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16권, 고종 16년 1월 24일 戊辰 1/2 기사 / 1879년 조선 개국(開國) 488년
권종록이 현재의 폐단에 대하여 상소를 올리다
국역
집의(執義) 권종록(權鍾祿)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요즘의 나라 형편을 보니, 부고(府庫)와 창름(倉廩)이 텅 비어 백관의 녹봉(祿俸)을 계속 잇대기 어렵고 군병의 방료(放料)도 주지 못하는 때가 많으며 공인(貢人)의 공가(貢價)도 주지 못하고 원역(員役)의 삭하(朔下)도 지급하지 못하는 등 몹시 황급하여 단 하루도 보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든 해는 세상에 보통 있는 일입니다. 비록 연전(年前)에 대기근을 겪은 뒤이지만 어찌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입니까?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나라에 9년 동안 쓸 저축이 없으면 부족하다고 하고 6년 동안 쓸 저축이 없으면 급하다 하고 3년 동안 쓸 저축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리는 방도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禹)는 10년 동안 쓸 저축이 있었기에 9년 동안의 큰 홍수를 면하였고 탕(蕩)은 10년 동안 쓸 저축이 있었기에 7년 동안의 가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무릇 저축이란 것은 국가의 대명(大命)입니다. 곡식이 많고 재정에 여유가 있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지금은 그 해에 쓸 저축도 없어서 이와 같이 전에 없던 참상을 부르고 말았으니 이것은 전적으로 저축함이 없이 경비를 무절제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무릇 사람에게 중병이 있으면 반드시 양방(良方)을 얻은 연후에 살아날 수 있고 나라 창고가 텅 비면 반드시 좋은 방책을 세운 다음에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계책은 〖상양(桑羊)으로 하여금 주판을 놓고 유안(劉晏)으로 하여금 장부를 단속하게 한다 하더라도〗 그 계책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사치를 억제하고 재용을 절약하고 기강을 세운 연후에야 국계(國計)를 넉넉하게 하고 민력(民力)을 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치를 억제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치의 해독은 홍수나 맹수보다 심하다.’라고 하였으니, 사치란 몹시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근래 사치하는 습속이 나날이 심해져서 의복을 화려하게 하고 음식을 풍성하고 맛나게 하며 궁실을 장대하게 짓고 수레와 말을 성대하게 꾸미며 주옥(珠玉)을 갖고 놀기 좋아하는 것을 너무나도 따라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다투어 남보다 낫게 하려하고 빈자는 그 미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수입을 헤아릴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을 능사로 여기니,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쓰는 비용이 혹은 천백 냥에 이르지만 오히려 부족해하기도 합니다. 옛날에 한 냥을 썼으면 오늘은 백 냥을 쓰고 옛날에 열 냥을 썼으면 지금은 천만 냥을 쓰니 어찌 패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는 자체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 없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구해 드릴 필요가 없는데도 외국의 해괴한 쓸모없는 물건이 또 재화를 소비하는 하나의 큰 구멍을 열어놓아 사치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으니 설상가상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찌 크게 금지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일률(一律)을 적용하여 일체 엄하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임금들은 다른 나라의 물건을 귀히 여기지 않고 몸소 검소함을 실천하여 백성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음식을 박하게 하고 의복을 거칠게 하며 궁실을 소박하게 한 것은 하우(夏禹)의 검소한 덕행이며, 굵은 베로 옷을 해 입고 굵은 명주로 관을 해 쓴 것은 위 문공(衛文公)의 검소한 덕행이며, 몸소 검은 명주옷을 입고 갈대로 엮은 신을 신고 가죽으로 만든 띠를 두른 것은 한 문제(漢文帝)의 검소한 덕행이었습니다.
이윤(伊尹)이 그 임금에게 아뢰기를, ‘검소한 덕행을 중히 여기고 오직 나라를 영원히 유지할 것만 생각하소서.’라고 하였고, 제(齊) 나라 구자(丘子)가 말하기를, ‘임금 한 사람이 검소할 줄 알면 천하가 검소할 줄을 알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검소함이란 임금의 훌륭한 덕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검소해서 흥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며 사치해서 패망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니 전하께서는 힘쓰고 힘쓰소서.
