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실록30권, 순조 28년 7월 14일 壬子 1/2 기사 / 1828년 청 도광(道光) 8년
재난을 입은 백성에 대한 위무책을 강구하고 시행하게 하다
국역
하령하기를,
"나, 소자는 어린 나이 부덕한 사람으로서, 외람되이 대리(代理)를 맡아 밤낮없이 근심과 걱정으로 엷은 얼음을 밟듯이 조심하지마는, 깊숙한 궁궐 속에 생장하여 견문이 넓지 못하니 세상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전연 모른다. 백성이 심한 고통에 허덕이나 그 급한 일을 구제하지 못하고, 기강이 땅에 떨어져도 쇄신하는 정치를 할 수 없다. 공사(公私)에 쓸 재물이 다하여도 절약하는 방도를 강구하지 못하고, 수령들이 재물을 탐내어서 착취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고 있어도 그들을 극형으로 다스리는 벌을 시행하지 못하였으며, 인재를 다 거두어 수용하지 못하고 언로(言路)도 널리 열어 주지 못하였다. 저 백성을 위하는 기술과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한 번도 착수하지 못한 것은, 모두다 나의 학식이 밝지 못하고 생각이 트이지 못한 까닭이다.
금년에는 처음에 가물다가 끝에 가서는 홍수가 져서 비와 개인 날씨가 알맞지 못하고, 마침내는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을 기약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또 무엇 때문에 3남 지방에는 충재(蟲災)의 근심이 달포가 넘게 내리는 장맛비 속에 갑자기 발생하였는가? 이것을 잡아낼 방법이 없고, 벼와 곡식이 재앙을 입은 것이 전도(全道)가 거의 같으니, 결실이 되기는 바랄 수도 없을 듯하다. 하늘이 잘못을 깨우치려는 것은 나 한 사람 뿐일 것인데, 끝내 우리의 무고(無辜)한 기백만(幾百萬) 생민으로 하여금 이 재앙을 입게 되었다.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렇게 하십니까?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렇게 잔인하십니까? 내가 자신을 꾸짖어 재앙을 종식시키고자 한다면, 나에게 과연 재앙을 불러올 만한 허다한 단서가 없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궁실(宮室)을 지으며 절검(節儉)하는 미덕을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고, 혹은 놀고 즐기기를 너무 지나치게 하여 삼가고 경계하는 공부를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일을 시행하는 사이에 애민(愛民)하는 지의(至意)가 드러나지 못하였을 수도 있고, 정령(政令)을 하는 중에도 백성을 다스리는 고심(苦心)을 본받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경사(經史)를 강론하고 신하들을 불러 볼 때에도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못하였으니, 천심(天心)이 어찌 성내지 않았겠으며, 재앙인들 어찌 발생하지 않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송구스럽고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하겠다.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야 될 방법은 비록 나에게 있다고 하지마는, 백성을 편안히 하는 방도는 실로 방백(方伯)과 수령(守令)에게 있다.
오늘날 백성을 편히 하고 백성을 구할 수 있는 계책을 미리 각자 강구하여, 장달(狀達)할 만한 것이 있으면 장달하고 논보(論報)할 만한 것이 있으면 논보하도록 하라. 재민(災民)을 구제하는 일은 불 속에 든 자를 구하는 것처럼 하고, 물에 빠진 자를 건지는 것처럼 하여, 혹시라도 기회를 놓쳐 만시지탄이 있게 하지 않도록 하라는 일을, 빨리 3남 도신(道臣)에게 알리도록 하라. 지금 이 애통한 유시(諭示)는 자책(自責)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대소(大小) 신하들은 모두 상세히 알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12면
원문
○壬子/令曰: "余小子, 以沖年否德, 猥承代理, 夙夜憂懼, 若履薄氷, 而生長九重, 聞見不廣, 世間之疾苦艱難, 一切茫昧, 民生倒懸, 不能救燃眉之急, 紀綱解墜, 不能爲振刷之政。 公私之財穀罄竭, 不能思節約之道, 守宰之貪墨成風, 不能用誅殛之罰, 人才不能收攬, 言路不能恢開。 凡係利民之術, 爲治之方, 未能一番着手者, 是皆余學識不明, 志慮未通故也。 今乃始旱終澇, 雨暘失宜, 畢竟有秋, 果難爲期, 又何三南蟲蝕之患, 忽發於跨朔陰雨之中, 捕捉無術, 禾穀受毒, 全道幾乎同然, 西成似無其望。 天之告警, 在余一人, 而終使我無辜之幾百萬生民, 廼罹此災者, 天胡忍斯, 天胡忍斯? 余欲責躬而弭災, 則果不無許多召災之端。 或有宮室之興作, 而不念節儉之美, 或有遊豫之太康, 而不思謹飭之工, 施爲之間, 未著愛民之至意, 政令之上, 未效爲治之苦心, 講論經史, 召接臣隣, 亦不能克勤克誠, 則天心安得不怒, 災異安得不生乎? 思之及此, 不覺悚蹙而愧恧, 自反改悟之道, 雖在於余, 斯民奠安之方, 實賴於方伯守宰。 凡今便民救民之策, 預各講究, 可以狀達者狀達, 可以論報者論報。 屬於災民之事, 有如救焚而拯溺, 無或有失期晩時之歎事, 卽速知委於三南道臣處。 今此哀痛之諭, 出於自責之意, 大小臣隣, 咸須知悉。"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12면
순조 28년 (1828) 7월 14일
순조실록30권, 순조 28년 7월 14일 壬子 1/2 기사 / 1828년 청 도광(道光) 8년
재난을 입은 백성에 대한 위무책을 강구하고 시행하게 하다
국역
하령하기를,
"나, 소자는 어린 나이 부덕한 사람으로서, 외람되이 대리(代理)를 맡아 밤낮없이 근심과 걱정으로 엷은 얼음을 밟듯이 조심하지마는, 깊숙한 궁궐 속에 생장하여 견문이 넓지 못하니 세상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전연 모른다. 백성이 심한 고통에 허덕이나 그 급한 일을 구제하지 못하고, 기강이 땅에 떨어져도 쇄신하는 정치를 할 수 없다. 공사(公私)에 쓸 재물이 다하여도 절약하는 방도를 강구하지 못하고, 수령들이 재물을 탐내어서 착취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고 있어도 그들을 극형으로 다스리는 벌을 시행하지 못하였으며, 인재를 다 거두어 수용하지 못하고 언로(言路)도 널리 열어 주지 못하였다. 저 백성을 위하는 기술과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한 번도 착수하지 못한 것은, 모두다 나의 학식이 밝지 못하고 생각이 트이지 못한 까닭이다.
