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3권, 태종 2년 4월 3일 을묘 2/4 기사 /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요동 총병관이 도망친 요동의 토인 이화상 등에 관한 차자를 보내다
국역
삼부(三府)와 기로(耆老)들에게 명하여 이성 병마사(泥城兵馬使)가 보고한 것을 의논하게 하였다. 이성에서 역마(驛馬)를 달려 아뢰기를,
"지난 3월 29일에 요동(遼東)의 군마(軍馬) 5천여 명이 강변(江邊)에 이르러 말하기를, ‘도망한 군대를 추격하여 왔다.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려고 한다.’고 하니, 어떻게 대접해야 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의 뜻은 필시 전일에 받아들인 본국의 백성 90여 명을 추격한 것으로 여기었다. 삼부에 명하여 기로들을 모아 이것을 의논하게 하고, 각사(各司)에 명하여 소견(所見)을 적어 그 단자(單子)를 정부(政府)에 들이게 하였다. 해가 점심때나 되어서 이성에서 역마를 달려 보고하기를,
"요동 총병관(遼東總兵官)이 필둔 구자(必屯口子)에 차자(箚子)를 보내 왔는데, ‘총병관(摠兵官) 서(徐)는 요동 총관의 진동 장군(鎭東將軍)의 자문(咨文)에 의거하여 군무(軍務)에 관한 일을 알립니다. 요동의 토인(土人)들이 배반하고 도망쳤으므로 통병관(統兵官)에게 이자(移咨)하여 추격하여 죽이고 초무(招撫)하게 하였으나, 이제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의 필둔 구자로 따라와 본즉, 적인(賊人)의 종적은 벌써 강을 건너 본국으로 도망하였습니다. 만약 훈련된 군대로 하여금 추격하여 초멸(勦滅)하게 한다면 관군이 그곳에 가서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약탈할까 진실로 염려됩니다. 또 생각하건대, 우리 조정에서 조선 국왕을 예로서 대접하는 뜻이 특히 깊고, 말을 삼에 있어서 공헌(貢獻)함이 모두 다 약속대로 하였으니, 어찌 도망한 자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여 대의를 잃겠습니까? 우선 강변 밖에 머물러서 차자(箚子)를 보내는 바이니, 차자가 도착하는 날 곧 도망간 사람 이화상(李和尙)·김자답리(金者答里)·임팔실니(林八失爾)·이전이(李典伊) 등을 급히 풀어 보내어서 숨겼다가 병화의 흔단(釁端)을 일으키지 마소서.’ 하였습니다. 이것을 받고 곧 군마가 오게 된 연유를 알게 되었고, 또 전일에 받아들인 90여 명도 도망한 군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하니, 임금이 응봉사(應奉司)에 명하여 필둔 구자(必屯口子)의 파절관(把截官)이 보내는 글을 만들게 하여 서 총병(徐摠兵)에게 보내었다.
"도망한 군대로서 우리 나라에 온 자는 없었습니다. 비록 종적이 있다 하더라도 근처의 산골짜기가 깊고 멀어서 이와 같은 도망군이 숨기에 편리하여 어느 골짜기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숨어 있는 곳을 알게 된다면 본조에 상고(上告)하여 잡아 보내겠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9면
- 【분류】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원문
○命三府及耆老, 議泥城兵馬使所報。 泥城飛馹啓: "去三月二十九日, 遼東軍馬五千餘人到江邊, 言: ‘追逃軍而至, 欲結桴過江。’ 何以待之?" 上意謂此必追前日所納本國之民九十餘人者也, 乃命三府會耆老議之, 命各司各以所見呈單子于政府。 日午, 泥城飛馹報:
遼東總兵官移必屯口子, 箚付摠兵官徐見: "準摠兵官鎭東將軍咨, 爲軍務事。 該遼東土人逃叛, 移咨統兵前來, 追殺及招撫。 今親統大軍, 追至鴨綠 必屯口子, 見得賊人蹤跡, 已行過江, 逃往本境。 若便調兵追勦, 誠恐官軍往彼四掠, 玉石不分。 且欽惟天朝待朝鮮國王禮意殊深, 市馬貢獻, 幷皆如約, 豈以納此逋逃爲念, 以失大義! 除權行駐江邊外, 箚付到日, 卽將逃去人李和尙、金者答里、林八失你、李典伊等, 火速解來施行, 毋得隱藏, 以惹兵釁。" 得此, 乃知其軍馬所自來, 又知前日所納九十餘人, 非逃軍也。
上令應奉司爲必屯口子把截官呈狀, 送于徐摠兵曰: "無有逃軍之來我國者。 雖有縱跡, 近處山谷深遠, 如此逃人, 隱藏甚易, 未知隱於何谷也。 若知來隱之處, 則上告本朝, 執而送之矣。"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9면
