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31권, 명종 20년 8월 11일 을해 2/4 기사 / 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윤원형의 죄를 청하는 예문관의 상차
국역
예문관이 상차하기를,
"윤원형은 본래 간사하고 음흉스럽고 잔인한 사람입니다. 임금의 은총을 믿고 권좌에 앉아서 날이 갈수록 더욱 나쁜 짓을 하여 수십 년 이래로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농담도 하지 못했는데 하늘이 종사(宗社)를 도와서 공론이 일어났으니, 이는 참으로 국가가 거의 위태롭게 되었다가 다시 안정되고 막혔던 운수가 다시 터지는 때입니다. 중외의 신민이 모두 고개를 쳐들고 발돋움하여 바라보면서 전하의 유음(兪音)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공론을 굳게 거절하시고 즉시 흔쾌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는 전하의 심정은 ‘윤원형은 국가의 훈신이고, 또 문정 왕후(文定王后)의 친동생이다. 내가 이처럼 지극하게 대접하는데 감히 나를 배반하고 제멋대로 방자한 짓을 하겠는가.’ 하시는 데 불과합니다. 아, 윤원형이 조정을 말못하게 억제하고 조금도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왕망(王莽)은 한 나라의 주공(周公)이 되었을 것이고, 사마소(司馬昭)와 한탁주(韓侂胄)도 위(魏)나라와 송(宋)나라를 등질 이치가 없었는데 어찌 찬탈하는 근심이 있었겠습니까.
윤원형의 죄악이 이미 참람되지 않습니까. 부부는 인륜이 시작되는 바인데 처를 내쫓고 첩으로 적실(嫡室)을 삼아 만고 불변의 강상(綱常)을 무너뜨리고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첩에게서 태어난 서녀로 왕손과 혼인하려고 의논하기까지 했으니 명분을 범한 죄가 얼마나 큽니까. 그 밖에도 참람하고 탐욕스러운 행적은 머리카락을 뽑아가며 세더라도 다 셀 수가 없습니다. 그의 죄악이 이와 같은데도 아직도 원훈으로 대우하시고 국법을 적용하지 않으시니 어떻게 인심이 흩어지지 않으며 어떻게 국운(國運)이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먼 곳에 귀양보내는 것으로는 그가 지은 죄에 적당한 벌이 될 수 없으나 대간이 이렇게 죄주기를 청한 것은 어찌 사직을 보위한 공훈이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나라 고사에 이숙번(李叔蕃)은 태종(太宗)을 도와 사직을 안정시켰으니 실로 일대의 원훈이지만, 후일 공을 믿고 방자한 죄를 짓게 되자 외지(外地)로 내어쫓고 끝까지 수서(收敍)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윤원형의 공이 어찌 이숙번보다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윤원형의 죄악은 이숙번보다 더한 점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윤원형의 죄악은 이미 분명히 드러나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어떻게 공신이라고만 핑계대고 법을 굽혀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아, 국가의 안위(安危)는 공론이 통하느냐 막히느냐에 달려 있고, 임금의 병통은 간언을 거절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한다면 결국은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들이 보니 요즈음 사책(史冊)에 기록된 것 중에는 간언을 거절한 일이 많이 있으니, 후세에서 전하를 두고 어떠한 임금이었다고 말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변변치 못한 신들의 마음에 차마 가만히 입다물고 전하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니 전하는 속히 공론을 따르시어 대중이 분노하는 마음을 풀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가부(可否)가 서로 통해야 한다. 