재물을 절약해 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함부로 쓰는 것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재화(財貨)와 곡식이 나는 것은 한정이 있는데 무절제하게 쓴다면 비록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바다처럼 고여 있다 하더라도 그 쓰임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산에 나무가 많더라도 베어 가는 사람이 많으면 다하게 되고 샘에 물이 솟아나더라도 길어 가는 사람이 많으면 마르게 되는 것은 이치와 형세가 그러한 것입니다.
대체로 남용하면서 능히 저축하고, 무절제하면서 능히 절약하였다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진실로 무익한 일을 일삼아 유익한 일을 해치지 않고, 다른 나라 물건을 귀하게 여겨 늘 쓰는 물건을 천시하지 않는다면, 소비는 항상 적고 남는 것은 항상 많아 나날이 다달이 쌓여 이루 다할 수 없이 축적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고와 창름에 돈과 곡식이 썩어나도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들은 넉넉한 것을 머지않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제도로써 절제하여 재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비용을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한다.’라고 하고, 또 ‘정사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 달렸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지나친 이익을 금하고 낭비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절용은 나라의 급선무이니, 전하께서는 힘쓰고 힘쓰소서.
기강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강이 서면 사람들이 분수를 어기지 않고 모든 일이 제대로 거행되어 시키면 하고 금하면 하지 않아서 백성들은 교화되고 풍속은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기강이 무너지고 온갖 법도가 해이해져서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공납(公納) 한 가지 문제를 말하자면, 각 도와 각 읍에서 납부하는 것은 원래 바꿀 수 없는 정해진 기한이 있는데 근래에는 읍리(邑吏)가 축낸 것이 날로 쌓이고 선공(船工)의 간사한 짓이 날로 심해지며 서울 사람의 판매 행위도 많아져서, 1, 2년 혹은 3, 4년을 대수롭지 않게 납부를 지체하고 예사롭게 부정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묘당(廟堂)에서 신칙해 보지만 다반사로 여기면서 끝내 기한을 지키지 않습니다. 각사(各司)의 진배(進排)이나 응하(應下)는 거행할 길이 없어 한편으로는 유용하고 한편으로는 사사로이 빌려 쓰다보니 갖가지 병폐를 감출 길이 없으니, 전도되고 착란되기가 이보다 심한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바로 기강이 서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주부자(朱夫子)가 말하기를, ‘나라에 기강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혈맥(血脈)이 있는 것과 같아서 나라에 기강이 없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사람에게 혈맥이 없게 되면 사람이 죽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못 다스려지는 것은 기강이 섰는가 서지 못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명군(明君)이 위에 있으면 뜻을 일깨워주고 기색을 보이기만 해도 온 나라가 두려워하고, 명을 전하고 호령을 내리기만 해도 만 리 밖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깊은 산골의 백성들은 정해진 기일을 기다리지 않고 수시로 실어 나르고 해마다 실어 보내면서도 그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 남보다 뒤처질까 두려워하고 배를 부리는 지방에서는 내려진 명령이 없는데도 싣고 지고 오면서도 지성을 바치는 것이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이것은 모두 기강이 선 결과입니다. 전하께서는 깊이 살피고 거듭 밝히소서. 무릇 군주란 본보기와 같아서 본보기가 바르면 그림자도 바르게 되며, 군주란 근원과 같아서 근원이 맑으면 흐름도 맑아지는 것입니다. 진실로 위의 세 가지를 잘 실행한다면 아랫사람들이 감화되는 것이 그림자나 메아리보다도 더 빠를 것입니다.
