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44권, 고종 41년 7월 27일 陽曆 5/5 기사 / 1904년 대한 광무(光武) 8년
의정부 총무 국장 박의병이 벼슬을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다
국역
의정부 총무 국장(議政府總務局長) 박의병(朴義秉)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듣건대 고요(皐陶)가 순(舜) 임금을 경계하기를, ‘모든 관청을 비우지 말라. 하늘이 할 일을 사람이 대신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순 임금은 크게 이룩하고 지극히 뛰어난 임금입니다. 당시 모든 벼슬 자리에는 어질고 지혜롭고 충성스럽고 근면하지 않은 신하가 없었지만 고요의 경계가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하물며 이보다 못한 경우야 더 말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동중서(董仲舒)는 한 무제(漢武帝)에게 올린 책문(冊文)에서, ‘조정을 바로잡음으로써 모든 관리를 바로잡고 모든 관리를 바로잡음으로써 만백성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또, ‘정사에 임해서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은 물러서서 새롭게 고쳐 교화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제는 문제(文帝)와 경제(京帝)의 정사를 계승하였으므로 비록 잘 다스려지고 안정된 시대에 있었지만 서로 비교하여 계고(戒告)하면서 감히 안정되어 있고 잘 다스려진다고 해서 하루도 게으른 적이 없었는데, 더구나 위태로운 때이겠습니까? 지금 폐하께서는 순 임금의 천품을 지녀 한 나라나 당(唐) 나라의 임금들도 어깨를 겨룰 수 없건만, 벼슬이 비고 조정이 바로잡히지 않은 것이 지금보다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한 시대의 교화를 경장(更張)해서 엉성해진 정사를 진쇄(振刷)하고 모든 일을 정리(整理)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래에서 옳게 받드는 사람이 없으며, 직무를 맡기고 잘 수행하도록 다짐받는 조령(詔令)이 간절하게 거듭 내렸지만 정부와 모든 관청의 신하들은 옛 버릇에 젖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높은 녹봉만 탐내고 사적인 계책만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유신(維新)의 효과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대저 온 나라의 사무를 총괄하는 것이 근본을 바로잡고 훌륭한 정사를 내는 요체인데 이것은 의정부(議政府)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회의라는 것은 다만 관제(官制)나 개정하고 경비나 지출하는 자질구레한 형식에 불과할 뿐 나라를 운영하는 대의(大義)와 옛것을 개혁하고 새길로 나갈 것에 대해 논의하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전선(銓選)이 무법천지로 진행되어 사적인 것을 따르고 공적인 것이 피폐되며 공무가 적체되고 백성들의 폐단이 늘어나는 것은 전사(銓司)에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법률이 뒤바뀌어 어그러져서 사건 처리에 억울한 것이 많으며 옥에 갇힌 자가 해가 지나도록 처리되지 않고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처단을 당하며 엄한 국법을 제멋대로 낮추었다 높혔다 하는 것은 법사(法司)에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탁지부(度支部)의 관리들은 재정이 문란한데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학부(學部)의 관리들은 인재가 없지만 교육할 줄을 모릅니다. 군부(軍部)에서는 군사에 관한 정사를 진쇄하지 못하고 외부에서는 겁을 먹고 위축되어 교섭을 확신 있게 하지 못하니, 이것을 직무를 다한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궁내부(宮內府)에서 용관(宂官)을 증설하고 윤함(輪銜)을 없애는 것이 공사(公私)에 무슨 이익이 있다고 이런 벼슬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까? 들판에 황무지가 많으나 개간할 줄을 모르고 산림과 못에 이익이 있으나 취할 줄을 모르면서 외국의 청원을 치계(致啓)한 것은 농상공부(農商工部)의 책임입니다.
