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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40권, 고종 37년 4월 17일 陽曆 5/5 기사 / 1900년 대한 광무(光武) 4년

육군 참장 백성기가 군정의 균등과 군법의 제정 등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다

국역

육군 참장(陸軍參長) 백성기(白性基)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현재 시급히 바로잡고 구제해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감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는 의리로서 아래와 같이 나열하여 폐하께서 열람하시도록 공손히 갖추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유의하여 받아들여 주소서.

첫째, 군정(軍政)을 균등하게 하는 문제입니다. 군사란 것은 계책에 달려 있고 용맹에 달려 있지 않으며, 정예한 것에 달려 있고 수가 많은 데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정예롭게 양성하고 방책으로 인도한 다음에야 일시에 힘을 얻을 수 있어서 나아가서는 싸울 수 있고 물러나서는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군사 제도로 말하자면 안으로는 시위(侍衛)와 친위(親衛)의 명색이 있고 밖으로는 진위(鎭衛), 지방이라는 칭호가 있는데 군향(軍餉)과 요포(料布)가 같지 않고 호령(號令)도 각기 다릅니다. 서울과 지방의 1만 명도 안 되는 군사가 먹고 입는 것을 지급받는 데에 현저한 차별이 있으므로 세력을 믿고 교만을 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불만을 품고 탄식하는 자가 있어서 의심과 배반이 그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군사를 설치하였는데 한 번이라도 배반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면 도리어 군사가 없는 것만 못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서는 서울과 지방의 각 부대들이 규모를 한결같이 함으로써 진격하고 퇴각하는 데서 주저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야 하니, 그런 다음에 적임자를 골라 장수로 임명하여 기르는 데서는 은혜롭게 하고 벌주는 데서는 위엄 있게 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을 가르치고 죽음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가는 의리로 인도해야만 비로소 나라에 군사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령(將領)을 진실로 적임자를 얻었다면 반드시 그 직책에 오래 두어 성과를 거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부대를 세우고 군사를 설치한 지 6, 7년도 못되는데 그 사이에 장수들이 자주 체차되어 장수는 병졸을 알지 못하고 병졸은 장수를 알지 못하니, 어느 겨를에 은혜와 위엄과 교육을 시행하겠습니까? 삼사 바라건대, 명철한 처분을 내려 군법(軍法)으로 징계해야 할 자와 연한이 이미 찬 자들을 제외하고는 개차(改差)하지 말아서 장수와 병졸들이 한마음으로 서로 믿도록 하소서.

둘째, 군법을 제정하는 문제입니다. 군사는 많고 적은 데 관계없이 규율이 없으면 통솔할 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이름난 장수는 군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하면서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점령하였는데 이는 제정한 군율(軍律)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지금 지방에는 군부(軍部)를 두고 중앙에는 원수부(元帥府)를 두고 있으면서도 아직 군법을 제정한 것이 없으니 매우 군사를 기르는 방도가 아닙니다.

지난날 각영(各營)의 병졸들이 간혹 죄를 짓게 되면 형조(刑曹)에 넘겨서 조율(照律)하였습니다. 그러나 의거할 만한 법조문이 없고 또 굳어진 판례도 없기 때문에 죄인을 처결할 때마다 구차스럽게 마감하였습니다. 직무를 정지시키거나 파면시키는 것도 이미 기준이 없으니, 가두거나 귀양 보내는 것인들 어찌 적중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죄의 경중이 억측으로 정해지고 죄의 판결이 공의(公議)와 혹 어긋나기도 하니 언제나 과도하거나 부족하다는 탄식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감복시키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각 부대의 대오가 각각 다르고 아직 일정한 규범이 없으니, 이 상태에서 군사를 통제한다면 이는 사실 법이 없는 군대이니 장차 어떻게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통제하며 목숨 걸고 싸우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군사에 관한 일에서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일입니다. 작년에 군법 초안을 만들라는 명이 있어서 신도 위원(委員)의 직임을 맡아 널리 관리들의 의견을 모으고 옛것과 오늘날의 것을 참작하여 이미 초안을 만들어 폐하께서 열람하시도록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속히 명을 내려 토의를 거쳐주재(奏裁)함으로써 6군의 규율을 엄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군사 명부를 명백히 하는 문제입니다. 군사 명부는 백성들의 호적보다 엄격하게 된 다음에라야 도피하거나 속이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군사들이 처음 입대할 때에 비록 그 성명을 해당 문건에 기록하더라도 몇 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성명을 고치고 몰래 대신시키거나 면목(面目)을 바꾸어 대신 행하더라도 적발해 내지 못합니다. 또 간혹 도망쳐 나타나지 않는 자가 있어도 증거할 만한 점이 없어 체포하지 못하니 이는 참으로 명부가 자세하지 않고 보증하는 친족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의 군율도 이러니 만약 실제 병사를 써야 할 때를 당하면 어떻게 명령을 통제하며 간악한 짓을 막아내겠습니까?

옛날 각영의 군사들은 요패(腰牌)를 찼고, 중고(中古)의 친군(親軍)은 모자의 앞면에 이름을 썼는데, 갑오년 이후로는 외국의 규례에 따라 명부를 작성하여 지급하였습니다. 최근에 와서 시위대(侍衛隊), 친위대(親衛隊)는 각각 군사 정원에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이고 실지로는 이름표를 항상 지니고 다니는 자가 없으니 만약 다른 날 군사를 출동할 때에 간악한 무리들과 음흉한 적들이 우리 군사의 복장을 모방해서 착용한다면 어떻게 적군과 아군을 가려내겠습니까? 또 평상시로 말하자면 더없이 중요한 숙위병(宿衛兵)과 수위병(守衛兵)이 이미 자기 표식이 없으므로 복장을 바꾸어 입고 속이고 들어오는 자가 있어도 실지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증험할 수 없을 것이니 어떻게 이처럼 소홀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군사들이 입적(入籍)할 초기에 거주지와 보증인을 명백히 장부에 올려서 도망치는 폐단이 없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관(尉官) 이상은 각패(角牌)를, 하사(下士) 이하는 요패를 옛 규례대로 만들어 준 다음, 낮에 거리에서 소란을 일으키거나 밤에 대궐문으로 출입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적간(摘奸)하되 만약 패가 없거나 패를 위조했거나 패를 빌려 가진 자가 있으면 붙잡아 군법국(軍法局)에 넘겨 법에 의거하여 죄를 징계함으로써 면목을 바꾸거나 이름을 변경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명령 체계를 정확히 하는 문제입니다. 군문(軍門)에 순차를 둔 법은 예로부터 엄격하였습니다. 옛부터 영(營), 5사(司), 5초(哨), 3기(旗), 9대(隊)를 둔 제도가 매우 방정하여 비록 한 품계나 반 등급이라도 감히 뛰어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높일 것은 높이고 낮출 것은 낮추어 각각 명칭을 가졌고 윗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데서도 법도가 뚜렷하였는데 비록 같은 등급에 있다 해도 선후차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군사 제도는 비록 장수, 영관(領官), 위관, 하사, 병졸(兵卒)의 등급이 있으나 통솔 체계가 엄격하지 못하고 규제가 정해 있지 않으므로 상하가 문란하고 존비가 혼돈되어 말을 주고받는 데서도 공경하고 삼가는 예절이 별로 없습니다. 비록 문임(文任) 관청이라도 통솔 체계가 있는데 더구나 군사 지휘와 명령을 주고받으며 살리고 죽이는 명령을 하달하는 육군의 체제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나라가 있으면 군사가 있고 군사가 있으면 예절이 있어야 하는데, 부대를 설치한 이후로 아직 군례(軍禮)를 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하가 상관을 능멸하는 폐단이 연이어 생기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도 이와 같은데 싸움에 임해서 어떻게 명령을 하달하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군사 기율에 크게 관계되므로 하루도 늦출 수 없는 것입니다. 속히 원수부에 명하여 고금의 일을 참작하여 특별히 예절에 대한 규정을 만들게 함으로써 군사 기율을 엄숙히 할 것입니다.

다섯째, 군사 훈련을 미리 갖추는 문제입니다. 지금 각 부대의 군사 정원은 빈자리가 나는 대로 보충하고 있는데 보충하는 군사들은 신병들입니다. 가령 한 소대의 50명(名) 중에서 숙련된 군사와 숙련되지 못한 신병이 뒤섞여 있으면 어떻게 정제되고 순수하여 호령과 지휘가 마치 팔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실로 되지 않을 일입니다. 만약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10년 동안 군사를 길러 100명, 1000명의 부대를 편성한다 해도 온전한 부대가 되는 날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날 각영에서는 7종의 군병 외에 또 장초군(長抄軍), 대년군(待年軍)이라는 각기 다른 명목(名目)의 군을 두어 영 밖에서 사적으로 익히고 영에서도 교육하여 그가 입영할 때에는 숙련의 정도가 별로 차이나지 않게 하였으므로 7종의 군사에 합쳐서 쓸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지금의 군사는 정병(正兵)과 친병(親兵)인데도 애당초 사적으로 익힌 기예가 없는데다가 또 지식과 견문도 없는 자들이 갑자기 온전한 대오에 들어가면 숙련된 군사와 숙련되지 못한 군사가 자연히 서로 뒤섞여서 심지어 행군하는 보법(步法)까지도 구령에 맞추지 못할 것이니, 참으로 대오를 편성하는 본의가 아닙니다. 각 부대의 정원 외에 따로 예비병 1대(隊)를 설치하되 200명으로 한정하여 젊고 건장한 무리들을 모집하여 밤낮을 가리지 말고 훈련시키다가 각 부대의 결원이 있으면 이미 숙련된 자를 뽑아서 그 대신으로 보충한다면 결코 신병과 숙련된 군사가 뒤섞이는 폐단이 없게 되어, 대오는 정제되고 군사의 위용은 씩씩하고 엄숙해질 것입니다.

