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45권, 고종 42년 3월 7일 陽曆 4/6 기사 / 1905년 대한 광무(光武) 9년
김학진이 상소문에 대한 비답이 없어 세 번째 상소문을 올리다
국역
정2품(正二品) 김학진(金鶴鎭)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망녕되게 두 번째 상소를 올리고 아직 비답의 말씀을 받지 못해 두려움에 잠겨 죄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에 어찌 감히 말을 또 하겠습니까? 그러나 열흘 사이에 큰 우환거리가 거듭 생겨 숨도 쉴 수 없는 형편이라서 전날 아뢴 것은 오히려 둘째 문제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만 논하고 보답은 하지 못한 문천상(文天祥)의 소행에 은근히 의의를 부여하게 된 데다가 처단당하는 것도 피하지 않는 것이 문제를 논의하는 원칙이므로 엄한 처단을 무릅쓰고 상소를 올리니, 삼가 바라건대 조금이나마 살펴주소서.
지금 시국이 날로 변하여 강한 이웃 나라가 우리를 대신하여 국사(國事)를 처리하는 판인데 고금(古今)을 부앙(俯仰)해보나 지금처럼 남의 통제를 받은 적이 언제 있었겠습니까? 한척의 배로 당도한 애산(崖山)은 그래도 송(宋) 나라의 옮겨간 조정이었고 한 개의 부(府)가 설치된 오주(梧州) 또한 명(明) 나라의 행재(行在)였으므로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이행하는 일들을 여전히 스스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은 온갖 병폐가 나타나고 갖은 우환거리가 생겨나지만 이미 자신을 강화할 생각을 잊어버리고 그저 그럭저럭 임시변통에만 힘쓰고 있습니다.
8, 9년이래로 중심 철도를 다른 사람에게 양여하고 온 나라 광산(鑛山)의 이권도 다른 나라에 소속되었으며 심지어 관제를 고치어 바로잡고 화폐를 바로 고치는 일까지도 스스로 우리가 작정하여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남의 지휘에 따라 꼭두각시 노릇을 기꺼이 하건만 자책하는 폐하의 조칙(詔勅)은 또한 빈 문서일 뿐입니다. 뛰어다니는 모든 관리들의 수고라는 것도 한갓 남을 먹여주는 것일 따름입니다.
이렇듯 어려운 시기에는 임금과 신하 상하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담력을 발휘하여 분발하여 일을 하여도 오히려 지탱하기 어려울까 걱정되는 법입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덮어놓고 굽실거리면서 하루하루 나태하게 지내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빠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실로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대저 나라가 나라답게 되는 것은 재정(財政)을 가지고 있고 형법(刑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정에 대해 말한다면 부(賦)를 맡아보는 관리가 방법을 체득하지 못하고 심지어 이웃 나라에서 차관(借款)을 얻어다 화폐를 바로잡아 고치고 있습니다. 신이 비록 지방에 있어서 자세한 것은 듣지 못하였으나 왁자하게 떠도는 풍문에 의거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지폐(紙幣)를 꾸어다가 악화(惡貨)를 바꾸는 것은 비록 부득이 하여 취한 조치이기는 하겠지만 백동화폐(白銅貨幣)를 남주(濫鑄)한 자체가 이미 첫째로 잘못한 것이니, 지폐를 꾸어다 쓰는 것이 어찌 둘째로 잘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백동화폐를 개인이 사사로이 주조하는 기계는 당초에 귀신이 실어다준 것이 아니건만 우리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저들은 간사한 것으로 대응하였으며 간사한 것으로써 간사한 것을 막는 일도 해내지 못한 결과 돈의 가치는 가벼워지고 물건은 중해져 그 폐단이 차츰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또 지화를 꾸어다 바로잡으려고 하니 구리를 이미 가볍게 여기는데 종이를 도리어 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지폐를 위조하는 폐단은 아마도 백동의 낭비보다 심해져 사나운 것으로써 사나운 것을 바꾸는 것은 그저 수고로울 뿐 이익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돈에 새긴 연호로 말하면 우리의 ‘광무(光武)’를 폐지하고 저들의 ‘명치(明治)’를 쓰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써 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킴이 과연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에는 이미 차관(借款)을 얻었으니 지폐로 하지 말고 금은(金銀)으로 규정을 세워 주조하되 금을 본위 화폐(本位貨幣)로 하고 은을 보조화폐로 하여 주조량이 2천만 원가량 되었을 때에 백동화폐를 교환한다면 바로잡는 방도가 아마도 시행해야 할 사항에 합당할 듯합니다.
