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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1권, 순종 즉위년 10월 23일 陽曆 1/1 기사 / 1907년 대한 융희(隆熙) 1년

유길준이 벼슬을 사양하는 상소를 올리다

국역

종2품 유길준(兪吉濬)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국외에서 근무하는 10여 년 동안 조국을 바라보면 바다와 하늘만 멀리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자애로운 폐하께서는 보잘것없는 저의 마음을 굽어 살피고 더없이 큰 죄명을 씻어주고 특진관(特進官)의 영광스러운 벼슬을 주었으므로 감격하고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진실로 명령을 받자마자 달려가야 하고 사사로운 정을 말할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신이 지난해에 사람이 보잘것없고 재간이 없는 것은 헤아리지 않고 망녕되게 대부(大夫)의 직책에 있게 되었으나 정성스러운 마음만 절절했지 무모한 백면서생으로서 충성을 바치려 해도 닿지 않고 믿으려 해도 도리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리하여 나라 일에 어려움이 많은데도 구원하지 못하여 결국 오늘과 같이 되었으나 또 죽지도 못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신의 죄입니다. 어찌 감히 또다시 얼굴을 들고 자신의 일을 꾸미기를 좋아하면서 영광된 벼슬을 탐내겠습니까?

이제 감히 부월(斧鉞)의 위엄을 무릅쓰고 대궐 앞에서 벼슬을 체차해줄 것을 바라는 동시에 전후에 걸쳐 받은 벼슬 품계도 되돌려 바침으로서 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고 자유로운 평민이 되어 나라를 걱정하는 성의를 보이면서 국민의 직분을 다하려고 하는 이것이 신의 더없는 소원이고 진실한 심정입니다. 신의 요청을 빨리 허락해 줌으로써 신의 분수를 편안하게 해주소서.

종묘 사직(宗廟社稷)과 나라의 사태를 생각할 때 차마 곧바로 가버릴 수 없기에 삼가 어리석은 계책을 글의 끝머리에 첨부하여 폐하를 번거롭게 하니 신의 고심을 양해하여 사람이 못 낫다고 하여 버려두지 마시고 유의해서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신이 젊었을 때에 옛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멀리 있는 강대한 원조자를 믿고 가까이 있는 우방을 업신여기면 그 나라는 망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망할 수 있다.’는 것은 꼭 망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 나라는 무엇 때문에 괴로이 바다 복판에서 스스로 지키는 섬나라로서 대륙의 정세에 목을 늘이고 자진하여 불청객 노릇을 하면서 군사를 피폐시키며 군량을 소비하면서 남을 대신해서 전쟁을 함으로써 자국의 흥망을 한판 도박에 거는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화재가 나면 불은 번져서 함께 탈 것이고 같이 탄 배가 바람을 만나면 서로 물에 빠지게 됩니다. 저 나라는 자국을 보위하는 방도에서 우리나라의 완전 독립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찌감치 실력을 갖출 것을 원하고 우리나라가 빨리 실적을 올릴 것을 바라며 우리나라를 근심하기를 자기 나라를 깊이 근심하는 것처럼 하고 우리나라를 아끼기를 자기 나라를 절절이 아끼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과 기분을 가라앉히고 시세와 사정에 의거하여 논할 때 과연 어떤 사람의 말과 같이 저 나라가 딴생각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에는 무엇 때문에 일찌감치 대처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그들이 침범하기를 기다린단 말입니까? 또 가령 저 나라가 겉으로는 어질고 의로운 체하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도와준다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만약 이런 형세를 이용하여 기회에 따라 잘 대응한다면 진짜 독립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이나 두 번, 세 번까지 도와주어도 사람들이 몽매하고 국방이 약한 것이 구태의연하고 조금도 전진하는 기색이 없으며 백성들의 생업이 영락되고 빈곤이 더욱더 심하여 한 가지도 기대어 안정될 가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하의 형세는 수시로 변하고 만국의 정세는 일에 임하여 달라지는 것이어서 그 형세가 걷잡을 수 없이 급작스레 바뀌는 것이 지난날에 대비할 것이 아니므로 저 나라는 수수방관하면서 우리나라가 자동적으로 떨쳐 일어날 것을 기다릴 수 없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무모한 외교가 또 어떤 화근을 일으켜 저 나라까지 끌어다가 헤아릴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뜨릴지 모르기 때문에 광무(光武) 9년 11월의 협약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국내의 정치에서는 다만 그들의 고문(顧問)만 들여서 협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정리하여 조속히 수습하기를 바랐으나 무관심하고 흐리멍덩하여 성과를 올릴 가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자 또 이 해 7월의 협약으로 정치와 법률 부문을 지도하고 승인하는 권한을 세우고 관리의 임명과 해임도 간섭하는 동시에 일본 인사들을 추천하여 돕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용병(傭兵)이 국방을 담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을 만나면 폭동을 일으켜 명령에 반항하고 소요를 일으켜 극도로 위험하기 때문에 우선 해산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일국(一國)의 체면으로 본다면 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지만 맹자(孟子)의 말에 ‘나라는 반드시 자기 스스로 정벌한 다음에야 남이 정벌하고 사람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업신여긴 다음에야 남이 업신여기는 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자체로 우리 조국을 지킬 힘이 있고 자체로 우리의 외교와 내부 정치를 할 지혜와 능력이 있다면 저 나라가 어찌 감히 이렇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전후에 걸친 두 가지 조약은 우리가 실로 우리 스스로 취한 것이고 저 나라가 억지로 우리에게 씌운 것이 아닙니다. 대체로 조약이란 한 번 정하면 준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심성의로 지켜야만 비로소 저 나라에서도 성심성의로 지켜줄 것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협약의 첫머리 글에 특별히 쓴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때까지’라는 말을 상고해 보건대 우리나라를 근심해 주는 본의와 우리나라를 아껴주는 진정이 문구 위에 철철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강해지는 길을 권고하고 우리에게 부강해지는 길을 바라다가 우리가 부강해진 날을 기다려 장차 회복시켜 주려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우리는 병든 사람과 같고 저들은 용한 의원이 되어 우리가 매우 위독해서 죽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진단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구라파 사람의 말에 의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자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자기 나라의 위치와 형편 그리고 우방과의 관계를 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신은 이상의 두 가지 말을 얻어들은 후 30년 동안 하루도 잊지 못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우리나라는 강토로 보나 인구로 보나 빈약하고 작다고 말할 수 없는데도 역대로 문관(文官)은 교만하고 무관(武官)은 천시되던 끝에 옛날에 수(隋)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당(唐)나라 군사를 물리치던 웅건한 기개를 완전히 상실하고 관문을 닫아걸고 통상을 금하며 검박한 것을 숭상하고 공업을 억제한 결과 사람들은 옹크리고 살아감으로써 풍속은 점점 비속해지고 물건들은 보기 좋은 것들이 없고 재물이 그에 따라 고갈되어 버렸습니다.

만국의 풍조가 바야흐로 도도히 끓어 넘치고 진취적인 경쟁이 날로 심하며 계발하는 지식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긴긴 밤중에 놀면서 고대의 태평세월만 찬양하고 있습니다. 송(宋)나라 학문의 찌꺼기를 걷어먹으면서 홀로 세상에 현자인 체하고 명(明)나라 이후의 의관을 그대로 차리고 만대에 제가 높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외교란 것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자주란 말이 무슨 명목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일본이 동족으로 도와주는 가까운 이웃 나라로서 옛날에는 우리나라보다는 뒤떨어졌지만 지금은 선각자로 자처합니다. 병자년(1876) 조약은 우리와 좋게 지내면서 우리의 독립을 인정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꿈을 꾸듯이 혼미하였고 갑신년(1884)의 일은 우리의 사변과 관련하여 우리를 독립에로 격려한 것인데도 우리는 서로 흘겨보면서 반대하였습니다. 갑오년(1894)의 일 청(日淸) 전쟁으로 말하면 저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안팎으로 변란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자체로 지켜내지 못할까봐 걱정하여 분연히 의리를 내세워 군사를 대신 일으켜 가지고 우리의 독립을 도우려 한 것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조정신하들은 서로 어긋나서 단합되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안정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변고가 거듭 생겨 우리와 저들과의 심정이 서로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계가 멀어진 것이 지난날보다도 심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10년을 덧없이 보내고 갑진년(1904)의 일 로(日露) 전쟁 때에 와서는 저 나라에서 우리를 대하는 방법이 그만 변했던 것입니다. 대체로 갑오년의 전쟁은 그 씨가 임오년(1882)에 이미 뿌려졌고 갑진년의 전쟁은 그 조짐이 이미 병신년(1896)에 싹튼 것이었습니다. 지난날 우리나라가 임오년 후로 한결같이 쇄신하고 부강해져 내부 정치에서는 면목을 고친 아름다움이 있고 외교에서는 모욕을 초래하는 잘못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일 청 전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갑신년 이후라도 우리의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를 똑똑히 알고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본을 친근히 하고 믿으면서 민간의 실업을 일으켜 세우고 국방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일 로 전쟁이 없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꼭 오늘의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일본이 전후에 걸쳐 몇 십만의 생명을 잃고 수십억 원의 재물을 탕진한 두 차례의 큰 전쟁을 하게 된 것은 그 도화선의 폭발된 시초는 서울의 정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당국의 보위하는 신하들은 그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 나라가 우리를 해치려는 마음을 품은 지는 진실로 하루아침과 저녁동안의 일이 아니며 그들이 이른바 「우리를 인정한다.」, 「우리의 독립을 도와준다.」는 것은 단지 꾸민 의로운 말을 빌어가지고 그들의 음흉한 칼날을 교묘하게 숨기기 위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세력이 넉넉해지기를 은밀히 기다리기 때문에 요즘에는 마침내 진심을 드러내어 우리나라의 병증세를 살펴보고 음식을 조절시키지 않을 수 없고 약을 신중히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일도 정신과 생각을 번거롭게 하여 몸조리에 방해되는 것은 또 일체 금지시키는 동시에 곁에는 능숙하게 간호하는 사람을 두어서 주밀한 치료를 하여 소생 완쾌시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의 병세가 물러가고 원기가 충실해진다면 간섭하고 구속하던 저 나라의 의원도 따라서 자연히 가겠지만 그 병이 낫지 않고 단지 쓴맛을 싫어하여 먹기 거북한 약을 마다한다면 저들이 어찌 애쓰던 일이 허사로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며 자기들의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것도 생각지 않고 손을 떼어 두말없이 그만두겠습니까.