또 앙진(仰陳)할 것이 있습니다. 대체로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게을리하려는 생각이 없어지고 검소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사치하려는 생각이 없어지며 공손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오만한 생각이 없어지고 어진 사람과 함께 있으면 사나운 생각이 없어지며 강직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유약한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날마다 강연(講筵)을 열어서 경전(經傳)을 토론하고 글 뜻을 연구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방도가 저절로 그 속에서 나올 것이며, 제왕의 득실(得失)을 명백히 알게 되고 고금(古今)의 치란(治亂)에 통달하게 되어 자연히 요순(堯舜)의 도(道)와 우탕(禹湯)의 정사의 경지에 들어가 나라를 태평한 경지에 놓이도록 할 것이니, 어찌 훌륭하지 않겠으며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비록 나무꾼이나 촌사람 같은 하찮은 이의 말이긴 하나, 정치하는 데에 만의 하나라도 보탬이 될지 모르겠기에 감히 이렇게 진달 드리는 것이니 상세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근래 일인(日人)이 통상을 핑계 대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왕래하는 일이 없는 해가 없으며 또 문서를 보내어 까닭 없이 트집을 잡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러시아는 근래 더욱 교활하고 횡포해져서 연변(沿邊)의 열읍이 날마다 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깊이 근심해야 할 때이니, 실체를 감추고 있던 도적이 돌연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무릇 군대를 미리 정비하지 않고서는 적과 맞설 수 없고 계책을 미리 염려해두지 않고서는 불시에 대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방의 요충지에 각별히 적임자를 뽑아 임명함으로써 불의의 사변에 대비하도록 하는 것을 결단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현재의 폐단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이 이와 같이 절절하니 내 참으로 가상하게 여긴다.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 【원본】 20책 1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국용(國用)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외교-러시아[露] / 외교-왜(倭)
원문
二十四日。 執義權鍾祿疏略: "臣觀近日之國勢, 府庫倉廩, 枵然空虛, 百官之頒祿難繼, 軍兵之放料多闕, 貢人之貢價未差, 員役之朔下未給, 遑遑汲汲, 若不保朝夕。 然歲之有饑, 天下之常也。 雖經年前大侵之餘, 豈至若此之境乎? 《王制》曰‘國無九年之蓄, 爲不足; 無六年之蓄, 急; 無三年之蓄, 國非其國。’ 此是經邦制治之言也。 是故禹有十年之蓄, 而免九年之水; 湯有十年之蓄, 而勝七年之旱。 夫蓄積者, 國家之大命也。 苟粟多而財有餘, 何患乎爲國乎? 今則無當年之蓄, 而致此無前之爻象, 此專由於儲蓄之無有, 經用之無節故也。 夫人有重病, 則必得良方, 然後可以生矣。 國而空虛, 則必畫良策, 然後可以實矣。 而爲當今計, 雖使桑羊執籌, 劉晏檢簿, 無以售其計也。 必也抑奢侈、節財用、立紀綱, 然後可以贍國計而舒民力矣。 抑奢侈者, 何也? 古人云‘奢侈之害, 甚於洪水猛獸’, 言其可懼、可戒之甚也。 近日奢侈之習, 日甚一日, 衣服之華美、飮食之豐甘、宮室之壯大、輿馬之盛飾、珠玉之翫好, 互相效嚬。 富者競欲相過、貧者恥其不逮, 不思量入, 看作能事, 一人一日之費, 或至千百金, 而猶日不足。 昔之費一而今之費百矣; 昔之費十而今之費千萬矣。 安得不敗亡也哉? 且我國之物産, 無物不生, 無所求於異國, 而外國奇奇怪怪無用之物, 又開滅貨之一大竇, 以益其侈, 可謂雪上加霜也。 豈不大可禁乎? 從玆以往, 施以一律, 一切嚴防焉。 是故聖主明王不貴異方之物, 躬儉以率民。 