만약 간언을 거절했다는 이름을 듣지 않으려고 무조건 승낙만 하면 국사가 역시 잘못되는 것이다. 전 영상에 대한 일은 내가 요즈음 삼사(三司)에 답했을 때 이미 모두 말하였다. 결코 귀양보낼 수 없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원문
○藝文館上箚曰:
"伏以尹元衡, 本一奸邪陰忍人也。 怙寵席權, 稔惡日甚。 數十年來, 一國之人, 重足側目, 不敢戲談, 而天佑宗祊, 公論斯發。 此實國家, 幾危而再安, 已否而復泰之秋也。 中外臣民, 莫不翹首跂足, 咸仰殿下一兪之音, 而猶且牢拒公論, 不卽快斷者, 殿下之心, 不過曰: ‘元衡乃國家之勳臣。 且文定之母弟也。 予所以待之者如此其至, 何敢負予, 而專擅自恣哉?’ 噫! 此元衡之所以箝制朝廷, 而無復忌憚者也。 不然, 王莽爲漢室 周公、司馬昭、韓伒冑, 亦無負於魏 宋, 而何嘗有僭竊之患哉? 元衡之惡, 不旣僭乎? 夫婦人倫之始也, 而放黜其妻, 以妾爲嫡, 使萬古之綱常, 淪毁而不顧。 至以孽産之女, 議婚於王孫, 則其干名犯分之罪, 爲如何哉? 其他僭〔偪〕 貪毒之狀, 雖擢髮而數之, 有不可悉。 如此而尙且待以元勳, 不擧邦典, 則人心安得以不散, 國祚安得以不殆哉? 三危之竄, 不足以當其惡, 而臺諫之只以此請罪者, 亦豈非有衛社之勳歟? 臣等伏聞國朝故事, 李叔蕃佐太宗定社稷, 實一代之元功, 而他日有恃功驕恣之罪, 則黜之於外, 終不收敍。 今元衡之功, 豈出於叔蕃之右, 而元衡之惡, 則叔蕃未嘗有也。 以此觀之, 元衡之罪惡, 旣已昭著無疑, 則豈可(徙)〔徒〕 諉諸功臣, 而曲爲之寬貸乎? 嗚呼! 國家之安危, 係於公論之通塞, 而人君之患, 莫大於拒諫, 拒諫自用之禍, 終至於亂亡。 臣等伏覩, 近者筆之於史者, 尙多拒諫之事。 未知後世, 謂殿下爲何如主也? 區區臣等之心, 不忍容默, 以負殿下。 伏願, 殿下亟從公論, 以洩輿憤。
答曰: "君臣之間, 所當可否相通。 若欲免拒諫之名, 徒曰唯唯而已, 則國事亦非矣。 前領相事, 予近於三司之答, 已盡言之。 決不可竄謫, 故不允。"
명종 20년 (1565) 8월 11일
명종실록31권, 명종 20년 8월 11일 을해 2/4 기사 / 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윤원형의 죄를 청하는 예문관의 상차
국역
예문관이 상차하기를,
"윤원형은 본래 간사하고 음흉스럽고 잔인한 사람입니다. 임금의 은총을 믿고 권좌에 앉아서 날이 갈수록 더욱 나쁜 짓을 하여 수십 년 이래로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농담도 하지 못했는데 하늘이 종사(宗社)를 도와서 공론이 일어났으니, 이는 참으로 국가가 거의 위태롭게 되었다가 다시 안정되고 막혔던 운수가 다시 터지는 때입니다. 중외의 신민이 모두 고개를 쳐들고 발돋움하여 바라보면서 전하의 유음(兪音)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공론을 굳게 거절하시고 즉시 흔쾌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는 전하의 심정은 ‘윤원형은 국가의 훈신이고, 또 문정 왕후(文定王后)의 친동생이다. 내가 이처럼 지극하게 대접하는데 감히 나를 배반하고 제멋대로 방자한 짓을 하겠는가.’ 하시는 데 불과합니다. 아, 윤원형이 조정을 말못하게 억제하고 조금도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왕망(王莽)은 한 나라의 주공(周公)이 되었을 것이고, 사마소(司馬昭)와 한탁주(韓侂胄)도 위(魏)나라와 송(宋)나라를 등질 이치가 없었는데 어찌 찬탈하는 근심이 있었겠습니까.
