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8권, 태종 9년 8월 10일 기유 1/1 기사 / 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하윤을 진산 부원군에 봉하고 이서를 영의정으로 하는 등 내각 개편
국역
하윤(河崙)으로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을, 이서(李舒)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를, 조영무(趙英茂)로 우정승(右政丞)·영삼군사(領三軍事)를, 유양(柳亮)으로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윤저(尹柢)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이귀령(李貴齡)으로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이간(李衎)으로 좌군 도총제(左軍都摠制)를, 황희(黃喜)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를, 김한로(金漢老)로 광산군(光山君)을, 안등(安騰)으로 지신사(知申事)를 삼고, 세자 빈객(世子賓客) 청성군(淸城君) 정탁(鄭擢)과 서천군(西川君) 한상경(韓尙敬)·계성군(雞城君) 이내(李來)·검교 판한성부사(檢校判漢城府事) 조용(趙庸)을 고쳐 경연관(經筵官)을 삼고, 또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변계량(卞季良)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삼았으니, 대개 세자(世子)에게 선위(禪位)하려는 것이었다. 해가 늦어서 하윤·이무가 대궐에 나오니, 황희가 맞아 이르기를,
"오늘의 하비(下批)는 바로 내선(內禪)을 위한 것이오."
하고, 인하여 상지(上旨)를 말하기를,
"병술년부터 세자(世子)에게 전위(傳位)하려 하였는데, 대신(大臣)들이 중지하기를 굳이 청하고, 또 불초(不肖)한 무리가 어린 아이로 세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우선 정지하여 그 뜻을 보았던 것이다. 근일(近日)에 이르러 또 재괴(災怪)로 인해, 내가 정사(政事)를 듣지 않고 세자(世子)로 하여금 큰 일을 청단(聽斷)하고자 하니, 기로(耆老)·신료(臣僚)들이 날마다 나와 굳이 청하므로, 내가 문(門)을 닫아 걸고 명(命)을 전(傳)하는 자까지 끊어버렸다. 그러나, 어찌 대신(大臣)의 말을 듣지 않겠느냐? 지금 대신과 더불어 선위(禪位)에 대한 일을 깊이 의논하고자 하나, 〈대신을〉 만나지 않는 것은 대신의 의논이 반드시 저촉되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의 의논이 비록 사직(社稷)을 중하게 여기나, 과인(寡人) 또한 어찌 종사(宗社)를 경하게 여기겠느냐? 예전에 한 대신(大臣)이 능히 어린 임금을 보호하여 사직(社稷)을 편안히 하였으니, 내가 비록 물러가 후궁(後宮)에 있다 하더라도 어찌 종사(宗社)를 돌보지 않겠느냐? 군려(軍旅)의 중사(重事)는 내가 전부 맡겠고, 사람을 쓰는 일에 이르러서도 마땅히 친히 하겠다. 내가 보기에 홍무 황제(洪武皇帝)가 천하(天下)에 임어(臨御)하기를 30여 년이나 하였으니, 오래지 않은 것이 아니며, 향년(享年)이 70이니 수(壽)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때 건문(建文)의 나이 장성(壯盛)하였으니, 만일 일찍이 그 위(位)를 바르게 하여 세력을 굳히고, 번왕(蕃王)의 병권(兵權)을 회수하여 경사(京師)에 두어 편안히 부귀(富貴)를 누리게 하였다면, 남은 일이 없었을 것이다. 또 우리 태조(太祖)께서도 을해 연간에 이방석(李芳碩)에게 전위(傳位)하고 물러나서 후궁(後宮)에 계셨다면, 우리들이 마침내 움직이지 못하였을 것이다. 어찌 무인(戊寅)의 변(變)이 있었겠는가? 내가 내선(內禪)하고자 한 것이 병술년부터 지금까지 이미 두세 번이다. 지금은 내 계책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비록 재상(宰相)이 여러 번 청한다 하더라도 단연코 청종(聽從)하지 않겠다."
