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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3권, 문종 즉위년 9월 22일 계해 2/4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사헌부 장령 신숙주 등이 언로를 넓힐 것과 환관의 폐단에 대한 상서를 올리다

국역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신숙주(申叔舟) 등이 상서(上書)하였는데, 내용은 이러하였다.

"신(臣) 등은 일찍이 직언(直言)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일로써 성총(聖聰)을 번거로이 하고 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린 지가 한 달이 지나도록 채택(採擇)을 얻지 못하였는데, 또 진달(陳達)이 있으니 실로 번독(煩瀆)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하(殿下)께서 새로 정사를 보살펴 다스림을 구하는 이때에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을 수가 없어서 삼가 한두 가지의 좁은 소견으로 조목별로 나누어 아뢰니, 엎드려 성상의 재가(裁可)를 바랍니다.

1. 언로(言路)가 천하에 있는 것은 혈기(血氣)가 사람의 몸에 있는 것과 같으니, 혈기가 한 번 쉬고 행하지 않는다면 온 몸에 병이 발생하여 마음[天君]이 능히 편안하지 못하고, 언로(言路)가 하루라도 통하지 않는다면 사방(四方)에 병이 발생하여 군주가 능히 편안하지 못하게 되니, 그런 까닭으로 옛날의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대개 또한 방법이 많았겠지마는 반드시 직언(直言)과 극간(極諫)을 구하는 것을 가지고 선무(先務)로 삼았던 것입니다. 비록 귀에 거슬리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이 있더라도 또한 반드시 표면에 나타내지 않고 꾹 참고서 즐거이 받아들이고, 또 칭찬 장려하면서 직언(直言)의 기세(氣勢)를 격려 양성하여 사방(四方)의 말[言]을 오게 하는 것은 자손(子孫) 천만세(天萬世)의 스스로 편안한 도리로 삼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들어줄 수 없는 일에 있어서도 그 쓸모를 구하게 되고, 용서할 수 없는 죄에 있어서도 그 상줄 것을 구하게 되고, 노할 만한데도 이를 기뻐 사랑하고, 물리칠 만한데도 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이니, 어찌 하는 일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겠습니까?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일찍이 조회(朝會)에서 물러나와 위징(魏徵)이 조정에서 욕되게 한 것을 노하여 죽이려고 하니, 문덕 황후(文德皇后)880) 가 하례(賀禮)하기를 ‘군주가 명철하고 신하가 정직하다.’ 하니, 태종(太宗)이 이에 기뻐했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그가 노했을 때는 죽여도 오히려 죄가 남았을 터인데, 그가 기뻐할 때는 아름다운 교태(嬌態)로 생각하였으니, 한 마음이 옮겨지는 사이에 충신(忠臣)·영신(佞臣)과 사인(邪人)·정인(正人)을 진용(進用)·퇴출(退黜)하는 기틀이 되고 치란(治亂)·안위(安危)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세종(世宗)께서는 재위(在位) 30여 년에 직언(直言)을 구하심이 마치 목마른 것같이 하여 선비의 풍습(風習)을 격려하여 자손(子孫)에게 끼친 계획이 매우 원대(遠大)했던 것입니다. 근일에 간신(諫臣) 심효원(沈孝源)이 불우(佛宇)881) 를 건조(建造)함을 간(諫)하면서 그 글까지 불태우기를 청하였으며, 시신(侍臣) 박팽년(朴彭年)은 간승(奸僧) 신미(信眉)를 논죄(論罪)하면서 《춘추(春秋)》882) 를 가지고 규정(規定)하여 시부(弑父)의 적(賊)으로 지칭(指稱)하였으니, 그 논의(論議)의 정직한 것이 충분(忠憤)의 격앙(激昻)에서 나온 것이므로 간인(奸人)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하고 아첨부리는 얼굴을 움츠러지게 한 것이니, 이것이 모두 세종(世宗)께서 수십 년 동안에 〈선비를〉 양육(養育)하고 작성(作成)시켰던 효과이었습니다. 근래에는 의심하고 아첨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게 되어 다투어 가면서 직언(直言)하는 일을 가지고 피하게 되는데, 두서너 사람만이 유독 이같이 하게 되어 그 충분(忠憤)의 격앙(激昻)함이 위로는 임금의 위엄까지 움직이게 하였으니 나라를 위하여 충성스런 계획을 세우는 사람의 마땅히 서로 경하(慶賀)할 일입니다. 조정(朝廷)에 정직한 신하가 있으면 적국(敵國)이 이를 두려워하고, 선비가 남과 다른 의논(議論)이 없으면 식자(識者)가 이를 근심하게 되는데, 지난 번에 두서너 사람이 아니었다면 다만 전하의 처음 정사의 대체(大體)에 저버림이 있을 뿐 아니라 장차 선왕(先王)의 수십 년 동안 작성(作成)한 공을 나타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일을 가지고 논한다면 두서너 사람은 말은 비록 적중(適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은 또한 작지 않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심효원(沈孝源)을 처음 내칠 적에, 들은 사람들은 얼굴빛이 변하였고 모두가 입을 다물려고 했다가 조금 후에 발탁 임용하는 일이 임금의 마음속에서 나오게 되니 사람들이 모두 서로 하례(賀禮)하였습니다. 대저 심효원(沈孝源) 한 사람의 진용(進用)과 퇴출(退黜)이 사람들에게 무슨 관계가 있기에 사람들의 기뻐함과 두려워함이 이와 같았겠습니까? 진실로 직언(直言)하는 사람을 임용하고 버리는 일을 가지고 군주(君主)의 좋아함과 싫어함을 살필 수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장차 이를 점쳐서 또 스스로 언행(言行)과 묵용(默容)883) 의 계책을 삼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 한 번 기회에 크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 임금의 감찰력(鑑察力)이 매우 밝고 기미(幾微)를 환하게 비쳐 능히 버렸다가 곧 수용(收用)하게 하여 두려워하던 사람은 기뻐하게 하고, 근심하던 사람은 즐거워하도록 하며, 게으른 사람은 흥기(興起)하도록 하여 고무(鼓舞)하고 견문(見聞)하는 것이 새로이 한때의 이목을 짓게 하였으니, 그제서야 성인(聖人)의 하는 일이 보통의 절대적인 위에서 나온 것이 이와 같음을 알겠습니다.

다만 박팽년(朴彭年)을 물리친 것은 오래되도록 용서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앞에서 기뻐하던 사람은 다시 두려워하게 되고 즐거워하던 사람은 다시 근심하게 되었으며, 흥기(興起)한 사람은 다시 게으르게 되었으니, 신(臣) 등은 언로(言路)가 이로부터 다시 막혀서 통하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전일 임금의 선유(宣諭)에 말씀하시기를, ‘박팽년을 처벌하는 것이 언로(言路)에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이 같은 경박(輕薄)한 사람은 내가 취(取)하지 않겠다.’ 하시었는데, 신(臣) 등이 물러가서 되풀이 하며 생각해 보아도 지금까지 의혹(疑惑)이 풀리지 않습니다. 대저 박팽년과 같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국사(國事)를 말하다가 빈척(擯斥)되었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해이(解弛)해져서 배반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전하께서는 비록 언로(言路)를 널리 열어 놓으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박팽년을 가지고 경계를 삼을 것이니 누가 즐거이 광망(狂妄)하고 어두운 말을 경솔히 발언(發言)하였다가 두 번이나 뇌정(雷霆)같은 위엄 아래에 시험하겠습니까? 또 전하께서 이미 박팽년을 가지고 경박(輕薄)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반드시 신(臣) 등의 함묵(含默)한 것을 가지고 후중(厚重)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신 등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군주가 신하를 취(取)할 적에는 마땅히 박팽년과 같은 경박한 사람을 구해야 할 것이며, 신 등과 같은 후중(厚重)한 사람은 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개 박팽년이 말한 것은 박팽년의 사적(私的)인 말은 아니고 곧 나라 사람들의 공적(公的)인 말이니,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데도 전하께서 홀로 듣지 아니하신 까닭으로 분발하여 자기 몸은 돌보지 않고 글[章]을 올려 진술한 것이니, 위로는 군부(君父)를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 등과 같은 사람은 이미 언직(言職)에 있으면서 도리어 고개를 숙이고 옆에서 방관(旁觀)만 하고는, 자기 몸만 보전할 계획을 품고 있으면서 감히 남김없이 말하지 못하여 속으로는 실상 나겁(懶㤼)하면서도 겉으로는 후중(厚重)한 듯하오니, 견식이 있는 선비로서는 침을 뱉고 욕을 하면서 돌아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참으로 저 사람을 버리고 이 사람을 취(取)하겠습니까? 박팽년은 아까울 것이 없지마는, 아깝게 여길 것은 국가의 대체(大體)입니다. 임금의 선유(宣諭)에 또 말하시기를, ‘박팽년의 말이 선왕(先王)에 미치니 내가 심히 이를 경박하다고 여기는 것이다.’고 하셨는데, 박팽년의 말은 신미(信眉)가 선왕(先王)을 속였다고 한 데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대저 요제(堯帝)의 명철(明哲)로써도 오히려 사흉(四凶)884) 에게 속임을 당하였는데도 순제(舜帝)가 이들을 쫓아내었으니, 당초부터 요제(堯帝)의 명철(明哲)함에는 손상(損傷)이 없었는데, 이것이 선왕(先王)의 성덕(盛德)에 무슨 손상이 되겠습니까? 만약 선조(先朝)에 말이 미쳤다 하여 모두 경박(輕薄)한 악행(惡行)으로 생각한다면 세대(世代)를 계승한 초기에는 장차 말을 할 만한 일이 없게 될 것이니, 예로부터 충신(忠臣)·직사(直士)가 거의 전인(全人)885) 이 없을 것입니다.

