얻어 뒤떨어졌다가 9월 24일에 사로잡혔다. 당초에 관백(關伯)은 여러 장수들에게 분부하기를 「조선의 남녀를 모두 죽이고 닭과 개도 남기지 않도록 하라. 그러한 뒤에 다음 분부를 듣도록 하라. 」고 하였다. 그러므로 남원을 함락시켰을 때 왜적의 전사(戰死)한 자가 백여 명이나 되었고 서울로 진격하고자 직산(稷山)에 이르렀다가 중국군에게 저지당해 죽은 자가 5백여 명이었으며, 천 파총(千把摠)도 20여 명이나 죽었다. 이 때문에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붉은 깃발을 가진 사람을 시켜 전령하여 철수해 돌아가게 하였고, 관백도 전령하기를 「이미 전라·충청 2도를 공략했으면 급히 군사를 철수하되 10월 2일에 배에 올라 20일 이내에 일본에 도착해야 하니 어기는 자는 참수한다. 」하므로, 각 병영의 장수들이 그 기한을 어기게 될까 두려워서 당황하여 물러가고 있다…….’ 하였습니다. 제독이 말하기를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네 말이 매우 황당하구나.’ 하니, 왜적이 ‘소인이 이미 이러한 처지에 이르러서 생명이 노야(老爺)에게 달렸는데 어찌 감히 황당한 말을 하겠는가. 만약 내 말이 옳지 않다면 중벌도 달게 받겠다…….’ 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원문
○政院以提督接伴使張雲翼言, 啓曰: "卽刻寗國胤生擒倭子一名, 差人押到, 提督令通事朴大根譯問, 則倭答曰: ‘原係倭將毛利管下奴丁, 回到淸州, 得病落後, 九月二十四日被擒, 而當初關白分付諸將: 「盡殺朝鮮男女, 鷄犬不遺, 然後再聽分付云。」 故攻陷南原時, 倭子戰死者百餘人, 將欲進犯王京, 到稷山地, 爲天兵所殺死五百餘名, 千把總死者、二十餘人。 以是淸正, 令負紅旗人, 傳令, 使之撤還, 關白亦傳令曰: 「若已搶全羅、忠淸二道, 急急撤兵, 十月初二日上船, 二十日內, 當到日本, 而違則當斬云。」 故各營將領, 恐其違期, 蒼黃退回云云。’ 提督曰: ‘豈有理? 爾言甚謊。’ 倭言曰: ‘小的旣到此地, 命在老爺, 豈敢謊說? 若我言不是, 則甘伏重刑云云。’ 敢啓。" 傳曰: "知道。"
선조 30년 (1597) 10월 2일
- 적에게 사로잡힌 남충원과 신택의 가족을 구출해 보도록 지시하다
- 심우승을 사면해 달라는 경리 양호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다
- 제독 마귀의 자문에 회답할 내용을 논하다
- 사로잡힌 왜적 한 사람이 실토한 적의 내부 사정을 접반사 장운익이 보고하다
- 경리 접반사 이덕형이 군량 조달에 관하여 경리에게 품첩을 보내다
- 함경도 관찰사 송언신이 지진의 발생을 보고하다
- 호조가 강원도와 경상도의 금년분 조세를 거두어 들이는 방법을 건의하다
- 전공을 많이 세운 충청 병사 이시언에게 가자하다
- 중국군 장수들이 사로잡은 왜적을 활쏘기의 표적으로 삼아 죽이다
- 신잡에게 성천에 그대로 있으라고 지시하다
- 이헌국·정광적·우준민·권희·박승종·윤돈·최천건·이철·이영·경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병조가 군마를 먹일 양초의 조달 방법을 건의하다
- 충청 병사 이시언이 적과의 접전 상황과 전과를 장계로 보고하다
- 전라 감사 황신이 조방장 김언공의 전과를 장계로 보고하다
- 도원수 권율이 용인 현령이 올린 전과를 장계로 보고하다
- 양성 현감이 왜적 1명을 사로잡았음을 영의정 유성룡이 장계로 보고하다
- 충청 병사 이신언이 비안 현감 유옥의 전과를 보고하다
- 총독 형개에게 보낸 자문
선조실록93권, 선조 30년 10월 2일 기미 4/18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사로잡힌 왜적 한 사람이 실토한 적의 내부 사정을 접반사 장운익이 보고하다
국역
정원이 제독의 접반사 장운익(張雲翼)의 말로 아뢰기를,