菲其飮食、惡其衣服、卑其宮室, 夏 禹之儉德也; 衣以大布、冠以大帛, 衛文之儉德也; 躬衣弋綈葦舃韋帶, 漢 文之儉德也。 伊尹之告其君曰: ‘愼乃儉德, 惟懷永圖。’ 齊 丘子曰: ‘一人知儉則天下知儉。’ 儉者, 人君之盛德也。 自古人君, 未有不以儉而興, 以奢而敗。 惟殿下懋哉! 懋哉! 節財用者, 何也? 節其濫用也。 財穀之生有限, 而用之無節, 則雖丘山之積, 江海之深, 猶不能繼其用也。 是故山木雖多, 伐之者衆則盡; 泉水雖湧, 汲之者衆則渴, 理勢然也。 夫濫用而能積, 無制而能節, 自古及今, 未之嘗聞。 苟能不作無益害有, 益不貴異物、賤用物, 則所費恒少、所餘恒多, 日積月積, 積不可勝矣。 如是則府庫倉廩, 貫朽而粟腐, 國富而民饒, 可立而待矣。 故《羲經》曰: ‘節以制度, 不傷財不害民。’ 孔子曰: ‘節用而愛民。’ 又曰: ‘政在節財’, 此皆禁濫利而塞漏費也。 節用, 國家之急務也。 惟殿下懋哉! 懋哉! 立紀綱者, 何也? 紀綱立則人無犯分, 事無不擧, 令行而禁止, 民化而俗美。 而近日則紀綱頹敗, 百度解弛, 國事日非。 最其中以公納一事言之, 各道、各邑之納, 自有不易之定限。 而挽近以來, 邑吏之負逋日積、船工之作奸日甚、京人之販商又多, 或一二年, 或四三年, 無難愆納, 尋常翫愒。 廟堂申飭則視若茶飯, 終不趁期。 各司之進排也、應下也, 末由擧行, 一邊挪移、一邊私貸, 瘡疣莫掩, 百弊俱生, 顚倒錯亂, 莫此爲甚。 此無他故焉, 紀綱之不立也。 朱夫子曰: ‘國之有紀綱, 猶人之有血脈。 國無紀綱則國而危矣; 人無血脈則人而死矣。 國家之治不治, 在於紀綱之立與不立也。 是故明君在上, 意諭色授而六服震恐, 言傳號渙而萬里奔走。 山巖窟穴之民, 不待期會, 而時輸、歲送, 以供其職者, 惟恐在後; 航浮索引之國, 非有發召, 而籯載橐負, 以致其摰者, 猶恐不及。 此皆紀綱之所致也。’ 惟殿下猛省而申明焉。 夫君者儀也, 儀正而影正; 君者源也, 源淸而流淸。 誠能行此三者, 則下而化之, 捷於影響矣。 又有所仰陳者。 夫人與勤者處, 則偸怠之志消矣; 與儉者處, 則侈靡之志消矣; 與恭者處, 則傲慢之志消矣; 與仁者處, 則慓悍之志消矣; 與剛者處, 則柔懦之志消矣。 伏願日開講筵, 討論經傳, 翫究辭旨, 則修齊治平之道, 自其中出來, 明於帝王之得失, 通於古今之治亂, 自然入於堯·舜之道、禹·湯之政, 而置國家於熙皞之域矣, 豈不盛哉、豈不休哉? 此雖蒭蕘之說、丘里之言, 或有補於政治之萬一。 故敢以此陳之, 伏願細細垂察焉。 且近日日人, 稱以通商, 往來閃忽, 無年無之, 而又送文字, 有若無故生釁者然。 且俄羅斯近益猾强, 沿邊列邑, 日受其害, 此皆萬萬隱憂之時也。 安知非無形之寇, 爲有形之寇哉? 夫兵不豫定, 無以待敵; 計不先慮, 無以應卒。 邊陲要衝之地, 各別擇人, 以爲不虞之備, 斷不可已也。" 批曰: "備陳時弊, 如是切至。 予庸嘉尙, 當留念矣。"
- 【원본】 20책 1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국용(國用)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외교-러시아[露] / 외교-왜(倭)
고종 16년 (1879) 1월 24일
고종실록16권, 고종 16년 1월 24일 戊辰 1/2 기사 / 1879년 조선 개국(開國) 488년
권종록이 현재의 폐단에 대하여 상소를 올리다
국역
집의(執義) 권종록(權鍾祿)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요즘의 나라 형편을 보니, 부고(府庫)와 창름(倉廩)이 텅 비어 백관의 녹봉(祿俸)을 계속 잇대기 어렵고 군병의 방료(放料)도 주지 못하는 때가 많으며 공인(貢人)의 공가(貢價)도 주지 못하고 원역(員役)의 삭하(朔下)도 지급하지 못하는 등 몹시 황급하여 단 하루도 보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든 해는 세상에 보통 있는 일입니다. 비록 연전(年前)에 대기근을 겪은 뒤이지만 어찌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입니까?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나라에 9년 동안 쓸 저축이 없으면 부족하다고 하고 6년 동안 쓸 저축이 없으면 급하다 하고 3년 동안 쓸 저축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리는 방도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禹)는 10년 동안 쓸 저축이 있었기에 9년 동안의 큰 홍수를 면하였고 탕(蕩)은 10년 동안 쓸 저축이 있었기에 7년 동안의 가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무릇 저축이란 것은 국가의 대명(大命)입니다. 