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4권, 숙종 1년 9월 10일 을미 2/4 기사 / 1675년 청 강희(康熙) 14년
이우정·이옥·홍우원·정석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이우정(李宇鼎)을 대사간(大司諫)으로 삼고, 내비(內批)732) 로 이옥(李沃)을 승진시켜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삼고, 홍우원(洪宇遠)을 승진시켜 예조 판서(禮曹判書)로 삼고, 정석(鄭晳)을 승진시켜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삼았다.
이옥은 간사하게 아첨함이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서 혹은 허적을 붙좇기도 하고, 혹은 윤휴를 붙좇기도 하였으며, 서인(西人)을 보면 그 동류(同流)의 허물을 말하고, 동류를 대하면 서인을 해치는 꾀를 교묘하게 말하므로 사람들이 구미호(九尾狐)라고 하였다. 임금이 방(房)733) 의 단자(單子)734) 에서 차례를 뛰어넘어 이옥을 예방(禮房)에 차임(差任)하니, 이옥이 말하기를,
"선조(先朝)에서는 병방(兵房)을 중히 여겼는데, 금상(今上)께서는 대례(大禮)를 이정(釐正)하는 것으로써 예방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를 써서 이를 삼았다."
하며, 경연(經筵)을 열 때마다 입시(入侍)하기를 몹시 요구하여 교묘한 말과 간사한 낯빛으로 주상의 뜻에 아첨해 기쁘게 하였다. 그 장인[婦翁]인 이동규(李同揆)와 더불어 윤휴의 응견(鷹犬)735) 이 되어 밤낮으로 좇아다니면서 권세를 부르고 뇌물을 받았다.
홍우원은 천성이 몹시 독하여 평상시에는 기와나 돌을 머금은 듯하나, 자기네들 안의 참각(慘刻)한 의논을 모두 주장하니, 당여(黨與)가 추중(推重)하여, 응교(應敎)로써 서울에 올라온 지 아홉 달이 못되어 육경(六卿)에 뽑히고, 하루에 세 직임을 겸하였다. 김우명(金佑明)을 배척하면서부터 더욱 친하고 사랑함을 입어 지위와 대우가 윤휴·허목에 다음가게 되었다. 이때 허적·권대운(權大運)·허목·윤휴·홍우원 외에 오시수(吳始壽)·목내선(睦來善)·이무(李袤) 등이 가장 신행(信幸)736) 을 받았는데, 오시수는 용태(容態)가 아리땁고 말씨가 교활하므로 임금이 이를 사랑하니, 이옥(李沃) 등이 이를 많이 본받아서 다투어 야용(冶容)737) 하였다.
정석(鄭晳)은 비록 순후(淳厚)한 듯하나 용렬하고 무식하여 남·정(南鄭)738) 을 국문(鞫問)하기를 청함으로써 공론이 이를 허물하니, 정석도 속으로 부끄러워하여 그 뒤로는 드러내어 참각(慘刻)한 의논을 하지 아니하였다. 후사(喉司)739) 에 오래 있었던 까닭으로써 특별히 승배(陞拜)되었다.
- [註 732] 내비(內批) : 전조(銓曹)의 주의(注擬)를 거치지 않고, 임금이 특지(特旨)로 관원을 임명하는 것.
- [註 733] 방(房) : 승정원의 직무 분담의 단위. 육방으로 나뉨.
- [註 734] 단자(單子) : 사람을 천거하는 추천서.
- [註 735] 응견(鷹犬) : 부하가 되어 분주히 돌아다니는 자의 비유.
- [註 736] 신행(信幸) : 신임과 사랑.
- [註 737] 야용(冶容) : 예쁘게 단장함.
- [註 738] 남·정(南鄭) : 남구만(南九萬)과 정유악(鄭維岳).
- [註 739] 후사(喉司) : 승정원(承政院).
원문
○以李宇鼎爲大司諫, 內批以李沃陞爲右副承旨, 洪宇遠陞爲禮曹判書, 鄭晳陞爲禮曹參判。 沃奸諂絶倫, 或附積, 或附鑴, 見西人則言其同流之過; 對同流則巧爲害西之謀, 人謂九尾狐。 上於房單子, 越次以沃差禮房。 沃曰: "先朝則重兵房, 今上自以釐正大禮, 重禮房, 故用我爲之。" 每於開筵, 極求入侍, 以巧言姣色, 媚悅上意, 與其婦翁李同揆爲鑴鷹犬, 晝夜奔走, 招權納賂。 宇遠天性至毒, 居常如含瓦石, 自中慘刻之論皆主之, 黨與推重。 以應敎, 上來未九朔, 擢六卿, 一日兼三任。 自斥金佑明, 益被親寵位遇, 惡於鑴、穆。 時, 積、大運、穆、鑴、宇遠之外, 如始壽、來善、袤等, 最見信幸。 始壽容態嫵媚, 言語慧黠, 上愛之。 沃等多效之, 競爲冶容。 晳雖似淳厚, 而庸鄙無識, 以請鞫南、鄭, 公論罪之, 晳亦內慙。 其後不顯爲慘刻之論, 以久在喉司, 故特爲陞拜。
숙종실록4권, 숙종 1년 9월 10일 을미 2/4 기사 / 1675년 청 강희(康熙) 14년
이우정·이옥·홍우원·정석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이우정(李宇鼎)을 대사간(大司諫)으로 삼고, 내비(內批)732) 로 이옥(李沃)을 승진시켜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삼고, 홍우원(洪宇遠)을 승진시켜 예조 판서(禮曹判書)로 삼고, 정석(鄭晳)을 승진시켜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삼았다.
