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15권, 태종 8년 2월 11일 경인 1/2 기사 /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셋째 아들을 충녕군으로 봉하고, 하윤과 성석린을 세자의 사·부로 삼다
국역
셋째 아들 【금상(今上)의 휘(諱).】 을 봉(封)하여 충녕군(忠寧君)을 삼고,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河崙)으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세자사(世子師)를, 좌정승(左政丞) 성석린(成石璘)으로 세자부(世子傅)를, 한산 부원군(漢山府院君) 조영무(趙英茂)로 영삼군사(領三軍事)를, 이직(李稷)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 겸 판의용순금사사(判義勇巡禁司事)를, 남재(南在)로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 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이귀령(李龜齡)으로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를, 이지(李至)로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이문화(李文和)로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설미수(偰眉壽)로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이내(李來)로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를, 정구(鄭矩)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함부림(咸傅霖)으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를 삼았다.
원문
태종 8년 (1408) 2월 11일
국역
셋째 아들 【금상(今上)의 휘(諱).】 을 봉(封)하여 충녕군(忠寧君)을 삼고,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河崙)으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세자사(世子師)를, 좌정승(左政丞) 성석린(成石璘)으로 세자부(世子傅)를, 한산 부원군(漢山府院君) 조영무(趙英茂)로 영삼군사(領三軍事)를, 이직(李稷)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 겸 판의용순금사사(判義勇巡禁司事)를, 남재(南在)로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 겸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이귀령(李龜齡)으로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를, 이지(李至)로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이문화(李文和)로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설미수(偰眉壽)로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이내(李來)로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를, 정구(鄭矩)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함부림(咸傅霖)으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를 삼았다.
원문
원본
태종 8년 (1408) 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