곡식이 많고 재정에 여유가 있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지금은 그 해에 쓸 저축도 없어서 이와 같이 전에 없던 참상을 부르고 말았으니 이것은 전적으로 저축함이 없이 경비를 무절제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무릇 사람에게 중병이 있으면 반드시 양방(良方)을 얻은 연후에 살아날 수 있고 나라 창고가 텅 비면 반드시 좋은 방책을 세운 다음에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계책은 〖상양(桑羊)으로 하여금 주판을 놓고 유안(劉晏)으로 하여금 장부를 단속하게 한다 하더라도〗 그 계책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사치를 억제하고 재용을 절약하고 기강을 세운 연후에야 국계(國計)를 넉넉하게 하고 민력(民力)을 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치를 억제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치의 해독은 홍수나 맹수보다 심하다.’라고 하였으니, 사치란 몹시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근래 사치하는 습속이 나날이 심해져서 의복을 화려하게 하고 음식을 풍성하고 맛나게 하며 궁실을 장대하게 짓고 수레와 말을 성대하게 꾸미며 주옥(珠玉)을 갖고 놀기 좋아하는 것을 너무나도 따라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다투어 남보다 낫게 하려하고 빈자는 그 미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수입을 헤아릴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을 능사로 여기니,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쓰는 비용이 혹은 천백 냥에 이르지만 오히려 부족해하기도 합니다. 옛날에 한 냥을 썼으면 오늘은 백 냥을 쓰고 옛날에 열 냥을 썼으면 지금은 천만 냥을 쓰니 어찌 패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는 자체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 없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구해 드릴 필요가 없는데도 외국의 해괴한 쓸모없는 물건이 또 재화를 소비하는 하나의 큰 구멍을 열어놓아 사치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으니 설상가상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찌 크게 금지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일률(一律)을 적용하여 일체 엄하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임금들은 다른 나라의 물건을 귀히 여기지 않고 몸소 검소함을 실천하여 백성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음식을 박하게 하고 의복을 거칠게 하며 궁실을 소박하게 한 것은 하우(夏禹)의 검소한 덕행이며, 굵은 베로 옷을 해 입고 굵은 명주로 관을 해 쓴 것은 위 문공(衛文公)의 검소한 덕행이며, 몸소 검은 명주옷을 입고 갈대로 엮은 신을 신고 가죽으로 만든 띠를 두른 것은 한 문제(漢文帝)의 검소한 덕행이었습니다.
이윤(伊尹)이 그 임금에게 아뢰기를, ‘검소한 덕행을 중히 여기고 오직 나라를 영원히 유지할 것만 생각하소서.’라고 하였고, 제(齊) 나라 구자(丘子)가 말하기를, ‘임금 한 사람이 검소할 줄 알면 천하가 검소할 줄을 알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검소함이란 임금의 훌륭한 덕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검소해서 흥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며 사치해서 패망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니 전하께서는 힘쓰고 힘쓰소서.