이옥은 간사하게 아첨함이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서 혹은 허적을 붙좇기도 하고, 혹은 윤휴를 붙좇기도 하였으며, 서인(西人)을 보면 그 동류(同流)의 허물을 말하고, 동류를 대하면 서인을 해치는 꾀를 교묘하게 말하므로 사람들이 구미호(九尾狐)라고 하였다. 임금이 방(房)733) 의 단자(單子)734) 에서 차례를 뛰어넘어 이옥을 예방(禮房)에 차임(差任)하니, 이옥이 말하기를,
"선조(先朝)에서는 병방(兵房)을 중히 여겼는데, 금상(今上)께서는 대례(大禮)를 이정(釐正)하는 것으로써 예방을 존중하기 때문에 나를 써서 이를 삼았다."
하며, 경연(經筵)을 열 때마다 입시(入侍)하기를 몹시 요구하여 교묘한 말과 간사한 낯빛으로 주상의 뜻에 아첨해 기쁘게 하였다. 그 장인[婦翁]인 이동규(李同揆)와 더불어 윤휴의 응견(鷹犬)735) 이 되어 밤낮으로 좇아다니면서 권세를 부르고 뇌물을 받았다.
홍우원은 천성이 몹시 독하여 평상시에는 기와나 돌을 머금은 듯하나, 자기네들 안의 참각(慘刻)한 의논을 모두 주장하니, 당여(黨與)가 추중(推重)하여, 응교(應敎)로써 서울에 올라온 지 아홉 달이 못되어 육경(六卿)에 뽑히고, 하루에 세 직임을 겸하였다. 김우명(金佑明)을 배척하면서부터 더욱 친하고 사랑함을 입어 지위와 대우가 윤휴·허목에 다음가게 되었다. 이때 허적·권대운(權大運)·허목·윤휴·홍우원 외에 오시수(吳始壽)·목내선(睦來善)·이무(李袤) 등이 가장 신행(信幸)736) 을 받았는데, 오시수는 용태(容態)가 아리땁고 말씨가 교활하므로 임금이 이를 사랑하니, 이옥(李沃) 등이 이를 많이 본받아서 다투어 야용(冶容)737) 하였다.
정석(鄭晳)은 비록 순후(淳厚)한 듯하나 용렬하고 무식하여 남·정(南鄭)738) 을 국문(鞫問)하기를 청함으로써 공론이 이를 허물하니, 정석도 속으로 부끄러워하여 그 뒤로는 드러내어 참각(慘刻)한 의논을 하지 아니하였다. 후사(喉司)739) 에 오래 있었던 까닭으로써 특별히 승배(陞拜)되었다.
- [註 732] 내비(內批) : 전조(銓曹)의 주의(注擬)를 거치지 않고, 임금이 특지(特旨)로 관원을 임명하는 것.
- [註 733] 방(房) : 승정원의 직무 분담의 단위. 육방으로 나뉨.
- [註 734] 단자(單子) : 사람을 천거하는 추천서.
- [註 735] 응견(鷹犬) : 부하가 되어 분주히 돌아다니는 자의 비유.
- [註 736] 신행(信幸) : 신임과 사랑.
- [註 737] 야용(冶容) : 예쁘게 단장함.
- [註 738] 남·정(南鄭) : 남구만(南九萬)과 정유악(鄭維岳).
- [註 739] 후사(喉司) : 승정원(承政院).
원문
○以李宇鼎爲大司諫, 內批以李沃陞爲右副承旨, 洪宇遠陞爲禮曹判書, 鄭晳陞爲禮曹參判。 沃奸諂絶倫, 或附積, 或附鑴, 見西人則言其同流之過; 對同流則巧爲害西之謀, 人謂九尾狐。 上於房單子, 越次以沃差禮房。 沃曰: "先朝則重兵房, 今上自以釐正大禮, 重禮房, 故用我爲之。" 每於開筵, 極求入侍, 以巧言姣色, 媚悅上意, 與其婦翁李同揆爲鑴鷹犬, 晝夜奔走, 招權納賂。 宇遠天性至毒, 居常如含瓦石, 自中慘刻之論皆主之, 黨與推重。 以應敎, 上來未九朔, 擢六卿, 一日兼三任。 自斥金佑明, 益被親寵位遇, 惡於鑴、穆。 時, 積、大運、穆、鑴、宇遠之外, 如始壽、來善、袤等, 最見信幸。 始壽容態嫵媚, 言語慧黠, 上愛之。 沃等多效之, 競爲冶容。 晳雖似淳厚, 而庸鄙無識, 以請鞫南、鄭, 公論罪之, 晳亦內慙。 其後不顯爲慘刻之論, 以久在喉司, 故特爲陞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