하였다. 하윤과 이무가 노희봉(盧希鳳)을 시켜 입계(入啓)하기를,
"전하께서 또 선위(禪位)하고자 하시나, 세자(世子)가 어리고 주상께서 또한 성년(盛年)이시니, 만일 이 거조(擧措)가 계시면 어찌 중국(中國)의 시청(視聽)을 놀라게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뿐 아니라 사경(四境) 안이 또한 놀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계교가 이미 정해졌으니 어찌 중지하겠는가?"
하였다. 하윤 등이 대답하기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까닭 없이 내선(內禪)한 이는 없었습니다. 전조(前朝) 때에 오직 충선왕(忠宣王)과 충숙왕(忠肅王)이 이를 행하였으나, 부자간(父子間)에 혐의(嫌疑)와 틈이 도리어 생겼습니다. 전하께서는 천성(天性)이 순수하고 지극하시며, 세자께서는 어질고 효도하며 간곡 주밀(懇曲周密)하시니, 비록 전조(前朝)에 비할 바는 아니나, 조정에 가득한 여러 신하 중에 어찌 불초(不肖)한 무리가 그 사이에 섞여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들이〉 교묘하게 틈을 만들어 내어 마침내는 뒤에 곤란한 일을 밟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충선왕과 충숙왕의 일은 내가 전사(前史)에서 이미 익히 보았다. 밤이 깊었으니 물러가라."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01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원문
○己酉/以河崙爲晋山府院君, 李舒領議政府事, 趙英茂右政丞領三軍事, 柳亮參贊議政府事兼司憲府大司憲, 尹柢吏曹判書, 李貴齡兵曹判書, 李衎左軍都摠制, 黃喜參知議政府事, 金漢老 光山君, 安騰知申事。 以世子賓客淸城君 鄭擢、西川君 韓尙敬、雞城君 李來、檢校判漢城府事趙庸, 改爲經筵官, 又以藝文館提學卞季良爲同知經筵事。 蓋欲禪位世子也。 日晩, 河崙、李茂詣闕, 黃喜迎謂之曰: "今日之批, 正爲內禪也。" 因言上旨曰:
自丙戌年, 始欲傳位世子, 大臣固請止之, 且有不肖之徒, 樂於立幼, 予姑寢之, 以觀其意。 至于近日, 又因災怪, 予不聽政, 欲使世子, 聽斷大事, 耆老臣僚, 日進固請, 予雖闔門, 以絶將命者, 然豈不聞大臣之言乎? 今深欲與大臣, 議禪位之事, 所以不見者, 意大臣之議, 必有(抵)〔牴〕 (梧)〔牾〕 也。 大臣之議, 雖重社稷, 寡人亦豈輕宗社者乎? 古者一大臣, 猶能保幼君而安社稷。 予雖退居後宮, 豈不顧宗社乎? 軍旅重事, 予固全掌, 至於用人, 亦當親之。 吾見洪武皇帝, 臨御天下三十餘年, 不爲不久, 享年七十, 不爲不壽。 于時建文春秋旣盛, 若早正其位, 以固其勢, 收蕃王兵柄, 置諸京師, 安享富貴, 則無餘事矣。 我太祖亦於乙亥年間, 傳位芳碩, 退居後宮, 則吾等終無敢動矣。 安有戊寅之變乎? 吾欲內禪, 自丙戌迨于今, 已再三矣。 今則吾計已決, 雖宰相累請, 斷不聽從。
崙與茂, 使盧希鳳入啓曰: "殿下又欲禪位, 然世子幼沖, 上亦盛年, 若有此擧, 豈不駭中國之視聽? 非唯中國, 四境之內, 亦且驚駭。" 上曰: "吾計已定, 豈容中止!" 崙等對曰: "自古及今, 未有無故而內禪者。 其在前朝, 惟忠宣、忠肅行之, 然父子之間, 嫌隙反生。 殿下天性純至, 世子仁孝懇到, 雖非前朝之比, 滿朝群臣, 豈無不肖之徒, 混於其間哉? 然則巧構釁隙, 終蹈後艱矣。 願殿下深思。" 上曰: "忠宣、忠肅之事, 予於前史, 已熟觀矣。 夜深宜退。"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01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태종 9년 (1409) 8월 10일
국역
하윤(河崙)으로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을, 이서(李舒)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를, 조영무(趙英茂)로 우정승(右政丞)·영삼군사(領三軍事)를, 유양(柳亮)으로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윤저(尹柢)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이귀령(李貴齡)으로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이간(李衎)으로 좌군 도총제(左軍都摠制)를, 황희(黃喜)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를, 김한로(金漢老)로 광산군(光山君)을, 안등(安騰)으로 지신사(知申事)를 삼고, 세자 빈객(世子賓客) 청성군(淸城君) 정탁(鄭擢)과 서천군(西川君) 한상경(韓尙敬)·계성군(雞城君) 이내(李來)·검교 판한성부사(檢校判漢城府事) 조용(趙庸)을 고쳐 경연관(經筵官)을 삼고, 또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변계량(卞季良)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삼았으니, 대개 세자(世子)에게 선위(禪位)하려는 것이었다. 해가 늦어서 하윤·이무가 대궐에 나오니, 황희가 맞아 이르기를,
"오늘의 하비(下批)는 바로 내선(內禪)을 위한 것이오."