대저 말에 기휘(忌諱)함이 많은 것은 태평 시대의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세종조(世宗朝)에 있어서 흥천탑(興天塔)을 새로 짓고 경찬회(慶贊會)886) 를 베풀 적에 당시에 간(諫)하던 사람이 매우 많았지마는 조금도 기휘(忌諱)한 것은 없었습니다. 세종(世宗)께서 유시(諭示)를 내려 조종(祖宗)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였는데, 여러 사람들은 말하기를, ‘만약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어찌 3년까지 기다리겠습니까? 하물며 이 탑은 부셔 버려도 좋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날에 세종(世宗)께서 한두 사람의 대신(大臣)에게 이르기를, ‘흥천탑(興天塔)은 태조(太祖)께서 세운 바인데, 내가 만약 공장(工匠)을 주고 경(卿) 등으로 하여금 이를 부수게 한다면 경(卿) 등은 차마 이를 부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탑은 진실로 마땅히 부셔야 하므로 만약 명령하여 이를 부수게 한다면 신(臣) 등이 어찌 능히 이를 부수지 못하겠습니까?’ 하였으나, 세종(世宗)께서는 모두 우대하여 들어주시고 처벌하지는 아니했으니 어찌 그 당시에 말하던 사람들이 모두 조종(祖宗)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세종께서 조종을 높이는 정성이 지극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까? 조종(祖宗)에게 말이 미쳐도 세종께서는 이를 용서하셨는데, 전하(殿下)께서만 홀로 세종(世宗)에게 말이 미친 이유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을 죄 주려고 하시니, 어찌 세종의 효성으로써 모자람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아마 전하께서 세종을 추존(推尊)하는 본의(本意)는 아닐 것입니다.

대저 조종(祖宗)을 존경(尊敬)함이 세종의 효성과 같다면 이것이 지극한 편입니다. 성상(聖上)의 선유(宣諭)에 또 이르시기를, ‘함께 말을 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도 유독 박팽년만 죄주는 것은, 그가 측근에서 뫼신 지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또 왕실(王室)과 연인(連姻)하였으니,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같이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임금을 오랫동안 모시고 왕실(王室)과 연인(連姻)한 이외에는 다 소원(疎遠)하게 대한 것이요, 족히 책망할 것이 없는데, 어찌 군신(群臣)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것을 보였다고 하겠습니까? 대저 신하는 군주에게 한 번 몸을 맡겨 벼슬하게 되면 진실로 친근함과 소원함이 다를 바가 없을 것이며, 성상께서 대우하심도 또한 마땅히 그 사이에 후박(厚薄)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근년 이래로 대신(大臣)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라와 더불어 휴척(休戚)을 같이하고 있으니 의리상 군상(君上)의 득실(得失)을 경솔히 논해서 대체(大體)를 손상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 하고, 근시(近侍)하는 신하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대우가 친밀(親密)하니 번거롭게 일을 논하여 스스로 규각(圭角)887) 이 될 수는 없다고 하여, 이로써 풍습(風習)을 이루어 비록 마음속으로는 옳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즐거이 이를 말하지 않고 있는데, 전하께서 또 따라 이에 차별을 두시는 일이 옳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전하께서 새로 정사를 하심에 언로(言路)가 통하고 막히는 기틀이니 성상(聖上)께서 생각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왕위(王位)에 오르신 지가 지금에 이르러 무릇 8개월이나 되었는데, 어찌 말할 만한 일이 없어서 한 사람이라도 정성과 속마음을 털어놓아 성상(聖上)의 정치를 도울 사람이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생각이 이에 이르신다면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을 아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같이 되어 그치지 않는다면 장차는 인심(人心)이 해이(解弛)해지고 상하(上下)가 서로 막혀져서 치란(治亂)·안위(安危)도 또한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이를 생각하시고 다시 이를 생각하시어 자손(子孫) 만세(萬世)의 계책을 삼으소서.

1. 신(臣) 등이 가만히 살펴보건대,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이 논하기를, ‘환자(宦者)가 국가의 근심이 된 지는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궁금(宮禁)에 드나드니, 군주(君主)는 어릴 때부터 장성할 때까지 그들과 더불어 가까와져서 삼공(三公)·육경(六卿)과 같이 진현(進見)하는 데 일정한 때가 있어서 경계하고 꺼림이 있는 것과 같지 않고 간혹 타고난 성품이 영리하고 말을 잘하며, 임금의 안색을 잘 엿보아 그 뜻을 받들어 맞추어서 명령을 받으면 어기고 거스릴 걱정이 없고 일을 시키면 마음에 맞도록 효과가 있게 되니, 가까운 사람은 날로 친하게 되고 먼 사람은 날로 멀어지게 된다. 감언(甘言)·비사(卑辭)의 청탁은 때때로 따르게 되고 침윤(浸潤)888) ·부수(膚受)889) 의 참소는 때로 듣게 되니 마치 순주(醇酒)890) 를 마시면 그 맛을 즐기면서 그 취하는 것을 잊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고금(古今)의 지론(至論)이요 군주의 마땅히 체념(體念)할 바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세종 대왕(世宗大王)께서는 계묘년891) 여름에 전지(傳旨)하시기를, ‘환관(宦官)의 직책은 다만 등촉(燈燭)을 밝히고 소제(掃除)를 하는 데 있으니 왕명(王命)을 출납(出納)하는 임무는 맡겨서는 안 된다. 그런 까닭으로 내가 날마다 정사를 보살필 때 유체(留滯)됨이 없게 했는데, 그러나 중앙과 지방의 시기에 맞추게 할 일이나 세쇄(細碎)한 일은 대언(代言)이 일일이 친히 아뢰기가 어려우므로, 부득이 이 무리들로 하여금 왕명(王命)을 출납(出納)하도록 했다. 근자에 김수(金壽)는 정사에 있어 연줄을 타고 거짓을 전달하게 되니, 지금부터 일은 크고 작은 것을 논할 것 없이 대언(代言)이 모두 조계(朝啓)에서 친히 품달(稟達)하고, 다만 마패(馬牌)의 출입(出入)이나 조신(朝臣)의 숙배(肅拜)에만 환자(宦者)로 하여금 전명(傳命)하도록 허락한다.’고 했으니, 그 세인(世人)의 심정(心情)을 밝게 알아서 환난(患難)을 염려함이 심원(深遠)하여 미연(未然)에 제지(制止)시킨 것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년(末年)에 이르러서는 임금의 옥체(玉體)가 편안하지 못하여 외인(外人)을 친히 접견(接見)할 수가 없으므로 부득불 환자(宦者)로서 출납(出納)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러나 대우하기를 매우 엄하게 하여 조금도 틈을 주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으니 진실로 성자 신손(聖子神孫)892) 으로 만세(萬世)의 귀감(龜鑑)이 될 만합니다. 지금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큰 기업(其業)을 계승하여 민서(民庶)를 새로 통치하게 되었으니 이때가 바로 만기(萬機)를 친히 결정하며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을 쓸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조계(朝啓)의 예문(例聞)하는 일 이외에는 대소(大小)의 출납(出納)을 환관(宦官)에게 위임하여 문호(門戶)의 역(役)으로써 후설(喉舌)893) 의 임무로 삼아서 관홍 대도(寬弘大度)894) 로써 대우해 주시니 그 세력이 점차 떨쳐지므로 자못 일을 맡은 것과도 같아서 무릇 말을 올리려고 하는 사람은 저들을 경유하여 품달(稟達)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니, 누가 즐거이 바른 말로 숨기지 않고 그 폐단을 논하다가 군주(君主)의 측근 사람들에게 원망이나 사려고 하겠습니까? 대저 환자(宦者)는 상시로 임금의 측근에서 모시고 있으니, 만일 미운 사람이 있으면 부사 유설(浮辭遊說)895) 로 넌지시 위에 아뢰어 무심(無心)한 데서 나온 것처럼 하면서 몰래 중상(中傷)시키니 군주가 또한 어찌 그 외인(外人)이 이같이 않을 것을 기필(期必)하고 이들을 믿지 않겠습니까? 비록 무함(誣陷)을 당한 사람이 있더라도 어디로부터 스스로 변명하겠습니까. 이것이 환관(宦官)을 두려워함이 권귀(權貴)보다 심한 것입니다.