신이 가만히 보건대 온 나라 사람들은 모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자기 한 몸의 명예와 절개를 위해서는 민영환(閔泳煥)처럼 자살한 것이 서릿발 같은 의로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종묘 사직의 큰 계책에 있어서는 진실로 망할 수 있다는 경계를 마음속에 새기고 자기를 아는 식견을 가지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쓸데없는 의심을 품어 저들에게 환심을 잃거나 저들의 분노를 사지 말고 성심성의로 신뢰하면서 서로 도와 좋게 지내면서 우호하며 협조하고 유익한 일을 함께 하여 밤낮없이 부강한 경지에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지도하고 승인하는 권한과 관리를 임명하고 해임하는데 동의하는 문제로 말한다면 이것은 한 대신에 관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통감(統監)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객경(客卿)처럼 보며 도움을 받는 내각(內閣)의 대신(大臣)처럼 믿어준다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인을 관리로 쓰는 문제는 나라 사람들이 틀림없이 많이 의심하고 꺼릴 것이지만 신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찍이 우리가 두었던 고문(顧問)은 모두 우리 관리 이상의 권한을 가졌으므로 명목은 고빙(雇聘)이라 하지만 사실은 모두 다 감독이었으므로 서로 아래가 아니 되려 버티기만 하여 매사가 거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관직을 주어서 각각 직접적인 책임이 있게 하여 기율(紀律)로 묶어두고 분한(分限)을 세워서 서로 넘지 않고 법대로 준수하는 것만 못하였습니다. 전문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적임자에게 위임하여 성취시키는 것이 더욱 적당하지만 우리의 문무 관리들은 정사에 익숙하지 못하니 능통한 외국 사람을 섞어 등용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서 본받게 하는 것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첩경입니다.

우리나라의 풍속은 전담 제도〔專制〕가 습관이 되어 관리의 위엄이 중하고 관리의 권세가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리들을 보기를 사람 위에 있는 사람처럼 보면서 감히 같이 다니지도 못하는데, 게다가 또 해외에서 온 귀신 호랑이가 나라 안에 횡행하면 그를 두려워하고 미워할까봐 걱정됩니다. 그러나 만약 법의 기강을 명백하게 정하고 직무 한계를 엄격하게 세워서 국민에게 국가의 관리를 공공(公共)의 노복(奴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도록 한다면 그를 등용할 때는 적임자이면 그만이지 자기 나라 사람과 외국 사람을 무엇 때문에 가리겠습니까. 그렇지만 폐하의 조정에 있으면서 폐하의 녹봉을 먹는 이상에는 모두 다 폐하의 신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나라에서 추천한 자를 귀화시켜 충실을 선서하게 하고 바로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 쓴다면 민심에 더욱 만족할 것이고 조치도 매우 편할 것이니 이것은 그들과 함께 강구해야 할 문제입니다.

군대 해산에 관한 문제로 말하면 이는 나라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놀라게 하고 나라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모르는 사람들은 온갖 의심을 가지게 되며 심지어는 저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삼켜 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군비를 먼저 걷어치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강해지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협약에서 하나의 큰 주안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용병은 시의(時宜)에 적합하지 않고 아무 쓸모도 없는 큰 물건처럼 되었으니, 먼저 해산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 바탕을 깨끗이 한 다음 국고의 재력을 보아서 장재(將材)를 훈련 육성하고 군제를 개편하여 전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워서 만대의 간성(干城)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영구히 해산하여 우리나라가 강하게 되는 길을 끊는다면 이것은 조약 내용에 배치되어 천하에 신용을 잃게 될 것이니, 저 나라에서 어찌 이렇게 할 리가 있겠습니까. 대체로 한 나라의 독립은 헛소리로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우리나라의 독립은 우리 자체로 한 것이 아니고 한때에 움직임의 남은 힘을 받은 데에 불과했으므로 그 움직임이 그치자 우리의 독립도 절반의 면모가 감추어졌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독립을 하려면 마땅히 먼저 그 실력을 닦아 세계 만국을 향해서 시행해야 하고 일본 한 나라만 향해서 시행할 것이 아닙니다. 저 나라에서도 언제 우리가 정식으로 독립되는 것을 원치 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저 나라에서는 인정하였지만 우리가 하지 않았고 저 나라에서는 격려하였지만 우리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 나라에서는 끝내 도와 세워 주었지만 우리는 그래도 해내지 못하였습니다. 비단 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주권의 자주를 남에게 주고 칼을 거꾸로 잡았으므로 저 나라에서는 단연코 그만둘 수 없는 사정에 의하여 우리와 오늘과 같은 협약을 맺은 것이 사실은 우리의 독립을 보호한 것이고 파괴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독립을 도와준 것이고 빼앗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시국의 대세로 본다면 이것은 저 나라로서는 의로운 것이 되고 우리로서는 이로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우리가 하지 않는 것과 해내지 못하는 것이 지난날에 마지못해 하던 것처럼 된다면 저 나라에서 보호해주던 힘도 장차 변해서 파멸의 작용을 할 것이고, 도와주려던 생각도 변해서 없어지고 빼앗으려는 기회로 될 것이니 어찌 신중히 생각하고 분발하여 온 나라가 하나로 뭉쳐 밤낮없이 사생결단하고 부강하기 위한 계책으로만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저들의 진의가 평화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도 평화로 대응하여 외교에 있어서는 저들이 대리하게 맡겨두었고 국내의 정치에는 저들의 지도를 받고 있은 것입니다. 이다음에 우리의 세력이 자라나서 문명한 이웃 나라와 비등할 때 평화의 진의에 의하여 저들이 대리하던 것을 회수하고 저들의 지도를 그만두게 한다면 저들도 응당 평화적으로 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감히 말하기를, 우리나라를 광복하는 길은 한결같이 평화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성취시키는 방법은 오로지 부강을 이룩하는 데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부강하기 위한 대책은 세우기 않고 광복되기만 바라는 것은 백년동안 황하(黃河)가 맑아지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모든 신민(臣民)들은 늙은이와 젊은이,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할 것 없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전해주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도와주며 형제들이 서로 알리며, 벗들이 서로 권하여 한결같이 부강해질 도리만 연구하고 광복할 일만 생각하여 아무리 위급할 때라도 이것만 알고 밥을 먹을 때나 쉴 때나 이것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광명정대하기를 푸른 하늘에 밝은 해처럼 하여 한 가지 일도 숨기는 것이 없고 한 가지 물건도 가린 것이 없게 한다면 저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의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의 마음이 마치 겹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 같아서 조금도 거기에 의혹을 가지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일반적인 감정은 자기를 친근히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를 멀리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저 나라에서 만약 우리를 믿어주지 않는 심정이 있다면 우리가 비록 부강해졌다 하더라도 앞으로 광복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며, 우리에게 정말 믿을 수 없는 점이 있다면 광복될 가망이 없을 뿐 아니라 국사(國事)의 곤란함이 더욱더 참담한 지경에 굴러 떨어져서 결국은 어찌할 수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조용하던 조정에 다툼질하는 말이 떠들썩거리고 무식한 민간에서는 떠도는 말이 서로 생기면 간혹 글공부를 하고 충성을 바치겠다는 선비도 시국을 오해하여 의롭던 사람이 미친 사람으로 변하여 창과 깃발을 만들고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불러 모아 하는 일이란 결국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노략질하는 데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벼슬 자리를 잃고 불평을 품은 무리들과 때를 타서 들고 일어나는 무리들은 닭이 봉황의 깃을 빌리고, 사슴이 표범 가죽을 쓰듯 하여 그것으로 인해 노여움과 독기를 제멋대로 부려서 안으로는 나라에 근심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좀 지식이 있다는 자는 손뼉을 치고 세계정세를 말하되 북쪽도 돌아보고 서쪽도 넘겨다보면서 열강간의 세력이 균등해진다는 논의가 당장 일어나서 우리는 앉아 그 이익을 받는다고 하여, 경거망동하다가는 누가 임금에게 미치며 밖으로 우방의 감정을 사게 될 것이니, 이것은 다 자기를 아는 식견이 없는 것이고 망할 수 있다는 경계를 범하는 것입니다.

폴란드〔波蘭〕는 외국 원조를 함부로 요구한 탓으로 도리어 분할 당하였으니 이것은 오래지 않은 지난날의 교훈이었고 미얀마〔緬甸〕는 몰래 딴 생각을 품은 것으로 인하여 그만 망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또 후세의 교훈이 될만 합니다. 어찌 두렵지 않으며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나라가 우리나라에 바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스스로 부강해져서 우리나라의 권한을 자체로 회복하여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니, 우리나라와 저 나라 사이에는 다만 지성(至誠)으로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 폐하는 중흥의 위업을 이어받아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시운(時運)을 열어놓아야 하겠으나 국시(國是)가 아직도 서지 않았고 백성들의 뜻이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평화와 광복에 대한 계책을 국시로 세워서 신하와 백성들에게 명백히 조칙을 내려 그것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신봉하게 하여 그들의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치고 집집마다 이 말을 외우게 하여 부강을 도모하기 바랍니다.

