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1권, 고종 1년 11월 20일 丁巳 1/2 기사 / 1864년 청 동치(同治) 3년
조두순이 전국의 양안을 철저히 할 것 등에 대해 진술하다
국역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조두순(趙斗淳)이 아뢰기를,
"여러 도(道)의 연분 대장(年分臺帳)에 오른 구재(舊災)의 명색에 대해 어리석고 식견이 얕은 신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언덕이 골짜기로 변하고 하천이 포구로 바뀌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재상전(災傷田)에 들어가기만 하면 요지부동이니, 이것이 어찌 지리(地理)가 그러해서이겠습니까? 모두가 참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것을 중앙과 지방에서 그대로 두고는 한 번도 철저한 조사를 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올가을 구재는 이미 엄히 조사하기 전에 관계되는 일이기에 부득이 그대로 시행하라고 허락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명년부터는 방백과 수령이 마음먹고 대책을 강구하여 참빗질을 하듯 철저히 찾아내어 옛문서에 적혀 내려오는 것을 귀로만 듣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구실로 삼지 말도록 하소서. 과연 강물이 뒤집히고 언덕이 패여서 영영 옮겨 살 가망이 없거나, 모래가 쌓이고 돌무지로 변하여 다시는 개간할 수 없는 곳이라면 연분(年分)을 기다릴 것도 없이 사실대로 보고하여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고, 이 밖에는 일체 기전(起田)으로 복구하고 감히 ‘구재’라는 두 글자로 상례(常例)를 답습하지 말되, 수령의 전최(殿最)도 조사해낸 기전의 다소를 가지고 징계하고 권장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사역원(司譯院)의 관리와 생도들이 공부는 다 집어던지고 청탁하러 다니는 것만 일삼아 익혀야 할 것이 무슨 일인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등제(等第)를 앞질러 차지하는 폐단이 바로 병통의 근원입니다. 한학(漢學)·청학(淸學)·몽학(蒙學)·왜학(倭學) 사학(四學)의 등제 중에는 한학의 차상통사(次上通事)·구압물(舊押物)·삼압물(三押物) 및 청학의 피선(被選)·별체아(別遞兒)·신체아(新遞兒), 몽학의 원체아(元遞兒), 왜학의 총민(聰敏) 등 도합 여덟 가지 등제에는 예로부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차임을 허락하는 규례가 있었는데, 법이 오래되는 데 따라 폐단이 생겨나서 오늘과 같은 고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찌 시험을 보여 인재를 취하는 본뜻이겠습니까? 이제부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자는 사학 중에 어느 과목을 막론하고 모두 여덟 등제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한다면 아마도 본업을 익히고 청탁하려는 기풍을 그치게 하는데 일조가 될 것입니다. 참작하여 손익하는 방법은 별도로 절목(節目)을 만들어 계하(啓下)하여 영원히 준수해나갈 근거를 만들고, 이 밖에 관상감(觀象監)과 의학(醫學) 관계의 두 관청 및 탁지부(度支部)의 산원(算員) 가운데 적체되어 소통시켜야 할 일이 있으면 각 해당 아문(衙門)으로 하여금 강구하고 정리하게 한 다음 계하(啓下)하여 똑같이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왜관(倭館)에 땔나무와 숯을 대주는 것은 부산 첨사(釜山僉使)가 주관하는 일인데, 근자에 듣자니 1년분을 모두 포흠하여 매번 말썽이 생긴다고 합니다. 금년부터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상고하여 포흠하게 된 근원을 구핵(究覈)하고 보고해서 품처하도록 도신(道臣)에게 통지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5책 1권 10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7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농업-양전(量田)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외교-일본(日本)