여섯째, 군량(軍糧)을 비축하는 문제입니다. 서울과 지방의 각 부대 군사들의 급료를 모두 전(錢)으로 나누어 주는 것은 비록 통상적인 규례라 하더라도 나라에 비축해 둔 곡식이 없어서 더없이 중요한 군량을 아침마다 사며 사는 대로 실어 나르니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해나가는 민가(民家)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은 듣기에도 거북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그 광경이 괴이합니다. 또한 나라의 경비로 말하더라도 나라에 3년분의 비축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는 것인데 더구나 지금은 한 달분의 밑천도 없습니다. 이러다가 불의의 변고나 흉년을 만나면 장차 어떻게 군사들을 먹이고 그들의 마음을 안착시키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서울 안의 각 부대의 1년분 군량을 계산하여 삼남(三南) 해변가의 곡식이 나는 각 고을에 분배하고, 거기서 공납하는 결전(結錢)으로 미(米)를 사들여서 서울 안의 부대에 실어다가 군량을 마련한다면 비록 사들인 미만으로도 1년분의 경비는 될 것입니다. 1년분의 경비가 될 뿐만 아니라 절약해서 쓴다면 필시 남아 저축할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군대에는 군량 때문에 한탄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나라에는 저축할 미가 있게 될 것이며 서울 안의 백성들도 여기에서 도움을 받아 일시의 구제하는 방도가 있게 될 것이니, 이것은 참으로 군사와 백성들이 모두 살 수 있는 계책입니다.

일곱째, 휴직(休職)시키는 것을 변통하는 문제입니다. 군사를 휴직시키는 것은 옛날 오위(五衛) 군직의 규례였는데, 요즘에는 외국의 규례에 따라 감하(減下)하지 않고 그 직무를 휴직시킴으로써 훗날의 예비병(豫備兵)으로 보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는 보충될 예비병도 모두 자기 부대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미 그런 군사가 없고 다만 휴직 군인만 있게 되니 실로 무의미합니다. 더구나 무관 학교(武官學校) 졸업생도 아니고 또 공로를 쌓아서 업적이 드러난 사람도 아니므로 그들은 바로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이름을 감하하여 자기 일을 하도록 맡기는 것만 못합니다. 갑오년(1894) 이후에 전쟁 터에서 싸운 영관과 위관 및 전후로 무관 학교를 졸업한 사관(士官)은 응당 휴직 군인으로 하고 그 밖의 영관과 위관은 근무한 달수를 참작하여 휴직으로 처리할 것이며 그 외에는 모두 감하함으로써, 이름만 있고 실속이 없다는 한탄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덟째, 녹봉을 바로 정하는 문제입니다. 군인의 봉급은 원래 일정한 규정이 없고 각부(各部)의 관등(官等)에 따른 봉급보다 적게 주는데 그것은 그가 휴직한 후에 받는 본봉(本奉)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년(元年) 2월 15에 받은 조칙(詔勅)에는 시위군과 친위군을 영솔하는 직임에 대해, 그 수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휴직하여 본봉을 주기 전에는 특별히 각부의 관등에 따른 봉급과 같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군인의 봉급이 각부의 관리들과 같게 되었는데 그때에는 본봉이 마련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관 학교 졸업생에게는 이미 학교 규정에 실려 있는 것이 있으니 지급하지 않을 수 없고, 정교(正校) 가운데 위관으로 승급하여 현재 각 부대에서 견습하는 사람들에게도 본봉을 지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터에서 실제로 복무한 영관과 위관으로서 현재 휴직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는 또 어떻게 본봉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봉 지급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이라면 현직 군인의 봉급을 어떻게 고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시위대와 친위대의 각 부대 및 원수부, 군부의 장관, 영관, 위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다시 현직 봉급만 주고 군관 학교 졸업생으로서 직무는 없이 견습하는 자와 전쟁터에서 실제로 복무한 영관과 위관에게는 모두 본봉을 지급하고 그 밖의 휴직한 영관과 위관에게는 근무한 달수를 참작하여 또한 본봉을 지급한다면 피차에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여 예산에 많이 첨가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직에 있는 사람의 봉급이 비록 적어지기는 하지만 연한(年限)이 되면 절로 본봉을 받게 되므로 부족하게 여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학업을 격려하고 기초를 확립하는 방도에서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아홉째, 헌병(憲兵)을 설치하는 문제입니다. 군사는 용맹을 좋아하고 굳세어서 남에게 굽히지 않지만 행동거지는 일반 백성들보다도 더욱 배나 조심해야 합니다. 병영(兵營)에서 나갈 때마다 거리에서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각 거리에 군사를 파견하여 병정들의 행동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규정이 해이해져 각 동(洞)에 파견된 자들이 순찰은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거나 멍하니 산만 쳐다보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비록 밤낮이 없는 고역이겠지만 사실은 자그마한 보람도 없으며 도리어 군무상 큰 손해가 됩니다. 군사의 직분은 날마다 사격을 배워 익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찰이라고 하면서 파견된 자들 중 익숙한 자들은 복습할 겨를이 없고 익숙하지 못한 자들은 배울 시간이 없으니, 한 부대의 군사들 중 절반이 이런 병졸들입니다. 여러 해 가르쳤다는 것이 이제 와서 허사로 되고 말았으니 이것이 어찌 부대를 구성한 본뜻이겠습니까? 이는 사실상 헌병을 설치하지 않은 탓이며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쓸데 있는 것을 해치는 것입니다. 수백 명의 폐해로 인하여 세 부대의 군사들에게까지 해가 미치니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친위의 각 부대 병정 중에서 문필을 좀 아는 사람들로 1개 중대를 선발하여 헌병으로 삼고, 지금의 순검 장정(巡檢章程)을 가르쳐 익히게 해서 일체 순찰 사무를 전적으로 맡아보게 하되, 대오를 구성하기 전에는 우선 군법국(軍法局)에 소속시켜 지휘하고 통제하며 법에 따라 상주고 벌주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 곳의 순찰하던 병정들은 일체 철수하여 돌아오게 해서 그들에게 규례대로 훈련시켜 대대를 완성하게 할 것입니다.

열째, 향관(餉官)을 바로잡는 문제입니다. 대체로 향관은 한 부대의 음식을 주관하므로 사졸들의 의식(衣食) 문제가 모두 이 관원에게 달려 있습니다. 친위의 각 부대를 설치한 초기에는 밖에서 용달업자가 바치면 안에서 향관이 지출하여 일체의 군수(軍需)를 들어오는 대로 썼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용달업자는 빚을 진다하여 그만두게 하였고 향관은 포흠(逋欠)을 자행하고 독촉하여 징수하므로 각 중대별로 나누어서 밥을 지어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해당 향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한 사람도 징벌하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나라에 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중대에서 밥 짓는 것은 출진(出陣)하여 나누어 먹일 때 임시로 하던 일이지 평상시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한 부대 안에서 나누어 밥을 짓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단합시키는 방법에 크게 어그러집니다. 각국(各國)의 군대에도 모두 향관이란 이름이 있는데, 어찌 그가 군량을 포흠할까 의심하여 부대별로 나누어 먹이는 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군인들의 심리는 흩어지기는 쉬우나 단합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괴로움과 즐거움을 다 같이 함께해야 하며 심지어 아침저녁 끼니때에 한 숟가락의 밥과 한 꼬치의 떡에 군사들의 마음의 향배가 달려 있습니다. 이 부대와 저 부대 사이에도 오히려 그러한데 더구나 한 부대를 다섯으로 나누어 먹인다면 어떻게 그들이 굶어도 같이 굶고 먹어도 같이 먹기를 바라겠습니까? 혹시 향관 한 사람이 포흠할까 우려된다면 다섯 중대장들 중에는 포흠할 사람이 없을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만약 해당 중대장이 청렴하고 정직하며 군량 계산에 밝다면 그를 향관으로 차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또 중대의 직무는 대대보다 더욱 어려우므로 한 부대가 충실하고 충실치 않은 것은 전적으로 중대장이 근면한가 근면하지 않은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중대장이 자기 직무를 모두 수행하려면 어느 겨를에 군량에까지 생각이 미쳐서 직접 점검함으로써 사졸들로 하여금 따뜻하고 배부르게 하겠습니까. 중대에서 밥을 짓는다고 하면서도 실지로는 정교(正校)가 주관한다면, 도리어 향관이 전적으로 맡아하는 것만 못합니다. 만약 그 규정을 거듭 엄격히 하여 향소(餉所)에서 합하여 밥을 짓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향관이 죄를 짓는다면 형률대로 처단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혹시 중대로 나누어서 밥을 짓는 것이 부대에도 이롭고 군사들에게도 편리하다고 한다면 각 부대의 향관이라는 명색은 바로 쓸모없는 관직이니 모두 감하하여 막중한 군비를 허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열한째, 기국(機局)을 실시하는 문제입니다. 군부에다 포공국(砲工局)을 설치한 것은 원래 포공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몇 해째 하나의 군기도 만들지 못하고 경비만 허비하고 있으며 지금은 폐기되어 일 없는 국(局)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습니까? 나라에는 군사가 없어서는 안 되고 군사들에게는 군기가 없어서는 안 되니, 비유하면 인가에서 밥을 지어 먹자면 반드시 가마와 솥, 그릇과 수저를 모두 갖추어야 하고 또 미리 장만해서 자기 집에 두고 써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 기계가 이미 불편해져서 꼭 다른 나라의 기계를 써야 한다면 처음에 다른 나라에서 사다 쓰는 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몇 년 후에는 응당 만드는 법을 배워서 우리가 직접 본떠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국을 설치하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지금 만들어낸 군기는 어떤 것이며 군기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배워서 성공하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막중한 군대 기물을 걸핏하면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는 데만 매달린다면 한편으로는 군사 기밀이 누설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에 수모를 당하게 되며, 혹시라도 불화가 조성되어 관계가 끊어지는 날에는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총(銃)은 애초에 잘 만드는 사람이 없다 해도 탄환(彈丸)으로 말하면 그전에 친군영(親軍營)의 회룡총(回龍銃)과 오늘날 각 부대의 모슬총(毛瑟銃)의 탄환은 우리나라 장공인(匠工人)들이 모두 만들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어찌하여 만들지 않고 무역에만 매달리는 것입니까? 해당 부서에 엄히 신칙하여 우선 모든 탄환을 모두 자체로 만들어 쓰게 하며 쇠를 불려서 총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은 차례로 만드는 법을 배워 자체로 만들어 쓰게 해야 할 것입니다.