요사한 무당들이 거짓으로 속이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건만 금지하지 못하고, 군호(軍號)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강도질을 하는 무리들의 노략질이 끊임없건만 단속하지 못하는 것은 경찰(警察)의 임무를 맡은 관청의 실책입니다. 이밖에 모든 관청에서 직무에 태만하였던 것을 낱낱이 들 수 없으니 정사가 나날이 잘못되고 나랏일이 갈수록 그르치게 되는 것이 무슨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아! 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군신 상하가 눈을 부릅뜨고 대담하게 마음을 착실히 기울이고 힘을 다하여 오늘 한 가지 일을 시행하고 내일 또 한 가지 일을 시행하여 감히 태만하게 하지 않은 후라야 간고한 시국을 널리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사에 관한 정사에서 전철을 바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유신(維新)을 하려고 하는 것은 월(越) 땅으로 가려고 하면서 북쪽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크게 건단(乾斷)을 내려 조정에 있는 용렬하고 게으른 자들을 하나하나 물리쳐 쫓아내고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널리 구하되, 초야에 숨은 선비나 천한 부류를 막론하고 대담하게 등용해서 모든 관청에 배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각기 자기 직무를 다하도록 하면 유신의 교화가 이루어지고 나라의 형세가 널리 펴져 이웃 나라들의 업신여김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위태로움을 바꾸어 안정시키고 난리를 평정하여 잘 다스려진 세상을 도모하는 것이 이보다 급선무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신 역시 용렬하고 태만한 자들 중의 하나이니 물리쳐 쫓아내는 일은 응당 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신의 죄를 다스리고 신의 말을 받아들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래 관리로 있으면서 자기 상관을 규탄한 것은 참으로 사체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였다.
- 【원본】 48책 44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38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
원문
議政府總務局長朴義秉疏略:
臣聞皐陶之戒舜曰: "無曠庶官, 天工人其代之。" 舜, 大聖也, 當時在庶官之列者, 無非賢智忠勤之臣, 而皐陶之戒猶如此, 況其下於此者乎? 董仲舒對漢 武帝策曰: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又曰: "臨政願治, 不如退而更化。" 武帝承文、景之治, 雖在治安之世, 其交相戒告, 不敢以已安已治而一日或怠也。 況在艱危之日乎? 今陛下, 大舜之姿也, 漢、唐以還, 不足侔擬, 而庶官之曠、朝廷之不得其正, 未有甚於此時也。 聖心非不欲更張一世之化, 振刷秕政, 整理庶務, 而下無承當者。 委任責成之詔, 申複懇摯, 而政府百司之臣, 狃於舊習, 不職其職, 所貪者榮祿也, 所濟者私計也, 如是而安可望維新之效乎? 夫總攬一國之事務, 以爲端本出治之要, 政府之責也。 今之會議者, 只不過改正官制、支出經費細瑣文具而已, 未嘗聞經國之大義、革舊而就新。 銓選無法, 循私廢公, 公務積滯, 民弊滋生: 此銓司之不職也。 法律顚錯, 刑獄多冤, 滯囚者踰年未決, 無辜者橫被誅戮, 三尺王章, 惟意低昻: 此法司之不職也。 度支之臣, 財政紊亂, 而不思整理; 學部之臣, 人才委靡, 而不知敎育。 軍部之不能振刷戎政, 外部之退縮懦怯, 不能確孚交涉, 是可謂盡職乎? 宮內府之增設宂官, 除免輪銜, 何益於公私而所職止此乎? 原野多荒廢, 而不知墾, 山澤有遺利, 而不知取, 致啓外隣之請求, 農部之責也。 巫祝妖邪之類, 誣惑肆行, 而不之禁, 嘯聚竊發之徒, 剽掠不絶, 而不之戢, 警察官之失也。 外他, 百司之癏曠, 不能枚擧, 政治之日壞, 國事之日非, 何足怪乎? 嗚呼! 此時何時也? 君臣上下, 固當明目張膽, 實著心, 猛著力, 今日行一事, 明日行一事, 毋敢怠忽, 而後庶可弘濟艱難。 以若人才不思易轍, 而欲求其維新, 是猶之越而北轅也。 伏願陛下廓揮乾斷, 在廷臣寮, 庸瑣怠慢者, 一一斥退, 旁求賢良忠正之臣, 雖草野巖穴之士、鼓刀版築之類, 不次登庸, 布列百司, 使之各盡其職, 則維新之化可致, 國勢可以恢張, 隣侮可以消折。 今日之轉危爲安、撥亂圖治, 孰有急於此乎? 臣亦庸瑣怠慢之一也, 斥退誅黜, 宜自臣始。 治臣之罪, 採臣之言焉。
批曰: "方在下寮, 論其大官, 殊失事體矣。"