원문
二十日。 次對。 領議政趙斗淳曰: "諸道年分舊災名色, 區區愚淺, 嘗所未曉者。 陵谷之遷變, 川浦之換易, 非曰無之, 而一入災傷, 撼動不得者, 是豈地理使然哉? 都緣虛實混淆, 中外仍循, 未始行一番剋核之政而然矣。 今秋舊災, 旣係査括之前, 故雖不得不許施, 而明年爲始, 方伯、守令著意講究, 痛加櫛刷, 勿以流傳古紙爲耳食之資。 果是江翻岸斷, 永無移生之望, 沙堆礫峙, 不復可闢之處, 則不待年分, 據實登聞, 以俟朝家處分。 此外則一切還起, 無敢以舊災二字, 爲循襲例套。 守令殿最, 以査起多少, 爲懲勸之政何如?" 允之。 又曰: "譯院官生, 全抛工夫, 惟事紛競, 殆不知所肄習之爲何事。 而就中徑占等第之弊, 爲其病家源委。 蓋漢、淸、蒙、倭四學等第中, 若漢學之次·上通事、舊押物、三押物及淸學之被選別遞兒、新遞兒, 蒙學之元遞兒, 倭學之聰敏, 合八等第, 雖未科者, 舊有許差之規。 而法久弊生, 馴致今日之膏肓, 此豈設試取才之本意也? 自今以後, 未科者, 毋論四學, 竝勿許應試於八等第之窠, 則庶可爲肄本業、息紛競之一助。 而若其參酌損益之方, 別成節目啓下, 以爲永遵。 外此, 雲監、兩醫司及度支筭員中, 如有滯鬱可疏之事, 令各該衙門, 講究釐正啓下, 一體施行何如?" 允之。 又曰: "倭館柴炭入給, 釜山僉使所主管也。 近聞: ‘一年條, 盡歸逋藪, 每每生梗’云。 自今年溯考三十年, 始逋源委, 窮覈登聞, 以爲稟處事, 請知委道臣。" 允之。
- 【원본】 5책 1권 10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7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농업-양전(量田)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외교-일본(日本)
고종 1년 (1864) 11월 20일
고종실록1권, 고종 1년 11월 20일 丁巳 1/2 기사 / 1864년 청 동치(同治) 3년
조두순이 전국의 양안을 철저히 할 것 등에 대해 진술하다
국역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조두순(趙斗淳)이 아뢰기를,
"여러 도(道)의 연분 대장(年分臺帳)에 오른 구재(舊災)의 명색에 대해 어리석고 식견이 얕은 신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언덕이 골짜기로 변하고 하천이 포구로 바뀌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재상전(災傷田)에 들어가기만 하면 요지부동이니, 이것이 어찌 지리(地理)가 그러해서이겠습니까? 모두가 참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것을 중앙과 지방에서 그대로 두고는 한 번도 철저한 조사를 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올가을 구재는 이미 엄히 조사하기 전에 관계되는 일이기에 부득이 그대로 시행하라고 허락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명년부터는 방백과 수령이 마음먹고 대책을 강구하여 참빗질을 하듯 철저히 찾아내어 옛문서에 적혀 내려오는 것을 귀로만 듣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구실로 삼지 말도록 하소서. 과연 강물이 뒤집히고 언덕이 패여서 영영 옮겨 살 가망이 없거나, 모래가 쌓이고 돌무지로 변하여 다시는 개간할 수 없는 곳이라면 연분(年分)을 기다릴 것도 없이 사실대로 보고하여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고, 이 밖에는 일체 기전(起田)으로 복구하고 감히 ‘구재’라는 두 글자로 상례(常例)를 답습하지 말되, 수령의 전최(殿最)도 조사해낸 기전의 다소를 가지고 징계하고 권장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사역원(司譯院)의 관리와 생도들이 공부는 다 집어던지고 청탁하러 다니는 것만 일삼아 익혀야 할 것이 무슨 일인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등제(等第)를 앞질러 차지하는 폐단이 바로 병통의 근원입니다. 