열두째, 복장(服裝)을 자체 제작하는 문제입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군복(軍服)이 외국 군복보다 간편하지 못하다면 외국의 것을 본 따서 해 입히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복장의 재료와 만드는 기술이라면 당당한 우리 황국의 백성들과 우리나라 물산으로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꼭 외국에서 사와야만 하겠습니까? 더구나 장사하는 이득이 전적으로 다른 나라에 돌아가서 천을 짜고 재봉하는 우리나라 장공인들은 손을 털고 앉아 영업할 희망이 없고 백성들은 날로 게을러져서 나라가 날로 가난해지니, 이렇게 하고서야 어떻게 발전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꼭 융단(絨緞)을 써야 한다고 하더라도 재료를 사오고 짜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 무엇이 그리 어렵겠습니까? 더구나 복장과 기물들은 응당 우리나라에서 나는 원료에 의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면사(綿絲)를 검정으로 물들여 가지고 직조법대로 천을 짜되 되도록 질기고 촘촘하게 한다면 어찌 융단보다 그다지 못하겠습니까? 군사들은 본래 목면(木棉)이 있어 이미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모자와 신발, 칼과 띠 같은 물건도 하나하나 본 따면 되는 것이지 어찌 다른 나라에서는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할 수 없다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또 금장식과 휘장 같은 물건으로 말하자면 응당 우리가 참작하고 역량을 헤아려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 굳이 조금도 어긋나는 것이 없이 모조리 본 따야만 복장이 되겠습니까? 다만 그 간편하고 견고한 것을 본 따면 될 것이고 그 밖에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든다면 비용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체면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속히 원수부에 명하여 대책을 강구하여 실행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열셋째, 기복(起復)을 개정하는 문제입니다. 군인이 거상 중에도 직무에 나가는 것은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에 와서 이 법이 도무지 한계가 없어서 관리의 명색을 띤 사람들이 부모의 상사를 당하게 되면 기복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예의를 숭상하는 나라에서 효도로 다스리는 기풍이겠습니까? 때문에 작년 5월에 명령을 명백하게 내려 기복하는 규정에 명백히 한계를 설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군인의 경우에는 졸업한 사람이 아니면 규례대로 기복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졸업에 대해서 말한다면 어찌 한두 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만이 졸업하였다고 하겠습니까? 몇 해 동안 군대를 통솔하면서 실지로 전쟁터에서 복무한 사람들과 여러 해 동안 부서에 근무하여 사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야 모두 졸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군인들이 부모의 상사를 당하면 학교에서 수업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 휴직을 하니, 이 때문에 장수들이 자주 체차되고 이 때문에 사무가 지체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기복시켜 사람을 쓰는 본의이겠습니까? 이것은 군무에 크게 방해되므로 군인들의 기복 규정을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차별을 둔다는 한탄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열넷째, 부대의 증설을 정지하는 문제입니다. 듣건대, 시위대에 3개 부대를 증설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군사의 수를 늘리는 것이 나라의 위력을 떨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군사에 대해 중요한 것은 정예한 데 있는 것이지 인원이 많은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시위와 친위의 두 부대를 설치한 지 몇 해 되는데도 아직도 이웃 나라로부터 정예하다는 칭찬을 듣지 못하는 데 대하여 신은 통분하게 여깁니다. 이제 만약 군사를 늘려서 그 수가 백만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돈만 허비할 뿐입니다. 이미 설치한 부대를 정예롭게 만드는 데 힘써서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 군사를 늘리려고 하는 밑천을 가지고 위의 여러 조목에서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에 나누어 씀으로써 오위(五衛)에 소속된 부대의 군사 위용을 볼만하게 만든 다음에 차례로 부대를 증설한다면 백만의 군사를 길러낸다 한들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여단(旅團)을 편성하고 지방 부대를 편성하고 기대(箕隊)의 인원수를 늘리고 기병(騎兵) 부대를 편성하라고 명을 내렸으나, 아직 한 가지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데 또 이것을 증설한다면 실제에 힘쓰는 정사가 아닐 듯합니다. 속히 처분을 내려 우선 중지하게 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원수부에서 조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문

陸軍參將白性基疏略:

現今矯救之時急者, 不一而足, 敢以有懷無隱之義, 臚列左方, 恭備乙覽。 伏乞聖明留神採納焉。一曰, 軍政均一。 夫兵者, 在謀而不在勇, 在精而不在多。 養之以精, 導之以方, 然後可以得力於一時, 進可以戰, 退可以守。 而以我國軍制言之, 內有侍衛、親衛之名, 外有鎭衛地方之稱, 餉料不同, 號令各殊。 以京外未滿萬之兵, 乃有豐約冷煖之別, 或怙勢而驕, 或向隅而歎, 疑貳向背, 生於其間, 置兵而一有向背之心, 則反不如無兵之爲愈也。 以臣愚見, 京外各隊, 劃一規模, 俾無進退却顧之心, 然後擇人而任將領, 恩以育之, 威以罰之, 敎之以忠君、愛國之誠, 導之以生死向前之義, 方可曰國有兵也。 將領苟得其人, 則必久其任而責成焉。 現今立隊設兵, 不過六七年之間, 將領之遞改頻數, 將不知兵, 兵不知將, 奚暇有恩威敎育之施哉? 伏乞明降處分, 除軍法之可懲, 年限已滿者外, 勿爲遞改, 使將卒, 一心相孚焉。 二曰, 軍法裁定。 兵無多寡, 非律莫可御也。 從古名將之多多益辦, 戰勝攻取, 以其有定之師律故也。 況今外有軍部, 內設元帥府, 而尙無軍法之制定者, 大非養兵之道矣。 前日各營兵卒, 或有罪犯, 則移送秋曹照律。 然旣無律文之可據, 又無裁判之構成者, 故每當罪人處辦, 未免苟且磨勘。 停職、免官, 旣無限節, 囚繫、流刑, 豈曰適中? 輕重定於臆見, 低昻或咈公議, 常有過不及之歎, 而不足以服衆心。 且京外各隊, 隊各不同, 未有定規。 以此而制軍, 則實是無法之兵也, 將何以統御萬衆, 而用其死生之命乎? 此實軍務上急先務也。 昨年有軍法起草之成命, 臣忝委員之任, 博採僚議, 參酌古今, 已有搆草乙覽者矣。 伏乞亟下成命, 經議奏裁, 以嚴六軍之紀律焉。 三曰, 名籍申明。 兵之名籍, 嚴於民之戶籍, 然後無逃躱、淆僞之弊矣。 凡兵之初入也, 始雖錄其姓名於該案, 而不過幾年、幾月, 改姓名而潛代, 換面目而替行, 莫能摘奸。 而又或有逃躱未現者, 則指證無處, 搜捕不得, 此實由於名籍未詳, 保族未現之致也。 常時之軍規如是, 若當應用之際, 則將何以制其命而防其奸乎? 古之各營軍兵, 各佩腰牌, 中間親軍, 則書名帽面, 甲午以後, 則從外國例, 名籍成給矣。 近者侍衛、親衛隊, 各掛名於軍額而已, 實無常帶名標者。 若使他日用兵之時, 奸徒、譎敵, 倣著我兵之服, 則何以辨其彼我之兵? 且以常時言之, 莫重宿衛、守衛之兵, 旣無其標, 則設有服裝而冒入者, 實無以驗其眞贗, 豈有如此疎忽之事乎? 兵之入籍之初, 居住保證, 昭詳懸錄, 俾無逃躱之弊。 尉官以上角牌, 下士以下腰牌, 依古禮, 成給然後, 晝之街路作挐者, 夜之闕門出入者, 這這摘奸, 而若有無牌、僞牌、借牌者, 捉付軍法局, 依律懲罪, 以杜換面變名。四曰, 節制敦定。 軍門挨次之法, 自古森嚴。 前日之一營五司、五哨、三旗、九隊之制, 正正方方, 雖一陛、半級, 無敢攙越, 而尊尊卑卑, 各有名稱, 事上御下, 著有規度, 雖在同等, 亦有先後之次矣。 今之軍制, 雖有將、領、尉、士、卒之陛級, 而體統不嚴, 規制未定, 上下紊亂, 尊卑渾淪, 而言辭之間, 別無敬謹之禮。 雖文任官衙, 宜有體統, 而況授節受制, 生殺司命之陸軍體制乎? 有國則有兵; 有兵則有禮。 而設隊以後, 尙未制軍禮, 故以下凌上之弊, 接踵而生。 常時如此, 則臨戰之際, 何以用命乎? 此實大關軍紀, 不可一日而緩者也。 亟命元帥府, 參古、酌今, 另定禮式, 以肅軍綱焉。五曰, 豫備敎鍊。 今各隊兵額, 隨闕塡充, 而其塡充之兵, 是生兵也。 設令一小隊五十名之內, 已鍊、未鍊, 生兵渾合, 則豈可望其齊整精一, 而號令、指揮, 如臂使指乎? 此實行不得之事也。 若此不已, 則乃至十年養兵, 百千成隊, 必無完隊之日矣。 故前日各營, 則七色軍兵之外, 又有長抄軍、待年軍之名目各殊, 而自外私習, 在營敎育, 及其入營之時, 生熟別無異同, 而能合七色之用。 況今之兵, 是正兵也、親兵也, 而初無私習技藝, 又無學識、見聞者, 猝入於完隊之間, 則已鍊、未鍊, 自相錯雜。 至於行軍步法, 亦從以不合於口令, 實非成隊之本意也。 各隊兵額外, 別設豫備兵一隊, 限二百名, 抄集年少强壯之輩, 罔晝夜敎鍊。 俟各隊有闕額, 擇其已鍊者, 移塡其代, 則決無生熟間雜之弊, 而隊伍整均, 軍容壯肅矣。 六曰, 軍餉儲置。 京外各隊兵料, 皆以錢貨頒給者, 雖是通行之例。 然國無粒米之所儲, 而莫重軍餉, 朝朝貿之, 石石輸之, 有若閭巷家艱辛餬口者然, 非但聽聞之可羞, 實是爻象之乖異。 且以國計言之, 國無三年之蓄, 則國不爲國, 況今無一朔之資? 如是而倘値不虞之時、歉荒之年, 則將何以餉其兵而安其心乎? 以臣愚見, 京各隊一年餉米條, 計算分排於三南濱海生穀之各郡, 以其所納結錢, 貿米儲聚, 運輸於京隊, 以備軍餉, 則雖是貿用, 亦是一年之計也。 非但一年之計, 節以用之, 則必有餘儲者矣。 然則軍無呼庚之歎, 而國有餘儲之穀, 都下人民, 亦藉此而有一時賙救之道, 此實軍民俱生之策也。 七曰, 休職變通。 休職軍人, 是前日五衛軍銜之例也。 近因外國之例, 不減下而休其職務, 以待他日後備豫備之兵。 然而外國, 則後備豫備, 皆有其隊, 我國則旣無其兵, 而只存休職軍人者, 實無謂也。 況旣非武官卒業之人, 又非積勞著效之員, 則乃無用人也, 反不若減下其名, 而任其作業也。 甲午以後, 戰地實施之領、尉官及前後卒業士官, 例當爲休職軍人, 其餘領、尉官, 量定其久勤朔數, 付之休職。 此外則竝爲減下, 俾無名存實無之歎焉。 八曰, 祿俸校正。 軍人職俸, 元無定式, 減少於各部官等俸給者, 以其休職之後, 有本俸也。 元年二月十五日, 奉有詔勅, 侍衛、親衛領軍之任, 其勤勞不可不念也。 休職本俸頒給之前, 姑令特施各部官等俸給。 自是以後, 軍人之俸, 遂同各部, 而其時則本俸磨鍊之前也。 今則不然, 武官學校卒業人, 旣有學校章程之揭載者, 則不可不支給者也。 正校中陞差尉官, 現行見習各隊者, 亦宜給本俸者也。 則戰地實施之領、尉官, 方在休職者, 又安得不給本俸乎? 本俸支撥, 勢不可已, 則現職軍人之俸, 何可不變通乎? 侍衛、親衛各隊及元帥府、軍部將、領、尉官, 自今更爲只給職俸, 而學徒之卒業者, 無職而見習者, 及戰地實施之領、尉官, 竝給本俸。 其餘領、尉官之休職者, 量定久勤朔數, 亦給本俸, 則彼此增減, 不至多添豫算。 而現職之人, 俸給雖減, 旣有限年自在之本俸, 則宜不缺望。 其激勸學業、確立基礎之方, 孰大於是哉? 九曰, 憲兵設置。 兵者, 好勇能强, 不爲人下, 而行止動靜, 尤當倍謹於平民。 每於出營之時, 恐有街路作挐之弊, 故例常派兵於各街, 巡察兵丁之行動。 而到今約束解弛, 出派各洞者, 不事巡察, 而徒然植立, 悠然見山, 於渠雖是日夜之苦役, 實無半分之效, 而反爲大害於軍務上矣。 兵之職役, 是敎習射放, 日以爲事者也。 稱曰巡察而派送者, 已鍊者無溫習之暇, 未鍊者無敎學之日, 則一隊之兵, 居半是兵也。 積年敎育者, 今焉歸虛, 是豈成隊之本意乎? 此實憲兵未設之致, 而以無用害有用者也。 以數百名之害及於三隊之兵, 誠甚慨然。 親衛各隊兵丁中, 以稍嫺文筆者, 選出一中隊, 以爲憲兵敎習, 現行巡檢章程專管, 一應巡察事務。 而成隊之前, 姑爲付屬軍法局, 指授節制, 按法賞罰, 各處所謂巡察兵丁, 一切撤還, 使之如例敎育, 以完大隊焉。 十曰, 餉官歸正。 夫餉官者, 一隊之主饋也, 士卒飢飽寒煖俱係焉。 親衛各隊設置之初, 外有用達進排, 內有餉官上下, 一應軍需, 隨入隨用矣。 近日則用達焉負債撤罷, 餉官焉犯逋督徵, 至於各中隊分炊之境。 而當該餉官, 迄無一人懲罰, 豈可曰國有法乎? 夫中隊炊飯者, 是出陣分饋之時, 權行之事, 非常時應行之事也。 一隊之內, 區分炊飯, 此亦大非一衆心之規也。 各國軍隊, 皆有餉官之名, 豈可嫌其犯逋, 而創爲分餉之法乎? 軍心者, 易離而難合者。 故甘酸若樂, 宜無異同, 至於朝夕炊飯, 一匙飯、一串餠, 軍心之向背係焉。 此隊、彼隊之間猶然, 況一隊之內, 分爲五餉, 安敢望其同飢飽乎? 倘恐餉官一人之犯逋, 則五中隊長, 安知無犯逋之人? 若該中隊長, 廉公正直, 能於籌餉, 則仍差餉官可矣。 且中隊之職務, 尤劇於大隊, 一隊之成不成, 專係於中隊長之勤不勤。 苟能盡職, 何暇念及於兵餉, 而親自點檢, 使士卒溫飽也? 稱曰‘中隊炊飯’, 而正校實主之, 則反不如餉官之專任矣。 莫若申嚴其規, 合爲餉所炊飯, 而餉官有罪, 則依律勘斷而已。 倘曰‘中隊分餉, 利於隊而便於兵’, 則各隊餉官之名, 乃冗官也。 一竝減下, 使莫重軍費, 不至虛耗焉。 十一曰, 機局實施。 砲工局之設置於軍部者, 本欲製造砲工器械也。 而幾年之間, 無一成器, 徒耗經費, 今則無異廢棄之閒局, 寧不寒心哉? 國不可以無兵, 兵不可以無器。 譬如人家飮食, 必資釜鼎器皿匙箸之用, 不可不盡備, 不可不預儲, 取諸宮中用之者也。 舊日器械, 旣不便利, 必資外國之器, 則初頭貿用於外國, 勢固然也。 至於幾年之後, 則當學習其法, 自我倣製可也。 此機局之所以設也。 今所成者何器, 卒業者何人? 學而不成者未之有也。 莫重軍物, 動必仰貿於外國, 一則漏泄軍機, 一則貽羞世界, 而倘値升失和絶約之時, 則又將束手無策矣。 砲銃則雖曰‘初無卒業之人’, 至於彈丸, 則前日親軍營回龍銃, 今日各隊毛瑟銃丸, 我國工匠, 皆能製造, 今何停役, 而亦從外貿乎? 嚴飭該部, 先自彈丸, 一切製用, 而凡煉鐵製銃等事, 次第學習, 期於自製而自用焉。 十二曰, 服裝自製。 夫軍服之趫捷, 莫如外國, 則倣而服之, 固宜也。 然若其服裝之材料製造手工, 則以我堂堂皇國之人民物産, 而不能自爲, 必貿於外國可乎? 況售販之利, 專歸於外國, 而我國織造裁縫之工, 則束手而無營業之望, 民日懶而國日貧, 如是而何可望其進就乎? 雖使必用氈絨, 貿其材而學其織, 亦豈甚難? 況服飾、器用, 當因物産。 以我綿絲, 染以黑色, 設法組織, 務成堅樸, 則亦何多讓於氈絨? 軍兵則自有木綿, 固已織造服著矣。 至於帽靴刀帶之屬, 亦可以一一摹學, 豈有外國獨能而我國獨不能之理哉? 且以金飾、標章等件言之, 亦當自我酌裁量力而爲之, 何必盡模全襲, 錙銖不爽然後爲服裝也哉? 但效其便捷堅緻而已, 其餘則自我作製, 非但省費, 實得國體。 伏望亟命元帥府, 講而行之。 十三曰, 起復改正。 軍人起復, 則自古有之, 而挽近此法, 都無限節。 以官爲名者之遭故, 無不起復, 是豈禮義之邦孝理之風乎? 所以上年五月, 明降勅令, 起復之式, 著有防限。 至若軍人, 非卒業人, 則不得依例起復。 蓋以卒業言之, 奚但以一二年學校受業者, 爲卒業哉? 領軍幾年戰地實施者, 在部多年事務嫺熟者, 亦皆可謂卒業之人。 而近日軍人遭故, 如非學校受業者, 皆爲休職, 則將領由是而數遞, 事務由是而掣礙, 是豈起復用人之本意乎? 大有妨於軍務也, 軍人起復, 通同施行, 俾無斑駁之歎焉。 十四曰, 增隊停止。 卽伏聞‘侍衛三隊, 增設豫算’云, 兵額之增設, 固足以壯國威, 然所貴乎兵者, 在精, 不在多也。 現今侍、親兩隊之設置幾年, 尙未得精鍊之譽於隣國者, 臣寶憤慨。 而今若增兵, 號曰百萬, 徒費巨款而已。 曷若務精銳於已設之隊, 不使他人添笑之爲愈也? 以今增兵之資, 排用於上項諸條之不得不設者, 使五隊軍容, 澟然可觀, 然後次第增設, 則養兵百萬, 亦何難乎? 且旣有旅團編制, 地方編制, 箕隊增額, 騎兵編制之成命, 而尙未得一事實施, 又此增設, 恐非務實之政。 伏乞亟降處分, 姑爲停止焉。

批曰: "疏辭, 當由元帥府措處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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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40권, 고종 37년 4월 17일 陽曆 5/5 기사 / 1900년 대한 광무(光武) 4년

육군 참장 백성기가 군정의 균등과 군법의 제정 등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다

국역

육군 참장(陸軍參長) 백성기(白性基)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현재 시급히 바로잡고 구제해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감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는 의리로서 아래와 같이 나열하여 폐하께서 열람하시도록 공손히 갖추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유의하여 받아들여 주소서.