재물을 절약해 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함부로 쓰는 것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재화(財貨)와 곡식이 나는 것은 한정이 있는데 무절제하게 쓴다면 비록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바다처럼 고여 있다 하더라도 그 쓰임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산에 나무가 많더라도 베어 가는 사람이 많으면 다하게 되고 샘에 물이 솟아나더라도 길어 가는 사람이 많으면 마르게 되는 것은 이치와 형세가 그러한 것입니다.
대체로 남용하면서 능히 저축하고, 무절제하면서 능히 절약하였다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진실로 무익한 일을 일삼아 유익한 일을 해치지 않고, 다른 나라 물건을 귀하게 여겨 늘 쓰는 물건을 천시하지 않는다면, 소비는 항상 적고 남는 것은 항상 많아 나날이 다달이 쌓여 이루 다할 수 없이 축적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고와 창름에 돈과 곡식이 썩어나도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들은 넉넉한 것을 머지않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제도로써 절제하여 재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비용을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한다.’라고 하고, 또 ‘정사는 재물을 절약하는 데 달렸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지나친 이익을 금하고 낭비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절용은 나라의 급선무이니, 전하께서는 힘쓰고 힘쓰소서.
기강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강이 서면 사람들이 분수를 어기지 않고 모든 일이 제대로 거행되어 시키면 하고 금하면 하지 않아서 백성들은 교화되고 풍속은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기강이 무너지고 온갖 법도가 해이해져서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공납(公納) 한 가지 문제를 말하자면, 각 도와 각 읍에서 납부하는 것은 원래 바꿀 수 없는 정해진 기한이 있는데 근래에는 읍리(邑吏)가 축낸 것이 날로 쌓이고 선공(船工)의 간사한 짓이 날로 심해지며 서울 사람의 판매 행위도 많아져서, 1, 2년 혹은 3, 4년을 대수롭지 않게 납부를 지체하고 예사롭게 부정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묘당(廟堂)에서 신칙해 보지만 다반사로 여기면서 끝내 기한을 지키지 않습니다. 각사(各司)의 진배(進排)이나 응하(應下)는 거행할 길이 없어 한편으로는 유용하고 한편으로는 사사로이 빌려 쓰다보니 갖가지 병폐를 감출 길이 없으니, 전도되고 착란되기가 이보다 심한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바로 기강이 서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주부자(朱夫子)가 말하기를, ‘나라에 기강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혈맥(血脈)이 있는 것과 같아서 나라에 기강이 없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사람에게 혈맥이 없게 되면 사람이 죽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못 다스려지는 것은 기강이 섰는가 서지 못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명군(明君)이 위에 있으면 뜻을 일깨워주고 기색을 보이기만 해도 온 나라가 두려워하고, 명을 전하고 호령을 내리기만 해도 만 리 밖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깊은 산골의 백성들은 정해진 기일을 기다리지 않고 수시로 실어 나르고 해마다 실어 보내면서도 그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 남보다 뒤처질까 두려워하고 배를 부리는 지방에서는 내려진 명령이 없는데도 싣고 지고 오면서도 지성을 바치는 것이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이것은 모두 기강이 선 결과입니다. 전하께서는 깊이 살피고 거듭 밝히소서. 무릇 군주란 본보기와 같아서 본보기가 바르면 그림자도 바르게 되며, 군주란 근원과 같아서 근원이 맑으면 흐름도 맑아지는 것입니다. 진실로 위의 세 가지를 잘 실행한다면 아랫사람들이 감화되는 것이 그림자나 메아리보다도 더 빠를 것입니다.