형법에 대해 말한다면 근래에 듣자니 저들의 사령부(司令部)에서 백성들의 소송을 받아서 임의로 처결한다고 합니다. 아! 역대의 임금들이 500년 동안 길러온 교화와 폐하가 40년 동안 키워준 덕택은 더없이 깊고도 후한 것입니다.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령스러운 것이 백성인데 모두 실성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하루아침에 우리의 법 맡은 관리를 무시하고 저들한테 가서 해결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진실로 그 원인을 따져보면 주로 몰아내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근래에 관직을 재물로 얻고 송사를 뇌물로 판결하기 때문에 무릇 서민들이 윗사람들을 질시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원컨대 명백한 명령을 내려 안으로는 사법(司法) 관리로부터 밖으로는 수령(守令)들에 이르기까지 송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도록 신칙하여 원통하게 된 사람이 억울한 사정을 풀지 못하거나 근거 없이 팔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십시오.
만약 공정을 기하지 못하여 저들에게 가서 송사하는 사람이 생기는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따라 송사를 처결한 해당 관리를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중한 형률로 다스리고 조금도 용서하지 말도록 하소서.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나라에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폐단이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폐하는 항상 제갈량(諸葛亮)과 같은 인재를 얻어 써보았으면 하고 생각할 터인데 제갈량으로 하여금 폐하를 위해 계책을 말씀드리게 한다 하더라도 그의 말 또한 ‘어진 신하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할 따름입니다.’, ‘왕궁과 조정이 모두 일체로 되는 것일 뿐입니다.’, ‘폐하도 스스로 꾀하여야 할 따름입니다.’라고 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 세 가지의 말을 마치 제갈량에게서 직접 들은 듯이 여기고 단연코 시행하되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하는 일과 왕궁과 조정이 각기 자기의 직책을 맡아 일체로 되게 하는 일과 폐하가 스스로 꾀해서 공경을 위주로 하는 일들을 신이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소서. 그리하여 정사를 처리할 때나 한가히 있을 때나 마음을 바로 가지고 뜻을 성실하게 가져 확연히 공정하게 하고 엄연히 바르게 하며 태연히 일이 없게 해서 여러 관리들이 성과를 이룩하는 것을 앉아서 기다리소서.
무엇 때문에 여러 신하들의 일을 고생스레 대행해서 정부로 하여금 문서나 다루게 하십니까? 저 사람들이 우리에게 정부가 없다고 하는 것은 사실 폐하께서 스스로 허물어놓은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제 손으로 그런 비난을 초래하지 마십시오. 아! 근습(近習)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고 곁에서 총애 받는 사람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오늘 폐하께서 앉아 계신 자리의 밖은 모두 적국의 정탐배들이 감시하는 마당이니 폐하가 누구와 함께 지키고 누구와 함께 의논하겠습니까?
신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훌쩍 일어나 분연히 섰다가 실망에 잠겨 스스로 자신의 몸을 해치고 싶습니다. 차라리 관을 메고 조정에 들어가 대궐 섬돌에 머리를 짓찧은 옛 사람의 소행을 본받아 나라가 망하기 전에 폐하의 조정에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물러나려고 해도 갈 만한 곳이 없고 가도 죽을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상소 안에 대략 의사를 피력한 다음 대궐에 이르러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죄를 용서하고 충성스러운 말을 받아들이면 실로 신의 소원대로 되는 것이고 망녕되게 지껄인 죄로써 처단하여도 신으로서는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경은 물러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원본】 49책 4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7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역사-고사(故事) / 교통-육운(陸運) / 광업-광산(鑛山) / 재정-국용(國用) / 사법-법제(法制) / 금융-화폐(貨幣) /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 외교-왜(倭)