- 【분류】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국역
삼부(三府)와 기로(耆老)들에게 명하여 이성 병마사(泥城兵馬使)가 보고한 것을 의논하게 하였다. 이성에서 역마(驛馬)를 달려 아뢰기를,
"지난 3월 29일에 요동(遼東)의 군마(軍馬) 5천여 명이 강변(江邊)에 이르러 말하기를, ‘도망한 군대를 추격하여 왔다.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려고 한다.’고 하니, 어떻게 대접해야 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의 뜻은 필시 전일에 받아들인 본국의 백성 90여 명을 추격한 것으로 여기었다. 삼부에 명하여 기로들을 모아 이것을 의논하게 하고, 각사(各司)에 명하여 소견(所見)을 적어 그 단자(單子)를 정부(政府)에 들이게 하였다. 해가 점심때나 되어서 이성에서 역마를 달려 보고하기를,
"요동 총병관(遼東總兵官)이 필둔 구자(必屯口子)에 차자(箚子)를 보내 왔는데, ‘총병관(摠兵官) 서(徐)는 요동 총관의 진동 장군(鎭東將軍)의 자문(咨文)에 의거하여 군무(軍務)에 관한 일을 알립니다. 요동의 토인(土人)들이 배반하고 도망쳤으므로 통병관(統兵官)에게 이자(移咨)하여 추격하여 죽이고 초무(招撫)하게 하였으나, 이제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의 필둔 구자로 따라와 본즉, 적인(賊人)의 종적은 벌써 강을 건너 본국으로 도망하였습니다. 만약 훈련된 군대로 하여금 추격하여 초멸(勦滅)하게 한다면 관군이 그곳에 가서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약탈할까 진실로 염려됩니다. 또 생각하건대, 우리 조정에서 조선 국왕을 예로서 대접하는 뜻이 특히 깊고, 말을 삼에 있어서 공헌(貢獻)함이 모두 다 약속대로 하였으니, 어찌 도망한 자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여 대의를 잃겠습니까? 우선 강변 밖에 머물러서 차자(箚子)를 보내는 바이니, 차자가 도착하는 날 곧 도망간 사람 이화상(李和尙)·김자답리(金者答里)·임팔실니(林八失爾)·이전이(李典伊) 등을 급히 풀어 보내어서 숨겼다가 병화의 흔단(釁端)을 일으키지 마소서.’ 하였습니다. 이것을 받고 곧 군마가 오게 된 연유를 알게 되었고, 또 전일에 받아들인 90여 명도 도망한 군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하니, 임금이 응봉사(應奉司)에 명하여 필둔 구자(必屯口子)의 파절관(把截官)이 보내는 글을 만들게 하여 서 총병(徐摠兵)에게 보내었다.
"도망한 군대로서 우리 나라에 온 자는 없었습니다. 비록 종적이 있다 하더라도 근처의 산골짜기가 깊고 멀어서 이와 같은 도망군이 숨기에 편리하여 어느 골짜기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숨어 있는 곳을 알게 된다면 본조에 상고(上告)하여 잡아 보내겠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9면
- 【분류】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원문
○命三府及耆老, 議泥城兵馬使所報。 泥城飛馹啓: "去三月二十九日, 遼東軍馬五千餘人到江邊, 言: ‘追逃軍而至, 欲結桴過江。’ 何以待之?" 上意謂此必追前日所納本國之民九十餘人者也, 乃命三府會耆老議之, 命各司各以所見呈單子于政府。 日午, 泥城飛馹報:
遼東總兵官移必屯口子, 箚付摠兵官徐見: "準摠兵官鎭東將軍咨, 爲軍務事。 該遼東土人逃叛, 移咨統兵前來, 追殺及招撫。 今親統大軍, 追至鴨綠 必屯口子, 見得賊人蹤跡, 已行過江, 逃往本境。 若便調兵追勦, 誠恐官軍往彼四掠, 玉石不分。 且欽惟天朝待朝鮮國王禮意殊深, 市馬貢獻, 幷皆如約, 豈以納此逋逃爲念, 以失大義! 除權行駐江邊外, 箚付到日, 卽將逃去人李和尙、金者答里、林八失你、李典伊等, 火速解來施行, 毋得隱藏, 以惹兵釁。" 得此, 乃知其軍馬所自來, 又知前日所納九十餘人, 非逃軍也。
上令應奉司爲必屯口子把截官呈狀, 送于徐摠兵曰: "無有逃軍之來我國者。 雖有縱跡, 近處山谷深遠, 如此逃人, 隱藏甚易, 未知隱於何谷也。 若知來隱之處, 則上告本朝, 執而送之矣。"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29면
- 【분류】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