- 【원본】 48책 44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38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
고종실록44권, 고종 41년 7월 27일 陽曆 5/5 기사 / 1904년 대한 광무(光武) 8년
의정부 총무 국장 박의병이 벼슬을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다
국역
의정부 총무 국장(議政府總務局長) 박의병(朴義秉)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듣건대 고요(皐陶)가 순(舜) 임금을 경계하기를, ‘모든 관청을 비우지 말라. 하늘이 할 일을 사람이 대신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순 임금은 크게 이룩하고 지극히 뛰어난 임금입니다. 당시 모든 벼슬 자리에는 어질고 지혜롭고 충성스럽고 근면하지 않은 신하가 없었지만 고요의 경계가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하물며 이보다 못한 경우야 더 말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동중서(董仲舒)는 한 무제(漢武帝)에게 올린 책문(冊文)에서, ‘조정을 바로잡음으로써 모든 관리를 바로잡고 모든 관리를 바로잡음으로써 만백성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또, ‘정사에 임해서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은 물러서서 새롭게 고쳐 교화하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제는 문제(文帝)와 경제(京帝)의 정사를 계승하였으므로 비록 잘 다스려지고 안정된 시대에 있었지만 서로 비교하여 계고(戒告)하면서 감히 안정되어 있고 잘 다스려진다고 해서 하루도 게으른 적이 없었는데, 더구나 위태로운 때이겠습니까? 지금 폐하께서는 순 임금의 천품을 지녀 한 나라나 당(唐) 나라의 임금들도 어깨를 겨룰 수 없건만, 벼슬이 비고 조정이 바로잡히지 않은 것이 지금보다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한 시대의 교화를 경장(更張)해서 엉성해진 정사를 진쇄(振刷)하고 모든 일을 정리(整理)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래에서 옳게 받드는 사람이 없으며, 직무를 맡기고 잘 수행하도록 다짐받는 조령(詔令)이 간절하게 거듭 내렸지만 정부와 모든 관청의 신하들은 옛 버릇에 젖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높은 녹봉만 탐내고 사적인 계책만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유신(維新)의 효과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대저 온 나라의 사무를 총괄하는 것이 근본을 바로잡고 훌륭한 정사를 내는 요체인데 이것은 의정부(議政府)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회의라는 것은 다만 관제(官制)나 개정하고 경비나 지출하는 자질구레한 형식에 불과할 뿐 나라를 운영하는 대의(大義)와 옛것을 개혁하고 새길로 나갈 것에 대해 논의하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전선(銓選)이 무법천지로 진행되어 사적인 것을 따르고 공적인 것이 피폐되며 공무가 적체되고 백성들의 폐단이 늘어나는 것은 전사(銓司)에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법률이 뒤바뀌어 어그러져서 사건 처리에 억울한 것이 많으며 옥에 갇힌 자가 해가 지나도록 처리되지 않고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처단을 당하며 엄한 국법을 제멋대로 낮추었다 높혔다 하는 것은 법사(法司)에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탁지부(度支部)의 관리들은 재정이 문란한데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학부(學部)의 관리들은 인재가 없지만 교육할 줄을 모릅니다. 군부(軍部)에서는 군사에 관한 정사를 진쇄하지 못하고 외부에서는 겁을 먹고 위축되어 교섭을 확신 있게 하지 못하니, 이것을 직무를 다한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궁내부(宮內府)에서 용관(宂官)을 증설하고 윤함(輪銜)을 없애는 것이 공사(公私)에 무슨 이익이 있다고 이런 벼슬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까? 들판에 황무지가 많으나 개간할 줄을 모르고 산림과 못에 이익이 있으나 취할 줄을 모르면서 외국의 청원을 치계(致啓)한 것은 농상공부(農商工部)의 책임입니다.