하고, 인하여 상지(上旨)를 말하기를,
"병술년부터 세자(世子)에게 전위(傳位)하려 하였는데, 대신(大臣)들이 중지하기를 굳이 청하고, 또 불초(不肖)한 무리가 어린 아이로 세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우선 정지하여 그 뜻을 보았던 것이다. 근일(近日)에 이르러 또 재괴(災怪)로 인해, 내가 정사(政事)를 듣지 않고 세자(世子)로 하여금 큰 일을 청단(聽斷)하고자 하니, 기로(耆老)·신료(臣僚)들이 날마다 나와 굳이 청하므로, 내가 문(門)을 닫아 걸고 명(命)을 전(傳)하는 자까지 끊어버렸다. 그러나, 어찌 대신(大臣)의 말을 듣지 않겠느냐? 지금 대신과 더불어 선위(禪位)에 대한 일을 깊이 의논하고자 하나, 〈대신을〉 만나지 않는 것은 대신의 의논이 반드시 저촉되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의 의논이 비록 사직(社稷)을 중하게 여기나, 과인(寡人) 또한 어찌 종사(宗社)를 경하게 여기겠느냐? 예전에 한 대신(大臣)이 능히 어린 임금을 보호하여 사직(社稷)을 편안히 하였으니, 내가 비록 물러가 후궁(後宮)에 있다 하더라도 어찌 종사(宗社)를 돌보지 않겠느냐? 군려(軍旅)의 중사(重事)는 내가 전부 맡겠고, 사람을 쓰는 일에 이르러서도 마땅히 친히 하겠다. 내가 보기에 홍무 황제(洪武皇帝)가 천하(天下)에 임어(臨御)하기를 30여 년이나 하였으니, 오래지 않은 것이 아니며, 향년(享年)이 70이니 수(壽)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때 건문(建文)의 나이 장성(壯盛)하였으니, 만일 일찍이 그 위(位)를 바르게 하여 세력을 굳히고, 번왕(蕃王)의 병권(兵權)을 회수하여 경사(京師)에 두어 편안히 부귀(富貴)를 누리게 하였다면, 남은 일이 없었을 것이다. 또 우리 태조(太祖)께서도 을해 연간에 이방석(李芳碩)에게 전위(傳位)하고 물러나서 후궁(後宮)에 계셨다면, 우리들이 마침내 움직이지 못하였을 것이다. 어찌 무인(戊寅)의 변(變)이 있었겠는가? 내가 내선(內禪)하고자 한 것이 병술년부터 지금까지 이미 두세 번이다. 지금은 내 계책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비록 재상(宰相)이 여러 번 청한다 하더라도 단연코 청종(聽從)하지 않겠다."