신으로 말하면 원래 독립의 의리로 보아 황제의 대신이 되었던 사람이었으나 나라 운수가 차질이 생겨 지금 와서는 죽으려고 해도 죽을 곳이 없고 살려고 해도 살 재미가 없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라에서 벼슬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대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구구하고 구차스럽게나마 살려고 하는 것은 전도가 유망하여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방도를 하루라도 빨리 다그치면 우리나라의 광복이 그만큼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질이 미련하고 학식이 보잘것없어서 문(文)은 임금을 도울 자질이 못되고 무(武)는 난국을 다스릴 지략이 없어서 감히 천자의 대신 노릇을 함으로써 이 비상시에 훌륭한 인재가 나설 길을 더는 방해치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전후에 걸쳐 받은 품계를 되돌려 바치고 자유로운 평민으로 내려가서 몸을 시정배들 속에 둠으로써 나라에 보답하는 하찮은 성의나마 바치려합니다. 이로부터 만약 폐하의 광복에 관한 국시를 함께 받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서로 원수진 것도 잊으며 서로 혐의진 것도 제쳐놓고 사이좋게 손잡기를 형제간과 같이한다면 위로는 폐하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을 것이고 아래로는 국민들의 화목에 방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평화와 광복을 위해서는 역시 나라의 중책을 스스로 맡으려 하므로 신의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신의 이 마음과 이 정신은 빼앗을 수 없고, 신의 뼈는 갈아버릴 수 있어도 신의 이 기백은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은 일본에 오래도록 머물러있는 동안 학문을 닦은 것이 없고 예술(藝術)도 연구한 것이 없었으나 가슴 속에 간직하고 뼈에 새겨서 가득히 가지고 돌아온 것은 일본 국민들의 충의로운 도리뿐입니다. 신은 물론 우리 국민의 충의로운 천성이 저 나라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발휘하여 활용하는 방도에서는 아마도 부족함이 있다고 봅니다. 동서양에서 찾아보고 고금을 통해봐도 저 나라는 정말 모든 나라보다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위로는 신분이 높은 귀족으로부터 아래로는 천한 하인에게 이르기까지 오직 자기 임금만 알고 자신은 모르며 오직 자기 나라만 알고 자기 집은 모릅니다. 대체로 선비이건 농군이건, 기능공이건 상인이건, 남녀노소(男女老少)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현명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거나를 막론하고 다 말하기를, ‘이는 우리 임금이다.’, ‘이는 우리나라다.’라고 하면서 임금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죽는 것을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편안히 여기며, 나라에 위난이 있으면 사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면서 자기 집 재산을 다 내어 바치기도 하고 목숨을 포기하고 달려갑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일체된 그 앞에는 물과 불의 애로 난관이 없게 되니, 이것이 2,500여 년 동안 내부에서는 임금의 계통을 갈아치우는 변고가 없고 외부에서는 외적의 침습을 받는 수치가 없었던 것이며, 또 몇 해 전에 청나라와 싸워서 이기고 지난해에 러시아와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만약 우리 국민의 충의로운 천품에다 이러한 기개와 지조를 겸하기만 한다면 부강과 광복을 이룩하는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앞으로 일본 국민이 자기 황실을 떠받들고 자기 나라를 보위하는 데 발휘하는 충의의 도리로 우리 국민을 각성시키고 우리 국민을 인도하며 우리 일상 응용하는 나라 기풍을 변경시켜 폐하의 종묘 사직과 나라에 다 바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정말 부강해져서 광복된 실상이 진짜로 있게 된다면 지난날에 약속한 말이 변경할 수 없는 글에 실려 있어 해와 별처럼 밝고 쇠와 돌처럼 견고하므로 하늘과 신이 위에서 굽어보고 만국이 주위에서 증명하고 있는 만큼 일본이 어떻게 일시적인 일을 가지고 영구불변한 규례로 간주할 수 있겠습니까. 그 역시 기뻐하며 다행하게 여기고 즐겨 따라서 두 나라의 지극히 크고 더없이 중한 일이 서로 사이좋은 교제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또 그저 부강만으로는 얻는 것이 아니고 마땅히 우방을 업신여기지 않겠다는 경계를 고수하면서 자기 나라를 자기 스스로 아는 심정을 깊이 간직하고 저 나라와 함께 행복도 불행도 같이 나누고 이해관계도 같이하여 진심으로 서로 믿어서 저들로 하여금 정말 우리가 저들을 믿는 것이 평화에서 나왔다는 것을 충분히 믿게 한 다음에야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신은 민간에 물러나와 있으니 시끄러운 말을 하여 존엄한 폐하를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둘 수 없는 일편단심을 잠자코 참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폐하의 엄한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보잘것없는 자에게까지 자문하시는 기회에 말씀드리는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저의 망녕됨을 용서하시고 유념하여 잘 살펴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특별히 진술한 논의는 지금의 형편에 절실히 맞는다. 유신하는 이 때에 경을 놓아 둘 수 없다. 벼슬 품계가 있고 없는 것이야 경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경은 사임하지 말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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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三日。 從二品兪吉濬疏略:

臣在外待罪, 十餘星霜, 瞻望祖國, 海遠天長。 伏蒙聖慈俯燭微衷, 滌無犯之罪名; 授特進之榮職, 感激惶蹙, 罔知攸措。 固宜聞命奔走, 不遑言私。 竊伏念臣曩年, 不揆人微才薄, 妄從大夫之後, 丹心徒切, 白面無謀, 願忠而未達; 欲信而反疑。 國事多難, 旣不能救延, 竟至有今日, 又不得死, 此實臣之罪也。 安敢復抗顔自好, 沾沾爲榮祿計哉? 玆敢冒斧鉞之威, 叫閽乞遞, 兼還納前後品階, 以贖臣罪萬一, 而爲自由平民, 效憂愛之誠而盡國民之職, 是臣之至願也、實情也。 伏願亟許臣請, 以安私分。 臣低回輦轂之下, 仰念宗社民國之事, 不忍便去。 故謹尾附愚策, 仰瀆崇嚴, 諒臣苦心, 勿以人棄, 留神澄省焉。 臣이 少時에 嘗讀古書니 有曰恃强大之遠援고 侮狎近之與國者 其國이 可亡이라 니 可亡者 不必亡之謂也ㅣ라。 或者曰彼何苦以環海自守之島國으로 延頸於大陸風雲야 自薦爲不速之賓而勞師費餉고 代人爲戰야 賭自己之興亡於一擲哉아? 나니 夫隔壁失火에 延至共焚이오 同舟遇風에 淪胥以溺이라。 彼在其自衛之道에 不可無我之完全獨立일𩭲 故로 願我之早備其實力며 望我之速擧其實績하야 憂我 如憂其國之深고 愛我 如愛其國之切이니 今也에 平心虛氣야 就時勢據事情而論之혼 果如或者之言야 旣知彼有異心인데 何不早爲之備而坐待其侵犯乎잇가? 且使彼로 外假仁義야 謀我獨立이라도 我若因勢利用야 隨機善應이면 可以成眞이어 一之再之에 至于三焉호 人智之蒙昧와 國防之虛弱이 依然如故에 少無前進之色고 民業之委靡貧殘은 轉轉愈甚야 一無可恃而爲安이오 天下之勢 隨時而變고 萬國之情은 臨事而異야 其急轉直下之光景이 有非疇昔之比라。 則不能袖手傍坐하야 以待我不可待之自動振作이오 而竊懼我外交之無謀 又不知引出那邊禍機야 摟彼共墜於莫可測之坑塹이라。 乃以光武九年十一月之協約으로 借受我外交之權고 至內治則只入其顧問而協助之야 以蘄我ㅣ 自行整理에 趁速就緖러니 歇后漫漶에 杳無奏效之期라。 則又以本年七月之協約으로 政法之上에 立指導承認之權고 官吏之任免을 亦行干涉而兼入推薦之日本人士야 以助理之며 且以我傭兵이 非徒不足爲國防之具라。 臨事暴動에 抗命滋騷야 極爲危險故로 姑爲解散니 顧以一國之體面則皆非我所欲이나 然이나 鄒 孟氏ㅣ 言‘國必自伐而後에 人이 伐之고 人必自侮而後에 人이 侮之’라니 苟我ㅣ 有自守我祖國之力과 自行我外交與內治之知能이면 彼ㅣ 豈敢爲是哉잇가? 故로 前後二約之案은 我實自取오 非彼之强加於我也ㅣ라。 夫約言一定에 不可以不從이니 我以誠心守之然後에 始可望彼之誠心守之ㅣ라。 謹按協約冒頭之文에 特筆有迄認富强之言니 可見其憂我之本意와 愛我之眞情이 津津溢於辭表야 勸我以富强之道며 望我以富强之道야 待我富强之日而將以復之也ㅣ니 譬之컨대 我猶病人이오 彼爲良醫라。 診我之甚危야 或至於亡也ㅣ오 且按歐人之言에 有云‘爲國者ㅣ 貴自知也’라호니 自知者 言知其國之位處狀勢와 與夫與國之關係也ㅣ라。 臣이 得此二說야 三十年未敢一日忘也호이다。 竊伏念我國家ㅣ 以土以人에 不可曰貧而弱而小로 而歷世文驕武賤之餘에 全失古代破隋斥唐之雄氣고 加之以閉關絶商며 崇儉抑工야 人爲幽蟄之活而俗漸以卑고 物無優美之觀而貨隨以索이라。 萬國之風潮ㅣ 滔滔方盪야 進取之競爭이 日劇고 啓發之知識이 日新이어 我乃優遊長夜之中而謳歌古代之太平야 啜宋餘之糟粕而獨賢天下고 襲明後之衣冠而自高萬世야 不知外交之爲何事ㅣ며 自主之爲何名이러니 日本이 以同族輔齒之近隣으로 昔之爲我之後進者ㅣ 今則自居爲先覺야 丙子之約은 與我爲好而認我獨立也어 而我ㅣ 昏昏如夢고 甲申之事 因我有變而激我獨立也어 而我睊睊相反며 若甲午日、淸之役則彼ㅣ 見我之有內外亂而懼我之不敷自守야 奮然出義에 代爲興師야 以扶我之獨立也어 而我之廷臣이 乖離未合고 疑懼未定而中間之變故ㅣ 從而疊出야 不徒我彼之情이 齟齬不容이라。 疎間之實이 有甚前日야 彼ㅣ 知我之不可與有爲일𩭲 荏苒十年에 以及乎日、露甲辰之役야 而其對我之政略이 遂變니 蓋甲午之役은 其種이 已播於壬午ㅣ오 甲辰之役은 其兆ㅣ 已萌於丙申이라。 向使我로 在壬午之後야 一意刷新에 移爲富强야 內治ㅣ 有改觀之美고 外交ㅣ 無招侮之失이란달 其必無日、淸之戰이오 且在甲申之後라도 凡我執政이 明自知而怵可亡야 親信日本而振興民間之實業고 講修國防之費란달 其或無日、露之爭이며 而其有之라도 我ㅣ 不必至有今日之境이니 由是觀之혼 日本之前後失幾十萬生靈과 糜幾十億帑財之二大戰爭이 其導火爆發之口 謂在於漢城政界라도 我當局折衝之臣이 將無所逃其責矣라。 或謂彼之包藏禍心이 固非一朝一夕이니 其所謂認我扶我之獨立은 特假粉飾之義聲야 巧隱其譎詐之鋒이오 而暗俟力贍勢優之日이라。 故至近者에 竟露其眞脈며 察我之證야 飮食을 不可不使之節也ㅣ며 藥餌를 不可不使之愼也ㅣ오 且凡世務之足以煩神惱慮야 有妨於調將之理者 又不可不一切禁而止之고 傍置能手之看護야 以行其周到之療治而甦完之야 使爲康壯之人也ㅣ라。 苟我病之退而元氣ㅣ 實인 彼醫之干涉拘束이 亦從而自去어니와 厥疾은 不瘳고 只厭苦口야 而辭瞑眩之藥이면 彼安肯不恤其功之虧며 不顧其責之廢고 斂手唯唯而止哉잇가? 臣이 竊觀擧國之人心이 皆抱不滿이라。 爲一己之名節則如閔泳煥之烈殉이 可謂日霜其忠義로 至於保國安民宗社之大計 固在乎服可亡之戒而懷自知之見야 毋或執迷懹疑而失彼之歡하며 集彼之怒고 推誠信賴而相資爲善며 敦好協和而共濟爲益야 期日夜臻富强之域이나 今以其指導承認之權과 與夫官吏任免之同意로 言之則直不過一大臣之事耳라。 陛下ㅣ 其以統監으로 視之爲尊寵之客卿하시며 信之如依毗之閣臣시면 則足矣오。 且用日本人爲官吏之事 國人必多疑忌나 自臣觀之면 不然也니 曾我所置之顧問이 皆執官吏以上之權야 名爲雇聘而實則箇箇監督也라。 相持不下에 每事澁滯하니 反不如授以官職하야 使各有直接之責任而束之以紀律며 立之以分限야 毋相踰越而謹守如法이오 至於專門之技術은 委任責成이 尤爲允當而顧我文武官吏ㅣ 不閑政事則混用能達之外人야 以示模範而使則效之ㅣ 亦改善之一捷徑也ㅣ니 我國之俗이 專制成習야 官威ㅣ 重而官權이 高故로 人之視爲官爲吏之人은 如人上人야 不敢輩行이라。 則又恐添舶來鬼虎ㅣ 橫行於國中而畏惡之로 若明定法紀며 嚴立職限야 使國民으로 知國家之官吏ㅣ 不過爲公共之僕이면 其所用之ㅣ 惟才可耳니 內外之何擇哉잇가? 然이나 立陛下之朝而食陛下之祿則皆可曰陛下之臣子ㅣ니 彼所推薦而來者 使之歸化而宣忠實之誓야 直爲我人而用之면 尤慊於民心하야 施措ㅣ 甚便이니 此 宜與彼로 籌講者也ㅣ오 至若解兵一事 駭國人之耳目고 傷國人之感情야 不知者 危疑萬端에 至謂彼欲呑噬我故로 先徹我兵備나 然이나 此則決不然也ㅣ라。 彼之助我爲强은 協約之一大主眼而顧我傭兵이 不合時宜에 徒爲長物則先行解隊之擧야 以淸其本而視國庫之力야 鍊育將材며 改編軍制야 使全國之民으로 就兵役之義務而建萬世之干城也ㅣ니 若不然而永行解散하야 俾絶我爲强之道則是 背于約言야 失信天下ㅣ라。 彼ㅣ 豈爲此哉잇가? 夫一國之獨立은 非虛聲之所可撑支라。 故로 舊我之獨立은 非我之自爲오 不過一時之受動餘力則其動이 息而我之獨立이 亦鞱半面者也ㅣ니 我欲自爲眞正獨立인 宜先修其實야 向世界萬國而爲之오 非只向日本一國而爲之라 彼ㅣ 何嘗不願我爲正面獨立哉잇가? 彼ㅣ 認之호 而我ㅣ 不爲며 彼ㅣ 激之호 而我ㅣ 不爲라。 故로 彼ㅣ 終乃扶植之어 而我猶且不能爲오 而非徒不能爲也ㅣ라。 反欲擧其主權之柄야 授之人而爲倒持之用일𩭲 彼斷然以不得已之事로 約我於今日之地니 實保護我獨立이오 非破滅之也ㅣ며 輔成我獨立이오 非廢奪之也ㅣ라。 以今時局之大勢로 此可曰在彼爲義오 在我爲利로 而又我之不爲也와 不能也에 如曩時之泄泄則其保護之力이 將變而爲破滅之用也ㅣ오 輔成之心이 轉而爲廢奪之機也ㅣ리니 其可不惕然念勃然奮야 擧國爲一而罔晝夜決死生進進爲富强之計哉잇가? 固知彼之眞意ㅣ 在於平和故로 我亦以平和應之야 外交焉委其代辦고 內治焉聽其指導니 後來我勢之長이 可伍文明之隣야 以平和之眞意로 收其代辦며 謝其指導則彼亦當以平和應之라。 故로 臣이 敢曰惟我光復之道 一由平和而其成就之方은 亶在富强이니 不自爲富强之策고 只望允復之業者 無異於坐俟百年之河淸이라。 凡爲臣民者ㅣ 無老無少無貴無賤고 父子相傳며 夫婦ㅣ 相勖며 兄第ㅣ 相告며 朋友ㅣ 相勸야 一惟富强之道 是究며 光復之事 是念야 顚沛是食息是而光明正大 如靑天며 如白日야 無一事之隱며 無一物之蔽則彼知我上下之心이 如洞開重門야 小無挾疑滋惑於其間호리니 人之常情이 親我者 愛之고 疎我者 惡之라。 彼ㅣ 若有不相信之情이면 我雖富强이라도 前途光復之事ㅣ 甚難이오 我ㅣ 眞有不可信之端인 則非徒光復之無望이라。 國事之艱難이 層層轉入於慘憺之地야 終必至於莫可爲矣어 廊廟ㅣ 閑閑에 嘖舌紛至고 閭巷이 貿貿에 浮言胥動則間或自命爲讀書願忠之士ㅣ 誤解時局에 義變爲狂야 竹槍席旗로 嘯聚烏合야 其所爲ㅣ 究不過於殺越摽掠而失職不平之群과 乘時竊發之徒ㅣ 鷄借鳳毛며 麋蒙豹皮야 因之逞其怒肆其毒而內貽國家之患며 其稍有知者 抵掌談宇內事야 北眄西翹에 庶列强均勢之論이 朝夕且起而我乃坐受其利라야 輕擧妄動에 累及君父而外招與邦之怒니 皆乏自知之見而犯可亡之戒者也라。 波蘭이 以妄求外援之故로 反被分割니 此其前鑑이 不遠이오 緬甸이 因陰懷貳心之事야 遂至覆亡니 又其後轍을 可戒라。 可不懼乎ㅣ며 可不愼乎잇가? 彼之所望於我者ㅣ 在我之自爲富强而自復我權야 以保東洋之永遠平和也ㅣ니 我彼之間은 只有至誠之平和而已라。 今陛下ㅣ 承中興之緖사 啓一新之運而國是ㅣ 尙有未立야 民志ㅣ 從而未定니 伏願以平和光復之策으로 立爲國是샤 明以詔之臣民사 使奉之爲金科王條而一其心協其力야 家誦戶讀而圖爲富强焉소셔 若臣則素以獨立之義로 爲天子之大臣者也ㅣ라。 國步蹉跎에 到今地頭야 欲死而無所고 欲生而無樂니 以何面目으로 立於國中而見天下之人乎잇가? 然而猶且區區爲苟活之計者 以前途之事ㅣ 有望야 使我富强之道로 速一日이면 則我光復之業이 速一日故也ㅣ로 顧賦性闒茸며 學識菲薄야 文非佐治之才ㅣ오 武無撥亂之略이라 不敢復爲天子大臣야 以妨賢路於非常之時也일𩭲 玆願還納前後品階고 降爲自由平民야 以便置身於市井之間而效報國之微忱也ㅣ라。 繼自是로 苟可以共奉陛下之光復國是者인 讎怨相忘며 嫌隙相置고 携手惠好 如兄如弟야 上以無貽陛下之憂ㅣ며 下則無乖於國民之協和焉이니 臣雖不肖無狀이나 以平和光復之道로 亦自任爲國家之重이라。 臣頭 可斷이언졍 臣之此心此神은 不可以奪也ㅣ며 臣骨은 可粉이언졍 臣之此氣此魄은 不可以滅也ㅣ니 臣이 久留日本에 學問을 無所修也ㅣ며 藝術을 無所究也ㅣ로 服之在膺며 鐫之在骨야 厚齎堅持而歸者 日本國民之爲忠爲義之道耳라。 臣이 固知我國民忠義之彝性은 非有遜於彼ㅣ로 而其發揮爲用之道 殆有不及焉야 求之東西며 通之古今에 彼ㅣ 眞有卓絶於萬國焉者니 上自王公之貴로 下至輿儓之賤히 只知有其君이오 不知有其身며 只知有其國이오 不知有其家야 凡爲士와 爲農과 爲工과 爲商에 不問老少男女貧富賢愚고 曰是ㅣ 爲吾君也ㅣ라며 曰是ㅣ 爲吾國也라야 君父ㅣ 有急에 視死 如歸고 國家有難에 以生으로 爲辱이라 傾家財而納之며 抛身命而赴之야 衆心一致에 前無湯火니 此其所以二千五百有餘年以來로 內無革姓之變며 外無受敵之恥오 且往年에 與淸戰而勝고 去年에 與露戰而勝之故也ㅣ라。 苟以我國民天稟之忠義로 兼之以如此氣節이면 其於富强光復之事에 當易如反掌일𩭲 故로 臣이 將以日本國民之愛戴其皇室며 捍衛其國家之忠之義之發用之道로 警醒我國民며 啓誘我國民야 移之爲我日常應用之國風야 以盡之於陛下宗社國家也ㅣ니 如是而克富克强야 使眞有光復之實인 向之約言이 載在鐵案야 昭如日星며 堅如金石이라。 天神이 鑑之在上고 萬國이 證之在傍니 日本이 焉能以一時之事로 視作永久不變之例哉잇가? 亦當欣幸而樂從之야 兩國至大至重之事ㅣ 可決於玉帛談笑之間也ㅣ로 又不可徒以富强得之니 宜固守不侮與國之箴며 深抱自知其國之情야 與彼同休戚共利害而誠心相孚야 使彼로 眞十分信我之信彼而出於平和然後에 可也ㅣ니이다。 臣이 退處民間矣라。 不宜爲絮聒之言야 以瀆天陛之崇嚴이로 一片不自已之丹衷이 不能含默而止야 不畏斧鉞之誅고 敢備芻蕘之詢노니 伏願陛下 恕臣狂愚而留神澄省焉。

批曰: "另陳策論, 切中時宜。 維新之時, 不可捨卿。 爵秩有無, 何關於卿? 卿其勿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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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1권, 순종 즉위년 10월 23일 陽曆 1/1 기사 / 1907년 대한 융희(隆熙) 1년

유길준이 벼슬을 사양하는 상소를 올리다

국역

종2품 유길준(兪吉濬)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국외에서 근무하는 10여 년 동안 조국을 바라보면 바다와 하늘만 멀리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자애로운 폐하께서는 보잘것없는 저의 마음을 굽어 살피고 더없이 큰 죄명을 씻어주고 특진관(特進官)의 영광스러운 벼슬을 주었으므로 감격하고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진실로 명령을 받자마자 달려가야 하고 사사로운 정을 말할 겨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신이 지난해에 사람이 보잘것없고 재간이 없는 것은 헤아리지 않고 망녕되게 대부(大夫)의 직책에 있게 되었으나 정성스러운 마음만 절절했지 무모한 백면서생으로서 충성을 바치려 해도 닿지 않고 믿으려 해도 도리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리하여 나라 일에 어려움이 많은데도 구원하지 못하여 결국 오늘과 같이 되었으나 또 죽지도 못하였으니, 이것은 실로 신의 죄입니다. 어찌 감히 또다시 얼굴을 들고 자신의 일을 꾸미기를 좋아하면서 영광된 벼슬을 탐내겠습니까?