요사한 무당들이 거짓으로 속이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건만 금지하지 못하고, 군호(軍號)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강도질을 하는 무리들의 노략질이 끊임없건만 단속하지 못하는 것은 경찰(警察)의 임무를 맡은 관청의 실책입니다. 이밖에 모든 관청에서 직무에 태만하였던 것을 낱낱이 들 수 없으니 정사가 나날이 잘못되고 나랏일이 갈수록 그르치게 되는 것이 무슨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아! 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군신 상하가 눈을 부릅뜨고 대담하게 마음을 착실히 기울이고 힘을 다하여 오늘 한 가지 일을 시행하고 내일 또 한 가지 일을 시행하여 감히 태만하게 하지 않은 후라야 간고한 시국을 널리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사에 관한 정사에서 전철을 바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유신(維新)을 하려고 하는 것은 월(越) 땅으로 가려고 하면서 북쪽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크게 건단(乾斷)을 내려 조정에 있는 용렬하고 게으른 자들을 하나하나 물리쳐 쫓아내고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널리 구하되, 초야에 숨은 선비나 천한 부류를 막론하고 대담하게 등용해서 모든 관청에 배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각기 자기 직무를 다하도록 하면 유신의 교화가 이루어지고 나라의 형세가 널리 펴져 이웃 나라들의 업신여김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위태로움을 바꾸어 안정시키고 난리를 평정하여 잘 다스려진 세상을 도모하는 것이 이보다 급선무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신 역시 용렬하고 태만한 자들 중의 하나이니 물리쳐 쫓아내는 일은 응당 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신의 죄를 다스리고 신의 말을 받아들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래 관리로 있으면서 자기 상관을 규탄한 것은 참으로 사체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였다.
- 【원본】 48책 44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38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
원문
議政府總務局長朴義秉疏略:
臣聞皐陶之戒舜曰: "無曠庶官, 天工人其代之。" 舜, 大聖也, 當時在庶官之列者, 無非賢智忠勤之臣, 而皐陶之戒猶如此, 況其下於此者乎? 董仲舒對漢 武帝策曰: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又曰: "臨政願治, 不如退而更化。" 武帝承文、景之治, 雖在治安之世, 其交相戒告, 不敢以已安已治而一日或怠也。 況在艱危之日乎? 今陛下, 大舜之姿也, 漢、唐以還, 不足侔擬, 而庶官之曠、朝廷之不得其正, 未有甚於此時也。 聖心非不欲更張一世之化, 振刷秕政, 整理庶務, 而下無承當者。 委任責成之詔, 申複懇摯, 而政府百司之臣, 狃於舊習, 不職其職, 所貪者榮祿也, 所濟者私計也, 如是而安可望維新之效乎? 夫總攬一國之事務, 以爲端本出治之要, 政府之責也。 今之會議者, 只不過改正官制、支出經費細瑣文具而已, 未嘗聞經國之大義、革舊而就新。 銓選無法, 循私廢公, 公務積滯, 民弊滋生: 此銓司之不職也。 法律顚錯, 刑獄多冤, 滯囚者踰年未決, 無辜者橫被誅戮, 三尺王章, 惟意低昻: 此法司之不職也。 度支之臣, 財政紊亂, 而不思整理; 學部之臣, 人才委靡, 而不知敎育。 軍部之不能振刷戎政, 外部之退縮懦怯, 不能確孚交涉, 是可謂盡職乎? 宮內府之增設宂官, 除免輪銜, 何益於公私而所職止此乎? 原野多荒廢, 而不知墾, 山澤有遺利, 而不知取, 致啓外隣之請求, 農部之責也。 巫祝妖邪之類, 誣惑肆行, 而不之禁, 嘯聚竊發之徒, 剽掠不絶, 而不之戢, 警察官之失也。 外他, 百司之癏曠, 不能枚擧, 政治之日壞, 國事之日非, 何足怪乎? 嗚呼! 此時何時也? 君臣上下, 固當明目張膽, 實著心, 猛著力, 今日行一事, 明日行一事, 毋敢怠忽, 而後庶可弘濟艱難。 以若人才不思易轍, 而欲求其維新, 是猶之越而北轅也。 伏願陛下廓揮乾斷, 在廷臣寮, 庸瑣怠慢者, 一一斥退, 旁求賢良忠正之臣, 雖草野巖穴之士、鼓刀版築之類, 不次登庸, 布列百司, 使之各盡其職, 則維新之化可致, 國勢可以恢張, 隣侮可以消折。 今日之轉危爲安、撥亂圖治, 孰有急於此乎? 臣亦庸瑣怠慢之一也, 斥退誅黜, 宜自臣始。 治臣之罪, 採臣之言焉。
批曰: "方在下寮, 論其大官, 殊失事體矣。"
- 【원본】 48책 44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38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