또 앙진(仰陳)할 것이 있습니다. 대체로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게을리하려는 생각이 없어지고 검소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사치하려는 생각이 없어지며 공손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오만한 생각이 없어지고 어진 사람과 함께 있으면 사나운 생각이 없어지며 강직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유약한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날마다 강연(講筵)을 열어서 경전(經傳)을 토론하고 글 뜻을 연구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방도가 저절로 그 속에서 나올 것이며, 제왕의 득실(得失)을 명백히 알게 되고 고금(古今)의 치란(治亂)에 통달하게 되어 자연히 요순(堯舜)의 도(道)와 우탕(禹湯)의 정사의 경지에 들어가 나라를 태평한 경지에 놓이도록 할 것이니, 어찌 훌륭하지 않겠으며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비록 나무꾼이나 촌사람 같은 하찮은 이의 말이긴 하나, 정치하는 데에 만의 하나라도 보탬이 될지 모르겠기에 감히 이렇게 진달 드리는 것이니 상세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근래 일인(日人)이 통상을 핑계 대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왕래하는 일이 없는 해가 없으며 또 문서를 보내어 까닭 없이 트집을 잡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러시아는 근래 더욱 교활하고 횡포해져서 연변(沿邊)의 열읍이 날마다 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깊이 근심해야 할 때이니, 실체를 감추고 있던 도적이 돌연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무릇 군대를 미리 정비하지 않고서는 적과 맞설 수 없고 계책을 미리 염려해두지 않고서는 불시에 대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변방의 요충지에 각별히 적임자를 뽑아 임명함으로써 불의의 사변에 대비하도록 하는 것을 결단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현재의 폐단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이 이와 같이 절절하니 내 참으로 가상하게 여긴다.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 【원본】 20책 1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국용(國用)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외교-러시아[露] / 외교-왜(倭)
원문
二十四日。 執義權鍾祿疏略: "臣觀近日之國勢, 府庫倉廩, 枵然空虛, 百官之頒祿難繼, 軍兵之放料多闕, 貢人之貢價未差, 員役之朔下未給, 遑遑汲汲, 若不保朝夕。 然歲之有饑, 天下之常也。 雖經年前大侵之餘, 豈至若此之境乎? 《王制》曰‘國無九年之蓄, 爲不足; 無六年之蓄, 急; 無三年之蓄, 國非其國。’ 此是經邦制治之言也。 是故禹有十年之蓄, 而免九年之水; 湯有十年之蓄, 而勝七年之旱。 夫蓄積者, 國家之大命也。 苟粟多而財有餘, 何患乎爲國乎? 今則無當年之蓄, 而致此無前之爻象, 此專由於儲蓄之無有, 經用之無節故也。 夫人有重病, 則必得良方, 然後可以生矣。 