금년에는 처음에 가물다가 끝에 가서는 홍수가 져서 비와 개인 날씨가 알맞지 못하고, 마침내는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을 기약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또 무엇 때문에 3남 지방에는 충재(蟲災)의 근심이 달포가 넘게 내리는 장맛비 속에 갑자기 발생하였는가? 이것을 잡아낼 방법이 없고, 벼와 곡식이 재앙을 입은 것이 전도(全道)가 거의 같으니, 결실이 되기는 바랄 수도 없을 듯하다. 하늘이 잘못을 깨우치려는 것은 나 한 사람 뿐일 것인데, 끝내 우리의 무고(無辜)한 기백만(幾百萬) 생민으로 하여금 이 재앙을 입게 되었다.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렇게 하십니까? 하늘이여, 어찌 차마 이렇게 잔인하십니까? 내가 자신을 꾸짖어 재앙을 종식시키고자 한다면, 나에게 과연 재앙을 불러올 만한 허다한 단서가 없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궁실(宮室)을 지으며 절검(節儉)하는 미덕을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고, 혹은 놀고 즐기기를 너무 지나치게 하여 삼가고 경계하는 공부를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일을 시행하는 사이에 애민(愛民)하는 지의(至意)가 드러나지 못하였을 수도 있고, 정령(政令)을 하는 중에도 백성을 다스리는 고심(苦心)을 본받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경사(經史)를 강론하고 신하들을 불러 볼 때에도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못하였으니, 천심(天心)이 어찌 성내지 않았겠으며, 재앙인들 어찌 발생하지 않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송구스럽고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하겠다. 스스로 반성하고 고쳐야 될 방법은 비록 나에게 있다고 하지마는, 백성을 편안히 하는 방도는 실로 방백(方伯)과 수령(守令)에게 있다.
오늘날 백성을 편히 하고 백성을 구할 수 있는 계책을 미리 각자 강구하여, 장달(狀達)할 만한 것이 있으면 장달하고 논보(論報)할 만한 것이 있으면 논보하도록 하라. 재민(災民)을 구제하는 일은 불 속에 든 자를 구하는 것처럼 하고, 물에 빠진 자를 건지는 것처럼 하여, 혹시라도 기회를 놓쳐 만시지탄이 있게 하지 않도록 하라는 일을, 빨리 3남 도신(道臣)에게 알리도록 하라. 지금 이 애통한 유시(諭示)는 자책(自責)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대소(大小) 신하들은 모두 상세히 알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12면
원문
○壬子/令曰: "余小子, 以沖年否德, 猥承代理, 夙夜憂懼, 若履薄氷, 而生長九重, 聞見不廣, 世間之疾苦艱難, 一切茫昧, 民生倒懸, 不能救燃眉之急, 紀綱解墜, 不能爲振刷之政。 公私之財穀罄竭, 不能思節約之道, 守宰之貪墨成風, 不能用誅殛之罰, 人才不能收攬, 言路不能恢開。 凡係利民之術, 爲治之方, 未能一番着手者, 是皆余學識不明, 志慮未通故也。 今乃始旱終澇, 雨暘失宜, 畢竟有秋, 果難爲期, 又何三南蟲蝕之患, 忽發於跨朔陰雨之中, 捕捉無術, 禾穀受毒, 全道幾乎同然, 西成似無其望。 天之告警, 在余一人, 而終使我無辜之幾百萬生民, 廼罹此災者, 天胡忍斯, 天胡忍斯? 余欲責躬而弭災, 則果不無許多召災之端。 或有宮室之興作, 而不念節儉之美, 或有遊豫之太康, 而不思謹飭之工, 施爲之間, 未著愛民之至意, 政令之上, 未效爲治之苦心, 講論經史, 召接臣隣, 亦不能克勤克誠, 則天心安得不怒, 災異安得不生乎? 思之及此, 不覺悚蹙而愧恧, 自反改悟之道, 雖在於余, 斯民奠安之方, 實賴於方伯守宰。 凡今便民救民之策, 預各講究, 可以狀達者狀達, 可以論報者論報。 屬於災民之事, 有如救焚而拯溺, 無或有失期晩時之歎事, 卽速知委於三南道臣處。 今此哀痛之諭, 出於自責之意, 大小臣隣, 咸須知悉。"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12면
원본
순조 28년 (1828) 7월 14일