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권, 태종 2년 4월 16일 무진 2/2 기사 /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만산군 임팔라실리의 무리를 받아들이기로 하다
국역
임팔라실리 등을 받아들이었다.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하윤(河崙)·좌정승 김사형(金士衡)·우정승 이무(李茂)·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조영무(趙英茂) 등이 아뢰기를,
"지금 허용하여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면 굶주림에 다달아 반드시 해를 끼칠 것입니다. 비록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두 굶어 죽을 것입니다. 그들을 받아들임이 옳습니다."
하니, 임금이 하윤의 의논에 좇았다. 처음에 서북면 찰리사(西北面察理使)가 보고하기를,
"장 천호(張千戶)를 보내 술을 싣고 압록강을 건너가서 임팔라실리를 먹이니, 팔라실리가 기뻐하여 소를 잡고 장 천호와 함께 마시며 말하기를, ‘정료위(定遼衛) 군관(軍官)은 모두 연(燕)에 붙었소. 우리들은 이미 명나라에 반기를 들었는지라, 연(燕)을 따를 수 없소. 포주(鋪州) 강변(江邊)에서 우리가 농사를 짓도록 허락해 주시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각도(各道)로 나누어 보내어 백성을 삼으시면 조선을 보좌하겠소.’ 하고, 그 처(妻)로 하여금 수주(壽酒)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강상인(姜尙仁)을 강계(江界)로 보내어 임팔라실리 등의 군대를 운(運)을 나누어 받아들이기로 하고, 판각(判閣) 설미수(偰眉壽)에게 명하여 축맹헌에게 알리기를,
"만산군(漫散軍)이 많이 우리 나라의 북변(北邊)에 와서 우리 지경을 침략하므로 내가 장수에게 명하여 그들을 치려고 하나 그들이 관군(官軍)이 아닌가 하여 감히 행하지 못하고 있소."
하였다. 축맹헌이 정료위(定遼衛)에 관문(官文)을 보내기를,
"조선 지역에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 변경(邊境)을 노략질하므로 조선 사람들이 이들을 치려고 하나 혹시 관군(官軍)이 아닌가 하여 감히 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거느리고 속히 압록강 가로 와서 협공하여 치면 편리하겠습니다."
하고, 통사(通事) 최운(崔雲)에게 주어 보냈다. 임금이 최운에게 전교(傳敎)하였다.
"네가 정료위로 가게 되면 다만 ‘만산군(漫散軍)이 포주(鋪州) 등지에 와서 주둔하고 있는데 그들이 어디로 갈는지 방향을 알지 못하겠다.’ 하고, 요동 사람이 만약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치려고 하면 너는 ‘포주 등지는 산수(山水)가 깊고 험하여 대군(大軍)이 갈 수 없다.’고 하라."
원문
○納林八剌失里等。 領司平府事河崙, 與左政丞金士衡、右政丞李茂、判承樞府事趙英茂等啓: "今不許納, 飢餓所迫, 必至爲害。 雖不爲害, 皆飢死矣, 宜納之。" 上從崙議。 初, 西北面察理使報: "遣張千戶, 載酒越江, 餉林八剌失里。 八剌失里喜, 殺牛, 與張千戶飮曰: ‘定遼衛軍官皆屬燕。 吾等旣反大明, 不可從燕。 願鋪州江邊, 許我爲農。 不然則分遣各道爲民, 則當補佐朝鮮。’ 乃使其妻行壽酒。" 上遣姜尙仁于江界, 將林八剌失里等軍, 分運納之。 命判閣偰眉壽, 告孟獻等曰: "漫散軍多至北邊, 侵掠我境。 予欲命將擊之, 恐是官軍不敢。" 孟獻移關定遼衛曰: "朝鮮地面, 賊人蜂起, 虜掠邊境。 朝鮮人欲擊之, 恐是官軍, 故不敢。 領軍速來鴨綠江邊, 夾擊之便。" 授通事崔雲遣之。 上敎雲曰: "汝去定遼衛, 但言漫散軍來屯鋪州等處, 不知其指向。 遼東人若欲領兵討之, 汝言鋪州等處, 山水深險, 大軍不可往也。"
태종 2년 (1402) 4월 16일
국역
임팔라실리 등을 받아들이었다.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하윤(河崙)·좌정승 김사형(金士衡)·우정승 이무(李茂)·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조영무(趙英茂) 등이 아뢰기를,
"지금 허용하여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면 굶주림에 다달아 반드시 해를 끼칠 것입니다. 비록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두 굶어 죽을 것입니다. 그들을 받아들임이 옳습니다."