또 시비(是非)의 분별을 논하고 득실(得失)의 기틀을 분변하는 것은 언사(言辭)의 밖에 많이 있게 되는데, 지금 대성(臺省)896) 의 진언(進言)을 승지(承旨)가 나와서 그 말을 듣고, 들어가서 환관(宦官)에게 알리면 환관은 그제서야 위에 아뢰게 되니 세 번이나 옮겨 전하게 되면 어찌 능히 그 말 밖의 은미(隱微)한 뜻을 다 품달(稟達)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폐단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상하(上下)가 장차 막히게 될 것이니, 어찌 이것이 작은 일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위로는 선왕(先王)의 환난(患難)을 염려하시는 심원(深遠)한 계획을 체득(體得)하시고, 아래로는 사마광(司馬光)의 가까운 사람은 날로 친하고 먼 사람은 날로 소격(疎隔)해진다는 의논을 생각하시어 계묘년의 전지(傳旨)에 한결같이 따라서 날마다 조계(朝啓)를 보고는 무릇 대성(臺省)과 대소 신료(大小臣僚)로서 일정한 때가 없이 진언(進言)하는 사람에게 혹은 접견(接見)을 허가하시기도 하고, 승지(承旨)로 하여금 친히 아뢰도록 하여 이목(耳目)을 넓히고 신정(新政)을 바로잡아서 선왕(先王)의 부탁(付托)의 중대함을 계승하여 만세(萬世)의 한정이 없는 기업(基業)을 키우고 넓히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박팽년(朴彭年)의 일은 다만 이 소(疏)뿐만 아니라 대신(大臣)들도 또한 말하고 있으니 여러 사람의 말은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마땅히 고신(告身)을 돌려주고 서용(敍用)해야 하겠다. 환수(宦竪)897) 가 왕명(王命)을 전달하는 일은 내가 정사를 보살피거나 경연(經筵)에서 매양 대신(大臣)과 대간(臺諫)과 더불어 시무(時務)를 헤아려 결정하고 있으니 접견(接見)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경연(經筵)을 열 때에 만약 공사(公事)가 있으면 승지(承旨)가 친히 들어와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임금께서 즉위(卽位)하신 초기에 대간(臺諫)을 선임(選任)할 적에 어효첨(魚孝瞻)·신숙주(申叔舟)·하위지(河緯地)를 발탁하여 대관(臺官)으로 삼으니 사림(士林)들이 모두 기대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효첨이 무릇 신숙주와 하위지의 건백(建白)898) 한 말은 모두 억제하고 아뢰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이보다 먼저 신숙주 등이 박팽년의 일을 아뢰려고 하여 이미 소(疏)를 초(草)잡아 두었으나 어효첨이 이를 말려서 아뢰지 못했던 것인데, 이날 어효첨이 마침 병을 핑계하고 사직(辭職)했으므로, 신숙주 등이 그제서야 이 소(疏)를 올렸던 것이다.

  • [註 880] 문덕 황후(文德皇后) : 당 태종의 황후.
  • [註 881] 불우(佛宇) : 불당(佛堂).
  • [註 882] 《춘추(春秋)》 : 노(魯)나라 사서(史書).
  • [註 883] 묵용(默容) : 침묵하거나 용납되는 것.
  • [註 884] 사흉(四凶) : 공공(共工)·환도(驩兜)·삼묘(三苗)·곤(鯀).
  • [註 885] 전인(全人) : 지덕(智德)이 완전한 사람.
  • [註 886] 경찬회(慶贊會) : 불상(佛像)을 새로 만들거나 불당(佛堂)을 새로 지었을 때 그 완성을 경축하는 뜻에서 열던 대법회(大法會).
  • [註 887] 규각(圭角) : 말이나 뜻이 남과 서로 맞지 아니함.
  • [註 888] 침윤(浸潤) : 차츰차츰 헐뜯어 곧이 듣게 함.
  • [註 889] 부수(膚受) : 살을 에어내는 듯한 애절한 호소.
  • [註 890] 순주(醇酒) : 다른 것을 섞지 아니한 전국으로 된 술.
  • [註 891] 계묘년 : 1423 세종 5년.
  • [註 892] 성자 신손(聖子神孫) : 임금의 자손.
  • [註 893] 후설(喉舌) : 승지(承旨)의 직임에 있는 신하.
  • [註 894] 관홍 대도(寬弘大度) :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이 큼.
  • [註 895] 부사 유설(浮辭遊說) : 근거 없는 말과 쓸데없는 말.
  • [註 896] 대성(臺省) : 대간(臺諫).
  • [註 897] 환수(宦竪) : 환자(宦者).
  • [註 898] 건백(建白) : 임금에게 의견을 아룀.

원문

○司憲掌令申叔舟等上書曰:

臣等, 嘗以求言便民等事, 上塵聖聰, 待命閱月, 未蒙採擇, 又有陳達, 實爲煩瀆。 然當殿下新政求治之時, 不可含默, 謹將一二管見, 條列以聞, 伏望聖裁。 一, 言路之在天下, 猶血氣之在人身, 血氣一息不行, 則百體受病, 而天君不能安; 言路一日不通, 則四方受病, 而人主不能安。 故古之爲天下國家者, 蓋亦多術, 而必以求直言極諫, 爲先務。 雖有逆耳不忍聞之言, 亦必隱忍, 而樂受之, 且褒奬之, 所以激成直言之氣, 以來四方之言者, 以爲子孫千萬世, 自安之道也。 故於其不可聽之事, 求其可用, 於其不可赦之罪, 求其可賞, 可怒也, 而悅愛之, 可斥也, 而親昵之, 豈無爲而然歟? 唐 太宗, 嘗退朝, 怒魏徵廷辱, 欲殺之, 文德皇后賀曰: "主明臣直。" 太宗乃悅。 方其怒時, 死有餘罪, 及其悅也, 以爲媚嫵, 一心轉移之頃, 忠侫邪正, 進退之機, 而治亂安危之所係也。 我世宗, 在位三十餘年, 求言如渴, 激勵士習, 貽謀甚遠。 近者諫臣孝源, 諫造佛宇, 乃欲請火其書, 侍臣彭年, 論奸僧信眉, 律以《春秋》, 斥爲弑父之賊, 其論議之正, 出於忠憤之激, 足以寒奸膽, 而縮諛面, 此皆世宗數十年養育作成之効也。 邇來諂侫成風, 競以直言爲諱, 而數人者, 獨能如是, 其忠憤之激, 至於上動天威, 爲國忠謀者之所當相慶也。 朝有直臣, 敵國畏之, 士無異論, 識者憂之。 向微數人, 非惟大有負於殿下初政之大體, 將無以表先王數十年作成之功也。 以此論之, 數人者, 言雖不中, 功亦不細。 方孝源之初斥, 聞者色動, 擧欲緘口, 旣而拔用, 出於宸衷, 人皆相賀。 夫一孝源之進退, 何關於人, 而人之喜懼如此? 誠以直言者之用捨, 可察人主之好惡, 而人將卜之, 又自爲言行默容之計也。 此一機會, 有大可畏, 幸賴天鑑孔昭, 炳幾燭微, 能旋棄而旋收之, 使懼者喜, 憂者樂, 懶者起, 而鼓舞見聞, 作新一時之耳目, 乃知聖人之爲, 出於尋常萬萬者, 如是也。 獨彭年之斥, 久而未蒙寬貸, 前之喜者復懼, 樂者復憂, 起者復懶, 臣等恐言路, 從此復塞而不通也。 前日聖諭以爲: "罪彭年, 何妨於言路? 如此輕薄人, 予不取之。" 臣等退而反覆思之, 至今未能解惑。 夫如彭年者, 一朝因言事擯斥之, 聞者莫不解體。 殿下雖欲廣開言路, 人皆以彭年爲戒, 誰肯輕發狂瞽之言, 再試審霆之下乎? 且殿下, 旣以彭年爲輕薄, 則必以臣等含默, 爲厚重。 然臣等竊謂, 人主取臣, 當求如彭年之輕薄, 毋求如臣等之厚重。 蓋彭年所言, 非彭年私言。 乃國人公言國人言之, 而殿下, 獨不得聞, 故奮不顧身, 抗章以陳, 可謂上不負君父, 下不負所學矣。 如臣等, 旣居言職, 反低回旁觀, 懷自全之計, 不敢極言, 內實懶㤼, 外若厚重, 有識之士, 所唾罵而不顧者也。 殿下眞欲捨彼, 而取此乎? 彭年不足惜, 所足惜者, 國家大體。 聖諭又謂: "彭年, 言及先王, 予甚薄之。" 彭年之言, 不過曰信眉欺先王爾。 夫以堯之明, 猶爲四凶所欺, 而舜逐之, 初無損於堯之明也, 此亦何損於先王盛德哉? 若必以言及先朝, 皆爲薄惡, 則嗣世之初, 將無事可言, 而自古忠臣直士, 殆無全人矣。 大抵言多忌諱, 非大平美事。 故在世宗朝, 重新興天塔, 設慶贊會, 當時諫者甚衆, 略無忌諱。 世宗下諭, 爲祖宗則衆曰: "如其非道, 何待三年? 況此塔, 雖毁之可也。" 他日世宗, 謂一二大臣曰: "興天塔太祖之所建, 予若給工匠, 使卿等毁之, 則卿等忍毁之乎?" 則對曰: "塔固當毁, 若命毁之, 則臣等豈不能毁之?" 世宗皆優納, 而不之罪, 豈當時言者, 皆無思慕祖宗之心, 而世宗尊祖之誠, 有所未至也? 言及祖宗, 世宗容之, 殿下獨以言及世宗, 欲罪言者, 豈以世宗之孝, 爲未足耶? 恐非殿下, 推尊世宗之本意也。 夫尊祖宗, 如世宗之孝, 斯至矣聖諭又謂: "共上言者非一, 而獨罪彭年者, 以其近侍最久, 且連姻王室, 不可與他人同也。" 是久侍連姻之外, 悉待以踈逖, 而不足責, 何示群下不以公也? 夫臣之於君, 苟一委質, 則固無遠近親踈之異, 上之待之, 亦不宜厚薄於其間。 近年以來, 大臣則自謂, 與國同休戚, 義不可輕論君上之得失, 以傷大體。 近侍之臣, 則自謂待遇親密, 不可屑屑論事, 自爲圭角, 以是成風, 雖心知不可, 而莫肯言之。 殿下又從而區別之可乎? 此正殿下新政, 言路通塞之機, 不可不留聖慮, 自殿下踐祚, 至于今凡八月矣, 豈無可言之事, 而無一人披誠露膽, 以裨聖政者? 殿下念之至此, 則可以知其所由致也。 如是不已, 將至於人心解弛, 上下否隔, 治亂、安危, 亦未可知矣。 伏望殿下, 思之復思之, 以爲子孫萬世之計。 一, 臣等竊觀, 宋 司馬光論曰: "宦者爲國家患, 其來久矣。 出入宮禁, 人主自幼及長, 與之親狎, 非如三公六卿, 進見有時, 可嚴憚也。 間有性識儇利, 語言辯給, 善伺候顔色, 承迎旨趣, 受命則無違忤之患, 使令則有稱愜之効, 近者日親, 遠者日踈。 甘言卑辭之請, 有時而從, 浸潤膚受之愬, 有時而聽, 如飮醇酒, 嗜其味, 而忘其醉也。" 此誠古今之至論, 人主之所當體念也。 故我世宗大王, 乃於癸卯之夏, 傳旨曰: "宦官之職, 惟在燈燭掃除, 不宜授以出納之任。 肆我逐日視事, 俾無留滯。 然中外及期之事, 與細碎之事, 則代言難以一一親啓, 不得已令此輩出納。 近者金壽, 於政事間, 夤緣詐傳, 今後事無大小, 代言皆於朝啓親達, 惟馬牌出入, 朝臣肅拜, 許令宦者傳命。" 其所以燭知物情, 慮患深遠, 制之於未然者, 可謂至矣。 及至季年, 聖體未寧, 不能親接外人, 不得不以宦者出納, 然待之甚嚴, 不少假貸, 終始若一, 誠爲聖子神孫, 萬世之龜鑑也。 今我主上殿下, 光紹丕緖, 新臨民庶此正親決萬機勵精圖治之時也。 而朝啓例聞事外, 大小出納, 委之宦官, 以門戶之役, 爲喉舌之任, 待以寬弘大度, 其勢漸張, 頗與任事, 然而凡欲進言者, 莫不由彼而達, 誰肯直言不諱, 以論其弊, 媒怨於人主之左右哉? 夫宦者, 常在近侍, 苟有所惡者, 浮辭游說, 諷之上達, 似若出於無心, 以陰中之, 人主亦安能必其外人之不如是, 而不之信哉? 雖有見誣者, 何從而自明哉? 此畏宦官, 甚於權貴者也。 且論是非之分, 辨得失之機, 多在於言辭之表, 今臺省之進言, 承旨出而聽其言, 入告于宦官, 宦官乃以上聞, 至於三轉, 豈能盡達其言外之微意乎? 此弊不袪, 上下將至於否隔矣, 豈是細故哉? 伏望殿下, 上體先王慮患之深計, 下念司馬光日親日踈之論, 一遵癸卯年傳旨, 日視朝啓, 凡臺省及大小臣僚, 無時進言者, 或賜見或令承旨親啓, 以廣耳目, 以正新政, 以承先王付托之重, 以弘大萬世無疆之業, 不勝幸甚。

上曰: "彭年事, 非直此疏, 大臣亦言之, 衆言不可不聽也。 當還告身敍用。 宦竪傳命事, 予於視事及經筵, 每與大臣、臺諫, 商確時務, 不可謂之不接見。 然自今經筵時, 如有公事, 承旨親入啓之。" 上以卽位之初, 當選臺諫, 擢魚孝瞻、申叔舟、河緯地爲臺官, 士林皆期待之。 人言: "孝瞻, 凡叔舟、緯地建白之言, 皆抑而不達。" 前此叔舟等, 欲啓彭年事, 已草疏, 孝瞻止之, 未得啓, 是日孝瞻, 適移病, 叔舟等乃上此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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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3권, 문종 즉위년 9월 22일 계해 2/4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사헌부 장령 신숙주 등이 언로를 넓힐 것과 환관의 폐단에 대한 상서를 올리다

국역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신숙주(申叔舟) 등이 상서(上書)하였는데, 내용은 이러하였다.

