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지 / 경기 / 철원 도호부 / 마전현
◎ 마전현(麻田縣)
본래 고구려의 마전천현(麻田淺縣)인데, 신라가 임단(臨湍)으로 고쳐서 우봉군(牛峯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현종(顯宗)무오125) 에 장단(長湍) 임내(任內)에 붙이어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소장(所掌)으로 하고, 문종(文宗)임인126) 에 개성부(開城府)에 직속시켰다가, 뒤에 감무관(監務官)을 두었고, 또 그 뒤에 감무를 혁파하여 적성현(積城縣)에 합치었다가, 공양왕(恭讓王)기사127) 에 다시 감무를 두었다. 본조(本朝) 태종(太宗)계사128) 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연천(漣川)에 이르기 13리, 서쪽으로 장단(長湍)에 이르기 12리, 남쪽으로 적성(積城)에 이르기 8리, 북쪽으로 삭녕(朔寧)에 이르기 18리이다.
호수가 1백 46호, 인구가 4백 84명이요,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13명, 선군(船軍)이 26명이다.
망성(亡姓)이 5이니, 전(田)·송(宋)·유(柳)·차(車)·어(於)이고, 속성(續姓)이 1이니, 서(徐)이다.
땅이 메마르고, 기후가 일찍 추워지며, 간전(墾田)이 1천 1백 71결(結)이다. 【논이 4분의 1이 넘는다. 】 토의(土宜)는 오곡과 조·팥·녹두·메밀·뽕나무·삼[麻]이요, 토공(土貢)은 지초·싸리버섯이며, 약재(藥材)는 검산풀뿌리[續斷]이다.
고려의 사위사(四位祠)가 현(縣) 서쪽 답동리(畓洞里)에 있다. 【본조(本朝) 태조(太祖) 원년 임신 8월에 예조(禮曹)에 명하여 사당을 본 고을에 세우고 제전(祭田)을 주어서, 태조(太祖)·혜종(惠宗)·성종(成宗)·현종(顯宗)·문종(文宗)·원종(元宗)·충렬왕(忠烈王)·공민왕(恭愍王)을 제사지내다가, 금상(今上) 7년 을사에 이르러,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나라의 종묘(宗廟)도 다만 5실(室)을 제사지내는데, 전조(前朝)의 사당을 8위까지 제사지내는 것은 예(禮)에 합당하지 아니합니다." 하였으므로, 8위(位) 가운데서 오직 태조·현종·문종·원종만을 남겨 두고, 봄·가을 중정(仲丁)에 〈나라에서〉 향축(香祝)을 전하여 제사지낸다. 태조 현릉(顯陵)에는 수릉(守陵) 3호(戶)를 주고, 나머지 3능(陵)은 각각 2호씩을 주어 초채(樵採)를 금(禁)한다. 】
- 【태백산사고본】 52책 148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22면
- [註 125]무오 : 9년.
- [註 126]
◎ 麻田縣: 本高句麗 麻田淺縣, 新羅改名臨湍, 爲牛峯郡領縣, 高麗改今名。 顯宗戊午, 屬長 湍任內, 爲尙書都省所掌。 文宗壬寅, 直隷開城府, 後置監務官, 後革監務, 合于積城縣, 恭讓王己巳, 復置監務。 本朝太宗癸巳, 例改爲縣監。 四境, 東距漣川十三里, 西距長湍十二里, 南距積城八里, 北距朔寧十八里。 戶一百四十六, 口四百八十四。 軍丁, 侍衛軍十三, 船軍二十六。 亡姓五, 田、宋、柳、車、於; 續姓一, 徐。 厥土塉, 風氣早寒。 墾田一千一百七十一結。 【水田居四分之一强】 土宜五穀, 粟、小豆、菉豆、蕎麥、桑、麻。 土貢, 芝草、足茸。 藥材, 續斷。 高麗四位祠在縣西沓洞里。 【本朝太祖元年壬申八月, 命禮曹立廟於本縣, 給祭田, 祭太祖、惠宗、成宗、顯宗、文宗、元宗、忠烈王、恭愍王。 至今上七年乙巳, 有司言: "國家宗廟, 只祭五室, 而前朝之廟, 乃祭八位, 未合於禮。" 於是減八位, 只留太祖、顯宗、文宗、元宗, 以春秋二仲傳香祝致祭。 太祖顯陵, 給守陵三戶, 餘三陵, 各給二戶, 禁樵採。】
- 【태백산사고본】 52책 148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5책 622면
- [註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