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84권, 성종 24년 11월 6일 정유 6/6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이극배·윤필상·한치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이극배(李克培)를 대광 보국 숭록 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으로, 윤필상(尹弼商)을 대광 보국 숭록 대부 파평 부원군(坡平府院君)으로, 한치형(韓致亨)을 숭정 대부(崇政大夫) 좌찬성(左贊成)으로, 이철견(李鐵堅)을 숭정 대부 월성군(月城君)으로, 정괄(鄭佸)을 숭정 대부 행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신주(辛鑄)를 가선 대부(嘉善大夫)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김극검(金克儉)을 가선 대부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으로, 권경우(權景祐)를 통정 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로, 강귀손(姜龜孫)을 통정 대부 승정원 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로, 정석견(鄭錫堅)을 통정 대부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윤숙(尹俶)을 절충 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삼았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괄은 언젠가 대공 지평(大公至平)한 재상(宰相)이 될 것이다.’고 하였다. 한치형은 외척(外戚)으로 이름이 알려졌는데, 천성(天性)이 순무(純茂)1668) 한데다, 마음가짐이 조용하고 엄격하고 의젓하여, 여러 번 기무(機務)를 맡았으나 사사로움으로 공정(公正)함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김극검은 청렴하고 삼가서 살아가는 데 자주 양식이 떨어졌으나 편안하게 여겼다." 하였다.
- [註 1668] 순무(純茂) : 전일(專一)하고 아름다움.
원문
성종실록284권, 성종 24년 11월 6일 정유 6/6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이극배·윤필상·한치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이극배(李克培)를 대광 보국 숭록 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으로, 윤필상(尹弼商)을 대광 보국 숭록 대부 파평 부원군(坡平府院君)으로, 한치형(韓致亨)을 숭정 대부(崇政大夫) 좌찬성(左贊成)으로, 이철견(李鐵堅)을 숭정 대부 월성군(月城君)으로, 정괄(鄭佸)을 숭정 대부 행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신주(辛鑄)를 가선 대부(嘉善大夫)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김극검(金克儉)을 가선 대부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으로, 권경우(權景祐)를 통정 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로, 강귀손(姜龜孫)을 통정 대부 승정원 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로, 정석견(鄭錫堅)을 통정 대부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윤숙(尹俶)을 절충 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삼았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괄은 언젠가 대공 지평(大公至平)한 재상(宰相)이 될 것이다.’고 하였다. 한치형은 외척(外戚)으로 이름이 알려졌는데, 천성(天性)이 순무(純茂)1668) 한데다, 마음가짐이 조용하고 엄격하고 의젓하여, 여러 번 기무(機務)를 맡았으나 사사로움으로 공정(公正)함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김극검은 청렴하고 삼가서 살아가는 데 자주 양식이 떨어졌으나 편안하게 여겼다." 하였다.
- [註 1668] 순무(純茂) : 전일(專一)하고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