첫째, 군정(軍政)을 균등하게 하는 문제입니다. 군사란 것은 계책에 달려 있고 용맹에 달려 있지 않으며, 정예한 것에 달려 있고 수가 많은 데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정예롭게 양성하고 방책으로 인도한 다음에야 일시에 힘을 얻을 수 있어서 나아가서는 싸울 수 있고 물러나서는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군사 제도로 말하자면 안으로는 시위(侍衛)와 친위(親衛)의 명색이 있고 밖으로는 진위(鎭衛), 지방이라는 칭호가 있는데 군향(軍餉)과 요포(料布)가 같지 않고 호령(號令)도 각기 다릅니다. 서울과 지방의 1만 명도 안 되는 군사가 먹고 입는 것을 지급받는 데에 현저한 차별이 있으므로 세력을 믿고 교만을 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불만을 품고 탄식하는 자가 있어서 의심과 배반이 그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군사를 설치하였는데 한 번이라도 배반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면 도리어 군사가 없는 것만 못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서는 서울과 지방의 각 부대들이 규모를 한결같이 함으로써 진격하고 퇴각하는 데서 주저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야 하니, 그런 다음에 적임자를 골라 장수로 임명하여 기르는 데서는 은혜롭게 하고 벌주는 데서는 위엄 있게 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을 가르치고 죽음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가는 의리로 인도해야만 비로소 나라에 군사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령(將領)을 진실로 적임자를 얻었다면 반드시 그 직책에 오래 두어 성과를 거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부대를 세우고 군사를 설치한 지 6, 7년도 못되는데 그 사이에 장수들이 자주 체차되어 장수는 병졸을 알지 못하고 병졸은 장수를 알지 못하니, 어느 겨를에 은혜와 위엄과 교육을 시행하겠습니까? 삼사 바라건대, 명철한 처분을 내려 군법(軍法)으로 징계해야 할 자와 연한이 이미 찬 자들을 제외하고는 개차(改差)하지 말아서 장수와 병졸들이 한마음으로 서로 믿도록 하소서.

둘째, 군법을 제정하는 문제입니다. 군사는 많고 적은 데 관계없이 규율이 없으면 통솔할 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이름난 장수는 군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하면서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점령하였는데 이는 제정한 군율(軍律)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지금 지방에는 군부(軍部)를 두고 중앙에는 원수부(元帥府)를 두고 있으면서도 아직 군법을 제정한 것이 없으니 매우 군사를 기르는 방도가 아닙니다.

지난날 각영(各營)의 병졸들이 간혹 죄를 짓게 되면 형조(刑曹)에 넘겨서 조율(照律)하였습니다. 그러나 의거할 만한 법조문이 없고 또 굳어진 판례도 없기 때문에 죄인을 처결할 때마다 구차스럽게 마감하였습니다. 직무를 정지시키거나 파면시키는 것도 이미 기준이 없으니, 가두거나 귀양 보내는 것인들 어찌 적중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죄의 경중이 억측으로 정해지고 죄의 판결이 공의(公議)와 혹 어긋나기도 하니 언제나 과도하거나 부족하다는 탄식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감복시키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각 부대의 대오가 각각 다르고 아직 일정한 규범이 없으니, 이 상태에서 군사를 통제한다면 이는 사실 법이 없는 군대이니 장차 어떻게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통제하며 목숨 걸고 싸우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군사에 관한 일에서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일입니다. 작년에 군법 초안을 만들라는 명이 있어서 신도 위원(委員)의 직임을 맡아 널리 관리들의 의견을 모으고 옛것과 오늘날의 것을 참작하여 이미 초안을 만들어 폐하께서 열람하시도록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속히 명을 내려 토의를 거쳐주재(奏裁)함으로써 6군의 규율을 엄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군사 명부를 명백히 하는 문제입니다. 군사 명부는 백성들의 호적보다 엄격하게 된 다음에라야 도피하거나 속이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군사들이 처음 입대할 때에 비록 그 성명을 해당 문건에 기록하더라도 몇 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성명을 고치고 몰래 대신시키거나 면목(面目)을 바꾸어 대신 행하더라도 적발해 내지 못합니다. 또 간혹 도망쳐 나타나지 않는 자가 있어도 증거할 만한 점이 없어 체포하지 못하니 이는 참으로 명부가 자세하지 않고 보증하는 친족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의 군율도 이러니 만약 실제 병사를 써야 할 때를 당하면 어떻게 명령을 통제하며 간악한 짓을 막아내겠습니까?

옛날 각영의 군사들은 요패(腰牌)를 찼고, 중고(中古)의 친군(親軍)은 모자의 앞면에 이름을 썼는데, 갑오년 이후로는 외국의 규례에 따라 명부를 작성하여 지급하였습니다. 최근에 와서 시위대(侍衛隊), 친위대(親衛隊)는 각각 군사 정원에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이고 실지로는 이름표를 항상 지니고 다니는 자가 없으니 만약 다른 날 군사를 출동할 때에 간악한 무리들과 음흉한 적들이 우리 군사의 복장을 모방해서 착용한다면 어떻게 적군과 아군을 가려내겠습니까? 또 평상시로 말하자면 더없이 중요한 숙위병(宿衛兵)과 수위병(守衛兵)이 이미 자기 표식이 없으므로 복장을 바꾸어 입고 속이고 들어오는 자가 있어도 실지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증험할 수 없을 것이니 어떻게 이처럼 소홀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군사들이 입적(入籍)할 초기에 거주지와 보증인을 명백히 장부에 올려서 도망치는 폐단이 없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관(尉官) 이상은 각패(角牌)를, 하사(下士) 이하는 요패를 옛 규례대로 만들어 준 다음, 낮에 거리에서 소란을 일으키거나 밤에 대궐문으로 출입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적간(摘奸)하되 만약 패가 없거나 패를 위조했거나 패를 빌려 가진 자가 있으면 붙잡아 군법국(軍法局)에 넘겨 법에 의거하여 죄를 징계함으로써 면목을 바꾸거나 이름을 변경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명령 체계를 정확히 하는 문제입니다. 군문(軍門)에 순차를 둔 법은 예로부터 엄격하였습니다. 옛부터 영(營), 5사(司), 5초(哨), 3기(旗), 9대(隊)를 둔 제도가 매우 방정하여 비록 한 품계나 반 등급이라도 감히 뛰어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높일 것은 높이고 낮출 것은 낮추어 각각 명칭을 가졌고 윗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데서도 법도가 뚜렷하였는데 비록 같은 등급에 있다 해도 선후차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군사 제도는 비록 장수, 영관(領官), 위관, 하사, 병졸(兵卒)의 등급이 있으나 통솔 체계가 엄격하지 못하고 규제가 정해 있지 않으므로 상하가 문란하고 존비가 혼돈되어 말을 주고받는 데서도 공경하고 삼가는 예절이 별로 없습니다. 비록 문임(文任) 관청이라도 통솔 체계가 있는데 더구나 군사 지휘와 명령을 주고받으며 살리고 죽이는 명령을 하달하는 육군의 체제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나라가 있으면 군사가 있고 군사가 있으면 예절이 있어야 하는데, 부대를 설치한 이후로 아직 군례(軍禮)를 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하가 상관을 능멸하는 폐단이 연이어 생기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도 이와 같은데 싸움에 임해서 어떻게 명령을 하달하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군사 기율에 크게 관계되므로 하루도 늦출 수 없는 것입니다. 속히 원수부에 명하여 고금의 일을 참작하여 특별히 예절에 대한 규정을 만들게 함으로써 군사 기율을 엄숙히 할 것입니다.

다섯째, 군사 훈련을 미리 갖추는 문제입니다. 지금 각 부대의 군사 정원은 빈자리가 나는 대로 보충하고 있는데 보충하는 군사들은 신병들입니다. 가령 한 소대의 50명(名) 중에서 숙련된 군사와 숙련되지 못한 신병이 뒤섞여 있으면 어떻게 정제되고 순수하여 호령과 지휘가 마치 팔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실로 되지 않을 일입니다. 만약 이대로 계속하다가는 10년 동안 군사를 길러 100명, 1000명의 부대를 편성한다 해도 온전한 부대가 되는 날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날 각영에서는 7종의 군병 외에 또 장초군(長抄軍), 대년군(待年軍)이라는 각기 다른 명목(名目)의 군을 두어 영 밖에서 사적으로 익히고 영에서도 교육하여 그가 입영할 때에는 숙련의 정도가 별로 차이나지 않게 하였으므로 7종의 군사에 합쳐서 쓸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지금의 군사는 정병(正兵)과 친병(親兵)인데도 애당초 사적으로 익힌 기예가 없는데다가 또 지식과 견문도 없는 자들이 갑자기 온전한 대오에 들어가면 숙련된 군사와 숙련되지 못한 군사가 자연히 서로 뒤섞여서 심지어 행군하는 보법(步法)까지도 구령에 맞추지 못할 것이니, 참으로 대오를 편성하는 본의가 아닙니다. 각 부대의 정원 외에 따로 예비병 1대(隊)를 설치하되 200명으로 한정하여 젊고 건장한 무리들을 모집하여 밤낮을 가리지 말고 훈련시키다가 각 부대의 결원이 있으면 이미 숙련된 자를 뽑아서 그 대신으로 보충한다면 결코 신병과 숙련된 군사가 뒤섞이는 폐단이 없게 되어, 대오는 정제되고 군사의 위용은 씩씩하고 엄숙해질 것입니다.