이제 감히 부월(斧鉞)의 위엄을 무릅쓰고 대궐 앞에서 벼슬을 체차해줄 것을 바라는 동시에 전후에 걸쳐 받은 벼슬 품계도 되돌려 바침으로서 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고 자유로운 평민이 되어 나라를 걱정하는 성의를 보이면서 국민의 직분을 다하려고 하는 이것이 신의 더없는 소원이고 진실한 심정입니다. 신의 요청을 빨리 허락해 줌으로써 신의 분수를 편안하게 해주소서.

종묘 사직(宗廟社稷)과 나라의 사태를 생각할 때 차마 곧바로 가버릴 수 없기에 삼가 어리석은 계책을 글의 끝머리에 첨부하여 폐하를 번거롭게 하니 신의 고심을 양해하여 사람이 못 낫다고 하여 버려두지 마시고 유의해서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신이 젊었을 때에 옛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멀리 있는 강대한 원조자를 믿고 가까이 있는 우방을 업신여기면 그 나라는 망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망할 수 있다.’는 것은 꼭 망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 나라는 무엇 때문에 괴로이 바다 복판에서 스스로 지키는 섬나라로서 대륙의 정세에 목을 늘이고 자진하여 불청객 노릇을 하면서 군사를 피폐시키며 군량을 소비하면서 남을 대신해서 전쟁을 함으로써 자국의 흥망을 한판 도박에 거는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화재가 나면 불은 번져서 함께 탈 것이고 같이 탄 배가 바람을 만나면 서로 물에 빠지게 됩니다. 저 나라는 자국을 보위하는 방도에서 우리나라의 완전 독립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찌감치 실력을 갖출 것을 원하고 우리나라가 빨리 실적을 올릴 것을 바라며 우리나라를 근심하기를 자기 나라를 깊이 근심하는 것처럼 하고 우리나라를 아끼기를 자기 나라를 절절이 아끼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과 기분을 가라앉히고 시세와 사정에 의거하여 논할 때 과연 어떤 사람의 말과 같이 저 나라가 딴생각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에는 무엇 때문에 일찌감치 대처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그들이 침범하기를 기다린단 말입니까? 또 가령 저 나라가 겉으로는 어질고 의로운 체하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도와준다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만약 이런 형세를 이용하여 기회에 따라 잘 대응한다면 진짜 독립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이나 두 번, 세 번까지 도와주어도 사람들이 몽매하고 국방이 약한 것이 구태의연하고 조금도 전진하는 기색이 없으며 백성들의 생업이 영락되고 빈곤이 더욱더 심하여 한 가지도 기대어 안정될 가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하의 형세는 수시로 변하고 만국의 정세는 일에 임하여 달라지는 것이어서 그 형세가 걷잡을 수 없이 급작스레 바뀌는 것이 지난날에 대비할 것이 아니므로 저 나라는 수수방관하면서 우리나라가 자동적으로 떨쳐 일어날 것을 기다릴 수 없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무모한 외교가 또 어떤 화근을 일으켜 저 나라까지 끌어다가 헤아릴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뜨릴지 모르기 때문에 광무(光武) 9년 11월의 협약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넘겨받았습니다.

국내의 정치에서는 다만 그들의 고문(顧問)만 들여서 협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정리하여 조속히 수습하기를 바랐으나 무관심하고 흐리멍덩하여 성과를 올릴 가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자 또 이 해 7월의 협약으로 정치와 법률 부문을 지도하고 승인하는 권한을 세우고 관리의 임명과 해임도 간섭하는 동시에 일본 인사들을 추천하여 돕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용병(傭兵)이 국방을 담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을 만나면 폭동을 일으켜 명령에 반항하고 소요를 일으켜 극도로 위험하기 때문에 우선 해산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일국(一國)의 체면으로 본다면 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지만 맹자(孟子)의 말에 ‘나라는 반드시 자기 스스로 정벌한 다음에야 남이 정벌하고 사람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업신여긴 다음에야 남이 업신여기는 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자체로 우리 조국을 지킬 힘이 있고 자체로 우리의 외교와 내부 정치를 할 지혜와 능력이 있다면 저 나라가 어찌 감히 이렇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전후에 걸친 두 가지 조약은 우리가 실로 우리 스스로 취한 것이고 저 나라가 억지로 우리에게 씌운 것이 아닙니다. 대체로 조약이란 한 번 정하면 준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심성의로 지켜야만 비로소 저 나라에서도 성심성의로 지켜줄 것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협약의 첫머리 글에 특별히 쓴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때까지’라는 말을 상고해 보건대 우리나라를 근심해 주는 본의와 우리나라를 아껴주는 진정이 문구 위에 철철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강해지는 길을 권고하고 우리에게 부강해지는 길을 바라다가 우리가 부강해진 날을 기다려 장차 회복시켜 주려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우리는 병든 사람과 같고 저들은 용한 의원이 되어 우리가 매우 위독해서 죽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진단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구라파 사람의 말에 의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자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자기 나라의 위치와 형편 그리고 우방과의 관계를 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신은 이상의 두 가지 말을 얻어들은 후 30년 동안 하루도 잊지 못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우리나라는 강토로 보나 인구로 보나 빈약하고 작다고 말할 수 없는데도 역대로 문관(文官)은 교만하고 무관(武官)은 천시되던 끝에 옛날에 수(隋)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당(唐)나라 군사를 물리치던 웅건한 기개를 완전히 상실하고 관문을 닫아걸고 통상을 금하며 검박한 것을 숭상하고 공업을 억제한 결과 사람들은 옹크리고 살아감으로써 풍속은 점점 비속해지고 물건들은 보기 좋은 것들이 없고 재물이 그에 따라 고갈되어 버렸습니다.

만국의 풍조가 바야흐로 도도히 끓어 넘치고 진취적인 경쟁이 날로 심하며 계발하는 지식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긴긴 밤중에 놀면서 고대의 태평세월만 찬양하고 있습니다. 송(宋)나라 학문의 찌꺼기를 걷어먹으면서 홀로 세상에 현자인 체하고 명(明)나라 이후의 의관을 그대로 차리고 만대에 제가 높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외교란 것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자주란 말이 무슨 명목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일본이 동족으로 도와주는 가까운 이웃 나라로서 옛날에는 우리나라보다는 뒤떨어졌지만 지금은 선각자로 자처합니다. 병자년(1876) 조약은 우리와 좋게 지내면서 우리의 독립을 인정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꿈을 꾸듯이 혼미하였고 갑신년(1884)의 일은 우리의 사변과 관련하여 우리를 독립에로 격려한 것인데도 우리는 서로 흘겨보면서 반대하였습니다. 갑오년(1894)의 일 청(日淸) 전쟁으로 말하면 저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안팎으로 변란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자체로 지켜내지 못할까봐 걱정하여 분연히 의리를 내세워 군사를 대신 일으켜 가지고 우리의 독립을 도우려 한 것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조정신하들은 서로 어긋나서 단합되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안정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변고가 거듭 생겨 우리와 저들과의 심정이 서로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계가 멀어진 것이 지난날보다도 심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10년을 덧없이 보내고 갑진년(1904)의 일 로(日露) 전쟁 때에 와서는 저 나라에서 우리를 대하는 방법이 그만 변했던 것입니다. 대체로 갑오년의 전쟁은 그 씨가 임오년(1882)에 이미 뿌려졌고 갑진년의 전쟁은 그 조짐이 이미 병신년(1896)에 싹튼 것이었습니다. 지난날 우리나라가 임오년 후로 한결같이 쇄신하고 부강해져 내부 정치에서는 면목을 고친 아름다움이 있고 외교에서는 모욕을 초래하는 잘못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일 청 전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갑신년 이후라도 우리의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를 똑똑히 알고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본을 친근히 하고 믿으면서 민간의 실업을 일으켜 세우고 국방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일 로 전쟁이 없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꼭 오늘의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일본이 전후에 걸쳐 몇 십만의 생명을 잃고 수십억 원의 재물을 탕진한 두 차례의 큰 전쟁을 하게 된 것은 그 도화선의 폭발된 시초는 서울의 정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당국의 보위하는 신하들은 그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 나라가 우리를 해치려는 마음을 품은 지는 진실로 하루아침과 저녁동안의 일이 아니며 그들이 이른바 「우리를 인정한다.」, 「우리의 독립을 도와준다.」는 것은 단지 꾸민 의로운 말을 빌어가지고 그들의 음흉한 칼날을 교묘하게 숨기기 위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세력이 넉넉해지기를 은밀히 기다리기 때문에 요즘에는 마침내 진심을 드러내어 우리나라의 병증세를 살펴보고 음식을 조절시키지 않을 수 없고 약을 신중히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일도 정신과 생각을 번거롭게 하여 몸조리에 방해되는 것은 또 일체 금지시키는 동시에 곁에는 능숙하게 간호하는 사람을 두어서 주밀한 치료를 하여 소생 완쾌시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의 병세가 물러가고 원기가 충실해진다면 간섭하고 구속하던 저 나라의 의원도 따라서 자연히 가겠지만 그 병이 낫지 않고 단지 쓴맛을 싫어하여 먹기 거북한 약을 마다한다면 저들이 어찌 애쓰던 일이 허사로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며 자기들의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것도 생각지 않고 손을 떼어 두말없이 그만두겠습니까.