國而空虛, 則必畫良策, 然後可以實矣。 而爲當今計, 雖使桑羊執籌, 劉晏檢簿, 無以售其計也。 必也抑奢侈、節財用、立紀綱, 然後可以贍國計而舒民力矣。 抑奢侈者, 何也? 古人云‘奢侈之害, 甚於洪水猛獸’, 言其可懼、可戒之甚也。 近日奢侈之習, 日甚一日, 衣服之華美、飮食之豐甘、宮室之壯大、輿馬之盛飾、珠玉之翫好, 互相效嚬。 富者競欲相過、貧者恥其不逮, 不思量入, 看作能事, 一人一日之費, 或至千百金, 而猶日不足。 昔之費一而今之費百矣; 昔之費十而今之費千萬矣。 安得不敗亡也哉? 且我國之物産, 無物不生, 無所求於異國, 而外國奇奇怪怪無用之物, 又開滅貨之一大竇, 以益其侈, 可謂雪上加霜也。 豈不大可禁乎? 從玆以往, 施以一律, 一切嚴防焉。 是故聖主明王不貴異方之物, 躬儉以率民。 菲其飮食、惡其衣服、卑其宮室, 夏 禹之儉德也; 衣以大布、冠以大帛, 衛文之儉德也; 躬衣弋綈葦舃韋帶, 漢 文之儉德也。 伊尹之告其君曰: ‘愼乃儉德, 惟懷永圖。’ 齊 丘子曰: ‘一人知儉則天下知儉。’ 儉者, 人君之盛德也。 自古人君, 未有不以儉而興, 以奢而敗。 惟殿下懋哉! 懋哉! 節財用者, 何也? 節其濫用也。 財穀之生有限, 而用之無節, 則雖丘山之積, 江海之深, 猶不能繼其用也。 是故山木雖多, 伐之者衆則盡; 泉水雖湧, 汲之者衆則渴, 理勢然也。 夫濫用而能積, 無制而能節, 自古及今, 未之嘗聞。 苟能不作無益害有, 益不貴異物、賤用物, 則所費恒少、所餘恒多, 日積月積, 積不可勝矣。 如是則府庫倉廩, 貫朽而粟腐, 國富而民饒, 可立而待矣。 故《羲經》曰: ‘節以制度, 不傷財不害民。’ 孔子曰: ‘節用而愛民。’ 又曰: ‘政在節財’, 此皆禁濫利而塞漏費也。 節用, 國家之急務也。 惟殿下懋哉! 懋哉! 立紀綱者, 何也? 紀綱立則人無犯分, 事無不擧, 令行而禁止, 民化而俗美。 而近日則紀綱頹敗, 百度解弛, 國事日非。 最其中以公納一事言之, 各道、各邑之納, 自有不易之定限。 而挽近以來, 邑吏之負逋日積、船工之作奸日甚、京人之販商又多, 或一二年, 或四三年, 無難愆納, 尋常翫愒。 廟堂申飭則視若茶飯, 終不趁期。 各司之進排也、應下也, 末由擧行, 一邊挪移、一邊私貸, 瘡疣莫掩, 百弊俱生, 顚倒錯亂, 莫此爲甚。 此無他故焉, 紀綱之不立也。 朱夫子曰: ‘國之有紀綱, 猶人之有血脈。 國無紀綱則國而危矣; 人無血脈則人而死矣。 國家之治不治, 在於紀綱之立與不立也。 是故明君在上, 意諭色授而六服震恐, 言傳號渙而萬里奔走。 山巖窟穴之民, 不待期會, 而時輸、歲送, 以供其職者, 惟恐在後; 航浮索引之國, 非有發召, 而籯載橐負, 以致其摰者, 猶恐不及。 此皆紀綱之所致也。’ 惟殿下猛省而申明焉。 夫君者儀也, 儀正而影正; 君者源也, 源淸而流淸。 誠能行此三者, 則下而化之, 捷於影響矣。 又有所仰陳者。 夫人與勤者處, 則偸怠之志消矣; 與儉者處, 則侈靡之志消矣; 與恭者處, 則傲慢之志消矣; 與仁者處, 則慓悍之志消矣; 與剛者處, 則柔懦之志消矣。 伏願日開講筵, 討論經傳, 翫究辭旨, 則修齊治平之道, 自其中出來, 明於帝王之得失, 通於古今之治亂, 自然入於堯·舜之道、禹·湯之政, 而置國家於熙皞之域矣, 豈不盛哉、豈不休哉? 此雖蒭蕘之說、丘里之言, 或有補於政治之萬一。 故敢以此陳之, 伏願細細垂察焉。 且近日日人, 稱以通商, 往來閃忽, 無年無之, 而又送文字, 有若無故生釁者然。 且俄羅斯近益猾强, 沿邊列邑, 日受其害, 此皆萬萬隱憂之時也。 安知非無形之寇, 爲有形之寇哉? 夫兵不豫定, 無以待敵; 計不先慮, 無以應卒。 邊陲要衝之地, 各別擇人, 以爲不虞之備, 斷不可已也。" 批曰: "備陳時弊, 如是切至。 予庸嘉尙, 當留念矣。"
- 【원본】 20책 1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9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국용(國用)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외교-러시아[露] / 외교-왜(倭)
원본
고종 16년 (1879)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