"신(臣) 등은 일찍이 직언(直言)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일로써 성총(聖聰)을 번거로이 하고 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린 지가 한 달이 지나도록 채택(採擇)을 얻지 못하였는데, 또 진달(陳達)이 있으니 실로 번독(煩瀆)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하(殿下)께서 새로 정사를 보살펴 다스림을 구하는 이때에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을 수가 없어서 삼가 한두 가지의 좁은 소견으로 조목별로 나누어 아뢰니, 엎드려 성상의 재가(裁可)를 바랍니다.

1. 언로(言路)가 천하에 있는 것은 혈기(血氣)가 사람의 몸에 있는 것과 같으니, 혈기가 한 번 쉬고 행하지 않는다면 온 몸에 병이 발생하여 마음[天君]이 능히 편안하지 못하고, 언로(言路)가 하루라도 통하지 않는다면 사방(四方)에 병이 발생하여 군주가 능히 편안하지 못하게 되니, 그런 까닭으로 옛날의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대개 또한 방법이 많았겠지마는 반드시 직언(直言)과 극간(極諫)을 구하는 것을 가지고 선무(先務)로 삼았던 것입니다. 비록 귀에 거슬리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이 있더라도 또한 반드시 표면에 나타내지 않고 꾹 참고서 즐거이 받아들이고, 또 칭찬 장려하면서 직언(直言)의 기세(氣勢)를 격려 양성하여 사방(四方)의 말[言]을 오게 하는 것은 자손(子孫) 천만세(天萬世)의 스스로 편안한 도리로 삼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들어줄 수 없는 일에 있어서도 그 쓸모를 구하게 되고, 용서할 수 없는 죄에 있어서도 그 상줄 것을 구하게 되고, 노할 만한데도 이를 기뻐 사랑하고, 물리칠 만한데도 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이니, 어찌 하는 일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겠습니까?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일찍이 조회(朝會)에서 물러나와 위징(魏徵)이 조정에서 욕되게 한 것을 노하여 죽이려고 하니, 문덕 황후(文德皇后)880) 가 하례(賀禮)하기를 ‘군주가 명철하고 신하가 정직하다.’ 하니, 태종(太宗)이 이에 기뻐했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그가 노했을 때는 죽여도 오히려 죄가 남았을 터인데, 그가 기뻐할 때는 아름다운 교태(嬌態)로 생각하였으니, 한 마음이 옮겨지는 사이에 충신(忠臣)·영신(佞臣)과 사인(邪人)·정인(正人)을 진용(進用)·퇴출(退黜)하는 기틀이 되고 치란(治亂)·안위(安危)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세종(世宗)께서는 재위(在位) 30여 년에 직언(直言)을 구하심이 마치 목마른 것같이 하여 선비의 풍습(風習)을 격려하여 자손(子孫)에게 끼친 계획이 매우 원대(遠大)했던 것입니다. 근일에 간신(諫臣) 심효원(沈孝源)이 불우(佛宇)881) 를 건조(建造)함을 간(諫)하면서 그 글까지 불태우기를 청하였으며, 시신(侍臣) 박팽년(朴彭年)은 간승(奸僧) 신미(信眉)를 논죄(論罪)하면서 《춘추(春秋)》882) 를 가지고 규정(規定)하여 시부(弑父)의 적(賊)으로 지칭(指稱)하였으니, 그 논의(論議)의 정직한 것이 충분(忠憤)의 격앙(激昻)에서 나온 것이므로 간인(奸人)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하고 아첨부리는 얼굴을 움츠러지게 한 것이니, 이것이 모두 세종(世宗)께서 수십 년 동안에 〈선비를〉 양육(養育)하고 작성(作成)시켰던 효과이었습니다. 근래에는 의심하고 아첨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게 되어 다투어 가면서 직언(直言)하는 일을 가지고 피하게 되는데, 두서너 사람만이 유독 이같이 하게 되어 그 충분(忠憤)의 격앙(激昻)함이 위로는 임금의 위엄까지 움직이게 하였으니 나라를 위하여 충성스런 계획을 세우는 사람의 마땅히 서로 경하(慶賀)할 일입니다. 조정(朝廷)에 정직한 신하가 있으면 적국(敵國)이 이를 두려워하고, 선비가 남과 다른 의논(議論)이 없으면 식자(識者)가 이를 근심하게 되는데, 지난 번에 두서너 사람이 아니었다면 다만 전하의 처음 정사의 대체(大體)에 저버림이 있을 뿐 아니라 장차 선왕(先王)의 수십 년 동안 작성(作成)한 공을 나타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일을 가지고 논한다면 두서너 사람은 말은 비록 적중(適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은 또한 작지 않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심효원(沈孝源)을 처음 내칠 적에, 들은 사람들은 얼굴빛이 변하였고 모두가 입을 다물려고 했다가 조금 후에 발탁 임용하는 일이 임금의 마음속에서 나오게 되니 사람들이 모두 서로 하례(賀禮)하였습니다. 대저 심효원(沈孝源) 한 사람의 진용(進用)과 퇴출(退黜)이 사람들에게 무슨 관계가 있기에 사람들의 기뻐함과 두려워함이 이와 같았겠습니까? 진실로 직언(直言)하는 사람을 임용하고 버리는 일을 가지고 군주(君主)의 좋아함과 싫어함을 살필 수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장차 이를 점쳐서 또 스스로 언행(言行)과 묵용(默容)883) 의 계책을 삼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 한 번 기회에 크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 임금의 감찰력(鑑察力)이 매우 밝고 기미(幾微)를 환하게 비쳐 능히 버렸다가 곧 수용(收用)하게 하여 두려워하던 사람은 기뻐하게 하고, 근심하던 사람은 즐거워하도록 하며, 게으른 사람은 흥기(興起)하도록 하여 고무(鼓舞)하고 견문(見聞)하는 것이 새로이 한때의 이목을 짓게 하였으니, 그제서야 성인(聖人)의 하는 일이 보통의 절대적인 위에서 나온 것이 이와 같음을 알겠습니다.

다만 박팽년(朴彭年)을 물리친 것은 오래되도록 용서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앞에서 기뻐하던 사람은 다시 두려워하게 되고 즐거워하던 사람은 다시 근심하게 되었으며, 흥기(興起)한 사람은 다시 게으르게 되었으니, 신(臣) 등은 언로(言路)가 이로부터 다시 막혀서 통하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전일 임금의 선유(宣諭)에 말씀하시기를, ‘박팽년을 처벌하는 것이 언로(言路)에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이 같은 경박(輕薄)한 사람은 내가 취(取)하지 않겠다.’ 하시었는데, 신(臣) 등이 물러가서 되풀이 하며 생각해 보아도 지금까지 의혹(疑惑)이 풀리지 않습니다. 대저 박팽년과 같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국사(國事)를 말하다가 빈척(擯斥)되었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해이(解弛)해져서 배반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전하께서는 비록 언로(言路)를 널리 열어 놓으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박팽년을 가지고 경계를 삼을 것이니 누가 즐거이 광망(狂妄)하고 어두운 말을 경솔히 발언(發言)하였다가 두 번이나 뇌정(雷霆)같은 위엄 아래에 시험하겠습니까? 또 전하께서 이미 박팽년을 가지고 경박(輕薄)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반드시 신(臣) 등의 함묵(含默)한 것을 가지고 후중(厚重)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신 등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군주가 신하를 취(取)할 적에는 마땅히 박팽년과 같은 경박한 사람을 구해야 할 것이며, 신 등과 같은 후중(厚重)한 사람은 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개 박팽년이 말한 것은 박팽년의 사적(私的)인 말은 아니고 곧 나라 사람들의 공적(公的)인 말이니,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데도 전하께서 홀로 듣지 아니하신 까닭으로 분발하여 자기 몸은 돌보지 않고 글[章]을 올려 진술한 것이니, 위로는 군부(君父)를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 등과 같은 사람은 이미 언직(言職)에 있으면서 도리어 고개를 숙이고 옆에서 방관(旁觀)만 하고는, 자기 몸만 보전할 계획을 품고 있으면서 감히 남김없이 말하지 못하여 속으로는 실상 나겁(懶㤼)하면서도 겉으로는 후중(厚重)한 듯하오니, 견식이 있는 선비로서는 침을 뱉고 욕을 하면서 돌아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참으로 저 사람을 버리고 이 사람을 취(取)하겠습니까? 박팽년은 아까울 것이 없지마는, 아깝게 여길 것은 국가의 대체(大體)입니다. 임금의 선유(宣諭)에 또 말하시기를, ‘박팽년의 말이 선왕(先王)에 미치니 내가 심히 이를 경박하다고 여기는 것이다.’고 하셨는데, 박팽년의 말은 신미(信眉)가 선왕(先王)을 속였다고 한 데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대저 요제(堯帝)의 명철(明哲)로써도 오히려 사흉(四凶)884) 에게 속임을 당하였는데도 순제(舜帝)가 이들을 쫓아내었으니, 당초부터 요제(堯帝)의 명철(明哲)함에는 손상(損傷)이 없었는데, 이것이 선왕(先王)의 성덕(盛德)에 무슨 손상이 되겠습니까? 만약 선조(先朝)에 말이 미쳤다 하여 모두 경박(輕薄)한 악행(惡行)으로 생각한다면 세대(世代)를 계승한 초기에는 장차 말을 할 만한 일이 없게 될 것이니, 예로부터 충신(忠臣)·직사(直士)가 거의 전인(全人)885) 이 없을 것입니다.