원문
正二品金鶴鎭疏略: "臣妄陳再疏, 未承批旨, 惶縮俊罪, 豈敢復言? 而旬日之頃, 大患層生, 勢不容息, 前日所言, 猶屬第二聲。 故竊附文天祥言事未報, 繼又論事之義, 不避斧鉞之誅, 抵冒出此。 伏惟少垂察焉。 顧今時局日變, 强隣代籌, 俯仰今古, 豈有如今日之受制也? 一舟崖山, 猶是宋之行朝, 一府梧州, 亦是明之行在, 發號施令, 尙能自辦。 今我國勢, 瘡疣百出, 憂虞萬端, 而旣忘自强, 則惟務姑息。 自八九年來, 中心鐵道, 讓與別人, 八方鑛利, 屬於他國。 至於官制之釐正、貨幣之矯捄, 亦不能自我籌辦。 動輒隨人指揮, 甘爲傀儡, 而陛下責躬之詔, 亦是文具而已, 百官趨走之勞, 徒爲哺啜而已耳。 際此艱棘, 君臣上下, 明目張膽, 奮發有爲, 尙患難支。 顧反伈伈泄泄, 因循頹惰, 懜然不覺其自底于顚擠, 誠不識其何故也。 夫國之所以爲國者, 以其有財政也、刑法也。 以言乎財政則治賦之臣, 不得其術, 至於借款于隣, 矯捄貨幣。 臣雖在外, 未聞其詳, 然據其流傳狼藉者言之。 則借得紙幣, 兌換惡貨, 雖出於迫不得已之計, 而白銅濫鑄, 旣是一誤, 紙貨借用, 豈非再誤乎? 臣竊思之白銅之貨, 私鑄之械, 初非神運鬼輸之物。 而我賣其癡, 彼和其奸, 以奸戢奸, 防不勝防, 貨輕物重, 其弊滋甚。 式至于今, 當捄無疑。 然又借紙貨, 欲爲矯捄, 則銅旣爲輕, 紙反爲重乎? 來頭紙幣膺造之弊, 恐有甚於白銅之濫觴, 以暴易暴, 徒勞無益。 且以錢文年號言之, 廢我光武, 用彼明治, 主客倒置, 國體之損, 果何如也? 臣愚以爲旣得借款, 不以紙幣, 以金銀設法鼓鑄, 以金爲原位貨, 以銀爲補助貨, 量鑄得二千萬圓, 兌換白銅貨, 則矯捄之方, 恐合事宜矣。 以言乎刑法, 則近聞自彼之司令部, 受民訴訟, 任意決行。 噫! 祖宗五百年休養之化, 陛下四十載愛育之澤, 至深厚矣。 則至愚而神者, 民也, 皆非失性, 豈一朝捨我法官, 就彼求伸哉? 苟究厥由, 職有所驅。 挽近以來, 官以貨得, 訟以賄決, 凡厥庶民, 疾視其上者久矣, 則此所以驅之也。 願下明詔, 內而司法之官、外而字牧之任, 責以聽訟公允, 毋使有冤者莫伸、無情者得售。 而如有不得其平而往訴于彼者, 隨其現發, 該聽訟之官, 無論內外, 繩以重律, 不少容貸, 則民知國家有法, 而弊自息矣。 陛下每思得人才, 如諸葛亮者而用之, 使眞諸葛爲陛下獻策, 其所言亦不過曰: ‘親賢臣遠小人而已’矣, 曰: ‘宮中、府中, 俱爲一體而已’矣。 曰: ‘陛下亦宜自謀而已’矣。 誠願陛下以此三言, 若親聞於諸葛亮者, 而斷然行之, 賢臣則親之, 小人則遠之, 宮部各任其職, 使爲一體, 陛下則自謀以主敬, 如臣前所陳者。 正心誠意於堂阼之上、㝔奧之間, 而廓然大公, 儼然至正, 泰然行其所無事, 而坐收百官衆職之成功矣。 何苦替行群下之事, 使政府奉行文書而已耶? 彼人之謂我無政府者, 實陛下自毁之也。 竊爲陛下不取也。 噫嘻! 近習不可信, 便嬖不可恃。 今日陛下坐榻之外, 皆敵國探報之人警察之場, 則陛下所與守者何人, 所與議者何人? 臣言念及此, 蹶然而起, 奮然而立, 憮然而自傷。 寧效古人舁櫬赴朝, 碎首天陛之事, 家國未破之前, 願死于陛下之庭者。 以退無可去之地, 去無可死之處, 故略暴梗槪于疏中, 隨到闕下而待命。 赦其罪而納其忠, 則固臣之願, 誅之以狂言之罪, 亦臣之幸也。" 批曰: "卿其退待可也。"
- 【원본】 49책 4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7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역사-고사(故事) / 교통-육운(陸運) / 광업-광산(鑛山) / 재정-국용(國用) / 사법-법제(法制) / 금융-화폐(貨幣) /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 외교-왜(倭)
고종실록45권, 고종 42년 3월 7일 陽曆 4/6 기사 / 1905년 대한 광무(光武) 9년
김학진이 상소문에 대한 비답이 없어 세 번째 상소문을 올리다
국역
정2품(正二品) 김학진(金鶴鎭)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망녕되게 두 번째 상소를 올리고 아직 비답의 말씀을 받지 못해 두려움에 잠겨 죄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에 어찌 감히 말을 또 하겠습니까? 그러나 열흘 사이에 큰 우환거리가 거듭 생겨 숨도 쉴 수 없는 형편이라서 전날 아뢴 것은 오히려 둘째 문제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만 논하고 보답은 하지 못한 문천상(文天祥)의 소행에 은근히 의의를 부여하게 된 데다가 처단당하는 것도 피하지 않는 것이 문제를 논의하는 원칙이므로 엄한 처단을 무릅쓰고 상소를 올리니, 삼가 바라건대 조금이나마 살펴주소서.