여섯째, 군량(軍糧)을 비축하는 문제입니다. 서울과 지방의 각 부대 군사들의 급료를 모두 전(錢)으로 나누어 주는 것은 비록 통상적인 규례라 하더라도 나라에 비축해 둔 곡식이 없어서 더없이 중요한 군량을 아침마다 사며 사는 대로 실어 나르니 입에 풀칠이나 겨우 해나가는 민가(民家)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은 듣기에도 거북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그 광경이 괴이합니다. 또한 나라의 경비로 말하더라도 나라에 3년분의 비축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는 것인데 더구나 지금은 한 달분의 밑천도 없습니다. 이러다가 불의의 변고나 흉년을 만나면 장차 어떻게 군사들을 먹이고 그들의 마음을 안착시키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서울 안의 각 부대의 1년분 군량을 계산하여 삼남(三南) 해변가의 곡식이 나는 각 고을에 분배하고, 거기서 공납하는 결전(結錢)으로 미(米)를 사들여서 서울 안의 부대에 실어다가 군량을 마련한다면 비록 사들인 미만으로도 1년분의 경비는 될 것입니다. 1년분의 경비가 될 뿐만 아니라 절약해서 쓴다면 필시 남아 저축할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군대에는 군량 때문에 한탄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나라에는 저축할 미가 있게 될 것이며 서울 안의 백성들도 여기에서 도움을 받아 일시의 구제하는 방도가 있게 될 것이니, 이것은 참으로 군사와 백성들이 모두 살 수 있는 계책입니다.

일곱째, 휴직(休職)시키는 것을 변통하는 문제입니다. 군사를 휴직시키는 것은 옛날 오위(五衛) 군직의 규례였는데, 요즘에는 외국의 규례에 따라 감하(減下)하지 않고 그 직무를 휴직시킴으로써 훗날의 예비병(豫備兵)으로 보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는 보충될 예비병도 모두 자기 부대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미 그런 군사가 없고 다만 휴직 군인만 있게 되니 실로 무의미합니다. 더구나 무관 학교(武官學校) 졸업생도 아니고 또 공로를 쌓아서 업적이 드러난 사람도 아니므로 그들은 바로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이름을 감하하여 자기 일을 하도록 맡기는 것만 못합니다. 갑오년(1894) 이후에 전쟁 터에서 싸운 영관과 위관 및 전후로 무관 학교를 졸업한 사관(士官)은 응당 휴직 군인으로 하고 그 밖의 영관과 위관은 근무한 달수를 참작하여 휴직으로 처리할 것이며 그 외에는 모두 감하함으로써, 이름만 있고 실속이 없다는 한탄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덟째, 녹봉을 바로 정하는 문제입니다. 군인의 봉급은 원래 일정한 규정이 없고 각부(各部)의 관등(官等)에 따른 봉급보다 적게 주는데 그것은 그가 휴직한 후에 받는 본봉(本奉)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년(元年) 2월 15에 받은 조칙(詔勅)에는 시위군과 친위군을 영솔하는 직임에 대해, 그 수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휴직하여 본봉을 주기 전에는 특별히 각부의 관등에 따른 봉급과 같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로부터 군인의 봉급이 각부의 관리들과 같게 되었는데 그때에는 본봉이 마련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관 학교 졸업생에게는 이미 학교 규정에 실려 있는 것이 있으니 지급하지 않을 수 없고, 정교(正校) 가운데 위관으로 승급하여 현재 각 부대에서 견습하는 사람들에게도 본봉을 지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터에서 실제로 복무한 영관과 위관으로서 현재 휴직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는 또 어떻게 본봉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봉 지급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이라면 현직 군인의 봉급을 어떻게 고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시위대와 친위대의 각 부대 및 원수부, 군부의 장관, 영관, 위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다시 현직 봉급만 주고 군관 학교 졸업생으로서 직무는 없이 견습하는 자와 전쟁터에서 실제로 복무한 영관과 위관에게는 모두 본봉을 지급하고 그 밖의 휴직한 영관과 위관에게는 근무한 달수를 참작하여 또한 본봉을 지급한다면 피차에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여 예산에 많이 첨가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직에 있는 사람의 봉급이 비록 적어지기는 하지만 연한(年限)이 되면 절로 본봉을 받게 되므로 부족하게 여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학업을 격려하고 기초를 확립하는 방도에서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니까?

아홉째, 헌병(憲兵)을 설치하는 문제입니다. 군사는 용맹을 좋아하고 굳세어서 남에게 굽히지 않지만 행동거지는 일반 백성들보다도 더욱 배나 조심해야 합니다. 병영(兵營)에서 나갈 때마다 거리에서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각 거리에 군사를 파견하여 병정들의 행동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규정이 해이해져 각 동(洞)에 파견된 자들이 순찰은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거나 멍하니 산만 쳐다보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비록 밤낮이 없는 고역이겠지만 사실은 자그마한 보람도 없으며 도리어 군무상 큰 손해가 됩니다. 군사의 직분은 날마다 사격을 배워 익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찰이라고 하면서 파견된 자들 중 익숙한 자들은 복습할 겨를이 없고 익숙하지 못한 자들은 배울 시간이 없으니, 한 부대의 군사들 중 절반이 이런 병졸들입니다. 여러 해 가르쳤다는 것이 이제 와서 허사로 되고 말았으니 이것이 어찌 부대를 구성한 본뜻이겠습니까? 이는 사실상 헌병을 설치하지 않은 탓이며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쓸데 있는 것을 해치는 것입니다. 수백 명의 폐해로 인하여 세 부대의 군사들에게까지 해가 미치니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친위의 각 부대 병정 중에서 문필을 좀 아는 사람들로 1개 중대를 선발하여 헌병으로 삼고, 지금의 순검 장정(巡檢章程)을 가르쳐 익히게 해서 일체 순찰 사무를 전적으로 맡아보게 하되, 대오를 구성하기 전에는 우선 군법국(軍法局)에 소속시켜 지휘하고 통제하며 법에 따라 상주고 벌주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 곳의 순찰하던 병정들은 일체 철수하여 돌아오게 해서 그들에게 규례대로 훈련시켜 대대를 완성하게 할 것입니다.

열째, 향관(餉官)을 바로잡는 문제입니다. 대체로 향관은 한 부대의 음식을 주관하므로 사졸들의 의식(衣食) 문제가 모두 이 관원에게 달려 있습니다. 친위의 각 부대를 설치한 초기에는 밖에서 용달업자가 바치면 안에서 향관이 지출하여 일체의 군수(軍需)를 들어오는 대로 썼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용달업자는 빚을 진다하여 그만두게 하였고 향관은 포흠(逋欠)을 자행하고 독촉하여 징수하므로 각 중대별로 나누어서 밥을 지어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해당 향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한 사람도 징벌하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나라에 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중대에서 밥 짓는 것은 출진(出陣)하여 나누어 먹일 때 임시로 하던 일이지 평상시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한 부대 안에서 나누어 밥을 짓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단합시키는 방법에 크게 어그러집니다. 각국(各國)의 군대에도 모두 향관이란 이름이 있는데, 어찌 그가 군량을 포흠할까 의심하여 부대별로 나누어 먹이는 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군인들의 심리는 흩어지기는 쉬우나 단합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괴로움과 즐거움을 다 같이 함께해야 하며 심지어 아침저녁 끼니때에 한 숟가락의 밥과 한 꼬치의 떡에 군사들의 마음의 향배가 달려 있습니다. 이 부대와 저 부대 사이에도 오히려 그러한데 더구나 한 부대를 다섯으로 나누어 먹인다면 어떻게 그들이 굶어도 같이 굶고 먹어도 같이 먹기를 바라겠습니까? 혹시 향관 한 사람이 포흠할까 우려된다면 다섯 중대장들 중에는 포흠할 사람이 없을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만약 해당 중대장이 청렴하고 정직하며 군량 계산에 밝다면 그를 향관으로 차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또 중대의 직무는 대대보다 더욱 어려우므로 한 부대가 충실하고 충실치 않은 것은 전적으로 중대장이 근면한가 근면하지 않은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중대장이 자기 직무를 모두 수행하려면 어느 겨를에 군량에까지 생각이 미쳐서 직접 점검함으로써 사졸들로 하여금 따뜻하고 배부르게 하겠습니까. 중대에서 밥을 짓는다고 하면서도 실지로는 정교(正校)가 주관한다면, 도리어 향관이 전적으로 맡아하는 것만 못합니다. 만약 그 규정을 거듭 엄격히 하여 향소(餉所)에서 합하여 밥을 짓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향관이 죄를 짓는다면 형률대로 처단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혹시 중대로 나누어서 밥을 짓는 것이 부대에도 이롭고 군사들에게도 편리하다고 한다면 각 부대의 향관이라는 명색은 바로 쓸모없는 관직이니 모두 감하하여 막중한 군비를 허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열한째, 기국(機局)을 실시하는 문제입니다. 군부에다 포공국(砲工局)을 설치한 것은 원래 포공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몇 해째 하나의 군기도 만들지 못하고 경비만 허비하고 있으며 지금은 폐기되어 일 없는 국(局)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습니까? 나라에는 군사가 없어서는 안 되고 군사들에게는 군기가 없어서는 안 되니, 비유하면 인가에서 밥을 지어 먹자면 반드시 가마와 솥, 그릇과 수저를 모두 갖추어야 하고 또 미리 장만해서 자기 집에 두고 써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 기계가 이미 불편해져서 꼭 다른 나라의 기계를 써야 한다면 처음에 다른 나라에서 사다 쓰는 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몇 년 후에는 응당 만드는 법을 배워서 우리가 직접 본떠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국을 설치하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지금 만들어낸 군기는 어떤 것이며 군기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배워서 성공하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막중한 군대 기물을 걸핏하면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는 데만 매달린다면 한편으로는 군사 기밀이 누설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에 수모를 당하게 되며, 혹시라도 불화가 조성되어 관계가 끊어지는 날에는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총(銃)은 애초에 잘 만드는 사람이 없다 해도 탄환(彈丸)으로 말하면 그전에 친군영(親軍營)의 회룡총(回龍銃)과 오늘날 각 부대의 모슬총(毛瑟銃)의 탄환은 우리나라 장공인(匠工人)들이 모두 만들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어찌하여 만들지 않고 무역에만 매달리는 것입니까? 해당 부서에 엄히 신칙하여 우선 모든 탄환을 모두 자체로 만들어 쓰게 하며 쇠를 불려서 총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은 차례로 만드는 법을 배워 자체로 만들어 쓰게 해야 할 것입니다.