대저 말에 기휘(忌諱)함이 많은 것은 태평 시대의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세종조(世宗朝)에 있어서 흥천탑(興天塔)을 새로 짓고 경찬회(慶贊會)886) 를 베풀 적에 당시에 간(諫)하던 사람이 매우 많았지마는 조금도 기휘(忌諱)한 것은 없었습니다. 세종(世宗)께서 유시(諭示)를 내려 조종(祖宗)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였는데, 여러 사람들은 말하기를, ‘만약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어찌 3년까지 기다리겠습니까? 하물며 이 탑은 부셔 버려도 좋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날에 세종(世宗)께서 한두 사람의 대신(大臣)에게 이르기를, ‘흥천탑(興天塔)은 태조(太祖)께서 세운 바인데, 내가 만약 공장(工匠)을 주고 경(卿) 등으로 하여금 이를 부수게 한다면 경(卿) 등은 차마 이를 부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탑은 진실로 마땅히 부셔야 하므로 만약 명령하여 이를 부수게 한다면 신(臣) 등이 어찌 능히 이를 부수지 못하겠습니까?’ 하였으나, 세종(世宗)께서는 모두 우대하여 들어주시고 처벌하지는 아니했으니 어찌 그 당시에 말하던 사람들이 모두 조종(祖宗)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세종께서 조종을 높이는 정성이 지극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까? 조종(祖宗)에게 말이 미쳐도 세종께서는 이를 용서하셨는데, 전하(殿下)께서만 홀로 세종(世宗)에게 말이 미친 이유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을 죄 주려고 하시니, 어찌 세종의 효성으로써 모자람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아마 전하께서 세종을 추존(推尊)하는 본의(本意)는 아닐 것입니다.

대저 조종(祖宗)을 존경(尊敬)함이 세종의 효성과 같다면 이것이 지극한 편입니다. 성상(聖上)의 선유(宣諭)에 또 이르시기를, ‘함께 말을 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도 유독 박팽년만 죄주는 것은, 그가 측근에서 뫼신 지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또 왕실(王室)과 연인(連姻)하였으니,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같이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임금을 오랫동안 모시고 왕실(王室)과 연인(連姻)한 이외에는 다 소원(疎遠)하게 대한 것이요, 족히 책망할 것이 없는데, 어찌 군신(群臣)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것을 보였다고 하겠습니까? 대저 신하는 군주에게 한 번 몸을 맡겨 벼슬하게 되면 진실로 친근함과 소원함이 다를 바가 없을 것이며, 성상께서 대우하심도 또한 마땅히 그 사이에 후박(厚薄)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근년 이래로 대신(大臣)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라와 더불어 휴척(休戚)을 같이하고 있으니 의리상 군상(君上)의 득실(得失)을 경솔히 논해서 대체(大體)를 손상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 하고, 근시(近侍)하는 신하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대우가 친밀(親密)하니 번거롭게 일을 논하여 스스로 규각(圭角)887) 이 될 수는 없다고 하여, 이로써 풍습(風習)을 이루어 비록 마음속으로는 옳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즐거이 이를 말하지 않고 있는데, 전하께서 또 따라 이에 차별을 두시는 일이 옳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전하께서 새로 정사를 하심에 언로(言路)가 통하고 막히는 기틀이니 성상(聖上)께서 생각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왕위(王位)에 오르신 지가 지금에 이르러 무릇 8개월이나 되었는데, 어찌 말할 만한 일이 없어서 한 사람이라도 정성과 속마음을 털어놓아 성상(聖上)의 정치를 도울 사람이 없겠습니까? 전하께서 생각이 이에 이르신다면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을 아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같이 되어 그치지 않는다면 장차는 인심(人心)이 해이(解弛)해지고 상하(上下)가 서로 막혀져서 치란(治亂)·안위(安危)도 또한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이를 생각하시고 다시 이를 생각하시어 자손(子孫) 만세(萬世)의 계책을 삼으소서.

1. 신(臣) 등이 가만히 살펴보건대,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이 논하기를, ‘환자(宦者)가 국가의 근심이 된 지는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궁금(宮禁)에 드나드니, 군주(君主)는 어릴 때부터 장성할 때까지 그들과 더불어 가까와져서 삼공(三公)·육경(六卿)과 같이 진현(進見)하는 데 일정한 때가 있어서 경계하고 꺼림이 있는 것과 같지 않고 간혹 타고난 성품이 영리하고 말을 잘하며, 임금의 안색을 잘 엿보아 그 뜻을 받들어 맞추어서 명령을 받으면 어기고 거스릴 걱정이 없고 일을 시키면 마음에 맞도록 효과가 있게 되니, 가까운 사람은 날로 친하게 되고 먼 사람은 날로 멀어지게 된다. 감언(甘言)·비사(卑辭)의 청탁은 때때로 따르게 되고 침윤(浸潤)888) ·부수(膚受)889) 의 참소는 때로 듣게 되니 마치 순주(醇酒)890) 를 마시면 그 맛을 즐기면서 그 취하는 것을 잊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고금(古今)의 지론(至論)이요 군주의 마땅히 체념(體念)할 바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세종 대왕(世宗大王)께서는 계묘년891) 여름에 전지(傳旨)하시기를, ‘환관(宦官)의 직책은 다만 등촉(燈燭)을 밝히고 소제(掃除)를 하는 데 있으니 왕명(王命)을 출납(出納)하는 임무는 맡겨서는 안 된다. 그런 까닭으로 내가 날마다 정사를 보살필 때 유체(留滯)됨이 없게 했는데, 그러나 중앙과 지방의 시기에 맞추게 할 일이나 세쇄(細碎)한 일은 대언(代言)이 일일이 친히 아뢰기가 어려우므로, 부득이 이 무리들로 하여금 왕명(王命)을 출납(出納)하도록 했다. 근자에 김수(金壽)는 정사에 있어 연줄을 타고 거짓을 전달하게 되니, 지금부터 일은 크고 작은 것을 논할 것 없이 대언(代言)이 모두 조계(朝啓)에서 친히 품달(稟達)하고, 다만 마패(馬牌)의 출입(出入)이나 조신(朝臣)의 숙배(肅拜)에만 환자(宦者)로 하여금 전명(傳命)하도록 허락한다.’고 했으니, 그 세인(世人)의 심정(心情)을 밝게 알아서 환난(患難)을 염려함이 심원(深遠)하여 미연(未然)에 제지(制止)시킨 것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년(末年)에 이르러서는 임금의 옥체(玉體)가 편안하지 못하여 외인(外人)을 친히 접견(接見)할 수가 없으므로 부득불 환자(宦者)로서 출납(出納)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러나 대우하기를 매우 엄하게 하여 조금도 틈을 주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으니 진실로 성자 신손(聖子神孫)892) 으로 만세(萬世)의 귀감(龜鑑)이 될 만합니다. 지금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큰 기업(其業)을 계승하여 민서(民庶)를 새로 통치하게 되었으니 이때가 바로 만기(萬機)를 친히 결정하며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을 쓸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조계(朝啓)의 예문(例聞)하는 일 이외에는 대소(大小)의 출납(出納)을 환관(宦官)에게 위임하여 문호(門戶)의 역(役)으로써 후설(喉舌)893) 의 임무로 삼아서 관홍 대도(寬弘大度)894) 로써 대우해 주시니 그 세력이 점차 떨쳐지므로 자못 일을 맡은 것과도 같아서 무릇 말을 올리려고 하는 사람은 저들을 경유하여 품달(稟達)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니, 누가 즐거이 바른 말로 숨기지 않고 그 폐단을 논하다가 군주(君主)의 측근 사람들에게 원망이나 사려고 하겠습니까? 대저 환자(宦者)는 상시로 임금의 측근에서 모시고 있으니, 만일 미운 사람이 있으면 부사 유설(浮辭遊說)895) 로 넌지시 위에 아뢰어 무심(無心)한 데서 나온 것처럼 하면서 몰래 중상(中傷)시키니 군주가 또한 어찌 그 외인(外人)이 이같이 않을 것을 기필(期必)하고 이들을 믿지 않겠습니까? 비록 무함(誣陷)을 당한 사람이 있더라도 어디로부터 스스로 변명하겠습니까. 이것이 환관(宦官)을 두려워함이 권귀(權貴)보다 심한 것입니다.