지금 시국이 날로 변하여 강한 이웃 나라가 우리를 대신하여 국사(國事)를 처리하는 판인데 고금(古今)을 부앙(俯仰)해보나 지금처럼 남의 통제를 받은 적이 언제 있었겠습니까? 한척의 배로 당도한 애산(崖山)은 그래도 송(宋) 나라의 옮겨간 조정이었고 한 개의 부(府)가 설치된 오주(梧州) 또한 명(明) 나라의 행재(行在)였으므로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을 이행하는 일들을 여전히 스스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은 온갖 병폐가 나타나고 갖은 우환거리가 생겨나지만 이미 자신을 강화할 생각을 잊어버리고 그저 그럭저럭 임시변통에만 힘쓰고 있습니다.
8, 9년이래로 중심 철도를 다른 사람에게 양여하고 온 나라 광산(鑛山)의 이권도 다른 나라에 소속되었으며 심지어 관제를 고치어 바로잡고 화폐를 바로 고치는 일까지도 스스로 우리가 작정하여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남의 지휘에 따라 꼭두각시 노릇을 기꺼이 하건만 자책하는 폐하의 조칙(詔勅)은 또한 빈 문서일 뿐입니다. 뛰어다니는 모든 관리들의 수고라는 것도 한갓 남을 먹여주는 것일 따름입니다.
이렇듯 어려운 시기에는 임금과 신하 상하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담력을 발휘하여 분발하여 일을 하여도 오히려 지탱하기 어려울까 걱정되는 법입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덮어놓고 굽실거리면서 하루하루 나태하게 지내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빠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실로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대저 나라가 나라답게 되는 것은 재정(財政)을 가지고 있고 형법(刑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정에 대해 말한다면 부(賦)를 맡아보는 관리가 방법을 체득하지 못하고 심지어 이웃 나라에서 차관(借款)을 얻어다 화폐를 바로잡아 고치고 있습니다. 신이 비록 지방에 있어서 자세한 것은 듣지 못하였으나 왁자하게 떠도는 풍문에 의거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지폐(紙幣)를 꾸어다가 악화(惡貨)를 바꾸는 것은 비록 부득이 하여 취한 조치이기는 하겠지만 백동화폐(白銅貨幣)를 남주(濫鑄)한 자체가 이미 첫째로 잘못한 것이니, 지폐를 꾸어다 쓰는 것이 어찌 둘째로 잘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백동화폐를 개인이 사사로이 주조하는 기계는 당초에 귀신이 실어다준 것이 아니건만 우리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저들은 간사한 것으로 대응하였으며 간사한 것으로써 간사한 것을 막는 일도 해내지 못한 결과 돈의 가치는 가벼워지고 물건은 중해져 그 폐단이 차츰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또 지화를 꾸어다 바로잡으려고 하니 구리를 이미 가볍게 여기는데 종이를 도리어 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지폐를 위조하는 폐단은 아마도 백동의 낭비보다 심해져 사나운 것으로써 사나운 것을 바꾸는 것은 그저 수고로울 뿐 이익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돈에 새긴 연호로 말하면 우리의 ‘광무(光武)’를 폐지하고 저들의 ‘명치(明治)’를 쓰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써 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킴이 과연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에는 이미 차관(借款)을 얻었으니 지폐로 하지 말고 금은(金銀)으로 규정을 세워 주조하되 금을 본위 화폐(本位貨幣)로 하고 은을 보조화폐로 하여 주조량이 2천만 원가량 되었을 때에 백동화폐를 교환한다면 바로잡는 방도가 아마도 시행해야 할 사항에 합당할 듯합니다.