윤원형의 죄악이 이미 참람되지 않습니까. 부부는 인륜이 시작되는 바인데 처를 내쫓고 첩으로 적실(嫡室)을 삼아 만고 불변의 강상(綱常)을 무너뜨리고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첩에게서 태어난 서녀로 왕손과 혼인하려고 의논하기까지 했으니 명분을 범한 죄가 얼마나 큽니까. 그 밖에도 참람하고 탐욕스러운 행적은 머리카락을 뽑아가며 세더라도 다 셀 수가 없습니다. 그의 죄악이 이와 같은데도 아직도 원훈으로 대우하시고 국법을 적용하지 않으시니 어떻게 인심이 흩어지지 않으며 어떻게 국운(國運)이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먼 곳에 귀양보내는 것으로는 그가 지은 죄에 적당한 벌이 될 수 없으나 대간이 이렇게 죄주기를 청한 것은 어찌 사직을 보위한 공훈이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나라 고사에 이숙번(李叔蕃)은 태종(太宗)을 도와 사직을 안정시켰으니 실로 일대의 원훈이지만, 후일 공을 믿고 방자한 죄를 짓게 되자 외지(外地)로 내어쫓고 끝까지 수서(收敍)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윤원형의 공이 어찌 이숙번보다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윤원형의 죄악은 이숙번보다 더한 점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윤원형의 죄악은 이미 분명히 드러나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어떻게 공신이라고만 핑계대고 법을 굽혀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아, 국가의 안위(安危)는 공론이 통하느냐 막히느냐에 달려 있고, 임금의 병통은 간언을 거절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한다면 결국은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들이 보니 요즈음 사책(史冊)에 기록된 것 중에는 간언을 거절한 일이 많이 있으니, 후세에서 전하를 두고 어떠한 임금이었다고 말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변변치 못한 신들의 마음에 차마 가만히 입다물고 전하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니 전하는 속히 공론을 따르시어 대중이 분노하는 마음을 풀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가부(可否)가 서로 통해야 한다. 만약 간언을 거절했다는 이름을 듣지 않으려고 무조건 승낙만 하면 국사가 역시 잘못되는 것이다. 전 영상에 대한 일은 내가 요즈음 삼사(三司)에 답했을 때 이미 모두 말하였다. 결코 귀양보낼 수 없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원문
○藝文館上箚曰:
"伏以尹元衡, 本一奸邪陰忍人也。 怙寵席權, 稔惡日甚。 數十年來, 一國之人, 重足側目, 不敢戲談, 而天佑宗祊, 公論斯發。 此實國家, 幾危而再安, 已否而復泰之秋也。 中外臣民, 莫不翹首跂足, 咸仰殿下一兪之音, 而猶且牢拒公論, 不卽快斷者, 殿下之心, 不過曰: ‘元衡乃國家之勳臣。 且文定之母弟也。 予所以待之者如此其至, 何敢負予, 而專擅自恣哉?’ 噫! 此元衡之所以箝制朝廷, 而無復忌憚者也。 不然, 王莽爲漢室 周公、司馬昭、韓伒冑, 亦無負於魏 宋, 而何嘗有僭竊之患哉? 元衡之惡, 不旣僭乎? 夫婦人倫之始也, 而放黜其妻, 以妾爲嫡, 使萬古之綱常, 淪毁而不顧。 至以孽産之女, 議婚於王孫, 則其干名犯分之罪, 爲如何哉? 其他僭〔偪〕 貪毒之狀, 雖擢髮而數之, 有不可悉。 如此而尙且待以元勳, 不擧邦典, 則人心安得以不散, 國祚安得以不殆哉? 三危之竄, 不足以當其惡, 而臺諫之只以此請罪者, 亦豈非有衛社之勳歟? 臣等伏聞國朝故事, 李叔蕃佐太宗定社稷, 實一代之元功, 而他日有恃功驕恣之罪, 則黜之於外, 終不收敍。 今元衡之功, 豈出於叔蕃之右, 而元衡之惡, 則叔蕃未嘗有也。 以此觀之, 元衡之罪惡, 旣已昭著無疑, 則豈可(徙)〔徒〕 諉諸功臣, 而曲爲之寬貸乎? 嗚呼! 國家之安危, 係於公論之通塞, 而人君之患, 莫大於拒諫, 拒諫自用之禍, 終至於亂亡。 臣等伏覩, 近者筆之於史者, 尙多拒諫之事。 未知後世, 謂殿下爲何如主也? 區區臣等之心, 不忍容默, 以負殿下。 伏願, 殿下亟從公論, 以洩輿憤。
答曰: "君臣之間, 所當可否相通。 若欲免拒諫之名, 徒曰唯唯而已, 則國事亦非矣。 前領相事, 予近於三司之答, 已盡言之。 決不可竄謫, 故不允。"
원본
명종 20년 (1565) 8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