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영의정 홍언필이 졸(卒)하였다.【언필은 인품이 겸손하고 청렴하여 일상 생활을 매우 검소하게 하였다. 부자(父子)가 함께 숭반(崇班)에 있는 것에 대하여 항상 성하면 쇠하고 차면 기운다는 경계(警戒)를 의식하였다. 그의 아들 홍섬(洪暹)도 의관을 검소하게 하였고 감히 초헌(軺軒)을 타지 않았으니 모두가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지난 정유년에 권간(權奸)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어 남양(南陽)에 가 있었을 때는 날마다 더욱 조심하고 자숙(自肅)하여 두문 불출(杜門不出)하였다. 그러나 정승으로 세 조정[三朝]⁰¹³⁾ 을 섬기는 동안 한 번의 건의(建議)도 없었고 논의할 적에는 ‘상의 전교가 지당합니다.’라는 말이 아니면 다른 정승의 말을 좇을 뿐, 두려워 하면서 자리 보존에만 급급하였으니 ‘어디다 쓰겠는가.’ 하는 비난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언필(彦弼)은 옛사람의 글을 많이 읽고 천성 또한 청근(淸謹)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항상 화(禍)를 두려워하여 바른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으니, 나라가 혼란한 때에 동량(棟樑) 구실을 할 재목이 아님을 알겠다.】

•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9책 623면

• [註 013] 세 조정[三朝] : 중종·인종·명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