형법에 대해 말한다면 근래에 듣자니 저들의 사령부(司令部)에서 백성들의 소송을 받아서 임의로 처결한다고 합니다. 아! 역대의 임금들이 500년 동안 길러온 교화와 폐하가 40년 동안 키워준 덕택은 더없이 깊고도 후한 것입니다.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령스러운 것이 백성인데 모두 실성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하루아침에 우리의 법 맡은 관리를 무시하고 저들한테 가서 해결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진실로 그 원인을 따져보면 주로 몰아내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근래에 관직을 재물로 얻고 송사를 뇌물로 판결하기 때문에 무릇 서민들이 윗사람들을 질시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원컨대 명백한 명령을 내려 안으로는 사법(司法) 관리로부터 밖으로는 수령(守令)들에 이르기까지 송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도록 신칙하여 원통하게 된 사람이 억울한 사정을 풀지 못하거나 근거 없이 팔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십시오.
만약 공정을 기하지 못하여 저들에게 가서 송사하는 사람이 생기는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따라 송사를 처결한 해당 관리를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중한 형률로 다스리고 조금도 용서하지 말도록 하소서.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나라에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폐단이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폐하는 항상 제갈량(諸葛亮)과 같은 인재를 얻어 써보았으면 하고 생각할 터인데 제갈량으로 하여금 폐하를 위해 계책을 말씀드리게 한다 하더라도 그의 말 또한 ‘어진 신하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할 따름입니다.’, ‘왕궁과 조정이 모두 일체로 되는 것일 뿐입니다.’, ‘폐하도 스스로 꾀하여야 할 따름입니다.’라고 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 세 가지의 말을 마치 제갈량에게서 직접 들은 듯이 여기고 단연코 시행하되 어진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하는 일과 왕궁과 조정이 각기 자기의 직책을 맡아 일체로 되게 하는 일과 폐하가 스스로 꾀해서 공경을 위주로 하는 일들을 신이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소서. 그리하여 정사를 처리할 때나 한가히 있을 때나 마음을 바로 가지고 뜻을 성실하게 가져 확연히 공정하게 하고 엄연히 바르게 하며 태연히 일이 없게 해서 여러 관리들이 성과를 이룩하는 것을 앉아서 기다리소서.
무엇 때문에 여러 신하들의 일을 고생스레 대행해서 정부로 하여금 문서나 다루게 하십니까? 저 사람들이 우리에게 정부가 없다고 하는 것은 사실 폐하께서 스스로 허물어놓은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제 손으로 그런 비난을 초래하지 마십시오. 아! 근습(近習)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고 곁에서 총애 받는 사람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오늘 폐하께서 앉아 계신 자리의 밖은 모두 적국의 정탐배들이 감시하는 마당이니 폐하가 누구와 함께 지키고 누구와 함께 의논하겠습니까?