한학(漢學)·청학(淸學)·몽학(蒙學)·왜학(倭學) 사학(四學)의 등제 중에는 한학의 차상통사(次上通事)·구압물(舊押物)·삼압물(三押物) 및 청학의 피선(被選)·별체아(別遞兒)·신체아(新遞兒), 몽학의 원체아(元遞兒), 왜학의 총민(聰敏) 등 도합 여덟 가지 등제에는 예로부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차임을 허락하는 규례가 있었는데, 법이 오래되는 데 따라 폐단이 생겨나서 오늘과 같은 고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찌 시험을 보여 인재를 취하는 본뜻이겠습니까? 이제부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자는 사학 중에 어느 과목을 막론하고 모두 여덟 등제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한다면 아마도 본업을 익히고 청탁하려는 기풍을 그치게 하는데 일조가 될 것입니다. 참작하여 손익하는 방법은 별도로 절목(節目)을 만들어 계하(啓下)하여 영원히 준수해나갈 근거를 만들고, 이 밖에 관상감(觀象監)과 의학(醫學) 관계의 두 관청 및 탁지부(度支部)의 산원(算員) 가운데 적체되어 소통시켜야 할 일이 있으면 각 해당 아문(衙門)으로 하여금 강구하고 정리하게 한 다음 계하(啓下)하여 똑같이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왜관(倭館)에 땔나무와 숯을 대주는 것은 부산 첨사(釜山僉使)가 주관하는 일인데, 근자에 듣자니 1년분을 모두 포흠하여 매번 말썽이 생긴다고 합니다. 금년부터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상고하여 포흠하게 된 근원을 구핵(究覈)하고 보고해서 품처하도록 도신(道臣)에게 통지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 【원본】 5책 1권 10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7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농업-양전(量田)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외교-일본(日本)
원문
二十日。 次對。 領議政趙斗淳曰: "諸道年分舊災名色, 區區愚淺, 嘗所未曉者。 陵谷之遷變, 川浦之換易, 非曰無之, 而一入災傷, 撼動不得者, 是豈地理使然哉? 都緣虛實混淆, 中外仍循, 未始行一番剋核之政而然矣。 今秋舊災, 旣係査括之前, 故雖不得不許施, 而明年爲始, 方伯、守令著意講究, 痛加櫛刷, 勿以流傳古紙爲耳食之資。 果是江翻岸斷, 永無移生之望, 沙堆礫峙, 不復可闢之處, 則不待年分, 據實登聞, 以俟朝家處分。 此外則一切還起, 無敢以舊災二字, 爲循襲例套。 守令殿最, 以査起多少, 爲懲勸之政何如?" 允之。 又曰: "譯院官生, 全抛工夫, 惟事紛競, 殆不知所肄習之爲何事。 而就中徑占等第之弊, 爲其病家源委。 蓋漢、淸、蒙、倭四學等第中, 若漢學之次·上通事、舊押物、三押物及淸學之被選別遞兒、新遞兒, 蒙學之元遞兒, 倭學之聰敏, 合八等第, 雖未科者, 舊有許差之規。 而法久弊生, 馴致今日之膏肓, 此豈設試取才之本意也? 自今以後, 未科者, 毋論四學, 竝勿許應試於八等第之窠, 則庶可爲肄本業、息紛競之一助。 而若其參酌損益之方, 別成節目啓下, 以爲永遵。 外此, 雲監、兩醫司及度支筭員中, 如有滯鬱可疏之事, 令各該衙門, 講究釐正啓下, 一體施行何如?" 允之。 又曰: "倭館柴炭入給, 釜山僉使所主管也。 近聞: ‘一年條, 盡歸逋藪, 每每生梗’云。 自今年溯考三十年, 始逋源委, 窮覈登聞, 以爲稟處事, 請知委道臣。" 允之。
- 【원본】 5책 1권 101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7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농업-양전(量田)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외교-일본(日本)
원본
고종 1년 (1864)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