"지금 영국윤(寧國胤)이 왜적 한 사람을 사로잡아 사람을 차출하여 압송해 왔으므로 제독이 통사(通事) 박대근(朴大根)을 시켜 물어보니, 왜적이 대답하기를 ‘본디 왜장 모리(毛利)에게 소속된 노정(奴丁)이었는데 청주에 이르러 병을 얻어 뒤떨어졌다가 9월 24일에 사로잡혔다. 당초에 관백(關伯)은 여러 장수들에게 분부하기를 「조선의 남녀를 모두 죽이고 닭과 개도 남기지 않도록 하라. 그러한 뒤에 다음 분부를 듣도록 하라. 」고 하였다. 그러므로 남원을 함락시켰을 때 왜적의 전사(戰死)한 자가 백여 명이나 되었고 서울로 진격하고자 직산(稷山)에 이르렀다가 중국군에게 저지당해 죽은 자가 5백여 명이었으며, 천 파총(千把摠)도 20여 명이나 죽었다. 이 때문에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붉은 깃발을 가진 사람을 시켜 전령하여 철수해 돌아가게 하였고, 관백도 전령하기를 「이미 전라·충청 2도를 공략했으면 급히 군사를 철수하되 10월 2일에 배에 올라 20일 이내에 일본에 도착해야 하니 어기는 자는 참수한다. 」하므로, 각 병영의 장수들이 그 기한을 어기게 될까 두려워서 당황하여 물러가고 있다…….’ 하였습니다. 제독이 말하기를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네 말이 매우 황당하구나.’ 하니, 왜적이 ‘소인이 이미 이러한 처지에 이르러서 생명이 노야(老爺)에게 달렸는데 어찌 감히 황당한 말을 하겠는가. 만약 내 말이 옳지 않다면 중벌도 달게 받겠다…….’ 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원문
○政院以提督接伴使張雲翼言, 啓曰: "卽刻寗國胤生擒倭子一名, 差人押到, 提督令通事朴大根譯問, 則倭答曰: ‘原係倭將毛利管下奴丁, 回到淸州, 得病落後, 九月二十四日被擒, 而當初關白分付諸將: 「盡殺朝鮮男女, 鷄犬不遺, 然後再聽分付云。」 故攻陷南原時, 倭子戰死者百餘人, 將欲進犯王京, 到稷山地, 爲天兵所殺死五百餘名, 千把總死者、二十餘人。 以是淸正, 令負紅旗人, 傳令, 使之撤還, 關白亦傳令曰: 「若已搶全羅、忠淸二道, 急急撤兵, 十月初二日上船, 二十日內, 當到日本, 而違則當斬云。」 故各營將領, 恐其違期, 蒼黃退回云云。’ 提督曰: ‘豈有理? 爾言甚謊。’ 倭言曰: ‘小的旣到此地, 命在老爺, 豈敢謊說? 若我言不是, 則甘伏重刑云云。’ 敢啓。" 傳曰: "知道。"
원본
선조 30년 (1597) 10월 2일
- 적에게 사로잡힌 남충원과 신택의 가족을 구출해 보도록 지시하다
- 심우승을 사면해 달라는 경리 양호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다
- 제독 마귀의 자문에 회답할 내용을 논하다
- 사로잡힌 왜적 한 사람이 실토한 적의 내부 사정을 접반사 장운익이 보고하다
- 경리 접반사 이덕형이 군량 조달에 관하여 경리에게 품첩을 보내다
- 함경도 관찰사 송언신이 지진의 발생을 보고하다
- 호조가 강원도와 경상도의 금년분 조세를 거두어 들이는 방법을 건의하다
- 전공을 많이 세운 충청 병사 이시언에게 가자하다
- 중국군 장수들이 사로잡은 왜적을 활쏘기의 표적으로 삼아 죽이다
- 신잡에게 성천에 그대로 있으라고 지시하다
- 이헌국·정광적·우준민·권희·박승종·윤돈·최천건·이철·이영·경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병조가 군마를 먹일 양초의 조달 방법을 건의하다
- 충청 병사 이시언이 적과의 접전 상황과 전과를 장계로 보고하다
- 전라 감사 황신이 조방장 김언공의 전과를 장계로 보고하다
- 도원수 권율이 용인 현령이 올린 전과를 장계로 보고하다
- 양성 현감이 왜적 1명을 사로잡았음을 영의정 유성룡이 장계로 보고하다
- 충청 병사 이신언이 비안 현감 유옥의 전과를 보고하다
- 총독 형개에게 보낸 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