하였다. 하윤과 이무가 노희봉(盧希鳳)을 시켜 입계(入啓)하기를,
"전하께서 또 선위(禪位)하고자 하시나, 세자(世子)가 어리고 주상께서 또한 성년(盛年)이시니, 만일 이 거조(擧措)가 계시면 어찌 중국(中國)의 시청(視聽)을 놀라게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뿐 아니라 사경(四境) 안이 또한 놀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 계교가 이미 정해졌으니 어찌 중지하겠는가?"
하였다. 하윤 등이 대답하기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까닭 없이 내선(內禪)한 이는 없었습니다. 전조(前朝) 때에 오직 충선왕(忠宣王)과 충숙왕(忠肅王)이 이를 행하였으나, 부자간(父子間)에 혐의(嫌疑)와 틈이 도리어 생겼습니다. 전하께서는 천성(天性)이 순수하고 지극하시며, 세자께서는 어질고 효도하며 간곡 주밀(懇曲周密)하시니, 비록 전조(前朝)에 비할 바는 아니나, 조정에 가득한 여러 신하 중에 어찌 불초(不肖)한 무리가 그 사이에 섞여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들이〉 교묘하게 틈을 만들어 내어 마침내는 뒤에 곤란한 일을 밟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충선왕과 충숙왕의 일은 내가 전사(前史)에서 이미 익히 보았다. 밤이 깊었으니 물러가라."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01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원문
○己酉/以河崙爲晋山府院君, 李舒領議政府事, 趙英茂右政丞領三軍事, 柳亮參贊議政府事兼司憲府大司憲, 尹柢吏曹判書, 李貴齡兵曹判書, 李衎左軍都摠制, 黃喜參知議政府事, 金漢老 光山君, 安騰知申事。 以世子賓客淸城君 鄭擢、西川君 韓尙敬、雞城君 李來、檢校判漢城府事趙庸, 改爲經筵官, 又以藝文館提學卞季良爲同知經筵事。 蓋欲禪位世子也。 日晩, 河崙、李茂詣闕, 黃喜迎謂之曰: "今日之批, 正爲內禪也。" 因言上旨曰:
自丙戌年, 始欲傳位世子, 大臣固請止之, 且有不肖之徒, 樂於立幼, 予姑寢之, 以觀其意。 至于近日, 又因災怪, 予不聽政, 欲使世子, 聽斷大事, 耆老臣僚, 日進固請, 予雖闔門, 以絶將命者, 然豈不聞大臣之言乎? 今深欲與大臣, 議禪位之事, 所以不見者, 意大臣之議, 必有(抵)〔牴〕 (梧)〔牾〕 也。 大臣之議, 雖重社稷, 寡人亦豈輕宗社者乎? 古者一大臣, 猶能保幼君而安社稷。 予雖退居後宮, 豈不顧宗社乎? 軍旅重事, 予固全掌, 至於用人, 亦當親之。 吾見洪武皇帝, 臨御天下三十餘年, 不爲不久, 享年七十, 不爲不壽。 于時建文春秋旣盛, 若早正其位, 以固其勢, 收蕃王兵柄, 置諸京師, 安享富貴, 則無餘事矣。 我太祖亦於乙亥年間, 傳位芳碩, 退居後宮, 則吾等終無敢動矣。 安有戊寅之變乎? 吾欲內禪, 自丙戌迨于今, 已再三矣。 今則吾計已決, 雖宰相累請, 斷不聽從。
崙與茂, 使盧希鳳入啓曰: "殿下又欲禪位, 然世子幼沖, 上亦盛年, 若有此擧, 豈不駭中國之視聽? 非唯中國, 四境之內, 亦且驚駭。" 上曰: "吾計已定, 豈容中止!" 崙等對曰: "自古及今, 未有無故而內禪者。 其在前朝, 惟忠宣、忠肅行之, 然父子之間, 嫌隙反生。 殿下天性純至, 世子仁孝懇到, 雖非前朝之比, 滿朝群臣, 豈無不肖之徒, 混於其間哉? 然則巧構釁隙, 終蹈後艱矣。 願殿下深思。" 上曰: "忠宣、忠肅之事, 予於前史, 已熟觀矣。 夜深宜退。"
-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01면
- 【분류】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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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9년 (1409)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