열두째, 복장(服裝)을 자체 제작하는 문제입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군복(軍服)이 외국 군복보다 간편하지 못하다면 외국의 것을 본 따서 해 입히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복장의 재료와 만드는 기술이라면 당당한 우리 황국의 백성들과 우리나라 물산으로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꼭 외국에서 사와야만 하겠습니까? 더구나 장사하는 이득이 전적으로 다른 나라에 돌아가서 천을 짜고 재봉하는 우리나라 장공인들은 손을 털고 앉아 영업할 희망이 없고 백성들은 날로 게을러져서 나라가 날로 가난해지니, 이렇게 하고서야 어떻게 발전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꼭 융단(絨緞)을 써야 한다고 하더라도 재료를 사오고 짜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 무엇이 그리 어렵겠습니까? 더구나 복장과 기물들은 응당 우리나라에서 나는 원료에 의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면사(綿絲)를 검정으로 물들여 가지고 직조법대로 천을 짜되 되도록 질기고 촘촘하게 한다면 어찌 융단보다 그다지 못하겠습니까? 군사들은 본래 목면(木棉)이 있어 이미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모자와 신발, 칼과 띠 같은 물건도 하나하나 본 따면 되는 것이지 어찌 다른 나라에서는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할 수 없다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또 금장식과 휘장 같은 물건으로 말하자면 응당 우리가 참작하고 역량을 헤아려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 굳이 조금도 어긋나는 것이 없이 모조리 본 따야만 복장이 되겠습니까? 다만 그 간편하고 견고한 것을 본 따면 될 것이고 그 밖에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든다면 비용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체면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속히 원수부에 명하여 대책을 강구하여 실행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열셋째, 기복(起復)을 개정하는 문제입니다. 군인이 거상 중에도 직무에 나가는 것은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에 와서 이 법이 도무지 한계가 없어서 관리의 명색을 띤 사람들이 부모의 상사를 당하게 되면 기복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예의를 숭상하는 나라에서 효도로 다스리는 기풍이겠습니까? 때문에 작년 5월에 명령을 명백하게 내려 기복하는 규정에 명백히 한계를 설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군인의 경우에는 졸업한 사람이 아니면 규례대로 기복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졸업에 대해서 말한다면 어찌 한두 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만이 졸업하였다고 하겠습니까? 몇 해 동안 군대를 통솔하면서 실지로 전쟁터에서 복무한 사람들과 여러 해 동안 부서에 근무하여 사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야 모두 졸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군인들이 부모의 상사를 당하면 학교에서 수업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 휴직을 하니, 이 때문에 장수들이 자주 체차되고 이 때문에 사무가 지체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기복시켜 사람을 쓰는 본의이겠습니까? 이것은 군무에 크게 방해되므로 군인들의 기복 규정을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차별을 둔다는 한탄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열넷째, 부대의 증설을 정지하는 문제입니다. 듣건대, 시위대에 3개 부대를 증설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군사의 수를 늘리는 것이 나라의 위력을 떨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군사에 대해 중요한 것은 정예한 데 있는 것이지 인원이 많은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시위와 친위의 두 부대를 설치한 지 몇 해 되는데도 아직도 이웃 나라로부터 정예하다는 칭찬을 듣지 못하는 데 대하여 신은 통분하게 여깁니다. 이제 만약 군사를 늘려서 그 수가 백만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돈만 허비할 뿐입니다. 이미 설치한 부대를 정예롭게 만드는 데 힘써서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 군사를 늘리려고 하는 밑천을 가지고 위의 여러 조목에서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에 나누어 씀으로써 오위(五衛)에 소속된 부대의 군사 위용을 볼만하게 만든 다음에 차례로 부대를 증설한다면 백만의 군사를 길러낸다 한들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여단(旅團)을 편성하고 지방 부대를 편성하고 기대(箕隊)의 인원수를 늘리고 기병(騎兵) 부대를 편성하라고 명을 내렸으나, 아직 한 가지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데 또 이것을 증설한다면 실제에 힘쓰는 정사가 아닐 듯합니다. 속히 처분을 내려 우선 중지하게 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원수부에서 조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문

陸軍參將白性基疏略:

現今矯救之時急者, 不一而足, 敢以有懷無隱之義, 臚列左方, 恭備乙覽。 伏乞聖明留神採納焉。一曰, 軍政均一。 夫兵者, 在謀而不在勇, 在精而不在多。 養之以精, 導之以方, 然後可以得力於一時, 進可以戰, 退可以守。 而以我國軍制言之, 內有侍衛、親衛之名, 外有鎭衛地方之稱, 餉料不同, 號令各殊。 以京外未滿萬之兵, 乃有豐約冷煖之別, 或怙勢而驕, 或向隅而歎, 疑貳向背, 生於其間, 置兵而一有向背之心, 則反不如無兵之爲愈也。 以臣愚見, 京外各隊, 劃一規模, 俾無進退却顧之心, 然後擇人而任將領, 恩以育之, 威以罰之, 敎之以忠君、愛國之誠, 導之以生死向前之義, 方可曰國有兵也。 將領苟得其人, 則必久其任而責成焉。 現今立隊設兵, 不過六七年之間, 將領之遞改頻數, 將不知兵, 兵不知將, 奚暇有恩威敎育之施哉? 伏乞明降處分, 除軍法之可懲, 年限已滿者外, 勿爲遞改, 使將卒, 一心相孚焉。 二曰, 軍法裁定。 兵無多寡, 非律莫可御也。 從古名將之多多益辦, 戰勝攻取, 以其有定之師律故也。 況今外有軍部, 內設元帥府, 而尙無軍法之制定者, 大非養兵之道矣。 前日各營兵卒, 或有罪犯, 則移送秋曹照律。 然旣無律文之可據, 又無裁判之構成者, 故每當罪人處辦, 未免苟且磨勘。 停職、免官, 旣無限節, 囚繫、流刑, 豈曰適中? 輕重定於臆見, 低昻或咈公議, 常有過不及之歎, 而不足以服衆心。 且京外各隊, 隊各不同, 未有定規。 以此而制軍, 則實是無法之兵也, 將何以統御萬衆, 而用其死生之命乎? 此實軍務上急先務也。 昨年有軍法起草之成命, 臣忝委員之任, 博採僚議, 參酌古今, 已有搆草乙覽者矣。 伏乞亟下成命, 經議奏裁, 以嚴六軍之紀律焉。 三曰, 名籍申明。 兵之名籍, 嚴於民之戶籍, 然後無逃躱、淆僞之弊矣。 凡兵之初入也, 始雖錄其姓名於該案, 而不過幾年、幾月, 改姓名而潛代, 換面目而替行, 莫能摘奸。 而又或有逃躱未現者, 則指證無處, 搜捕不得, 此實由於名籍未詳, 保族未現之致也。 常時之軍規如是, 若當應用之際, 則將何以制其命而防其奸乎? 古之各營軍兵, 各佩腰牌, 中間親軍, 則書名帽面, 甲午以後, 則從外國例, 名籍成給矣。 近者侍衛、親衛隊, 各掛名於軍額而已, 實無常帶名標者。 若使他日用兵之時, 奸徒、譎敵, 倣著我兵之服, 則何以辨其彼我之兵? 且以常時言之, 莫重宿衛、守衛之兵, 旣無其標, 則設有服裝而冒入者, 實無以驗其眞贗, 豈有如此疎忽之事乎? 兵之入籍之初, 居住保證, 昭詳懸錄, 俾無逃躱之弊。 尉官以上角牌, 下士以下腰牌, 依古禮, 成給然後, 晝之街路作挐者, 夜之闕門出入者, 這這摘奸, 而若有無牌、僞牌、借牌者, 捉付軍法局, 依律懲罪, 以杜換面變名。四曰, 節制敦定。 軍門挨次之法, 自古森嚴。 前日之一營五司、五哨、三旗、九隊之制, 正正方方, 雖一陛、半級, 無敢攙越, 而尊尊卑卑, 各有名稱, 事上御下, 著有規度, 雖在同等, 亦有先後之次矣。 今之軍制, 雖有將、領、尉、士、卒之陛級, 而體統不嚴, 規制未定, 上下紊亂, 尊卑渾淪, 而言辭之間, 別無敬謹之禮。 雖文任官衙, 宜有體統, 而況授節受制, 生殺司命之陸軍體制乎? 有國則有兵; 有兵則有禮。 而設隊以後, 尙未制軍禮, 故以下凌上之弊, 接踵而生。 常時如此, 則臨戰之際, 何以用命乎? 此實大關軍紀, 不可一日而緩者也。 亟命元帥府, 參古、酌今, 另定禮式, 以肅軍綱焉。五曰, 豫備敎鍊。 今各隊兵額, 隨闕塡充, 而其塡充之兵, 是生兵也。 設令一小隊五十名之內, 已鍊、未鍊, 生兵渾合, 則豈可望其齊整精一, 而號令、指揮, 如臂使指乎? 此實行不得之事也。 若此不已, 則乃至十年養兵, 百千成隊, 必無完隊之日矣。 故前日各營, 則七色軍兵之外, 又有長抄軍、待年軍之名目各殊, 而自外私習, 在營敎育, 及其入營之時, 生熟別無異同, 而能合七色之用。 況今之兵, 是正兵也、親兵也, 而初無私習技藝, 又無學識、見聞者, 猝入於完隊之間, 則已鍊、未鍊, 自相錯雜。 至於行軍步法, 亦從以不合於口令, 實非成隊之本意也。 各隊兵額外, 別設豫備兵一隊, 限二百名, 抄集年少强壯之輩, 罔晝夜敎鍊。 俟各隊有闕額, 擇其已鍊者, 移塡其代, 則決無生熟間雜之弊, 而隊伍整均, 軍容壯肅矣。 六曰, 軍餉儲置。 京外各隊兵料, 皆以錢貨頒給者, 雖是通行之例。 然國無粒米之所儲, 而莫重軍餉, 朝朝貿之, 石石輸之, 有若閭巷家艱辛餬口者然, 非但聽聞之可羞, 實是爻象之乖異。 且以國計言之, 國無三年之蓄, 則國不爲國, 況今無一朔之資? 如是而倘値不虞之時、歉荒之年, 則將何以餉其兵而安其心乎? 以臣愚見, 京各隊一年餉米條, 計算分排於三南濱海生穀之各郡, 以其所納結錢, 貿米儲聚, 運輸於京隊, 以備軍餉, 則雖是貿用, 亦是一年之計也。 非但一年之計, 節以用之, 則必有餘儲者矣。 然則軍無呼庚之歎, 而國有餘儲之穀, 都下人民, 亦藉此而有一時賙救之道, 此實軍民俱生之策也。 七曰, 休職變通。 休職軍人, 是前日五衛軍銜之例也。 近因外國之例, 不減下而休其職務, 以待他日後備豫備之兵。 然而外國, 則後備豫備, 皆有其隊, 我國則旣無其兵, 而只存休職軍人者, 實無謂也。 況旣非武官卒業之人, 又非積勞著效之員, 則乃無用人也, 反不若減下其名, 而任其作業也。 甲午以後, 戰地實施之領、尉官及前後卒業士官, 例當爲休職軍人, 其餘領、尉官, 量定其久勤朔數, 付之休職。 此外則竝爲減下, 俾無名存實無之歎焉。 八曰, 祿俸校正。 軍人職俸, 元無定式, 減少於各部官等俸給者, 以其休職之後, 有本俸也。 元年二月十五日, 奉有詔勅, 侍衛、親衛領軍之任, 其勤勞不可不念也。 休職本俸頒給之前, 姑令特施各部官等俸給。 自是以後, 軍人之俸, 遂同各部, 而其時則本俸磨鍊之前也。 今則不然, 武官學校卒業人, 旣有學校章程之揭載者, 則不可不支給者也。 正校中陞差尉官, 現行見習各隊者, 亦宜給本俸者也。 則戰地實施之領、尉官, 方在休職者, 又安得不給本俸乎? 本俸支撥, 勢不可已, 則現職軍人之俸, 何可不變通乎? 侍衛、親衛各隊及元帥府、軍部將、領、尉官, 自今更爲只給職俸, 而學徒之卒業者, 無職而見習者, 及戰地實施之領、尉官, 竝給本俸。 其餘領、尉官之休職者, 量定久勤朔數, 亦給本俸, 則彼此增減, 不至多添豫算。 而現職之人, 俸給雖減, 旣有限年自在之本俸, 則宜不缺望。 其激勸學業、確立基礎之方, 孰大於是哉? 九曰, 憲兵設置。 兵者, 好勇能强, 不爲人下, 而行止動靜, 尤當倍謹於平民。 每於出營之時, 恐有街路作挐之弊, 故例常派兵於各街, 巡察兵丁之行動。 而到今約束解弛, 出派各洞者, 不事巡察, 而徒然植立, 悠然見山, 於渠雖是日夜之苦役, 實無半分之效, 而反爲大害於軍務上矣。 兵之職役, 是敎習射放, 日以爲事者也。 稱曰巡察而派送者, 已鍊者無溫習之暇, 未鍊者無敎學之日, 則一隊之兵, 居半是兵也。 積年敎育者, 今焉歸虛, 是豈成隊之本意乎? 此實憲兵未設之致, 而以無用害有用者也。 以數百名之害及於三隊之兵, 誠甚慨然。 親衛各隊兵丁中, 以稍嫺文筆者, 選出一中隊, 以爲憲兵敎習, 現行巡檢章程專管, 一應巡察事務。 而成隊之前, 姑爲付屬軍法局, 指授節制, 按法賞罰, 各處所謂巡察兵丁, 一切撤還, 使之如例敎育, 以完大隊焉。 十曰, 餉官歸正。 夫餉官者, 一隊之主饋也, 士卒飢飽寒煖俱係焉。 親衛各隊設置之初, 外有用達進排, 內有餉官上下, 一應軍需, 隨入隨用矣。 近日則用達焉負債撤罷, 餉官焉犯逋督徵, 至於各中隊分炊之境。 而當該餉官, 迄無一人懲罰, 豈可曰國有法乎? 夫中隊炊飯者, 是出陣分饋之時, 權行之事, 非常時應行之事也。 一隊之內, 區分炊飯, 此亦大非一衆心之規也。 各國軍隊, 皆有餉官之名, 豈可嫌其犯逋, 而創爲分餉之法乎? 軍心者, 易離而難合者。 故甘酸若樂, 宜無異同, 至於朝夕炊飯, 一匙飯、一串餠, 軍心之向背係焉。 此隊、彼隊之間猶然, 況一隊之內, 分爲五餉, 安敢望其同飢飽乎? 倘恐餉官一人之犯逋, 則五中隊長, 安知無犯逋之人? 若該中隊長, 廉公正直, 能於籌餉, 則仍差餉官可矣。 且中隊之職務, 尤劇於大隊, 一隊之成不成, 專係於中隊長之勤不勤。 苟能盡職, 何暇念及於兵餉, 而親自點檢, 使士卒溫飽也? 稱曰‘中隊炊飯’, 而正校實主之, 則反不如餉官之專任矣。 莫若申嚴其規, 合爲餉所炊飯, 而餉官有罪, 則依律勘斷而已。 倘曰‘中隊分餉, 利於隊而便於兵’, 則各隊餉官之名, 乃冗官也。 一竝減下, 使莫重軍費, 不至虛耗焉。 十一曰, 機局實施。 砲工局之設置於軍部者, 本欲製造砲工器械也。 而幾年之間, 無一成器, 徒耗經費, 今則無異廢棄之閒局, 寧不寒心哉? 國不可以無兵, 兵不可以無器。 譬如人家飮食, 必資釜鼎器皿匙箸之用, 不可不盡備, 不可不預儲, 取諸宮中用之者也。 舊日器械, 旣不便利, 必資外國之器, 則初頭貿用於外國, 勢固然也。 至於幾年之後, 則當學習其法, 自我倣製可也。 此機局之所以設也。 今所成者何器, 卒業者何人? 學而不成者未之有也。 莫重軍物, 動必仰貿於外國, 一則漏泄軍機, 一則貽羞世界, 而倘値升失和絶約之時, 則又將束手無策矣。 砲銃則雖曰‘初無卒業之人’, 至於彈丸, 則前日親軍營回龍銃, 今日各隊毛瑟銃丸, 我國工匠, 皆能製造, 今何停役, 而亦從外貿乎? 嚴飭該部, 先自彈丸, 一切製用, 而凡煉鐵製銃等事, 次第學習, 期於自製而自用焉。 十二曰, 服裝自製。 夫軍服之趫捷, 莫如外國, 則倣而服之, 固宜也。 然若其服裝之材料製造手工, 則以我堂堂皇國之人民物産, 而不能自爲, 必貿於外國可乎? 況售販之利, 專歸於外國, 而我國織造裁縫之工, 則束手而無營業之望, 民日懶而國日貧, 如是而何可望其進就乎? 雖使必用氈絨, 貿其材而學其織, 亦豈甚難? 況服飾、器用, 當因物産。 以我綿絲, 染以黑色, 設法組織, 務成堅樸, 則亦何多讓於氈絨? 軍兵則自有木綿, 固已織造服著矣。 至於帽靴刀帶之屬, 亦可以一一摹學, 豈有外國獨能而我國獨不能之理哉? 且以金飾、標章等件言之, 亦當自我酌裁量力而爲之, 何必盡模全襲, 錙銖不爽然後爲服裝也哉? 但效其便捷堅緻而已, 其餘則自我作製, 非但省費, 實得國體。 伏望亟命元帥府, 講而行之。 十三曰, 起復改正。 軍人起復, 則自古有之, 而挽近此法, 都無限節。 以官爲名者之遭故, 無不起復, 是豈禮義之邦孝理之風乎? 所以上年五月, 明降勅令, 起復之式, 著有防限。 至若軍人, 非卒業人, 則不得依例起復。 蓋以卒業言之, 奚但以一二年學校受業者, 爲卒業哉? 領軍幾年戰地實施者, 在部多年事務嫺熟者, 亦皆可謂卒業之人。 而近日軍人遭故, 如非學校受業者, 皆爲休職, 則將領由是而數遞, 事務由是而掣礙, 是豈起復用人之本意乎? 大有妨於軍務也, 軍人起復, 通同施行, 俾無斑駁之歎焉。 十四曰, 增隊停止。 卽伏聞‘侍衛三隊, 增設豫算’云, 兵額之增設, 固足以壯國威, 然所貴乎兵者, 在精, 不在多也。 現今侍、親兩隊之設置幾年, 尙未得精鍊之譽於隣國者, 臣寶憤慨。 而今若增兵, 號曰百萬, 徒費巨款而已。 曷若務精銳於已設之隊, 不使他人添笑之爲愈也? 以今增兵之資, 排用於上項諸條之不得不設者, 使五隊軍容, 澟然可觀, 然後次第增設, 則養兵百萬, 亦何難乎? 且旣有旅團編制, 地方編制, 箕隊增額, 騎兵編制之成命, 而尙未得一事實施, 又此增設, 恐非務實之政。 伏乞亟降處分, 姑爲停止焉。

批曰: "疏辭, 當由元帥府措處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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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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