신이 가만히 보건대 온 나라 사람들은 모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자기 한 몸의 명예와 절개를 위해서는 민영환(閔泳煥)처럼 자살한 것이 서릿발 같은 의로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종묘 사직의 큰 계책에 있어서는 진실로 망할 수 있다는 경계를 마음속에 새기고 자기를 아는 식견을 가지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쓸데없는 의심을 품어 저들에게 환심을 잃거나 저들의 분노를 사지 말고 성심성의로 신뢰하면서 서로 도와 좋게 지내면서 우호하며 협조하고 유익한 일을 함께 하여 밤낮없이 부강한 경지에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지도하고 승인하는 권한과 관리를 임명하고 해임하는데 동의하는 문제로 말한다면 이것은 한 대신에 관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통감(統監)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객경(客卿)처럼 보며 도움을 받는 내각(內閣)의 대신(大臣)처럼 믿어준다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인을 관리로 쓰는 문제는 나라 사람들이 틀림없이 많이 의심하고 꺼릴 것이지만 신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일찍이 우리가 두었던 고문(顧問)은 모두 우리 관리 이상의 권한을 가졌으므로 명목은 고빙(雇聘)이라 하지만 사실은 모두 다 감독이었으므로 서로 아래가 아니 되려 버티기만 하여 매사가 거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관직을 주어서 각각 직접적인 책임이 있게 하여 기율(紀律)로 묶어두고 분한(分限)을 세워서 서로 넘지 않고 법대로 준수하는 것만 못하였습니다. 전문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적임자에게 위임하여 성취시키는 것이 더욱 적당하지만 우리의 문무 관리들은 정사에 익숙하지 못하니 능통한 외국 사람을 섞어 등용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서 본받게 하는 것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첩경입니다.

우리나라의 풍속은 전담 제도〔專制〕가 습관이 되어 관리의 위엄이 중하고 관리의 권세가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리들을 보기를 사람 위에 있는 사람처럼 보면서 감히 같이 다니지도 못하는데, 게다가 또 해외에서 온 귀신 호랑이가 나라 안에 횡행하면 그를 두려워하고 미워할까봐 걱정됩니다. 그러나 만약 법의 기강을 명백하게 정하고 직무 한계를 엄격하게 세워서 국민에게 국가의 관리를 공공(公共)의 노복(奴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도록 한다면 그를 등용할 때는 적임자이면 그만이지 자기 나라 사람과 외국 사람을 무엇 때문에 가리겠습니까. 그렇지만 폐하의 조정에 있으면서 폐하의 녹봉을 먹는 이상에는 모두 다 폐하의 신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나라에서 추천한 자를 귀화시켜 충실을 선서하게 하고 바로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 쓴다면 민심에 더욱 만족할 것이고 조치도 매우 편할 것이니 이것은 그들과 함께 강구해야 할 문제입니다.

군대 해산에 관한 문제로 말하면 이는 나라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놀라게 하고 나라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모르는 사람들은 온갖 의심을 가지게 되며 심지어는 저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삼켜 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군비를 먼저 걷어치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강해지도록 도와준다는 것은 협약에서 하나의 큰 주안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용병은 시의(時宜)에 적합하지 않고 아무 쓸모도 없는 큰 물건처럼 되었으니, 먼저 해산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 바탕을 깨끗이 한 다음 국고의 재력을 보아서 장재(將材)를 훈련 육성하고 군제를 개편하여 전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워서 만대의 간성(干城)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영구히 해산하여 우리나라가 강하게 되는 길을 끊는다면 이것은 조약 내용에 배치되어 천하에 신용을 잃게 될 것이니, 저 나라에서 어찌 이렇게 할 리가 있겠습니까. 대체로 한 나라의 독립은 헛소리로 지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우리나라의 독립은 우리 자체로 한 것이 아니고 한때에 움직임의 남은 힘을 받은 데에 불과했으므로 그 움직임이 그치자 우리의 독립도 절반의 면모가 감추어졌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독립을 하려면 마땅히 먼저 그 실력을 닦아 세계 만국을 향해서 시행해야 하고 일본 한 나라만 향해서 시행할 것이 아닙니다. 저 나라에서도 언제 우리가 정식으로 독립되는 것을 원치 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저 나라에서는 인정하였지만 우리가 하지 않았고 저 나라에서는 격려하였지만 우리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 나라에서는 끝내 도와 세워 주었지만 우리는 그래도 해내지 못하였습니다. 비단 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주권의 자주를 남에게 주고 칼을 거꾸로 잡았으므로 저 나라에서는 단연코 그만둘 수 없는 사정에 의하여 우리와 오늘과 같은 협약을 맺은 것이 사실은 우리의 독립을 보호한 것이고 파괴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독립을 도와준 것이고 빼앗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시국의 대세로 본다면 이것은 저 나라로서는 의로운 것이 되고 우리로서는 이로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우리가 하지 않는 것과 해내지 못하는 것이 지난날에 마지못해 하던 것처럼 된다면 저 나라에서 보호해주던 힘도 장차 변해서 파멸의 작용을 할 것이고, 도와주려던 생각도 변해서 없어지고 빼앗으려는 기회로 될 것이니 어찌 신중히 생각하고 분발하여 온 나라가 하나로 뭉쳐 밤낮없이 사생결단하고 부강하기 위한 계책으로만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저들의 진의가 평화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도 평화로 대응하여 외교에 있어서는 저들이 대리하게 맡겨두었고 국내의 정치에는 저들의 지도를 받고 있은 것입니다. 이다음에 우리의 세력이 자라나서 문명한 이웃 나라와 비등할 때 평화의 진의에 의하여 저들이 대리하던 것을 회수하고 저들의 지도를 그만두게 한다면 저들도 응당 평화적으로 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감히 말하기를, 우리나라를 광복하는 길은 한결같이 평화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성취시키는 방법은 오로지 부강을 이룩하는 데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부강하기 위한 대책은 세우기 않고 광복되기만 바라는 것은 백년동안 황하(黃河)가 맑아지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모든 신민(臣民)들은 늙은이와 젊은이,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할 것 없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전해주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도와주며 형제들이 서로 알리며, 벗들이 서로 권하여 한결같이 부강해질 도리만 연구하고 광복할 일만 생각하여 아무리 위급할 때라도 이것만 알고 밥을 먹을 때나 쉴 때나 이것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광명정대하기를 푸른 하늘에 밝은 해처럼 하여 한 가지 일도 숨기는 것이 없고 한 가지 물건도 가린 것이 없게 한다면 저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의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의 마음이 마치 겹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 같아서 조금도 거기에 의혹을 가지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일반적인 감정은 자기를 친근히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를 멀리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저 나라에서 만약 우리를 믿어주지 않는 심정이 있다면 우리가 비록 부강해졌다 하더라도 앞으로 광복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며, 우리에게 정말 믿을 수 없는 점이 있다면 광복될 가망이 없을 뿐 아니라 국사(國事)의 곤란함이 더욱더 참담한 지경에 굴러 떨어져서 결국은 어찌할 수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조용하던 조정에 다툼질하는 말이 떠들썩거리고 무식한 민간에서는 떠도는 말이 서로 생기면 간혹 글공부를 하고 충성을 바치겠다는 선비도 시국을 오해하여 의롭던 사람이 미친 사람으로 변하여 창과 깃발을 만들고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불러 모아 하는 일이란 결국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노략질하는 데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벼슬 자리를 잃고 불평을 품은 무리들과 때를 타서 들고 일어나는 무리들은 닭이 봉황의 깃을 빌리고, 사슴이 표범 가죽을 쓰듯 하여 그것으로 인해 노여움과 독기를 제멋대로 부려서 안으로는 나라에 근심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좀 지식이 있다는 자는 손뼉을 치고 세계정세를 말하되 북쪽도 돌아보고 서쪽도 넘겨다보면서 열강간의 세력이 균등해진다는 논의가 당장 일어나서 우리는 앉아 그 이익을 받는다고 하여, 경거망동하다가는 누가 임금에게 미치며 밖으로 우방의 감정을 사게 될 것이니, 이것은 다 자기를 아는 식견이 없는 것이고 망할 수 있다는 경계를 범하는 것입니다.

폴란드〔波蘭〕는 외국 원조를 함부로 요구한 탓으로 도리어 분할 당하였으니 이것은 오래지 않은 지난날의 교훈이었고 미얀마〔緬甸〕는 몰래 딴 생각을 품은 것으로 인하여 그만 망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또 후세의 교훈이 될만 합니다. 어찌 두렵지 않으며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나라가 우리나라에 바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스스로 부강해져서 우리나라의 권한을 자체로 회복하여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니, 우리나라와 저 나라 사이에는 다만 지성(至誠)으로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 폐하는 중흥의 위업을 이어받아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시운(時運)을 열어놓아야 하겠으나 국시(國是)가 아직도 서지 않았고 백성들의 뜻이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평화와 광복에 대한 계책을 국시로 세워서 신하와 백성들에게 명백히 조칙을 내려 그것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신봉하게 하여 그들의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치고 집집마다 이 말을 외우게 하여 부강을 도모하기 바랍니다.