하니, 임금이 하윤의 의논에 좇았다. 처음에 서북면 찰리사(西北面察理使)가 보고하기를,
"장 천호(張千戶)를 보내 술을 싣고 압록강을 건너가서 임팔라실리를 먹이니, 팔라실리가 기뻐하여 소를 잡고 장 천호와 함께 마시며 말하기를, ‘정료위(定遼衛) 군관(軍官)은 모두 연(燕)에 붙었소. 우리들은 이미 명나라에 반기를 들었는지라, 연(燕)을 따를 수 없소. 포주(鋪州) 강변(江邊)에서 우리가 농사를 짓도록 허락해 주시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각도(各道)로 나누어 보내어 백성을 삼으시면 조선을 보좌하겠소.’ 하고, 그 처(妻)로 하여금 수주(壽酒)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강상인(姜尙仁)을 강계(江界)로 보내어 임팔라실리 등의 군대를 운(運)을 나누어 받아들이기로 하고, 판각(判閣) 설미수(偰眉壽)에게 명하여 축맹헌에게 알리기를,
"만산군(漫散軍)이 많이 우리 나라의 북변(北邊)에 와서 우리 지경을 침략하므로 내가 장수에게 명하여 그들을 치려고 하나 그들이 관군(官軍)이 아닌가 하여 감히 행하지 못하고 있소."
하였다. 축맹헌이 정료위(定遼衛)에 관문(官文)을 보내기를,
"조선 지역에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 변경(邊境)을 노략질하므로 조선 사람들이 이들을 치려고 하나 혹시 관군(官軍)이 아닌가 하여 감히 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거느리고 속히 압록강 가로 와서 협공하여 치면 편리하겠습니다."
하고, 통사(通事) 최운(崔雲)에게 주어 보냈다. 임금이 최운에게 전교(傳敎)하였다.
"네가 정료위로 가게 되면 다만 ‘만산군(漫散軍)이 포주(鋪州) 등지에 와서 주둔하고 있는데 그들이 어디로 갈는지 방향을 알지 못하겠다.’ 하고, 요동 사람이 만약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치려고 하면 너는 ‘포주 등지는 산수(山水)가 깊고 험하여 대군(大軍)이 갈 수 없다.’고 하라."
원문
○納林八剌失里等。 領司平府事河崙, 與左政丞金士衡、右政丞李茂、判承樞府事趙英茂等啓: "今不許納, 飢餓所迫, 必至爲害。 雖不爲害, 皆飢死矣, 宜納之。" 上從崙議。 初, 西北面察理使報: "遣張千戶, 載酒越江, 餉林八剌失里。 八剌失里喜, 殺牛, 與張千戶飮曰: ‘定遼衛軍官皆屬燕。 吾等旣反大明, 不可從燕。 願鋪州江邊, 許我爲農。 不然則分遣各道爲民, 則當補佐朝鮮。’ 乃使其妻行壽酒。" 上遣姜尙仁于江界, 將林八剌失里等軍, 分運納之。 命判閣偰眉壽, 告孟獻等曰: "漫散軍多至北邊, 侵掠我境。 予欲命將擊之, 恐是官軍不敢。" 孟獻移關定遼衛曰: "朝鮮地面, 賊人蜂起, 虜掠邊境。 朝鮮人欲擊之, 恐是官軍, 故不敢。 領軍速來鴨綠江邊, 夾擊之便。" 授通事崔雲遣之。 上敎雲曰: "汝去定遼衛, 但言漫散軍來屯鋪州等處, 不知其指向。 遼東人若欲領兵討之, 汝言鋪州等處, 山水深險, 大軍不可往也。"
원본
태종 2년 (1402)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