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추관사 하윤을 불러 《고려사》를 다시 찬정하게 하다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 하윤(河崙)을 불러서 《고려사(高麗史)》를 찬정(撰定)하라고 명하였다. 국초(國初)에 정도전(鄭道傳)·정총(鄭摠) 등에게 명하여 편찬하게 하였으나, 위조(僞朝)124) 이후의 기사는 자못 사실과 다른 것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명령이 있었는데, 대개 하윤의 청을 따른 것이었다. 처음에 임금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를기를,
"내가 《고려사(高麗史)》 말기(末紀)를 보니, 태조의 사실이 자못 사실과 달랐다."
하니, 한상경(韓尙敬)이 대답하기를,
"태조(太祖)도 또한 일찍이 그러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고, 이응(李膺)이 말하였다.
"실록(實錄)은 마땅히 수 세대(世代) 뒤에 수찬(修撰)하여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공론(公論)이 있을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태조 때에 정도전(鄭道傳)·정총(鄭摠)·윤소종(尹紹宗)이 전조 실록(前朝實錄)을 수찬할 때 여러 사관(史官)이 모두 사초(史草)를 고쳐 써서 바쳤으나, 오로지 이행(李行)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금(囚禁)되는 것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임금이,
"만약 이 글과 같다면 전조(前朝)의 말년에 임금에게 직언(直言)한 자는 오직 윤소종(尹紹宗) 한 사람뿐이었고, 고을을 잘 다스린 자는 오직 정운경(鄭云敬) 한 사람 뿐이었으나, 개국(開國)할 때 기밀(機密)의 일을 내가 모조리 알고 있다."
하니, 한상덕(韓尙德)이
"신이 조준(趙浚)에게 들으니, 또한 말하기를, ‘현릉(玄陵)125) 이후의 기사는 모두 잘못 썼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믿을 수 있는 역사는 후세에 보이기 위한 것이니, 전하가 아시는 바대로 개정(改正)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내가 마땅히 영의정과 의논하겠다."
하고, 드디어 승문원(承文院)에 명하여 정해년 이후의 수교(受敎)한 조획(條畫)을 차례대로 편찬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7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6면
- 【분류】역사-편사(編史)
○壬午/召領春秋館事河崙, 命竄定《高麗史》。 國初, 命鄭道傳、鄭摠等撰之, 僞朝以後之事, 頗多失眞, 故有是命, 蓋因崙之請也。 初, 上謂群臣曰: "予觀《高麗史》末紀, 太祖之事, 頗有不實。" 韓尙敬對曰: "太祖亦嘗有是言矣。" 李膺曰: "《實錄》宜於數世後修撰, 若然則必有公論矣。 臣聞, 太祖之時命鄭道傳、鄭摠、尹紹宗修撰前朝《實錄》。 諸史官皆改書史草而納之, 惟李行不然, 故未免囚繫。" 上曰: "若如此書, 前朝之季, 直言於君者, 唯尹紹宗一人而已, 善爲州者, 唯鄭云敬一人而已。 開國之時, 機密之事, 予悉知之矣。" 韓尙德曰: "臣聞諸趙浚, 亦曰: ‘玄陵以後之事, 皆誤書矣。’ 夫信史, 所以示後也。 以殿下所知, 改正何如?" 上曰: "吾當與領議政議。" 遂命承文院, 編次丁亥年以後受敎條畫。
- 【태백산사고본】 12책 27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6면
- 【분류】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