신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훌쩍 일어나 분연히 섰다가 실망에 잠겨 스스로 자신의 몸을 해치고 싶습니다. 차라리 관을 메고 조정에 들어가 대궐 섬돌에 머리를 짓찧은 옛 사람의 소행을 본받아 나라가 망하기 전에 폐하의 조정에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물러나려고 해도 갈 만한 곳이 없고 가도 죽을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상소 안에 대략 의사를 피력한 다음 대궐에 이르러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죄를 용서하고 충성스러운 말을 받아들이면 실로 신의 소원대로 되는 것이고 망녕되게 지껄인 죄로써 처단하여도 신으로서는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경은 물러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원본】 49책 4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7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역사-고사(故事) / 교통-육운(陸運) / 광업-광산(鑛山) / 재정-국용(國用) / 사법-법제(法制) / 금융-화폐(貨幣) /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 외교-왜(倭)
원문
正二品金鶴鎭疏略: "臣妄陳再疏, 未承批旨, 惶縮俊罪, 豈敢復言? 而旬日之頃, 大患層生, 勢不容息, 前日所言, 猶屬第二聲。 故竊附文天祥言事未報, 繼又論事之義, 不避斧鉞之誅, 抵冒出此。 伏惟少垂察焉。 顧今時局日變, 强隣代籌, 俯仰今古, 豈有如今日之受制也? 一舟崖山, 猶是宋之行朝, 一府梧州, 亦是明之行在, 發號施令, 尙能自辦。 今我國勢, 瘡疣百出, 憂虞萬端, 而旣忘自强, 則惟務姑息。 自八九年來, 中心鐵道, 讓與別人, 八方鑛利, 屬於他國。 至於官制之釐正、貨幣之矯捄, 亦不能自我籌辦。 動輒隨人指揮, 甘爲傀儡, 而陛下責躬之詔, 亦是文具而已, 百官趨走之勞, 徒爲哺啜而已耳。 際此艱棘, 君臣上下, 明目張膽, 奮發有爲, 尙患難支。 顧反伈伈泄泄, 因循頹惰, 懜然不覺其自底于顚擠, 誠不識其何故也。 夫國之所以爲國者, 以其有財政也、刑法也。 以言乎財政則治賦之臣, 不得其術, 至於借款于隣, 矯捄貨幣。 臣雖在外, 未聞其詳, 然據其流傳狼藉者言之。 則借得紙幣, 兌換惡貨, 雖出於迫不得已之計, 而白銅濫鑄, 旣是一誤, 紙貨借用, 豈非再誤乎? 臣竊思之白銅之貨, 私鑄之械, 初非神運鬼輸之物。 而我賣其癡, 彼和其奸, 以奸戢奸, 防不勝防, 貨輕物重, 其弊滋甚。 式至于今, 當捄無疑。 然又借紙貨, 欲爲矯捄, 則銅旣爲輕, 紙反爲重乎? 來頭紙幣膺造之弊, 恐有甚於白銅之濫觴, 以暴易暴, 徒勞無益。 且以錢文年號言之, 廢我光武, 用彼明治, 主客倒置, 國體之損, 果何如也? 臣愚以爲旣得借款, 不以紙幣, 以金銀設法鼓鑄, 以金爲原位貨, 以銀爲補助貨, 量鑄得二千萬圓, 兌換白銅貨, 則矯捄之方, 恐合事宜矣。 以言乎刑法, 則近聞自彼之司令部, 受民訴訟, 任意決行。 噫! 祖宗五百年休養之化, 陛下四十載愛育之澤, 至深厚矣。 則至愚而神者, 民也, 皆非失性, 豈一朝捨我法官, 就彼求伸哉? 苟究厥由, 職有所驅。 挽近以來, 官以貨得, 訟以賄決, 凡厥庶民, 疾視其上者久矣, 則此所以驅之也。 願下明詔, 內而司法之官、外而字牧之任, 責以聽訟公允, 毋使有冤者莫伸、無情者得售。 而如有不得其平而往訴于彼者, 隨其現發, 該聽訟之官, 無論內外, 繩以重律, 不少容貸, 則民知國家有法, 而弊自息矣。 陛下每思得人才, 如諸葛亮者而用之, 使眞諸葛爲陛下獻策, 其所言亦不過曰: ‘親賢臣遠小人而已’矣, 曰: ‘宮中、府中, 俱爲一體而已’矣。 曰: ‘陛下亦宜自謀而已’矣。 誠願陛下以此三言, 若親聞於諸葛亮者, 而斷然行之, 賢臣則親之, 小人則遠之, 宮部各任其職, 使爲一體, 陛下則自謀以主敬, 如臣前所陳者。 正心誠意於堂阼之上、㝔奧之間, 而廓然大公, 儼然至正, 泰然行其所無事, 而坐收百官衆職之成功矣。 何苦替行群下之事, 使政府奉行文書而已耶? 彼人之謂我無政府者, 實陛下自毁之也。 竊爲陛下不取也。 噫嘻! 近習不可信, 便嬖不可恃。 今日陛下坐榻之外, 皆敵國探報之人警察之場, 則陛下所與守者何人, 所與議者何人? 臣言念及此, 蹶然而起, 奮然而立, 憮然而自傷。 寧效古人舁櫬赴朝, 碎首天陛之事, 家國未破之前, 願死于陛下之庭者。 以退無可去之地, 去無可死之處, 故略暴梗槪于疏中, 隨到闕下而待命。 赦其罪而納其忠, 則固臣之願, 誅之以狂言之罪, 亦臣之幸也。" 批曰: "卿其退待可也。"
- 【원본】 49책 45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7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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