또 시비(是非)의 분별을 논하고 득실(得失)의 기틀을 분변하는 것은 언사(言辭)의 밖에 많이 있게 되는데, 지금 대성(臺省)896) 의 진언(進言)을 승지(承旨)가 나와서 그 말을 듣고, 들어가서 환관(宦官)에게 알리면 환관은 그제서야 위에 아뢰게 되니 세 번이나 옮겨 전하게 되면 어찌 능히 그 말 밖의 은미(隱微)한 뜻을 다 품달(稟達)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폐단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상하(上下)가 장차 막히게 될 것이니, 어찌 이것이 작은 일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위로는 선왕(先王)의 환난(患難)을 염려하시는 심원(深遠)한 계획을 체득(體得)하시고, 아래로는 사마광(司馬光)의 가까운 사람은 날로 친하고 먼 사람은 날로 소격(疎隔)해진다는 의논을 생각하시어 계묘년의 전지(傳旨)에 한결같이 따라서 날마다 조계(朝啓)를 보고는 무릇 대성(臺省)과 대소 신료(大小臣僚)로서 일정한 때가 없이 진언(進言)하는 사람에게 혹은 접견(接見)을 허가하시기도 하고, 승지(承旨)로 하여금 친히 아뢰도록 하여 이목(耳目)을 넓히고 신정(新政)을 바로잡아서 선왕(先王)의 부탁(付托)의 중대함을 계승하여 만세(萬世)의 한정이 없는 기업(基業)을 키우고 넓히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박팽년(朴彭年)의 일은 다만 이 소(疏)뿐만 아니라 대신(大臣)들도 또한 말하고 있으니 여러 사람의 말은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마땅히 고신(告身)을 돌려주고 서용(敍用)해야 하겠다. 환수(宦竪)897) 가 왕명(王命)을 전달하는 일은 내가 정사를 보살피거나 경연(經筵)에서 매양 대신(大臣)과 대간(臺諫)과 더불어 시무(時務)를 헤아려 결정하고 있으니 접견(接見)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경연(經筵)을 열 때에 만약 공사(公事)가 있으면 승지(承旨)가 친히 들어와서 아뢰게 하라."

하였다. 임금께서 즉위(卽位)하신 초기에 대간(臺諫)을 선임(選任)할 적에 어효첨(魚孝瞻)·신숙주(申叔舟)·하위지(河緯地)를 발탁하여 대관(臺官)으로 삼으니 사림(士林)들이 모두 기대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효첨이 무릇 신숙주와 하위지의 건백(建白)898) 한 말은 모두 억제하고 아뢰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이보다 먼저 신숙주 등이 박팽년의 일을 아뢰려고 하여 이미 소(疏)를 초(草)잡아 두었으나 어효첨이 이를 말려서 아뢰지 못했던 것인데, 이날 어효첨이 마침 병을 핑계하고 사직(辭職)했으므로, 신숙주 등이 그제서야 이 소(疏)를 올렸던 것이다.

  • [註 880] 문덕 황후(文德皇后) : 당 태종의 황후.
  • [註 881] 불우(佛宇) : 불당(佛堂).
  • [註 882] 《춘추(春秋)》 : 노(魯)나라 사서(史書).
  • [註 883] 묵용(默容) : 침묵하거나 용납되는 것.
  • [註 884] 사흉(四凶) : 공공(共工)·환도(驩兜)·삼묘(三苗)·곤(鯀).
  • [註 885] 전인(全人) : 지덕(智德)이 완전한 사람.
  • [註 886] 경찬회(慶贊會) : 불상(佛像)을 새로 만들거나 불당(佛堂)을 새로 지었을 때 그 완성을 경축하는 뜻에서 열던 대법회(大法會).
  • [註 887] 규각(圭角) : 말이나 뜻이 남과 서로 맞지 아니함.
  • [註 888] 침윤(浸潤) : 차츰차츰 헐뜯어 곧이 듣게 함.
  • [註 889] 부수(膚受) : 살을 에어내는 듯한 애절한 호소.
  • [註 890] 순주(醇酒) : 다른 것을 섞지 아니한 전국으로 된 술.
  • [註 891] 계묘년 : 1423 세종 5년.
  • [註 892] 성자 신손(聖子神孫) : 임금의 자손.
  • [註 893] 후설(喉舌) : 승지(承旨)의 직임에 있는 신하.
  • [註 894] 관홍 대도(寬弘大度) :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이 큼.
  • [註 895] 부사 유설(浮辭遊說) : 근거 없는 말과 쓸데없는 말.
  • [註 896] 대성(臺省) : 대간(臺諫).
  • [註 897] 환수(宦竪) : 환자(宦者).
  • [註 898] 건백(建白) : 임금에게 의견을 아룀.

원문

○司憲掌令申叔舟等上書曰:

臣等, 嘗以求言便民等事, 上塵聖聰, 待命閱月, 未蒙採擇, 又有陳達, 實爲煩瀆。 然當殿下新政求治之時, 不可含默, 謹將一二管見, 條列以聞, 伏望聖裁。 一, 言路之在天下, 猶血氣之在人身, 血氣一息不行, 則百體受病, 而天君不能安; 言路一日不通, 則四方受病, 而人主不能安。 故古之爲天下國家者, 蓋亦多術, 而必以求直言極諫, 爲先務。 雖有逆耳不忍聞之言, 亦必隱忍, 而樂受之, 且褒奬之, 所以激成直言之氣, 以來四方之言者, 以爲子孫千萬世, 自安之道也。 故於其不可聽之事, 求其可用, 於其不可赦之罪, 求其可賞, 可怒也, 而悅愛之, 可斥也, 而親昵之, 豈無爲而然歟? 唐 太宗, 嘗退朝, 怒魏徵廷辱, 欲殺之, 文德皇后賀曰: "主明臣直。" 太宗乃悅。 方其怒時, 死有餘罪, 及其悅也, 以爲媚嫵, 一心轉移之頃, 忠侫邪正, 進退之機, 而治亂安危之所係也。 我世宗, 在位三十餘年, 求言如渴, 激勵士習, 貽謀甚遠。 近者諫臣孝源, 諫造佛宇, 乃欲請火其書, 侍臣彭年, 論奸僧信眉, 律以《春秋》, 斥爲弑父之賊, 其論議之正, 出於忠憤之激, 足以寒奸膽, 而縮諛面, 此皆世宗數十年養育作成之効也。 邇來諂侫成風, 競以直言爲諱, 而數人者, 獨能如是, 其忠憤之激, 至於上動天威, 爲國忠謀者之所當相慶也。 朝有直臣, 敵國畏之, 士無異論, 識者憂之。 向微數人, 非惟大有負於殿下初政之大體, 將無以表先王數十年作成之功也。 以此論之, 數人者, 言雖不中, 功亦不細。 方孝源之初斥, 聞者色動, 擧欲緘口, 旣而拔用, 出於宸衷, 人皆相賀。 夫一孝源之進退, 何關於人, 而人之喜懼如此? 誠以直言者之用捨, 可察人主之好惡, 而人將卜之, 又自爲言行默容之計也。 此一機會, 有大可畏, 幸賴天鑑孔昭, 炳幾燭微, 能旋棄而旋收之, 使懼者喜, 憂者樂, 懶者起, 而鼓舞見聞, 作新一時之耳目, 乃知聖人之爲, 出於尋常萬萬者, 如是也。 獨彭年之斥, 久而未蒙寬貸, 前之喜者復懼, 樂者復憂, 起者復懶, 臣等恐言路, 從此復塞而不通也。 前日聖諭以爲: "罪彭年, 何妨於言路? 如此輕薄人, 予不取之。" 臣等退而反覆思之, 至今未能解惑。 夫如彭年者, 一朝因言事擯斥之, 聞者莫不解體。 殿下雖欲廣開言路, 人皆以彭年爲戒, 誰肯輕發狂瞽之言, 再試審霆之下乎? 且殿下, 旣以彭年爲輕薄, 則必以臣等含默, 爲厚重。 然臣等竊謂, 人主取臣, 當求如彭年之輕薄, 毋求如臣等之厚重。 蓋彭年所言, 非彭年私言。 乃國人公言國人言之, 而殿下, 獨不得聞, 故奮不顧身, 抗章以陳, 可謂上不負君父, 下不負所學矣。 如臣等, 旣居言職, 反低回旁觀, 懷自全之計, 不敢極言, 內實懶㤼, 外若厚重, 有識之士, 所唾罵而不顧者也。 殿下眞欲捨彼, 而取此乎? 彭年不足惜, 所足惜者, 國家大體。 聖諭又謂: "彭年, 言及先王, 予甚薄之。" 彭年之言, 不過曰信眉欺先王爾。 夫以堯之明, 猶爲四凶所欺, 而舜逐之, 初無損於堯之明也, 此亦何損於先王盛德哉? 若必以言及先朝, 皆爲薄惡, 則嗣世之初, 將無事可言, 而自古忠臣直士, 殆無全人矣。 大抵言多忌諱, 非大平美事。 故在世宗朝, 重新興天塔, 設慶贊會, 當時諫者甚衆, 略無忌諱。 世宗下諭, 爲祖宗則衆曰: "如其非道, 何待三年? 況此塔, 雖毁之可也。" 他日世宗, 謂一二大臣曰: "興天塔太祖之所建, 予若給工匠, 使卿等毁之, 則卿等忍毁之乎?" 則對曰: "塔固當毁, 若命毁之, 則臣等豈不能毁之?" 世宗皆優納, 而不之罪, 豈當時言者, 皆無思慕祖宗之心, 而世宗尊祖之誠, 有所未至也? 言及祖宗, 世宗容之, 殿下獨以言及世宗, 欲罪言者, 豈以世宗之孝, 爲未足耶? 恐非殿下, 推尊世宗之本意也。 夫尊祖宗, 如世宗之孝, 斯至矣聖諭又謂: "共上言者非一, 而獨罪彭年者, 以其近侍最久, 且連姻王室, 不可與他人同也。" 是久侍連姻之外, 悉待以踈逖, 而不足責, 何示群下不以公也? 夫臣之於君, 苟一委質, 則固無遠近親踈之異, 上之待之, 亦不宜厚薄於其間。 近年以來, 大臣則自謂, 與國同休戚, 義不可輕論君上之得失, 以傷大體。 近侍之臣, 則自謂待遇親密, 不可屑屑論事, 自爲圭角, 以是成風, 雖心知不可, 而莫肯言之。 殿下又從而區別之可乎? 此正殿下新政, 言路通塞之機, 不可不留聖慮, 自殿下踐祚, 至于今凡八月矣, 豈無可言之事, 而無一人披誠露膽, 以裨聖政者? 殿下念之至此, 則可以知其所由致也。 如是不已, 將至於人心解弛, 上下否隔, 治亂、安危, 亦未可知矣。 伏望殿下, 思之復思之, 以爲子孫萬世之計。 一, 臣等竊觀, 宋 司馬光論曰: "宦者爲國家患, 其來久矣。 出入宮禁, 人主自幼及長, 與之親狎, 非如三公六卿, 進見有時, 可嚴憚也。 間有性識儇利, 語言辯給, 善伺候顔色, 承迎旨趣, 受命則無違忤之患, 使令則有稱愜之効, 近者日親, 遠者日踈。 甘言卑辭之請, 有時而從, 浸潤膚受之愬, 有時而聽, 如飮醇酒, 嗜其味, 而忘其醉也。" 此誠古今之至論, 人主之所當體念也。 故我世宗大王, 乃於癸卯之夏, 傳旨曰: "宦官之職, 惟在燈燭掃除, 不宜授以出納之任。 肆我逐日視事, 俾無留滯。 然中外及期之事, 與細碎之事, 則代言難以一一親啓, 不得已令此輩出納。 近者金壽, 於政事間, 夤緣詐傳, 今後事無大小, 代言皆於朝啓親達, 惟馬牌出入, 朝臣肅拜, 許令宦者傳命。" 其所以燭知物情, 慮患深遠, 制之於未然者, 可謂至矣。 及至季年, 聖體未寧, 不能親接外人, 不得不以宦者出納, 然待之甚嚴, 不少假貸, 終始若一, 誠爲聖子神孫, 萬世之龜鑑也。 今我主上殿下, 光紹丕緖, 新臨民庶此正親決萬機勵精圖治之時也。 而朝啓例聞事外, 大小出納, 委之宦官, 以門戶之役, 爲喉舌之任, 待以寬弘大度, 其勢漸張, 頗與任事, 然而凡欲進言者, 莫不由彼而達, 誰肯直言不諱, 以論其弊, 媒怨於人主之左右哉? 夫宦者, 常在近侍, 苟有所惡者, 浮辭游說, 諷之上達, 似若出於無心, 以陰中之, 人主亦安能必其外人之不如是, 而不之信哉? 雖有見誣者, 何從而自明哉? 此畏宦官, 甚於權貴者也。 且論是非之分, 辨得失之機, 多在於言辭之表, 今臺省之進言, 承旨出而聽其言, 入告于宦官, 宦官乃以上聞, 至於三轉, 豈能盡達其言外之微意乎? 此弊不袪, 上下將至於否隔矣, 豈是細故哉? 伏望殿下, 上體先王慮患之深計, 下念司馬光日親日踈之論, 一遵癸卯年傳旨, 日視朝啓, 凡臺省及大小臣僚, 無時進言者, 或賜見或令承旨親啓, 以廣耳目, 以正新政, 以承先王付托之重, 以弘大萬世無疆之業, 不勝幸甚。

上曰: "彭年事, 非直此疏, 大臣亦言之, 衆言不可不聽也。 當還告身敍用。 宦竪傳命事, 予於視事及經筵, 每與大臣、臺諫, 商確時務, 不可謂之不接見。 然自今經筵時, 如有公事, 承旨親入啓之。" 上以卽位之初, 當選臺諫, 擢魚孝瞻、申叔舟、河緯地爲臺官, 士林皆期待之。 人言: "孝瞻, 凡叔舟、緯地建白之言, 皆抑而不達。" 前此叔舟等, 欲啓彭年事, 已草疏, 孝瞻止之, 未得啓, 是日孝瞻, 適移病, 叔舟等乃上此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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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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