신으로 말하면 원래 독립의 의리로 보아 황제의 대신이 되었던 사람이었으나 나라 운수가 차질이 생겨 지금 와서는 죽으려고 해도 죽을 곳이 없고 살려고 해도 살 재미가 없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라에서 벼슬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대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구구하고 구차스럽게나마 살려고 하는 것은 전도가 유망하여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방도를 하루라도 빨리 다그치면 우리나라의 광복이 그만큼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질이 미련하고 학식이 보잘것없어서 문(文)은 임금을 도울 자질이 못되고 무(武)는 난국을 다스릴 지략이 없어서 감히 천자의 대신 노릇을 함으로써 이 비상시에 훌륭한 인재가 나설 길을 더는 방해치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전후에 걸쳐 받은 품계를 되돌려 바치고 자유로운 평민으로 내려가서 몸을 시정배들 속에 둠으로써 나라에 보답하는 하찮은 성의나마 바치려합니다. 이로부터 만약 폐하의 광복에 관한 국시를 함께 받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서로 원수진 것도 잊으며 서로 혐의진 것도 제쳐놓고 사이좋게 손잡기를 형제간과 같이한다면 위로는 폐하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을 것이고 아래로는 국민들의 화목에 방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평화와 광복을 위해서는 역시 나라의 중책을 스스로 맡으려 하므로 신의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신의 이 마음과 이 정신은 빼앗을 수 없고, 신의 뼈는 갈아버릴 수 있어도 신의 이 기백은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은 일본에 오래도록 머물러있는 동안 학문을 닦은 것이 없고 예술(藝術)도 연구한 것이 없었으나 가슴 속에 간직하고 뼈에 새겨서 가득히 가지고 돌아온 것은 일본 국민들의 충의로운 도리뿐입니다. 신은 물론 우리 국민의 충의로운 천성이 저 나라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발휘하여 활용하는 방도에서는 아마도 부족함이 있다고 봅니다. 동서양에서 찾아보고 고금을 통해봐도 저 나라는 정말 모든 나라보다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위로는 신분이 높은 귀족으로부터 아래로는 천한 하인에게 이르기까지 오직 자기 임금만 알고 자신은 모르며 오직 자기 나라만 알고 자기 집은 모릅니다. 대체로 선비이건 농군이건, 기능공이건 상인이건, 남녀노소(男女老少)와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현명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거나를 막론하고 다 말하기를, ‘이는 우리 임금이다.’, ‘이는 우리나라다.’라고 하면서 임금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죽는 것을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편안히 여기며, 나라에 위난이 있으면 사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면서 자기 집 재산을 다 내어 바치기도 하고 목숨을 포기하고 달려갑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일체된 그 앞에는 물과 불의 애로 난관이 없게 되니, 이것이 2,500여 년 동안 내부에서는 임금의 계통을 갈아치우는 변고가 없고 외부에서는 외적의 침습을 받는 수치가 없었던 것이며, 또 몇 해 전에 청나라와 싸워서 이기고 지난해에 러시아와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만약 우리 국민의 충의로운 천품에다 이러한 기개와 지조를 겸하기만 한다면 부강과 광복을 이룩하는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앞으로 일본 국민이 자기 황실을 떠받들고 자기 나라를 보위하는 데 발휘하는 충의의 도리로 우리 국민을 각성시키고 우리 국민을 인도하며 우리 일상 응용하는 나라 기풍을 변경시켜 폐하의 종묘 사직과 나라에 다 바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정말 부강해져서 광복된 실상이 진짜로 있게 된다면 지난날에 약속한 말이 변경할 수 없는 글에 실려 있어 해와 별처럼 밝고 쇠와 돌처럼 견고하므로 하늘과 신이 위에서 굽어보고 만국이 주위에서 증명하고 있는 만큼 일본이 어떻게 일시적인 일을 가지고 영구불변한 규례로 간주할 수 있겠습니까. 그 역시 기뻐하며 다행하게 여기고 즐겨 따라서 두 나라의 지극히 크고 더없이 중한 일이 서로 사이좋은 교제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또 그저 부강만으로는 얻는 것이 아니고 마땅히 우방을 업신여기지 않겠다는 경계를 고수하면서 자기 나라를 자기 스스로 아는 심정을 깊이 간직하고 저 나라와 함께 행복도 불행도 같이 나누고 이해관계도 같이하여 진심으로 서로 믿어서 저들로 하여금 정말 우리가 저들을 믿는 것이 평화에서 나왔다는 것을 충분히 믿게 한 다음에야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신은 민간에 물러나와 있으니 시끄러운 말을 하여 존엄한 폐하를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둘 수 없는 일편단심을 잠자코 참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폐하의 엄한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보잘것없는 자에게까지 자문하시는 기회에 말씀드리는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저의 망녕됨을 용서하시고 유념하여 잘 살펴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특별히 진술한 논의는 지금의 형편에 절실히 맞는다. 유신하는 이 때에 경을 놓아 둘 수 없다. 벼슬 품계가 있고 없는 것이야 경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경은 사임하지 말라."

하였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문

二十三日。 從二品兪吉濬疏略:

臣在外待罪, 十餘星霜, 瞻望祖國, 海遠天長。 伏蒙聖慈俯燭微衷, 滌無犯之罪名; 授特進之榮職, 感激惶蹙, 罔知攸措。 固宜聞命奔走, 不遑言私。 竊伏念臣曩年, 不揆人微才薄, 妄從大夫之後, 丹心徒切, 白面無謀, 願忠而未達; 欲信而反疑。 國事多難, 旣不能救延, 竟至有今日, 又不得死, 此實臣之罪也。 安敢復抗顔自好, 沾沾爲榮祿計哉? 玆敢冒斧鉞之威, 叫閽乞遞, 兼還納前後品階, 以贖臣罪萬一, 而爲自由平民, 效憂愛之誠而盡國民之職, 是臣之至願也、實情也。 伏願亟許臣請, 以安私分。 臣低回輦轂之下, 仰念宗社民國之事, 不忍便去。 故謹尾附愚策, 仰瀆崇嚴, 諒臣苦心, 勿以人棄, 留神澄省焉。 臣이 少時에 嘗讀古書니 有曰恃强大之遠援고 侮狎近之與國者 其國이 可亡이라 니 可亡者 不必亡之謂也ㅣ라。 或者曰彼何苦以環海自守之島國으로 延頸於大陸風雲야 自薦爲不速之賓而勞師費餉고 代人爲戰야 賭自己之興亡於一擲哉아? 나니 夫隔壁失火에 延至共焚이오 同舟遇風에 淪胥以溺이라。 彼在其自衛之道에 不可無我之完全獨立일𩭲 故로 願我之早備其實力며 望我之速擧其實績하야 憂我 如憂其國之深고 愛我 如愛其國之切이니 今也에 平心虛氣야 就時勢據事情而論之혼 果如或者之言야 旣知彼有異心인데 何不早爲之備而坐待其侵犯乎잇가? 且使彼로 外假仁義야 謀我獨立이라도 我若因勢利用야 隨機善應이면 可以成眞이어 一之再之에 至于三焉호 人智之蒙昧와 國防之虛弱이 依然如故에 少無前進之色고 民業之委靡貧殘은 轉轉愈甚야 一無可恃而爲安이오 天下之勢 隨時而變고 萬國之情은 臨事而異야 其急轉直下之光景이 有非疇昔之比라。 則不能袖手傍坐하야 以待我不可待之自動振作이오 而竊懼我外交之無謀 又不知引出那邊禍機야 摟彼共墜於莫可測之坑塹이라。 乃以光武九年十一月之協約으로 借受我外交之權고 至內治則只入其顧問而協助之야 以蘄我ㅣ 自行整理에 趁速就緖러니 歇后漫漶에 杳無奏效之期라。 則又以本年七月之協約으로 政法之上에 立指導承認之權고 官吏之任免을 亦行干涉而兼入推薦之日本人士야 以助理之며 且以我傭兵이 非徒不足爲國防之具라。 臨事暴動에 抗命滋騷야 極爲危險故로 姑爲解散니 顧以一國之體面則皆非我所欲이나 然이나 鄒 孟氏ㅣ 言‘國必自伐而後에 人이 伐之고 人必自侮而後에 人이 侮之’라니 苟我ㅣ 有自守我祖國之力과 自行我外交與內治之知能이면 彼ㅣ 豈敢爲是哉잇가? 故로 前後二約之案은 我實自取오 非彼之强加於我也ㅣ라。 夫約言一定에 不可以不從이니 我以誠心守之然後에 始可望彼之誠心守之ㅣ라。 謹按協約冒頭之文에 特筆有迄認富强之言니 可見其憂我之本意와 愛我之眞情이 津津溢於辭表야 勸我以富强之道며 望我以富强之道야 待我富强之日而將以復之也ㅣ니 譬之컨대 我猶病人이오 彼爲良醫라。 診我之甚危야 或至於亡也ㅣ오 且按歐人之言에 有云‘爲國者ㅣ 貴自知也’라호니 自知者 言知其國之位處狀勢와 與夫與國之關係也ㅣ라。 臣이 得此二說야 三十年未敢一日忘也호이다。 竊伏念我國家ㅣ 以土以人에 不可曰貧而弱而小로 而歷世文驕武賤之餘에 全失古代破隋斥唐之雄氣고 加之以閉關絶商며 崇儉抑工야 人爲幽蟄之活而俗漸以卑고 物無優美之觀而貨隨以索이라。 萬國之風潮ㅣ 滔滔方盪야 進取之競爭이 日劇고 啓發之知識이 日新이어 我乃優遊長夜之中而謳歌古代之太平야 啜宋餘之糟粕而獨賢天下고 襲明後之衣冠而自高萬世야 不知外交之爲何事ㅣ며 自主之爲何名이러니 日本이 以同族輔齒之近隣으로 昔之爲我之後進者ㅣ 今則自居爲先覺야 丙子之約은 與我爲好而認我獨立也어 而我ㅣ 昏昏如夢고 甲申之事 因我有變而激我獨立也어 而我睊睊相反며 若甲午日、淸之役則彼ㅣ 見我之有內外亂而懼我之不敷自守야 奮然出義에 代爲興師야 以扶我之獨立也어 而我之廷臣이 乖離未合고 疑懼未定而中間之變故ㅣ 從而疊出야 不徒我彼之情이 齟齬不容이라。 疎間之實이 有甚前日야 彼ㅣ 知我之不可與有爲일𩭲 荏苒十年에 以及乎日、露甲辰之役야 而其對我之政略이 遂變니 蓋甲午之役은 其種이 已播於壬午ㅣ오 甲辰之役은 其兆ㅣ 已萌於丙申이라。 向使我로 在壬午之後야 一意刷新에 移爲富强야 內治ㅣ 有改觀之美고 外交ㅣ 無招侮之失이란달 其必無日、淸之戰이오 且在甲申之後라도 凡我執政이 明自知而怵可亡야 親信日本而振興民間之實業고 講修國防之費란달 其或無日、露之爭이며 而其有之라도 我ㅣ 不必至有今日之境이니 由是觀之혼 日本之前後失幾十萬生靈과 糜幾十億帑財之二大戰爭이 其導火爆發之口 謂在於漢城政界라도 我當局折衝之臣이 將無所逃其責矣라。 或謂彼之包藏禍心이 固非一朝一夕이니 其所謂認我扶我之獨立은 特假粉飾之義聲야 巧隱其譎詐之鋒이오 而暗俟力贍勢優之日이라。 故至近者에 竟露其眞脈며 察我之證야 飮食을 不可不使之節也ㅣ며 藥餌를 不可不使之愼也ㅣ오 且凡世務之足以煩神惱慮야 有妨於調將之理者 又不可不一切禁而止之고 傍置能手之看護야 以行其周到之療治而甦完之야 使爲康壯之人也ㅣ라。 苟我病之退而元氣ㅣ 實인 彼醫之干涉拘束이 亦從而自去어니와 厥疾은 不瘳고 只厭苦口야 而辭瞑眩之藥이면 彼安肯不恤其功之虧며 不顧其責之廢고 斂手唯唯而止哉잇가? 臣이 竊觀擧國之人心이 皆抱不滿이라。 爲一己之名節則如閔泳煥之烈殉이 可謂日霜其忠義로 至於保國安民宗社之大計 固在乎服可亡之戒而懷自知之見야 毋或執迷懹疑而失彼之歡하며 集彼之怒고 推誠信賴而相資爲善며 敦好協和而共濟爲益야 期日夜臻富强之域이나 今以其指導承認之權과 與夫官吏任免之同意로 言之則直不過一大臣之事耳라。 陛下ㅣ 其以統監으로 視之爲尊寵之客卿하시며 信之如依毗之閣臣시면 則足矣오。 且用日本人爲官吏之事 國人必多疑忌나 自臣觀之면 不然也니 曾我所置之顧問이 皆執官吏以上之權야 名爲雇聘而實則箇箇監督也라。 相持不下에 每事澁滯하니 反不如授以官職하야 使各有直接之責任而束之以紀律며 立之以分限야 毋相踰越而謹守如法이오 至於專門之技術은 委任責成이 尤爲允當而顧我文武官吏ㅣ 不閑政事則混用能達之外人야 以示模範而使則效之ㅣ 亦改善之一捷徑也ㅣ니 我國之俗이 專制成習야 官威ㅣ 重而官權이 高故로 人之視爲官爲吏之人은 如人上人야 不敢輩行이라。 則又恐添舶來鬼虎ㅣ 橫行於國中而畏惡之로 若明定法紀며 嚴立職限야 使國民으로 知國家之官吏ㅣ 不過爲公共之僕이면 其所用之ㅣ 惟才可耳니 內外之何擇哉잇가? 然이나 立陛下之朝而食陛下之祿則皆可曰陛下之臣子ㅣ니 彼所推薦而來者 使之歸化而宣忠實之誓야 直爲我人而用之면 尤慊於民心하야 施措ㅣ 甚便이니 此 宜與彼로 籌講者也ㅣ오 至若解兵一事 駭國人之耳目고 傷國人之感情야 不知者 危疑萬端에 至謂彼欲呑噬我故로 先徹我兵備나 然이나 此則決不然也ㅣ라。 彼之助我爲强은 協約之一大主眼而顧我傭兵이 不合時宜에 徒爲長物則先行解隊之擧야 以淸其本而視國庫之力야 鍊育將材며 改編軍制야 使全國之民으로 就兵役之義務而建萬世之干城也ㅣ니 若不然而永行解散하야 俾絶我爲强之道則是 背于約言야 失信天下ㅣ라。 彼ㅣ 豈爲此哉잇가? 夫一國之獨立은 非虛聲之所可撑支라。 故로 舊我之獨立은 非我之自爲오 不過一時之受動餘力則其動이 息而我之獨立이 亦鞱半面者也ㅣ니 我欲自爲眞正獨立인 宜先修其實야 向世界萬國而爲之오 非只向日本一國而爲之라 彼ㅣ 何嘗不願我爲正面獨立哉잇가? 彼ㅣ 認之호 而我ㅣ 不爲며 彼ㅣ 激之호 而我ㅣ 不爲라。 故로 彼ㅣ 終乃扶植之어 而我猶且不能爲오 而非徒不能爲也ㅣ라。 反欲擧其主權之柄야 授之人而爲倒持之用일𩭲 彼斷然以不得已之事로 約我於今日之地니 實保護我獨立이오 非破滅之也ㅣ며 輔成我獨立이오 非廢奪之也ㅣ라。 以今時局之大勢로 此可曰在彼爲義오 在我爲利로 而又我之不爲也와 不能也에 如曩時之泄泄則其保護之力이 將變而爲破滅之用也ㅣ오 輔成之心이 轉而爲廢奪之機也ㅣ리니 其可不惕然念勃然奮야 擧國爲一而罔晝夜決死生進進爲富强之計哉잇가? 固知彼之眞意ㅣ 在於平和故로 我亦以平和應之야 外交焉委其代辦고 內治焉聽其指導니 後來我勢之長이 可伍文明之隣야 以平和之眞意로 收其代辦며 謝其指導則彼亦當以平和應之라。 故로 臣이 敢曰惟我光復之道 一由平和而其成就之方은 亶在富强이니 不自爲富强之策고 只望允復之業者 無異於坐俟百年之河淸이라。 凡爲臣民者ㅣ 無老無少無貴無賤고 父子相傳며 夫婦ㅣ 相勖며 兄第ㅣ 相告며 朋友ㅣ 相勸야 一惟富强之道 是究며 光復之事 是念야 顚沛是食息是而光明正大 如靑天며 如白日야 無一事之隱며 無一物之蔽則彼知我上下之心이 如洞開重門야 小無挾疑滋惑於其間호리니 人之常情이 親我者 愛之고 疎我者 惡之라。 彼ㅣ 若有不相信之情이면 我雖富强이라도 前途光復之事ㅣ 甚難이오 我ㅣ 眞有不可信之端인 則非徒光復之無望이라。 國事之艱難이 層層轉入於慘憺之地야 終必至於莫可爲矣어 廊廟ㅣ 閑閑에 嘖舌紛至고 閭巷이 貿貿에 浮言胥動則間或自命爲讀書願忠之士ㅣ 誤解時局에 義變爲狂야 竹槍席旗로 嘯聚烏合야 其所爲ㅣ 究不過於殺越摽掠而失職不平之群과 乘時竊發之徒ㅣ 鷄借鳳毛며 麋蒙豹皮야 因之逞其怒肆其毒而內貽國家之患며 其稍有知者 抵掌談宇內事야 北眄西翹에 庶列强均勢之論이 朝夕且起而我乃坐受其利라야 輕擧妄動에 累及君父而外招與邦之怒니 皆乏自知之見而犯可亡之戒者也라。 波蘭이 以妄求外援之故로 反被分割니 此其前鑑이 不遠이오 緬甸이 因陰懷貳心之事야 遂至覆亡니 又其後轍을 可戒라。 可不懼乎ㅣ며 可不愼乎잇가? 彼之所望於我者ㅣ 在我之自爲富强而自復我權야 以保東洋之永遠平和也ㅣ니 我彼之間은 只有至誠之平和而已라。 今陛下ㅣ 承中興之緖사 啓一新之運而國是ㅣ 尙有未立야 民志ㅣ 從而未定니 伏願以平和光復之策으로 立爲國是샤 明以詔之臣民사 使奉之爲金科王條而一其心協其力야 家誦戶讀而圖爲富强焉소셔 若臣則素以獨立之義로 爲天子之大臣者也ㅣ라。 國步蹉跎에 到今地頭야 欲死而無所고 欲生而無樂니 以何面目으로 立於國中而見天下之人乎잇가? 然而猶且區區爲苟活之計者 以前途之事ㅣ 有望야 使我富强之道로 速一日이면 則我光復之業이 速一日故也ㅣ로 顧賦性闒茸며 學識菲薄야 文非佐治之才ㅣ오 武無撥亂之略이라 不敢復爲天子大臣야 以妨賢路於非常之時也일𩭲 玆願還納前後品階고 降爲自由平民야 以便置身於市井之間而效報國之微忱也ㅣ라。 繼自是로 苟可以共奉陛下之光復國是者인 讎怨相忘며 嫌隙相置고 携手惠好 如兄如弟야 上以無貽陛下之憂ㅣ며 下則無乖於國民之協和焉이니 臣雖不肖無狀이나 以平和光復之道로 亦自任爲國家之重이라。 臣頭 可斷이언졍 臣之此心此神은 不可以奪也ㅣ며 臣骨은 可粉이언졍 臣之此氣此魄은 不可以滅也ㅣ니 臣이 久留日本에 學問을 無所修也ㅣ며 藝術을 無所究也ㅣ로 服之在膺며 鐫之在骨야 厚齎堅持而歸者 日本國民之爲忠爲義之道耳라。 臣이 固知我國民忠義之彝性은 非有遜於彼ㅣ로 而其發揮爲用之道 殆有不及焉야 求之東西며 通之古今에 彼ㅣ 眞有卓絶於萬國焉者니 上自王公之貴로 下至輿儓之賤히 只知有其君이오 不知有其身며 只知有其國이오 不知有其家야 凡爲士와 爲農과 爲工과 爲商에 不問老少男女貧富賢愚고 曰是ㅣ 爲吾君也ㅣ라며 曰是ㅣ 爲吾國也라야 君父ㅣ 有急에 視死 如歸고 國家有難에 以生으로 爲辱이라 傾家財而納之며 抛身命而赴之야 衆心一致에 前無湯火니 此其所以二千五百有餘年以來로 內無革姓之變며 外無受敵之恥오 且往年에 與淸戰而勝고 去年에 與露戰而勝之故也ㅣ라。 苟以我國民天稟之忠義로 兼之以如此氣節이면 其於富强光復之事에 當易如反掌일𩭲 故로 臣이 將以日本國民之愛戴其皇室며 捍衛其國家之忠之義之發用之道로 警醒我國民며 啓誘我國民야 移之爲我日常應用之國風야 以盡之於陛下宗社國家也ㅣ니 如是而克富克强야 使眞有光復之實인 向之約言이 載在鐵案야 昭如日星며 堅如金石이라。 天神이 鑑之在上고 萬國이 證之在傍니 日本이 焉能以一時之事로 視作永久不變之例哉잇가? 亦當欣幸而樂從之야 兩國至大至重之事ㅣ 可決於玉帛談笑之間也ㅣ로 又不可徒以富强得之니 宜固守不侮與國之箴며 深抱自知其國之情야 與彼同休戚共利害而誠心相孚야 使彼로 眞十分信我之信彼而出於平和然後에 可也ㅣ니이다。 臣이 退處民間矣라。 不宜爲絮聒之言야 以瀆天陛之崇嚴이로 一片不自已之丹衷이 不能含默而止야 不畏斧鉞之誅고 敢備芻蕘之詢노니 伏願陛下 恕臣狂愚而留神澄省焉。

批曰: "另陳策論, 切中時宜。 維新之時, 不可捨卿。 爵秩有無, 何關於卿? 卿其勿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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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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